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 사회학 자체가 자신이 탐색하는 사회세계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야 함을 필사적으로 부인한 결과, 사회학은 자성 능력을 잃어버린다. 사회학이 발견한 사실들은 사소해지고, 전문용어 속으로 이데올로기가 몰래 스며들어 결국은 권력자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 사회학이 초래한 이 결과는 헛발질 irrelevance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도 지속되고 사회학도 지속되지만, 사회학과 세계는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p16. 사회학에 의한 사회학의 구원은 1950년 대 후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는 사회학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구별하면서, 이 둘이 반드시 연결돼 있지는 않음을 보여주었다.

 

p17. 사회학적 상상력은 개인의 삶과 각자의 일대기가 역사적 사건,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 펼쳐지는 동시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책무인 것이다. 또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포부를 품고 있다.

 

p19. 당신을 생각으로 이끌거나 혹은 자극하거나, 괴롭게 하거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떤 것과 마주쳤다면, 그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성과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데 계속 실패하다가도 돌연 인식의 도약을 경험했다면, 당신은 사회학적 상상력의 성과를 경험한 것이다. 당신이 그들이나 혹은 우리에 과한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나와 연관되어 있는 무엇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사회학적 상상력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달성하는 한 사회학은 쓸모가 있다.

 

p20. 반면 정보만을 제공하는 사회학은 쓸모없으며, 사회학이 권력에 팔려간다면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회학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연결하고, 자신의 시대가 자기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평가하는 도구로 채택될 경우 성공적이다.

 

P25. Q: 사회학은 인간 경험과의 대화라고 늘 정의해오셨습니다. 이 정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먼저, 여기서 인간 경험이란 당신에겐 어떤 의미입니까?

 

경험Erfahrung과 체험Erlebnis 모두를 의미합니다. 경험은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면서 나에게 생기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체험은 우리가 세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살면서 내가 겪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체험은 일어난 일에 대한 지각과, 일어난 일을 흡수하고 이해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이 합동으로 빚어낸 산물입니다. 경험은 객관성의 상태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체험은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주관적입니다. 경험과 체험이라는 개념을 다소 단순화하면, 경험은 경험의 객관적인 측면으로, 체험은 경험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옮길 수도 있을 겁니다.


 

p29. 라 보에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런 태도를 자발적 복종이라 불렀지요. 하지만 존 쿳시의 소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의 등장인물인 C는 라 보에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자발적 복종과 이 복종에 대한 반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제 3의 길도 있다. 그것은 무저항, 일부러 세상과 멀어지기, 내면으로의 이민이라는 길이다.”

 

P30 사회학적대화는 무저항을 지지하는 이러한 세계관을 문제 삼습니다.

 

P34. 사회학이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것처럼, 사회학은 또한 윤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윤리적 실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윤리란 곧 실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윤리성은 타자를 향한 책임성에 관한 문제이지요.

 

P35. 책임이란, 회피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떠맡는 것임을 확실하게 합시다..사회학자는 좋든 싫든, 의도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의 직업 활동을 수행하는 동안 윤리 의식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요. 그래야만 윤리적 태도가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또한 타자를 책임질 기회도 늘어나겠지요. 우리는 가능한 범위까지 이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사회학자는 이 길을 탐색하고, 지도를 그려내야 합니다. 사회학자의 임무는 그것입니다.



 

P37.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에서 쿳시의 또 다른 성찰을 상기해보겠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싸우는 쌍둥이에 관한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쿳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 두 집단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적을수록, 그들은 더욱 심하게 서로를 증오한다.”

 

P39. <커튼>이라는 책에서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전설로 짜인 한 마법의 커튼이 세계 앞에 걸려 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여행을 떠나게 하여 그 커튼을 찢도록 하였다.” 쿤데라는 예단Pre- judgement’이라는 커튼을 찢는 행위가 현대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임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현대 예술은 이러한 파괴적 제스처를 끝없이 반복해왔지요. 이 반복을 힘들다 하더라도 무한히 행해져야 하는데, 마법의 커튼은 찢기는 즉시 뒷면에 조각을 덧붙이기 때문입니다.




 

p40. 그는 사전해석preinterpretation의 커튼에 덧대어져 있는 진리를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커튼을 찢어버리는 세르반테스와 같은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지요.

 

예단의 커튼에 구멍 내기는 끝없는 재해석이라는 노고를 요구합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를 면밀히 조사하여 있는 그대로의 희극적 산문 속에서그 모습을 드러내고,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둠으로부터 퍼 올리는 것, 그리하여 사실상 인간의 자유 영역을 확장하고 이 모든 노력을 자유로운 인간성을 구성하는 행위로 드러내는 것과 같은 끝없는 노고 말입니다. 이런 일을 해냈느냐 혹은 실패했느냐에 따라 사회학이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p42. 당신은 특히 오노레 드 발자크, 에밀 졸라, 막스 프리쉬, 사뮈엘 베케트 등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당신은, 만약 사막의 섬에 고립되게 된다면 소설책을 갖고 가기를 원한다고 하시면서, 로베르트 무질, 조르주 페렉,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예로 들었습니다. .....사회학자가 되는 동안 이 작가들의 어떤 점이 당신을 매료시켰나요? 또한 그들은 당신의 사유 방식과 사회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실제의 세상살이에 대한 진리를 추구한다면, 카프카, 무질, 보르헤스, 페렉, 쿤데라, 미셀 우엘벡 등으로부터 힌트를 얻는 것 외에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겁니다.

 

p45. 어떤 명칭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험적으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임을 상기해보십시오...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경험(‘나에게 일어난 일’, 즉 사건의 객관화될 수 있는 측면과 체험(사건이나 상태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반향이자 주관적측면)같은 독일어 개념들 말입니다. 사회학담론에서 흔히 경험과 체험의 구별 부재는 인간 리얼리티에서 생긴 일, 체험된리얼리티를 단순 경험의 조사로 축소시키는 경향을 낳습니다. 그리하여 리얼리티에 대한 이해가 저하되고, 리얼리티의 구체적인 제시도 일그러집니다.


 

p46. 이탈로 칼비노는 <문학의 쓸모>라는 책에서, 픽션 속의 다양한 리얼리티의 차원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진리의 다른 의미나 리얼리티와의 조우를 픽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정말 픽션에도 진리가 있는 것일까요?

 

그보다는 유일신교와 다신교, 혹은 하나의 진리와 복수의 진리라는 의미론적 영역이 보다 적절하고 적합해 보입니다. 아니면 고정되어 있는 진리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진리의 문제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꽉 끼는 보호장비와 느슨한 보호장비, 하지만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인 보호 장비의 대조는 어떤가요? 쿤데라의 설명을 빌려온다면, 커튼을 짜서 리얼리티 앞에 드리우는 것과 커튼을 찢고 통과하는 것과의 차이도 괜찮겠습니다.

 

p50.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은 흔히 데카르트의 오류라고 알려진 부수효과입니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연구자는 주체의 위치를, 연구 대상은 객체의 위치를 지닌다고 암묵적으로 전제합니다. 하지만 즈미예프스키와 메이오의 실험에서 연구 대상들이 실험적인 게임의 공동 참여자임을 알아채는 순간, 그 전제의 가면은 벗겨지고 일축됩니다. 그들은 게임에 매우 중요한 공적인 의미가 부여 되어 있다는 암시에 부합하기 위해, 돌연 자신들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책임감 있게 게임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자신들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되어 있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p53. 사회학은 사회의 리얼리티에 대한 지각을 자크 데리다 식으로 지속적으로 해체하는 일을 수행하는 한 비판적 활동입니다. 혹은 리처드 로티가 정의했듯이 지속적인 캠페인의 정치를 수행한다고도 할 수 있지요.

 

p54. 사회학은 사회의 현재 모습이 충분히 긍정적이지 않다고 자각하고 있기에 지속적인 개선을 동경하게 됩니다.

 

유동적인 현재적 삶에서 대두되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해석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판사회이론일 필요하지 않을까요? 삶이란 현존하는 리얼리티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그 리얼리티를 끊임없이 그리고 동시에 대량으로 잉태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이겠습니까? 비판 없이는 삶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시작될 수 없겠지요.

 

p56. 왜 변신론이죠? 왜 라이프니츠의 방법으로 되돌아가려는 건가요? ..변신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바로 이 세계가, ‘가능한 세계중에서는 그나마 최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몰이해 때문에 창궐하는 악과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명백히 모순처럼 보이지만, 전능하고 박애적인 신이 통치한다고 인정된 세계에서도 악의 존재는 세계의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변신론입니다.

 

팡글로스는 마거릿 대처의 신념인 TINA(There Is No Aternative)의 선구자이자 창시자이며 또한 그 이상의 영감을 준 인물이지요.

 

범사가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지라,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최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코가 안경을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그리하여 우리에겐 안경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두 다리는 분명 바지를 입도록 고안되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바지가 있습니다. 돌은 큰 조각으로 잘려 성들을 짓는 데 사용되기 위하여 형성되었고, 따라서 각하께서는 아름다운 성 하나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위대하신 남작께서는 가장 훌륭한 거처에 사셔야 합니다. ”

 

사회학은 변신론에게 농담과 재담만을 던질 뿐 그것과 단호하게 대립합니다.

 

P58. 사회학은 좋든 싫든, 대중이 필연성이나 자연적 질서라고 믿고 있는 기반을 무너뜨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중적 신념이 구성되고 지속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비합리성을 폭로해야 하는 거죠. 사회학은 규칙과 규범의 뒤에 숨어 있는 돌발 사태와 단지 타자의 희생을 전제로 선택된 한 가지 가능성만 있다는 주장 주변에 넘쳐나는 다른 대안들을 들춰내야 합니다. 쿤데라의 알레고리를 빌려온다면, 사회학의 소명은, 재현으로 위장하고 리얼리티를 감추기 위해 드리워져 있는 커튼을 찢는 것입니다.

 

아도르노가 지속적으로 강조했듯이, 사회학이 간결하고 정밀한 설명을 추구할 때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P61. 사회학을 수립한 창립자세 명은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분과학문에 대해 서로 다른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에밀 뒤르켐은 사회학자가 탐구하는 리얼리티도 기성아카데미의 분과학문이 탐구하는 리얼리티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반면 막스 베버는 사회학이 탐구하는 리얼리티의 특수성을 인정했습니다.


 

게오르그 짐멜은 두르켐과 베버의 입장에 대한 모호한 지지를 피하려 했습니다. 짐멜은 이른바 ‘2차 해석학이나 ‘2단계 해석학이라 할 수 있는 상식과의 대화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석되어왔던 것을 재해석하고 인간의 생활세계Lebenswelt, 즉 체험된 세계를 채우고 있는 요소들을 구성하는 보편적이고 유일한 방식을 해석하는 것이지요. 1차 해석과 2차 해석은 끊임없는 탄생의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해석의 결과는 일시적인 안정일 뿐입니다. 이러한 영속적인 위기상태야말로 사회학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서식 환경입니다.

 

p67. 저는 밀즈가 구체화했던 개인의 일대기역사를 함께 엮으려는 사회학자의 임무를, ‘사회학적 해석학을 수행하면서 완수하려 노력합니다. 사회학적 해석학은 인간의 행동을 상황 속에서의 도전(객관적 요소)과 삶의 전략(주관적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이자 상호교환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적지 않은 사회학자들이, 마법사의 돌을 찾는 연금술사처럼 열정적으로 알고리즘을 찾다가 결국 허무에 빠졌어요. 저는 그보다는 발견적 충고, 권유나 가이드라인이 지닌 본래적 특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p73. 정말 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왜 사회학이 내게 그토록 소중한지를 확실히 설명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만약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산다면 호기심을 상실하게 될 것 같습니다.

 

p76.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신랄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과학은 창조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창조적인 작업에 합류하도록 허락하는 신기한 장치입니다.

 

p78. 우리 세대는 역사의 대리인 historical agent’이 천천히, 그렇지만 무자비하게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야기한 행위의 규칙에 따르면, ’역사의 대리인유기적인표준 집단을 꿈꿔온 지식인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존재로서,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의 땅을 향한 길고 긴 행진 끝에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적 목표에까지 도달하도록 인류를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p82. 베른슈타인은 화해를 지향하는 개량주의의 창시자로서, 페이비언주의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지요. 베른슈타인의 개량주의는 사회주의적 가치와 의도를 자본주의 사회 내의 정치, 경제적 틀 속에서 추구했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단 한 번에 바꾸는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개량을 추구한 것이죠. 레닌의 낙담과 베른슈타인의 낙관적 기대 모두를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지속되면서, 죄르지 루차키는 역사의 이와 같은 분명한 저항(마르크스의 애초 예언을 따르지 않는)허위의식이라는 새로운 개념(하지만 결국 동굴 벽에 드리운 플라톤의 그림자를 연상시키는)으로 설명했습니다. 자본주의의 기만적인 총체성이 그러한 허위의식을 은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무시킨다는 것입니다.

 

p

85. 톰슨은 현실의 실천과 결합되지 못한 이론적 실천을, 지식인들이 만들어내는 처녀수태(단성생식)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p88. 저는 이 질문과 직면했던 길고도 철저한 시도로서 아도르노의 저작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대리인에 대한 영국 지식인들의 열정이 무미건조해지기 훨씬 이전에, 아도르노는 그의 오랜 친구인 발터 베냐민에게서 그가 브레히트적 모티프라고 이름 붙인 경향을 발견하고는 이를 비판했습니다.

 

브레히트적 모티프란 노동자들이 아우라 상실 위기에 처한 예술을 구원하리라는, 또는 혁명 예술과 결합한 직접적인 미적 효과가 노동자들을 구원하리라는 기대를 일컫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마지막 일침을 가합니다.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가 혁명을 필요로 했기에 그 필요성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덕목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경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도르노는 오히려 반대의 사례를 지적했습니다. 사회적 악이 유해하게 지속되고 있음은 우리가 더욱 열심히 시도해야 할 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요.

 

아도르노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학대적인 격리는 배신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포기했다는 신호도 아니며 겸손의 제스처도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의사소통을 멈추겠다는 의도도 아닙니다. 인간 해방의 전망에 대한 진실을 훼손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결의일 뿐입니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앙가주망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p93. 그리하여 아도르노는 병 속에 든 메시지라는 의사소통 전략을 제안합니다. ‘병 속에 든 메시지는 두 가지 전제를 함축하는 은유입니다. 첫 번째로 이 은유는, 기록될 필요가 있는 메시지가 있고 병에 담아 멀리 보낼 가치가 있는 고민거리가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두 번째로는 언젠가 병 속에 든 메시지가 발견되었을 때, 그때에도 그 메시지가 여전히 가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합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알 수 없는 독자에게 메시지를 위탁하는 이 같은 전략은, 동시대인들이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설사 메시지를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간직하거나 유지하려 하지 않기에 선택된 것입니다. 이렇듯 메시지를 어딘지 모르는 장소와 시간으로 보내는 것은, 그 메시지가 현재의 무시를 견디고 살아남아 메시지의 잠재성을 잃지 않으리라는 희망에 의존합니다.

 

병 속에 든 메시지, 실패는 일시적이지만 희망은 지속적이라는 증명입니다. 또한 가능성은 파괴될 수 없으며 가능성의 실현을 방해하는 역경은 단단하지 않다는 증명입니다. 아도르노의 표현 속에서 비판이론은 바로 이에 대한 증명이며, ‘병 속에 든 메시지라는 은유를 정당화해줍니다.

 


p95. 부르디외는 마지막 저작인 <세계의 비참>의 후기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정치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유권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아주 빠르게 파악하고 구체화하지만, 그럼에도 정치영역은 비밀스럽게만 보이고 폐쇄적이 되려고 한다고 말이죠. 그러나 정치 영역은 다시 개방되어야 합니다.

 

p96.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심지어 살기 힘들도록 만드는 매커니즘을 인식한다고 해서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모순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해서 모순이 해결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지요. 문제의 근원을 인식하는 것과 문제를 박멸하는 것 사이에는 매우 길고 복잡한 길이 뻗어 있습니다.

 

첫 발걸음을 내디뎌야만 궤도 수정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고 개척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실로 부르디외의 명령을 기억하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실행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사회세계의 연구에 바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사람은 그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에 중립적이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p98. 저는 제가 수행하는 종류의 사회학을 사회학적 해석학이라 부릅니다. 사회학적 해석학은, 우리가 처한 곳에서 사회적으로 형성된 상황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삶의 전략을 구성하는 인간의 선택을 해석합니다.

 

p99. 사회학적 해석학은 사회학적 수단으로 인간의 리얼리티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p100. 사회학적 해석학은 통계적 코드화에 집요하게 저항해가는 과정입니다. 사회학적 해석학은, 저장하기 좋도록 연구 대상을 알고리즘 법칙을 구성하는 유한수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환원은 통상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이 이루어지곤 하지요. 책임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까요.

 

P104. 사회학의 소명은 명백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방향 설정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은 이러한 소명을, 변화를 철저하게 추적하고 그 결과뿐만 아니라 변화가 요구하는 적합한 삶의 전략들을 꼼꼼히 분석할 때 완수할 수 있습니다.

 


P107. 이에 대해 시배스천 폭스는 <폭스가 픽션에 대해 말하다>에서, 이를테면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의 관계는 논평이 금지되기는커녕 토론의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분수령과도 같은 변화가 추측과 가십으로 향한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예술작품이 작가의 개인적인 성격을 표현한다는 가정에 따라, 전기적 비평은 창작의 행위를 쇼로 환원시켜 놓았다는 거죠. 저커버그는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신의 계시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P111. 유명인이 되었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유명인들이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저는 유명인에 대한 대니얼 부어스틴의 정의를 따르고 싶은데요. 그는 유명인이란,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이라 정의했죠. 유명인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20~30여 년 전에 저는 사회학적 전문용어의 사용을 아예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은 사회학으로의 진입을 가능한 한 폐쇄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회학적 전문용어는 의사소통을 붕괴시키고 경계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학이 중요한 것이 되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P113. 유명인처럼 보이는 것과 사람들이 귀 담아 듣는 유명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유명인은 잘 알려지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레지스 드브레의 미디어크라시라는 개념은 유명인의 두 가지 경우 중 후자는 감추고 오직 전자만을 장려하는 경향을 지칭하는 데 아주 유용한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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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0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꼼꼼한 발췌.. ^^

시이소오 2016-03-07 18:59   좋아요 0 | URL
ㅋ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3-0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학적 상상력... 저도 아주 근간 읽은 책이라 몹시 반갑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7 22:17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어요 ? 저도 반갑네요. 북다이제스터님 서재탐방하러 가야겠어요^^

syo 2016-03-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저는 어제 사회학적 상상력 다 읽고 지금 사회학의 쓸모 읽는 중인데, 책 안 읽고 이 포스트만 읽어도 될 뻔 했습니다.*_*

시이소오 2016-03-08 01:20   좋아요 0 | URL
ㅋ 직접 읽으셔야죠 ^*^

비로그인 2016-03-08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학과 세계는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는 이 구절~ 우울해지려고 하네요. ;^^

시이소오 2016-03-08 08:5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어요. 우울해하지 마시길 ^^;;

그루터기 2016-08-12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사회학입문서로 <나를위한 사회학>이란 책이 나왔던데요. 일본의 사회학 교수가 일상의 사회학에 대해서 쓴 책이였습니다. 이 책도 추천드리고 싶네요~^^

시이소오 2016-08-12 09:48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합니다. 읽어봐야 겠어요 ^^
 
사회학의 쓸모 -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미켈 H. 야콥슨.키스 테스터 지음, 노명우 옮김 / 서해문집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새로운 밀레니엄 시기를 전후로 친구가 민예총 간사로 있어, 민예총에서 반값 할인으로 여러 강좌를 수강했던 적이 있었다. 강사가 누구였는지,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누구나 알만한 진중권 쌤으로부터 베냐민 강의를 듣기도 했었고, 박준상 쌤으로부터 레비나스를 듣기도 했었고, 김상봉 쌤으로부터 칸트를 듣기도 했었고, 아무튼 잡다하게 이것저것 듣기는 많이 들었다.

(슬프게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도대체 왜 들은 것일까.)

 

가끔씩 수강생들과 뒷풀이를 하기도 했었다. 한 남자 수강생이 참 아니꼬왔다. (지금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잘난 체 한다고 여겼나보다.) 전공을 물었더니 사회학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니, 어따 써먹겠다고 사회학 따위를 하냐, 공부할라면 철학을 해야지!”하고 호통(?)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내 전공은 철학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얍실해.)

 

술 깬 다음날도 쪽팔렸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지지리도 못났다. 지금은 거꾸로 아닌가.

철학을 공부해서 어따 써먹을까.

 

내 관점으로 특히나 포스트모던 철학은 쓸모가 없다. 최근에 읽은 윌리엄 B 어빈의 <직언>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 그래 스토아철학자들처럼 살아야겠다. 이거야말로 철학이지.’ 현대 철학은 현학적인 자아도취에 빠져 목적을 상실한 유목민 아닌가. 따지고 보면 뭐 대단한 걸 주장한 것도 아니다. 단지 누가 더 어렵게 쓰나 배틀을 벌인 것일 뿐. 철학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들이야말로 대중과 '경계'를 그은 것 아닌가. 특히나 들뢰즈와 데리다. 할 수만 있다면 데려와 취조를 하고 싶다.

 

그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철학에 비하면 사회학은 쓸모 있다.

현대의 가장 핫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인터뷰집이다. 한국의 신뢰할만한 사회학자 노명우가 옮겼다.

 

프리먼 다이슨은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궁극의 이론만을 찾다 맛이 갔다고 말했다. 다이슨이 과학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그러한 환원주의. 바우만 역시 과학의 자리를 주장하는 사회학을 경계한다. 인간의 삶이 단순히 데이터로 격하될 때, 개별적인 개인들의 경험과 체험들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바우만은 라이트 밀즈가 말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받아들여 사회학적 해석학을 주장한다. 바우만에게 사회학이란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커튼을 찢어버리는 세르반테스와 같은 용기. 지금의 세상이 현재 어떠한 모습이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그 어떤 필연성도 없다.

 

마거릿 대처의 신념인 TINA(There Is No Aternative)는 거짓이다. 진리가 도그마가 되는 순간 그 어떤 것도 진리일 수 없다. 모든 것을 다시 바라봐야 하고 다시 생각해야 하며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블랑쇼에 따르면 의문이 없다는 건 자유 없음이다.


바우만에게 사회학이란 병속에 든 메시지. 동시대인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메시지는 언젠가는 들을 준비가 된 누군가에게 전달 될 것이다.

블랑쇼는 말했다. “인류는 멸망한다. 하지만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실패는 일시적이지만 희망은 지속적이다.

 

나는 20대 때 니체의 광팬이었지만 니체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대중적으로 읽힐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니체 생전에 니체의 책은 고작 40부를 찍었고, 지인들에게 7부만 전달되었다.

 

오늘날의 세계, 오늘날의 한국은 절대로 완전하지않다. 바우만은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사회가 가능한 최선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들에게 퍽 유.

 

나는 이상하게도 바우만의 책을 읽으면 힘을 얻는다.

내게는 바우만이 자기계발이다.

 

우리는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책은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이 책은 경계경보이자 여론에 대한 호소, 양심에 대한 간청이자, 세계의 처지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수동성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요청이다. ”

 

-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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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우만의 《액체근대》를 읽고 힘이 난 경험이... 있긴 있었던가 싶네요. ^^;

시이소오 2016-03-07 20:52   좋아요 1 | URL
그러시면 이 책을 읽으시면 ^^;

cyrus 2016-03-08 11:52   좋아요 2 | URL
To. 쥰님 / 바우만의 문장이 어려워서 힘이 나지 않을 수 있어요. 바우만이 쓴 어떤 책은 번역이 좀 이상해요.. ^^;;

2016-03-08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o cyrus님/ 아, 외부로 발산되기는 어렵지만 내부로 응축되는 힘을 받기는 했는데... 제가 글을 저리 써놨으니... ^^;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 사스키아 사센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의 주된 논쟁점은 지구화 시대 국가의 역할이다. 저자들은 회의적이었지만, 나를 포함해 애국자가 많은 한국 사회는 우왕좌왕, 좌충우돌했다. 국가가 세계 자본의 침투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길 바라면서도 한류와 민주화 운동 경험의 수출, 대기업의 해외 진출에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 역시 우리가 미성숙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는 이런 상황에 대한 안내이자 자본주의의 특정 단계에 대한 빼어난 문제 제기다 부제는 내용을 압축한다. ‘초국적 시장 공간으로서 세계 도시의 성장과 새로운 공간적 사회적 불평등

 

국적과 관계없이 부자는 글로벌 시티즌, 빈자는 난민인 시대다. 일국의 행정부와 정당의 무능력은, 부패와 낡은 인식과 겹쳐 불기피한 현상이 되었다.

 

이상문학전집 1.4. 이상

 

<오감도>에 대한 해석들, 초현실, 절망, 환상, 난해, 공포, 아방가르드, 심지어 민족 독립을 위한 병법까지..... 나는 공포 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감도>는 현실적이며 직설적이다.

 

건축학도였던 이상의 공간 감각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3차원적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조감도는 근대적 인식론, 원근법의 대표적 방식이다. 원근법은 한 사람의 시선만 허용한다. 그러므로 조감도는 온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간주되는)는 신의 의자다.

 

이상에게 피사체와 인식 주체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는 탈식민주의적 상상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전경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오감도>는 가능했다. 비정상 사회에서의 정신 분열과 예술가의 윤리가 낳은 걸작이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폭력의 고고학>으로 먼저 소개된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남아메리카의 53개 부족이 무대다. 저자는 권력, 국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빼어난, 사유 방식의 모범을 보여주는 학자다. 생각으로 현실을 판단하지 않고, 현실에서 생각을 만들어낸다.

 

책의 요지는 인간이 만든 가장 진화한 형태의 사회 조직은 국가일까라는 질문이다. 국가 있는 사회(문명 사회)와 국가 없는 사회(원시 사회)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권이나 관료 체계가 아니다. 권력이 사회에서 의해 통제되는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는가이다.

 

내부가 동질적인 국가는 없다. ‘하나로서 국가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조선/한국의 내서널리즘과 소국 의식, 기무라 간


 

이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다음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웃는 사람(사실, 웃기다), 절박하게 동의하는 사람, 나처럼 이 희비극 앞에 한숨 쉬는 사람, 더불어 이 책의 제목과 대구를 이루는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가 생각났다. 나는 분단 조국의 국민으로서씁쓸했다.

 

비단과 여성을 바쳤던 고려 시대부터 이라크 파병과 고철(무기), 옥수수와 쇠고기 강매까지 사대는 결국 조공, 자발적 종속이다. 이 책은 친미뿐 아니라 한국의 남성성을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 평등보다 사대자소(한미동맹)가 더 현실적이라는 사고방식의 결과는? 일상에서 강자는 미국이 아니라 남성이다. 한국 사회는 사대할뿐 자소에는 무능하고, 사대의 스트레스를 약자에게서 해소한다. 아닌가?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 베리 부잔


 

나는 이제까지 한국 현대사의 최대 사건을 한국 전쟁과 황우석 사태라고 생각해왔다. 당시 황우석 씨 연구실 근처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어서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들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웃다가 나중엔 우리(사회)는 미쳤구나’. 싶어 비애가 들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원 중에 아니‘RO’ 중에 예비 음모를 구체화할, 레이더에 안 걸리는 스텔스 기술자라도 있는지, 최소 오토매틱 자주포라도 구비했는가?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는 여성학이나 평화학 계열의 책이 아니다. 정통 국제정치학 논의다. 저자 배리 부잔은 안보 연구를 안보에서 안보 개념으로 전환시킨 코펜하겐 학파를 대표하는 이론가다.

 

너 빨갱이지?” 이러면 끝이다. 말 한마디가 정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사회적, 법적 형을 지게 된다. 물론 나는 이렇게 대응하겠다. “당신이 빨간 안경을 썼으니 세상이 모두 그렇게 보이겠죠.”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단지 자신의 공포, 악심, 더러움을 타인에게 뒤집어씌우는 만능 무기로 쓰일 분이다. 분노해야 할 것은 국정원의 만행이 아니라 이토록 간단한 무기에 한없이 취약한 한국 사회다.

 

거짓의 사람들, M 스콧 펙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국방 전문가들은 현행 징병제 대신 미국처럼 100퍼센트 지원병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이들과 이유는 다르지만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중에서도 같은 논리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위험한 발상이다. 누가 지원하겠는가. 부유한 고학력 집안의 자녀가? 자기 자녀가? 지원병제는 계급 분업이다.

 

M 스콧 펙의 <거짓의 사람들><끝나지 않은 길>과 함께 상담 서적으로 널리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은 평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군대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면 모든 국민이 복하는 국민 개병, 징병제가 차악이라고 주장한다.

 

지원병 제도는 전쟁과 군대로 인한 제반 논의가 특정 소수 집단의 문제로 축소되는 체제다. 이에 반해 보편적 의무로 운영되는 징병제는 어쩔 수 없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가 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가족들은 이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군사가 자신의 문제가 된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일은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역설이다.

 

팍스 코리아나, 설용수

 

나는 평화’, ‘우아’, ‘화해같은 안정 계열의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남을 열 받게 함. 간혹 타인의 정신을 붕괴시킴. 권력자, 불성실과 무식을 쿨함으로 가장함.

 

팍스 코리아나는 셋 중 하나다. 팍스의 의미를 모르거나 망상이거나 강한 한국의 수사학. 이 책에 의하면 팍스 코리아나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성경과 불경에 그렇게 쓰여 있으며 <정감록><격암유록>에 한반도에 정도령이 나타나 세계 만민을 살린다고 했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비하도 당황스럽지만 팍스 코리아나의 근거가 겨우 자연 주기상 한국 차례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설득되기보다는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한 독자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런 애국저술가들이 상당히 많다. 실은 내가 이런 방면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일 주일에 하루는 종일 헌책방에 앉아 있다. , 이 책들은 의자에서 읽으면 위험하다. (웃다가 넘어진다.)

 

드레퓌스, 니콜라스 할라즈

 

어릴 적부터 집에 굴러다니던 책인데 이렇게 의미 있는 책인지 몰랐다. 책날개에는 송건호와 김동길의 추천사가 있다. ‘비교가능한 인물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김동길의 글이 조금 더 울림이 있다. “진실만이 역사를 창조, 발전시킨다.”(송건호), “졸라 같은 양심적인 역할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절박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김동길) 이 의견들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내가 읽은 <드레퓌스>의 교훈은 진실의 승리라기보다는, 간첩이 만들어지는 조건과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간첩은 국가 단위의 적을 전제한다. 당시 프랑스는 1870년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한 뒤 독일에 알자스로렌 지방을 빼앗긴 직후였다. 복수와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가 극에 달한 시기에 간첩 만들기는 너무 쉽다.

 

조작 간첩으로 몰린 피해 당사자의 고통을 차치하고 말한다면, 진짜 간첩과 조작 간첩의 차이는 크지 않다’. 오히려 조작이다 아니다가 주된 논쟁이 되면, 조작은 더 쉬워진다. “간첩은 있다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간첩은 국내 정치의 필요이자 산물이다. 중요한 것은 진짜 간첩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간첩의 정치적 효과다.

 

행복하려면, 녹색 , 서형원, 하승수

 

책은 환경 연구 입문서에 가깝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부(OECD) 회원국 중 빈부 격자 2위국이다.(1위는 멕시코) 덴마크의 2011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81.83 퍼센트였는데 2012년 한국은 54.3퍼센트였다. 우리나라는 원전 밀지도 세계 1위 국가다! 아직도 성장=고용논리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수출이 10억 원 늘어서 창출되는 고용은 200510.8명에서 2011년에는 7.3명으로 줄었다.

 

며칠 전 투표하지 않겠다는 친구와 언쟁을 벌였는데 내가 이겼다(?). 그녀의 논리는 보이콧도 존중해달라. 그것도 선택이고 실천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가만 있지 말고 보이콧 운동을 조직하라. 선거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현실 정치를 하라.”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개인이 기본적 권리마저 두려워하게 만든 권력의 승리다.

 

나도 좌절을 거듭하다 보니 희망이라는 말에 냉소를 넘어 분노하는 인간이 되었다. 시대의 반영이라고 변명해보지만 이 책을 읽고 부끄러웠다. 저자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스스로 신나 하면서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념이 보편의 탈을 쓰고 이데올로기가 될 때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꿈과 고뇌는 우리를 연결시킨다. 녹색당의 당비는 월, 3000원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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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작품으로는 별 세 개. 역자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별 하나도 주고 싶지 않다.


제목 <나의 투쟁>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작가인 칼 오베가 독자에게 날리는 퍽 유둘째, 역자가 독자에게 날리는 또 한 번의 강렬한 퍽 유셋째, 독자인 우리가 역자와 벌여야 하는 와의 투쟁. 역자는 제목 <나의 투쟁>에서 점 하나를 지운’ ‘의 투쟁을 감행한다.

 

역자인 손화수 씨는 설마 어머니를 점 하나 지워 어미니로 부르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어미 를 사랑하신다. 지루해질까 싶으면 가끔씩 어미 로 끝내시는 센스.

 

소설 속 그 어떤 캐릭터도 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귀를 뚫건 안 뚫었건 누구나 로 대화를 끝내야만 한다.

 

무슨 일이니

소년 칼 오베에게 던지는 오베 아버지의 첫 대화문은 일종의 전조였을까.

혹은 역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은근한 암시?

 

노르웨이를 모르니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화체 문장을 거의 로 끝내는 건 이 소설을 죽이겠다는 심산인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역자 소개를 찾아보니 역자는 1998년부터 노르웨이에 이주해 살고 있었다. 아마도 거의 20년 간 한국어를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역자가 번역을 개차반으로 해놨어도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길사에는 일 하는 편집자가 없나.

 

비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테니 예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불 밑에는 뭘 숨겨두었니?” - 30대 초반의 오베 아버지.

내 카세트를 만졌니?”, “내 방에서 뭘 하고 있었니

그럼 내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니?” - 18살의 오베의 형 윙베 (p25)

 

학무보 회의가 6시라고 했니?” , “너는 계속 여기 있을거니?” - 오베 아버지 (p79)

왜 진작 말하지 않았니?...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니?” - 오베 아버지 (P80)

 

그게 정말이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거니?” - 오베 형 윙베

잘 놀다 왔니? ” - 오베 엄마

재밌게 잘 놀았니?” - 오베의 단짝 친구 얀 비에르의 아버지.

너희들 왔니?”, “언제 성탄절 방학식이 끝나니?”- 오베 할머니.

 

그래 좋다. 위의 예문은 연장자가 오베에게 말했기 때문에 로 번역했다고 하자.

그럼 오베와 친구들 사이는 어떨까? 참고로 10대의 오베는 양쪽 귀를 뚫고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지금 뭐라고 했니?” - 리타에게 말하는 오베 (P101)

널 이렇게 찾아왔는데 기쁘지 않니?”, “시간당 얼마 받니?”, “혹시 날 좋아하니?”

오베에게 말하는 리네

그럼 우린 이제 헤어지는 거니? ” - 오베의 첫 여자친구 수잔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니?” - 오베 단짝친구 얀 비다르.

병 따개 있니, 양주 가져온 사람 있니?” - 오베

지금 뭐라고 했니?” - 오베가 짝사랑한 이레네

, 그러니?” -오베의 절친 페르

안녕, 오래 기다렸니?” - 오베가 사랑한 힌네

 

1부는 주로 오베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룬다. 그저 누구나 겪었을만한 평범한 일상이다. 2부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작가가 된 어른 오베가 화자다. 2부는 오베 아버지의 죽음을 골자로 한다. 오배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할머니 집에서 운명했다. 그리고 2부의 핵심내용은 청소. 오베와 윙베는 아버지 사망이후 몇 일간이나 아버지가 운명한 할머니 집을 청소한다. 그리고 끝이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오베와 윙베.

 

의 투쟁이후 역자는 2부에서 의 투쟁을 가미한다.

 

몇 시에요? 있었어요? 지금요? 누워요? 안 돼요? 알잖아요. 당신이에요. 고집을 피우고 있군요. 알고 있어요. 느껴져요? 느낄 수 있어요. 신기해요. 미안해요........“ - 오베 아내 린다.

 

소금은 어디 있나요?” - 오베

여기요” - 오베 형수 카리 안네

토리에는 어디 있나요?” - 오베

아직 자고 있어요.” - 형수

 

그런데 주전자는 어디 있나요?” - 윙베가 할머니에게

저기 있네요” - 오베가 윙베에게

커피는 어디 있나요? 찬장에 있어요?” - 윙베가 할머니에게

 

그렇다고 역자는 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윙베는 어디 있니? 벌써 집으로 돌아갔니?” - 오베 할머니

 

이게 무슨 동화책인가.....?

 

역자는 현실과 유리된 번역으로

모든 등장인물을 의미와 내용도 없는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렸다. 나이, 성별, 계급, 계층에 따라 대사의 톤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역자는 그런 언어의 뉘앙스들을 말살한다.

(역자는 번역의 히틀러가 되고 싶었던 건가요?)

 

역자는 <나의 투쟁>이 어떠한 문학 사조에도 포함되지 않고 어떠한 문학 이론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아노만 치시던 분이.....확실한가요?

 

<나의 투쟁>은 일본 사소설 형식을 차용한다. 그런데 단지 좀 길 뿐이다.

한마디로 <나의 투쟁>‘21세기 노르웨이 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른 독자 분들은 어쩜 이리 관대한지. 만일 내가 이 책을 구매해서 읽었더라면

한길사에 리콜을 요구했을 것이다. <나의 투쟁> 2권 번역 역시 1권과 똑같은

손화수 씨 번역이라면 나는 이 책과 더 이상 투쟁하지 않겠다.

 

이해할 수 없는 옷으로 치장한 배우의 코디가 안티라면

이 책은 역자가 작가의 안티다.

 

밑줄 그은 문장

 

p296.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들을 그림자 속에서 꺼내오는 작업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그곳자체다. 그것이 글쓰기의 장소이며 목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p313. 아우구스트 스트린드 베리는 교란적 정신 상태에서 하늘의 별은 벽에 난 구멍이라고 아주 깊고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다.

 

(P337~345는 작가의 예술론)

p337. “물리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정리해내는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접하게 되면서 내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카테고리라는 개념을 사용해 허구적이고 가공적인 세상의 가치를 재고 분석해왔다.”

 

p338.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당연히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존재하며, 세상에는 밖으로 통하는 통로나 문이 없고, 심지어는 우리가 근친상간적인 협소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세상 밖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가끔 느끼는데, 어떤 때는 그 욕구가 너무 커서 통제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나는 이 욕구의 동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글을 씀으로써 나는 좌절한다. 미래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은 유토피아가 무의미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문학은 항상 유토피아를 지향해왔다. 유토피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문학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시도했던 것은, 짐작건대 모든 작가가 한 번쯤은 시도해본 것이기도 하겠지만, 픽션으로 픽션과 맞서 싸우는 일이었다.

p390 조크 스터지스의 사진.

 

p501. 나는 아도르노를 읽으며 내면이 풍요로워짐을 느끼곤 했는데, 그건 내가 아도르노의 글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도르노를 읽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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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6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니니 거리니 내귀가 니글 ㅋ

시이소오 2016-03-06 09:24   좋아요 1 | URL
정말 읽는 내내 대화문은 니글 거려요^^

stella.K 2016-03-0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관대한 독자 중 한 사람인가 봅니다.ㅠㅋ
솔직히 전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이책의 최대의 난제는 재미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공교롭게도 저자의 연대와 제가 좀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공감할 게 그래도 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루하더군요. 뒤로 가면 어떨지...
전 단지 프로메테우스적 저자의 글 쓰기에 그저 박수만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서전이나 자전 소설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쓰면 욕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편집자의 위상이 그다지 높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번역자 보다 못하며 어느 출판사의 한 부서에 속한 존재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오탈자나 보는 정도가 아닐지?
외국에선 작가 보다 높은 권력과 위상을 갖는가 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자기 글을 편집자가 함부로 제단한다고 하면 난리 날 걸요?

시이소오 2016-03-06 17:54   좋아요 0 | URL
이책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건지 1권만 보고선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일종의 스캔들 문학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samadhi(眞我) 2016-03-0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어떡하죠. 평이 좋기도 하고 매력적인 북구 출신 작가이기도 하여 이 책 사두고 읽던 책 마저 읽고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웬만해선 신간 안 사는데요. 두께도 어마어마한데 재미 마저 없으면 어떡한답니까. 게다가 번역에도 민감한 성격인데... 중고로 파는 것도 일이고 ㅠㅠ 시이소오님의 평을 일부러 다 읽지는 않았어요. 곧 읽을 책이니, 선입견 생길까봐. 에효~

시이소오 2016-03-06 17:56   좋아요 0 | URL
호평이 더 많아요. 읽고 판단해 보시는건 어떨지요? ^^;

samadhi(眞我) 2016-03-06 17:5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읽을 거예요. 번역에 민감한 편이라 신경이 쓰일 것 같네요.

시이소오 2016-03-06 18:01   좋아요 0 | URL
대화문 말고는 괜찮습니다 ^^

samadhi(眞我) 2016-03-06 18:06   좋아요 0 | URL
대화체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일단 읽어봐야죠.

시이소오 2016-03-06 18:09   좋아요 0 | URL
기대감을 버리고 읽으시면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겠네요 ^^

cyrus 2016-03-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싶군요. 비슷한 문장 구조가 자주 나오면 인물 간의 대화 분위기가 영혼이 없는 로봇이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06 17:58   좋아요 0 | URL
영혼없는 기계들의 대화같아요. 차라리 AI의 대화가 더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가을벚꽃 2016-03-06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번역이 문제군요 ㅠㅠ 그래도 미리 문제점을 알고 접하면 실망이 덜 하겠죠?

시이소오 2016-03-06 22:17   좋아요 0 | URL
기대를 접고 읽으시면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아애 2016-03-0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사실 전 투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번역자의, 독자의 투쟁. 그래서 눈가리개로 가리워진, 이 참으로 아픈, 투쟁의 삶을 잠시 직시할 수 있다는 생각, 혹은 착각을 잠시 해더랬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7 00:01   좋아요 0 | URL
저자는 아이들을 키우며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토로하기 위해 투쟁이란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투쟁이긴하죠^^

yamoo 2016-03-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겁나 두껍던데....두깨보고 그냥 포기하게 되더군요.

대단하십니다!

시이소오 2016-03-07 17:52   좋아요 0 | URL
두께의 반은 오베가 가끔 훌쩍거리면서 청소만 합니다. 이건 프루스트랑 한판 해보자는거죠 ^^

:Dora 2017-06-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년도 더 전에 쓰셨네용. 저는 지금 읽는 중인데.. 이 분 영혼이 저랑 닮았는지 낱낱이 밝혀놓은 일상이 재미있네요. 문체나 번역 등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해 주시니 땡큐에요^^ ☞노르웨이어로 읽는다면 어떨까요?

시이소오 2017-06-30 15:24   좋아요 1 | URL
노르웨이어로 읽고 리뷰 써주시면 감솨요 ㅎ

:Dora 2017-06-3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흘ㄹㄹㄹ한 삼십 년만 기다려주세용ㄹㄹ

시이소오 2017-06-30 17:06   좋아요 0 | URL
이천사십칠년 칠월 칠일을 마감일로 할까요? 기다리겠습니다 ㅎ

Falstaff 2019-01-1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책 나온지 한 3년 됐으니 이제 좀 슬슬 읽어볼까, 싶어서 구매 버튼 누르기 바로 전에 이 글을 봤습니다.
사이오님 때문에, 탓에, 덕분에 ,안 읽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역자가 20년 넘게 모국어를 떠나 있었다는 놀랍고 중요한 정보를 들어서요. 고맙습니다. ㅋㅋㅋ

시이소오 2019-01-12 11:20   좋아요 0 | URL
역대급 번역이었습니다. 폴스타프님의 세계문학 읽기는 여전하시군요. 놀라울 뿐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세요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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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결코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놀라운 소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보다 Hot 하고 Cool한 소설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도미니카 판 21세기식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고 할까요? 샐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라스의 <양철북>,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같은 성장 소설을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필독하시길 추천합니다.

 

푸쿠 아메리카누스, 흔히 푸쿠라고 부르는 그것은 대개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특히 신세계의 파멸과 저주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가 있는 섬)에 오면서 이 푸쿠를 풀어놓았고 그 이후 도미니카는 염병할 저주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이 푸쿠는 트루히요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묘사합니다. 트루히요가 누구냐구요? 1930년부터 무려 약 30년 동안 도미니카를 통치해온 독재자로서 우리 식으로 치자면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을 다 섞어놓은 듯한 무시무시한 놈이죠.

 

JFK를 누가 죽였냐구요? 작가말로는 ‘‘염병할 마릴린 먼로의 유령도, 외계인도, KGB도 아니고’‘ 트루히요요 푸쿠였답니다. 그런 작가에게 있어서 푸쿠 넘버원이라 할만한 이야기가 오스카 와 오와 그의 가족이야기인거죠. 그러나, 푸쿠만 있는 건 아니라죠. 푸쿠에 대항할만한 역 주문이 있으니 그것은 사파. 작가의 삼촌은 불운이 들러붙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24시간 사파를 중얼거린다고. 작가는 이 책이 일종의 사파가 되길 바란 듯 싶습니다.

 

오스카는 그의 엄마가 케 옴브레(저 마초 녀석좀 보게)”할 정도로 올가와 마릿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정상적인 도미니카 남자였으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마릿사의 협박에 눈물을 흘리며 올가를 버렸더니, ‘달을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닦아내지 않은 얼룩이라고 생각하는멍청한 넬슨 파드로(하느님이 곧 닦을거야)에게 마릿사를 빼앗기고 나서부터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여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때는 117kg 되는 꼴통 돼지가 되었음에도 눈에 띄는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열렬한 포스를 그 몸무게 전체로 내뿜지만, 그 어떤 여자도 팔짱을 풀지 않았고, ‘메테셀로 전문가였던 삼촌 루돌포는 코헤 댓 페아 이 메테셀로!! (못생긴 계집애를 자빠뜨려서 그냥 거시기를 집어넣어!)”란 애정어린 충고에도 그저 누나 롤라의 열라 탐스런친구들을 꿈속에서 외계인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었죠.

 

졸업반이 되어서도 오스카의 몸무게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고, 자신보다 괴짜라고 생각하는 그의 친구들(앨과 믹스)마저 여자친구가 생겼음에도 그는 여전히 혼자였을뿐더러, “걔들 다른 친구는 없냐란 절박한 질문에도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없어라는 짤막한 대답을 듣고서야 오스카는 친구들마저 자신을 쪽팔려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거울을 쳐다보다 오스카는 엄마에게 나 못생겼어요?”라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한숨을 쉬며 글쎄다, 날 안 닮은 건 확실하지란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뿐이죠.

 

도미니카 부모들이란! 사랑할 수 밖에 없다니까!!”

 

그런 오스카에게도 엄연히 대화가능한 여인이 찾아왔으니 이름하여 아나 오브레곤, ‘생리중이라는 표현대신 돼지처럼 피가 철철 나라고 말하는 깜찍한 여자였으나, 그가 친구이상으로 발전해 볼려고 궁리할 때 즈음, 그녀의 마약중독자 애인이자 해부학적인 거대함을 지닌 매니가 돌아오자 아나는 큰 거시기에 굴복하여서 인지 그녀를 갈보라 부르며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잘라 중학생 여자애들과 바람 피우는 매니를 사랑한다니 오스카의 꿈은 또다시 그렇게 산산 조각이 나버리고 맙니다.

 

11부의 내용을 대충 말씀드렸는데요, 주노 디아스의 필력을 느끼실 수 있으셨는지요? 다른 장에선 오스카의 누이인 롤라가, 그의 엄마인 배티가, 그의 할아버지인 아벨라르가, 롤라의 남자 친구인 유니오르가 화자가 되어 오스카를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노 디아스는 주목받은 단편집 이후 11년 만에 자신의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놨는데요, 퓰리쳐상등 많은 상을 통해 그 노력에 보답 받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퓰리쳐 상을 탄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엄청난 푸쿠인 트루히요가 등장함에도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듯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다가가 게임이라면 전 당신에게 카리스마 18을 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꼴통에게도 과연 사랑이 찾아올까요? 유니오르에게 도미니카 남자 중에 숫총각으로 죽은 사람은 없대....그게 사실일까 ?”라고 진지하게 묻는 오스카는 과연 숫총각 딱지를 떼고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까요?

 

우리나라엔 이 푸쿠가 언제 들어온걸까요? 6,25때 미군을 통해? 아님 미친 소들을 통해?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사파가 있으니까. 푸쿠로 점철된 오스카의 삶에도 사파는 찾아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그의 골통 짓에 경악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솟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2010년 즈음에

주노 디아스의 신작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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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5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다말다 하던 책인데 읽어봐야겠네요.

시이소오 2016-03-05 08:28   좋아요 0 | URL
아, 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강추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05 15:35   좋아요 1 | URL
저도 강추합니다^^

cyrus 2016-03-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은 알라딘 블로그 말고도 다른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건가요? 시이소오님의 글 마지막 부분에 지나간 날짜가 적혀 있던데 알라딘 가입 전에도 꾸준히 글을 기록하신거군요. ^^

시이소오 2016-03-05 09:22   좋아요 0 | URL
네이버 하고 있구요. 2010년경에도 책 블로그 하다 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

sb 2016-03-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군요. 두근두근!!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5 15:06   좋아요 0 | URL
주노 디아스 완전 사랑합니다
추천해서 실패한 적 없어요. 강추에요^^

고양이라디오 2016-03-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저도 이 책 너무나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었어요. 그리고 저도 제가 읽은 퓰리처상작품 들 중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5 15:41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시는 분이 계셔 저도 반갑네요. 게임이라면 카리스마19를 드리겠습니다 ^^

2016-03-06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퓰리쳐 중 최고라는 말씀에 감히 동의합니다. 와오!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삼십년 전 백년동안의고독이었을 거에요. 저도 강추입니다 ^^

시이소오 2016-03-06 17: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재밌는 소설 흔하지 않은데요 ^^

ICE-9 2016-03-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극적으로 사랑이야기라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시이소오님의 리뷰를 읽으니 제가 어디서 이 작품의 매력을 느꼈는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네요. 빈약한 제 메모리 사양을 타박하며 빨리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와, 추천 수도 어마어마하네요^^

시이소오 2016-03-06 23:46   좋아요 0 | URL
저도 워낙 오래전에 쓴 글이라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