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지금부터 길가메시의 행적을 알리노라. 그는 모든 것을 알았고, 세상 모든 나라를 알았던 왕이다. 슬기로왔으며, 신비로운 사실을 보았고, 신들만 알던 비밀을 알아내었고, 홍수 전에 있었던 세상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었도다.
p12. 신들은 길가메시를 창조할 때 그에게 완전한 육체를 주었으니, 즉 위대한 태양의 신 샤마시(Shamash)는 그에게 아름다움을 주었고 폭풍의 신 아닷(Adad)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그 외의 많은 신들이 그에게 거대한 들소처럼 강한 힘을 주어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게 하였도다. 3분의 2는 신이요, 3분의 1은 인간으로 만들었도다.
주석1. 길가메시. 닌순과 제사장 쿨랍 사이에서 태어났다. 홍수 이후 제 5대 왕으로 우룩을 통치하였고, 위대한 건축가와 사자의 심판관으로 유명하다.
주석2. 샤마시. 수메르에서는 우투(Utu)라고 하며 태양을 의미한다. 수메르인들에겐 최고 심판관이며 법률을 준 신으로 여겨진다. 셈족들에겐 빛나는 전승자이며 지혜의 신으로서 신(Sin)의 아들이나 ‘그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시타르의 오빠이자 남편인데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날카로운 ‘톱’으로도 표현된다. 이 시에서 샤마시는 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단지 태양을 지칭하기도 한다.
p13. 그는 우룩(Uruk)에 담들과 거대한 성벽을 쌓았노라. 그리고 대지의 신 아누(Anu)와 사랑의 여신 이시타르(Ishtar)를 위해 아름다운 에아나(Eanna)의 신전을 세웠노라.
주석3. 아닷. 폭풍과 폭우의 신. 날씨의 신.
주석4. 우룩, 성경에서는 에렉(Erech)이라 하여 현재의 와르카(Warka)로 화라와 우르 사이에 위치함. 아누와 이시타르의 신전이 있던 곳이다. 전통적으로 키시의 적대국이 되어 왔으며 홍수 이후 다섯 번째 왕인 길가메시가 다스린 곳이다.
주석5. 아누. 수메르에서는 안(An)이라고 불린다. 신들의 아버지이며 대지의 신으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메르 우주 발생 설화에 의하면 태초에 바다 속에서 하늘(An)과 땅(Ki)으로 이루어진 우주적 신이 태어났다. 그런데 엔릴이 그들을 떼어놓고 ‘안’은 하늘을, ‘엔릴’은 땅을 차지한다. 아누는 점점 뒤쪽으로 은퇴한다.
주석6. 이시타르. 수메르에서는 이난나(Inanna)로 불린다. 사랑과 풍요의 여신, 전쟁의 여신으로도 불리며 하늘의 여왕 노릇을 한다. 아누의 딸로서 자기의 신전이 있는 우룩의 수호신이다.
p17. “길가메시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종을 울린다. 그의 방자함은 밤낮으로 끝이 없구나. 그가 아이들까지 모두 빼앗아 가니 아들이 아버지 곁에 남아 있질 못한다. 왕은 그 백성들의 목자여야 하건만 군인의 딸이건, 대신의 아내이건 가리지 않고 빼앗아 자기의 색욕을 만족시키니 처녀들이 애인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슬기롭고, 관대하고, 단호한 도시의 목자란다. ”
p18. 아누가 백성들의 호소를 들었을 때, 신들은 창조의 여신 아루루(Aruru)에게 부탁하였다.
“오! 아루루여, 그대가 그를 창조하였으니 이제 그의 짝을 만들라.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그의 두 번째 자아가 되게 하라. 폭풍 같은 가슴엔 폭풍 같은 가슴으로 맞서게 하라. 그들이 서로 만족하여 우룩을 조용하게 두도록.”
그리하여 여신은 마음속에 한 형상을 그렸다. 그것은 고집불통 아누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물 속에 손을 담가 진흙을 움켜내어 광야에 뿌리니 거기에서 위대한 엔키두(Enkidu)가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의 신 니누르타(Ninurta)의 거친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거친 몸뚱이에 여자처럼 긴 머리칼을 갖고 있었는데, 그 긴 머리칼을 곡식의 여신 니사바(Nisaba)의 머리칼처럼 흘러내렸다. 온몸은 목축의 신 사무칸(Samuqan)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한 털로 덮여 있었다. 그는 순진한 인간이었다. 문명의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주석. 아루루. 창조의 여신. 아누의 형상을 따라 진흙으로 엔키두를 창조했다.
주석. 엔키투.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 의해 천신 아누의 본질과 형상을 본따고 ,전쟁 신 니누르타의 성격을 모방하여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길가메시의 동료로서 자연인의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후에는 동물의 수호자 또는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주석. 니누르타. 닝기르수의 나중 이름. 투사이며 전쟁의 신이다. 전령자, 남풍의 신, 우물과 관계의 신이기도 하다. 한 시에 의하면 그는 지하 세계의 사나운 파도를 막고 여러 괴물을 정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p21. 사냥꾼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저기 그가 내려오고 있다. 여인이여, 지금 이때다. 가슴을 드러내 놓고 부끄러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그대의 알몸을 그에게 보여 그로 하여금 그대를 소유하게 하라. 그가 가까이 오면 스스로 옷을 벗고 그와 함께 누워라. 저 야만인을 그대의 솜씨로 가르쳐라. 그로 하여금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숲에서 함께 살던 그의 동물들이 그를 꺼리도록 만들어라.”
p22. 그녀는 여인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여섯 낮과 일곱 밤을 그들은 함께 누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싫증이 났다. 그는 다시 동물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영양들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그를 보자 뛰어나갔다. 그도 같이 뛰어가려 했으나 그의 몸은 마치 끈으로 묶어 놓은 것 같았고, 뛰려는 순간 무릎을 삐고 말았다. 그의 날램도 사라져버렸다. 동물들은 모두 도망가고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왜냐하면 이제 그의 머릿속엔 지혜가 자리잡게 되었고 가슴속엔 인간의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좋다, 여인이여, 나를 그 신전으로, 이시타르와 아누의 집으로, 길가메시가 백성을 다스리는 그곳으로 데려다 다오. 그와 힘을 겨루어 보겠다. 그리고 우룩에 가서 큰 소리로 ‘내가 제일 강하다! 나는 옛 질서를 바꾸려고 이곳에 왔노라, 나는 숲에서 태어났다, 나는 모든 자 중의 제일 강한 자로다!’라고 외치리라.”
p23. 그는 당신보다 강해요. 그러니 당신은 자만을 버리세요. 위대한 태양의 신 샤마시가 그를 돌보고 있답니다. 하늘에 사는 아누, 엔릴(Enlil), 그리고 지혜의 신 에아(Ea)가 그에게 심오한 통찰력을 주었지요. 당신이 숲을 떠나기 이전에 이미 길가메시는 당신이 오리라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을 거예요.
주석. 엔릴. 땅, 대기와 바람, 궁극적인 영혼의 신으로 아누를 축출하였다. 수메르 우주 발생 설화에서 그는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부터 태어나는데 이 둘을 갈라놓고 그는 땅을 차지한다. 후에 최고의 신으로 대접받으며 니푸르의 수호신이다.
주석. 에아. 수메르에서는 엔키(Enki)라고 불린다. 잔잔한 파도와 지혜의 신. 예술을 사랑하며 인간을 창조한 신 중의 하나로서, 언제나 인간 편에 선다. 그의 신전은 에리두에 있는데, 그곳 ‘깊숙한 곳’에 살고 있다. 그의 족보는 불분명하나 아누의 자손으로 추측된다.
p24. 그때 길가메시는 그의 어머니이며 슬기로운 신 중의 하나인 닌순(Ninsun)에게 꿈 이야기를 하러 올라갔다.
p25.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진 이 별 – 네가 일으키려 애썼으나 너무 무거웠고, 또 옮기려 했을 때 꼼짝하지 않았으며, 이제 내 앞에 가져온 이 별은, 내가 너를 위해 만든 것이다. 그는 너를 자극하고 충동하여 너는 마치 여자에게 끌리듯 그에게 빠질 것이다.
어머니, 그런데 두 번째 꿈을 또 꾸었어요. 튼튼한 우룩의 성벽 위에 도끼 한 자루가 놓여 있었어요. 그 모양이 신기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그것을 보고 저도 기뻐했죠. 저는 엎드려 공손히 허리를 굽혔어요. 마치 여인을 다루듯 소중히 그것을 주워 제 옆구리에 찼어요.
여인의 사랑처럼 너를 매혹시킨 그 도끼는 내가 네게 주는 동료다. 그는 하늘의 신들 같은 강한 힘을 지니고 네게 올 것이다. 그는 위험에 직면한 친구를 구해줄 용감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p26. 엔키두, 이 빵을 먹어 봐요. 생명을 지탱해 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술도 마셔봐요. 그게 이곳의 풍습이랍니다.
그는 결국 배부르도록 먹고 독한 술을 일곱 잔이나 마셨다. 그러자 기분이 유쾌해지며 가슴이 벅차 오르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기 몸에 났던 곱슬곱슬한 털들을 싹 밀어버리고 기름을 발랐다. 드디어 엔키두는 한 남자가 되었다.
p27. 나는 길가메시가 백성들을 억누르는 그곳에 가서 그에게 도전하겠다. 그리고 우룩에서 ‘나는 옛 질서를 바꾸러 왔노라! 가장 센 자가 여기 왔노라!’고 큰 소리로 외치리라.
p34. 나는 운명이 결정한 대로, 내 이름을 돌 위에 새기지 않았다. 나는 향나무가 가득찬 곳으로 가겠다. 그리고 유명한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내 이름을 새길 작정이다. 누구의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그곳에 신들을 위해 기념탑을 세우겠다. 땅위에 악이 있으므로 우리는 숲으로 들어가 악을 물리칠 것이다. 그 숲 속엔 ‘거대Hugeness’란 이름을 가진 난폭한 거인 훔바바(Humbaba)가 살고 있다.
주석. 훔바바. 후와와huwawa라고도 불린다. 향나무 숲의 산지기로 길가메시에게 대항해 싸우다가 길가메시와 엔키두에게 살해당한다. 신적인 품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나톨리아, 엘람, 시리아의 신으로도 불려진다.
p35. 하늘에 오를 자가 어디 있느냐? 오직 신들만이 영광의 샤마시와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수명은 셈해지고 있으며 우리가 가진 것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p36. 나는 그 땅에 가고자 합니다. 오, 샤마시여, 나는 기필코 갈 것입니다. 간구하오니 내 영혼을 평온케 하시고 나를 우룩의 항구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거룩한 샤마시가 응답하였다. “길가메시야, 그대는 강하다. 그런데 생명의 나라가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오, 샤마시여, 내 말을 들으소서. 내 말을 들으소서, 샤마시여,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기 이 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충격을 받고 죽어가며 실망 속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성벽 너머 강물 위에 시체들이 더내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운명도 그러할 것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하늘에 닿을 수는 없으며,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지구를 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그 땅에 가려고 합니다. 나는 그 땅에 가서 향나무를 자르겠습니다. 유명한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내 이름을 새기렵니다. 그리고 어느 인간의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그곳에 신들을 위해 기념탑을 세우겠습니다. “
“아! 훔바바의 땅을 빼앗으려는 이 여행은 긴 것입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샤마시여, 당신은 어찌하여 내 마음을 움직여, 이 일을 이루겠다는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을 주셨습니까? 당신이 돕지 않으신다면 어찌 이룰 수 있겠습니까?
p37. 길가메시를 돕도록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아들들을 산속 동굴에 숨겨 놓았다. 북풍과 돌풍, 폭풍과 삭풍, 태풍과 열풍 등 강렬한 바람들을 약속하였다. 이것들은 독사 같고, 용 같고 타오르는 불길 같고,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뱀 같고,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홍수와 번개창같이 막강한 것들이었다.
p38. 길가메시를 위해서는 특별히 ‘영웅들의 힘’이란 도끼와 안샨(Anshan)의 활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무장했다.
p40. “오, 샤마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내 아들 길가메시에게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을 주셨습니까? 왜 그에게 그런 것을 주셨습니까? 당신이 그를 충동질 해 이제 그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낯선 길을 가며, 예기치 않은 싸움을 치르며,
훔바바의 땅으로 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러니 그가 떠나는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향나무 숲에 도착하여 그가 당신이 싫어하는 훔바바를 죽여 악한 것들을 물리치기까지 그를 잊지 마소서. 그리고 당신의 사랑스런 애인 새벽 아야(Aya)로 하여금 당신을 항상 일깨우게 하시고, 낮이 다하였을 때에는 그에게 밤의 보호자를 주시어 그를 해치는 자가 없게 하소서.”
p42. “샤마시가 당신께 마음의 열정을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 입으로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당신 눈으로 보실 수 있기를 빕니다. 포장된 길이 당신께 열려지고 당신의 발이 디딜 길이 환히 열리길 빕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에 산들이 열리고 밤은 당신께 밤의 축복을 주며 당신의 수호 신루굴반다(Lugulbanda)가 승리를 위해 당신 곁에 항상 계시기를 바랍니다.
p46. 훔바바가 멀리서 이 소리를 듣고 진노하여 외쳤다. “어느 놈이 내 숲 속에 들어와 향나무를 베느냐!” 그러자 위대한 샤마시가 하늘에서 그들을 격려하였다.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주석. 닝갈Ningal. 달신(Moon God)의 아내이며 태양의 어머니.
P48. 몸을 입고 태어난 피조물은 모두 언젠가 서쪽으로 가는 배를 탈 것이고 마길룸(Magilum)의 배가 떠나면 그들도 떠날 것이다.
p49. “오, 위대하신 샤마시여, 저는 당신께서 지시한 길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돕지 않으신다면 나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p50. “나의 어머니 닌순의 생명을 걸고, 나의 아버지 루굴반다의 생명을 걸고, 이 땅, 샘영의 나라에서 네 집을 찾아내었다. 비록 내 팔이 약하고 무기도 보잘것없지만 너에게 대항하러 이곳에 왔다. 이제 네 집에 쳐들어가리라.”
p51. “아무리 강한 자라도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쓰러지고 맙니다. 모든 인간들을 똑같이 괴롭히는 악한 운명 남타르(Namtar)가 그에게 덮칠 것입니다. 슬피 울며 애걸하는 새를 자기 보금자리로, 포로를 자기 어머니의 품속으로 되돌려 보낸다면 당신은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
주석. 남타르. 운명. 나쁜 의미에서의 운명을 뜻한다. 지하 세계의 악마나 에레시키갈의 심부름꾼, 혹은 수석 부하로 묘사되기도 한다. 질병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p52. 주석. 아눈나키Anunnaki) 보통 지하 세계의 신들을 말하는데 죽은 자들과 아누의 자손들을 심판한다.
엔릴은 훔바바의 머리를 보자 화를 냈다. “왜 이런 짓을 했느냐? 이후로 너희 얼굴 위엔 불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너희가 먹을 빵을 그것이 먼저 먹어 치울 것이며, 너희가 마실 물을 그것이 먼저 마셔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엔릴은 훔바바에게 주었던 일곱 광채와 화염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첫 번째 것을 강에게 주고, 사자에게 , 재앙의 바위에게, 산에게, 지옥의 공주에게 주었다.
p57. 그때 거룩한 이시타르가 왕관을 쓰고 있는 길가메시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를 유혹하였다. “길가메시, 내게로 오세요, 내 신랑이 되어 주세요. 당신 육체의 씨앗을 내게 허락하시고 나를 당신의 신부로 삼고, 내 남편이 되어 주세요. 당신께 금 바퀴와 구리 뿔이 달린, 유리와 금으로 만든 마차를 드리고 또한 강한 폭풍의 용사들을 당신의 전위대로 드리겠습니다.
향나무 향기 그윽한 제 집에 들어오시면 왕좌와 제단이 당신 발에 입맞출 것입니다. 왕들과 통치자들과 왕자들이 당신 앞에서 절할 것입니다. 그들은 곳곳에서 공물을 가지고 와 당신께 바칠 것입니다. 당신의 양은 쌍둥이를 낳고, 염소는 세 쌍둥이를 낳을 것이며, 당신의 짐을 나르는 노새는 어느 당나귀보다 빠르고, 당신의 황소에게는 어느 무엇도 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마차를 끄는 말들은 그 빠르기로 먼 곳에까지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
P58. 그러나 당신이 내 아내가 되는 것 – 그것만은 사양하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나와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마치 얼음 속에 있는 연기 나는 화로같이, 돌풍도 폭풍도 막아내지 못하는 거적문같이, 요새를 파괴하는 성벽같이, 짐꾼을 검게 만드는 역청같이, 이고 가는 사람을 온통 물로 적셔 놓은 물주머니같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돌같이, 적이 아닌 아군을 향해 돌진해 오는 대포같이,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신발같이 당신의 애인들을 골탕 먹였습니다.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소유한 목자들 중 어느 누가 항상 당신을 즐겁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애인들 이야기를 할 테니 들어보십시오. 당신이 젊었을 때 탐무즈(Tammuz)란 애인이 있었지요. 날이 갈수록 당신은 그를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당신은 영롱한 빛깔을 가진 롤러 카나리아를 사랑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그를 쳐 날개를 부러뜨려 놓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새장에 갇혀, ‘카피, 카피, 내 날개, 내 날개!’하고 울고 있습니다.
또 놀라울 정도로 센 힘을 지닌 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을 그를 입곱 개의 구덩이에 가두어 넣고도 구덩이 일곱 개를 더 팠습니다. 또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종마를 사랑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그를 박차와 가죽끈으로 매어 채찍으로 치며 7리그나 강제로 걷게 하고 진흙탕으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 실릴리를 울게 만들었지요. 당신은 양치는 목동도 한때 사랑했었지요. 그는 당신을 위해 매일 어린 양을 죽여 고기 과자를 만들어 주었지만, 당신은 그를 쳐서 승냥이로 만들어 목동들이 그를 멀리 쫒아 버리고 그의 양떼도 그를 몰라보고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당신은 당신 아버지 소유의 종려나무 숲 관리인 이슐라나(Ishullana)도 사랑했었지요. 그는 언제나 대추야자 열매를 가득 담아 당신 식탁에 놓아 주었는데 당신은 그에게 눈을 돌려 ‘사랑하는 이슐라나, 어서 이리 오세요. 나는 당신의 남성다움을 좋아해요. 어서 오세요. 나를 가지세요. 나는 당신의 것이랍니다’하고 말했지요. ....당신은 그를 쳐서 눈먼 두더지로 만들어 땅 속 깊은 곳에 가두고 어떤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주석. 탐무즈. 수메르에서는 두무지라고 불린다. 곡물의 신. 악카디아 시에서는 이시타르가 남편 탐무즈를 찾아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그러나 셈족의 시에서는 이난나(이시타르)가 자기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두무지를 지하 세계에 볼모로 잡혀 있게 한 것으로 되어 있다.
p60. 이시타르는 이 말을 듣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녀는 아버지 아누와 어머니 안툼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주석. 하늘 황소(Bull of Heaven) 이시타르를 위해 아누가 창조해 낸 가뭄의 인격화.
p66. “너, 여인아! 네게 저주를 내리노라! 이 저주는 영원토록 네게 임하리라. 내 저주는 갑작스런 순간에 네게 내려지리라. 너는 지붕 없는 집에서 몸을 팔아야 하리라. ....주정뱅이가 토해 놓은 토사물 속에서 네 몸을 팔아야 하리라. 네가 번 것은 도공의 손에 쥔 흙덩이처럼 될 것이고, 네가 훔친 것들의 쓰레기 속으로 사라지리라.
너는 길거리에서 일하는 도공의 일터 먼지 속에 앉아 슬퍼하리라. 밤에는 똥더미 위에 잠자리를 펴고 낮에는 담벼락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야 하리라. 네 발은 가시와 나뭇조각으로 찢어지고 네 뺨은 취기와 갈증으로 쭈그러지며 네 입은 고통을 토해 내리라.
p67. 어젯밤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진동하고 그에 응답해 땅이 진동하는 사이에 사람도 아니고 새도 아닌 음흉한 얼굴을 한 괴물이 내 앞에 나타났어요. 그는 자기가 할 일을 내게 일러 주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흡혈귀와 같았고, 사자 다리에 독수리 발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덮여 내 머릿속에 발톱을 깊숙이 박고 나를 숨이 막히게 꽉 움켜 쥐었습니다. 그는 내 팔이 날개가 되도록 내 모습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노려보더니 지하 세계의 여왕 이르칼라Irkalla의 궁전으로 데려갔습니다.
주석. 이르칼라. 에레시키칼의 다른 이름. 지하 세계의 여왕.
p68. 지난날 언젠가 세상을 지배하며 왕관을 썼던 적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누나 엔릴 같은 신들의 자리에 있던 자들이 이제는 먼지의 집에서 구운 고기를 나르는 종들처럼, 음식과 물주머니에서 물을 따르는 종들처럼 서 있었습니다. 먼지의 집엔 제사장과 그 조수들, 마술사와 무당들도 있었습니다. 또 신전에서 일하던 자들과 언젠가 독수리가 하늘로 데려간 키시(Kish)의 왕 에타나(Etana)도 있었습니다. 양떼의 신사 무칸과 지하 세계의 여왕 에레시키칼도 보았습니다. 벨릿셰리(Belit-Sheri)가 그녀 앞에 자리잡고 앉아 있더군요.
그녀는 신들의 말을 기록하며 사자의 명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명부를 읽다 그 중 하나를 들더니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자를 데려온 게 누구요’ 그 순간 나는 피가 말라버리도록 가시덤불이 깔린 광야를 헤맨 사람처럼, 사형 집행리에게 붙잡힌 사람처럼 공포를 느끼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석. 에타나. 홍수 이후 키시를 통치했다는 설화적인 임금. 한 설화에서 그는 독수리의 등에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에레시키칼. 지하 세계의 여왕이며, 페르세폰의 짝. 한때는 하늘의 여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메르 우주 발생 설화에서는 하늘과 땅이 갈라진 뒤 지하로 내려간 것으로 되어 있다.
벨릿셰리. 지하 세계 신들의 서기관 겸 조수.
p69. 이 꿈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언젠가 그에게 닥쳐올 비극을 암시해 주고 있다. 삶의 최후는 슬픈 것이다.
p70. 우룩의 위대한 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는 내 친구 엔키두를 위해 통곡하노라.
여인이 곡을 하듯 슬픔에 젖어
내 형제를 위해 우노라.
오, 나의 형제 엔키두
그대는 나의 편, 나의 도끼였다.
내 손의 힘이었고, 내 허리띠의 칼이었다.
내 앞의 방패였고
위대한 갑옷, 내 가장 아끼는 예복이었다.
악한 운명이 내게서 그대를 훔쳐갔다.
(중략)
우리가 함께 거닐던 둑을 따라 흐르는 강도
그대를 위해 울고 있다.
엘람의 울라도 사랑스런 유프라테스도,
언젠가 거기서 우린 물주머니에 물을 채웠지.
우리가 올라가 파수꾼을 벤 그 산도
그대를 위해 울고 있다.
(중략)
지금 그대를 붙잡고 있는 이 잠은 무엇인가?
그대, 암흑 속으로 사라져
내 말은 듣지도 못하는 구나.
p73. 새벽, 첫 햇살이 퍼질 때 길가메시는 일어나 외쳤다.
“내 그대를 궁중의 침대에 눕게 하였고, 왼팔이 되어 나를 돕게 하였으며 온 땅의 왕자들이 그대 발에 입맞추게 하였다. 내 그대를 위해 온 백성으로 하여금 울며 장송곡을 부르게 하리라. 기쁨을 즐기던 자들은 슬퍼할 것이며, 그대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날 나도 그대를 위해 머리를 풀리라. 사자의 가죽을 입고 광야를 방황하리라.”
이레 낮과 이레 밤을, 벌레가 엔키두의 몸을 파먹을 때까지 그를 위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