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게 말을 걸다 - 글 읽는 기쁨, 글 찧는 즐거움
오정화 지음 / 북포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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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서 발견하는 독서의 기쁨

  언제부터인지 공부가 너무나도 힘들어지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릴때 호기심과 기쁨의 시간이었던 독서를 멀리하게 된건 언제 부터 일까요? 다시 그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지만 삶의 무게와 상황에 금방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에게 말을 걸다>는 기쁨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필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책에서 얻어지는 생각을  토론을 통해 함께 나누어요.

  <책에게 말을 걸다>의 중요 코드는 책, 독서, 글쓰기, 토론입니다.즉 좋은 책을 고르기, 책 읽는 요령, 글쓰기의 노하우, 읽은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토론하기는 본 서의 가장 큰 주제들입니다. 여러 지역에 산재한 독서 모임을 소개하고 모임에서 하는 일과 토론에 참여하는 분들이 쓴 수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독서를 혼자 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할때 더 큰 유익함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중국의 문학가 구양수는 글에 대한 삼다(다독, 다작, 다삼량)를 말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깊이 헤아려 생각하기를 말한 구양수의 글을 보며 <책에게 말을 걸다>가 말하는 함께 토론하기를 추가해봅니다. 
  1차 독서가 책 읽기라고 한다면 2차 독서는 책 듣기라는 저자의 말처럼 독서 토론의 시간은 나 이외의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며 내 마음의 책과 함께 비교하는 시간입니다. 한권의 책을 여러번 읽을때 얻어지는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 듣는 경청과 의견나눔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서 토론의 유익함을 배웁니다. 

독서의 이유, 좋은 책과의 만남

  <책에게 말을 걸다>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열 가지로 소개합니다. 독자는 저자의 열가지 이유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서가 주는 유익함을 시간적인 이유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시간적 이유를 들어서 책을 못읽는다고 한다면 책을 읽을 마음이 없거나 혹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막연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한줄의 문장이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마음에 품고 생각하며 조금씩 읽는 행동 또한 독서입니다. 
  <책에게 말을 걸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책과의 만남을 마치 결혼을 빗대어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좋은 책과의 ’첫선’을 볼때 유의할 점과 ’조강지처’가 될 책들에 대한 조언 그리고 책과 결혼해서 신혼을 보내는 시간들의 설명이 참 재미있습니다.

글을 읽는 다는 것 그리고 나눔의 시간들

  <책에게 말을 걸다>는 글을 읽는 이유와 뚜렷한 목적 의식과 목표 의식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지금까지 망설이며 책 읽기를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상황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수기를 소개하여 용기와 참여 의식을 고취합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느낀바를 함게 나눌 수 있도록 토론의 장으로 까지 연결하는 저자의 의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를 나만의 것으로 한정시키기 보다는 함께 나눔을 통해서 보다 높은 효율성과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지내는 지혜를 함께 나누고 더불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고 지향하는 우리들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요? 책 읽는 독서의 시간과 나눔의 시간도 마찬가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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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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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연사의 명 연설

  에드워드 험프리가 모은 연설집을 번역한 <위대한 명연설>은 34명의 41편의 연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중들을 향한 외침에는 연사들의 마음과 생각이 담겨 있으며 듣는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당대의 뛰어난 인물들이라고 해서 모두 명연설가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연사들의 외침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때로는 후대에 재평가되어 명연설로 남기도 하고 가치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41편의 연설을 통해 독자는 진정한 연설이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교나 화려한 문장력을 바탕으로한 대중 지향적인 연설 혹은 독백문과 같은 전달 방식이 아닌 연설들이 <위대한 명연설>에 담겨있습니다. 역사 속 연설의 장면에 서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명연설>은 당시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육성 기록이 담긴 mp3파일을 제공합니다. 

명 연설 속 청중을 향한 마음

  청중을 향한 마음의 모습에서 <위대한 명연설>에 수록된 첫번째 연설은 튜더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연설을 살펴봅니다. ’황금의 연설’로  알려진 이 명 연설에는 44년간 영국을 통치하면서 영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세우는 여왕의 위대함과 자애 넘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연설을 듣는 청중을 지속적으로 추켜세우며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영광을 함께나누는 여왕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연설을 비롯한 다른 연설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명연설에는 청중을 향한 짙은 애정과 관심 그리고 청중을 향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청중들은 비록 듣는 입장에 있지만 연설문은 마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복수의 대상이 아닌 한사람 한사람에게 적용되어지는 대화를 요구하는 연설은 듣는 청중들을 더욱 집중하게 되고 연사들과 함께 길을 걷습니다.

시대정신, 미래를 향한 외침은 후대에 재평가되어진다. 

  <위대한 명연설>속 연설들은 연설되는 순간 열렬한 환호를 받거나 명연설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비판적 여론 앞에서 그 가치가 폄훼되기도 하며 시대정신의 대립 각 속에서 부각되었다가 새롭게 바뀌는 시대정신 가운데 재평가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연설은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처칠의 연설과 로널드 레이건의 '이 장막을 허무시오'를 예로 들 수 잇습니다. 두 연설은 시간이 흐를 수록 그리고 이후에 펼쳐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더욱 주목 받는 연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연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명연설>에는 두 편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있습니다. ’당선연설’과 인종간의 연대를 강조하는 ’완벽한 연합’은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의 것이지만 두편의 연설의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후대에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상승할 것입니다. ’시대정신’을 담아 ’미래를 향한 외침’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남기고 어떻게 평가될지 기대됩니다. 

동양의 명연설 그리고 한국의 명연설을 기대하며

  <위대한 명연설>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연설문들이 영어권에서 낭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동양에도 뛰어난 연설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을 좋아합니다. 세분 모두 청중들을 향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연설로 명연설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시대정신의 혼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설은 큰 힘과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발표되는 담화문과 연설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지나치게 수비적이거나 일방적인 형식의 연설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바라보며 좋은 연설의 필요성과 가치를 다시한번 생각하며 <위대한 명연설>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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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
최재석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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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앎'의 경계지평

 

  최준석 교수의 글은 문학에 대한 이해와 이를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오해하는 이들에게 문학적 소양에 대한 가르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돈독함을 지키는 가운데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외면하거나 혹은 관심의 대상에서 멀리 두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가치'해보이고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도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지 말것을 주장하는 모순된 논리에서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가르침.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알기 위한 도구"를 이해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생각해 봅니다. '<왜?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는 앎'을 추구하는 대상이 '문학'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에 대한 이해임을 먼저 전제로 합니다.

 

성경 속 문학 찾기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문학적 기법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우선적으로 히브리 문학양식들이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명명된 다양한 문학적 기법들과 비유설명, 복음서의 기록방식에 드러나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배열 등은 성서가 단순히 받아쓰기형태로 기술된 글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비유를 통한 다양한 설명을 사용하심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데 문자적 해석과 알레고리적 해석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합니다. 천국과 복음 그리고 인자에 관한 다양한 진술등은 당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예수님의 설교가운데 전해졌습니다. 또한 이를 기록한 후대의 제자들이 사용한 문학적 기법들은 청중들과 공동체의 삶의 정황에 맞게 편집되어 전달됩니다.

 

문학 이해를 통한 성경 접근 방식의 장단점

 

  <왜?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는 문학적 양식에 대한 사용을 인정하고 동시에 그것을 통한 성경 접근의 유용성과 부정적 견해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문학과 예수님의 공통점이 인간이해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문학의 경우 인본주의적 색채를 향해 나아가지만 예수님은 인본주의이상의 신주체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을 문학으로 놓고 바라볼 경우 우리가 가지게 되는 문제점으로 '성경 안에 담겨진 신앙과 믿음에 대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저자의 강조는 매우 적절하고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는 기본적으로 믿음의 증언기이게 문학이라고 하는 형태로 정의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성서문학이라는 특별한 장르를 가지게 됩니다. 문학 비평의 단점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서에서는 신앙적 내용이 문학적 형식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의 인간이해와 문학의 인간이해

 

  <왜?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의 핵심적인 내용은 3장의 기술된 예수와 문학 이해라는 주제입니다. 겸손과 인간이해 그리고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이해와 문학에서의 이해는 완전한 동일함을 갖추기는 어렵지만 서로 완전히 상반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가르침을 문학에 접목하여 전달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문학에서 추구하는 인간 이해에 기독교 가치와 이해를 함께 넣을 수 있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저자가 문학의 인간이해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든 그레이엄 그린의 '권능과 영광'은 좋은 설명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앎'은 전통에 의지한 율법주의적인 고정관념 깨뜨린다.

 

  문학적 소양을 쌓는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앎'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이해하는 도구와 틀로서 '앎'을 문학적 소양의 역할로 한정짓거나 절대화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이해와 존중과 겸손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율법주의를 비판하듯이 '문학적 요소에 접목된 신앙'은 오늘날의 신율법주의와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보태준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문학작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간 이해를 위한 이들의 선택지를 바로 잡기 위한 '문학'과 '신앙'의 결합을 위해서는 신앙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적 체험'을 경험한 이들의 '문학'영역으로의 확대가 가지는 장점들과 역할은 여러가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정통신학만을 강조한 나머지 '문학'을 외면한채 혹은 '문학'을 절대화한 나머지 '신앙'을 외면한채로는 어떠한 옳은 답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가?>는 단순히 '인간 이해'를 위한 수단으로서 '문학적 소양'을 쌓을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책은 '앎'을 통해서 더 넓은 이해와 지평의 경계를 확대하여 서로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아우르고 포용할 수 있기 위한 자세를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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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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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신화에서 헤브라이즘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서양사상은 크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의해영향을 받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양사상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근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서양 사상의 수많은 곁가지의 몸통이자 뿌리인 두 개의 축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축의 시작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영웅들의 대표인물인  약관의 나이에 등장한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해낸 업적은 대단히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단순히 정복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흩어진 문명의 힘을 하나로 묶어낸 초석을 다졌다는 점입니다. 이런 초석을바탕으로 오늘의 서양문명을 이룩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합니다. 신화는 국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길을 따라 지중해에 위치한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정적인 위치에 서서 사유하는 것을 즐긴 그리스의 사상이 지중해로 퍼져나가는 현장에서 우리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화의 시대 인간의 시대

  신화시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외국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전설이 아닌 그들의 전설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수간에 미쳐지는 수많은 서양 사상들이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보면 신화는 빼놓을 수 없는 영역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화를 보고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옛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 곁은 서양사상을 읽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서양 사상의 근원이 된 그리스 로마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정의 갈길이 멀기에 출발점은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로 설정합니다. 신화와 인간 영웅의 사이에 서있는 테세우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헬레니즘 문화를 다룰때 독자는 신화가 사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영웅의 모습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가 가지고 있는 주제는 영웅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로마시대의 영웅들입니다. 하지만 영웅들에 대한 이미지와 정의에서 약간의 혼란을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1권에 등장한 테세우스와 알렉산드로스 그리고 스파르타의아버지 뤼쿠르고스는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대현자 솔론과 아테나이의 의인 아리스테이데스의 등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2권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철학자들로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이며 그 가운데 몇명은 정치와 관계된 인물들입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에서 등장하는 영웅의 기준과 우리의 기준의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태생적 한계와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사회에 영향을 미쳐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오늘날 까지도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라는 설명을 필자는남겨봅니다. ’영웅’하면 떠오르는 인물들과 철학자들이 나란히 설수 있는 이유는 영웅에 대한 기준때문입니다. 

헬레니즘을 지나는 기나긴 여정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우리 곁에서 오늘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서양한 다양한 문물들과 문화의 유입에서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서양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2권에 등장하는 퓌타고라스의 정리를 수학시간에 배우듯이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되는 영웅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2천년이 넘는 시간을 너어서 이야기 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오늘의 서양 사상으로까지 연결하고자 했던 저자 이윤기씨의 여행은 또다른 서양 사상인 헤브라이즘 까지는 도착하지 못합니다. 
고인의 죽음이 <그리스 로마영웅 열전>을 마지막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서양사상을 잘 이해하고 동양적인 우리 정서에 맞게 변화시킨 문체가운데 이해에 도움을 주었던 작가 이윤기님의 여정의 마침표는 헬레니즘의 신화시대에서 인간 영웅의 시대까지입니다. 
 쉼없이 달려서 함께 해온 동반자이자 지침서가운데 하나였던 이윤기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을 소장하며 진한 아쉬움을 남겨봅니다. 고인이 되신 작가분의 여러 글들 그 가운데서도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보며 한국에 미쳐진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영웅이 쓴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이라는 제목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영웅이 전해주는 그리스 로마의 영웅열전 그리고 열전 속에 드러나는 교훈과 사상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짧고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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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 -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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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외조, 낯설지 않은 이들과의 만남

저자 조민기는 '멋진 남자'에 대한 열망을 구체화 시켰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평생의 짝을 찾기 위해 '머신 남자'를 만나기를 희망하지만 
'멋진 남자'가 누구인지는 막연한 기대감만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막연한 이상형을 구체화 시키고 '진짜 멋진남자'를 찾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외조: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전공을 살려 독자적으로 동서고금의 남자들을 조사하니그 수많은 세월 속에 먼지와 함께 감춰져 있던 멋진 남자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멋진 남성'의 조건?

<외조: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는 성공하고픈 여자를 위한 조언으로 다음을 말합니다.
주변에 휘둘리어 서둘러서 선택하지 마라
외조를 받아 성공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자질을 준비하라.
성공하는 여성들에는 훌륭한 남성들의 외조가 함께 하고있었음을 명심해라
먼 옛날에도 훌륭하고 성공한 여성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성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일이었다.

여기서 필자는  인류사회에 공헌을 할 정도로 성공하는 이들의 모습이 탄생하기 위해준비되어지는 수많은 과정들은 우리 모두가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이미 결혼을 한 필자는 과연 '멋진 남자'일까?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안겨주지 못할지라도 평범함 속에서나마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를생각해봅니다. '멋진 남자'는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멋진 남자'가 나타날 수 있는가능성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외조: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할때그들의 외조는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신뢰하며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용기를 복돋우며, 어려움을 나누고 무엇보다 외조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평범함이 가장 특별함을 만들어 낸다라는 만고 불편의 진리가 이 책에 드러나 있습니다.)

<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멋진 남성'를 위한 책

<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은 아내를 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남자들을 위한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 책은 여성들의 안목을 키우고 올바른 판단을 독려하지만 동시에 '진짜 멋진 남성'이란 누구인지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성공의 가도를 달려나가는 남성은 사람들에게는 인정받는 남성일지는 몰라도 아내와 가족에게는 '멋진 남성'이 아닙니다. 
진정한 '진짜 멋진 남성'이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꼭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조의 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혀를 차던 남성들이 있다면
<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자신을 보며 혀를 찰 듯싶습니다.

'진짜 멋진 남성'이 넘치는 세상

저자는 글의 말미에서 진짜 멋진 남성이 넘치는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글은 모든 여성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핸섬', '재력', '권력', '남성미'가 특화된 남자들이 아닌 '진정한 멋진 남성들'이 세상에 넘쳐난다면 우리의 삶과 크게는 역사 또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솔직한 바람을 전공을 살려 발굴해낸 '멋진 남성'을 제시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역사 속 '멋진 남성'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멋진 남성'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외조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외조'는 무언가를 특별히 요구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가운데서 그리고 그 평범함을 온전히 실천하는 가운데서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멋진 남성의 삶의 자세' 자체가 '외조'라는 정의를 끝으로 
<외조: 성공한 여성을 만든 남자의 비결>을 마치고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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