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 -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
신경림.김명곤.장영희.최영미 외 지음 / 예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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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낭독의 발견>을 보았던 적이 있다. 단 한 번이었다. 가수 SG 워너비의 멤버 세 명이 나와 무언가의 글귀를 낭독하고 있었다. 그때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중 가창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젊음' 한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눈이 젖어드는 걸 보았다. 이 책은 그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구절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다. 현재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이 부제로 적혀있다. 그 중 제주도를 사랑한 김영갑님은 저세상에 산다.

 

누구나 삶의 길은 탄탄대로이거나 산새 지저귀는 한적한 오솔길만은 아닐 테다. 역경과 꿈, 절망과 희망의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그 길을 말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오르한 파묵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서전을 내지 않았던가. 세월의 길이가 아니라 그것의 색깔과 질량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만이 사람의 길 위에서 주울 수 있는 보석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이라고 들고 나온 글귀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인생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힘을 준 것들이었다.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도 빨려들어가서 마음속에 이는 공명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 이 책의 미덕은 삶의 아름다운 방식을 은유한 여러 가지 시와 산문들을 28가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대중으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사람들, 그들 삶의 길에서 그 글귀들이 어떻게 힘이 되었고 빛을 발했는지,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변화를 주는 건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구절의 글귀’이기도 하다는 증거가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쓰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장영희님의 글을 서두로 하여 가장 마지막에는 코미디언 이홍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모두 감동적이었지만 이홍렬이 소개한 어머니의 자필 편지는 코끝을 찡하게 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인데 철자법이 엉망이어서 남들이 제대로 해독하려면 한 시간도 넘어걸릴 글이지만 자신은 단숨에 읽었다는 대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삶의 진실된 교훈을 아들에게 늘 일러주셨던 그 어머니는 아들이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영면하셨다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편지에 그는 지금에와 늦게 어머니께 답장을 썼다.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하는 편지글이다. 그저 멋 부려 썼거나 어려운 문자를 쓴 편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쉽게 읽고 해독할 만한 글로, 정말 소박하고 진실해 뵈는 문장이었다. 웃음을 주는 사람답게 그토록 눈물겨운 편지글 중에 우스갯소리가 들어있어 눈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아름다운 시와 문장 그리고 사람들의 향기 나는 이야기 못지않게, 책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싶다. 표지에서부터 안에 여럿 들어가 있는 꽃사진들이 책의 멋을 더해준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진인데 론 반 돈겐이라는 미국의 사진작가가 찍었다. 라벤더 색상의 간지와 함께 눈부시게 고운 색감의 종이 위에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의 한 구절’이라고 적힌 부록을 뒷장에 두어 환상적인 꽃사진과 함께 독자도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을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게 해 두었다. 하루하루 적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면 오래 간직될 귀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역시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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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2-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빨리 갔네요. 뭘요.. 받아주셔서 고맙지요^^

2006-12-15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6-12-1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네요.

프레이야 2006-12-1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네 감동적인 부분들이 많았어요. 산악인 엄홍길님이 죽은 대원에게 보낸 편지도 울컥했습니다.

글샘 2006-12-25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을 서가에서 몇 번 만났는데, 담에 담에...하고 미뤘더랬는데요.
배혜경님 글 읽고, 담에는 찾아 봐야겠습니다. 근데 꼭 그러고 가면 없더라고요. ^^
 
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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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쓰고 안웅철이 찍은 것들이 모여 나온 사진에세이집이다. 사둔지 좀 된 것인데 서재의 *****님을 생각하며 오늘 쓴다. 김훈의 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또 한 번 젖어볼까나, 하고 가볍게 폈다. 그 자신도 자신의 문체의 오류를 알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그의 문체에서 오는 관념적 거리감 같은 게 마음을 그리 편안하게 하지는 못하는 부분이 더러 있다. 차분히 내려앉으며 한 자 한 자를 꼭꼭 씹으며 힘들게 뱉어내는 것 같은(실제로 말도 그런 어투로 한다고 들었다) 그의 문체는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하는 묘한 거리가 있다. 문체가 글쓴이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주제에 따라 내포작가는 다양한 문체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로선, 이런 특유의 방법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를 풀어내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크레타섬에서 직접 몸으로 느낀 지중해바람으로 글을 시작한다. 우리땅의 바람, 시간의 가고옴으로 흐르며 '사람들을 옥죄면서 다가오는 것들을 향해 사람들을 몰아가는'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다가온 지중해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늘 부는 바람, 가볍고 투명한 바람, 바람이 아닌 바람, 지속과 생성을 느끼게 하는 바람, 기류라기보다 시간에 가까운 바람. 이런 말들로 정의한 지중해의 바람을 그는 공에 은유하였다.

- 인간의 생명으로부터 자연과 문명을 분리할 수 없듯이 공은 자연과 문명의 복합체이다. 공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바람과 같다.(서문 중)

월드컵이 한창인 때 그곳 이국에서 공을 차고 막는 사람들을 보았고 돌아와서 안웅철이 내민 공차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고 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공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이 아니라 공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주인공이다. 그 둘의 사이에서 무수히 생성되고 지속되는 역동성에 대한 이야기를 김훈의 나름의 '편애'로 늘어놓는다. 김훈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멋진 사진들과 함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책이고 그의 문체에 어느정도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식상할 수도 있는 책이다. 나로 말하자면 사진이 우선 보고 싶어 고른 책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문장은 내 호악의 기준을 넘어있다. 

사람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되 절대 깊숙히 흡입되지 않아 보이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공의 역동성, 공정성, 생명력과 공을 다루는 사람들의 원생적 에너지에 집중하는 그의 눈이 마음에 든다. 여러 사진들 중에서도 아이와 공을 담은 사진들,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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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12-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섯글자가 춤추는 인생이길 바라면서^^
김훈선생님의 글을 보면 저렇게 많은것을 품어 안을수 있는 그의 시선과 완숙미가 저는 마냥 부럽고 놀라워요.
오늘밤에는 이책을 품에 안고 자야겠어요. ^^ 그렇게 하고 싶어졌어요...

프레이야 2006-12-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바로 맞혔어요. 들어오셔서 보실 줄 은근 기대했죠.

소나무집 2006-12-1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궁금하군요. 몇 컷 올려주시지...

프레이야 2006-12-1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그러게요.. 제가 디카 올릴 줄 몰라서요 ㅜㅜ
책 검색해서 찾아보시면 나올지 몰라요^^

2006-12-13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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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 바르바라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을 때 아이를 가지려는 계획을 했던 건 아니었다. 아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완전한 타자였다. 어느 날, 그녀의 뱃속에 자리를 잡고부터 그녀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쥐고 흔드는 무법의 이방인이었다. '행복한 사건'은 그녀의 철학논문 주제인 '타자의 문제'와 병행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독백처럼 나아간다. 독백형식이다보니 관념적인 서술이 많은 편이다. 인물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아름다운 묘사, 섬세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기보다는 직설적이며 냉소적인 어투로 감정의 최대혼란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여과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의 심경에 비추면 적절한 문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흥미로운 제목, <행복한 사건>은 타자가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나로 인해 신의 존재로 구현되는지를 말하고 싶은 자전적 소설이었다.

나로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경험을 두 번 겪은 독자로서 여기 바르바라가 겪는 심리전이 구체적으로 와닿았다. 병원에서 첫아기를 안고 퇴원하여 집으로 들어올 때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수술로 낳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의 공백이었는데도 집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들어오자마자 아기침대에 아기가 깨지 않게 조심하여 아기를 눕힌 후 젖병을 준비하고 기저귀를 쌓아두고 목욕 용구도 챙겼다. 이전의 내 생활은 소리없이 잠적하고 아주 새로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날마다 반복되었다. 잠깐 미루거나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스무장도 넘게 나오는 천기저귀를 빨고 분유를 세네시간에 한 번씩 타서 먹이고 얼러서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그런 생활이 나를 미치도록 몰아가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행복감이나 재미는 솔직히 길지 않고 나머지는 잠이 모자라 거의 빈사상태에 밤에도 울고 보채는 아이를 업고 안고 꾸벅꾸벅 졸던 시기가 있었다.

여기 바르바라가 니콜라에게 느끼는 감정들도 무척 공감된다. 남편은 방관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요즘의 젊은 남편들이야 육아에 많은 부분 동참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로서 감당해야하는 것들은 영역 밖의 고립된 성과 같다. 그 성 안에서 여성 혼자 부대끼며 하루에도 몇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대책없이 울어대기만 할 때 아기는 바르바라가 느끼는 것처럼 에일리언이나 다름없다. 아기가 '부부사이의 파괴자'이거나 '섹스트러블' 메이커처럼 굴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아이 때문에 다투게 되고 서로 신경을 곤두 세우고 피곤해하며 지쳐선 우리가 언제 사랑이나 했던가, 그저 습관처럼 살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분명 행복한 사건 중의 '덜 행복한' 사건이었다.

바르바라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부분은 모유수유 숭배자라는 점이다. 나같은 경우는 젖이 잘 나오지 않아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 병원에서 초유 조금 먹인 게 모두다. 그리고는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게 자랐지만 모유수유의 장점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감이 든다. 이러는 나도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의 가슴이 어떤 것인지 안타깝게도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못한다.

<행복한 사건>에서 모유수유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가는 바르바라를 지탱하게 한 정신적 힘이자 거듭 나게 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유를 먹이며 어린 딸 레아가 '신'이라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레아로 인해 비로소 절대성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글귀는 모성의 본질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타자를 대하는 순수성을 시사한다. 자신은 레아를 낳았지만 레아는 자신을 낳았고 레아로 인해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됨이다. 모성이란 모유수유에서 비롯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인다. 작가는 페미니즘적인 시각과 마초적 성향을 다소 균형있게 그리려고 한 점이 눈이 띄는데, 모유수유의 영역은 여성고유의 것이며 현대적인 어떤 문화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했다. 작가는 그런 점에서 가장 본능적인 포유류의 특징을 들어 여성이 어머니로 진화하는 위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는 복잡한 길이었다.

이 책을 덮으면 가족이란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대개는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분담해야하며 좀더 다른 의미의 사랑으로 엮어가야 한다고 알고는 있다. 하지만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거슬리고 짐이 된다고 느낄 때 자신의 역할을 성스럽게 수행하기란 쉽지가 않다. 딸과 어머니, 아들과 어머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자매간의 심리도 사실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가장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산다. 여기에 아이가 들어가면 조금은 사이가 부드러워지며 각자의 위치가 재정립되기도 한다. 아이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이견으로 서로 마음을 다치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아이로 인해 가족의 틀이 굳건해지고 그속에서 웃음소리가 난다는 사실이다. 니콜라에게서 다시금 예전의 사랑을 떠올리고 '너무 사랑했기에 더 이상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됐구나, 사랑 없는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구나.' 라고 중얼거리는 바르바라는 이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었다. 또 다시 임신을 한 것이다.

<행복한 사건>은 모성 신화에 대한 솔직한 불평불만으로 시작하여 결국 모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맺는 듯하다. 모성신화에 끝까지 발칙한 도전을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 궁금해진다. 남성의 입장에서 아이를 갖게 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이렇게 육체적이며 심리적인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나올 수 없을 테다. 몸으로 심정으로 직접 겪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성은 위대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모성은 그 모든 희생 위에 있다느니 하는 진부한 이야기로는 모성 신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자의식이 강하며 자기애가 많은 바르바라가 타자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에 이르는 과정이 여기 '모유수유에서 재임신까지'다. 모르긴 해도 둘째 아기를 낳고 기를 때면 제법 달라져있을 바르바라를, 경험자들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 대한 연민'이 그 해답이다. 이는 그녀의 삶을 통틀어 진정 행복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 레아가 울면서 보챌 때, 그 애가 내게서 멀어져 가고, 내가 그 애에게서 멀어져 갈 때 나는 레아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동정심은 아름답다. 아니, 동정심이 인류의 첫 번째 단계는 아니다. 본능적이기는 해도 그것은 가장 숭고한 감정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다. 타인의 기대를, 희망을,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성스러운 이끌림에 따라 우리는 타인에게 몸을 숙이고 손길을 건네며 자신의 품으로 맞아들인다. 그것은 본래적이며 심오하다. 그게 바로 인간적인 것이다. 어머니의 젖과 가슴, 그것이 바로 그러한 관대함이다. (p 227)

 ps : 이 책의 뒤쪽 책날개에는 알라디너 두분의 실명과 멋진 서평이 적혀있어요. 올리지 못해 아쉽네요. 보신 분은 누구일지 알아맞혀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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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0-0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아프락사스님은 알겠는데 한 분은 또 누구실까나...

씩씩하니 2006-10-0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물만두님 아니에요?????

프레이야 2006-10-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아니에요. 여섯자랍니다..^^

프레이야 2006-11-2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그래요 정말. 효부상, 열녀상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 굴레라고 생각해요.
 
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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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기와'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흔 가까이의 세월을 살아오며 보통의 여성보다는 좀더 많은 상처를 받은 듯하다. 이 책은 파란이 많았던 이런 시인이 길을 떠나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독백이다. 일종의 기행사진에세이 종류로 넣고 싶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이 떠올랐다. 김훈의 글에서 느껴졌던 맛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여성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섬세한 감정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시인은 자신의 사생활도 고백하며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출가하는 어느 여성, 세속의 것을 다 비우고 떠나는 그 사람의 가방안에는 생리대가 가득했다는 글에서, 여성이라서 짊어져야하는 짐 같은 것에 대한 시인의 애틋함이 보인다. 시인은 자신도 버거워했던 그런 것들에 신물이 나면서도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여행의 사진 못지않게 둘다 사진이 멋스럽게 곁들여져있어 글의 인상을 도드라지게 해준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전국의 유명 비구니 사찰 열세 곳을 찾아간다. 시인은 비구니 사찰을 골라 다니며 비구니들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다. 사찰의 유래도 설명해놓았고 비구니들과의 선문답 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저 도란도란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를 글로 전한다. 역시 상처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약인 것 같다.  산사의 풍경묘사에서도 시인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뜨거운 마음이 엿보인다.

사실, 글보다 사진이 한층 더 눈을 사로잡았다. 비구니의 맑은 얼굴마냥 사진이 참 담백하다. 김홍희님은 마음에 '나'를 담지 않고 셔터를 누른 것 같다. 두 장을 차지하며 넓게 펼쳐지는 풍경사진들 속에는 한결같이 '빛'이 있다. 어느 땐 비구니가 벗어놓은 단아한 흰고무신짝에, 어느 땐 단장한 색시마냥 색을 풍기는 문살에, 그렇게 '나'대신 '빛'을 실었다. 그 빛에 가만히 눈길을 주고 있으면 아련한 그리움이 구슬픈 가락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 사물의 한 곳에 매달린 빛이 너무 아름다워 서러워진다.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그 사진들이 어찌 좋은지 한참을 머물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기와 시인의 글도 읽어내려가며 자꾸 눈에 걸린다. 공감되는 부분에서는 멈추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그래서 또 걸린다. 그녀의 길에는 다른 시인들의 싯구와 자신이 지은 싯구도 동행한다. 그 싯구들에 시인은 또 자신의 생각을 하나 더 걸어둔다. 좋은 시들을 감상하는 시간도 덤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류의 기행에세이가 넘었으면 하는 약간의 벽이 자꾸만 보이는 건 왜일까, 나도 그만큼 변했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무상은 헛됨이나 공허함이 아니라 변화임을 강조하듯, 우리는 변하는 것을 위한 준비를 하는 생을 살고 있음이다. 머물러 있지 않는 나. 그러니 '나'는 버려라. 변화하는 '나'만 있을 뿐... 시인이 던지는 화두와도 같은 글귀와 그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자신과의 화해를 청하는 대목들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나'와 '너'라는 인칭이 없어질 때 비로소 우주의 우주가 된다는 글귀 또한 울림이 있다. 아상이 많아 칭찬에 인색한 사람을 이야기하다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인의 생각은 강물처럼 유연하게 흘러흘러 가는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들을 곳곳에 설명하듯 들려주는 것은 좋았는데, 여기 소개된 사찰들을 찾고 싶은 사람을 위해 지도라도 곁들여주었으면 좋았겠다. 고즈넉한 그곳에 가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허공을 온종일 날아다녀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새처럼,

항상 웃고 있어도 시끄럽지 않은 꽃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호수 밑을 뚫어도 상처 하나 남기지 않는 달빛처럼 비우고 또 비워 가벼워져야 하건만,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이처럼 잔뜩 힘이 들어가서야 어느 천 년에 구름 되어 열반에 들 수 있을까...(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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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젠가 말씀을 드린적이 있던가요?
님의 리뷰를 읽으면 색이 떠올라요...
그 책의 색이...
오늘은 햇빛입니다
아침의 찬란한 빛이 생각이 되네요..^^ 밝은 기운 듬뿍 얻어갑니다...

프레이야 2006-07-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사진을 보면 정말 그런 빛이 느껴져요.. 밝은 기운 듬뿍~ 감사해요^^

씩씩하니 2006-07-3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버려라 변화하는 나만 있을 뿐,,,
어쩌면 이렇게 가슴에 꼭 와닿는지요...
너무 아름다운 책 같애요,,서점에 들러볼까봐요~~~

프레이야 2006-08-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이 책은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느낌이 참 좋아요. '나'아닌 나와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서점에도 있던걸요^^ 와.. 근데 님 이미지 넘 귀여워요*^^*
 
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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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생각했던 형식의 책이 아니었다는 점을 밝힌다. 알래스카의 풍광을 기대했던 나는 몇 장의 사진으로만 상상력을 발휘했어야했다. 저자의 담백한 묘사로 상상해보는 정도로 그쳐야했다. 사진이 있는 글로 기대했는데 내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꿈을 꾸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글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도 좋았다.

이 책은 소박한 문장과 저자의 겸허한 인품이 돋보인다. 저자는 일본인으로 야생동물학을 전공하여 알래스카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머나먼 다른 곳으로의 동경을 품고 있어 16세에는 무작정 미국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1978년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지금껏 살면서 외경심을 품게 되는 대자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 사람을 어떻게 키워나갔는지, 잔잔한 영상이 그려지는 글이다.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 누구든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여행하는 나무>라는 제목을 따온 것 같다. 나무는 성장하고 죽어서도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지금 어디쯤의 여행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리 우물 안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선 광활한 대자연에서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꿈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도저히 몸으로 느껴지지 못하는 삶이다.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재정궁핍으로 1867년 단지 720만달러라는 돈에 팔려간 극북의 땅덩어리다.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은 사람은 그곳의 자연을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저자에게나 저자가 만나 영혼을 교류한 여러 사람들에게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땅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래스카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사진이 극히 적어 아쉬웠지만, 그곳 사람들의 삶이나 인디언들과의 만남 그리고 인디언들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가치관이나 자연에 대한 생각들은 문명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고래를 작살로 죽이는 모습이 잔인한 야만인의 모습이 아닌 것은, 그들이 사냥을 한 후의 기도와 희생의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연을 인간의 마음대로 파괴하는 사람들이 야만인이지, 이들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에서 얻고 자연에 베풀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사람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겸허하며 언젠가 자신들도 자연에게 바쳐질 것을 순리로 생각하며 산다.

빙하, 툰드라, 오로라, 백야, 북극곰, 고래사냥 등.. 저자의 체험을 따라 슬슬 가다보면 그 야생의 냄새를 맡고 싶어 몸부림이 난다.

목차를 보면 모두 네 장으로 나누어 묶어 각각 새로운여행, 북방을 향한 그리움, 백야, 그리고 여행하는 나무라는 소제목을 달아놓았다. '새로운 여행'편에서는 1993-94년도에 쓴 편지를 실어놓았다. 수신자는 밝혀져있지 않고 겸양체의 어조가 낮고 진지하다. 처음 알래스카에 왔을 당시에 쓴 오래된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회고식으로 이야기가 풀린다. 낯선 곳에서의 소외감을 남미 적도부근의 여행에서 느낀 점과 함께 떠올리기도 하고 알래스카가 처한 현실, 즉 문명과 자연이라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현실을 생각하기도 한다. 

2장 '북방을 향한 그리움' 부터는 회상을 통해 저자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얻게된 소중한 깨달음을 나긋나긋한 어조로 들려준다.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멋부리지 않아 편안하다. '백야'에서는 상상만으로 펼쳐지는(독자에게는) 알래스카의 풍경들이 대자연의 야생동물들과 함께 그려진다.  

'여행하는 나무'에서는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이 보인다. 특히 시간에 대한 생각과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 관념으로 그치지 않고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 호감이 간다. 넓디넓은 자연의 품에서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간다는 걸 몸으로 실감하며 산다면 내게 허락된 시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주어진 순간을 놓쳐가면서까지 과거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 저자의 생각이 새삼 다르게 들린다.

인디언은 세 가지만 생각했단다. 첫째는 대지, 둘째는 동물, 그리고 셋째는 사람. 살아남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고. 가장 중요한 건 대지였다고.. '살아남는다' 라는 말을 되뇌어보게 된다.

"... 모든 물질은 결국 화석이 된다. 그러나 화석이라고 해서 생명이 없던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 귀를 기울여라. 분명 사라진 옛이야기가 들려올 것이다. 바람이야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화석이기 때문이다." (253 쪽)

ps ; 오자를 발견했다. '온화한 표정 뒤에 한 시대를 살아온 인간만이 갖출 수 있는 위험이 서려 있었다."(248쪽) ( '위험'이 아니라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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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2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서 찾아보니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있더군요. 사진이 주가 되는... 그책을 사서 보고싶어져 담아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