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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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서웠다. 여기 그려진 악어 들 중 적어도 한 마리는 나였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 나는 안 그런데라고 생각했었다. 그야말로 병신같은 독해였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를 읽으면서 나는 안 그런데의 독해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만일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안 그런데’, 혹은 모든 남성이 다 악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병신같은 독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명 작가가 말하지 않았나?

 

왜 모든 남성을 악어로 그렸는가

 

물론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것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남성을 악어로 그렸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것이지, 남성 개인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여성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따라가 보세요. 악어의 처지가 아니고요.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안 그런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여성의 입장에서 읽지 않았다는 증거다. 페미니즘은 가해자 남성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당하는 피해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나는 여혐의 대안이 남혐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메갈리안을 일베와 똑같이 취급하는 견해들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폭력의 가해자와 폭력의 피해자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단 말인지? 메갈리아는 여혐에 저항한 최초의 조직적인 연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여성들은 책에 소개된 성폭력에 대응하는 전략들이 도움이 될 것이고, 남성들은 자신이 혹시 악어가 아니었는지 반추해 보는 계기로 삼기에 좋겠다.

 

언제부터일까? 밤길에 여자 뒤에 걷게 되면 반대편 길로 이동해 걷는다. 남성에게 여성은 엄마, 여동생, 누나와 같은 가족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이다. ‘나는 안 그런데라고 변명하는 대신 나도 그랬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이라도 실천한다면 여성들이 남협에 기댈 필요가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남성들이여, 악어가 되지 말고, 우리,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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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렇습니다.언제부터인가 외진 밤길을 걷다가 여자가 앞서 걷는 걸 보면..그냥 다른 길로 걷거나 일부러 걸음을 멈추게 되더군요. 불안한 기미가 딱 보여요. 앞서 가는 여성이 핸드폰을 일부러 꺼낸다던지, 힐끗 뒤를 돌아본다던지... 그게 좀 미안하더군요..

시이소오 2016-08-17 14:00   좋아요 0 | URL
예전엔 저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생각한다는게 억울했는데 여성들 입장에선 불안하죠.
저처럼 생긴것도 이상한놈이 뒤쪽에서 걸으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ㅋ

다락방 2016-08-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말에 친구들과 악어 프로젝트 읽으면서도 독해를 잘못하는 것에 대해 한숨 쉬며 이야기 나눴는데, 시이소오님이 리뷰를 적어주셨네요. 메갈에 대해서도 얘기했었어요. 친구들과 저도 메갈사이트에 접속해 어떤 글이 올라오나 보며 손뼉치고 환호하는 건 아니지만, 메갈 안돼, 그거 제대로된 페미니즘 아니야! 하고 빼애액 거리는 남자들 보면 `내가 메갈이다!`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고요.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님.

시이소오 2016-08-17 14:29   좋아요 0 | URL
ㅋㅋ `내가 메갈이다` 했을때 남자들 반응이 궁금하네요 ^^

stella.K 2016-08-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는 일이시네요. 저는 그러면 걸음을 반보 정도 늦춰보죠.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나를 앞질러 가라고. 근데 나쁜 사람이면 머리채가 잡히는 거겠죠?ㅠ

시이소오 2016-08-17 14:31   좋아요 0 | URL
어우 위험하네요.
스텔라님이 길을 건너시던가 빨리 걸으셔야죠 ^^

기억의집 2016-08-17 16:56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 ㅋㅋㅋ

단발머리 2016-08-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어들은 자기가 악어가 아니라고 하는게 요즘 유행이더라구요. ㅠㅠ
그런 면에서 이런 제목을 뽑으신 시이소오님은 악어 아니신 듯 해요^^

시이소오 2016-08-17 14:50   좋아요 0 | URL
인간이 되고픈 악어 입니다 ^^

yamoo 2016-08-1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지요....기본적으로 창녀촌 가서 여자를 돈으로 사서 섹스를 하는 모든 남성을 저 악어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성폭력자인 남성은 모든 남성이 아닌 여자의 성을 돈으로 산다는 마인드를 가진 남성으로 좁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를 갖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니까요.

여성의 입장에서 이 책을 보세요....저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인 정체성을 갖춘 사람이 다른 성의 입장이 되 본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게 된다면 애초에 남녀 갈등이라는 게 생기지 않았겠지요.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인간일수록 타자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철학사가 증명해주고 있지요. 여성의 입장에서 이 책을 봐라....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여성이 남성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없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의도가 뭔지는 알겠지만 역지사지는 정말 어려운 거 같습니다. 이 책을 읽진 못했지만 쓰인 논조는 어떤 건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군요. 성폭력, 메갈, 일베, 서프레저트....어려운 삶입니다..^^;;

시이소오 2016-08-18 14:42   좋아요 0 | URL
성을 돈주고 사는 남자도 악ㅇㅓ겠죠.

남성이 여성의 입장이 된다는건 분명 어려운 일이긴하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않아요. 설령불가능할지언정 적어두 노력하는것과 의식치 못하는건 다르지 않을까요?

어려운 문제죠 ㅋ
 

첫 전환은 1960년 대 초반의 개발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로의 전환이었으며, 두 번째 전환은 198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제도적 민주주의의 제한적 도입이었다. 세 번째 대전환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주식회사형국가로의 재탄생이었다.

 

이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대한민국의 주주가 아니다. 소액주주라도 되려면 적어도 뭔가를 가져야 한다. 빼앗길 가능성이 낮은 정규직 일자리, 약간의 땅이나 집 내지 아파트, 주식 등 이런저런 형태의 자산, 이들 중 무엇이라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국민의 태생적 권리로 국가로부터 각종 형태의 사회임금(무상의료, 무상교육, 연금, 실업수당, 생계보조비 등0을 받을 자격이라도 가져야 소액이긴 하지만 주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실업수당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임금에만 의존하면서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국민의 상식이다.

 

그렇기에 보다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 체제를 궁극적인 목적지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 길 위에서만, 밑으로부터의 압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현재의 세계체제가 낳은 한 마리 괴물을 다소 순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예산 비율은 10.4%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14년 기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그래도 2년에 1%씩 오르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프랑스(31.9%)나 핀란드(31%)와 비교하는 거야 무리라고 해도, 경제력이 한국보다 훨씬 약한 에스토니아(16.3%)와도 격차가 꽤 크다.

 

가장 큰 요인은 성장 신화의 지속이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 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의 생계 안정을 이룩한 부모 세대의 지원에 힘입어 실업자가 돼도 굶을 일은 없는 많은 젊은이들은, 한편으론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면서도, 한편으론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자기 탓으로 쉽게 돌린다.

 

재벌경제가 아무리 수출을 잘해도 다수의 삶이 나빠지기만 하는 경험을 앞으로 몇 년은 더 해야,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 길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인가. (26)

 

삼성 노동자 중에는 이미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이 56명에 이르고, 적어도 1(14년동안 방독마스크나 보호구없이 위험물질을 다루었다가 2011년에 사망한 김진기 씨)의 경우에는 산재사망이라는 공식 판정까지도 나와 있지만, 이는 대다수 언론에서 뉴스도 되지 못하고 주류사회에서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몇 해 전 서울대 학생들이 기업 살인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으리라고 판단되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초빙교수 임용에 반대해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사건화도 잘 되지 않는 기업의 탐욕에 의한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서 관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몇 해 전, 조선대에서 13년이나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해온 서정민 박사가 자살했다. 그의 유서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의 지도교수가 정규직 임용을 미끼로 그로 하여금 54편이나 되는 논문을 대필하게 하는 등 문자 그대로 논문 제작 기계삼아 이용해왔다는 사실이었다.

 

노엄 촘스키의 명언 중 이 말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최악의 학살자는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벌이는 졸개들이라기보다는,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다.”

 

그러나 관피아와 함께 이 학살이 일어나도록 공을 들였으면서도, 관피아보다 훨씬 더 그늘에 가려 있는 초대형 조직은 바로 학피아, 즉 정부, 기업들과 긴밀히 유착돼 있는 대학가 내지 학계다.

 

이미 1969년에 촘스키는 베트남 침략의 원흉으로 아서 슐레진저나 새뮤얼 헌팅턴처럼 효율적인 제 3세계 개입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어용 정치학자들을 지목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세 대통령의 하나의 공통점을 지적하자면, 그들 누구도 감히 서울대 마피아라고 호칭할 수 있는 학벌조직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대학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지만, 그 일부 (성균관대, 중앙대 등)를 아예 재벌기업이 소유하는 한국만큼 천박한 신자유주의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세월호에서 수장당한 아이들에게, 시장주의와 순응주의가 당연시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 온 고등교육기관 교원인 우리가 속죄하자면, 이제라도 학피아의 테두리를 안으로부터 과감히 부숴야 한다.

 

전교조의 전국 평균 가입률은 20% 정도이며, 보수적인 교총에 비해 인적 규모는 약 3분의 1밖에 안된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자면, 전교조와 흡사한 진보적 성격의 일본교직원조합의 전국 가입률은 약 28%이며, 미국 같은 경우에는 교육 부문 전체에서 조합 가입률이 35%.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들먹이지만, 복지의 모범국인 스웨덴은 교사사회의 노조 가입률이 80%를 넘는다.

 

박근혜가 광적인 증오심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양심의 문제다. 조합의 힘이나 조합원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한국 교직 사회에서 전교조는 양심을 대표한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한국적 교육 체제의 특징인 고질적인 사학 비리에 맞서왔고, 또 촌지와 같은 악질적 관행의 근절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체벌과 같은, 병영화된 학교에서 만연한 억압과 하급자에 대한 인격말살에 저항해오거나 비판적이었다.

 

한국에서 약간이라도 출세하려면 어디까지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2013년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S그룹 노사 전략문건이다.

 

문제 인력은 과연 누구인가? 삼성어에서 일반적인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이들은 친사’(어용)노조가 아닌 진짜 노조를 설립하려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회사의 충견이 해야 할 일은? 일차적으로는 수시로 감시하면서 유사시 징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2012S그룹 노사 전략문건은 잔혹성과 냉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문건의 텍스트에는 수십 명의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고, 앞으로 또 수십,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낼지도 모를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사고 문제는 단지 이슈화가 되어서 화사 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줄 수 있는 악재정도로 다루어진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동감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SK그룹 창업주의 조카인 최철원 (M&M 회장)이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감히일인시위를 벌이던 훨씬 연상의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힌 일이 있는데,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징역 16개월에 집행유예 3, 봉사시간 120시간이었다.



 

능력, 능률이데올로기를 관통하는 심성적 코드는 크게 봐서는 세 가지다. 첫째, 타자들과의 부단한 비교를 통해 자율적 자아 발전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둘째, 무한 경쟁인만큼 무한 공포를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다. ‘무능력자로 지목돼 낙오될까 봐 유아기부터 눈칫밥 먹으면서 내심 부들부들 떠는 것은 능력주의 사회의 일상이다.

 

셋째, 외부 권력자가 하급자에게 심어준 열등감의 내면화, 즉 권력이 지정한 의 위치에 대한 수치심이 섞인 순응이다.

 

세 번째 코드는 대타적 비교에서 늘 자신에게 나쁜 점수를 준 사람은 결국 모든 게 내 무능력 탓이오로 일관하며 자신에 대한 배제와 억압과 착취에 맞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저항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주된 기능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 시대를 떠들면서 개인의 경쟁력 갖추라고 설교하는 어용 지식인들은 바로 이와 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저성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남유럽 수준의 경제 파탄에는 이르지 않은 한국의 자살율이 이미 세계 최악의 경제 참사를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의 자살률보다 10배나 높은 이유는 과연무엇인가?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들처럼 능력주의는 사실상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스트레스, 열등감, 자책을 안고 불안 속에서 떨어야 하는 사회는 단기 수익은 더 올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침몰로 간다. 인간의 진정한 능력은 남들과의 경쟁적 비교가 아닌 남들과의 연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창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성적순으로 재단되는 실력의 저주에서 벗어나 남들과 연대하면서 자기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간이 살길이다!

 

국내 보수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비용 저효율을 탓하지만 통계적으로 봐서 한국은 고임금 사회가 전혀 아니다. 근로자 평균 연봉(3000만원)은 일본의 약 80%, 독일이나 프랑스의 60%, 미국이나 캐나다의 50%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고학력자들의 취직 경쟁은 더 치열할 때가 많고 노동시간은 훨씬 길고 노동강도도 훨씬 세다.

 

신자유주의는 어디에서나 노동자에게 잔혹하지만 박근혜 시대의 한국만큼 노동자를 구조적으로 쥐어짜고 조직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사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사용자가 직장 내 공포 분위기 조성에 이용해 먹을 것이 불 보듯 뻔한 고용노동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같은 문서를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읽는다면 19세기 말 착취공장의 이야기로 오인할지도 모른다.

 

한상균이라는 전국 노동자 조직의 대표자를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서 구속하는 국가를, 과연 한국 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가?

 

한데 국정원이 엿들었던 이야기들이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전시의 시절 파괴와 같은 허언장담이라 해도, 이를 내란예비 음모라고 말한다는 것은 무리수에 속한다. 형법 87조의 내란의 정의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인데, 대한민국 일부 영토를 떼어서 불법적 정권을 만들거나(국토 참절), 국헌을 문란케 할 만큼 전국적인 폭동을 일으키려면 130여 명 (게다가 그 중의 상당수는 무기도 다룰 줄 모르는)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간첩 단체에 대한 소설 격의 이야기를 제조하는 것이 국정원의 특기인 셈인데, 이 정도면 비과학 판타지 소설로 봐야 할 듯하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접어들어 국가보안법 기소율은 노무현 시절에 비해 약 2~3배 뛰었다. 2007년에 86, 2008년에 56건의 기소가 각각 집계됐지만, 2013년에 165건의 국가보안법 기소라는 신기록이 세워졌다. 미국의 국무부마저도 악법으로 인정한 법의 내용이야 그대로지만, 그만큼 그 활용의 범위가 넓어졌다.

 

수감 중인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600여 명), 세계 평화 수감자의 90% 정도를 이룬다. 국가보안법 사범, 수감된 노동자, 병역거부자, 밀양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강정마을 주인과 평화운동가.....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양심수들의 나라, 산업화되고 형식적 자유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나라들 중에서 양심수를 가장 많이 양산하는 전형적 인권유린국이다.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파업을 벌이는 노조의 지도부를 무조건 무더기로 구속하지 않는다. 대처마저 1984~1985년 광업 노동자 파업 투쟁을 탄압하면서도 그 지도부를 구속한 적은 없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3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20세기 후반기 유럽 역사상 가장 치열한 투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남한 지배층이 통일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답변은 간단하다. 남한 지배층은 사실 내부 동질성이 강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이다. 주요 재벌과 관벌(전직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등) 그리고 언론재벌, 재벌언론들을 보면,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벼슬을 하거나 기업을 경영했던 그 조상들이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저들은 혼맥으로 철저히 이중 삼중 연결돼 있으며, 서울의 몇 군데 특정 동네에서 살며, 자녀들을 같은 학교나 같은 대학에 보낸다. 이들이 한국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 서열 상위 1%가 개인 소유의 땅 50%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주식부자 1%가 시가총액의 63%를 소유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합의형 통일이란 결국 기원이 다른 북한 지배층과의 권력 나누기를 의미할텐데 , 저들은 그 누궁와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 차라리 분단의 영구화가 저들에게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 주류의 살아있는 아이콘인 백선엽 장군이 항일운동가들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대한민국 지배층으로서 역사를 보는 기본 시각 자체를 본질적으로 바꿀 필요가 생겼다.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바로 이 작업을 의미한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바탕으로 쓰여, 조선인이 일군에 입대해 장교가 되고 일군과 거래해서 이윤을 추구했던 것이 우리나 발전을 위한 애국이라는 식으로 서술되면 친일파는 바로 애국자가 돼 대한민국 지배층의 기원이 완벽하게 정당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머지않아 곧 닥쳐올 경제위기의 폭풍이 다수에게 생존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아 십만 명이 아닌 백만 명이 광장으로 나가게 되면, 저들의 오산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전체 병원 중에서 공립병원은 병원 수 기준으로 6%에 불과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도 10% 정도뿐이다. 참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은 73%.

 

예컨대 2014년에 타이(태국)에서 군사정변이 일어나 헌정은 정지됐다. 현재 타이를 철권통치하는 사람은 그 군부의 실력자인 쁘라윳 짠오차 장군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바로 사법 처리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 자체가 금지됐지만 이 군사정권이 외국자본에 친화적인 만큼 서방 언론에서 거의 비판되지 않는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철폐시키지는 않았지만, 거의 무력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그 통치 기간인 13년 동안 해고를 당한 비판적 기자만 해도 1863명에 이르고 수십 명은 어용화된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로 영어의 몸이 됐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권은 연성권위주의로 불릴 만하다. 매체에서의 불균형 보도(즉 정부에 대한 비판)를 사법 처벌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켜도, 대부분의 매체들이 순응주의적 태도를 보여 굳이 그 악법을 사용할 필요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파괴와 재권위주의화는 아마도 터키와 헝가리 사이의 중간적 수준에 해당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 같으면 국내외 재벌들의 정권이라 해도 어폐가 없으리라고 본다. 1930년대의 파시즘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반동운동으로서의 측면도 있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신권위주의는 철저하게 위로부터의 사회재편에 해당한다.

 

역사란 과거로 투영된 현재의 정치다소련시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미하일 포크롭스키의 이 말은, 특히 전통적으로 역사인식이 강한 동아시아에서 실감난다.

 

박정희 시대의 근본적 성격이란, 병영국가와 자본의 본격적 성장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성장을 박정희의 공로로 돌리면 안 된다. 세계 자본주의 황금기 (1950~1970년대) 시대인 박정희 시절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세계시장과 연동돼 미증유의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60~89년 사이 한국과 대만의 평균 연간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보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각각 6.82%6.17%)

 

한국의 고속 성장은 당시 자본주의적 동아시아 국가로서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뿐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농업 경제에서 공업경제로 이동하고 있었던 핀란드는 이미 1950년대 후반에 보편적 국민연금을 창설하고 1970년에 무상의료를 도입했다. 굳이 북유럽이 아니더라도 1960~ 1970년대는 복지주의의 중요한 도약기였다. 한국과 여러모로 비교가 가능한 대만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험의 도입은 이미 1958년에 이루어졌다.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갔던 북한에서는 이미 1960년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도입됐다.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박정희라는 희대의 기회주의자가 당대의 세계적 경제흐름을 잘 타서, 태평양 전쟁 총동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종신집권을 꾀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수출 의존과 군사주의적 국가, 재분배의 부족과 같은 박정희의 유산들은 우리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 것이다.

 

한국 군인들이 베트콩을 두려워하는 베트남 농민들을 살려주는 구세주로 설정돼 있는 지점에서, 이는 어떤 이념적 입장인가를 넘어 특히 베트남에서 지금도 생존해 있는 한국군 잔혹행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2차 가해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서사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미군에 의한 흥남철수와 쌍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한 베트남 마을의 부두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구출 및 철수 작전이다. 영화의 논리 차원에서는, 한국군이 미군의 민간인 구제를 본떠 행함으로써 한국이 일종의 2 미국’, 하나의 아 제국이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전쟁의 본질을 흐리고 국가범죄를 은폐시킬 뿐 아니라, 이 서사는 매우 강력한 아 제국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볼 때, 베트남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국제시장>은 단순히 보수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한국 현대사라기보다는, ‘국익가족의 신성한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경제적 성취를 무조건 우선시하는 만큼 개인의 독립적 개성이나 인권을 소거시켜 버리는 극우적 사고방식을 현대적으로 포장하여 다시 유포시키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천해를 기억하는가? 울산 출신의 승려이자 계몽운동가로 1921년에 도쿄로 건너간 그는 거기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나아가서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일본 공산당으로 흡수되고 나서는 일본 공산당의 중앙 위원이 됐다.

 

 

친일은 결국 일본이라기 보다는 일제를 가리킨다. ‘친일파는 정확히 말하면, 일제 식민당국이라는 정통성 없는 권력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거래를 자발적으로 진행한, 특히 이미 광의의 지배자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점하려 하는 피식민 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그들의 행위는 민족적 배신이라기보다는 무법적 권력에 대한 부역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최근에 새로이 각광받은 <게공선>으로 유명한 일본의 프로문학자 고바야시 다키지를 기억하는가? 공산당원인 그는 <1928315>이라는 소설에서 경찰들의 고문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공교롭게도 본인도 결국 검거당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렇다면 친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 행위다. ‘민족을 떠나서 이런 행위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곳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친일 행위는, 국내적으로도 토착사회 위에서 군림하는 폭력조직인 식민 당국의 일원이 되고 폭력 종범이 되는 것을 의미했지만, 국제적으로도 일제의 가해행위에 가담하여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민족 배신보다는, 국내외적 권력형 폭력에의 가담이야말로 친일파 문제의 핵심이다.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되찾는일이라기보다는, 폭력 사회에서 정상 사회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광복 70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파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광복 100주년이 돼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절대적 보호 아래서 반공의 보루가 되어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친일파들이 구사해온 식민지적 대민 통치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경우를 보라. 그를 조준해서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의 행위를, 마땅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로 규정해야 한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고 억압적 느낌마저 강한 민족 정기가 아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권력과 폭력이 거의 동의어가 된 이 사회에서 아이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한국 사회 폭력화의 한 주범인 친일파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결국 사회 전반의 탈폭력화의 한 출발점이 되기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뜨겁게 열망한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중국을 잠재적 주적으로 삼는 미--한 삼각 군사동맹의 공고화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미국의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실을, 20147월에 체결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 정보 공유 약정이 잘 보여준다.

 

중국을 겨냥하는 미-일의 공격적인 패권 전략에 말려들어 한반도의 전장화 위험까지 감수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일까?

 

가장 무서운 것은, 식신민지적 상황이 미군의 총검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친미 지배 엘리트와 미국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와 밀접한 유착으로 유지. 심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불법 정보 수집 행위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며, 미국의 제1호 가상 적도 바로 중국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몇 년 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중국은 당연히 그 어떤 전쟁도 바라지 않겠지만, 중국보다 월등히 강한 부문이라고는 군사 부문밖에 없는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를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계속해서 잠재적 침략굮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영세중립등의 가능성들을 꼭 배제해야 하는가?

 

2014년 초 동남아시아로부터의 세 가지 소식이 많은 국내인들을 놀라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최대의 의류업체로 통하는 영원무역에서 임금 삭감이 이루어지자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경찰의 실탄에 맞아 죽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약진통상의 저임금에 신음해온 노동자들의 시위에 군대가 실탄을 발포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냈는가 하면, 또 베트남 삼성전자 건설 현장에서 현지 노동자에 대한 경비 직원의 폭력이 결국 봉기를 방불케 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저항을 유발했다.

 

대들기만 하면 바로 무력 진압이 벌어지게끔 하는 식으로 군림하는 한국 자본은 임금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류업계인 반면, 베트남에서 현지 노동자에 대한 구타가 발생된 곳은 삼성전자의 공사장이었다. 삼성전자의 국외생산 비중은 이미 80%를 넘었는가 하면,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약 60% 정도다.

 

2008년에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농지의 상당 부분을 헐값으로 임대하겠다는 노예계약을 체결했다가 그 여파로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정권이 아예 무너지고만 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 기업의 개도국 농지 약탈이 국제적으로 비판받은 일은 있었지만, 다른 나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거래들은 대체로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

 

2014년 여름, 3차 세계대전의 서곡을 목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치열한 전투들과 함께 20148월에 그 서곡은 참혹함의 극에 달했다. , 세계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같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로 일종의 제3차 세계대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뿐이다.

 

100년 전과 같은 정면충돌이 완충지대에서의 대리전 등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지금 대리전이 휴전협정으로 잠깐 멈춘 우크라이나도 그런 완충 지대의 하나다. 실은 한반도도 바로 미국과 그 잠재적인 적대자인 중국 사이의 완충지대에 해당한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리전이 꼭 최초도 아니었다. 시리아에서의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 이란의 대리전은 이미 수년째 접어들며 20만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시리아가 한국전쟁 직후의 한반도 이상으로 황폐해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황폐화하는 사이에 미국, 유럽, 러시아의 군수기업들은 치솟는 매출고로 쾌재를 불러왔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새로운 형태의 세계대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계 지배자의 두 패인 구미권 자본과 준주변부 대국들의 자본 사이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 중 누구도 완충지대 민중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시리아나 우크라이나에서의 도살극이 저들에게 이익이 되는 이상 계속 이런 사태들의 장기화를 도모할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반도 전장화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 미 갈등이 앞으로 한반도의 전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남북관계 개선부터 매우 시급하다. 일단 공동 군축 등을 할 만큼 남북한 사이의 신뢰를 쌓는 것부터 급선무다. 이것은 정치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정의도 생존도 건강도 노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피해자들에 의해서 그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배자들이 실감해야 비로소 오늘날보다 약간 더 살 만한 사회가 윤곽이라도 잡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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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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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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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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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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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1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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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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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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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할 수 있을까. 나는 박노자의 모든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헬조선 시대, n포론, 흙수저로 통칭대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왜 민란이 벌어지지 않는 걸까. 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요인은 성장 신화의 지속이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 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의 생계 안정을 이룩한 부모 세대의 지원에 힘입어 실업자가 돼도 굶을 일은 없는 많은 젊은이들은, 한편으론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면서도, 한편으론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자기 탓으로 쉽게 돌린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한 경쟁시대의 능력주의와 내 탓이오그리고 원자화, 파편화된 개인주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활약을 한 이들은 이른바, 지식인, 학자 그룹, 혹은 학피아들이다.

 

최악의 학살자는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벌이는 졸개들이라기보다는,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다.”

 

- 노엄 촘스키.

 

학피아 학살자들. 이들은 청년들에게 우정을 버리라며 경쟁력만을 부르짖는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청년들은 경쟁에서 낙오될 경우, 그 결과를 오로지 자신 탓으로만 돌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11년간 자살율 1위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친구가 적이 되어버린 무한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점차 파편화, 고립화, 원자화 되어간다. 이들에게 과연 연대가 가능할까

 

친일파가 왜 문제일까?

 

박근혜는 광복절 연설에서 건국 68주년이라고 말했다. 왜 이게 문제일까? 박근혜를 비롯한 새누리당, 뉴라이트 들은 광복절건국절로 이름을 바꾸려고 지랄발광들인데 왜 그런걸까? ‘건국 68주년이란 말은 상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면 온몸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았던 친일파로서는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왜 오늘날에도 친일파를 얘기해야 할까? 

 

친일은 결국 일본이라기 보다는 일제를 가리킨다. ‘친일파는 정확히 말하면, 일제 식민당국이라는 정통성 없는 권력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거래를 자발적으로 진행한, 특히 이미 광의의 지배자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점하려 하는 피식민 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그들의 행위는 민족적 배신이라기보다는 무법적 권력에 대한 부역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 행위다. ‘민족을 떠나서 이런 행위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곳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민족 배신보다는, 국내외적 권력형 폭력에의 가담이야말로 친일파 문제의 핵심이다.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되찾는일이라기보다는, 폭력 사회에서 정상 사회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친일파들은 결국 무볍 권력에 대한 부역 행위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았다. 용납할 수도 없는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이 자들이 대한민국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상위1%가 되어, 뻔뻔스럽게도 역사를 왜곡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광복절을 건국절이라 칭하고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발악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치 않고 4.19 민주이념을 도외시 한채 이승만을 우상화하는 뉴라이트와 새누리당, 박근혜, 이들은 명백히 대한민국 헌법에 침을 뱉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한다? 빨갱이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을 경시하고 부정하는 자들을 저대로 놔둬야할까.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선 안 되는 이유

 

광복절 연설에서 박근혜는 사드 역시 언급했다.

 

사드 배치 역시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자위권적 조치였습니다. 저는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는 이런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맞다. 사드 배치는 국민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다. 그런데 왜 지멋대로 결정하는 걸까.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에서 사토 마사루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을 3차 세계 대전의 징후로 보았다. 반면 박노자는 우크라이나 내전 자체가 이미 3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내전은 미-러 전쟁의 대리전이었고, 우크라이나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만큼 폐허가 되었다. 이 책은 사드 배치 결정 이전에 씌어졌다. 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을 겨냥하는 미-일의 공격적인 패권 전략에 말려들어 한반도의 전장화 위험까지 감수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일까?

 

가장 무서운 것은, 식신민지적 상황이 미군의 총검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친미 지배 엘리트와 미국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와 밀접한 유착으로 유지. 심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불법 정보 수집 행위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며, 미국의 제1호 가상 적도 바로 중국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몇 년 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중국은 당연히 그 어떤 전쟁도 바라지 않겠지만, 중국보다 월등히 강한 부문이라고는 군사 부문밖에 없는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를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계속해서 잠재적 침략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영세중립등의 가능성들을 꼭 배제해야 하는가?

 

사드는 전문가들의 말대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다. (북한에서 미사일 쏜다고 사드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사드 배치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ㅁㅊㄴ

사드를 놓았을 경우와 사드를 놓치 않았을 경우, 한반도 전장화 가능성, 한반도에서의 미-중 대리전 확률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우크라이나가 황폐화 되는 동안 미국, 유럽, 러시아의 군수 기업들은 쾌재를 불렀다지.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반도 전장화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 미 갈등이 앞으로 한반도의 전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남북관계 개선부터 매우 시급하다. 일단 공동 군축 등을 할 만큼 남북한 사이의 신뢰를 쌓는 것부터 급선무다. 이것은 정치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

 

오히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한반도를 전장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말대로 단지 정쟁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과연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한반도를 전장화해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작금의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이대로 내버려둬야 할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로 믿는 바,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된다는 것,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에는 삶, 자유 및 행복의 추구 등이 포함된다는 것,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정부들이 수립되며, 이들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 연유한다는 것, 어떠한 형태의 정부라도 그러한 목적들을 파괴하는 것이 될 때에는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버려 새 정부를 수립하되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이룩할 것 같이 보이는 그런 원칙들에 입각하여 그 토대를 마련하고 또 그런 형태 하에 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는 것 등이다.

 

- 미국 헌법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좋아하는 미국의 헌법이다. 국민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파괴하는 정권은 언제든 국민에 의해 없앨 수 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권은 존재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민란이 안 일어날 것이라고? 부마항쟁이었지. 부디 아버지의 말로를 기억해라


송로버섯과 캐비어를 처먹으니 국민들은 개돼지로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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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8-1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드배치반대합니다!

시이소오 2016-08-16 08: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드 배치 결사 반대입니다. ^^

2016-08-16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6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이 역사를 요약해서 잘 전달해 주셔서 머리에 쏙쏙 박힙니다.

시이소오 2016-08-16 16:2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애초에 박노자씨가 귀에 박히게 말씀을 하셨죠. 누가 안 된다면 다행입니다^^

singri 2016-08-1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원해 시이소오님은 요즘 저의 사이다 ㅋㅋㅋ

사드는 물렀거라 미국은 10만서명보고 뭐라할까요? 그네는 암생각도 없고 걱정이 몰려옵니다.

시이소오 2016-08-16 16:24   좋아요 0 | URL
시원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책을 읽으면서 시원했다가 정신나간 그네생각에 골치가 이프더라구요 ㅋ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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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신년사에서 69년을 싸우면서 건설하는 해로 하겠다고 발표한다. 서울지검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피카소 크레파스’, ‘파카소 수채화 물감등을 생산하던 삼중화학공업 대표 박정원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제품의 판매 및 광고를 금지시킨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피카소가 공산당원이라는 것.

 

3선개헌을 위한 작업도 계속되었다. 전국의 역술계에선 정도령론이 휩쓸었다. 한상범은 정도령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68년 영구집권의 발판으로 3선 개헌을 합리화하는 공작에 그(박정희)역술인이란 직업을 가진 무당, 점쟁이, 관상가 등을 대대적으로 조직, 동원했다. 그들은 전국 조직망을 거미줄처럼 얽어 박정희가 정도령이고 민중 대망의 진인이며 미륵불의 헌선이고 도래한 메시아라고 떠들어댔다.”

 

개헌을 지지하는 정체불명의 정치 단체들도 속출했다. 박정희는 67년 총선 때 “3선 개헌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수없이 말했고. 68년엔 내가 만약 3선 개헌을 한다면 김상협 의원 당신도 단도를 들고 나에게 덤벼라. 당신들에겐 당연히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까지 말했었다.

 

613일 신민당 원내 총무 김영삼은 국회 본회의에서 “3선 개헌 음모는 제2의 쿠데타이며, 개헌 음모의 총본산은 중앙정보부라고 비판했다. 1주일 후, 620일 밤 김영삼은 자택 근처에서 괴한 3명에게 피습당한다. 괴한들은 김영삼에게 초산을 퍼부었으나 차창이 닫혀 있어 피해는 없었다.

 

박정희는 닉슨 독트린 때문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의 정상회담을 갖는다. 박정희는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제공할 용의가 있으며, 또 필요하다면 핵무기 설치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한국은 약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인다. 베트남 파병은 많은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 신화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는 한진그룹이다. 한진 그룹은 월남 특수 5년동안 13천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한진 그룹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693월 대한항공을 인수해 대재벌로 도약하기 시작한다. 베트남 특수를 들어 베트남 파병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대해 한홍구는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특수의 최대 수혜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매년 우리가 베트남 특수의 전 기간에 벌어들인 금액보다 훨씬 많은 달러를 벌어들였다. ...20명의 병력을 파견한 대만, 한 사람의 병력도 파견하지 않은 싱가포르나 홍콩이 베트남 특수를 누리지 못하거나 냉전의 정치경제적 논리 속에서 선택적으로 개방된 미국 시장에서 배제되지는 않았다.

 

한국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명 피해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멍에에, 미국 용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베트남전에서 얻은 경제적 소득은 겨우 2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한 대만이 얻은 소득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전사자는 5천 명, 부상자는 16천명에 이르렀다. 한국군의 대량 사망은 은폐된 채, 신중현 작가 작곡, 김추자 노래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만 울려퍼졌다.

 

53년부터 66년까지 해외 유학한 사람은 모두 7398명이었다. 이중 귀국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상류층 자제들, 이른바  ‘돈 있고 백 있는 놈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돈없고 가난한 이들만이 월남에서 피를 흘려야 했다.


 

64년엔 무즙 파동이 있었다. ‘무즙 파동이란 64127일 전기 중학입시의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가운데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시험 문항의 답안이 빚어낸 사건이었다.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당시 보기 가운데 하나였던 무즙도 정답이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법원에 제소했고, 나아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솥 채 들고 나와 무즙으로 만든 엿을 먹어보라는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결국 이 무즙 파동6개월 이 지나 무즙을 정답으로 인정, 떨어진 학생 38명을 경기중학 등에 입학시키며 일단락 된다.

 

67년엔 창칼 파동이 있었다. 서울시대 전기 중학교 미술문제 중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은 어느 것인가?”의 정답이 두 개라는 것이었다. 서울중학교 낙방생 학부모 549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해 불합격 처리됐다

 

그만큼 국민들은 너도나도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66년 봄 한국부인회는 치맛바람 자숙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KS병도 생겨났다. KS (경기고 서울대)병이다. 이에 69년 서울에서부터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제가 실시된다. 이른바 뺑뺑이’. 71년에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69년엔 패티킴 노래의 <서울의 찬가>가 유행했다. 전체 인구에서 농촌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2%에서 70년에는 59%로 감소했다. 도시화율은 6028.3%에서 7043.1%로 뛰어올랐다. 60년대의 10년간은 전 셰에서 유래가 없는 압축적도시화의 시기였다. 66년에서 70년 사이 서울 인구 증가는 한국 전체 인구 증가의 77%를 차지했다. 이에 정부가 취한 대응책은 강남 개발이었다.

 

1226일엔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완공되면서 강남은 서울생활권으로 들어오게 된다. 3한강교 기공식 이후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로 불리우는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난다. 당시 강남은 영동이라 불렸다. 영동지구 개발사업에서 사업비 충당용으로 책정된 체비지 가운데 일부 땅은 정치자금용으로 박정희에 제공되었다.

 

영동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70년에 학동은 20, 압구정동 25, 신사동 50배까지 오른다. 이때 등장한 용어가 복부인이다. 비판의 화살은 투기를 부추긴 정부가 아니라 아줌마의 탐욕에 돌려졌다.

 

개발 열기는 남산에까지 미쳤다. 케이블카, 재향군인회관, 야외음악당, 남산순환도로, 야외음악당, 어린이 회관 등등. 손정목은 남산 외인아파트를 인간이 얼마만큼 바보일 수 있는가의 극치를 알려주는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왜 남산이었을까? 김현옥은 주로 고지대에 아파트를 지었다. 왜 그랬을까? 국장과 과장들이 아파트를 너무 높은 곳에 지으면 위험하고 불편하지 않냐고 이견을 제시했다. 김현옥은 말했다지.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와우아파트는 7048일 붕괴했다. 33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박정권은 강남 개발을 하는 동시에 서울 빈민을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킨다. 청계천 일대를 비롯한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145천명의 주민들 역시 광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경기도 광주에는 뭐가 있었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의 상징은 고층건물과 자동차였다. 70년 삼일빌딩이 준공되었을 때 전국민이 자랑스러워했다지.

 

<사상계>는 몰락한 반면 여성지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67<여성동아>가 복간했고, 69년엔 <여성중앙>이 창간된다. 여성지 시장은 <주부생활><여원> 과 함께 4파전을 형성해 간다.

 

신문들은 계속 배를 불린 반면, 기자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현명한기자들은 촌지를 챙기는 것으로 가계를 꾸려 나갔다. 청와대 출입 기자 가운데, 청와대 대변인이 불러주는 대로 기사를 써주고 5천불의 촌지를 받는 기자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박정희와 닉슨의 정상회담장 주변엔 월남전 반대 시위가 요란했는데도, 기자들은 수많은 시민들이 손에손에 태극기과 성조기를 들고 박 대통령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거짓보도까지 햇다.

 

박 대통령 전세기가 뜨지 못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 경호원 할 것 없이 텔레비전, 냉장고 까지 사서 전세기에 실었기 때문이었다. 소장 언론인들인 <동아일보>의 유혁인, 최영철, 이동복, <한국일보>의 임방현, 임홍빈, ,조선일보>의 이종식, 동양통신의 김성진 같은 기자들이 예외 없이 변절해, 박정희의 총애와 은혜를 입었다.

 

43일엔 미원, 미풍 조미료 광고방송 사건이 있었다. 미풍 조미료 제조회사인 삼상 계열의 제일제당과 미원 조미료 제조회사인 미원주식회사가 조미료 원료인 이노신산 소다를 일본에서 불법적으로 몰래 들여온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동양방송은 미풍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미원이 밀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만 보도했다.

 

영화계에선 김지미, 엄앵란, 최은희, 태은실, 이후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의 새로운 트로이카 체제가 구축된다. 관객동원에서 69년은 한국영화사상 최고조를 이룬 해로 기록된다. 영화관객은 6919400만 명으로 최고 기록을 수립한 이후 70년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게 된다. 텔레비전의 영향 때문이었다.

 

88MBC TV가 개국한다. 이후 TBC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716일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아폴로 1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미국 공보원은 남산 야외음악당에 대형 TV 스크린을 설치, 17일엔 생중계, 22일엔 녹화중계를 방송한다. TV는 또한 만화방이 갖춰야 할 필수 품목이기도 했다. 만화방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70년 전후로 이때 전국 만화방은 약 18천 개 였다.

 

68년 코카콜라, 69년 펩시콜라의 한국 상륙은 TV 광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

 

10월엔 클리프 리차드 내한공연이 있었다. 여고생과 여대생들이 손수건과 속옷을 무대로 던진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성들의 충격 탓이었을까. 71년엔 리처드의 국내 공연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신중현 작사, 작곡 박인수 노래 <봄비>는 새로운 감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박정희는 67년에 중정에게 공무원 부정부패 단속 지시를 내린적이 있었다. 중정이 단속에 뛰어들었는데 할 수가 없었다. 부패 공무원이 너무 많아 행정과 치안이 마비될 지경이었기에. 이맹희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만드는 데 에 들어간 뇌물만 5억 원이었다.

 

당시는 어느 기업이나 모두 공장의 건설이나 외자(차관) 도입에 연관되어 정부나 혹은 박 대통령에게 적절한 대가를 전해야 했다. 삼성전자를 설립할 당시 내 기억으로는 5억 원을 주었던 것 같다. 이 액수는 당시 차관액의 약 3%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박 대통령과 적절한 라인이 있어서 비교적 액수가 적었던 셈이었다.”

 

박 정권하에서 정치자금 징수는 공화당 재정위원장만의 몫이 아니었다. 힘을 쓸 수 있는 모든 권력자들이 다 동원되었다. 69년 하반기 어느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학렬은 현대건설, 대림산업, 극동건설, 삼부토건, 동아건설 사장 5명을 소집한다. 3선 개헌과 71년 대선과 총선을 위해 돈을 내놓으라는 이유였다.

 

박정희는 돈을 뜯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수족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뿌려댔다. 박정희는 장군들이 청와대로 인사를 오면 서울에서 양옥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주었다.

 

60년대엔 박정희의 비호아래 약 40개의 기업이 거의 모든 산업을 독점했다. 기존 산업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약 120여개의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913, 3선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다. 14일 새벽 250, 공화당 및 무소속 의원 122명은 야당 의원들이 점거한 국회 본회의장을 버리고, 길 건너편 국회 제 3별관 3층 특별위원실에 집결해 개헌안을 25분만에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국회의장 이효상은 의사봉이 없자 직원이 가져다 준 주전자 뚜껑으로 책상을 탕탕탕쳤다.

 

922일 중정은 가장 격렬한 개헌 반대운동을 벌인 ‘4.19 6.3 범청년회소탕 작전을 개시한다. 모임 사무총장이었던 최형우는 중정에 끌려가 20여일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의 죄명은 3선 개헌을 반대해서 사회를 혼란케 했으니 북괴를 이롭게 한 용공분자라는 것이었다.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1017일로 예정되었다. 박정희는 밀가루 대통령’답게 돈과 밀가루를 퍼붓는다. 김종필은 개헌안이 부결될 경우 군부가 다시 쿠테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며 국민들을 협박한다. 개표결과 투표율 77.1%, 찬성률은 65.1%였다. 각 지역별 찬성표 비율에 따라 총 60만 달러의 보상금이 차등 지급된다.

 

3선 개헌이 통과되면서 김형욱은 폐기처분된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에 김형욱 대신 김계원을. 비서실장에 이후락 대신 김정렴을 앉힌다.

 

박정희는 이승만 하야 직후 이승만에 대해 동정적인 사설을 쓴 이병주에게 이런 반론을 펼쳤따.

 

그거 안됩니다. 그에겐 동정할 여지가 전혀 없소. 12년이나 해먹었으면 그만이지. 사선까지 노려 부정선거를 했다니 될 말이기나 하오? 우선 그,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돼먹지 않았어요. 후세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춘추의 필법으로 그런 자에겐 필주를 가해야 해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고 할까? 여기서 잠깐. 박정희는 이승만을 돼먹지 않는 놈이라 말했는데, 이승만을 국부라 하는 것들은 박정희 말을 무시하는 건가? 박정희를 무시하는 건가


아놔, 돼먹지 않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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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라이트는 진실이 어떻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승만, 박정희를 숭배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고 합니다.

시이소오 2016-08-15 19:14   좋아요 0 | URL
뉴라이트 사법처리를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건국절이라는 말은 상해임시정부를 인정치않겠다는건데,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것들은 국외추방해야죠.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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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70년대의 남북관계는 적대적 공존관계였다. 한쪽이 긴장을 고조시키면 다른 한쪽 정권의 입지가 강화되었다. 그러다보니 서로 닮은 꼴이 되었다. 이종석은 그런 관계를 거울영상효과라고 부른다.

 

박 정권은 자주, 자립, 자위, 주체, 국방, 경제 병진 건설 등 60년대 북한 정권이 즐겨 사용했던 말들을 60년대 말부터 빈번히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유신체제 형성 뒤에는 더욱 일반화해서 사용하였다.”

 

68121일 새벽 4, 북한 산 비봉에 31명의 젊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116일 개성을 출발한 김신졸르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단이었다. 김신조 일당은 청와대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제지 받지 않았다. 자하문 고갯길에서 최규식이 강경 대응하자 공비들은 기관총을 난사한다. 공비들은 시내버스 헤트라이트 불빛을 국군 출동으로 착각하고 시내버스에 세 발의 수류탄을 투척한 이후, 각자 도주한다. 김신조 한 명만 생포된다. 나무꾼이 무장공비를 신고한 건 119일 오후 2시였다. 그러나, 군경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분노한 박정희는 미국 대사 윌리엄 포터를 불러 북을 공격해야 겠소. 이틀이면 평양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하고 말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포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북을 공격하시려거든 혼자 하십시오.”

 

1.21 사태가 일어난 지 이틀 후 123일 동해상에서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영해 침범으로 북한에 억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승무원은 모두 83명이었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 앞 바다 배치, 항공호함 2척을 추가 배치, 공군전투기 361대를 이남으로 전진 배치했다. 미국이 청와대 습격보다 푸에블로호에 더 중점을 두자 박정희는 분노한다. 박정희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염려한 미국은 대통령 특사 사이러스 밴스를 한국에 파견한다. 밴스는 1억 달러의 추가 군사원조 등으로 박정희를 달래는 한편 베트남에서 한국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할 경우, 미국은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한동안 푸에블로 음모론도 등장했다. 미국이 상호 갈등을 빚고 있던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 미국은 이미 정찰위성과 정찰기의 최신예 레이더로 북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 정보함을 북한 영해 가까이 보낼 필요가 없었다. 2. 푸에블로호에는 기관총을 비롯, 제대로 된 방어 무기가 없었다. 3. 나포 당시 미 공군이나 해군의 즉각적인 구원 작전도 없었다. 등이 제시되었다.

 

1.21 사태로 야당 입지는 위축되고 반공이 지상명제가 되었다. 41일 향토예비군이 창설된다. 주민등록법1.21 사태로 통과된다. 1121일부터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이 발끕되었다.

 

반공 교육은 물론 반공법 적용도 강화되었다. 68년은 미군들이 한국 사람을 린치한 신문기사를 놓고 술자리에서 미군을 욕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빨갱이로 무수하게 두들겨 맞고, 택시에서 한두 마디 박정희 비난을 했다가 그대로 남산으로 실려가 빨갱이 앞잡이라고 매타작을 당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이 무렵에는 마누라와 정사를 하는 배 사이에도 중정의 촉수가 파고들어 있다고 하는 세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박정희의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자는 김종필이었다. 김종필은 권력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고, 박정희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력을 계승해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김형욱은 끊임없이 김종필을 괴롭혔다. 이런 와중에 국민복지회 사건이 터진다. 김종필의 측근들이 반국가단체를 조직, 대통령 각하를 비난했다는 것. 이에 김형욱은 김종필의 측근들을 정보부로 연행, 고문한다. 김종필은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824일은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이 터진다. 158명이 검거되고 50명이 구속되었다. 공소사실은 김종태, 이문규 등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공산정권 수립을 꾀하였으며 북괴로부터 자금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사를 돌아보면서 중정, 안기부, 국정원의 조작질은 정말 이제 지겨울 정도다. 어떻게 수 백번이나 똑같은 조작질을 벌이는데도 국민들은 가만히 있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억울하게 죽어야 국정원 같은 조작 단체가 없어질려나.

 

5명이 사형당하고 신영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중형을 언도받았다. 김종태는 잡지 <청맥>을 발간했다. <청맥>에 드나들던 멤버 중 한사람이 육군 중위 신영복이었다. 신영복은 2020일 복역하고 88815일에 가석방된다.



 

1030일 울진, 삼척에 130명의 무장 공비가 침투한다. 군은 1224일까지 110명 사살, 5명 생포, 2명 자수의 전과를 올린다. 남한 측은 군인 33, 민간인 16, 부상 37명이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 9살 이승복도 포함돼 있었다. <조선일보>는 이승복이 죽기 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특종을 보도한다. 완벽한 소설이었다. 조작 기사였다.

 

68년 이후 20년간 이승복의 반공 영웅화가 국가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교과서에 실렸고, 반공 웅변대회에서 이승복은 필수 소재였다. 이승복 노래도 만들어지고, 동상이 세워지고 기념관까지 건립되었다.

 

90년 이후에야 와서야 교과서에서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이은상, 박종홍, 이인기에 의해 국민교육헌장이 만들어진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니,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니.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3선 개헌을 위한 분위기 조성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동아일보 기자인 김진배와 박창래는 <신동아> 6812월호에 <차관>이라는 심층보도 기사를 실었다. “차관이 정경유착의 표본이며 정치자금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두 기자는 구속되었다. 다른 언론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신문은 완전히 중앙정보부 손으로 넘어갔다.

 

이 대신 <주간 중앙>, <선데이 서울>, <주간 조선>, <주간 경향>이 창간했다. <주간 한국>의 발행부수는 68년에 이르러 40만 부에 달했다. <선데이 서울>은 창간호 6만 부가 2시간 만에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언론의 치열한 상업성 추구는 박 정권이 바라던 바였다. 박정권은 언론에게 각종 특혜를 베풀어 언론이 오직 상업적 성장에만 몰두하게 유도한다. 특히나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박정희가 베푼 특혜에 힘입어 신문사 건물과 코리아나 호텔을 짓기 위한 상업차관을 일본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들여온다. 7~8%의 상업차관이었다. 당시 국내 금리는 연 26%였다.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서울 신문 등이 중앙정보부와 손을 맞잡고 사옥을 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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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14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68년부터 `북풍`이 존재했군요.. 지금까지 애용되는 정치 공작의 역사는 정말 유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시이소오님,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8-14 15:10   좋아요 2 | URL
몇십년동안 똑같은 짓거릴해도 매번 당하는 국민들이 있다는게 이해불가네요. 이게 무슨 닭대가리도 아닌데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ㅋ ㅠ 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이런 글 읽으면 속이 뒤비지는데.....

시이소오 2016-08-14 15:15   좋아요 0 | URL
답답하죠. ㅠ ㅠ

겨울호랑이 2016-08-14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민들이 문제를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알게된 후에는 좀처럼 잊지 못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시이소오 2016-08-14 15:41   좋아요 2 | URL
그렇게 믿어야겠죠. 겨울호랑이 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

깊이에의강요 2016-08-1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종북...ㅋ

시이소오 2016-08-14 20:25   좋아요 1 | URL
저는 북한도 싫어요

깊이에의강요 2016-08-14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알려주거나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지 않나요?
무슨 말인지 생각도 안해보고 앵무새마냥 종북종북.

시이소오 2016-08-14 21:08   좋아요 1 | URL
진실을 알려주거나 바른말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께요 ^^

깊이에의강요 2016-08-14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한 싫어요

마르케스 찾기 2016-08-15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북한이,,, 좋은데ㅋㅋㅋ 북한 정권, 김부자 옹호 세력이 싫을 뿐ㅋㅋ 헌법에 북한도 독도와 같은 대한민국 영토라 되어 있다네요.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ㅋ).. ˝남 북˝의 지도자들이 어찌 그리 다 자기들만 잘살려드는지,,,, 박정희도 싫고, 북한 김부자 정권도 싫고,, 힘없이 매번 당하는 남북 국민들(우리)만 안타까울 뿐,,, 대한민국은 동서로, 남북으로, 정권세력과 국민으로, 세대차로, 심지어 남녀로,,, 너무 나눠져 있는 거 같아서 안타까워요ㅋ 잘 읽고 갑니다.

시이소오 2016-08-15 18:32   좋아요 1 | URL
ㅋ 맞는 말씀입니다. 김부자가 싫은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