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구하기] 서평단 알림
애덤 스미스 구하기 - 개정판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서평단도서>


 이랜드 사태나 자유무역협정이 빚는 결과들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주고 있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그 분노의 기저에 있는 경제학적인 원인과 해결방안을 통찰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나아가, 글로벌 경제와 다국적 기업의 윤리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책이다. 미국 경제학자가 쓴 소설이지만 Adam Smith(1723-1790)를 부활시켜 이야기하는 논리들이 우리에게도 준엄한 경고와 폭넓은 충고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S(Stabilize)-L(Liberalize)-P(Privatize) 방식을 제시하여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경제학 지도교수의 뒤를 이어 일생일대의 중요한 논문을 쓰고 있는 리차드 번스가 주인공이다. 그로 하여금 정의(Justice)를 선행조건으로 하는 J-S-L-P 방식이 경제 효율성 개혁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발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는 애덤스미스 학파의 계보를 잇되, 그의 경제이론 중 곡해되어 있었거나 외면되어 있었던 부분들을 찾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재발견이다. 책에서는 이 방식이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균형 잡힌 사회적, 제도적 체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더욱 완전한 개발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책에서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그런 결론을 번스에 이어 독자가 납득하게 하기까지 번스와 스미스의 영적 대화가 이어진다. 그들의 대화는 길고 위험한 여행과 병행한다. 아, 하나 더, 번스의 8살 난 콜리, 렉스가 있다. 쫓기듯 출발한 미국횡단여행을 통해 번스는 스미스의 세계에 점차 흡입되어간다. 갖가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번스의 깨달음은 깊어진다. 그들의 대화는 여행처럼 대개 생경하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기시감처럼 낯익고 때로는 기존의 관념에 부딪혀 충돌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묘사는 경제와 관련한 무미건조할 수 있는 대화에 색채를 불어넣는다. 그 여정을 지도로 그려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훨씬 입체감을 불어넣어줄 것 같다. 군더더기 없이 정연한 문장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좋은 번역의 힘인지도 모른다. 안진환이란 이름을 기억해둔다. 책의 뒤에 정리해 둔 꼼꼼한 ‘자료노트’는 이 소설이 애덤 스미스에 관한 많은 자료들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보여준다. 학술적 이론은 물론, 그의 거친 목소리와 툭 튀어나온 입, 이야기 할 때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버릇, 세살 때 집시에게 유괴되었던 일과 빨강머리 아가씨를 보고 연애감정을 떠올린 일까지, 2세기를 너머 그를 부활시키고자 생명력을 넣은 흔적이다.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보다 앞서 나왔고 여섯 번이나 재출간된 『도덕감정론』(The Theory for Moral Sentiments, 1759)의 내용이 이 소설의 토대를 이룬다. 그것은 결국 ‘국부론’의 오해와 왜곡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는 ‘정의의 법(law of justice)'은 방종한 이기심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권이자, 자신의 근면성과 자본을 기반으로 다른 이들과 경쟁하게 하는 인적 자본의 근원이 된다. 그러한 자본의 축적이 거듭될 때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도 닦이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스미스의 말은 이어진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 줄 아나? 그 본능 안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규제와 법률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방해물들을 극복하고, 사회를 부와 번영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저력이 숨어 있다네!” (p119)

 이 말은 케인즈의 이론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넓게 보고 앞을 내다보며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자본주의 경제도 고쳐 쓰고자 했던 케인즈나 스미스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가 내놓은 고전적인 이론이나, 물적 자원 위에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두고자 한 점이 비슷하다. 이 책에서 그들이 여행 도중 우연히 만나는 피터라는 경영자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인물이다. 여러 에피소드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피터와의 조우다. 바다에 빠질 뻔한 사람을 구해주고 그의 회사를 방문하게 된 두 사람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번스는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직원이 왕이다”라고 말하는 피터에게 감동 받는다. 이 말은 많은 부분 ‘타인과의 동감’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스미스의 입을 빌자면, 타인과 느끼는 자연스런 동감은 모두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다. 타인과의 동감은 문제의 옳고그름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열정을 이해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것은 제3자의 입장에선 우습기도 한 치명적인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따라오는 ‘인간애, 자비, 친절, 우정, 존중’ 같은 좀 더 초월된 열정을 말한다. “그걸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네.” (p179)  곁가지이긴 하지만, 줄리아와의 사랑을 두고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는 번스를 스미스는 굳이 재촉하지 않으면서 격려한다.

 타인과의 동감은 대개 도덕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번스는 목초지로 하이킹을 나서서 눈부신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뒤덮인 평원을 걷는다. 이때 평온함이 잦아들며 감각이 증대되고, 감각을 초월하게 된다. 순간 ‘내 마음은 자유로웠다.’고 느끼며, 여기서 그는 비로소 상상의 힘을 깨닫게 된다. ‘투시법을 통해 초점을 바꿔가며 보는 것이 열쇠였다!’ 그가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눈으로 보고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예기치 않은 사건처럼 보인다. 운이나 우연일까. 리차드 번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순간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며 지적 토대를 닦아왔지만 깨달음을 손에 넣는 데는 상상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자연현상에 대입한 그의 경제학적 논리가 그리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불확실성 아래서 행해지는 주식 가격평가의 문제를 급하게 흐르는 시내에, 투자가를 야생화에, 그리고 국제 자본을 물에 비유한 후, 야생화가 물을 찾는 골짜기에서 그 급류가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p277)

 도덕적 상상력이 부른 동감은 결정적으로 번스의 사고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는 막 깨달은 내용을 공식으로 옮겨 쓴다. 그의 논문에 적힐 결론이 급회전하는 결정적인 시점이다. 그는 데이비드 흄이 말한 ‘이성은 열정의 노예’를 떠올리고 ‘이성은 지혜의 일부일 뿐’이라는 스미스의 말도 새긴다. 애덤 스미스는 흄과 함께 이신론자였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 흄의 <인성론>을 읽다가 압수당해 목사가 되려던 한 때의 꿈도 버렸다. 1739년에 나온 <인성론>은 인간의 생각과 욕심, 도덕과 같은 성품을 연구한 책으로 스미스가 도덕철학을 꾸준히 연구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이신론(理神論)은 신은 이성적으로 자연계를 건설한 후 세계의 규칙에 개입하지 않으며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이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성은 지혜의 일부일 뿐.

 이신론자이자 경험론자였던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도 믿을 수 있으며 중요하며, 감정은 실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의 결미에서 번스는 스미스를 대신하여 말한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식은 곧 힘입니다. 부조화스럽고 일방적인 지식은, 즉 당신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그 방법은 엄청난 비능률을 초래하며 소비자와 노동자는 심각한 불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p307) 사소한 문제라는 말은 역설적이다. 역기능의 지식에 기반을 둔 ‘이성’은 결국 타인의 열정에 대한 동감을 불러오는 ‘감정’을 앞서갈 수 없다. 다소 몽상가적인 발상일지 모르나 결국 변화를 주도하는 우리는 ‘계몽주의의 자녀들’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미스가 말하는 계몽운동은 ‘정신적인 구속에서 해방된, 상상을 자유롭게 하는 혁신’에 가깝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시대를 이어 평생의 친구였던 흄과 더불어 스미스는 과학적 방법을 인간세계에 적용시켰다. 인간의 도덕성과 시장에.

 책은 아전인수 격인 견해 흡수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는다. <국부론> 중 ‘자유경쟁에 의한 자본축적’의 일부만 잘라내 적용한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당시 흑인들에게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보게 된 식민지의 담배 농장주들은 노예제도에 반대한 스미스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초반에 힌트를 노골적으로 주어버리는 바람에 번스와 스미스의 여행 내내 쫓아다니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주는 역할로는 조금 아쉽다. 아무튼 그 검은 그림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추종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결미에서 정체가 드러나고 그의 흑색 야심 또한 드러내며 결국 자멸한다. 저자는 1989년 12월 17일 루마니아 혁명으로 차우셰스쿠가 몰살된 사건을 동유럽 자유의 시발점으로, 애덤 스미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상징이었다고 전제한다. 스미스의 영혼이 부활한 육체, 해럴드를 루마니아의 ‘티미소아라’ 출신으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단어의 전체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듯 어떤 사람의 견해도 전체적 맥락에서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협한 해석을 하여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함께 잘 살기 위한 스미스의 견해에 위배되어, 그의 분노를 자아낸 셈이다. 부(富)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말은 일부는 맞지만 전부가 아니다. 목적이 아니라 도구이어야 할 부(富)의 축적을 추구할 때야말로 도덕적인 감정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실현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국민들이 행복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소득의 50%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일이 흔쾌히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느끼는 높은 행복지수와 차별된다. ‘국가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탐구’는 ‘도덕적 감정의 일반화’가 전제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현대에 부활한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정의와 자유가 진보를 가져오’려면 물질적 부의 무절제한 추구는 도덕적 부패와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법칙을 만드는 전통이라는 상급법원보다 더 높은 상급법원은 양심과 분별력이 아닐까. 양심은 '내면의 공명정대한 관찰자'이자 심판관이다. 우리는 모두 경제활동을 한다.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관중이기도 하다. 관중은 경쟁자를 밀어뜨리는 부도덕한 선수를 증오할 것이고 노동에 대한 관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참신한 인적 자원으로서 역할하지 못할 것이다. 소비자로서도 최대한 도덕적 감정을 지녀야 할 일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손쉬운 입장이기도 한데 귀찮다는 이유가 실천에 방해가 되기도 하니 ‘나부터’가 중요하겠다. 애덤 스미스는 상인과 제조업자의 ‘비열한 강탈’을 비난했다. ‘그들의 대화는 대중을 기만하기 위한 음모나 가격을 올리려는 계략으로 끝난다.’라고 경고했다.

 당시 스미스와 친분이 있었던 흄, 볼테르, 루소, 1758년 화폐의 흐름을 분석한 『경제표』로 유명한 중농주의 학파의 케네가 함께 만나 떠드는 자리를 엿보기는 꽤 흥분된다. 책은 부, 쇄신, 덕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3부로 나누어 이야기의 호흡을 고르게 한다. 흔히 알고 있듯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 자유무역론의 고전주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의 깐깐하면서도 명쾌한 여행에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동참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국부론’이나 ‘도덕감정론’을 읽은 적이 없고 경제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도 두루두루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동감할 수 있는 책이다.



* 오자로 보이는 몇 가지

p118 아래에서 6번째 줄 ;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자유를 보장하고? 
                                                                       (‘철저하게’가 아닌지?)
p173 위에서 2번째 줄 ; 향나무 숲 속 지났다. (‘숲 속을’이 아닌지?)
p275-p289  책장 하단 ;  상급 법워에의 항소 (-->법원에의)

 


*엉뚱하지만 즐거운 생각 하나 ; 이 책이 영화화된다면 ‘다빈치코드’와 흡사한 구조와 분위기가 될 것  같다. 소설적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로맨스도  그렇고. 지적 매력이 물씬한 리차드 번스 역할로는 누가 어울릴까. 그리고 부활한 애덤 스미스와 자동차 정비공 해럴드의 양면적 얼굴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는? 지적 대화와 긴박감에, 미국 횡단 여행의 로드무비 형식이 될 테니 길 위에서 풍경과 동행하는 재미도 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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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성의있고 깔끔한 리뷰, 혜경님의 리뷰를 먼저 봤다면 저렇게 간단하게 리뷰를 쓰지는 않았을 거에요 흑흑 ㅋㅋ

. 2007-11-0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꼼꼼한 책 보기가 돋보이십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2007-11-04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0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캄사해요^^ 흐흑 ㅎㅎ
노피솔님, 내용이 워낙 좋은 책이더군요.^^

비로그인 2007-11-0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흄과 스미스는 천재들이지요.


2007-11-05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5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11-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자 보이는 건 직업병이시군요. 저도 책 읽다 보면 연필 들고 오자 찾는 데 열중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한답니다.

프레이야 2007-11-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그런가요.^^ 천재들은 앞서서 통찰한다는 공통점이 느껴집니다.
도덕철학에 먼저 깊이 관심있었던 스미스였는데.. 저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그 내용이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이었습니다.

소나무집님, 직업병인가요? ㅎㅎ 열중하기보다 그저 눈에 들어오니까요..
하드커버를 싸고 있는 비닐커버도 꽤 근사해보였는데 읽기엔 거추장스럽더군요. 빼놓고 읽었지요.

비로그인 2007-11-0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잘 지내시지요. ^^제 글에 덧글도 하나 남겨주시고. 고맙습니다. ㅎㅎ^^
날씨가 쌀쌀해요.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고 그 경계 어디쯤에 있는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

프레이야 2007-11-06 08:32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11월은 늘 그런 것 같아요. 경계 어디쯤.
그래서 더 이뻐해줘야 할 것 같은 달이에요.^^
이것저것 복닥대는 마음이지만 조금은 쌀쌀한 늦가을이 좋으네요.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미고자라드 Migozarad! (지나가리라!) - 카불의 어느 찻집 벽에 적힌 낙서라고 한다.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럴싸한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며 한숨이 푹푹 나왔다. 예언 같은 저 말은 5년이 지난 지금, 아직은 맞지 않다는 사실에 더욱 안타까워졌다.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의 주술은 ‘먼지 냄새’ 가득한 그곳 여성의 갇힌 몸만큼이나 뿌옇고 암담하다. 종교경찰이 횡행하던 탈레반 시절, '희망은 곧 악몽'이라고 생각한 여성들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일은 저자를 따라 술탄 칸의 가족들과 밀착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이곳저곳을 동행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출장길, 죽음의 폐샤와르를 지나 파키스탄, 알카에다 추적, 저잣거리, 대중탕, 결혼식과 그 준비과정, 알리의 영묘 순례, 사원, 카불의 현대식 호텔, 학교, 교육부, 경찰서와 감옥까지. 그래서 문장이 현재형이다. 보고문학으로서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로 그들과 한 해(2002년) 봄 동안 동거하며, 보고 들은 것에만 기초하여 글을 썼다고 밝혀두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자는 인물들의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변화에서도 말 못할 내밀한 고통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심리까지 그렇게 묘사해낼 수 있었던 것을 저자는,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한 것까지 술술 이야기해 준 그들의 공으로 돌렸다. 받아적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풀어놓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는 말에서 그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10월, 9.11사건의 주모자로 추정되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는 명목으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해 11월, 북부동맹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 아래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2001년 11월은, 탈레반이 무너진 아프가니스탄에 저자, 오스네(서구젊은여자종군기자)가 카불에 도착하여 술탄 칸을 처음 만난 때이기도 하다. '머리가 희끗하고 품위 있는 남자.' 그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이다. 유엔인간개발지수 순위 177개국 중 175위, 문맹률과 유아사망율이 극도로 높은 최극빈국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분명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술탄 칸의 집.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족이 셋이나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있고, 최상의 보살핌으로 대접 받으며, 충분하고 멋진 음식을 날마다 먹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들 가족에 밀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술탄 칸이 책장수를 하는 문화사업가, 수완 좋은 장사꾼, 진보주의자 내지는 소위 중산층이라서도 아니고, 저자는 그들에게서 '글을 쓰고 싶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외국병사들에 의지하더라도 다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 탱크 잔해와 지뢰와 철골뼈대 앙상한 건물이 널브러져있는 카불의, 봄에 대해서도.

 2002년에 이 책을 썼고 지금 5년이 지난 아프가니스탄. 그들의 재건은 참담한 상태로밖에 안 보인다. 종교경찰이 사회, 문화, 예술을 비롯해, 샴푸통에 그려진 여자얼굴까지도 검은 유성매직으로 지우게 했을 정도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칼을 댄 탈레반은 지금도 테러를 일삼으며 암암리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군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아프간인들을 농락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진보적 정권기로 특징지어진 1960년대와 70년대(다우드 대통령)는, 뻥 뚫린 건물의 구멍을 메우고 부서진 창유리를 갈아 끼우는 작업에 한창인 카르자이 정권이 수복할 수 없는, 다 지나가버린 시절 같다. 전쟁을 겪은 경험으로 나이를 어림하는 아프간인들의 얼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약탈과 지배를 겪어온 그들의 슬픈 초상이다. 그럼에도 2007년, 군벌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간 의회는 ‘과거 25년간 전쟁범죄 면책’ 입법을 ‘국가의 화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군벌들을 재판정에 서게 하는 대신 고위직에 임명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 국민의 80%가 과거 전쟁범죄와 잔혹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검찰조사를 원하고 있고 그 길만이 아프간의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 아프간 최연소 국회의원 말라라이 조야(29)의 감동적인 연설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제헌의회에서 군벌타도를 외치다가 추방된 말라라이 조야는 "저 년을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버려라." 는 노골적인 협박을 의회에서 듣고 네 차례의 암살 위기에 처하면서도 지금 세계를 돌며 아프간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내가 본 연설문은 올해 4월10일 로스앤젤레스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전문이다. 아프간 민중(특히 여성)의 유린된 인권과 그들에게 주입하는 ‘마피아식 시스템’에 부들부들 떨리며 읽어 내려갔었다.

 『카불의 책장수』를 다 읽고 나서 그 기사를 다시 읽다가 콱 걸리는 이름이 나와 놀랐다. 비비굴! 아프간에서는 흔한 여자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카불의 책장수인 술탄 칸의 어머니, 아프간 여성의 아픔을 몸으로 담고 살아온 상징과도 같은 그 이름이 말라라이 조야의 연설문에서 언급되다니. 동명이인이겠지. 그 내용이란, '자살만이 암담한 현실의 탈출구'라고 생각하는 아프간 여성들이 실제로 자살한 예를 몇 들었던 것인데, 이를테면 ‘비비굴이라는 또다른 여성은 마굿간에 자신의 몸을 결박시키고 불을 질러 자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에게 남겨진 것은 유골뿐이었습니다.’ 이런 글이었다. 건강을 생각해 기름진 음식을 자제해야 하지만 오로지 술탄의 입맛을 위해 막내딸 레일라는 기름진 음식을 매번 올려야 하고 그렇게 입맛이 든 늙고 뚱뚱한 비비굴은 카펫 아래 아몬드를 숨겨놓고 건강을 염려하는 딸의 눈을 피해 먹는다. 책 속의 비비굴이 맛보는 그 아몬드의 맛이란 나일론천으로 둘러싸여 숨쉬기도 힘든 부르카를 잠시 걷고 카불의 먼지바람이나마 들이키는 순간의 짜릿한 맛과 비슷했을 것이다. 비비굴은 억압받는 아프간의 많은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자위해도 책 속에서 딸을 (돈에 팔아)시집  보내거나 (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시집 보내지 못하면서 아픔을 삼키던 그녀가, 자살했다는 그녀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저자는 서구여성이다. ‘서구’라는 점은 보고문학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시각에 어쩔 수 없는 편중이 있게 했고, ‘여성’이라는 점은 양성자의 자격으로 아프간의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다가갈 수 있게 한 장점이 되었다. 저자가 남성이었다면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관습으로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경악했고 그것은 책 속에서 일관되게 부르카의 음침한 환영이 되었다. 아름답고 훤칠하며 흰 피부의 그녀가 파란색 부르카를 입어본 경험은 그녀에게 세 가지의 느낌을 동시에 준다.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 아프간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중적인 모호한 감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르카가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물건인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저자는 술탄 칸이라는 책장수야말로 '아프가니스탄 문화사의 살아 있는 한 부분이자,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역사책'이라고 느꼈다고, 먼저 밝혀두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어렵다. 저자도 고백했듯이 그가 아프가니스탄의 전형적인 가족이 아니란 점, 그럼에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가지로 엮여있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많은 부분을 시사해준다. 술탄의 꿈은 '책의 제국'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희생되어야 하고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된다는 게 술탄의 철학이다. 소련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들이 릴레이라도 하듯 술탄의 책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가고, 책들을 불태우고, 감시하고 압수하고 그를 감옥에도 넣었다. 이 모든 수난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때로는 교묘하게 피해간 술탄은 이제 평화유지군에게 제일 잘 팔리는 아프간 엽서를 파는 일에도 매달린다.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여 수많은 엽서를 만들고 파키스탄과 이란 등으로 출장도 다녀오는 오십대 초중반의 술탄. 그는 16살의 두 번째 부인 소냐와 행복한 시간을 갖는 일에도 열중한다. 하지만 그녀가 돈에 팔려오면서도 자살하지 않은 건 그녀의 성품 탓도 있을 테고, 술탄 가족들의 배려와 술탄의 자상함, 그와 동시에 술탄이 집에서 부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제국,이 다분히 독단적이며 위압적으로 들린다.

 이 책은 술탄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들려주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교육, 정치, 종교 그리고 부르카가 작용하는 여성억압과 인권탄압의 악령을 보여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가리고 오로지 먼지 폴폴 날리는 신발만 보여주는 부르카 안에서도 요동치는 게 있었다. 부르카가 덮어 가리지 못하는 것들. 야릇한 설렘의 손가락질이나 눈웃음도 저자의 눈에는 다 보인다. 그 안에는 동경과 욕망과 실망이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부르카는 원래 귀부인들의 의복이었다. 귀족이 먼저 벗어던졌던 부르카를 아직 벗지 못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짓밟힌 삶을 떨치고 나갈 엄두도 도저히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부르카를 벗지 못하는 나라에서, 그녀 그리고 그들은 체념이거나 순종, 아니면 혁명밖에는 방도가 없어 보인다. 진보주의자를 스스로 표방하는 중간 지식 계급의 술탄이 뼈가 앙상한 아이들에게 베풀 동정심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못하고, 집에서는 더없이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독불장군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은 아쉬운 정도를 넘어서 있다.


 

 
 
 
레일라 역시 그럴 생각이 꿈에도 없다. 탈레반은 카불에서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레일라와 비비굴과 샤리파와 소냐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은 탈레반 시대가 끝나서 기쁘다. 이제는 음악을 연주해도 되고, 춤을 춰도 되고, 다른 사람 눈에만 띄지 않으면 발톱에 메니큐어를 발라도 된다. 그들은 안전한 부르카 속에 숨을 수 있다. 레일라는 내전, 물라 통치, 탈레반 정권이 낳은 진정한 자식이었다. 두려움의 자식. 그녀는 속으로만 울었다. 벗어나려는 시도, 독립적인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 배우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P226)
 
   

 

 

 저자는 카불에 도착할 당시 북부동맹군들과 한동안 숙식을 해왔다. 그녀는 탈레반의 잔학성에 대해 고발하고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일에는 과묵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우선, 호기심을 자극한 한 중산층 책장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가 의도한 방식으로 읽히기에 오히려, 한 편의 소설처럼 생생하고 흥미롭다. 저자는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기우뚱하지 않고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문장의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앞장에 간단한 지도 한 장을 그려넣고, 글속에 나온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 책의 가운데에 16면 정도로 넣어두었다. 파란 부르카를 입은 저자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탈레반이 물러간 지금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벗고 학교에 가는 여자아이가 포착되었는데 그아이가 어깨에 매고 가는 가방에 쓰여진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 가만히 들여다보니 '백암체육관'('암'자가 희미하지만)이라는 노란글자에 빨강노랑 배색의 가방이다. 그 옆의 사진은 밝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인데 참 해맑다. 그 사진 아래, '그 얼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을 본다'고 쓴 저자의 글에는 당시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지만, 5년이 흘러 무색하고 공허한 소리가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이다.

 

 기원전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던 카불, 시내중심가에는 카불강이 흐르고 과실이 무성한 과수원에 비옥한 들녘을 가진 땅덩어리가 온통 흙빛의 척박한 땅이 되어버렸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탓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알라께서도 죽는가?" 

지가르 쿤 Jigar khoon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아리아나 항공의 비행기로 뉴델리를 향해 날아가려던 항공관광부장관이 여행사의 사기로 탑승을 거부당한 메카 순례자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동안 수태 '자라보고 놀란 가슴들'은 온갖 추측으로 술렁이며 음모론을 내어놓고, 그 사람들 틈에서 술탄의 막내아들 아이말이 호텔청소부에게 한 말이다. 죽은 장관 때문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유년시절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오자 확인 :

p304 첫줄 ;    페로자는 목이 멨지만 어떤 항변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 페로자 ---> 타지미르 (문맥상))
p350 중간쯤 ; ... 군부 쿠데타가 있어나 목숨을 잃는다.
                     (있어나 --->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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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간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어 안타깝긴 하지만, 서구인들이 보는 빈민국의 생활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연 저 여자가 '조선 시대'의 규방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전족을 한 중국 여인들과 인터뷰를 했다면...
부르카로 대표되는 여성 차별은 성당에서 미사포를 써야하는 차별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도 안 읽고 웬 이상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1 13:00   좋아요 0 | URL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환경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아요.
저자는 노르웨이의 씩씩한 종군기자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성본능이 엿보이는 부분들도 많았구요.
그 나름으로 당시 아프간의 초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하늘바람 2007-09-2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굉장한 서평이에요 저도 읽고 보고 프네요

프레이야 2007-09-21 16:0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태은이가 방긋^^ 반가워요^^
읽어주셔서 고맙지요. 여성 특유이 부드러움이 보이는 기록이에요.

2007-09-2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1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7-09-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방외인의 시선이 내부자의 그것보다 더 적실하다 여겨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서구의 '눈'이 결함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치명적이라 생각되진 않아요.
그러한 차원에서 이 멋지고도 아픈 기록을 무시할 순 없겠지요.

혜경님의 리뷰를 읽으며, '지가르 쿤 Jigar khoon'했어요. 위의 댓글처럼 그 현실의 고통과 아픔이 오롯이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 좋은 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9-22 20:59   좋아요 0 | URL
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점에서요. 다양한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눈이 다양하게 보고 느끼는 것들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고 흥미롭습니다.
바람결님이나 제가 느낀 대로 '지가르 쿤', 저자도 이렇게 느꼈음인데, 자기
감정을 객관화하여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술이 장점이더군요. 공감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sokdagi 2007-09-2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대단하시네요. 컴터가 말썽을 부려 오랜만에 들러봅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09-27 09: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읽어보시면 괜찮을 거에요.
몸은 힘드시진 않은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서재에 오랜만에 들렀어요, 어제요..
 
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붐을 타고 줄줄이 번역되어 나오는 일본소설들에 나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몇 권 읽다가 그만 둔 것들이 있는데 그냥 취향의 차이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약간의 거부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하루키의 '상실의시대' 이후 참 오래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제목이 마음을 끌어 이 책을 신청하게 되었고 즐거운 독서의 기회를 얻어 감사한 마음이다.

 작가 쇼지 유키야는 그런 나로선 물론 처음 들어본 작가인데 작년에 이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 올해 5월 <쉬 러브스 유>라는 제목으로 속편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보편적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전편에서 'All you need is LOVE'를 노래하는 이 소설이라면 속편에 속편이 나와도 반가우리란 생각이 들었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할 테고 에피소드마다 특별함이 있을 테니까. 게다가 가족 시트콤으로 각색해도 좋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4대가 한 집에 어울려 살며 좌충우돌 겪게 되는 소소한 이야기들과 풋풋하게 풀어가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들이 잔잔한 감동과 특별한 재미를 주었다. 마치 얼마 전 종영한 텔레비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상큼발랄하면서 눈가를 살짝 젖어들게 하는 알콩달콩, 새콤상큼한 이야기들이다.

  부담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장점 외에도 이 책의 나레이션이나 구성은 독특하다. 독자에게 홋타 집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영원한 일흔여섯 살의 죽은 할머니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말투는 정감 있고 할머니이지만 귀엽기까지 하다. 지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가족들을 한없이 포용하며 바라본다. 때로는 집안에 모신 불당에서 자신의 영적 존재감을 느끼는 손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홀로 된 남편을 애닯아 하기도 하지만 손수 보살펴 줄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녀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이력을 갖는다. 팔순을 바라보는 꼬장꼬장하지만 정 많은 남편 칸이치와 로커출신 노랑머리 60대 아들, 이복형제이면서 내적성향이 다른 여덟 살 터울의 두 손자와 화가인 미혼모 손녀, 그리고 스튜어디스 출신의 세련된 손자며느리와 두 명의 총명한 초등학생 증손. 이들 4대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웃들과 얽혀서 일어나는데 그 중심은 ‘도쿄밴드왜건’이라는 오래된 헌책방이다. 이층의 이 건물은 표지에도 그려져 있는데, 출입구에서 오른쪽으론 카페, 왼쪽으론 책방으로 갈라지는 구조다. 가족시트콤으로 만든다면 꽤 흥미로운 세트가 될 것 같다.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책의 끝 장에서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전 드라마에” 라는 작가의 헌사가 적혀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일 년을 돌아서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봄은 동네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선술집 이름이기도 하다. 계절의 서두마다 홋타 사치 여사는 마당의 나무들을 묘사하는데 계절마다 색다른 나무들의 풍경과 인상이 일상의 이야기들을 서정적으로 풀어가는 느낌을 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까치밥과 비슷한 풍습이 있어 반가웠다. 겨울 편에서 마당에 세워둔 대나무 끝에 귤을 꽂아두는 장면이 나온다. 물까치, 개똥지빠귀, 참새 등등 귀여운 새들이 날아와서 쪼아 먹는다며 겨울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가끔 쥐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식탁에서의 먹거리를 비롯해 일본의 풍습이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살짝살짝 나오며 흥미롭다.

문화와 문명에 관한 이런저런 문제라면 어떠한 일이든 만사해결! 이것은 홋타 집안의 이어져오는 수많은 가훈들 중의 중심 가훈이다. 그외의 가훈들은 또 얼마나 구체적이고 사려깊은지. 이거 가훈치고는 너무 거창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은 책을 읽다보면 서서히 지워져간다. ‘도쿄밴드왜건’은 구세대와 신세대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문명이 충돌하는 접점에 있다. 그것은 다시, 홋타 식구들이 끓여먹기 좋아하는 짭탕찌개에 비유될 수 있는데, 다양한 재료들이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한 냄비 안에서 끓고 식구들은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떠서 먹는 식이다. 좋아하는 것만 떠서 먹더라도 국물엔 모든 재료의 맛이 우러나있으니. 무겁고 깊은 이야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솜씨에 오히려 놀라게 된다. 이는 서문과도 같은 ‘건왜드밴쿄도?’에서 홋타 사치 여사의 정감 있는 소개말로 짐작된다. 메이지 18년에 연 이래 헌책을 파는 게 주업이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좇는 일에 뒤처지지 않는 이 특별한 고서점은 ‘낡은 가죽 부대에도 새 술은 담기는 법’이라는 창조적인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홋타 칸이치 영감의 인생관을 반영하는 곳이다. 젊음의 특권을 인정하고 늙음의 미덕에 순응하는 재기발랄한 대사를 눈인사하듯 만나는 건 유쾌함이다.

 책은 시대의 반영이고 현실의 재현이며 개인의 정서를 통한 집단 정서의 음각이기도 하다. 이들이 만나는 ‘문화와 문명에 관한 이런저런 문제’는 대개 이런저런 헌책들과 관련되어 빚어진다. 책에 대한 애정은 물론 작가에 대한 소소한 애정도 필수다. 또한 서양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메이지를 거쳐 경제근대화에 힘쓴 다이쇼와 쇼와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에 이르는 그들의 정서를 대략 어루만진다. 나츠메 소세키를 필두로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문호들이 열거되기도 하고 아키코를 좋아하는 영국인 머독씨를 등장시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끌어안는 방식을 취한다. 한 가지 눈에 뜨인 것은 ‘그리운 쇼와 시대’라는 대목이다. 1950년대 중후반쯤에 나왔다는 고사카 고요가 쓴 <알파벳 골목길>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요즘 다시 그때 얘기들을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쇼와 시대(1926~1989년)의 군국주의 초기와는 달리 이 시기에는 전후의 국난을 극복하며 재건의 노력이 합해져 생활이 안정되어갔다. 사상,언론,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개인의 해방과 문화를 포함한 모든 면에 민주화를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보급된 시기다. 지금의 일본국민들은 오히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니 되살아나는 군국주의 망령을 살짝 꼬집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튼 골치아픈 이런저런 일들을 해결하는데 늘 따라다니는 불문율은 러브다. 다들 생의 비밀을 갖고 있어 알아갈수록 신비한 사람들, 비극도 희극이 되고 남에겐 가십거리도 자신에겐 슬픔이 되는 말 못할 사연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 멋진 연기를 펼치며 쇼를 하듯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한 도쿄밴드왜건. 신세대답게 화통하니 러브로 모든 걸 해결해 주고, 그래도 미인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외치고 아직 결혼도 안 한 것들이 손잡고 해외여행 하는 것은 가당찮다고 노여워하는 칸이치 영감을 어쩌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문화와 문명에 관한 한 어제와 오늘, 이곳과 저곳이 만나는 도쿄밴드왜건의 마당에는 계절마다 자랑삼는 나무들이 우뚝하다. 그 살가운 나무들에 바람 잘 날은 있으려나. 가업을 이어가는 젊음이 또한 미덥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만이 미덕은 아닌 듯. 헌 부대에도 새 술이 담기면 독특한 맛과 향을 낼 수 있을 테니..  올 유 니드 이스 러브! 빰바바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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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 서재에서 이 리뷰읽고 좋게 기억하고 있는데
님의 글은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7-08-13 10:56   좋아요 0 | URL
민서님, 더운 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 같아요.
언급되는 일본유명작가들이 많은데, 소세키만 알겠더군요.
그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어가면 또다른 확장의 재미도 있을 것 같구요^^

비로그인 2007-08-1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중상 이상은 하는 모양이네요 :) 전 요즘 일본소설엔 다소 물려버린 듯해서;;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07-08-13 10:55   좋아요 0 | URL
다소 물리셨구나. 음.. 워낙 많이 쏟아지다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구요.
성향에서 오는 것도 있을 것 같구요. 네, 잘 보셨어요. 저로선 별 넷으로
표시했어요.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2007-08-13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7-08-1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니 관심이 가는데요.^^
더러 일본소설이 주는 정서의 차이 때문에 한동안 읽다가, 또 한동안 멀리했다가 그러게 되요.^^;; 리뷰를 읽고 있으니 정말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잘~ 보고 갑니당.^.~ 추천!!

프레이야 2007-08-13 19:13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고마워요 ㅎㅎ
어제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좀 시원하지요? 습도는 높지만요..
더우니 뭐 집중도 잘 안 되고 그렇더구만요. 근데 그 화장품은 왜
안 올까나? 혹시 받으셨어요?

뽀송이 2007-08-13 16:1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안왔어요.^^
14일까지 보낸다고 했으니까 곧 오겠지요.^^;;
가끔 몇일 늦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온답니다.^.~
즐겁게 기달~~~^.~ 님^^ 날이 후덥지근해요.ㅡㅜ

프레이야 2007-08-13 19:14   좋아요 0 | URL
14일까지였나요? 깜박했어요. 후훗~ 후텁지근해서 그런지
힘이 없어요...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다. 일주일이 넘는 동안 병원에서 검사받고 수술날짜 조마조마 기다리고 8시간의 긴 수술을 받고, 이제 집에 계신다. 방금 통화를 해보니, 아직 배변이 순탄해지려면 적응기간이 필요한지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계신 눈치다. 6월 27일 아침, 엄마가 병원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동안 그런 호강 한 번 누릴 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오신 분이기에 더욱 낯설어보였다. 수술예정 한 시간 전, 간호사가 오더니 콧줄을 꽂기 시작했다. 위 속까지 내려가야 하는 초록색의 기다란 줄이 사정없이 엄마의 왼쪽 콧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평소에도 통증을 잘 못 견뎌하시는 엄마는 무척 고통스러워하시며 손을 내저었다. 조금만, 다 됐어요. 잘 참네, 엄마. 고통이 언제 예고하고 찾아오던가. 토할 것 같다고 계속 호소하는 엄마에게 그냥 기분이 그런 거니 삼켜야한다는 간호사의 말만 전하며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내가 해드릴 게 없었다. 엄마의 짧지 않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는 살아오면서 여행가방을 챙겨본 일이 거의 없다. 아니 내가 본 기억으로는 단한 번도 없다.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을 여행 삼아 엄마는 가방을 두 개나 싸셨다. 콧줄을 꽂은 엄마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나는 옆에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엄마의 가방속을 살폈다. 먼저 눈에 뜨인 건 하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나염된 팬티들. 곱게 개어 작은 비닐팩에 차곡차곡 넣어오셨다. 노랑꽃, 파랑꽃 두 가지의 색상으로 골고루 새로 산 듯했다. 분명 새것이었다. 수술 전 속옷도 모두 벗어야하고 나중에 수술을 하고 나서는 시큼한 분비물을 받기 위한 커다란 패드를 하고 계셔야 하니 아무런 필요가 없을 껍데기들. 그래도 퇴원하는 날엔 이걸로 갈아입고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그날 내 눈에 처음 뜨인 그 보송보송한 팬티들이 엄마의 마음이다. 그속엔 엄마의 '봄날에 대한 그리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에 대한 생의 자부심' 같은 게 원색으로 프린트 되어있다. 그 외에도 나무젓가락, 빨대, 영양크림에 헤어롤까지, 그리고 보호자가 덮을 얇은 이불에 쿠션까지. 엄마의 여행가방 속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한 가지 깜박, 책을 못 넣어 왔다고...

 수술 후 4일쯤 지나고 거동이 좀 나아지자 병원 가톨릭원목에서 빌려주는 책을 한 권 얻어 읽고 계셨다.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어? 이 책 집에도 있는데. 책 읽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안 갖다드렸는데... 3일 정도 엄마는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하셨고 그 바로 아래 보호자침상에 모로 누운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루는 병실 바로 앞에 의자를 내어놓고 복도천장의 밝은 형광등 불빛아래서 꼬박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시집이라도 갖다드릴 걸 그랬나 싶었는데 이럭저럭 퇴원날짜가 다가왔다. 담도암이 재발하여 들어오신,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공부 다 했소?, 이렇게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는 엄마에게 묻곤 하셨다.

 엄마의 수술 하루 전날, 아무 걱정 말고 오늘밤 푹 주무시라고 전화를 드린 뒤, 뒤숭숭한 마음으로 펼쳐든 책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다. 알라딘의 아름다운 님이 선물로 주신 이 책을 그동안 고이 꽂아두고 손을 안 대고 있었는데 내 손이 자연스럽게 이 책에게 뻗어갔고 흡착된 듯 책장을 넘겨갔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음반은 이미 여러 번 들었고 책표지만 뚫어져라 보았던 책이다. 흑백 사진 한 컷. 반듯한 창이 하나 있고 창밖으론 물방울마냥 아롱대는 나뭇잎들이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위로 ‘가만가만’이라는 붉은 글자는 가볍게 어깻짓을 하는 듯 갸우뚱하니 서 있다. 창가에 놓여있는 낙서장 같은 노트와 가죽손목시계, 열쇠꾸러미, 물을 마시다 남겨둔 유리잔 그리고 여권. 소속이나 존재의 증명수첩 같은 것일까. 작가는 지금 이 창가에서 두어 발짝 물러서 한갓진 벽에 기대어 창밖을 보고 있다. 분명! 그녀의 음색은 속지처럼 고운 라벤더 색이었는데 그녀의 글은 조금 더 연하게 푼 라벤더 색이었다.

 작가, 한강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차분하고 맑은 음색만큼 그녀의 글들이 내게 가져다준 위로감이란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잔잔하였다. 무덤덤한 척 했지만 떨고 있을 엄마 그리고 나.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았다 말할 수 없는 젊고 어여쁜 작가의 글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목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줄이야. 고통이 느닷없이 찾아오듯 위무도 그렇게 느닷없이 덮쳐오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이란 적절한 '때'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숨소리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을 것 같은 한강의 섬세한 마음결을 따라 서서히 내 마음이 풀려갔다.

 

 마음의 파장이 몰고 오는 리드미컬한 손길,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글도 노래다. 세상의 모든 음파를 몸의 현으로 받아서 되돌려 풀어주는 그녀의 글은 충분히 소소하고 그래서 더욱 값진 공감대를 울려댔다. 유년의 기억과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그녀가 놓치지 않고 몸으로 담아내는 체험과 정서, 성년이 되어서도 녹록하지만은 않을 생의 편린들이 그녀의 노래 같은 글 속에서 소박한 빛으로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걸 나누어 갖는 나는 뜻밖에 다가오는 위로의 말들에 눈시울이 젖어왔고 떨리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어 감을 느꼈다. 누군가의 흑백 사진첩을 넘겨가며 울고 웃던 사연들을 들은 듯,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가장 마음에 든 장은 ‘2장 귀기울이다’이다. 그녀의 미려한 마음의 현을 울려댔던 노래들, 그 하나하나의 가사와 사연 그리고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고유한 감정의 선율과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내가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하는 'You Needed Me'를 비롯해 이십대 시절 언젠가 딱 한 번 주왕산을 오르며 직장후배와 불렀던 ‘보리밭’까지. 그리고..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 let it be...

 내가 요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이적의 3집, 두번째 노래 ‘다행이다’이다. 엄마는 수술 후 이틀이 지나자 거울을 수시로 보며 머리를 빗고 기미가 늘었다느니 얼굴이 얄궂다느니 엄살을 부렸다. 수술을 마치고 난 직후 중환자실에서 본 엄마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가슴이 아팠는데 이틀이 지나자 엄마는 환자 같지 않게 복사꽃 같은 혈색이셨다. 그렇게 엄살섞인 말을 하는 건 얼굴이 참 좋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손빗으로 빗곤 했는데 한 번은 뒷머리를 내 손으로 빗어드렸다. 숱이 없고 모발이 약한 엄마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너무 부드러워 부서질 것 같았다.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그대를 만나고/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그대를 안고서/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다행이다/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꼬리말 : 이번 엄마일로 마음 써주시고 기도해 주신 그대, 아름다운 님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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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8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8 20:38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전 일주일간 매일 들락거리고 몇밤은 밤새고
그랬던걸로도 고단함이 쌓이더군요. 할머니 병간호까지 지극으로 하셨다니
토닥토닥.. 님, 살아갈수록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싶어요. 그중에서
도 건강은 더욱 그렇구요. ^^

비로그인 2007-07-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에 여자환자분이 머리를 빗으면, 담당의사들이 그걸 보고
'오.. 많이 회복되셨구나.' 한답니다.
어머님의 회복 속도가 빠르시군요. 다행입니다. 혜경님.


프레이야 2007-07-08 20:39   좋아요 0 | URL
네, 한사님, 그런가봐요^^
드시고싶은게 많은가본데 조금씩 가려가며 적응하시면 좋겠어요.
아직 장기능이 정상이 아닐텐데 마음이 앞서가니 말에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07-07-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참 열심히 사시는것 같아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셔도 그걸 그대로 넘기는 법 없이 이토록 긴 글로 감상을 얘기하시니 말여요. 그토록 열심히 사시는 분이시니, 삶도 내치지 않을거라 보여집니다. 어머님의 회복은 그래서 당연한 듯 보여집니다. 다행이예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격려 고맙습니다.^^
여덟살 연상의, 당신보다 훨씬 늙은 남편을 애처로워하는 모습에서 보았어요,
부부의 정을요. 마음은 있으면서 다정하게는 못 대하시는 그 어쩔수없음도요^^
그래도 모든게 다행이지요...

로드무비 2007-07-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꽃무늬 팬티, 성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모두 눈물겹네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머리밑이 훤히 보이는 머리 보며 안쓰럽더이다.
기원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0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마음고생 많으셨던 혜경님도 한 시름 덜으시길 바랄게요.
:)

프레이야 2007-07-09 12:41   좋아요 0 | URL
체셔님 기도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아직 마음 다 놓을 상태는 아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요..

2007-07-0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3   좋아요 0 | URL
님, 지금 그대로 얼마나 좋은 엄마이신데요.
고민하는 건 그만큼 나아지려는 것이지요. 아자아자, 힘내시고요..
고마워요^^

소나무집 2007-07-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함께 밤도 새우셨군요.
한강은 대작가 한승원의 딸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지요.

프레이야 2007-07-09 12:49   좋아요 0 | URL
네, 차츰 한강을 만나볼 테에요.^^
밤이면 앓는소리를 하시곤 했어요. 수술부위 통증은 무통주사로 견디기
쉬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숨을 못 쉬겠다고 그러셨어요. 입술도 탄다고
계속 손수건에 물 적셔서 드렸어요. 물은 마실 수 없었으니..
제가 아이를 낳았을때 옆에 며칠씩 있어준 사람이 엄마인데...

2007-07-09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6   좋아요 0 | URL
어머니 일은 잘 되시리리 믿어요!! 제 동생도 무탈하니 잘 지내거든요.
너무 걱정 마시라 말씀 드리세요. 미리 걱정한다고 이로울 게 하등 없지요.
님도 마음 굳게 먹고 기다리시구요.

홍수맘 2007-07-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위로 받는 느낌이 들어요.
오늘도 좋은 책을 만나고 가네요.
어머님의 회복소식도 종종 들려주실 거죠?

프레이야 2007-07-09 15:41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나봐요. 타이밍 같은..
다른 때 같으면 그저그랬을지도 모를 책인데 아주 적절한 때 위로가
되었어요. 엄마는 아직 다 회복된 건 아니지만 차츰 좋아질 거에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가뵈려구요. 같은 시내이지만
좀 멀어요. 그래도 어쩌고 계신지 마음 써여 안 되겠어요.

2007-07-0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2   좋아요 0 | URL
속삭인님, 네 같이 기억될 거에요^^
쾌차해서 저랑 연극 보러도 다니고 예쁜 옷도 입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장표 꽃무늬 팬티 입으시고..^^

백년고독 2007-07-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일이 있었군요.
이제 다시는 병원에 가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

이 책 읽으면서 한강이라는 작가는 참으로 다재다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3   좋아요 0 | URL
백년고독님, 고맙습니다.^^
정말 다재다능하다 싶어요. 소녀같은 인상에 강인함이 묻어나더군요.
글도 여린 듯 강했어요.

2007-07-11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kdagi 2007-08-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의 글은 대부분 심각한 것만 접해서 쉽게 읽히지 않았는데 님의 평을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어머님도 앞으론 병원에 가시지 않길 바랄게요. 님도 건강하세요.

프레이야 2007-08-06 00:00   좋아요 0 | URL
전 한강의 글이 이책으로 첫만남이에요.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글이었어요.
참 맑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머님 일, 감사드려요.^^
지금 잘 견디며 싸우고 있어요. 장기전이라 생각하라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님도 건강 챙기며 일하시기 바래요.
 
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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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 한나 틴티를 처음 만나게 된 단편소설집 ‘애니멀 크래커스’는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그녀가 동물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은 인간과는 달리 본성과 불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짧고 단호한 한 마디가 이 소설집의 열한 가지 이야기들이 독자와 공감의 현을 켤 수 있는 코드라고 생각한다.


심상치 않은 동물냄새(동물원에 갔을 때의 그 누린내와 축축하고 키퀘한 냄새들을 기억하는 한)가 코를 찌르는 이야기들을 마주하기 전에, 시커먼 그림자의 형상으로 그려놓은 책표지의 여러 가지 동물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가지도 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다. 꿈틀거리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울부짖거나, 아니면 묘한 동작으로 춤을 추듯 몸을 비틀고 한 손에 전화기를 다른 한 손에는 해골을 들고 있는 털복숭이 짐승도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놓여있는 한 자루의 권총은 한 방에 이 모든 걸 잠재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동물의 본성은 천생적으로 어느 한 곳에 혹은 어느 한 때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동물과자 상자가 하나씩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맛은 다 똑같은 과자들을 와삭와삭 씹으며 즐거워했던 어린시절의 기억 뒤로, 누구나에게 감추어져 있음직한 일들을 불러온다. 그 상자를 열면 닫아서 눌러두었던 온갖 불쾌한 경험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그것은 주로 유년의 상흔들이며 성장의 통과의례 혹은 인간의 천형과도 같은 열등감, 외로움, 끝 모를 곳을 향한 그리움 같은 것이다. 여기서 그리움이란 인간의 본성을 잊은 척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본성을 어찌 숨길 수 있단 말이냐.

 

작가가 현미경의 눈을 갖다 대고, 해부하고 메스를 가해서 들어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고통의 한 자락인데, 그것들은 여태껏 의도적으로 숨겨졌거나 왜곡되었거나 괴물처럼 돌연변이 하여 현재의 삶을 굴절시켰다. 다양한 부류의 인물들은 너나 없이 괴기스러운 취미와 불유쾌한 습관을 갖고 있으며 어딘가 텅 비어있거나 비틀려있었다. 그들 현재의 삶를 규정하는 것들은 어쩌면 불명확한 외부조건들이고 이것들은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게 하는 무력함으로 비친다. 혈육, 부부, 연인이라는 인연의 관계에서 빚어진 애증의 양상이 그로테스크한 삶의 성질을 보이지만 작가는 그들 미래의 삶을 그나마 절망적으로는 두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희미하나마 희망의 빛 같은 게 보인다는 점에서 길고 어두운 터널의 출구를 찾아내는 작가의 눈에 한 번 더 눈이 간다.


각각의 단편마다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변이된 내면심리와 비뚤어진 욕구를 강력한 이미지의 구체물로 선사한다. 그것들은 지고한 관념이거나 호흡하지 못하는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고 숨쉬고 팔딱대는, 목숨 있는 것들이다. 우리 안에 욕망이 살아서 호흡하고 자란다는 전제는 그것을 달래어 잠재우거나 얼러서 몰아내는 데에 이성적인 면보다는 감정적인 요소가 훨씬 호소력을 띤다는 말처럼 들린다. 다소 구토가 일 것 같은 묘사들이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애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같은 느낌과 비슷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하기 위한 상징도 없지 싶다. 고딕풍의 음산함이 감도는 포우와 다른 점은 짐승 같은 본성을 마주하는 작가가 갖는 연민의 시선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온기로 남아 여운을 준다는 사실이다. 내 안의 고름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툭 건드렸을 때 온몸으로 전율이 번지며 잠시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지만 결미에서 보여주는 애틋한 여백의 정서와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온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한 '인간 읽기'가 미려한 감정의 공감대를 포착할 수 있어서 잔인한 묘사가 오히려 위악의 도구처럼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애니멀 크래커스’에서는 장애가 있는 딸을 위해 쓰러져서 묻혀버리고 싶은 자기 자신을 추슬러 삶의 용기를 갖는 불운한 남자가 코끼리와 나란히 나온다. ‘보존’에서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곰에 빗대며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정을 보이는 딸이 감동을 준다. 그리고 ‘홈 스위트 홈’에서는 모든 걸 잃은 외로운 여인이 자신 안에 잠재하고 있는 모성애로 고통을 극복한다는 사실이 눈물 난다. 그 외에도 각 이야기마다 자신 속의 황량한 벌판을 스스로 돌보고 개척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형용할 수 없이 쓸쓸하고, 진실하다.


작가가 특히 초점을 두는 것은 현대의 ‘가족’이다. 어딘가 온전치 못한 가족, 비밀스럽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가족들의 양태를 통해 가족이란 이름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에 대해 질문한다. 광기의 사랑, 질투, 외도, 아버지의 부재 혹은 부모의 정신적 부재, 사랑으로 인힌 애증의 갈등,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폭력 같은 것들이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비틀어놓을 수 있는지, 섬뜩하다. 그래서 작가는 동물의 이름을 빌려 본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낯설고 납득하기 어려운 인간들의 이야기가 어찌 보면 우리네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은밀히 담고 있어, 그것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우리 얼굴을 강타하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때로 비뚤어져있고 난폭하고 기묘하기도 하여 상대에게 투영될 때 예상치 못한 형태를 띠며 부메랑처럼 반격을 해오기도 한다. ‘폭력의 집’에서처럼 현대인의 가정에는 ‘방이 너무 많’다. ‘미스 월드론의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를 보면 해답은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다. 자연으로 찾아들어간 미스 월드론은 내재하던 야성의 본성과 손잡고 행복해 보이는 방랑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숲으로 들어온 후 미스 월드론은 크게 변했지만, 윌로비는 사람들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하도 많이 보아서 익숙했다.(p281)" 미스 월드론처럼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의 숲을 찾거나, 도심의 동물원에서 일하거나 혹은 집에서 동물을 키우거나, '당신 삶의 뱀을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 뱀을 튀겨서 변심한 애인에게 먹이는 등, 인물들의 기괴한 행동들을 통해 작가는 직접적인 자연이거나 자연적인 본성만이 인간의 상처 난 자국을 꿰맬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본성과 불화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비극은 필요충분조건인지도 모른다.


열한 편의 단편들이 모두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서술은 시간의 역순에 충실하다가 현재로 돌아온다.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드러나는 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들의 상처와 고통에 놀라게 되고 심각한 연민이 뒤따른다. 반전의 묘미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단 한 군데의 오자를 지적해야겠다. “상당히 좋은 소리군요. 하지만 우리 수탉의 목소리 톤이 더 놓아요. 오, 하는 부분에 비브라토가 더 들어가고요.”(p226)에서 ‘놓아요’가 아니라 ‘좋아요’일 것이다.

 한나 틴티의 어조는 강직하고 건조하고 스타카토 같지만 가는 비브라토가 결미마다 들려 메마른 바람소리를 내며 울린다. 우리는 비브라토 그 너머의 작은 희망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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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5-2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머의 희망 속에 꿈꾸는 삶.
저 또한 꿈을 꿉니다.
비가 많이 내립니다.
삼광사에 방금 다녀왔는데요.
불빛이 너무 현란합니다.
산을 가득메운 불빛 연등빛
조금 너무하다 싶습니다.
산비탈에 아무런 시선도 거두지 못하는 작은 골방에 든 누런 불빛 하나에
시선이 갑니다.
저 곳에 선량한 마음 하나 있다면
바로 그곳이 부처님의 눈길이 깃든 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내려옵니다.

스파피필름 2007-05-2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 저와는 너무 비교되게 잘쓰신 리뷰 ㅠㅠ
잘 읽었습니다. ^^

전호인 2007-05-2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리뷰의 달인들이 몇분계시지요, 님 또한 제가 부러워하는 리뷰의 달인이십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왜 현대의 가족은 온전치 않은 가족들로 묘사를 할 까요, TV를 보더라도 행복한 가족을 묘사하기 보다는 불륜이 판을 치고, 그곳에 또다시 어떤 계략이 내포되어 있는 가족의 일상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인기에 영합한다하더라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물질문명, 자유로운 성 등이 어찌 윤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지, 인륜, 윤리를 얘기하면 고지식한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는 현대사회의 인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속에 있는 것일 텐데 말이죠, 결국은 자연스러움이 모든 것을 보완하는 것 같습니다.

홍수맘 2007-05-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 투!!!

프레이야 2007-05-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이렇게 멋드러진 시 한 수를 댓글로 주시는 님, 늘 고맙습니다.
산마다 불빛 현란한 연등들, 그 속에 담은 우리네 소망도 너무 현란하거나 들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어요. 조금만 더 자중하고 소박한 쪽으로 가다듬으렵니다.

스파피필름님, 과찬에 꾸벅~ 고맙습니다. 이 책 뜻밖의 선물이었는데 감사히
잘 읽어드랬습니다. 가능성 많은 작가 같아요, 한나 틴티.

전호인님, 불륜이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오래된 것
같아요. 윤리를 벗어난, 혹은 윤리라 부를 수 없는 행동들이 공공연히 소재가 되는
이유는 그것들에 달아놓은 우리들 윤리의식의 허위성을 냉소하기 위함인 것 같아요.
자연스러움이 미덕이지만 자연스러우면 가면이 금이 가는 일이 많으니 말이에요.
님은 참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님의 생각 그 자체가 자연스럽니다.^^

홍수맘님, 보시면 좀 역겨울 수 있는 표현들이 있지만 그것 이면에 깔린 작가의
생각이 좋게 보입니다. 오늘 날이 좀 더워요. 신록도 바다도 눈부신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