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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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방정환 선생이 우리 아동문학에 뿌린 씨앗은 귀한 것이다. 누구보다 어린이를 사랑한 인물로 5월이면 어김없이 떠올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한 때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나는 전부터 읽어본다 하면서 미루어왔던 <칠칠단의 비밀>을 펴 들었다. 중편 <동생을 찾아서>보다 장편 <칠칠단의 비밀>은 배경도 넓어지고 주인공의 활동 범위도 더 커진다. 일제시대 일본과 중국의 틈에서 수난의 시대를 보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주인공 상호와 기호는 열여섯으로 요즈음의 어린이라고 말하기에는 많은 나이이지만, 어린이로 묘사된다. 용기와 지혜로 악의 소굴에서 구해낸 동생 순희는, 어쩌면 당시 우리 민족의 갑갑하고 어려운 상황이기도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딛고 이겨내는 결말은 가슴 속 깊이 희망을 불러 넣어준다. 쫒고 쫒기는 긴박함은 좋으나, 어느 부분은 개연성이 좀 없지 않나 싶은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성영화의 변사같은 어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옛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

요즈음의 동화 작가들도 어린이를 위한 신나는 추리소설 한 편 쓰시지 않겠습니까? 범인은 누구일까? 가슴졸이며 책장을 넘기다 뜻하지 않게 나를 덮치는 반전의 묘미를 즐기고 싶은 어린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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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2004-05-07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책을 읽는 두아이의 엄마랍니다.
동화읽는 어른들의 모임을 통해서 어린이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배혜경님의 서평은 맛갈스럽습니다.
님이 쓴 서평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됩니다.

프레이야 2004-05-0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국화님, 반갑습니다. 이건 3년전 리뷰군요. 탐정추리동화는 아이고 어른이고 좋아하는 이야기일거에요. 최근에 본 '에밀과 탐정들'과 '악어클럽'도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더군요. 저의 글이 님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다니, 기쁩니다. 동화읽는어른은 저도 관심있어 몇년 전 가입하려다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일로 아직 못 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모임이지요. 앞으로도 어린이책에 대해 많은 얘기 나누면 좋겠어요.
 
노란 양동이
모리야마 미야코 글, 쓰치다 요시하루 그림, 양선하 옮김 / 현암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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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하고 이재에 밝은 것만 같은 여우에 대한 선입견은 이솝우화 같은 종래의 이야기들에서 생긴 것일 것이다. 그러나 <노란 양동이>를 비롯한 근래에 쓰여진 아기여우들은 그 이미지를 확 벗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빨간 반바지만 걸친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손잡아 주고 싶기도 하다.

어느 월요일, 아기여우가 우연히 발견한 임자를 모르는 노란 양동이는 일주일 동안 아기여우의 아낌없는 보살핌과 애정을 받는 물건이다. 이것은 물건 이상의 것으로, 마음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대상이다. 적어도 아기여우에게는 그렇다. 덥석 제 것으로 해 버릴 수도 있으련만, 아기여우, 아기토끼, 아기곰은 누구의 양동이일까 고민을 거듭한다. 글피는 금방이니 일주일만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려보자고 결론내리는 모습에서 아이들다운 현명함과 순수함이 반짝인다.

화요일 아침 일찍부터 아기여우는 외나무 다리 근처에 그대로 두고 온 노란 양동이를 씻겨 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받쳐 주고, 미꾸라지를 잡아 양동이 가득 담는 꿈도 꾸어 본다. 그러면서도 노란 양동이가 자기 것이 되었으면 하는 아이다운 바람을 버리지 않고 나무 막대기를 주워 양동이 바닥에 제 이름을 쓰는 시늉도 해 본다. 밤 바람에 양동이가 날아갈까 냇가의 물을 가득 담아 두고 양동이 안에서 출렁거리는 노란 달님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며 일 주일을 잘도 참아낸다.

그러나 마지막 날, 노란 양동이는 깜쪽같이 사라지고 아기여우의 은근한 기대는 무너지지만, 의외로 아기여우는 '아무래도 좋아'하고 생각한다. 일 주일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을 노란 양동이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주인 잃은 노란 양동이를 아낌없이 사랑하며 보살핀 임자는 다름아닌 아기여우이다. 비록 자기에게 돌아온 물질적 보상은 없어도 그동안의 행복감과 즐거움이란 값진 보상을 아기여우는 받은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아기여우는 짧지만 긴 시간동안의 체험으로 그것을 몸으로 느낀 셈이다. 무엇이든 내 것으로 꼭 쥐려고만 드는 아이들에게 잔잔한 마음의 물결이 일지 않을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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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농부 원경선 이야기 쑥쑥문고 38
송재찬 글, 이상권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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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농부 원경선 이야기>는 평생을 올곧게 한가지 일에 매달린 한 소박한 농부의 진솔한 이야기이다. 위인전이라는 다소 거창한 느낌의 종래의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우리가 진정 위인으로 존경하여야 할 인물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어렵지 않은 대답을 해 준다.

자신의 자리에서 한가지 일에 깊이 고민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관철하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들여다본다는 건, 아이들에게 아주 의미있는 경험이라 생각된다. 아직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훨씬 사실에서 벗어나 있을 확률도 적지 않을까?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므로, 우상화하여 보거나 막연히 존경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그리는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환경호르몬이다 뭐다 하여 유해 식품의 논란이 많은 우리네 식탁을 염려하는 눈들이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을 낼 정도로 우리의 식탁이 오염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원경선의 풀무원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농작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나 새삼 알게 되었다. 수퍼마켓에서 가격이 높다고 망설이다 사지 않고 지나쳤던 적이 었었던 유기농 작물들이, 우리 몸과 우리 땅을 살리는 방법으로 부지런한 농부의 손을 빌어 생산된 것들이라는 알게 되었다.

풀무? 쇠를 달구는 도가니에 불이 잘 붙으라고 바람을 넣어 주는 기구. 풀무는 원경선이 만든 풀무원 농장의 신념을 상징한다. '풀무가 못쓰는 연장들을 새로운 연장으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제멋대로 험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남도 생각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평생을 확고한 종교적 신념으로 자신을 지키며 정직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인물.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웃을 모두 안아 들이는 넉넉한 삶이라, 그 주름진 얼굴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 하나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보다, '나 하나부터'로 생각한다면 원경선 할아버지의 말대로 '군대가 필요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죽어가는 땅을 살리는 참 농사를 짓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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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많은 요리점 힘찬문고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민영 옮김, 이가경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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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기묘한 분위기로 읽는 이를 압도하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는 모두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환상 속으로 빨려들어가기도 하고 전생의 인연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늠해 보게도 된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다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야생의 동물들을 나란히 등장시켜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모두가 자연의 일부로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한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의 순수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이라 깊이가 있다. 이야기마다 군데군데 펼쳐지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아름답고 생생하며, 작가의 자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보인다. 눈이 많이 오는 고원지대가 그의 고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향의 험난한 자연 현상을 사랑으로 이해하며 새로운 이미지로 그려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꽤 낯설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문체로,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생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생을 금하는 것을 덕목으로 하는 <기러기 동자>에서 작가는, '수리야'를 시켜 '무엇이든 목숨은 슬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서는 동물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가는 인간(사냥꾼)에게 동물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섬뜩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영국사냥꾼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서방 강대국들의 무차별 식민지 개척에 대한 반감이 엿보인다.

전쟁에 대한 반감과 회의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지고 생명을 가볍게 다루는, 전쟁의 허상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작가는 애통해하고 있는 듯하다. <북수장군과 의사 삼형제>가 그렇고 <까마귀의 북두칠성>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제발 미워할 수 없는 적을 죽이지 않아도 되게끔 빨리 이 세계가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저의 몸 따위는 여러번 찢어져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이런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에 대한 자비는, <켄쥬 공원의 숲>에서 한 바보스러운 아이 켄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잘 알 수 있다. '과연 누가 지혜롭고 누가 현명하지 않은 지 알 수가 없군요. 단 어디까지나 완벽한 작용은 불가사의합니다. 이 곳은 이제 아이들의 영원한 아름다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나무를 심어 훌륭한 삼나무 숲을 이루어 낸 켄쥬를 평가하는 말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으로 이 삼나무의 멋진 푸르름과 상쾌한 향기, 여름날의 서늘한 그늘, 달빛같은 잔디의 빛깔이 이제부터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지도 모릅니다.'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 이 모두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이라는 이유로 나머지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권리는 없다. 이 모두는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공생 공존해야 하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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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간 개돌이 신나는 책읽기 1
김옥 글, 김유대.최재은.권문희 그림 / 창비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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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이 동화집은 참 친근감이 든다. 어린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마음과 의외로 의젓한 마음이 나의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한다. 작가가 초등학교 교사라 그런지 그 또래 아이들의 심리를 잘도 읽고 있는 것 같다. 거기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들이 생동감 있어 좋다.

<책벌레>는 아이들이 흔히 거리감을 두기 쉬운 책(그것도 아주 두꺼운 국어사전)을 소재로 그곳을 집으로 삼고 살고 있는 책벌레들을 등장인물들로 하여 기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먹자파와 연구파의 싸움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구파의 손을 들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집 책꽂이에 그냥 꽂혀있는 책들을 한번 펴보고 싶어질 것이다. 책벌레들을 만나고 싶을 테니까.

<학교에 간 개돌이>와 <내 귀여운 금붕어>는 각각 학교와 집에서 겪을 수 있는 아이들의 일상을 소재로 그들만의 소중한 비밀처럼 즐겁게 간직하고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난해도 밝고 다른 목숨을 귀히 여길 줄도 아는 아이들이 나온다. <소중한 아이>에 나오는 아이는 또래보다 능력도 떨어지고 가정형편도 좋지 못해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귀에 '넌 소중한 아이'라고 속삭여주는 선생님이 있으므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모래 마을 아이들>은 짧은 판타지 동화로 보았다. 엄마의 과열교육으로 여러 군데의 학원을 다니느라 마음껏 놀이터에서 놀 시간을 빼앗긴 진이가 나온다. 그날도 바이얼린 학원에 가는 길에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놀다가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가 된 후, 모래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그 마을에서 진이는 모래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만화영화도 보고, 불량식품도 먹어보고 학원에 갈 걱정일랑 할 필요도 없이 떠들고 논다.

모래 마을에 들어 갈 즈음의 시각이 네 시 삼십 분이었는데 그 마을을 나올 때 시각도 여전히 네 시 삼십 분이다. 이것은 판타지 동화를 이루는 장치 중의 하나이다. 억눌려 사는 아이들에게 판타지 공간에서의 시간은 영원한 꿈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모래 마을 아이들이랑 내일 또 놀 생각으로 진이는 씩씩해졌다.

<문이 열리면>에서는 부분적으로 이런 요소가 들어있다. 장사를 하러 나간 엄마를 방에 갇혀 기다려야 하는 어린 오누이에게 옷장 문은 둘만의 놀이터로 가는 비밀의 문이다. 옷장 속의 옷은 나무로 변하고 나무를 다 잘라 내고 다시 심는다고 옷을 죄다 방바닥에 던지기도 한다. 오빠는 숲 속에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되어 엄마가 먹으라고 놓고 가신 사과 두 개를 매달고 있다. 동생은 노란 부리를 가진 수다쟁이 새가 되어 옷장 속을 휘젓고 다닌다. 옷장 속이 놀이터와 골목길인 것처럼. 문이 열리면 그리운 엄마가 오는데, 좀체로 엄마는 오지 않고. 꿈길 따라 들려오는 엄마의 발소리에 아이들은 잠이 들려다 일어난다. 삽화의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내 마음이 울컥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잘도 만들어낸다. 방을 어질러 놓았다고 화를 내시는 엄마, 학원을 빼먹었다고 혼을 내시는 엄마가 있어도 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의 아이들은 모든 걸 잊고 그것에 푹 빠진다. 즐겁다. 해방이다. 그리곤 커간다. 어느 순간 쑥 커버린 아이를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룻밤이라도 캠핑을 가 억압하는 엄마의 손에서 놓여나 놀다 온 아이를 맞이할 때 같은 경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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