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 높새바람 15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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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오는 책은 일단 생경한 시선이 눈길을 끈다. 신인작가를 발굴해내는 눈에도 신뢰가 가며 어린이/청소년책의 소재에 있어서도 다양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최근에 나온 이 책은 높새바람 시리즈로 초등고학년 정도의 어린이에게 권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도 5,6학년 정도의 아이를 설정하여 그들이 공감할 수 있음직한 일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세밀화처럼 그들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럼에도 이 책은 책장의 두께도 얇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 초등중학년 정도의 아이가 읽어도 무난하지 싶다.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하나는 건우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소영이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진술이 필요한 건, 그들이 사건의 중심에 나란히 있기 때문이며 그들의 타고난 배경과 생활 환경 등이 대조적이기도 한 까닭이다. 같은 상황을 볼 때 어떤 상황?, 어떤 입장?, 그리고 다른 생활 환경 같은 것들이 영향을 준다고 믿는 대개의 독자는 이들의 엇갈린 마음의 진술을 읽으며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우리의 선입견을 깨어야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둘러싼 조건이나 환경 따위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주변적인 조건일 따름이라는 놀라운 충고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분쇄해야할 얄팍한 편견의 종잇조각이었다.


이야기는 7월 13일자 건우의 비밀일기에서 시작하여 7월 16일자 소영이의 비밀일기로 맺는다. 3일 동안 6학년 어느 반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한참 예민하고 상처받기도 쉬운 또래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파문이 일고 어떤 여운이 남았을까? 작가는 있음직한 사소한 일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과 반아이들 모두의 마음에 현미경을 갖다댄다. 건우와 소영이의 심리를 가장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일기를 삽입하고 ‘마음의 날씨’를  표기하여 심정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건우의 첫 일기는 ‘마음의 날씨: 느닷없이 번개, 천둥, 우르르 쾅쾅!’ 으로 건우가 느닷없이 당한 일에 대한 전조에 해당된다. 소영이의 마지막 일기는 ‘마음의 날씨: 반짝반짝’으로 문제가 좋은 쪽으로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모 없이 고모와 살고 있는 소영이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로 쓴 마지막 일기를 보면, 아이는 참 스스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어른들이 해 줄 것은 다정하게 ‘이름불러주기’ 정도인 것이다. 그이상의 것들은 어른들의 오만한 편견이거나 지나친 조바심이 불러오는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 불러주기! 작가는 이 책에서 김춘수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하며 관계 맺기에 있어서 이름 불러주기의 소중한 경험을 전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관심, 보살핌, 애정을 담는 일이고 세상 모든 대상과 살가운 관계를 맺기 위한 일이다. 그걸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김진숙 선생님은 어린 시절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름부르기 게임은 또 다른 차별을 낳았고 선생님의 게임에 스스로 정했던 규칙은 또 다른 피해자 혹은 소외자를 낳고 말았다. 문제는 ‘마음의 규칙’이란 게 언제나 옳을 수만 없다는 점이다. 그 규칙이라는 선 밖에 있는 대상과 선 안에 있는 대상이 갈림으로써 또 하나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발생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명쾌한 지적이다. 이런 점에 예리한 눈을 맞춘 작가는 마치 어느 집의 근사한 대문만 보는 게 아니라 뒷문이나 쪽문을, 그리고 그곳에 얼키설키 맺혀있는 거미줄과 거미줄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날파리 한 마리까지도 세밀히 살펴보는 눈을 가졌다.


이 책에는 두 가지 게임이 나온다. 처음에 나오는, 미진이와 소영이가 벌인 '쪽팔려 게임'과 나중에 선생님이 반 전체 아이들과 함께 한 '얼음땡 플러스 말걸기 놀이'가 그것이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미진/소영의 게임에는 벌칙으로 저희들 마음대로 뺨때리기를 하여 건우가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입는다. 반면 선생님이 제시한 게임은 결미에서 좀 자세히 연출되는데 그 규칙이 까다롭다. 한 사람씩 그 규칙대로 게임을 하다보면 한 학기가 지나도록 이름도 제대로 모르거나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어기면 게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규칙이란 게 누가 만든 것인지, 그리고 그 규칙이 언제나 옳기만 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위에도 유난히 규칙을 따르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고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작가는 게임 두 가지를 보여주면서 우리들 마음에도 이처럼 규칙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림자 짙게 깔린 그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잊어선 안 될 결론은 아이들은 누구든, 아니 사람은 누구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가진 게 많든 적든, 능력이 크든 작든, 성격이 좋든 그렇지 못하든 똑같이, 잘 났든 못 났든 누구나!  '나'와 '너'는 다른 어떤 수식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이해불가능한 개별적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섣부른 동정이나 이해하려는 몸짓보다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규칙없음'이 마음의 규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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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 그런생각을 해요. 타인이 내가 아닐진대 어떻게 내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냥 '그럴수도' 라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말 같아요.

뽀송이 2007-04-2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일단, '바람과 아이들' 책은 제게는 관심의 대상이예요.^^
이게 바로 인지도 구나!! 싶다는... 책 제목이 마음을 끄네요.^^
쪽팔려 게임과 얼음땡 플러스 말걸기 놀이가 궁금 하네요.^^*
님^^ 주말 잘 보내셔요!!

네꼬 2007-04-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규칙, 참 어려워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건 정말 어려워요.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저 역시, 이름을 불러주는 데 약하거든요.

프레이야 2007-04-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그냥 받아들이는 일이 참 쉽지가 않으니 말이죠.^^

뽀송이님, 쪽팔려게임이라는 단어에서 이런 속어를 써도 되나.. 좀 멈칫했어요.
바람의아이들, 저도 좋아하는 책들이지요.

네꼬님, 마음의 규칙이란게 참 편협할 때가 많지요. 저도 늘 어려워요.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일에도 서툴구요.^^

바람돌이 2007-04-2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평단 당첨됐어요. 근데 아직 안오네요. ㅎㅎ

2007-04-27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4-2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바람돌이님, 그렇군요. 유명한 그 사진은 일부러 촛점이 안 맞다는, 사진으로서는 결격사유가 될 점이 오히려 생동감 넘치는 좋은사진으로 평가 받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그런 내막이었군요. 참 별난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카파 그사람,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더군요. 독일군의 아이를 낳은 삭발 여인의 사진도 그렇고, 멀리
가서 보길 잘 했다 싶더군요.^^

그리고 장건우.. 는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보면 좋을 듯해요.^^

망상 2007-04-28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이름이 낯익다 싶어 봤더니, '나'를 썼던 작가더군요. 어쩐지 마음이 쓰이는 작가의 반가운 신작을 이제야 발견해버렸습니다;;

프레이야 2007-04-2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uan님, 반가워요. '나의 그녀'도 이경화님이 썼지요. 모두 시각이 새롭더군요.^^

백년고독 2007-05-1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주의 리뷰 ^^ 역시~~~

마냐 2007-05-1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촘촘한 리뷰임다. 리뷰어가 미지의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담은 리뷰.... 정말 축하받으실만 해요~~ 축하드려요~ ^^

마노아 2007-05-10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주의 마이리뷰군요. 축하해요~ 오월엔 행복한 일이 가득할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5-10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고독님, 고맙습니다.^^ 님은 추천리뷰가 올랐던데요. 그것도 축하합니다.
마냐님, 푸짐한 칭찬과 함께.. 고맙습니다.^^
마노아님, 님에게도 행복 만땅이기를~~ 고맙습니다.^^

해리포터7 2007-05-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배혜경님. 저도 바람의 아이들의 책들을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7-05-1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고맙습니다 ^^
바람의아이들, 책 참 좋지요! 최윤정님을 좋아하다보니 더 그런가...
이 책은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읽힐 것 같아요. 그리고 어른이 함께 봐야할
책이구요. 좋은 하루 시작하셨죠? ^^

TexTan 2007-05-1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도서관 2007-05-1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쁜 소식, 반갑고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07-05-1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exTan님,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작은도서관님, 고맙습니다. 미니어쳐 도서관이 참 예뻐요..

네꼬 2007-05-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축하드려요!! 역시, 좋은 리뷰더라니!

프레이야 2007-05-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호호 고맙습니다~~ 저도 어제 백년고독님 댓글 보고서야 알았답니다.ㅎㅎ
근데 이미 당선되어서인지 추천을 안 눌러들주시네요.. 흑흑...

네꼬 2007-05-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눌렀어요, 추천. 울지 마세요.)

프레이야 2007-05-1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최고얌~~ ㅎㅎ

몽당연필 2007-05-1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좋은 서평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군요. ^^

로시난테 2007-05-1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저만 축하해 주시고 이런 경사스런 일을 귀띔 한번 안 해주시다닛*^^* 배혜경님. 축하드립니다ㅎㅎ

프레이야 2007-05-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 그저 고맙습니다.
로시난테님, 뒷북귀띔^^ 고맙습니다.
그리고 신문사 입사하신 것도 축하합니다!

소나무집 2007-05-12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당첨 되셨네요. 축하 드려요.
저도 신문에서 신간 소개 보면서 궁금했는데 꼭 찾아 읽을게요.

달팽이 2007-05-12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습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피곤한 달팽이가..

프레이야 2007-05-1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고맙습니다.^^ 이 책 재미있어요. 어른이 읽어볼 만 하구요^^
달팽이님, 수학여행 다녀오셨군요. 잘 안 보이시길래 뭔 일인가 했어요...
피곤하실 텐데 주말에 푹 쉬세요. 고맙습니다.^^

기인 2007-05-1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축하드려요 :) 저도 최근에 하이타니 겐지로 소설 읽었는데, 동화도 정말 좋은 게 많네요 ㅎ

프레이야 2007-05-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하이타니 겐지로는 교육자의 경험을 살려 아이들의 입장에 선 동화를 참
감동적으로 그려내지요. 재미도 있구요. ^^ 고맙습니다.ㅎㅎ

히피드림~ 2007-05-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저두 축하드려요^^ 이 책 저두 읽엇어요!

프레이야 2007-05-1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 고맙습니다! 님도 동화 읽으시군요.^^

이쁜하루 2007-05-1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서야 봤네요~~ 축하드립니당!!! ^^

프레이야 2007-05-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하루님, 올만이에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떡 사먹게 되어서 미안해요. 떡 아니고 책인가..ㅎㅎ

최상철 2007-05-18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자체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운 것이지요? 정말 어려운 듯 합니다~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

프레이야 2007-05-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철님, 각자 마음속의 규칙들이 있어서 다른 걸 받아들이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요. 벽이 없는 마음, 왜곡되지 않는 시선을 갖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나 뚱보 아니야 - 파란마음 001
마리 끌로드 베로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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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단지 생명을 잇기 위한 수단으로만 먹는다면 과식을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이 욕구가 지나칠 때에는 심리적인 요인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집 작은 딸과 나이나 체중이나 아주 비슷한 주인공 여자 아이, 마리는 그냥 마리가 아니라 ‘달덩이 마리’라고 불린다. 이 아이는 평범하고 다정한 가족들과 별 문제 없이 사는 10살 아이다. 오빠는 집에선 뚱땡이라고 놀리지만 남들 앞에선 자기를 비호해 준다. 언니는 아주 예쁘고 날씬한 외모를 가져 마리가 닮고 싶은 대상이며 마리의 눈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상냥한 언니다. 하지만 바깥에서의 언니 태도는 돌변하여 마리를 창피해 하고 곁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면박을 준다. 언니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언니를 좋아하고 오빠는 든든하게 생각하는 마음 넓은 아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리는 우리집 작은 딸을 닮았다. 이 책을 권해 주었긴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 보이는 반응을 보고 마음이 안쓰러웠다. 평소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나가는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라 마음이 더욱 쓰였다. “엄마, 마리네 가족들처럼 우리 가족도 내가 살을 빼는 데 협조를 좀 해 주세요. 먹는 것들은 눈에 안 보이는 데 두고.” 이렇게 시작한 아이의 반응이 조심스러웠다. 간혹 짓궂은 남학생이 놀리는 말을 할 때면 우울한 표정으로 언니는 날씬한데 자기만 왜 통통하냐고 글썽이는 목소리를 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집 아이의 식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도 아픈 적이 별로 없고 먹은 건 모두 소화 잘 시키고 또래보다 키나 체중이 많이 나간다. 고도비만은 아니지만 배 부분이 통통한 편인데 먹고 싶어하는 걸 내가 잘 막아내지 못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조금씩 줄여가자고 약속은 했지만 밖에서 나 몰래 과자를 사먹고 다니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어 고민이다.


이 책은 마리의 비밀일기 같은 이야기다. 마리가 동생을 얻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마리가 느낀 고민과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의미 있다. 마리는 생각이 많은 아이다. 자신만의 꿈도 야무지게 갖고 있고 남자친구에 대한 생각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아이다. 선생님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되지도 않을 거짓말을 늘어놓는 일이 얼마나 한심한 지도 스스로 깨닫는다. 때로는 진실을 이야기 하는 일이 거짓을 꾸미는 일보다 힘들다는 사실도 아는 슬기로운 아이다. 문제는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런 욕구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기보다 자신이 사랑과 관심을 줄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과도하게 생성되었던 것이다. 역시 어느 싯구처럼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다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마리가 훗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을 주는 마음도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마리는 학교에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던 일이나 의사선생님에게서 듣게 되는 듣기 싫은 용어들, 일일이 다 말 못할 사연들을 모두 들어줄 친구를 꿈꾸었다. 어느 날, 그 대상이 나타났는데, 아주 의외의 동물이다. 다락 높은 곳에서 두 눈을 빛내고 마리를 쳐다보는 그에게 마리는 ‘뽀송이’라는 다감한 이름을 지어준다. 마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이 친구는 의외로 사납지 않고 목깃의 털이 유난히 부드럽다. 모든 걸 조건 없이 다 받아주는 이 친구에게서 마리는 위로를 얻고 다락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기어올라가면서 살도 좀 빠지기 시작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처럼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어느 날 동생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에 자기도 동생에게 뽀송이 같은 대상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마리는 자기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푸는 아이가 아니라 그 반대로 오히려 삼가는 아이다. 타인에게 분노를 풀지 못하는 이 아이는 천상 선한 아이다. 타인에게는 관심과 배려만을 베풀려는 아이는 속으로 쌓이는 화를 식욕으로 풀었던 것이다. 마리는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려고 마음먹고부터 오히려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된다. 동생을 돌볼 준비물들을 미리 챙기고 점점 체중이 불어나는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같이 가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데, 엄마와는 반대로 점차 몸무게가 줄어드는 게 마리는 신기하다. 정말 무언가 몰두하는 일이 있고 마음의 허전함이 없이 사랑을 쏟아 부을 대상이 있다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식욕은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이기 이전에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임에 틀림없다.


사랑이 많은 작은 딸을 다시 생각한다. 아이가 품고 다 말하지 못하는 게 있을지 생각해본다. 아이가 다 풀지 못하는 분노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아이가 아직도 인형을 좋아하고 잘 때면 꼭 인형을 안고 자는 것도 어쩌면 사랑을 주고 싶고 관심을 쏟아 붓고 싶은 대상을 안고 자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매일 운동도 한 시간 정도 하고 있지만 배가 쉽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운동 선생님이 신경 좀 쓰셔야한다고 늘 말하니까 옆에서 보기에 마음 쓰이지만 사실 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아이가 왜 자꾸 배가 고프다고 느낄까, 하는 점이다. 헛헛한 기분,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나도 먹어대는 습관이 있는데...  아이에게서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좀 생각해야겠다.


<나 뚱보 아니야>는 아이의 식욕과 관련하여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어른이 읽어도 열쇠를 얻을 수 있지만 동화이니 물론 대상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어떤 신체적, 성격적 특성이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 마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라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동생의 탄생과 함께 더 이상 뽀송이에게서 위로를 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마리는 점점 뽀송이를 잊어간다. 여자동생이라 더 마음에 들어한다. 뽀송이보다 더 뽀송뽀송한 동생이 생겼다. 아기의 솜털을 떠올려보면 이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

 

다락에서 만난 비밀친구 뽀송이. 날개의 색깔도 그 부드러운 털의 촉감도 기억에서 희미해져가고, 어쩌면 환상이었을지도 모르는 기억 속의 벗이다. 하지만 마리의 여동생이 마리만큼 자라서 비슷한 고민으로 울적해하고 먹는 것만 신경 쓴다면, 그때 얼마나 적절하고 따뜻한 충고를 귀띔해 줄 수 있을지, 흐뭇한 상상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다락이 불러오는 기막힌 판타지를 떠올려본다. 뭔가 마술 같은 기쁨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키낮은 방. 그곳은 하늘에 좀더 가까이 닿아있었던 유년의 로망이지 않던가. 구름이라도 손에 잡을 듯 다락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을 딛으면 아이든 어른이든 행복해진다. 요즘 아이들이 다락을 모를 줄 알았는데 3월에 3학년이 될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집에만 가면 다락에 올라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한 아이가 있어 무척 반가웠다. 다른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다락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다. 


마리 끌로드 베로는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초등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주로 쓴다고 한다. 아마 이 책 속의 마리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닌가 싶다. 자기의 외모에 대해 민감해 지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즈음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좋아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동화다. 마리의 헤어스타일이 아주 독특하고 귀엽다. 삐삐 롱스타킹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 초등 2,3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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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2-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크큭~^^
아니!! 뽀송이^^ 라면 전데요.~^^;;;
전... 사람이예요.^^;;;
'뽀송이'가 '마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 위로가 자신의 뚱뚱한 몸을 사랑하게 되고,
태어 날 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발전 한다는 것과,
드디어!! 비만에서도 벗어난다는 결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볼께요.^.~

프레이야 2007-02-17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그 뽀송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인지 알아맞히셨어요? ^^
뭘까요? 행운을 가져다주는 야행성동물이라는데요, 마리에게.

뽀송이 2007-02-17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의외로 사납지 않고 목깃의 털이 유난히 부드럽다."
도대체 뭐예요???
저... 시댁 가요...^^*

진주 2007-02-1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어린이들도 살빼기가 심각한 고민이더라구요.
제가 만나는 애는 발레를 하고 있는데, 발레, 요것이 사람 잡아요~
이제 중학교 올라가는데 한창 먹고싶은 나이에 음식조절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정말 안쓰럽더군요.
희령이 정도면 우리가 볼 때 귀엽고 이쁘기만 한데, 애들도 세상풍조를 따라 몸매에 관심을 많이 두겠네요...뱃살 빼는데는 줄넘기와 훌라후프가 괜찮던데^^

프레이야 2007-02-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맛난 것 많이 드셨어요? 전 지금 거동이 불편할 정도랍니다. ㅎㅎ
훌라후프와 줄넘기가 뱃살을?? 아이에게 권해야겠어요. 줄넘기는 간혹 하긴
하는데 먹는 걸 워낙 더 좋아하다보니 잘 안 빠지는 것 같아요 ^^
희령이도 얼마전 피겨 2급 승급에 성공하여 이제 공중 2회전 정도 하려면
체중을 좀 빼야하는데 아이에게 자꾸 말하기도 스트레스 될 것 같고 ㅜㅜ

뽀송이 2007-02-2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어머!! 님^^ 따님이 피겨 하나봐요? ^^;;
제가 참 좋아하는 종목이거든요.^^*
와~ 멋져요!!!

2007-02-2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우아 2007-02-2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빼기는 아이나 어른이나 공통된 문제이지요. 요즘 저는 아침에 운동해서 그런지 이번 명절에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서울까지 올라오는데 시간이 초과한 것 빼놓고는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7-02-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김연아선수 참 예쁘죠? 저도 그 종목 좋아해요. 특히 남자선수들이
더 멋지던걸요.^^

속삭인 ㅎ님 /그리 달덩이로 보이지 않던데요 뭘.. 사실 복스럽고 좋지요^^

오우아님/ 아침마다 운동하시는 것 쉽지 않지요. 뭐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데
참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건강한 삶을 위한 운동, 필요한 일입니다.
명절에 먼 거리 차로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지요? ^^
 
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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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물리적 무게와 책값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무게에 대한 쓴소리도 있지만 난 이런 종류의 하드커버 책을 좋아한다. 어린이책도 디자인이나 장정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옆에서 가만 보면, 품격 있어 보이는 모양과 색상, 삽화 그리고 한눈에 매료되는 어떤 것들에 무의식중 좌우되는 걸 알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손에 쥐고 펼쳐보고 싶은 책이라야 소유욕이 있기 마련인 아이들도 가까이 하고 싶어할 것 같다. 늘 믿거니 하고 고르게 되는, 보림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선 내 맘에도 들었다.


주인공 리(Leigh)는, 이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기 이름을 못마땅해 하고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평균치 소년’이라고 평가했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리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사려 깊고 자립심 강한 사고가 엿보이는 아이다. ‘리’가 2학년에서부터 6학년이 되어서까지의 성장기록이 그가 쓴 편지와 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편지와 일기는 어린이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편지는 채도를 낮춘 연두색 종이에, 일기는 약간 노란 종이에 씌어있다. 종이질감도 좋고 눈이 아주 편안하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읽어주신 무척 재미난 동화에 반해, 그 동화작가 Mr. Henshaw 에게 보내기 시작한 편지로부터 이 아이의 글쓰기는 시작된다. 그 과정을 보면 글은 자라고 변하고, 침체기도 있으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글을 쓰면서 ‘리’는 자신의 갑갑한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표현하며 보살핀다. 글쓰기가 아니라면 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와 갈등을 표출할 수 있었을지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생각하며 자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리’는 이혼한 후 홀로 자기를 키우며 늘 집세를 걱정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야간에는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기대에 어긋나게도 전화를 자주 해주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도 외로워 보이는 아빠의 어깨를 보며 왠지 슬픔을 느끼는 마음으로 점차 바뀐다. 오랜만에 보게 된 아빠가 전처럼 커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은 ‘리’의 성장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리'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다른 대목은 좋은 책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어가는 부분이다. 처음 헨쇼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개를 재미있게 해 주는 방법>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나 헨쇼가 쓴 신간 <가난뱅이 곰>을 읽고 '리'가 가진 감상은 정신적 성장과 함께, 우리가 좋은 책, 혹은 좋은 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다운 글귀로 헨쇼에게 보내는 편지에 '리'의 생각을 담아보낸다. "(작가는 늘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된다고 하셔서요) 좋은 책이라는 게 반드시 내용이 웃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웃기는 내용이 종종 이로울 때가 있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이에요......"(62쪽)  이 대목은 어린이책 작가로서의 비벌리 클리어리의 신념이기도 할 것이다. 키치 문화가 만연한 요즘 아이들도 가볍고 신기하고 기이한 것만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생각을 물어다주는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리’의 성장을 보며 한 아이가 자라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이는 이미 많은 것을 안고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앗처럼, 그 안에 이미 나무가 있고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래라저래라 가르치고 고치려드는 게 아니라 품고 있는 것들을 끌어내어주는 게 어른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리’의 주변에 있는 의미 있는 타인들이다. 이들이 건네는 관심과 따스한 한 마디는 스스로 자신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아이로 만든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전학 온 학교에서 자신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말을 걸어오는 프리들리 아저씨와 도서관 사서 선생님, 자꾸 없어지는 맛있는 점심식사의 도둑을 잡기 위해 도시락경보장치를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 갔던 동네 철물점 주인아저씨. 이들은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이지만 ‘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의 순간을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 주는 배려심 깊은 타인들이다.

 

이 책에서는 아이의 성장과정과 함께 글쓰기의 성장과정이 병행한다. '리'는 글쓰기에 점차 자신감이 붙고 끈기있게 '쓰기'를 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다. '어린이 작품집'에 낼 글을 쓰려고 고심하는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하다. 먼저 다른 아이들처럼 재미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써보려고 의도하지만 그게 뜻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헨쇼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한 편지의 답장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구상하기가 만만치 않다. 시를 써보기로 마음을 바꾸지만 '시는 이야기보다 리듬이 중요'하더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점은 꼭 동의되진 않지만. 또한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능력은 살면서 얻는 경험이 더욱 풍부해지고 이해하는 힘도 깊어졌을 때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은 후반부에서 만나게 되는 또다른 작가가 해준 말이다. 이 작가는 미래의 작가 '리'에게 중요한 말을 들려준다. "너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네 자신 그대로, 가장 너답게 글을 썼잖아. 그게 바로 네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증거야." 라고.


<헨쇼 선생님께>는 읽을수록 잔잔한 울림이 있다. 문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런데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가 쓴 편지와 일기라는 점을 감안하여 번역하였는지 약간 궁금해진다. 초반에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의 문장으로 보기에는 너무 단정한 문장이다. 후반에는 ‘개인적으로는’ 이라는 말이 이 문장 중에 나오는데 6학년 아이가 이런 단어를 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에는 별 다섯을 주고 싶다. 그시절을 지내온 어른이 보기에도 울림이 담담하고 진솔하며 형식면에서도 주제성과 어울림이 있다. 톡톡 튀는 아이다운 말투와 발상도 곳곳에서 재미나다. 헨쇼 선생님에 대해 독자가 상상하는 몫도 흥미로운데 끝에 가서 나오는 한 구절은 대개의 상상보다는 의외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이승민님이 그린 삽화가 한 몫 한다. 마치 목탄으로 거칠게 스케치한 느낌을 주는 흑백의 삽화가 아련한 그리움과 왠지모를 슬픔을 자아낸다. '리'라는 아이가 어른이 된 후 지나간 날들을 반추하는 기억 속의 필름 같다.  책표지에는 금발의 남자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있다. 초등 5학년이상이면 권하고 싶다. 특히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피하거나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아이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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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7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1-2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 나이에는 아직 읽기가 지루할 것 같구요 내년 쯤이면 좋아할 것 같아요.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아이라면 더 ... 어른들이 읽기에 더 좋은 것 같은 동화...
맞아요. 그게 동화 쓰는 사람들이 넘어야 할 부분 같아요. 그래서 더 어렵구요.
아이들 나름대로 느끼고 건져올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요.^^

비로그인 2007-01-28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으로 보이는데요? 어른이 봐도 재밌어요?

프레이야 2007-01-2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님, 전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특별한 사건이나 신기한 일들을 원하는 독자는
그저그렇게 여길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최상철 2007-03-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동 도서에서 느끼는 감동은 포장되어 있지 않아 좋은 것 같습니다.
느끼면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생각하는대로...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찰리맘] ^^*

프레이야 2007-03-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리맘, 상철군이랑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시더군요. 반갑습니다. 아동도서의 감동은 남다르지요. 아이랑 소통 가능한 매개이기도 하구요^^

봄날의왈츠 2015-07-3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클럽 때문에 원서로 이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도 왜 좋은 책인지 몰라 검색하다가 들렀어요.
님의 글을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다른 글들도 얼핏 봤는데 참 좋네요.

프레이야 2015-07-31 09:35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썼던 리뷰로 만나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아이들과 독서수업 하며 함께 읽고쓰고 하던 시절이었네요. 원서읽기 북클럽인가요? 차츰 더 알아가며 좋은정보 공유하기로 해요. 고맙습니다~
 
산사나무 아래에서 산하세계어린이 26
마리타 콘론 맥케너 지음, 이명연 옮김 / 산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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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가위나무라고도 불리는 산사나무의 열매를 유럽에서는 크라테리스라고 하며 강심제로 쓰인다고 한다. 5월에 꽃을 피우므로 May Flower 라고도 하는 산사나무의 열매는 빨갛고 야문 인상을 주어 희망적인 인상이다. 작가가 산사나무를 상징으로 둔 이유도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 ‘산사나무’는 가슴 아픈 가족의 기억을 묻어야하는 곳이다. 굶주림으로 죽은 막내를 묻고 암담한 여정에 올라야하는 출발지이다. 그리고 혹독한 여정에서 잠시 위험을 피해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곳도 산사나무 아래다. <산사나무 아래에서 Under the Hawthorn Tree>는 1990년 발표된 멕케너의 첫작품으로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에일리와 마이클 그리고 일곱 살 페기가 겪는 참담한 여정을 함께 밟아가면서 독자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울분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게 된다. 오로지 살기 위해 어린 그들이 겪어내는 온갖 위험과, 고비마다 놀라울 정도의 기지와 용기로 그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굶주림에 허덕이는 살벌한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영국의 식민지로 소작농이 대부분인 마을에 감자역병이 돌고 먹을 것은 동이 났지만 영국인 지주들은 ‘게으른 아일랜드 가난뱅이들 때문에 우리의 지갑을 열 수 없다’며 이들을 도울 방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급기야 어린 생명이 죽자 엄마는 약간의 먹을 거리를 마련해두고 일거리를 위해 집을 떠난 남편을 찾아 나선다. 에일리는 꼬마엄마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해진 에일리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쌍둥이 이모할머니를 찾아 멀고도 험한 길을 동생들과 함께 떠난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참혹하고도 전율적인 감동이 이 책의 이야기다.


작가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멕케너는 리얼하고 절제된 대사와 상황으로 긴박하게 그것을 전한다. 그녀는 이 책에 이어 <들꽃소녀>와 <고향의 들녘>을 펴내 ‘어린이 기근 3부작’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년 전의 지구 끝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 우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아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단지 굶어죽지 않으려고,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것을 먹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니세프에 대한 소개와 그 자료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산사나무 아래에서>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일단 혈육을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세 남매의 처지가 조금은 나아 보인다. 기근으로 인해 가슴까지 말라버린 인정 없는 사람들 틈에서 이들 쌍둥이 이모할머니의 따뜻함은 이 책의 잊을 수 없는 미덕이다. 또한 불쌍한 세남매에게 통증을 이기는 약초와 상처를 낫게 하는 연고를 쥐어 보낸 메리 케이트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가슴 조이는 험난한 에피소드들 가운데에서도 웃음 한 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잃지 않게 하는 작가의 위트 또한 뛰어난 감각으로 보여 조금은 위안이 된다.

 

예를 들자면 처녀 이모할머니들의 웃지 못할 사연에 대한 것인데, 엄마에게 듣기만 했던 이들 할머니의 재미난 옛이야기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함께 살며 빵가게를 하는 할머니들을 찾아가는 동기와 세 남매에게 지금 필요한 절실한 것을 이들 할머니 두 분이 갖추고 있다. 책을 읽는 어린이들을 생각하여 가족의 사랑과 인내심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 용기의 미덕을 말없이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은 고달프기만 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장하다. 어린 페기가 어느 정원에 뛰어들어가 한 자루 가득 따온 라스베리, 구스베리 열매들이 이들의 미래일 거라 여긴다. 그런 미래는 또한 역경을 이겨낸 자들만의 영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출발지, 고향은 돌아가야할 그리운 곳이다. 그곳에 있는 산사나무를 떠올려주면서 이야기는 맺는다. "작은 오두막집, 문밖에는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돌들, 아름다운 풀꽃들이 가득한 작은 뜰이 있는 집. 고향의 들판에는 지금도 산사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176쪽)"  작가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문체로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 작가의 최근작으로 <블루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다고 하는데 읽고 싶어진다.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책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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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오늘 하루도 괜찮게 보냈나요? 또 하루가 저물어요^^
추천 고마워요.

해적오리 2007-01-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제가 읽기엔 조금 무거운 이야기 같지만 보관함에 두었다 읽을 용기가 생기면 읽을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07-01-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좀 무겁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슬픈역사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몸으로 겪는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전해주려는 작가의 시선이 괜찮아보여요.

씩씩하니 2007-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픈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문체로 가슴을 어루만진다.........
책도 책이지만,,전 님의 리뷰에 감동을 받으니..어쩐대요..

프레이야 2007-01-0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아이들 책, 그래야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봐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어야겠죠. 아이들의 심성이란 것도 좋게만 그리는 건 왜곡이라고 생각돼요.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대로 그리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심성 같아요.

씩씩하니님/ ^^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워요.

2007-01-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좋은책 두두 29
이성자 지음, 김진화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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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5학년 여자아이가 있다. 비유적인 표현도 이거 말이 되는 거냐고 따지고 낭송을 하게 하면 몸을 배배 꼬며 간지럽다는 시늉을 한다. 자기는 동시가 너무나 싫다는 말로 일축한다. 그 아이는 논설문과 설명문을 썩 잘 쓴다. 학교성적도 좋다. 그런데 동시를 싫어한다고 하며 동시수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이런 반응을 과민하게 보이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 아니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감성은 어디로 가고? 느낌이란 게 없단 말이냐. 눈으로 보이는 게 모두가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에 주파수를 맞추어 보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낭송을 하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고 입으로 노래 부르듯 박자에 목소리를 실어보라고 일렀다.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게 뭔지에도 귀기울여보라고 덧붙였다.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는 하나의 시화집이다. 손에 잘 쥐어지는 얇은 책이다. 가는 선으로 단순하게 그린 그림에 맑은 수채화로 색을 입힌 그림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을 곱게 물들인다. 그림이 참 좋지 않니?, 하고 눈을 빛내며 물어보니까 너무 못생기게 그렸다고 일축한다. 그런 아이와 이 동시집을 보고 낭송하고 감상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보라고 하니까 제일 짧은 동시를 고르던 아이가 나중엔 자기의 경험을 글감으로 시 한 편을 써보기도 했다. 역시 이 아이는 지나치게 많이 다니는 학원의 스트레스를 글감으로, 막힌 가슴이 뚫렸는지 술술 써내려갔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증거다. 원래 글을 쓰는 기량이 있는 아이라서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재미있게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명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을 것이다. 잘 썼다고 칭찬해주었다.

이성자님의 이 동시집은 3부로 나뉜다. 우리는 서로 안고 산다(제1부)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식물간의 마음 나누기,  참 좋을 거다(제2부)에서는 가족의 끈끈한 애정, 그리고 풀잎에도 귀가 있어(제3부)에서는 자연의 친구들과 진실된 교감을 하는 동시들이 묶여있다. 하나같이 시인의 깊고 따뜻한 마음의 눈이 엿보인다. 그 눈과 살짝 눈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런데 3부로 나누었으니 각 부의 주제를 두고 볼 때, 약간은 이질적인 내용과 느낌의 동시가 군데군데 섞여있는 게 흠이다. 그냥 별다른 기준 없이 묶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나누어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게 타이틀 동시제목까지 써서 나누었다면 비슷한 내용으로 묶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할머니를 글감으로 하는 두 가지 동시는 아이가 겪었음직한 할머니와의 기억을 가지고 꾸밈없이 써내려갔다. 아마도 시인의 유년시절 기억이 밑그림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둘 다 가슴이 뜨뜻해지는 동시다. 마지막 장의 동시 '사전 속 낱말들'은 일종의 산문시인데 3연으로 나누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면서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정하다. 다른 시들도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참신한 비유가 신선하다.

눈이 크고 깡마른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학원 다니느라 스트레스 받고 머리 아플 때 화장실에 앉아 이 동시집을 아무 쪽이나 펼쳐서 보라고. 복잡한 머릿속이 말끔해질 것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투명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도 더욱 온기가 생길 것이다. 갑갑하던 가슴에 여유도 생겨날 것이다. 특히 너희처럼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쟁쟁대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동시에서는 까르르 웃음이 날 것이다.

나도 베란다 한 구석에 나란히 꽂아둔, 잊고 있었던 동시집들을 종종 펼쳐봐야겠다. 마음이 사정없이 엉킬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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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지친 아이와 시를 읽느라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아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을 거에요.^^

프레이야 2006-10-1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그래도 참 밝은 것 같아요.

치유 2006-10-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달인

아름다운 책방
닉네임 : 배혜경(mail), 리뷰 지수 : 42670

나는 한 송이 꽃, 상쾌함을 느낀다. 나는 하나의 산, 견고함을 느낀다. 나는 잔잔한 물, 사물을 그 모습 그대로 비춰본다. 나는 공간, 자유로움을 느낀다. -


프레이야 2006-10-1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배꽃님, 감사드려요. 편히 주무시길...

파란여우 2006-10-3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사정없이 엉킬 때는 그저 지상의 천사들 야그가 최고죠.
동시도 좋고, 동화도 좋고 그림도 좋고 동요도 좋고. 또 뭐가 있더라
발자국을 남긴지 오래되었어요
슬쩍 몰래 읽는것에 재미 붙이다 보니 이리 되었군요.
참, 단정하신건 여전하세요^^

프레이야 2006-11-0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발자국이 넘 정겨워요^^ 저 오늘 모임 갖고 좀 놀다 왔어요. 흐트러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한계에요.^^ 편히 주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