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오마쥬


요나스 요나손 성석제 이기호

 

의아했다. 피에르 르메트르가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공쿠르상이 일본 나오키 상처럼 말랑말랑한 상이 아닌데?! 르메트르 소설 중 몇 권은 재미없어 읽다 말았고 그나마 끝까지 읽은 소설은 <알렉스>였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런 미스테리? ‘끝에 가서 삑사리를 내서 그렇지 르메트르 보다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훨 낫지 않나?’

 

읽으면서 연신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 정말, 리얼리?!

이 정도면 가히 비상, 도약이라 할 만하다. 미스테리 소설만 쓰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마르케스 혹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같은 소설을 쓸 줄이야!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어쩌면 읽기때문일까.

 

이 텍스트를 써가면서 나는 몇몇 작가들을 차용했다. 에밀 아자르, 루이 아라공, 제랄드 오베르, 미셸 오디아르, 호메로스, 오노레 드 발자크, 잉마르 베리만, 조르주 베르나노스, 조르주 브라상, 스티븐 크레인, 장루이 퀴르티스, 드니 디드로, 장루이 에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박토르 위고, 가즈오 이시구로, 카슨 매컬러스, 쥘 미슐레, 안토니오 무뇨스 물리나,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 마르셀 프루스트, 파티리크 랑보, 라로슈푸코 등등

 

p669. <오르부아르>

 

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는 전사자 국립 묘지를 만들기로 한다. 이 사업에 악마의 화신 같은 도니프라델 중위가 뛰어든다. 정부 고위 인사에게 온갖 뇌물을 먹여 사업권을 취득한 도니프라델은 오늘날 탐욕스런 자본주의, 대기업의 상징같은 존재다.

 

관은 170cm에서 130cm까지 줄어든다. 전사자들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서는 관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전사자들 시체와 무덤 명패도 맞지 않는다. (유족들이 무덤을 파볼 것 같아!) 심지어 프랑스 군인의 묘지에 독일 군 시체를 집어넣는다. 이후엔 아예 시체없이 무덤을 흙으로 채워 넣기까지!

 

전쟁 중 도니프라델의 부하였던 미야르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생계고에 시달리다 전사자 추모 기념비를 만들어 준다며 전국적인 사기를 친다. 과연 누가 더 사악한가?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풍자적인 문체 때문에 요나스 요나손이 떠올랐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의 노인> 보다는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한국 작가들 중에도 <오르부아르>나 요나스 요나손에 비견할 만한 작가들이 있다. 성석제와 이기호. 한국의 웃픈 현실을 이 두 작가만큼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던가? 성석제로 치자면 아무래도 <투명인간>이 아닐까. 짐승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혹사당하는 만수는 <오르부아르>의 알베르를 떠올리게 한다









<오르부아르><투명인간>보다 더 가혹한 소재를 다루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작품은 단연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 이 소설에서 알베르, 만수에 비견될만한 인물은 나복만이다. 더 바보같고 그가 당하는 고통은 더 처절하다.


최근에 이기호의 신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가 출간되었다.

부디 <오르부아르>만큼 대박 나시길.

 

(20대 때 불문과 다니는 친구는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라는 말을 못 견뎌했다.

“‘떼레쥐라고 해 줄래?”

 

어찌나 때리고 싶던지. 내가 불문과 가고 나서야 그 친구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제목 <오르부아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은건지 모르겠다.

의역을 한 것도 아니고 원제를 다 살린 것도 아니고.

근데, 이 바보 같은 제목이 왠지 소설과 잘 어울린다.

 

아무튼 에두와르와 알베르가 부디 다시,

천국에서 만나길

오흐부아, 라 오

 

 

밑줄 그은 문장

 

p264. 앙리가 보기에 세상은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일하면서 그날그날을 불쌍하게 연명해 가는 마소 같은 존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들의 <개인적 요소들> 때문에 말이다.

p277. 그녀는 별로 질색하지 않았다. 어머니 쪽으로는 리무진적인 면을 물려받았지만, 평범한 편이었던 아버지 쪽으로는 수레적인 면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p294. 꼭 그녀의 아버지처럼, 정말로 한 켤레의 양말처럼 닮은 부녀였다.

 

p521. 라부르댕은 문장을 만들 때 오로지 음절을 고려하지, 그 안에 담기는 생각을 고려하는 적은 거의 없으니까.... 라부르댕은 일테면 원구형의 천치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항상 멍청한 모습만 보이니까 말이다. 그에게선 아무것도 이해할 게 없고, 기대할 것도 없었다.

 

p550. 난 왜 갈보집들이 그렇게나 기독교적인 이름을 가진 거리들에 그토록 많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아마도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오마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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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떼레쥐...ㅎ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3-17 10:13   좋아요 1 | URL
다시 생각해도 `떼레쥐`고 싶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3-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시이소오님 댓글보고 빵~
ㅋㅋㅋ

시이소오 2016-03-17 15:21   좋아요 0 | URL
웃으셨다니 좋네요
아주 웃긴 글을 쓰고 싶어요^^

깊이에의강요 2016-03-1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잘 쓰실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17 18:3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오르부와르 ~~흐흐^^

서니데이 2016-03-1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오늘도 제 서재에서 퀴즈 준비합니다.^^

시이소오 2016-03-17 19:22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요. 퀴즈 보러갈께요^^

eL 2016-03-1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오르부와르가 Au revoir 였군요. 상상도 못했네요 ㅎ 저도 떼레쥐에서 빵 터짐 ㅋ

시이소오 2016-03-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부와르가 Au revoir 였어요. 이엘님, 오르부아르~~
 

5장 삶과 죽음

 

달빛 아래서의 만찬, 아니타 존스턴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중독자의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 그러니 지나친 수치심이나 굴욕감,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중독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일 뿐,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여성의 섭식 장애 관련서 중에서 관점, 현실 인식, ‘해결책과 스토리가 모두 좋다. 중독 증상 때문에 사회의 경멸적 시선과 자기 비하에 지친 이들이 읽으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야기와 은유는 흥미진진하고 깊이와 통찰이 넘친다. 알코올, 담배, 마약 중독은 니코틴 같은 특정 성분에 대한 중독이다. 그런데 폭식은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내가 반복해서 읽은 부분은 통나무 이야기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내려 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한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중독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인생에서 완전한 기쁨이나 완벽한 절망은 없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사람, 생각, 조직....)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 도 있고 대상의 변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잇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내게 이 이야기는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였다. 20년 된 관계, 30년 된 생각, 사라진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이 책의 한 땀 한 땀은 모두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매 순간 감탄하느라 숨을 두 번씩 쉬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었는데 그 표시가 두 번째 읽을 땐 방해가 되었다. 책을 다시 사서 표시하지 않고 또 읽었다. 원서로도 읽었다. 참고문헌과 주 내용도 중요해서 분책해,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원제는 정오의 악마- 우울증의 모든 것’. 이 책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몇십 년간은 우울증 관련 저술에 도전하는 이가 드물었으리라.

 

내가 아는 한 우울증에 관해 정치적, 학문적, 미학적, 윤리적으로 <한낮의 우울>보다 잘 쓴 책은 없다. 하나의 문장을 고를 수 없는 책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처럼 근거 없는 말도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에이즈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완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든 질병이다. 잠복성, 만성질환, 치명성, 외로움, 사회적 낙인.......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심각한 면역력 저하다. 면역성이 사라지면서 부드러운 미풍조차 사포로 미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의 증상은 인생의 본질이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울증은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일부다......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half-measures)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미봉책을 제대로 꿰매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었다. 완전히 봉합하지 않는 미봉(未縫), 혹은 미봉(未封)인줄 알았던 것이다. 아뿔싸! 사전적 의미의 미봉책은 미봉책(彌縫策)이었다. ()와 봉(), 모두 꿰매거나 깁는다는 뜻으로 흔적과 자국이 남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본질적 해결이 우월하고, 미봉책은 속임수나 일시적 방도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다. 아무런 표시가 남지 않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 찬사인 이유다.

 

흔적 없음은 존재 없음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완전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꿰맨 자리는 아물기도 하고 터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생명은 미봉의 점철. 그러므로 미봉책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영원한 방도다.

 

언니의 폐경, 김훈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세 번 삭발했다. 아침마다 머리 감기가 귀찮아서였다. 주변의 반응은 머리 감기보다 더 번잡스러웠다. “암이니?”, “(머리가)아프니?”, “논문 스트레스?”......내 진심 (게으름)을 몰라주고 사람들이 너무 걱정해서 잠시 나의 사회성을 의심했지만, 실상 나는 매우 사회적인 인간이다.

 

<칼의 노래>같은 글은 불편하다. 그러나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주장한다. 김훈은 소설, 논픽션, 기사, 수필을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쓰는 예술가다.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르의 구별에 의문을 품는다. 그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물상이든 묘사 대상에 대한 대상화를 최소화하는 윤리적인 작가다. 그의 글이 풍경과 상처가 되는 이유다.

 

박완서가 일상에 관한 뛰어난 서술자였다면, 육체에 해당하는 작가는 김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장>을 읽은 독자는 더욱 동의하리라. 몸은 자원이 아니라 행위자다.

 

삶에 대적하는 화자의 태도. “남편의 속옷에 붙어 있던,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에 관하여 나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마지막 예절과 헤어짐의 모양새로서 잘한 일이지 싶다.” 나는 이 문장을 넘기지 못하고 몹시 몸부림치고 몹시 몸서리쳤다. 나이 들어 영원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들과 세월로 인해 잃고 얻을 모든 것들과 이렇게 관계 맺을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 틱 낫 한

 

진짜 문제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나게 하는 사람 아닌가? 예전에 읽든 틱 낫 한의 책(<>< <평화 이야기>은 그래도 덜 했는데, <>는 화를 돋우었다. 물론 책마다 타깃 그룹이 있고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분노를 다룬다는 책이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겨우 이정도인가.

 

분노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처받은 인간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만이 늘어놓을 수 있는 아름답고 한가하고 피상적인이야기들. 이 책은 한때 70만 권 넘게 팔렸다. 위로를 갈구하는 현대인이 안쓰러울 뿐이다. 아시아 출신 도인들은 서구에서 증명받은 뒤 다시 아시아 시장으로 온다. 그들의 내공과 관련 없는 오리엔탈리즘, 불쾌한 지식의 정치학이다.

 

그러다 반전. 나는 단 한마디에 깊고 냉철한 위로를 받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달려 왔던 개인적 의문까지 풀렸다. “내 행동만이 나의 진정한 소유물이다. 나는 내 행동의 결과를 피할 길이 없다. 내 행동만이 내가 이 세상에서 서 있는 토대다.”

 

내가 아는 한 이 구절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류의 지적 성취를 요약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행위 뒤에 행위자 없고(니체), 행동은 사상의 기반이 되며(비트겐슈타인), 인간의 행동의 반복으로 구성되는 재현(주디스 버틀러)이다.

 

참나는 내 행동뿐이다. 인간사에서 죽음과 더불어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이것이다. 유일한 진실이자 유일한 정의인 것 같다. 알아야 할 것은 분노의 본질이 아니라 분노의 위치다. 행동만이 나를 말해주고 행동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이 부담스런 소유에 나는 안도한다.

 

오늘 부는 바람, 김원일

 

인생을 한 장면으로 요약한 소설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김원일의 <오늘 부는 바람>을 들겠다.

 

<오늘 부는 바람>1970년대 도시 빈민의 가난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문학과 지성의 본뜻, 문학과 지성의 관계를 배웠다. 빼어난 문장이란 그 자체로 영상이며 읽는 이의 몸에 배어들고 몸을 베는 글이다.

 

작품의 내용은 비극적이지만 분위기는 힘이 있다. “.....이제 엄마 생각에도 서러워지지 않았다. 껌보다도 더 질긴 삶이 내 발을 땅에다 굳건히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 후기 역시 매혹적이다. “나는 구원이나 긍정을 바탕으로 한 화해보다도 어둠이나 죽음의 아름다움, 삶의 어려움이 주는 쓸쓸함과, 고통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절망을 사랑해왔다. (나는 이런 작가를 사랑한다!).....비극의 세계가 부정이나 허무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의 운동이요, 생을 절실히 사랑하는 애정의 소산임을 확신한다.”

 

인생의 고통을 놓지 않는 사랑스런 후기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시대의 비극은 애정의 소산임을 확인할시간이 없는 비극이다. 날마다 전쟁이고 흐느낌이다.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공공 의료는 좌파 정책이다. ‘우파 민중은 안 아픈가? 공공 의료는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 그는 아나키스트인가? 내가 분노하자 주변에서는 뭘 기대하냐는 반응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런 발상에 대한 현저한 면역 결핍이 내 지병이다. (내 지병은 홧병)

 

질병은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홍 지사의 사고는 철학의 문제, 그것도 국정 철학의 오류다. 그는 좌파의 국가관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공동체관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일본 출신의 티베트 의사이자 승려인 다이쿠바라 야타로의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는 티베트 의학의 인식론과 증상에 따른 실제 치료법을 다루고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구현물로 보지 않는다. 동식물처럼 자연의 일부일 뿐, 불완전해도 상관없다.

 

몸의 생애는 곡선이다. 내려갈 때가 있다. 성형 열풍이나 완벽한 몸 이미지는 몸의 과거와 미래를 인정하지 않는 비현실적 행위다.

지금 뭘 하고 있나요?” 알퐁스 도데는 말한다. “아프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제도를 자랑하는 쿠바는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모든 국가가 기피한 원전 난민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국격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원래 진주의료원 같은 기관은 동리마다 있어야 한다. 폐업이 아니라 더 만들어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프리모 레비

 

어떻게 작품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것인가? 작품이 끝날 때마다 나는 한 번씩 죽는다.”이런 사람은 홀로코스트가 아니었어도 매일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레비는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인 오시비엥침(독일어로 아우슈비츠)에서 110개월을 버티고 살아남았다. ....... 그는 투신 자살했다. 지금 우리 사회 보통 사람의 자살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난 무려 100년 참고 참는다....../난 내일 죽음과의 약속을 지킬거다! /하지만 너네 인간들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 내말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용설란)

 

망각을 거부한 투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남은 인생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확신이다. 불확실한 삶이라면 가능성을 희망이라 믿고 살겠지만 확실한 상태에서 선택은 많지 않다.

확실성의 볼모가 된다는 것. <기차는 슬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 / 더 슬픈 게 있을까/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내 시간이 멈췄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셋째는, 공부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 최근 임지현은 <홀로코스트와 탈식민의 기억이 만날 때>라는 글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찾아온 대학생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가 한 말을 전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세 가지 있다. 생각, 사랑(관계), 자기 변화.

 

훌륭한 저작을 남긴 지식인이나 작가의 오만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생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다. 나도 조금 생각한 적이 있다. 피학의 쾌락이 있었지만, 공부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무능력도 원인이겠지만 사유는 힘든 일이다. 생각할수록 공부할수록 무지의 공포는 비례상승한다. 나 자신이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우울은 공부의 벗.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는 생각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태백산맥, 조정래

아는 의사 셋이 같은 주제로 흥분하는 걸 보고, 염 대장의 말이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성분이 카제인나트륨과 우유를 대립시키는 광고 때문에 시작된 이야기 였다. “카제인(단백질 화학명)이 우유잖아.”, “용각산이 바로 도라지 가루지.” “리튬(조울증 치료제)이 버드나무 잎에서 나는 거거든.” 그들의 요지는 같은 성분인데 우유(‘자연)와 카제인나트륨(’화학의 이미지를 대립시키는 교묘한 광고라는 것이었다.

 






자살의 이해,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자살의 이해>는 제목 그대로, 자살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이 책은 저술의 모범이다. 사회적 필요, 다학제 관점, 정치적 열정, 전문 지식, 고통에 대한 공감. 생명체인 인간과 사회적 인간, 개인과 구조, 이 쟁점들을 상호 융합적으로 다룬다.

 

이해는 아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선입견이든 지식이든 기존의 앎을 버리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은 절대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충돌은 앎의 지름길이다.

 

간혹 매우 총명한 이들과 조우한다. 나는 그들의 비법을 알고 있다. 이해는 영혼이 순수한 사람의 특권이다. 대상에 대한 사랑. 이해하고 싶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신을 보수하지 않는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미안함에 관련한 표현은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네가 불쾌했다면 미안해.”. 이럴 땐 차라리 싸우자는 게 예의다.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러브 스토리>의 연인들은 계급 차이 때문에 남자 주인공(올리버)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다. 올리버가 제니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제니는 사랑하는데 뭐가 미안해.”라고 말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제니가 죽자 올리버의 아버지는 안됐구나. (i’m sorry.)”“라고 말한다. 올리버는 아버지에게 사랑은 미안해할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라며 원망스레 울먹인다.

최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사랑미안은 같은 말일 수도 있고 무관할 수도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8년 째 아프다. 심각한 병이지만 사회적 낙인이 심해 위로받기는커녕 변명과 거짓말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돈 잘 벌고 착하고 자랑스러운딸이었던 그녀는 걱정거리와 민폐로 전락했고 경력, 경제력, 인간관계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며 인생을 배우는 나는 미안하다.

 

기대에 부응하는 삶, 아프다/죽고 싶다는 호소.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질병의 증상(신체적 통증)으로 고통받는 그녀에게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 사람도 있다. 낙오자 취급은 엘리트였던 그녀의 자아에 사망 선고가 되었다.

 

그녀의 증상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안한 것이다. 약자는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하지만 통치 세력이 노골적으로 약육강식을 지시하는 사회에서 뭘 기대하겠는가.

 

아픈 사람이 미안해할 때야말로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 이 말이 필요하다. 인생은 열렬한 사랑의 순간보다 괴로운 시간이 훨씬 많다. 공감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잎새, 오 헨리.

 

몇 해전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여 10대에서 70대까지 열네 개 그룹으로 나누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 대답 역시 그렇다


여기서 공부10대를 억압하는 입시 공부가 아닌 뭔가 의미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60대 친구가 몇 있다. 돈과 학벌을 따지는 속물이 득실거리는 우리 사회에서 남들 보기에도 비교적 성공한인생들이다. 그들 역시 공부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다. 자신은 이룬 것이 없다며, 가진 것이 없는 내게 말한다. “그래도 너는 책을 썼잖니, 나는 한 것이 없다.”

 

의욕, 삶의 방향, 목적. 사람은 결국 무엇때문에 산다.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이다.

 

사람들이 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자신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에 몰두하는 사람은 덜 외롭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것.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다. 버먼은 그렇게 죽었지만 비참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히 위대하고 행복한 마침표도 아니다. 이것이 오 헨리 작품의 매력이다. 슬픈데 따뜻하고, 찡한데 안식이 있다. 희망과 절망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애상이나 애잔함은 오히려 충만한 느낌이 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김승옥

 

다른 측면에서 글쓰기는 조금 더 평등하다. 운동, 음악, 미술 분야에 비해 장비가 간단하고 독학 가능성이 있다. 거칠게 말해, 연필 한 자루면 된다. 나는 글이 투자 대비 생산성이 가장 큰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엄청난 양의 독서, 습작, 조사를 해야 하는 데다 삶의 매순간이 연습이다. 좋은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있다. 비결은 연습(치열한 삶)이다. 글 쓰는 시간은 연습을 타자로 옮기는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고뇌를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존경하기만 하면 그걸로써 의무감의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이 문장에 동의한다. 일하지 않고 예술만 즐기고 싶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열 받지 않아도 되는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살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동감하는 구절.)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름다음만 소비하고 싶다. 비생산의 삶. 죽을 때 연기조차 없는 삶. ‘독자가 된다는 것은 주체로 사는 피로와 죄악을 피하는 길이다. 호랑이나 사람이나 무엇인가를 남긴다? 끔찍하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한 이들이 독자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연습은 끝이 없는 개념이다. 외롭고 지루한 연습이 아무런 보상이 없을 수도 있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다. 진실을 아는 자의 만족스런 불평이다. 김승옥도 알고 있다. “천 번만 먹을 갈아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진실만이 결정되어 남을까?”

 

하류지향, 우치다 타츠루

 

모 신문에 게재된 채현국 선생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치유란 사람의 매력 그 자체의 효과이지 시대의 멘토해주는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의 언어는 모두 깊고 힘이 있었다. 나를 붙잡은 구절은 모든 것은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였다.

 

지식, 사회,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가 존경스러운 불문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하류지향>은 승, 부 중 어느 한쪽을 격려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대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사고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보고했다는 점이다. 소위 내재점 관점(질적 방법)‘이 잘 적용된 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온 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력 저하는 노력의 성과. 그러나 자기 선택은 어느 정도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약자는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약자다. 자유는 고립 이데올로기다.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도 혼자 책임질 것. 위험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 혹은 죽음의 방식이다.

 

저자처럼 계몽 의식과 책임감을 지닌 기존 자본주의의 수혜자는 그들의 선한 의지와 달리 시혜자가 되지 못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절박하지만 진짜 현실인식은 안이한 듯하다. 충격은 이제부터다. 룸펜, 의지박약자, 잉여는 구제 대상이 아니라 파국의 주체다.


 

에필로그, 다르게 읽기와 독후감 쓰기.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알 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나는 좋은 책이 반드시 좋은 독후감을 낳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독후감은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책의 수준과 무관하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후감, 책을 다시 쓰는 것, 저자가 쓰지 못한/않은 부분을 쓰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 곧 새로운 정치학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읽는 사람도 있는데 그 차이는 왜 발생할까. 대개는 콩쥐한테 동일시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계모의 내면 세계나 아버지, 친척, 이웃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한 이들도 있다. 나는 팥쥐는 꼭 딸이어야만 하는가, 아들일 경우 어떻게 될까가 궁금했다. 이런 생각의 차이들은 가치 다양성, 관용, 배려 차원의 내용 확대가 아니다. 정치적 모순, 갈등, 위계의 내용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적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독후감은, 내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즉 지면을 투사하는 것이다. “행간을 읽는다.”라고도 표현한다. 다른 안경을 쓰고 읽음으로써 텍스트를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경합하는 읽기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讀後感),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통과할 수도 있고 몸이 덜 사용될 수도 있다. 터널이나 숲속,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거친 후에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그 변화 전후에 대한 자기 서사이다. 변화의 요인, 변화의 의미, 변화의 결과.......그러니 독후의 감이다. 당연히, 내용 요약으로 지면을 메울 필요가 없다. 독후에 자기 변화가 없다면? 왜 없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는 것도 좋은 독후감이 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을까도 좋은 질문이다. 자기 탐구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더 좋은 독후감이 도리 확률이 높다. 자신의 경험, 인식, 지식, 가치관, 감수성에 따라 여정의 깊이는 달라진다. 독후감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독자의 위치성, 그 위치성을 의식하고 의심하고 사랑하는 읽기가 책의 위상을 결정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미술작품이든 책이든 모든 텍스트는 철저히 읽는 이의 상황에 의존한다. “저자는 죽었다.” , “책은 독자가 다시 쓴다.” 라는 말은 권력이 결국 읽는 이, 듣는 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언제나 문제는 나 자신이다. 물론, (주체, subject)는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이 아니라 시회적 몸(social body)이다.

 

책이 되지 못한 책들의 피해, 비평이 되지 않는 비평의 폐해는, 수많은 책을 읽는 들에 의해 청산될 수 있다

어느 출판사의 사훈은 책 때문에 망가지는 나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독자는 지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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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리뷰가 아닌 필사가 돼버렸다. 우선 내게는 생소한 작가가 너무 많았다. (나의 무지에 죽고 싶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말했듯 그녀가 온몸으로 책을 통과하는 글들에 섣불리 개입할 수가 없었던 것도 결정적 이유다. 단 한 챕터도 그냥 흘러갈 수 없었다. 환호작약, 촌철살인의 문장들로 흘러넘친다.

 

내가 읽은 서평집 중에 최고다. (장정일, 이현우, 이다혜, 정혜윤, 장석주, 정여울, 이동진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독후감의 원칙 때문이 아닐까.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독자의 독서 이후의 변화. 정희진은 자신의 원칙들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희진만이 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독후감을 써냈다.

 

타성적인 서평 백 편을 읽느니

개성적인 독후감 한 편을 읽는 편이 낫다.

그녀가 어떤 책을 칭찬하면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그 책을 읽고 싶었다.

 

그녀가 통과한 책들을

이제 내가 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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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17 02:4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고 싶네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이 육사

 

 

p. 21.루쉰은 그의 단편소설 <고향>에서 수구주의자들이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터부의 자리에 인간의 가치가 들어서기를 희망하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끝을 맺었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땅 위에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보면 길이 만들어진다.”

 

낙관적 진보론의 신용이 떨어진 20세기의 초엽에도 열성적인 사회운동가들은 자신이 희구하는 미래의 모습을 이 책에서 발견하곤 했다. 콩도르세는 이 책(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도표 개요)에서 신의 섭리를 부정하고,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 정신에 내재된 힘으로 무한히 진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 정신에 악덕과 정염이 담겨 있어 그 활동이 자주 빗나가지만, 이성의 개발과 자유의 증가를 통해 끝내는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는 확신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치는 소년>, 김종삼

 

p37. 한 인간이 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소설가의 수만큼 많다. 멀리는 괴테도 있고, 가까이는 밀란 쿤데라나 이청준도 있다. 좋은 시민이 될 수 없어 시인이 되는 이야기인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는 이상한 사회인으로서의 예술가에 대한 가장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며,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모욕 받는 자의 상상력이 곧 소설의 상상력임을 말하는 리처드 라이트의 <검둥이 소년>은 작가 성장의 서사와 저항의 서사를 겹쳐놓는다. 작가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를 말하면서 작가가 된다.

 

p39. 랭보는 열여섯 살이 되된 해에, 후세의 문학연구자들이 투시자의 편지라고 부르게 될 편지를 선배 시인 드므니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은 투시자여야 한다는 것이며,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엄청나고 이치에 맞는 착란을 통해 투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 김수영

 

p41. 이 삶을 불태워버리는 게 얼마나 싫은일이며, 미지의 신비를 향해 우리의 생명 전체를 내던지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미학적 재능은 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이다. 다시 저 영화 <베티 블루>로 돌아가면, 주인공 조르그는 제 삶을 불태워 파괴하고, 다른 삶을 열망하던 제 애인마저 죽이고, 더 정확하게 말해 이 삶에서는 행복과 제 열망마저 죽이고, 한 인간의 삶에서 작가의 삶으로 건너갔다. 한 사람이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는 의미인 것이다.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 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은 이 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란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흘러가는 구름.....저기.........신기한 구름을!

 

<이방인>, 보들레르

 

p58. 단장하던 채경이 깨져 보이고, 창 앞의 앵두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가 달려 보이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냐.

 

능히 열매가 열어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쏜가,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고,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춘향전


p59. 이 꿈의 해석은 어사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읊는 정치시(금잔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그릇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피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이 또한 높구나) 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다.

 

p65. 술병을 보내고 얼마 후 장만옥은 서독에게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죽는다. 두 해나 지나서 도착한 이 편지에서 장만옥은 가질 수는 없어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쓰고 있었다. 이 말은 거의 영화 전체의 주제가 된다.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라는 말이 랭보의 진정한 삶은 여기 없다는 말에 대한 번안이라면, 장만옥의 이 말은 쿤데라의 그것을 동양식으로 탁월하게 다시 번안한 것이라고 할 만하다. 가질 수 없는 것은 여기 없는 것이며, 잊지 않은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일 테니까.

 

p66. 그는 끝내 마적의 칼에 맞아 죽는다. “칼이 빠르면 피 솟는 소리가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는 자기 피가 그렇게 아름답게 솟는 소리를 듣는다. 죽음과 삶을 맞바꿀 때만 삶은 진정한 것이 된다고 안타까운 해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명명해또 좋을까요 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 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흘러갑니다 그대는 날 어디론가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가는 듯합니다 난 그대 안에서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그대에 파묻혀 나는, 그대가 타오르기에 불붙어 버렸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이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잎이라고 눈이라고 당신이라고 명명해 봅니다 당신에 흠뻑 젖은 내가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아아 당신은 나라의 이름의 불쏘시개로 인해 더욱 세차게 불타오릅니다 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꽃 별 그대 잎 눈 풀씨 하나 그러나 나도 세간 사람들처럼 당신을 시간이라고 불러봅니다 꽃이 별이 아니 시간이 흐릅니다 나도 저만치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갑니다 아아 무랑겁 후에 단지 한 줄기 미소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그대와 나의 시간, 난 찰나를 저축해 영겁을 모은 적이 없건만 이 어이된 일입니까 미소여 미소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솜털 연기 나비라고 명명해 봅니다 엉터리 작명가라 욕하지 마셔요 당신이 흐르기에 나는 이름 지을 따름입니다 흐르는 당신 속에서 난 이름 짓는 재주밖엔 없습니다 때문에 난 이름의 노예, 아직도 난 이름의 거죽을 핥고 사는 한 마리 하루살이에 지날지 모릅니다 아아 당신은 흐릅니다 난 대책없이 당신에게로 퐁 뛰어듭니다 당신은 흐름, 난 이름, 당신은 움직임 아주 아주 미세한 움직임, 나는 고여 있음 아주 아주 미련한 고여 있음, 멀고 먼 장강의 흐름 속에서 무수히 반짝이는 <>의 파도들이여 거품 같은 이름도 흐르고 흐를지면 언젠간 당신에게로 다가갈 좋은 날 있을 것인가요 그런가요 움직임이시여어머니 움직임이시여 고여 있는 <>의 슬픈 반짝임,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유고시인 진이정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희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울릉도>, 유치환

 

p85. 한국의 대표적인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19815월에 탄생했을 때도 그 첫 악보에 달린 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의 한 대목을 다듬어 가사를 만들고 김종률이 곡을 붙인 노래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된 윤상원과 들불 야학을 운영하다가 1979년 겨울에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극 <넋풀이>를 통해 처음 발표되었다.

 

p90.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일부가 개표에 부정이 있다며 시위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종주먹을 들이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들이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그들은 이 노래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민간인>, 김종삼

 

어린이놀이터에, 자은 요람 하나 비어 있다.

루나 파크에, 목마 하나 기수 없이 서 있다.

나무 아래, 꿈에 잠겨, 그림자 하나 앉아 있다.

빛 속에, 실현되지 않는, 먼 침묵 하나.

그리고 언제나, 목소리들 웃음소리들 한가운데, 간격 하나.

 

연못 위에서, 오리들이 잠시 멈춘다.

아이들의 어깨 위를, 나무들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한 아이가 말없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슬픈 발자국소리만 들린다. 아이는 오지 않는다.

 

말 하나가 메리고라운드에서 달아나,

눈을 비비고 줄지어 선 나무들 뒤로 사라진다.

아마도 숨어 있는 소녀 곁에 동무하러 가는가,

고적한 저녁 어둠 속에, 달의 세 번째

네 거리에,

가로등도 꺼진 저 은빛 막다른 골목에

 

- <부재의 형태>, 야니스 리초스

 

98.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다 묻지 마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주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 주

내 친구가 찾아 와도 나 죽었다 말하지 마

 

작가 불명.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셔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셔요.

내 위에 프른 잔디를 퍼지게 하여

비와 이슬에 젖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마음이 내키시면 기억해 주세요.

 

나는 사물의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거에요.

슬픔에 잠긴 양 계속해서 울고 있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겠지요.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 빛 너머로 꿈꾸며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겠지요.

아니, 잊을지도 몰라요.

 

<고블린 마켓>, 노래, 크리스티나 로세티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 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나

눈 내리면 언 땅에나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로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참된 시작>, 그대 나 죽거든 첫 연 , 박노해

 

님은 그 물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건너시었네

물에 빠져 시어지시니

님을 장차 어이하올꼬

 

<공무도하가>, 김 인환 역

 

p125. 모파상은 자기 스승 플로베르의 말을 빌려 어떤 사물이건 그 사물에 맞는 단 하나의 표현이 있다고 했다. 유명한 일물일어설이 그것이다.

 

당신이 가실 때 나는 다른 시골에 병들어 누워서 이별의 키스도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가을바람이 처음으로 나서 단풍이 한 가지에 두서너 잎이 붉었습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내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토막이 납니다

시간의 한 끝은 당신이 가지고 한 끝은 내가 가졌다가 당신의

손과 나의 손과 마주 잡을 때에 가만히 이어 놓겠습니다

그러면 붓대를 잡고 남의 불행한 일만을 쓰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신의 가진 때는 쓰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 내겠습니다

 

<님의 침묵>, 당신이 가신 때, 만해 한용운

 

p130.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 예술이 세상을 낯선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있다. 예술에 희생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희생 뒤에 겨우 예술이 있다. 믿음과 사람이 그렇게 어렵고, 믿음과 사랑이 그렇게 절박하다.

 

놈은 녀석을 낚아울러대 땅바닥에 등짝빡치고,

놈은 녀석을 쭈물떡하고 꼬르락까지 개상직이고,

놈은 녀석을 쪽팍뭉게고 아갈치고 녀석의 귓쌈 으르때리고

놈은 녀석을 쌔리박고쳐 폭시가마솥하고,

하는 일마다 찍에다 갈아대고 갈에다 찍어댄다.

마침내 놈은 녀석을 껍질창시뺀다.

상대 녀석은 우면좌면, 뽀사지고, 흩어지고, 비틀꼬지고, 스러진다.

이러다 녀석은 끝장 보겠다.

녀석은 저를 추스르고 쪼갈맞추고.....그러나 헛일이다.

그리도 내내 굴러가던 굴렁쇠가 넘어진다.

아브라! 아브라! 아브라!

발이 무너졌다!

팔이 부러졌다!

피가 흘렀다!

뒤져보고, 뒤져보고, 뒤져보라

녀석의 배 그 냄비에 거대 비밀이 하나 있단다

손수건에 파묻혀 울고 있는 주변의 할망구들아.

질겁하고, 질겁하고, 질겁해서

그대들을 바라본다

또한 찾기도 한다, 우리들은, 거대 비밀

 

<거대 전투>, 앙리 미쇼

 

p140. 그래서 나는 높고 낮은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묻고 말한다. 병사들을 관리하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생각하라. 낮에만 생각하지 말고 밤에도 생각하라. 생각하기 어려우면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그렇게라도 하다보면 마침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문제도 민주주의이고 해답도 민주주의다.

 

눈동자 이글거리는 점쟁이 피붙이가

어제 길을 떠났다, 등짝에 어린 것들

둘러업고, 또는 저 자랑스러운 배고픔에

는 마련된 보물, 늘어진 젖꼭지를 내맡기고

 

사내들은 번쩍이는 무기를 높이 들고,

제 식구들이 웅크린 마차를 따라 걸아가며,

있지도 않는 환영을 쫓는 서글픈 아쉬움에

무거워지는 눈으로 하늘을 더듬는다.

 

모래 굴방 구석에서는 귀뚜라미가

지나가는 그들을 보고 두 배로 노래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키벨레는 이 길손들 앞길에,

녹음을 북돋아, 바위에서 샘물 솟고

사막에 꽃피게 하니, 그들에게 열린 것은

컴컴한 미래의 허물없는 왕국.

 

<길 떠나는 집시>, 보들레르.

 

p155. 이성복 시인이 20131<래여여반다라>라는 이상한 제목의 시집을 발간했다.......2006년 여름, 진흙으로 빚은 신라시대 불상들이 경주에서 전시되었는데 그 전시회의 표제가 래여애반다라였다. 신라 향가인 풍요의 한 구절로 오다, 서럽더라라는 뜻의 이두문자. 시인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도, 이 이두문자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의역하여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불어오게 두어라

이 바람도

이 바람의 바람기도

 

지금 네 입술에

내 입술이 닿으면

옥잠화 꽃을 꺼낼까

 

하지만 우리

이렇게만 가자.

잡은 손에서 송사리 떼가 잠들 때까지

 

보아라,

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

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보아라,

네 손이 내 손을 업고 간다

죽은 거미 입에 문 개미가 집 찾아간다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

걸으며 꾸는 꿈은

수의처럼 찢어진다

 

<래여애반다라>, 이성복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님의 침묵>, 사랑의 측량, 만해 한용운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없음과 밤의 올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님의 침묵>, 이별은 미의 창조, 만해 한용운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러니 처음

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 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마지막 소리가 바람을 따라서 느티나무 그늘로 사라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 보면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아아 당신은 사라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라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한 덩이의 숯과 소금이 눈을 뜨는 것을 보았다. 불의 장미는 미인의 꿈속으로 파고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한 그릇의 장국 속에서도 그의 견해를 올바르게 피력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끝에는 으레 공작의 꼬리 같은 무지개가 피었으며 그 혈통을 잔인하도록 선명하게 주장했다. 난만하게 퍼지는 것은 빛깔이 아니라 공기 중의 풀잎의 순도 때문이다. 미인은 한 가닥의 순은처럼 꼭 그러한 길에만 나타난다. 청명 때였다. 먼 산이 갑자기 내 이마에 와 멎고, 홀연히 어디선가 청아한 꾀꼬리 울음소리가 한마장의 거리를 달려와 내 귀에 멈추었다. 아무래도 시국이 심상치 않았다.

 

- <우리들의 평화주의 5>, 박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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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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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실었던 시화들을 책으로 엮었다.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와 세태에 대한 황현산 교수의 감상이 주를 이룬다. 교과서에 나온 시인들 이육사, 유치진, 한용운, 서정주, 등등 과 알려진 시인들 (백석, 이성복, 최승자, 김수영, 정현종, 최승자 보들레르, 릴케 등등) 그리고 나로선 금시초문인 시인들의 시- 특히나 진이정-를 만난다.

 

나는 시에 문외한이고 시를 이해할 수 없는 뇌를 가진 걸 한탄하곤 한다. 그런데 간혹 어떤 시를 읽을 때면 완전히 꽂히는 경우도 있다. 김민정, 김경주의 시가 그랬고 최근엔 T.S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가 그랬다. 그런데 답답하게도 소설과 달리 시의 경우엔 그 시가 왜 좋은지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지력의 한계 때문일까?

 

박정만- 황진이

 

국풍 81’을 기억하는가? 어린 시절 국풍 81’에 가서 복권을 샀던 기억이 난다. 10대 아이가 복권을 사도 돼는 건지? 예상외로 다 꽝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흥청망청일 때 한 남자가 무력하게, 어이도 없이, 울분에 가득 차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와 나는 같은 시,공간에 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의 이름은 박정만이었다. 그는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사흘 동안 고문을 받고 풀려난 길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고문을 받는 동안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니!

 

박정만 시인은 사실 시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천방지축이라고나 할까.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논쟁을 즐겨하고 시를 쓰던 시인이었고 출판사 편집부장이었다. 그런데 단지 어떤 소설가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국민들 누구나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 하필 박정만에게 닥친 셈이다. 그 사흘간의 고문이 그의 삶을 완전히 산산 조각내버렸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고 할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단지 고문을 당했다는 이유로 어느새 그는 민주화 열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문당했다는 치욕 보다는 자신이 민주화 열사로 추앙받는 것을 더 부끄러워했다. , 그는 이중의 치욕으로 고통 받았다.

 

숫돌에 칼을 갈 힘이 푸르게 남아있으니 너희들의 살점을 죄 발라먹어야겠다는 복수의 다짐도 잊지 않았지만 연이은 폭음 끝에 결국 그는 간경화로 88올림픽이 끝나는 날, 생을 마감한다.

 

박정만은 그가 죽은 해인 1988년 세 권의 시집을 냈을뿐더러, 죽기 전 보름동안 무려 300여편의 시를 써냈다.

 

문성근이 진행했던 KBS 다큐멘터리 <한국 현대사 인물전>에는 존경할만한 수 십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박정만이었다. 그는 마치 우리의 초상처럼 보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웃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면서 나만 안 당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하지 않는다고 과연 끝까지 안 당할 거라 자신할 수 있나? 그건 단지 우연일 뿐인데?

 

책에 실린 시 중에 가장 좋았던 시는 황진이의 시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시를 어느 책에서 처음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그때 다시 읽어도 곧장 혼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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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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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보름 만에야 읽었다. 성경 <창세기>누가 누구를 낳고에서 멘붕에 빠진다면 <일리아드>누가 누구를 죽이고에서 잠속으로 빠져든다. ‘에고, 언제까지 죽일 셈인가하다 잠들었다. 다음 날,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하는 회의감과 싸우며 읽다 또 다시 잠든다.

 

에고 아직도 죽이고 있네......근데 이 죽는 사람은 누구냐?’ (<일리아드>를 꼭 구입하시길 추천한다. 불면증이 있으신 분들은 끊임없이 죽이는 장을 선택해 읽으면 죽은 듯이 잘 수 있다)


드디어 다 읽었도다. 840페이지를어릴 때 물론 <일리아드>를 읽었었다블로그에 올해는 클리프던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리스트의 책들을 읽고 리뷰 쓰기로 선언했었기에 약속을 지키고자 다시 읽었다. (왜 그랬을까)

 

어릴 때도 <오딧세이아>는 재밌었지만 <일리아드>는 지루했다. 나이가 먹으면 달라질거라 생각했건만 착각이었다. <일리아드>는 고전이라고 하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왜 트로이 전쟁은 일어났을까.

 

어차피 버린 몸. 이 몸을 제물로 바쳐 누구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아도 말할 수 있게끔 정리해보기로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리아드>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아를 침공해 그리스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전쟁이 터졌을까. 트로이 전쟁이 여자 때문에 터졌다는 건 반 쯤 진실이다.

 

일단은 아가멤논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의 왕이다. 그리스는 테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전리품과 여자를 나눠가졌다. 아가멤논은 그때 크뤼세스의 딸 크뤼세이스를 선택했다. 크뤼세스가 딸의 몸값을 들고 아가멤논을 찾아간다. 다들 몸값을 받기를 찬성하지만 아가멤논은 사제를 내쫓는다.

 

크뤼세스는 아폴론의 사제였다. 크뤼세스는 아폴론에게 딸을 되돌려줄 것을 간청하고 그리스인들이 눈물 값을 치르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그러자 아폴론이 그리스 쪽으로 9일 동안 신의 화살을 쏘아대니 그리스인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당장 대책회의가 소집된다. 다들 크뤼세이스를 크뤼세로 돌려보내자고 하자, 아가멤논은 빈정이 상한다.

 

그래? 좋아. 내 여자 내놓을게. 대신 니들 여자를 날 줘. 난 왕이니까. 음핫핫

 

이 말에 그리스 연합군 최고 전사인 아킬레우스가 빡 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이걸 죽여 버려하고는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으려는 찰나 아테나 여신이 아킬레우스를 달랜다. 이 모욕을 참으면 좋은 선물을 주겠다고.

 

여신의 말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죽이지 못하고 사랑하는 브리세이스를 내주고는 바닷가에 앉아 펑펑 울며 엄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게 신세한탄을 한다.

 

엄마, 아가멤논이 내 여자를 뺏어갔어. ~~”

그런 나쁜 놈을 봤나. 알았어, 엄마가 아가멤논 혼내줄게. . 울지 마, 에고 귀여운 내 새끼.”

 

크뤼세이스가 딸을 돌려받자 아폴론도 더 이상 그리스 쪽으로 화살을 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전쟁이 벌어질 이유가 없었다.

 

다 꺼진 도화선에 또 다시 불을 지핀 건 테티스의 치맛바람 때문이다.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부탁한다.

 

아카이오이족(그리스인)이 우리 애(아킬레우스)를 존중하기 전까지는

트로이아인들이 이기게 해주세요, ?”

 

제우스는 헤라에게 눈치가 보여 한때 사랑하던 테티스를 얼른 쫓아낸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마누라 보면 난리난다. 의처증인가봐, 얼른 가.”

진짜죠?”

알았다니까.”

 

제우스는 어떻게 할까 잠을 설치며 궁리를 하다 아가멤논의 꿈에 거짓된 환상을 심어준다.

 

이제야말로 트로이아를 함락할 때가 왔도다.’

 

아가멤논은 꿈에서 깨자마자 긴급히 회의를 소집한다. 그런데, 트로이아를 공략하자고 외치던 아가멤논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홀 때문인지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각자 고향 땅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아가멤논의 말에 연합군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들 귀향준비를 서두른다. 전쟁은 무슨!

 

이대로라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헤라와 아테나가 개입한다. 헤라랑 아테나가 왜? 이 두 여신이 개입한 이유는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이해를 위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우스와 포세이돈 둘 다 테티스를 좋아했다. 테티스는 자신과 결혼하면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신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자, 제우스와 포세이돈 둘 다 겁을 집어 먹고 물러난다. ‘그럼, 형이 ’, ‘아니, 동생이

 

겁에 질린 제우스는 비겁하게 테티스를 인간과 결혼시키려고 하고, 심통이 난 테티스는 죽어도 인간이랑은 결혼 안 할려고 물, , 짐승으로 변신하면서 버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레우스는 지고지순하게 테티스에게 구애해 결국 둘이 결혼을 하게 되는데.......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다)

 

이 결혼식에 에리스 여신이 초대를 못 받는다. 에리스. 불화의 여신. ‘감히 나를 초대 안 해가만있을 순 없다. 에리스는 결혼식 잔칫상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여진 사과를 던져놓는다.

 

어머, 이거 내거잖아하고 달려든 세 여신이 있었으니,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였다.

세 여신은 인간 중에 가장 미남인 파리스에게 심판받기로 하고 파리스를 찾아간다. 세 여신은 몰래 파리스에게 선물을 약속 한다.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주겠다고 파리스를 꼬신다.

 

파리스는 누구에게 사과를 줬을까. 당연히 아프로디테에게 주었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준 절세미인이 바로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다. 헤라와 아테나 입장에선 파리스가 죽도로 미웠다. 근데 이 파리스가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던 것.

손 안대고 코풀 기회를 놓칠쏘냐.

 

아테나는 오딧세우스에게 말한다.

어머, 헬레네 때문에 그렇게 그리스인들이 죽어 나가고, 헬레네를 다시 찾을 생각도 안 하고 고향으로 도망치다니 남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오딧세우스의 일장 연설에 그리스 연합군은 곧장 트로이아로 진격하고 바야흐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삐쳐서 안 간다.

 

여기까지가 24권 중 1,2권까지의 내용이다. 3권부터 24권까지는 안 읽어도 상관없다.

불안하다면 9, 16, 19, 20, 22, 24권을 읽으시길.

 

3권부터 24권의 내용은 단순하다.

싸우는 것이다. 죽이고 죽고.

 

전쟁 중 한쪽이 밀릴 때마다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측이 밀리자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돌려주고 재물을 미끼로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지만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뾰로퉁이다. 그리스 군이 거의 전멸할 무렵 아킬레우스의 시종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하여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추고 전투에 출정한다. 그러나, 헥토르에 의해 죽는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트로이아와 그리스는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우스가 또 엉엉 운다.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 테티스가 또 다시 바람을 가르며 아킬레우스에게 달려온다.

 

엄마, 싸우러 나가고 싶은데 옷이 없어요. 엉엉~~”

알았어. , 울지 마. 엄마가 옷 만들어다 주께.”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제작해주자 드디어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전한다. 신들은 애초부터 전쟁에 관여하더니 이제는 아예 양편으로 갈라져 자기들 끼리 싸운다. 결국 아테나의 도움으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를 죽인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몸값을 대신해 헥토르의 시신을 되돌려 줄 것을 간청하고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내준다. 프리아모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 트로이아로 돌아오며 거대한 서사시가 막을 내린다.

 

(줄거리 상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헥토르의 아내가 헬레네가 아니라는 것이다. 헥토르는 헬레네의 시아주버니다. 헥토르의 아내는 앙드로마케다. 헬레네의 남편인 파리스의 다른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다.)

 

어떤 신들이 그리스를 지원하는지 알아두면 <일리아드>는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포세이돈은 트로이아 왕 라우메돈이 성벽을 쌓아 준 보수를 주지 않아 삐쳐 트로이 전쟁 중 그리스 편에 가담한다.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헤라의 아들인 헤파이스토스, 이들이 그리스 편이고 나머지 신들은 거의 트로이아 편이다. 표로 정리 해볼까.

 

 

트로이아

그리스 (아카이이오족, 다나오스 족)

프리아모스 (아들 파리스)

아가멤논 (동생 메넬라오스)

중요 인물

헥토르 (프리아모스 아들)

아킬레우스 (테티스의 아들)

아폴론, 아레스,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크산토스, 등등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헤파이스토스

주요 인물

아이네이아스(아프로디테의 아들), 사르페돈(제우스의 아들), 글라우코스

오딧세우스, 파트로클로스, 디오메데스, 안틸로코스, 네스토르, 메리오네스, 아이아스 ,이도메네우스

 

 

마리오네트 인간


낮과 밤이 엇갈리는 장기판 위에

하나님이 놀며 두는 힘없는 말들,

이리저리 옮기면서 장군 멍군 찾다가

하나씩 죽어서는 골방으로 들어가네.

 

- 오마르 하이얌, <루바이야트> 중에서


<일리아드>에서 인간들은 신들의 꼭두각시, 마리오네트에 불과하다. 신들은 콜로세움의 상좌에 앉아 노예들의 결투를 즐기는 황제마냥 올림포스 위에 앉아 인간들의 전쟁을 관전한다. 이 당시 <일리아드>는 귀족들, 혹은 왕 앞에서만 불려졌다. 귀족들과 왕은 영웅들과 혹은 더 나아가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신자유주의 사회도 <일리아드>와 구조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가진 자들은 고층의 타워 팰리스 위에 앉아 고급 와인을 마시며 창밖의 노예들을 내려다본다. 우리 노예들은 돈 몇 푼 더 벌자고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며 살아가지 않던가.

 

비유법 : 동물과 자연

 

<일리아드>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1세기 전의 작품이고 <길가메시 서사시>를 제외하면 전승된 인류 최초의 작품인지라 비유법을 유심히 살펴봤다. 역자인 천병희씨도 똑같은 궁금증을 품었나 보다. 작품해설에 호메로스의 비유법을 언급한다.

 

비유법은 주로 전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쓰였다. 역자의 말처럼 크게 동물과 자연의 힘에 대한 비유법이 많다. 자연의 힘은 홍수, 파도, 폭풍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동물들은 주로 사냥에 관계한 비유로 멧돼지, 사자, 사슴, 독수리, , 파리 등이 주로 등장한다.

 

동물들의 비유 중 기억할 만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높이 나는 독수리로, 백성들의 앞을 지나 왼쪽으로 날았는데, 발톱에는 아직도 살아서 버둥대는 크고 시뻘건 뱀을 차고 있었다. 그러나 뱀은 결코 전의를 잃지 않고 머리를 뒤로 틀더니 자기를 움켜잡고 있는 독수리의 목 바로 옆 가슴을 깨물었다. 그러자 독수리가 고통을 참다못해 뱀을 땅에 내던져 무리들 한가운데로 떨어뜨리고는 소리 내어 울며 바람의 입김을 타고 날아가버렸다.

 

12p357

 

이 장면을 보고 폴뤼다마스가 불길한 징조라고 헥토르에게 말한다. 헥토르가 대답한다.

 

나는 새 같은 것은 개의치도 아랑곳하지도 않소.

그것들이 새벽과 태양을 향해 오른쪽으로 날든

아니면 침침한 어둠을 향해 왼쪽으로 날든

, 우리는 위대한 제우스의 조언을 따릅시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인간들과 불사신들을 다스리니까요

 

이 뱀을 물고 가는 독수리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나지 않는지.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비유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었는지 찾아봐야겠다.

 

, 이제 고전 읽기의 다음 타자는 <오딧세이아>.

 

밑줄 친 문장

 

p417. 이렇게 말하고 그녀(아프로디테)는 가슴에서 다채롭게 수놓은 띠(케스토스 히마스) 를 풀었다. 그 안에 그녀의 모든 매력이 들어 있으니, 그 안에는 곧 애정과 욕망과 아무리 현명한 자의 마음도 호리는 사랑의 밀어와 설득이 들어 있었다.

 

p514. “저런, 가련한 것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너희를 어쩌자고 우리가 필멸의 펠레우스 왕에게 주었던고? 불행한 인간들 사이에서 고통받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대지 위에서 숨쉬며 기어다니는 만물 중에서도 진실로 인간보다 비참한 것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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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3-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름만에 완주하시다니 대단하셔요 ~
저는 로마제국쇠망사는 몇 년째 읽고 있는지 모릅니다. ㅜㅜ

시이소오 2016-03-15 08:58   좋아요 0 | URL
ㅋㅋ 그거 엄청 길자놔요? 붉은 돼지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alummii 2016-03-15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대단하세요^^

시이소오 2016-03-15 09:11   좋아요 1 | URL
잘 하셨어요. 저도 선언만 안했어도 포기했을 거에요^^ 가끔씩은 포기가 올바른 선택일 수도 있지요 ㅋ ^^

2016-03-15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고문 읽다가 치워버렸는데, 역시 경계선이었네요 그 대목이.

시이소오 2016-03-15 10:55   좋아요 1 | URL
ㅋㅋ 잘하셨어요 ^^

cyrus 2016-03-15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제목에 `꼬꼬고`는 무슨 뜻인가요?

시이소오 2016-03-15 17:41   좋아요 1 | URL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전읽기의 줄임말입니다. 클리프턴 패디먼이 정리한 평생독서 계획 순서대로 리뷰를 쓰려구요^^

cyrus 2016-03-15 17: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정말 책을 더 가까이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15 17:48   좋아요 0 | URL
2년동안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을 너무 많이 읽었더라구요. 올해부턴 고전위주로 독서할 계획입니다. 격려 감사해요^^

cyrus 2016-03-15 17:50   좋아요 0 | URL
`2년동안`이라면 군 복무를 하셨나요? 왠지 익숙한 문장이라서 여쭤봅니다. ^^;;

시이소오 2016-03-15 17:52   좋아요 0 | URL
아, 네이버 책 블로그 한 게 이달로 2년이 되거든요. 군대 갔다온지 한참됐죠 ^^

cssct 2016-03-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읽기를 시도해보려는데 벌써 두렵네요ㅎ

시이소오 2016-03-16 13:39   좋아요 0 | URL
재밌는 고전 작품도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