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소설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 서평가, 영화감독 등등.

문화계 인사 스무 명이 각자 좋아하는 연애 소설을 뽑았다.

 

참담하다. 스무 편이 넘는 <연애 소설>중 내가 읽은 작품은 다섯 편 뿐이었다.

모든 소설을 연애소설이라 말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연애 소설 아닌가.

특히나 고전 중 사랑을 소재로 하지 않은 작품은 언뜻 떠올리기가 힘들다.

 

나라면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코엘료의 <, 자히르>,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뽑겠다.

 

스무 명의 문화계 인사 중 요조님의 첫 등장은 왠지 자연스럽다.

정성일 평론가가 첫 등장이었다면, 서민 박사가 첫 등장이었다면...........

......어쩜 다들 이리 글을 잘 쓸까.

 

요조 - <야행>, 김승옥

 

 

어쩌면 이 단편을 읽었었는지도. 민음사 <무진기행>에도 실려있으니.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에서 아버지를 회고하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문인이셨다. 하루는 김훈의 아버지와 문인 지우들이 모여 김승옥 이야기를 한다. 김승옥의 문장은 그 당시에도 전대미문이었나 보다.

 

<야행>도 발칙하다. 육교 위에서 처음 본 여자의 손을 잡고 여관을 가는 남자나 그 남자를 잊지 못해 하염없이 밤길을 걷는 여자나. 그녀가 바라는 것은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니.

 

요조님의 서점, 꼭 가보고 싶다. 서점 잘 되시길.

 

 

김보통 <속 깊은 이성친구> 장 자끄 상뻬.

 

 

 

 

 

 

 

 

 

 

박현주 - <채굴장으로>, 이노우에 아레노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 [레몬 테이블]수록, 줄리언 반스

 

미리엄- 웹스터 온라인 사전 11판에 ‘some’알려지지 않고 결정화되지 않고 특정화되지 않은 단위나 존재를 묘사하는 단어라고 쓰여있다.

 

두 작품 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연애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죽어가는 남자가 임종 침대에서까지 깊은 무의식의 심연에서 퍼 올리는 기억이 될 정도로 굳건히 자리 잡은, 언어 너머의 마음이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이 연애소설의 본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말하지 않은 기억은 고스란히 잊히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묻히므로 그 존재조차 증명할 수 없다. 그 마음을 그대로 당신이, 세상 사람들이 결코 모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 감정이 과연 실제의 것이었나 믿지 못하고 불확실하게 흔들릴 때, 어떤 소설은 그게 환영이 아니니 부인하지 말라고 말해 준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다고, 세상에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도 그 마음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정지돈 - <몰타의 매> 대실 해밋, <독보건곤> 용대운, <규방철학> 사드.

 

 

 

후장사실주의자답다. 연애소설로 사드의 <규방철학>을 뽑다니.

 

나는 누구와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누구와도 같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는 누구와도 같지만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는 누구와도 다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소연 - <요오꼬, 아내와의 칩거> 후루이 요시끼찌

 

 

 

 

 

 

 

 

 

 

 

 

 

서민 - <사랑이 달린다>, <사랑이 채우다> 심윤경

 

 

역시나 두 번째 아내 자랑으로.

 

 

 

 

 

 

 

 

 

 



황인찬 - <독학자>, 배수아

 

 

 

 

 

 

 

 

 

 

 

 

 


이도우 - <워싱턴 스퀘어>, 헨리 제임스

 

언젠가 인상적으로 읽은 심리학 에세이 <가스등 이펙트>가스라이터가스라이티라는 흥미로운 낱말이 있었다.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상대방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의 심리를 이 책의 저자 로빈스턴은 가스등 이펙트라 이름 붙였는데, 이 비유 역시 고전영화 <가스등>에서 따온 것이다. 조종하는 가스라이터와 조종받는 가스라이티.

 

한번 각인된 것은 간직하는 아이니까요. 캐서린은 흠집이 난 구리 주전자 같아요. 주전자를 윤이 나게 닦아 놓을 수 있지만 흠집을 지울 수는 없거든요.”

 

 

 


백민석 철도원, 러브레터 <철도원> 성야의 초상 <은빛 비>, 올림포스의 성녀 <산다화> 아사다 지로.

 

 

 

 

 

 

 

 

 

 

 

 

 

 

김민정 - <> 막상스 페르민.

 

  

눈이네, 라고 말하는 순간 여자의 심장은 뜨거워졌다. 사랑해, 라고 말하는 순간과 무엇이 다르리,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에서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야. 참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지.”

 

page 42. 그의 성기가 시든 아티초크처럼 늘어질 때까지, 그리고 처녀의 그곳에 보랏빛 멍이 들 때까지.

 

아티초크. 여자는 사전부터 찾았다. 쌍덕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엉겅퀴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잎은 어긋나고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진다. 잎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솜 같은 흰색 털이 빽빽이 있다. 꽃은 여름에 자줏빛으로 피고 두상화를 이루며 달린다.

 

박준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김중혁 - 세 번째 이자 마지막, <축복 받은 집> 수록, 줌파 라이리.

 

밀란 쿤데라의 말.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끝까지 계속 갔을 때 결국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그 사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진정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말이다.

 

 

 

 

 

 



안은별 - <산시로>, 나스메 소세키

 

 

 

 

 

 

 

 

 

 

 



김종관 -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배명훈 - <데브다스> 사라트찬드라 차토파드히아이

 

 

 

 

 

 

 

 

 

 

 



정성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백야>, 도스토예프스키

 

 

 

 

 

 

 

 

 

 

 

 

 

금정연 -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정세랑 -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시라노> 에드몽 로스탕

 

조금 더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실을 때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작품들에 손이 간다. <여명>도 좋지만 <암고양이> 쪽이 더 연애소설이다.

 

불타오른 다음 파멸하지 않고 지속되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의외로 존 스칼지가 잘 쓴다. <노인의 전쟁>,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조이 이야기>로 이어지는 4부작의 주인공인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솔뫼 - <아수라 걸> 마이조 오타로

 

닳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래서 한번 해 봤는데, 닳아 버렸다. 내 자존심이.

이제와서 되돌려 달라고 해 봐야 녀석이 다시 되돌려 줄 리도 없을뿐더러.

원래 자존심은 되돌려 받는 게 아니라 되찾는 거다.

 

 

 

 

 

 

 

 

 

 

주영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으니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정성일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때문일까, <백야>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그의 영화에 출연한 요조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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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사드는 애널 자위를 좋아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3-04 20:3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애널 자위`라고 적혀 있어 깜놀했네요. ㅋ
사드는 뭘 해도 안 이상해요.그러려니 싶죠.
예전에 사드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은근 안 읽혀요. ^^;
에로스을 빙자한 철학 책인 걸로~~
 

님의 침묵, 한용운

 

나의 관심은 님이 누구냐가 아니라 침묵의 의미다. 모든 예술은 남겨진 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떠나는 사람이 나는 너를 버렸노라.”라고 읊는 경우는 없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부재하니까 침묵인 것이다. 반면 남겨진 자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그리움, 슬픔, 체념, 자책, 희망.

 

님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 님은 대상이 아니라 자아이다. 침묵하는 자아인 동시에 침묵을 뿜으며 더 깊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자아. 마지막, 님의 사랑과 침묵은 범람한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이 책은 200812월에 발생한 민주노총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드러난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전교조 소속 일부 간부들의 손바닥으로도 하늘을 덮을 수 있는 약자에 대한 횡포, 관료주의, 무능과 무식에 대한 보고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 가에 대한 정밀 진단서이다. 청소년에게 가장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은 근대화 시각에서 발전주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사건의 가해자는 5년 구형에 3년 실형을 받았다. 진보 진영이 일반 사회보다 성폭력이 더 빈번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직 보호를 내세운 이들의 사후 대응 방식은 유별나다. ‘공작 정치(social rape)’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진짜 피해와 무서움은 이것이다. 남성은 물론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사건 은폐, 축소를 주도하고 가담했다. 진보라는 과도한 자의식에 비해, 기본적인 인권 개념은 물론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인식조차 없는 이들에게 사회생활의 목적을 묻고 싶다.

 

손자병법, 손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당연하게 설정 하고 있던 전선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 싸움 주제를 생소한 것으로 만들어 적을 인식 분열 상태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인식과 더불어 자각이 다른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이다. 강자는 자기 생각을 약자에게 투사하지만, 똑똑한 약자는 두 가지 이상의 시각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파악한다.

 

전선을 구획하는 자가 이긴다. 누가 먼저 어떤 선을 긋느냐, 누가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창조하느냐. 기존 전선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내가 룰을 만들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라.” 강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양극화를 만들고, 약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을 이롭게 한다. 기존의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다. 내가 쉽고 익숙한말을 경계하는 이유다.

 

나의 진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발상의 전환으로 매복하고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여성은 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은 처럼 살고 싶어 한다. 탈식민 병법이 필요하다.

 

월간 비범죄화,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발행

 

나는 모든 글은 질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예술과 외설, 논문과 잡글, 사실과 허구, 본격소설과 통속소걸, 문학과 사회과학 따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어떤 글을 읽고 즐거움, 의문, 성찰을 경험했다면 글의 소속(?)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글의 내용과 정신이다.

 

일본어인 찌라시는 흩뿌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의 기본은 권()인데, 찌라시는 묶인 것도 아니고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동선을 위한 글은 찌라시였다.

 

성판매 여성을 비범죄화하라!

 

우리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은 오늘, 성판매 여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범죄화 할 것을 엄숙하고 거룩하게 선포하는 바이다. 다만 선언하고 선포할 뿐,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선언은 그런 거니까.

 

우리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젠더 권력의 문제인 성매매를 성판매 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성판매자를 범죄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을 규탄하다.

가능하지도 않을 강제냐 자발이냐 기준 세우기는 그만하고, 성판매 여성의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와 사회적 지원에 대한 논의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성판매를 성적으로 타락한 자, 더럽혀진 자, 비난받아 마땅한 자로 낙인찍어 차별하는 자들을 낙인찍을란다.

치사하게 구매하는 입장이면서 판매하는 사람 비난하기 없기다.

 

20134월 어느 봄날에.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친연합(이하 소속단체)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모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오미,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한국에와서여성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우리 졸라 많지?).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메일링 신청

http://goo.gl/KkFik

 

운현궁의 봄, 김동인


힘없는 대원군의 처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당시 세도가 김좌근의 첩 양씨가 선배를 흉내 내는 장면이 나온다. 명종 때 윤원형의 소실 정난정을 따라하는 시반선 행사다. 한강 하류에 밥을 쏟아 물고기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구경 나온 배고픈 백성들에게 물고기가 밥을 잘 먹는지 강물 속을 굽어보라.”고 말한다.

 

몇몇은 강으로 뛰어든다. 물고기 밥을 훔친 죄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엉덩이 뼈가 부서지도록 맞는다. 가족은 그 밥을 바란 죄로 오십 대씩 태형에 처해진다. 그 장면이 중학교 1학년에겐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나의 정치 의식과 공권력에 대한 분노는 그때 고정되었다.

 

고물이 보물이 되려면 사람의 마음과 일이 필수적이다. 내게 별로 득이 되지 않으면서 주고 욕먹을가능성이 많은 일이다. 그게 귀찮아서 다들 그냥 버리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에겐 물건을 새로 사는 게 재활용보다 편하다.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데는, 노동이 요구된다. 나는 이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이 이미 체제다.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수선하는 일이다.

 

문장강화, 이태준.


이태준의 1939년작 <문장강화>는 반복해서 읽기 즐거운 실속 있는 책이다. 임형택이 쓴 해제의 훌륭함도 감안해야겠지만, 70여년 전 책이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보다 깊이 있고 세련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써라.”라고 일러주기보다 좋은 글을 많이 보여준다. 우리 문장이 이렇게 풍요로웠구나,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가 너는 죽어도 내 고통을 모를 것이라 했을 때 상처받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깨달아 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할 때, ‘걸어다니는 재앙(, 그 공주!)’이 따로 없다.

특히 남성은 결핍을 결핍한 완전한 존재다. 자기 위치를 알기 어렵다. 물이 흐르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일 때다. 큰 물줄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클 때다.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 없는 주제 파악......나부터.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 알리 러셀 혹실드, 2교대The Second Shift


남성에게 집은 쉼터지만 여성에게는 노동의 공간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규범이다. 그래서 남성은 혼자일 때 더 외롭고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상하다. 난 혼자일 때 외롭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거늘. 많은 남성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 책은 내가 많이 권하는 책 중 하나다. 감정 노동 개념으로 유명한 저자가 부부 50쌍을 인터뷰하고 일부는 같이 생활하면서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을 분석한 책이다.

 

남성이 여성만큼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한, 그 노동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한, 인류의 모든 민주주의는 실패한다. (가슴을 도려내는구나.)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로잘린드 마일스


가정에 소속된 여성치고 임금 노동에 종사하든 안 하든 끼니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거의 없다.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 세계 여성의 역사>. 물론 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동서양에 걸친 세계 여성의 역사다. 기존 역사에서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여성의 노동 없이 인류 역사는 단 하루도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시선과 약간 다르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였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지 않았을까?”였다. 물론 스타 요리사의 성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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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3-03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떠나간 자의 슬픔.. 남겨진 자의 고통..

마태우스 2016-03-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근데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는 품절이네요 아쉽습니다. 글구 하늘을 덮다 이 책이요, 저도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책의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얘긴지 확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하늘을 덮다를 덮다, 했습니다. 암튼 저와 관심분야가 비슷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이소오 2016-03-03 22:53   좋아요 0 | URL
정희진 씨 서평집에는 절판 도서가 꽤 많습니다. 하늘을 덮다, 덮다 ㅋ
마태우스님이 서민박사님은 아니죠?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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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제임스 설터

 

톰 행크스의 말처럼 <스토너>는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연대기다. 그렇지만 분명 매혹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엔 나를 매혹시키는 세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 : 이런 멘토를 만났더라면.

 

스토너는 집안의 농사일을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2학년 1학기 때 누구나 듣는 교양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가 결국엔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을 줄이야!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지도에 따라 책을 읽고 또 읽지만 항상 낙제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원래 목표로 하던 농과 수업은 뒤로 하고 점점 더 스토너는 영문과 수업을 늘려가더니 아예 전공 자체를 영문학으로 바꿔버린다. 그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아처 슬론이 그를 교수실로 부른다.

 

모르겠나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스토너는 아처 슬론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묻는다. 슬론은 대답한다.

 

사랑일세.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슬론은 스토너도 미처 깨닫지 못한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간파한다.

미래에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젊은이 앞에 진로를 정해주는 멘토가 나타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있을까. ‘넌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말해주는 멘토가 있었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스토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강단에 서 학생들에게 40년 간 영문학을 가르친다.

 

두 번째 장면 : 이런 사랑을 했더라면

 

스토너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디스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신혼 첫날부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젊은 강사인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 역시 스토너를 사랑한다. 바야흐로 불륜으로 접어든다.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욕망과 공부를 달리 표현하면 사랑과 책이다.

스토너는 책꽂이를 들일 정도로 많은 책을 캐서린의 집에 갖다 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쓴다.

 

스토너는 의자에 널브러지거나 침대에 누운 자세로 역시 그녀처럼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가끔 두 사람은 시선을 들어 서로를 향해 빙긋 웃은 뒤 다시 읽던 자료로 눈을 돌렸다. 때로 스토너가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항상 머리카락이 덩굴손처럼 덮고 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과 우아한 곡선을 그린 등을 지긋이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느긋한 욕망이 천천히 차분하게 솟아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렸다. 그러면 그녀는 등을 똑바로 펴면서 고개를 젖혀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양손이 헐렁한 로브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책을 읽다 서로를 바라보다 사랑을 나누다 도로 책을 읽다......

이 장면에서 정신이 약간 혼미해졌던 것 같다. 너무 너무 너무 매혹적이다.

이건 정말이지....... 천국이다. 에로틱하기보단 그저 따스하다.

저 따스함을 표현하기에 나의 언어는 절대적으로 초라하다.

 

세 번째 장면 :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스토너는 대학을 은퇴하여 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신 그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감동적인 죽음이다. 운명의 순간, ‘그의 작은 일부가 앞으로도 있을 책장을 펼치며 그는 짜릿함을 느낀다. 책 쓴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필립 로스가 떠올랐다. 대학 사회가 배경이라는 점, 학생과의 불화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불륜 혹은 섹스라는 소재 등이 로스의 소설과 비슷했다. 특히 주커먼 시리즈 중에서도 <휴먼 스테인>. 콜먼은 출석부를 부르던 중 출석치 않은 두 흑인 학생을 ‘spooks’라 불렀는데, 이 단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해를 산다. 콜먼은 결국 학교와 타협하지 않다 교수직을 사직한다.

스토너는 스토아적인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 성격이라기보단 관조하고 인내한다. 그러나. 스토너 역시 콜먼처럼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곤경에 처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학과장이 될 로맥스가 추천하는 찰스 워커의 박사 과정을 실력미달이라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 일로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로맥스로부터 불이익을 당한다.

 

스토너에게도 매스터스와 고든 리치라는 대학 친구가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스터스와 리치는 군대에 자원하지만 스토너는 대학에 남기로 결정한다. 고든 리치는 돌아와 그와 마지막까지 학교를 지키지만 매스터스는 입대한 지 1년 만에 사망한다.

 

주요 인물인 듯 보이는 캐릭터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여성 캐릭터 때문에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가 떠올랐다. <저지대>가우리도 이상한 캐릭터지만 <스토너>의 이디스만큼 괴상망측한 여성 캐릭터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가우리를 이상하다고 해서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혔는데, 숙녀님들, 그래도 가우리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 줌파 라히리는 제임스 설터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빚을 졌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여성 화자로 다시 쓴다면 <저지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의 바스락거림, 취기가 도는 문장은 다분히 제임스 설터를 연상시킨다. 설터나 존 윌리엄스의 문장을 읽을 때면 햇빛 찬란한 바닷가, 황금빛 모래알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듯한 느낌? 혹은 어디선가 짙은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설터의 소설이나 <스토너>를 읽고 우는 것은 슬퍼서라기보단 아름다워서다.

이런 아름다움이 결국엔 소멸할 운명이라는 자각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극복할 수 없음에

눈물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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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6-03-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고 있는데 너무 사실적인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들어내는것 같아 왠지 불편한중에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스토너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볼까 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읽으며 멘붕이었어요 ^^;

징가 2016-03-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긴 한데 좀 기분더럽다는느낌이라 할까요? 저도 전형적인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닌가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벗어난 생각에 이리도 불편해하니

시이소오 2016-03-03 12:35   좋아요 0 | URL
잔혹동화죠. 잔혹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감히 현실보다 잔혹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게 더 잔혹한 일인지도 모르죠. ^^;;

2016-03-0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히 <저지대>를 읽었는데 가우리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스토너>의 이디스는 결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여자라는 기억이 생생한데요...

시이소오 2016-03-03 12:39   좋아요 0 | URL
수바시와 우다얀의 여자 가우리요. 여자 주인공. 기억 나실텐데...^^
우다얀이 죽자 다시 수바시와 결혼해 영국으로 가서 딸 벨라를 버리고
철학 교수가 되잖아요.
그럴 수 있다 싶은데도 눈곱만큼의 모성이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불가였어요. ^^

2016-03-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이소오님 설명을 들으니까 떠올랐어요. 저는 훗날 가우리의 선택보다도 남편의 형과 재혼하게 되는 상황이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어요. 시어머니에게도 소박 맞았던 것 같은데 동정도 가고...^^

시이소오 2016-03-03 12:58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화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소설 같습니다.
객관적 화자였다면 가우리는 남편이 죽자 남편 형(시아주버니)을 꼬셔 다시 결혼해 인도를 탈출,
영국으로 가자 딸과 남편을 버리고 도망친 나쁜 년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가우리를 사랑한 수바시는 `공사`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




2016-03-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바시가 침착하고 온정적인 화자였던 것 같기는 해요. ^^

시이소오 2016-03-03 15:17   좋아요 0 | URL
수바시나 스토너나 둘 다 스토아적인 캐릭터네요 ^^

2016-03-0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말에 공감이 가요. 스토아적인 캐릭터. 그 분류군에 들어갈 만한 캐릭터예요 정말. ^^

가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보바리즘적 캐릭터 같고.

시이소오 2016-03-03 15:29   좋아요 0 | URL
가우리는 자칫하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캐릭터죠. 조심하셔야 ㅋ

2016-03-03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조심은 하겠습니다. ^^

2016-03-0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8:06   좋아요 1 | URL
자신이 살기위해 사랑했던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딸을
버려야 했던 선택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수바시와 딸 벨라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신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친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녀의 삶이 단순히 페미니즘적 저항`이라 생각진 않아요. 가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논쟁들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거였죠. ^^;

펠릭스 2016-03-0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내용을 잘 구분하여 써 주셨네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다보면 지금의 한국의 교수사회의 분위기와도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내의 문화가 있는데도요.
그것은 그 조직의 임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5 09:4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스토너를 읽으면서 대학교수도 꽤 매력적인 직업처럼 보였어요. 좋아하는 문학을 가르친다는 게 부럽더라구요^^

singri 2016-03-0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라히리 ㅡ 제임스셜터 읽는중인데 꼬리로 스토너가 연결됐네요 .언제 이런 긴글에 다 읽었다는 꼬리만이라도 올릴수 있길 바래봅니다ㅋㅋㅋ

시이소오 2016-03-05 09:51   좋아요 0 | URL
줌파 라이리, 설터, 스토너 리뷰 기대할께요^^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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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김경이 소설도 썼네.’

냉큼 집어 읽다 여주인공이 상관에게 쓴 사직서 부분에서 허걱했다.

이 책이 서민 박사 <집 나간 책>에 실렸던 게 그제서야 기억났다.

 

우와, 치맨가.

 

처음 소제목 파스칼을 좋아하세요에서 느낄 수 있듯 다분히 보통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사강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또한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꽤 오래전 어떤 분이 내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선물한 적이 있다.

도움이 되실 거예요.”

도움은 젠장. 이 책을 읽으며 아마 울었던가. (, 묻지 마시라. 괴롭다.)

 

그러니까 김경의 첫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심지어 해피엔딩이다. 다국적인 연애질로 유명한 패션 에디터 여주인공이 영혼이 아름다운 남자인 화가를 쫓아다녀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난 김경에 대해 잘 모른다. 정기 구독하는 경향신문 필자들 중 직설화법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을 뿐. (책을 보아하니 그녀의 별명은 경솔이었던 듯. 경솔할만큼 솔직하다고 해서. 김규항도 좋아했는데,.... 아직도 김규항은 노무현, 김대중 욕하느라 바쁜가. ‘비판에 적당한 때란 없다라고 말하는 거 보고 포기했다. 참 정의로우세요. )

 

김경이 패션잡지 편집부장이었던 것도 몰랐다. 화가 남편을 만나 편집부장도 때려치우고 경기도 평창에 손수 집을 짓고 산다니. 그러니까 이 소설은 거의 자전적 소설일 것이다.

 

김경은 사랑을 씨줄로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 음악들을 날줄로 엮어간다.

 

친절하게도 김경은 책 말미에 <취향리스트>를 정리해놓았다.

 

20대 때 지인들을 만나면 항상 이 문장을 들려줬다.

 

내가 왜 그때에 있지 않고 지금 있는지

내가 왜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지

무한한 우주 공간의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대충 저런 문구였는데, 대충 우리의 만남은 정말 전율스럽지 않니?’

뭐 그런 뜻을 전달하고 싶었더랬다. 아우, 나의 20대는 소름끼칠 정도로 유치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김경도 파스칼을 좋아했나보다.

 

20대 때 나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에 환장했다. 김경도 좋아했다니!

자꾸 이러면 전화가 걸고 싶어진다는.

 

김경도 존 버거를 좋아한다.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서 정세랑 작가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됐어라고 말했다. (슬그머니 손을 드는 나. 저도 좋아해요^^ ) 나는 존 버거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햄버거를 먹으리라! (물론 나와 마주앉아 햄버거나 뜯어먹을 여자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 정말로 오랜만에 구영탄이란 이름을 들었다. 그런데 고행석 만화 안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나?

 

사랑과 책. 더 바랄 게 없다.

 

(여성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김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패션잡지 기자에 파리, 맨하탄 같은 국제도시를 회사 돈으로 제 집 드나들 듯 할뿐더러, 브래드 피트처럼 좋은 외국 남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 고가의 와인을 퍼마시며 놀아나면서도 결혼은 대화가 통하는 영혼이 아름다운화가랑 하다니! 한 미모하면서 게다가 똑똑하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정말 재수 없어 미쳐버렸을 것 같다.)

 

p.s. To 김경.

 

,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46페이지에 우리 미국이라고 써있더군요.

아시죠? 토크빌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그거 외에 딴지 걸 게 없어 아쉽네요.^^:;


밑줄 그은 문장

 

p5. 예술을 한다는 것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춰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나라 없는 사람> 중에서, 커트 보네커트.

 

p15.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시작된다. (파스칼, 팡세)

 

p18. 결국, 샤넬과 에르메스일 수밖에 없는 거야. 연애는 수많은 백이나 이름 모를 백들과 하고 결혼은 샤넬이나 에르메스와 해야 하는 거지.

 

P21.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으면 찾으러 나서야 한다. ’ - 스칼렛 요한슨

 

p32. 제가 재탄생이라는 표현을 쓴 건 랭보의 영향때문일 겁니다. ‘허튼소리인가 하는 산문시에서 그랬거든요. 자기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은 재창조해야 하는 것인데 여자들은 안전한 자리밖에 원하지 않는다고.

 

P59. 존이 그러더군요. ‘문명과 도시화가 인간의 근원적 공간인 집을 와해시키자 영원히 떠돌게 된 우리에겐 오직 사랑만이 소중해졌다

 

P64. 그래서 레너드 코헨이 이렇게 노래했나? ‘모든 것엔 금이 가 있다. 빛이 거기로 들어온다.‘

 

P71. 샤토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죠? 보르도에는 포도밭은 소유한 대형 양조장이 많은데 그걸 샤토라고 부르고, 부르고뉴에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매우 작은 양조장이 대부분인데 그걸 도멘이라고 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르도를 회사의 와인이라고 하고, 부르고뉴를 농부의 와인이라고 합니다.

(명색이 조니워커 스쿨 졸업생인데 전혀 생소하다! 스쿨인데 술만 쳐 마셨으니!! )

 

P73. 그거 알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로 온 쇼팽이 별천지 같은 파리의 밤을 처음 체험하면서 작곡한 음악이 바로 녹턴이라는 거? 그러니까 밤의 신비로움을 음악으로 옮긴거지.

 

P83. 카텔란은 비극을 안다고 할까요? 얼핏 어릿광대처럼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이 세상이 품은 온갖 비극에 연민을 품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아류는커녕 되레 뒤샹을 뛰어넘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84. 삶은 인간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고 또 인간은 삶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네. 그러나 인간의 취향, 성향, 사람의 리듬은 바꿀 수 없어. - 산도를 마라이 <열정> 중에서.

 

같은 리듬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전 생애를 허비하기도 한다.

 

P99. 네르발이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는데 파란 리본에 가재를 묶어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다녔어. 애완동물에 대한 기존 관념에 순응하기 싫었던 거지. 그걸 보고 사람들이 그를 괴물 취급했겠지?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어.

 

왜 개는 괜찮은데 가재는 우스꽝스러운가? 도대체 무슨 상관 인가? 나는 가재를 좋아한다. 가재는 평화롭고 진지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개처럼 짖지 않고 사람의 귀중한 사생활을 갉아먹지도 않는다. (영화 <랍스터>도 네르발의 가재의 인용인걸까)

 

P119. 게다가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대부분 잃어버렸어.

 

P125. 제가 웃긴 얘기해 줄까요? 말더듬이 협회의 표어가 뭔지 아세요?

우리가 말할 때 끄끄끄끄 끝까지 들어 줘래요.

 

P129.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신문 기자들은 오직 그날그날만을 생각하고 되는 대로 쓰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한 적이 있다고요.

 

P151.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P160.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중에서

 

P168.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중에서.

 

P186.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 커트 보네거트

 

P190. 너무도 우아하고 감각적인 편집 레이아웃으로 잡지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전설거인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그가 만든 <하퍼스 바자>의 어떤 페이지들은 지금 봐도 깜짝 놀랄만큼 신선하고 우아하다.

 

P191. 하긴 쇠렌 키에르케고르도 <유혹자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놀라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P211. 삶에 대한 자세는 본질적으로 순진무구함과 용기, 이 둘뿐이다. 나머지는 거기서 뉘앙스만 약간 다르다. 어리석음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둘 중의 하나뿐이다. - 에밀 시오랑

 

P242. 최종 결정권자로서 개인적인 일로 마땅히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데드라인에 당신은 7시간씩 부재중인 채 행방이 묘연했던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어떠한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P267. 존 버거

죽는 날까지 오직 한 작가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영희는 기꺼이 존 버거를 선택할 것이다. 존 버거 전작주의를 지향하는 영희가 추천하는 작품은 <여기, 우리 만나는 곳>

 

P270. 산도르 마라이 와 열정

소설가 이신조는 인생의 어느 밤, 산도르 마라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P271. 모조소년의 ‘La Rosa’

 

3호선 버터플라이의 <사랑은 어디에>

아마츄어 증폭기의 <금자탑>

 

p275.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나의 원천이 <안과 겉>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선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빈곤은 나로 하여금 태양아래에서라면, 그리고 역사속 에서라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p277 웨스 몽고메리.

웨스 몽고메리의 첫 번째 앨범 <The Incredible Jazz Guitar>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재즈기타 앨범으로 손꼽히고 오늘날 재즈기타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팻 맨스니나 조지 벤슨 같은 이들도 가장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으로 웨스 몽고메리를 뽑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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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단 찜! ㅅㅅ

시이소오 2016-03-02 17:38   좋아요 0 | URL
저를 ? ㅎㅎ ^^;;

cyrus 2016-03-0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대표작 이름이 `미국의 민주주의`라서 저자를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순간, 저도 헷갈렸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2 20:23   좋아요 0 | URL
잠깐 한눈팔다 보면 헷갈릴만 하죠^^
 
철학의 위안 - 라틴어 원전을 충실하게 완역한 탁월한 정본
보에티우스 지음, 이세운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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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티우스는 6세기 초 로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510년부터 콘술(흔히 말하는 집정관)을 지냈으며, 이후 로마 장관직과 행정관장을 지냈다. 523년 동로마 황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알비누스를 변허하다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가 죽기 전 옥중에서 쓴 책이 바로 <철학의 위안>이다.

 

보에티우스는 꽤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들을 남겼다. 수학, 신학, 음악, 천문, 철학, 번역서, 주석서 등등. <철학의 위안>은 굉장히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대화체라는 점에선 플라톤의 대화편을 떠올리게 한다. 시와 산문이 섞여있는 형태의 문학은 매니포스 풍자문학에서 유래한다고.

 

보에티우스는 옥중에서 철학을 연상시키는 여신을 만난다. 여신은 보에티우스를 위로하던 무사(뮤즈)여신들을 내쫓고는 자신이 보에티우스를 치유하기를 자처한다. 보에티우스는 누명을 쓰고 갇힌 자신을 한탄한다. 여신은 철학을 통해 보에티우스를 위로한다. 보에티우스는 철학에게 복종한 댓가가 고작 모함에 의해 명예가 실추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냐며 여신에게 항의한다. 보에티우스의 슬픔, 분노, 탄식이 너무 깊어 철학은 가벼운 치료제를 사용하기로 한다. 치료하는데 적당한 방법을 찾기 위해 철학은 보에티우스에게 여러 가지 짧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 세상이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지, 이성의 규칙에 의한 것인지, 신이 있다고 믿는지. 신에 의해 다스려진다면 어떤 통치 원리로 다스려지는지, 세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연의 의도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인지.

 

철학은 보에티우스가 과거의 운명에 대한 미련과 갈망 때문에 스스로를 소진시킨다고 진단 내린다. 사실 보에티우스는 당시 최고위층이었다가 모함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형수의 위치로 전락했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철학에 따르면 운명은 보에티우스에게 적대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운명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다. 운명의 굴레에 일단 목을 걸었다면, 운명의 영역으로 무엇이 들어오든지 평정한 마음으로 견뎌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운명의 바퀴를 잡으려는 시도는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매한가지다.

 

철학은 또한 그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한탄하지 말고 (애초에 가진 것도 없었다) 즐거웠던 경험, 행복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라고 충고한다. 철학의 입장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이란 운명 안에서,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 속에. , 권력, 명성 등은 우연적이고 외부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철학은 운명이 호의적일 때 보다는 적대적으로 보일 때 오히려 더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행운은 우리의 정신을 옭죄게 하지만 불행은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보에티우스는 탄식에서 벗어나 기운을 회복하고 철학에게 참된 행복을 간구한다.

 

철학에 의하면 참된 행복이란 bonum, 선이다. 모든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는 최고선이다. 에피쿠로스는 재산, 명예, 권력, 영광, 쾌락 등울 최고선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것들 역시 인간 외부에 있어 일시적인 것이다. 부자들은 행복할까? 철학의 입장에선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결핍을 두려워한다. 권위는 어떨까?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권위, 명예를 누린 자들 중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이가 수두룩하다. 세네카 역시 네로에게 재산을 바치고 관직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결국 황제암살 모함을 뒤집어쓰고 독배를 들이마셨다.

 

보에티우스가 재산, 명예, 권력, 쾌락 등이 진정한 행복에의 길이 아님을 인정하자

철학은 이제 최고선의 가르침을 펼친다.

 

최고선의 원천은 신이다. 완전한 선이 참된 행복이므로, 참된 행복은 최고의 신 안에 있어야 한다.

 

최고선을 추론하는 3권이 <철학의 위안>의 핵심인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철학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2권까지 읽어도 충분히 철학의 위안을 느낄 수 있다. 기껏 위안을 얻었는데 3권을 읽으며 고뇌에 싸일 필요는 없을 듯)

 

신이 존재하며 그것이 존재한다면 악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추론들은 내 지력으로 이해 불가능하다. 관심도 없고. 궤변 속으로 빠져든다.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악인들의 능력은 힘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없음에서 나온다고?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악은 이신교가 아닌 유일신교에서 가장 설명하기 까다로운 문제여서가 아닐는지. 단지 악인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5권에선 우연성과 필연성,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다.

신에 의해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면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몰랑. 이것도 일단 패스.

 

철학으로 위로받으려 했지 지혜를 간구한 것은 아니기에.

 

 

밑줄 그은 문장

 

p28. 이 옷의 맨 아랫단에는 희랍 문자 Π, 가장 윗단에는 Θ가 수놓아져 있었고 두 글자들 쪽을 향해 사다리 문양이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p36. 그러니 혹시 우리가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의 바다에서 몰아치는 폭풍으로 인해 고난을 겪는다고 해도 놀랄 것은 없다. 극악한 자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 우리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p37. 가련한 자들은 어찌하여 잔혹한 폭군들이

절제하지 못한 채 광분하는 데 그토록 놀라는가?

무언가를 희망하지도 무언가를 두려워하지도 마라.

그러면 너는 저 난폭한 자의 분노를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거늘

 

p44. 그러니 당신의 무리들 중 누군가가 정당하게 물었었지요.

만약 정말로 신이 있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신어 없다면 선은 어디서 오는가?’

 

p49.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모든 것을 조종하는 당신은

오직 인간들의 행위에서만은 마땅한 제재를

가하지 않으십니다. 지배자시여,

어찌하여 불확실한 운명은

그토록 크게 바뀌는 것입니까?

죄인이 받아야 할 처벌은 결백한 자들에게 내려지는데,

그릇된 습속은 높은 옥좌에 앉아 있고

사악한 자들은 부당한 운명으로 고귀한 자들의 목을

짓밟고 있습니다.

빛나는 덕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지고

정의로운 자는

적들이 덮어씌운 죄를 견디고 있습니다.

거짓된 구실로 꾸며진 속임수도,

어떤 거짓 맹세도 저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기꺼이 힘을 사용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저들,

저 위대한 왕들까지도 속이기를 기꺼워합니다.

 

p51. 나는 상아와 유리로 벽이 장식된 서재를 찾는 게 아니라

네 정신의 창고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나는 책이 아니라 책들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한때 나의 것이었던 책 속의 생각을 모아 놓았으니.

 

p61. 너는 운명이 너를 적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의 법칙이며 본성이다.

 

p63. 모든 필멸하는 것들 중에 가장 어리석은 자여, 운명이 머무르려 한다면 그것은 운명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p69. 그런데 그때 즐거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유로 네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슬픈것들이라 생각되는 것들 역시 사라질테니 너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혹 너는 삶이라는 무대에 지금 처음 발을 들인 방문객으로 온 것이냐?

 

p71. 저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유지되기 힘들다면,

그처럼 자주 변화한다면,

인간의 운명이 사라질 것임을 알며

부가 금세 지나가 버릴 것을 알지어다.

생겨난 것은 그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은 채 머무르지 못한다.

이는 영원한 법을 통해 굳게 자리 잡았으니

 

p73. 나는 너의 행복에 뭔가가 빠졌다고 그렇게 슬퍼하고 걱정하며 불평하는 네 자만심을 참을 수가 없다. 대체 누가 어느 모로 봐도 자신의 처지에 불평할 게 없을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이냐?

사람들 각각에게는 겪어 보지 않은 자는 모르고 겪어 본 자는 두려워하는 뭔가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또한 가장 행복한 자들의 생각은 대단히 연약한 것이어서,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불행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모두 아주 작은 일들에 쓰러진다.

 

p74. 내가 너에게 가장 큰 행복의 으뜸이 무엇인지 간략히 보여주마. 너에게 너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네가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면 너는 절대 버리고 싶지도 않고 운명이 앗아갈 수도 없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연적인 일들 안에는 행복이 영속할 수 없음을 알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보아라. 만약에 행복이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본성의 최고선이고, 최고선은 어떤 식으로든 빼앗길 수 없는 것이라 해 보자.

 

p78. 사물의 본성상 네 것이 아닌 것들을 운명이 네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p80. 인간 본성은 자신을 알 때, 그때에 다른 사물들보다 그만큼 뛰어나지만, 만약 자신을 알기를 포기한다면 짐승들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성에 속하는 것이나 인간에게는 악덕이 되는 법이다.

 

p91. 1만 년이라는 시간은 소위 망누스 안누스(Magnus annus) 혹은 태년이라 불리는 것으로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개의 행성이 우주가 처음 생겼던 당시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인 12,954년을 의미한다. 이 역시 키케로가 <국가론> 스키피오의 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p94. 운명은 호의적일 때보다는 적대적일 때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운명은 매력적으로 보일 때 행운의 모습으로 속이지만, 변화로써 항구적이지 않음을 보여줄 때는 항상 진실하기 때문이다. 운명은 행운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불행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행운은 거짓 선의 위장된 모습으로 행운을 즐기는 자들의 정신을 옭아매고, 불행은 깨지기 쉬운 행운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준다.

 

그러니 행운은 바람처럼 흘러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항시 그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만, 불행은 경고를 하며 명쾌하여 그 불행의 단편을 통해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마지막으로 행운은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참된 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지만 불행은 대부분 갈고리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참된 선으로 돌아오게 이끈다.

 

한때 거짓된 행복을 바라던 나도

네 목에서 멍에를 벗어 버려라.

그리하면 참된 행복이 네 마음에 깃들 것이니.

 

p141. 분명 만물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선이라 결론을 내렸으니 만물의 목적이 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p. 164. 하나인 모든 것은 하나 그 자체이자 선이라고 조금 전에 내가 가르쳐주었다. 그 결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또한 선이라 여겨지게 된다. 그러니 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무엇이든 존재이기를 멈추게 된다. 따라서 악한 자들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에 존재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 형태가 남아있어서 그들이 과거에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악으로 돌아선 그들은 인간의 본성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오직 선함만이 누구든 인간을 넘어서도록 이끌 수 있기에 필연적으로 악함이 인간의 조건에서 떼어놓은 그들을 인간의 가치 아래로 몰아간다. 따라서 네가 누군가 악덕으로 인해 그 모습이 변한 것을 보는 경우, 너는 더 이상 그를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좋음을 버리면 그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신의 상태로 건너갈 수가 없기에 짐승과 같은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p173. 육체의 병처럼 악함이라는 것이 소위 정신의 병이라면, 우리는 몸이 아픈 이들이 미움이 아닌 동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병보다도 지독한 악함으로 인해 정신이 고통받는 자들은 비난이 아니라 더 큰 동정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다.

 

p178. 모든 사물들의 탄생과 변화하는 자연의 모든 진보,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는 것이라면 원인, 질서, 그리고 형상을 신의 정신의 항상성으로부터 얻는다. 이 항상성은 단일성이라는 성채 안에 놓인 것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들에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 방식이 신의 저 순수한 지성 안에서 인식될 때 그것은 섭리라고 불리지만, 그 방식이 움직이고 배치하는 것들과 관련될 때 선조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불렀다.

 

섭리는 모든 것이 아무리 다르고 아무리 무한하다 해도 그것들을 동일하게 포괄하지만 운명은 장소와 형태, 시간에 배정된 각각의 것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적인 질서의 전개가 신의 정신의 통찰과 하나가 되는 것이 섭리이며, 그 합치가 시간에 따라 나눠지고 전개되는 것이 운명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p190. 사실 덕을 키워 가는 단계에 있는 너희는 사치로 방종하지 않고, 쾌락으로 시들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너희는 온갖 운명과의 전쟁을 영혼과 함께 격렬하게 치르고 있으니 이는 슬픈 운명이 너희를 짓누르거나 즐거운 운명이 너희를 타락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굳건한 힘으로 중용을 지켜라.

 

아래에 머물러 있거나 위로 나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행운으로부터 경멸을 받을 뿐 고난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법이니까. 왜냐하면 너희 스스로 어떠한 운명을 만들고자 하는지는 너희의 손에 달려 있으며, 역경으로 보이는 모든 운명은 단련이나 교화의 목적이 아니라면 처벌을 그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어떠한 일을 위해서 행해졌는데 원래 목적했던 바와는 다른 것이 어떤 원인들로부터 생겨날 때 우연이라고 한다. 이는 밭을 갈려고 땅을 파다가 깊이 묻힌 금덩어리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p198. 그러니 우연이란 다른 목적으로 행해진 일들에 여러 원인들이 합쳐짐으로써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인들을 만나고 합쳐지게 만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합과 함께 진행되는 저 질서이며 질서는 섭리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와 모든 것을 제자리와 제때에 맞게 배치한다.

 

p202. 예견되는 일들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들이 필연적으로 예견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어떤 일의 원인이 무엇인가, 즉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아는 것이 필연성의 원인인가.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필연성이 섭리의 원인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p211.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이유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오직 인식되는 것들 자체의 힘과 본성에 의해 인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완전히 반대다. 인식되는 것은 모두 그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인식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파악되기 때문이다.

 

p219. 어떠한 미래도 부재하지 않고 어떠한 과거도 흘러가버리지 않는 바로 그것이 영원함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자신의 주인으로서 필연적으로 항상 자신에 대해 현존하며, 무한히 움직이는 시간을 현재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p222. 만약 신의 현재와 인간의 현재를 비교해도 된다면 너희가 너희의 시간에 속하는 현재 안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신은 자신의 영원한 현재 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의 예지는 사물들의 본성과 고유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시간 안에서 언젠가 미래의 것들로 일어날, 그러한 현재의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p223. 만약 섭리가 어떤 것을 현재적인 것으로 본다면, 비록 그것이 본성상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해도 그것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신은, 의지의 자유로부터 나오는 저 미래의 것들을 현재의 것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이 신의 시선에 들어오면 신의 인식으로 인해 만들어진 조건을 통해서는 필연적인 것들이 되지만, 스스로 고찰될 때는 고유한 본성의 절대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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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um 2016-03-0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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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3-01 11: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