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김용규는 <백만장자의 질문>이란 책으로 재벌에 부역하고 혹세무민하였으므로 별점을 깍는다.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바야흐로 생각의 시대다. 생각은 범주화 능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초창기 그리스로부터 생각의 도구들을 고찰한다. 메타포라, 아르케, 로고스, 아리스모스, 레토리케.
메타포라, 은유. 1차적 은유는 유사성에 근거한다. 2차적 은유는 비유사성에 근거한다. 유사성을 통한 은유를 통해 우리가 기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면 비유사성을 통한 은유를 통해선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유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시를 읽고, 낭송하고, 암기하는 일은 우리의 뇌 안에 은유를 창출하는 새로운 신경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다.
원리, 아르케를 만들기 위해선 관찰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관찰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원리 창조의 출발이다. 뛰어난 관찰자들은 전부 드로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드로잉도 배워야겠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식, 가추법이다. 가추법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은 포나 크리스티, 코난 도일의 탐정 소설을 읽는 것이다.
로고스, 문장. 통사론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정신의 패턴을 배우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필사를 해야 하는 이유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드는 것이다.
아리스모스, 수. 수 역시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이용하는 사고체계다. 예를 들면 피보나치 수열 ( 1,1,2,3,5,8,13,21,34,55,89,144,233,377....)은 숫자가 커질수록 황금비율에 수렴한다. 혹은 복잡한 자연 현상들을 이제는 프랙털 공식으로 수식화 할 수 있다.
레토리케, 수사. 포스트 모던 시대, 바야흐로 설득의 시대다. 오늘날의 광고는 전부 고대 수사학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가 고전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시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지 깨달았다. 범주화 능력이 딸리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비유사성에 근거한 은유들 앞에선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 속에 ‘메타포라 로드’를 깔아야겠다.
시 읽기, 드로잉 연습하기, 탐정 소설을 포함한 소설, 인문학 고전들을 꾸준히 읽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
밑줄 그은 문장
p12. 이 책에서는 일찍이 축의 시대에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개발한 메타포라, 아르케, 로고스, 아리스모스, 레토리케가 바로 그것이다.
p32. 1972년에 생리학 및 의학 부문 노벨상을 수상한 뇌신경과학자 제럴드 모리스 에덜먼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에서 인간의 의식을 ‘1차적 의식’과 ‘고차적 의식’으로 구분했다. 각각 하위 의식과 상위 의식이라고도 한다.
p33. 에덜먼은 “사고는 가장 높은,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기호적인 능력에 의존하는 하나의 기예다”라고 정의했다. 이 기예에는 논리학, 수학, 언어, 공간적 기호, 음악적 기호 등이 사용되며, 은유적인 과정, 환유적인 과정의 기원도 필요하다.
p35. 고차적 의식은 언어와 기호를 통해서 만들어지며, 이 의식에 의해 인간은 비로소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관념을 갖게 된다. 이 관념으로 수학적 계산과 논리적 추론을 하고, 자기 자신과 세계를 모형화한다. 거구로 말하자면, 언어적 사고에 의해 형성되는 고차적 의식이 없으면 인간도 마치 동물처럼 시간관념도, 수리 논리적 추론능력도, 역사의식도, 심지어는 자기의식 마저도 갖지 못한다.
p37.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다.
p39. 로렌스는 울리의 옥스퍼드대학교 후배였지만 나중에 아랍의 독립 전쟁에 참가해 영웅이 된 인물이다. 훗날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만큼 용기와 패기에 넘친 이 젊은이는 자전적 에세이 <지혜의 일곱 기둥> 머리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몹시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활짝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행동한다. 그렇다. 나는 낮에 꿈을 꾸었다.
p43. 우르 남부법의 일부를 찾아 해독해낸 사람이 나왔다. 펜실베니아대학교의 고고학 교수 새무얼 노아 크레이머다. 그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미 쐐기문자를 발명하여 사용했고, 상하 양원으로 구분된 의회를 구성하여 통치했다. 또 기원전 2500년경부터는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학교를 세워 자식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p53.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제1차 지식 폭발이 일어난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를 “축의 시대”라고 처음으로 이름 붙였다.
이때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공자, 노자, 장자, 맹자, 순자, 묵자, 열자 등을 비롯한 제자백가가 나왔다. 인도에서 우파니샤드가 이루어졌으며 부처가 생존했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등장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엘리아, 이사야, 예레미야, 하박국, 다니엘 등의 선지자들이 나왔다.
그리고 서양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 아르킬로코스, 사포, 핀다로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디스와 같은 시인들이 활동했고,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헬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p55. 축의 시대를 거치면서 (달리 말해 자연과 도덕의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인간은 드디어 ‘이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인간의 전체적 변혁을 야스퍼스는 ‘정신화’라고 이름 붙였다.
p57. 한마디로 보편성을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을 맨 처음으로 깨달은 인간이 축의 시대 사람들이었다.
이후 동양에서는 보편성을 도 또는 법, 이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로고스라고 이름 지었다.
p58.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 아르케
탈레스의 물, 아락시만드로스의 문한자,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피타고라스의 수,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파르메니데스이 존재,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소크라테스 – 아레테, 덕.
p83. 정리하자면, 그리스의 자연적, 역사적 환경이 폴리스라는 정치적 제도를 낳았다. 그것이 토론과 논쟁에 몰두하는 사회, 문화적 환경을 조성해, 생각의 도구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이 경이로운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민주주의를 일구어냈다.
p88. 서양의 유아들은 ‘소’와 ‘닭’처럼 ‘명사’로 표현되는 대상에 집중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고, 동양의 유아들은 ‘소는 풀을 먹는다’에서처럼 ‘먹는다’라는 ‘동사’로 표현되는 관계에 관심을 갖도록 교육받고 자라기 때문이다. 니스벳은 이 같은 차이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이라는 상징어를 통해 제시했다. ‘개별적 사물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서양인’과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동양인’의 차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차이가 동서양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차이에서 나왔다는 것을 역설했다.
p90. 해밀턴이 보기에는 이것이 동양에서는 학문이 아니라 종교가 발달한 이유인데, 인도에서는 현실 부정이, 이집트에서는 죽음이 곧 종교였다. 우파니샤드 철학이든, 불교이든, 인도에서는 현실은 환영이고 윤회가 진리다. 피라미드이든, 미이라이든, 조각상이든, 화화이든, 이집트의 모든 예술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고 내세를 위한 것이다. 이에 반해 그리스에서는 모든 예술과 학문이 삶과 연관되어 있고 현세를 위한 것이다.
p105. 수많은 실험과 관찰을 거쳐 윅스퀼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자기 자신이 가진 행동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인지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범주화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해 그 안에서 산다. 윅스퀼은 이렇게 동물들이 범주화를 통해 스스로 구성한 가상의 세계를 ‘환경세계umwelt’라고 불렀다.
p108. 같은 의미에서 마투라나는 ‘함’이란 ‘세계를 내놓는 행위’이고, ‘앎’이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또 각각을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라고 다르게 표현도 했다. 그렇다면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라는 나투라나의 아포리즘은 우리가 ‘그렇게’ 행위하여 세계를 범주화하면 세계가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나고,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면 우리가 세계를 ‘그렇게’ 범주화하는 행위를 한다는 뜻이 된다.
p.123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에 의하면, 당시 ‘시인’을 가리킬 대 사용한 용어가 ‘가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오이도스’다.
p128. 호메로스는 이야기 전체에서 주제에서 끼워 맞추어지는 것만을 작품에 담고, 그 밖에 모든 것들은 간략하거나 아예 생략했다. 호메로스의 이러한 작품 스타일 덕분에 나중에 서양 문명의 본질까지 발전한 사고, 즉 ‘개별적인 사실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이끌어내는 사고’가 그리스에서 맨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p134. 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는 “모든 위대한 작품은 <일리아드>이거나 <오디세이아>다.
p138. 그러므로 그 인간 종을 ‘호모사피엔스 나란스’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호모사피엔스의 다른 종과 호모사피엔스 나란스를 구분해 주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기본적 ‘지혜’의 원천인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 집단의 능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포라, 은유
p152. 은유는 첫 번째 생각의 도구이자, 이어서 살펴볼 다른 생각의 도구들의 근간이다. 은유는 생각이지만 다른 모든 생각들을 만드는 생각이다.
p154. 레이코프와 존슨은 <삶으로서의 은유>에서뿐 아니라 <몸의 철학>에서도 ‘시간은 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회, 문화적 은유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두 저자는 그것들이 우리의 사고와 언어에서 원초적이고 근본적이라는 이유에서 ‘1차적 은유’라고 이름 붙였다.
p156. 레이코프와 존슨이 “은유의 본질은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한 것도 그래서다.
p158.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원관념의 본질을 드러내고, 비유사성을 통해 의미의 변환 내지 확장을 창조해낸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은유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이다.
p160. 독일의 고전문헌학자 브루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어의 은유적 표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은유는 그 기능성과 관련하고 있든가, 아니면 인상의 유사성과 관련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동사를 통해 나타나는 동작이거나, 혹은 형용사를 통해 나타나는 속성과 관련하고 있다.
p169.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가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p171. 그렇다면 우리가 시를 읽고, 낭송하고, 외운다는 것은 단순히 감성적 취향을 고양시키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뇌 안에 은유를 창출하는 신경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이다.
p175. 그렇다, 이것이다! 자기가 전하려고 하는 내용을 이미지화하는 것! 알고보면 바로 이것이 시인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뛰어난 사상가, 종교인, 정치가, 웅변가난 문장가들이 가장 즐기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비법이다.
p186. 일반화와 추상화는 모두 대상들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찾아냄으로써 이루어지지만, 그 가운데 추상화가 모든 창의적 작업의 산실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추상화란 간단히 말해 ‘복잡한 대상 또는 대상들에서 단 하나의 공통된 특징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함으로써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는 작업’이다.
제2장 아르케, 원리.
p 198. 탈레스는 자연의 뒤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파악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자연적 원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관찰과 실험, 그리고 사고를 통해 그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p205. 만물의 근원을 탈레스가 물, 아낙시만드로스가 무한자, 아낙시메네스가 공기,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은 각각 물의 ‘생명력’, 무한자의 ‘포괄성’, 공기의 ‘가변성’, 불의 ‘역동성’ 등과 같이 그것들이 가진 보편적 성질 내지 원리를 의미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p209. 관찰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원리 창조의 출발이다.
p212. 흥미로운 사실은, 뛰어난 관찰자들은 단순히 글로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 외에 드로잉, 곧 그림 기록의 중요성을 입을 모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상을 직접 그리는 과정에서 더욱 세밀한 관찰과 풍부한 발견,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p227. 이 탐구방법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석론 전서>에서 아파고게라고 불렀고,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가 가추법 또는 귀환법, 가설, 추정 등으로 경우에 따라 다르게 불렀던 추론법이다. 퍼스에 의하면 “가추법은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만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이다.”
p232.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것이 핸슨이 <과학적 발견의 패턴>에서 정리한 형식이다. 핸스에 따르면 가추법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정리된다.
관찰을 통한 어떤 특정한 현상 p를 알았다.
그런데 만약 H가 참이면 P가 설명된다.
따라서 H가 참이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P238. 가추법의 형식화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지만, 그중 가장 간단한 것이
‘((p→q)∩q) → p’이다. 고전논리학에서 보통 ‘후건긍정식’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형식을 위헤서 소개한 핸슨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만약 p가 참이면 q가 설명된다. 관찰을 통한 어떤 특정한 현상 q를 알았다. 따라서 p가 참이라는 가설이 가능하다’가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언어로는, 예컨대 ‘비간 오면 땅이 젖는다. 땅이 젖었다. 그러므로 비가 왔다.’
와 같은 추론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후건긍정식은 잘 알려진 대로 형식적 오류에 속한다. 이른바 후건긍정의 오류다. 이 말은 모든 가추법은 논리적으로 그것의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p240. 로널드 기어리는 <학문의 논리>에서 가설연역법에 따른 사고가 과학 이론을 세우는 데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능력을 기르고 일반적 과학 교양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가설연역법을 손쉽게 실행 및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틀을 제시했다. 1. 현실세계, 2 모델, 3 예측, 4, 자료, 5 부정적 증거, 6 긍정적 증거로 이어지는 이른바 ’6단계 프로그램‘이다.
p243. 예를 들어 “땅(지구)은 어떤 것에도 떠받쳐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으며, 모든 것들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다”라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잠언도 바로 가추법에 의해 얻어졌다.
20세기를 풍미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도 <파르메니데스의 세계>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이 같은 생각은 인간의 전 사상사 중에서 가장 대담하고, 가장 혁신적이며, 가장 놀라운 생각 중 하나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제 3장. 로고스, 문장
p261.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문장은 이처럼 언어의 한 특별한 형태다. 로고스로서의 문장은 사물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라는 성격뿐 아니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논증적 특성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p268. 그런 가운데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인의 알파벳에서 자음을 들여오고 거기에다 모음을 위한 이런저런 기호들을 빌려다 자신들의 알파벳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에서 a라는 모음으로 사용되는 문자 알파는 페니키아에서 ‘황소’를 뜻하는 ‘알레프aleph’였다.
p269. 폴리스의 형성, 알파벳의 완성, 그리고 이성의 출현 등 이 세가지의 문명사적 사건이 거의 같은 시기에 상호보완적으로 일어났다.
p270.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무한자apeiron는 우선 시간적으로 “형성된 것도 아니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죽음도 쇠퇴도 모르고”, 따라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어떤 것이다.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광대무변하여 크기를 측정할 수 없으며, “우주 만물을 자신 안에 포괄하는” 그 어떤 것이다. 따라서 만물이 그 안에서 생겨나 그 안으로 돌아가는 무한자는 “신적인 것으로서 만물을 포괄하고 횡단하며 보호하고 조종”한다.
이 개념이 우선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의 일자라는 개념의 기원이 되었다.
p271. 아낙시만드로스가 산문으로 책을 썼다는 것은 하나의 문명사적 사건이다.
p281. 헤라클레이토스가 설파한 로고스가 곧 하이데거가 말하는 언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하이데거, 두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로고스를 먼저 듣고, 그것을 따라서 생각하고, 따라서 행동하고 따라서 말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유이고, 행동이고, 언어다.
진리는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산다. 언어가 진리의 집이다.
p284. 정관사 ‘to’가 ‘to psuchron(차가운 것), ’to noein(생각하는 것)‘ 등과 같이 추상화를 위해 쓰인 것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와서부터다.
p286.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정관사 ‘to’를 사용하여 ‘형용사적인 것 혹은 동사적인 것을 개념적으로 확정“하는 어법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이 어법이 ’헤라클레이토스 스타일‘이자 그의 탁월한 업적이다.
p287. 헤라클레이토스 스타일은 이런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문장의 범위를 확정하여 삼단논법을 만드는 것을 도왔고, 멀리는 현대 논리학에도 기여했다.
p299.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문장의 기본 형식으로 규정한 ‘A는 B이다’라는 형식을 네 가지로 확장했다. 현대 논리학에서 양화사라고 부르는 ‘모든’과 ‘어떤’이라는 한정사를 도입한 것이다. 그 결과 문장은 ‘모든 A는 B이다.’ ‘모든 A는 B가 아니다.’ ‘어떤 A는 B가 아니다.’ ‘어떤 A도 B가 아니다.’라는 형식을 갖게 되었다. 차례로 전칭긍정판단, 전칭부정판단, 특칭긍정판단, 특칭부정판단이라 부른다.
예를 들자면,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는 전칭긍정판단이고, ‘모든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는 전칭부정판단, ‘어떤 인간은 동물이다’는 특칭긍정판단, ‘어떤 인간도 동물이 아니다’는 특칭부정판단이다.
P320. ‘누가 –언제-어디서-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은 우리의 정신이 자신의 내면에 자연과 사물의 질서에 합당한 세계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말들이다.
재4장. 아리스모스, 수
335. 우연히도, 대장간의 망치들은 각각 6파운드, 8파운드, 9파운드, 12파운드였다. 화성학에 의하면 두 망치의 무게 비율이 1:2 (6파운드와 12파운드)를 이루면 학 옥타브 차이가 있는 8도 음정을 내고, 2:3 (6파운드와 8파운드/ 9파운드와 12파운드)이면 5도 음정을, 3:4(6파운드와 8파운드, 9파운드와 12파운드)면 4도 음정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만일 한 망치가 ‘도’라는 음을 냈다면, 나머지 망치들은 ‘파’, ‘솔’ 그리고 ‘높은 도’라는 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 ‘솔’은 완전 5도를, ‘도’와 ‘파’, 그리고 ‘솔’과 ‘높은 도’는 완전 4도를 이루지 않는가!
P348.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문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 안에는 1,1,2,3,5,8,13,21,34,55,89,144,233,377등으로 이어지는 수열이 하나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학자들은 이 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부른다.
제 5장. 레토리케 . 수사학.
우리말로는 양도논법이라고 부르는데, 프로타고라스 딜레마의 내용을 살펴보면 왜 그렇게 부르는지를 알 수 있다.
어느날 프로타고라스와 그의 제자 에우아톨로스라는 젊은이 사이에 법정 소송이 벌어졌다. 발단은 프로타고라스가 제공했다. 그가 제자에게 공부를 마치고 난 다음, 만일 첫 번째 소송에서 지면 수업료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공부가 다 끝나자 프로타고라스는 당연히 에우아톨로스에게 수업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영특한 제자는 수업료를 줄 수가 없다고 해서 소송이 벌어졌다. 이유는 이랬다.
“ 위대한 프로타고라스 선생님! 저는 이 소송에서 지든 이기든 수업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번 소송에서 이기면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반대로 제가 지면 선생님과의 약속에 의해서 또한 수업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러자 프로타고라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맞받았다.
“사랑하는 제자여! 그대는 그동안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도다. 그렇지만 그대는 이 소송에서 지든 이기든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한다네. 왜냐하면 그대가 만일 이 소송에서 지면 판결에 의해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이고, 이기면 우리들의 약속에 따라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네. ”
프로타고라스는 딜레마를 물리치는 세 가지의 방법 가운데 ‘반대 딜레마로 되받기’로 에우아톨로스를 상대한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딜레마와 동일한 논리로 정반대 결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딜레마를 만들어 상대를 반박하는 방법이다.
P398. 그럼에도 그(고르기아스)가 <헬레네 예찬>에서 펼친 변론의 뼈대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논증이었다. 그는 먼제 세 가지의 가정을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하나씩 반박해나갔다.
만약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벌인 헬레네의 간통 행위가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면, 인간은 신에게 저항할 수 없음으로 당연히 무죄다. 또, 설령 파리스의 강압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비난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 경우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 파리스이고 피해자인 헬레네는 오히려 동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설득의 말, 곧 로고스에 넘어갔다면 이 또한 무죄이다. 설득의 말이란 신과 같아서 우리가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전제를 부당하게 설정하거나 전제에서 결론의 도출이 ‘느슨한’ 것이 논증적 수사의 특성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고르기아스가 수사를 ‘설득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규정하고 자기가 취하는 입장에 따라 마음대로 휘두른 이유다.
P408. 설득의 여신 페이토는 2개의 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꽃이고, 다른 하나는 칼이다. 하나는 문예적 수사이고, 다른 하나는 논증적 수사다. 나중의 것이 더 강하다. 물론 함께 쓰면 무적이다.
P413. 그리스어로 ‘파라데이그마’paradeigma로 (라틴어로 ‘exemplum’으로) 표기되는 예증법은 예를 근거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수사적 논증이다.
p419. 예로부터 뛰어난 설교자, 연설가, 정치가 그리고 학자들은 평소에 다양한 예들을 수집, 정리하여 필요할 때마다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집’을 준배했다. 그 기원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오르가논’의 제5권 <토피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토피카’ 또는 영어로 ‘토픽’이라고 부른다.
p425. 오비디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너를 간직할 수 있었다. 따라서 너를 잃을 수도 있으리라”라는 시구들 들 수 있다. 이것은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잃을 수도 있다. 나는 너를 간직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너를 잃을 수도 있다‘라는 삼단논법 가운데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잃을 수도 있다‘라는 전제를 생략하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p432. 대증식은 다음에 설명할 연쇄식과 함께 오히려 확장된 ‘복합삼단논법’이다. 이 논증법은 전제 하나하나마다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붙임으로써 설득력을 강화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본구조는 ‘전제 1 – 전제 1 증거- 전제 2 – 전제 2 증거- 결론’,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p434. 이처럼 상당수의 대증식에서는 모범적인 예가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대증식은 삼단논법과 예증법을 결합한 형태의 논증이라 할 수 있다.
p437.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쇄식, 또는 간단히 줄여 연쇄식이라고도 불리는 연쇄삼단논법은 둘 이상의 삼단논법을 모아 하나의 연결체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조하는 논증법이다. 방법은 앞에 전개된 삼단논법의 결론을 다음에 오는 삼단논법의 전제로 사용하여 연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쇄삼단논법의 기본 구조는 ‘전제 1 , 전제 2, 결론 1, 전제 3, 결론 2’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결론1이 결론2의 전제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다.
자석의 코일에 전기저항이 없으면 에너지가 열로 소모되는 일이 없다. 초전도 자석의 코일에는 전기저항이 전혀 없다. 때문에 에너지가 열로 소모되는 일이 없다. 이것은 에너지를 적게 들이고도 강력한 자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초전도 자석의 코일은 에너지를 적게 들이고도 강력한 자장을 유지할 수 있다.
p443. 고대와 중세에는 수사학이 젊은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7학문 (문법, 수사학, 논리학, 음악, 산술, 기하학, 천문학) 가운데 항상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수사학 교육을 정립한 사람은 로마 제정 초기의 웅변가이자 수사학자였던 퀸딜리아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