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은 초등3,4학년 때부터 판타지를 아주 좋아한다.
그 이후로도 단편보다는 장편의 서사적 이야기가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일 먼저 만났다. 책으로 한권당 열번도 넘게 읽더니
디비디도 모두 소장하고 싶다고 하여 다 사주었더니 그것도 몇번씩 보았다.
그 전에 개봉관에서 나랑 같이 다 본 영화들을.
그러고 나서 진짜로 판타지의 제왕으로 아이가 뽑는(나도 동의), 반지의 제왕을 만나게 되었는데
완전히 푹 빠졌다. 반지의 제왕 이후로 본 어떤 판타지도 마음에 쏙 들어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나니아연대기'를 영화로 보고 나서도 시큰둥했으니까.^^
반지의 제왕은 디비디도 몇번씩 보더니 얼마전,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한다.
오래 전에 6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었던 것들을 집에 사두었는데 글씨가 너무 작다고
잘 안 보고 있길래 마침 그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셨던 5학년 담임선생님께
선물로 드리는 바람에, 이번에 새로 구입하려고 알라딘을 검색해보았다.
3권의 양장본으로, 일러스트도 영화의 장면을 연상하게 환상적으로 그려서 나와있었다.
한권당 할인가격으로 만팔천 원. 전에 것보다 행간이 넓고 읽기에는 좋아보인다.
그런데 아이가 읽기 시작하더니 내게 쫓아와 투덜거리는 거다.
지명이나 인명을 우리식으로 번역하여 읽는 맛이 떨어진다고...
헉, 이게 뭔말이냐 싶었는데... 톨킨의 번역지침에 충실히 따라 나온 것이라는 귀띔이 있었다.
그것은 자국의 언어로 바꾸어 번역하라는 것!
톨킨의 번역지침이 있었다는 건 몰랐다. 역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50여년 전에 썼다니 말이다.
아이가 맘에 안 들어하는 단어들 예를 들자면 stider 는 '성큼걸이'로 , Baggins 는 '골목쟁이'로,
브랜디벅은 '강노루'로, 리벤델은'깊은골' 로, 프렌싱포니는 '달리는조랑말여관'으로 나온다.
아이말대로 다른 건 몰라도 이름(성), 즉 스트라이더나 배긴스 같은 건 그냥 두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아이가 하는 말이 웃긴다.
"빌보 배긴스를 골목쟁이 빌보라고 하니까 촌스러워. 성큼걸이는 무슨 거인이 걷는 것 같아서
싫고. 원래의 분위기가 안 느껴져. 완전히 바꾼 것도 아니고 우리말과 영어가 섞여있으니까
더 어색해. "
촌스럽다는 말!
아이는 영화를 먼저 보았고 영화자막은 이름이나 지명들은 그대로 써놓았으니까
그 이름들에 익숙해져있는데 이렇게 우리말로 우리정서에 맞게 번역된 것이 어색한가 보다.
그래도 촌스럽다니니... 요새 아이들, 확실히 서양식 분위기는 고상하고 우리식 성큼걸이와
골목쟁이, 강노루는 촌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우리말 번역자가 톨킨의 번역지침에 따라 번역한다고 그렇게 했나보다 라고 말해주면서
강노루, 깊은골... 이런말 괜찮지 않냐고 한마디 하다가, 문득 꼭 괜찮기만 한 걸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행간이 시원시원하니 넓고 삽화도 멋지다.
1권 반지원정대, 2권 두개의 탑, 3권 왕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