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맞다(천양희, "너무 많은 입", 창비, 2005)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우누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 멜기세덱님 서재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