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미국 여성들은 어떻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까? 답은 이렇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사전 예고 없이. 이런 식이다. 갑자기, 예기치 않게, 완전히 미친 여성은 보안관에게 체포된 자신을 발견한다. 새벽녘에 침대에서 끌려 나오거나, 대낮에 길거리에서 "합법적으로 납치된다." 또는 아버지나 남편이 법적인 문제로 자신을 도와줄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여성은 남편의 말만 듣고 따라나섰다가 자신을 "미쳤다"고 공증하는 판사나 의사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P102

술에 취해 구타를 하는 남편들은 지속적으로 구타를 하는 방식으로 아내를 정신적으로 감금한다. 또한 다른 여성과 살거나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감금한다. - P103

19세기에서 20세기를 살았던 네 명의 여성—엘리자베스 패커드, 엘렌 웨스트, 젤다 피츠제럴드, 실비아 플라스 휴스—은 다양한 정신병 ‘증상’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다. - P104

이 네 여성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에 치명적일 정도로 충실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수년 동안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부정당했다. (중략) 그들은 자유를 향해 투쟁했지만, 그것을 너무 뒤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불성실, 사회적인 배척, 감금, 광기 그리고 죽음이란 대가 말이다. - P105

정신질환 보호시설로 보내진 일부 여성들은 스스로 뭔가 정말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좋은 집안 출신에 재능 있었던 캐서린 비처(Catharine Beecher, 1855)와 페미니스트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1886)은 엄청난 피로감과 우울증 때문에 도움받기를 원했다. 비처는 수년간의 고된 집안일로, 길먼은 출산으로 인해 스스로 가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성별은) 지상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행복(집안 살림)을 상상하라고 교육받았는데 그것은 근심과 실망, 그리고 슬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극단으로 이끌었다. 나라 전체에서 여성들의 건강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성은 스스로를 비난했다. 자신의 증상을, 관습적으로 ‘여자의 일(혹사)’이라고 여기는 일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항의할 수 있는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비처와 길먼은 자신들이 얼마나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자신들이 받은 다양한 정신과 치료가 얼마나 더 큰 악영향을 미쳤는지 묘사했다. - P113

대다수 정신과의사들은 남편의 ‘의지’를 대리 실행한 대리인이었다. 엘리자베스 패커드의 간수 겸 정신과의사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정신질환 판정을 위한 증언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맥팔랜드 막사는 패커드가 ‘정신적으로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뒤 ‘후미진 병동’에 그녀를 방치했다. 패커드는 맥팔랜드의 ‘치료’가 남편의 의지에 아내를 복종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간파했다. 그녀에 대한 ‘치료법’은 감금과 다른 여성들을 위한 가사노동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씻겨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들을 위로했고 그들을 구타로부터 막아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강제 노역에 참여하기로 ‘선택했다’. - P118

이들 네 명의 여성은 ‘벨 자’ 안에 존재한다. 정신병원 안이건 밖이건 어디에서나, 그들에게 광기와 감금은 여성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동시에 이런 상태를 극복하고 거부하려다 결국 성공하지 못한 시도의 표현이었다. 광기와 정신병원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험을 비추는 거울 상으로 기능하며, 감히 여성이 되지 않으려고 시도하거나 그것을 욕망하는 것뿐 아니라, 여성이 된다는 것에 대한 벌칙으로 기능한다. 그와 같은 도전이 심각하고도 극적일 만큼 진행되면 (늦거나 이른 자살을 통한) 죽음이 뒤따르게 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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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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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라틴어 수업은 저자가 서강대학교에서 2010년부터 근 6년간 강의했던 수업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라틴어는 지금 쓰이지 않는데다 공부하기도 어려운 언어(단, 복수, 인칭에 따른 변화 등이 복잡함)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생활 속에서 라틴어를 많이 만날 수 있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읺는다. (예를 들면 유비쿼터스, 아우디, 스텔라, 에쿠스 등)


저자는 라틴어를 꼭 배워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문법에 얽매여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수업 내용들도 라틴어 문장이나 명구를 제시하고 이와 얽힌 경험이나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하였디. 물론 라틴어 단어와 문법을 간단히 소개해놓아서 라틴어 도입 지식은 익힐 수가 있다. 


무엇이든 관심이 있으면 더 빨리 배울 수 있다고 하던가. 나의 경우도 관심이 있어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진단이었다. 우리는 수능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하며 상대 평가에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유럽 대학은 절대 평가로 이루어지며 성적을 매기는 표현도 부정적인 단어가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교육은 경쟁에 너무 매몰되어 있고 성적에 연연한다는 생각이 든다. 


[75] 유럽 대학의 평가 방식은 대부분 절대평가로 이루어집니다. 라틴어로 성적을 매기는 표현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평가에 쓰이는 표현을 단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Summa cum laude 최우등

Magna cum laude 마냐/마그냐 쿰 라우데 우수

Cum laude 쿰 라우데 우등

Bene 베네 좋음/잘했음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대학 진학율이 높은데도 만족율은 높지 않으며 졸업을 한다고 해도 더 이상 좋은 취업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정말 대학 교육의 목표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중세에는 3과와 4과의 학문을 공부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키웠다는데 오히려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너무 후퇴한 게 아닌가 싶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처럼 고전을 읽고 지력을 키우고 나눔과 토론을 통해 여러 생각을 듣고 나눌 수 있는 것이 교육의 목적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29]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학문을 하는 것도 레퍼런스를 위한 인덱스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가면 카테고리별로 장서를 분류해 꽂아놓는 것처럼 우리의 지식도 각자의 책장에 칸별로 분류를 하는 작업이라고 느낀다. 어디에 있는지 알면 책은 나중에라도 또 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제자들이 수업을 듣고 난 후의 소감들이 실려 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인상적으로 들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수업이든 백 퍼센트 만족은 어려울 것이고 학생이 수업을 통해 어떤 배움이라도 얻어가는 게 있다면 그 수업은 가치가 있는 수업일 것이다.


딱딱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인생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는 좋은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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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7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논술문제집? 이름 중 하나가 숨마쿰라우데 더군요 ㅎㅎ 저도 이 책 좋아서 단어들 적어 놓고 그랬어요 *^^*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1-12-17 17:03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런가요? 논술문제집 풀어본지가 오래되가지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네요^^; 역시나 최우등을 선택했군요. 좋은 책은 다 알아보는 법인 것 같아요. 따뜻한 댓글 감사드려요.
 
신조협려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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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조협려는 김용 삼부작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부작의 시작점으로 알려진 사조영웅전을 2017년에 드라마로 접하고 김용의 무협에 빠져들었다.

바보 같은 곽정이 짜증이 나고 답답하면서도 황용을 만나 사랑을 하고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과 호쾌한 무술을 보는 매력도 있어 좋아했다.

그런데 사조영웅전이 최고라 생각했었던 내가 2014년 신조협려 드라마를 보고 빠져들었다.

주인공의 비주얼로 논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CG가 많이 어색한 걸 제외하곤 스토리가 재밌어서 금방 빠져들었다.

재밌어서 2~3번을 연달아 봤던 것 같다.

그리고는 신조협려가 왜 김용 3부작 중 더 많은 사랑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주제로 담고 있어서 감정 이입이 많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특히 캐릭터가 선과 악으로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점이 좋았다.

대부분의 인간은 선과 악의 감정을 다 가지고 있고 둘 중 어느 것이 좀 더 표출되느냐에 따라 달라질텐데 신조협려 캐릭터들이 어느 것 하나 치우친 면이 덜해서다.

완벽하지 않고 조금씩 흠결이 있어서 정감이 간다고 해야 할까.

악인으로 분류되는 캐릭터도 어느 한 구석은 장점을 보여주는 식이다.


인상적인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기억에 남는 인물부터 정리하면 이막수, 황약사, 주백통, 곽부만 이야기해보겠다.


이막수는 악인이지만 악함 뒤에 숨겨진 배경이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막수의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배신당했을 때의 슬픔과 처절함을 경험해본 사람은 공감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이후 곽양을 만나서 모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 절정곡의 정화숲에서 화염에 휩싸여 죽을 때는 안타까움이 컸다. 


황약사와 주백통은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어른들이다. 

둘 다 자유로운 영혼들이며 속박과 구속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스승과 제자가 사랑한다고 했을 때 무림인들은 모두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욕한다. 

이 때가 송나라가 배경인데 주자가 나오고 주자학이 성립되었던 시기인 만큼 규율과 예법, 도리 등이 무척 강조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둘의 사랑이 무슨 문제냐며 축복해주는 두 사람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곽부에 대한 소회다. 

작품 전체에서 가장 싫은 캐릭터가 그녀였다. 왜 저러나 싶은 장면이 계속 나와서 힘들었다. 

어미인 황용이 이뻐하며 너무 받아주고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는데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수틀리면 그냥 내지르고 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잘못을 하고도 사과를 안 하고 오히려 큰소리치며 내가 잘못한 게 뭔데 라는 반응을 보인다. 

혼날 것이 두려워서 피하고 다칠까 무서워 도망가려하는 모습과 엄마의 치마 폭에 쌓여서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여러 악인들이 등장하는데 악인들보다도 그녀가 더 싫었다. 

왜 그러는지 생각해보면 역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너무 많지만 몇 개만 꼽아보겠다. 

여러 차례 주변 사람의 멸시와 오해 속에 만남과 이별을 오가는 양과와 소용녀는 서로에 대한 끈끈한 사랑을 보여준다. 

한 사람을 흔들림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보다는 의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을 유지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홍칠공과 구양봉이 화산에서 무술 대결을 펼치며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꼽고 싶다. 

둘은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서로에 대한 원한을 털어버리고 평안하게 눈을 감는다. 

이상하게 이 장면은 책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너무 인상적이었고 뭉클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의연하게 맞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마지막으로 양과와 곽부가 화해하는 장면이다. 

남편이 양양성 전투에서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곽부는 양과에게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며 손을 내민다. 

곽부가 그동안 양과에게 했던 행동을 돌아보며 자신의 마음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시간이 훌쩍 지나 서로 짝을 찾아 안정을 찾았으니 다행이고 뒤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양과에게 용서를 구해서 진정한 해피엔딩이 된 것 같다.


무협물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소설적 구조가 잘 짜여져 있고 캐릭터도 생생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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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말~12월 담아둔 책을 구매했다. 장바구니는 금방 차는데 읽는 속도는 느리다.
배송 상태 때문에 양장은 늘 교보문고를 이용해서 구매 내역 정리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지만 책이 찍혀서 오거나 찢어져서 오는 걸 참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

1.
근대서지는 꾸준히 주기적으로 구입 중이다. 이전 회차들도 시간이 걸릴 뿐 배송이 되기 때문에 다행이고 이런 양질의 잡지들이 더욱 꾸준히 생산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와 근대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도 좋을 잡지다.

2.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 상을 구입한 건 1년 전인데 하는 이제야 구입을 하게 됐다. 읽는 책들이 여러 개라 참 이럴 땐 민망해진다. 연구재단에서 만든 책이기 때문에 믿고 구입할 만하다.

3.
역사의 원전.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띤 책이다. 내용부터 관심이 갔는데 김기협 선생님께서 역자로 참여하셨다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어서 읽어야지.

4.
그리고 장바구니에 이미 들어있던 책들.
페미니즘 관련 책은 어느새 야금야금 읽고 쌓여가고 있다. 요즘 답답한 세태를 보고 있자면 더욱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하며 실천해야한다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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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공중위생 사업의 학문적 기반은 루이 파스퇴르의 미생물 이론이었다. 19세기 80년대 그의 이론은 유럽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파스퇴르의 이론은 존 스노 등 실천가들의 관찰 작업에 과학적 기초를 제공해주었고 또한 위생 정책의 수립이 정당정치의 정략에 이용되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초기의 공중위생 사업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학문적 기초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생물 이론이 등장하면서 청결이 최고의 준칙으로 공인되었다. 세균학의 산물인 ‘건강인’이란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고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지위는 과학자를 뛰어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이론가로 상승했다. 질병은 이때부터 이전의 생태, 사회, 정치, 종교적 맥락과 결별했고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었다. - P551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19세기에는 질병의 보다 용이한 전파와 질병에 대한 보다 성공적인 대응이라는 긴장관계가 발전했다. 한편으로는 교류와 이주의 증가가 전염병의 전 지구적 전파의 편리한 통로가 되었다. - P558

19세기에는 의학적 구시대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좌절과 난관이 있어도 진보란 이름은 부정될 수 없다. 이 과도기는 세 방면, 혹은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하자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 제너가 발명한 백신 접종술이 지구상에서 천연두 발병률을 대폭 낮추어 놓았고, 신코나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가 말라리아 예방과 치료효과를 극적으로 높여놓았다. 두 번째 단계. 파스퇴르와 코흐로 대표되는 실험의학의 탄생. 실험 의학은 이 시대의 중요한 발명이었으며, 19세기 70년대에 처음 위력을 드러냈고 10년 이내에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했다. - P589

세 번째 단계. 제너와 파스퇴르가 세운 의학사의 두 가지 새로운 이정표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기가 세 번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승리자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19세기 중엽에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시작했고 얼마 후 세계 기타 지역에서 최소한 국부적으로라도 영향을 미친 위생운동을 가리킨다. - P590

한편으로 많은 중요한 의학적 발견이 식민지에서 탄생했고, 다른 한편으로 유럽에서는 배척당하던 의료와 약물 시험이 식민지에서 완성되었다. 식민지에서 의료와 위생 관련 직업의 첫 번째 목표는 식민자의 생존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많은 식민지에서 사람들은 의학적 수단의 도움을 받아 피식민자의 노동 능력을 높임으로써 식민통치의 합법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유럽이 발원지가 아니지만 지구 전체를 감염시킬 수 있는 질병에 맞섰다는 것은 전통적인 봉쇄와 격리 전략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이었다. 19세기에 질병에 맞서는 싸움은 국제적인 임무로 인식되었다. - P592

발달된 공업사회와 비교할 때 현대 이전 사회는 문명의 정도에 관계없이 모두가 빈궁한 사회였다. 그러나 경제의 현대화가 빈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이것이 인류가 ‘현대성’의 성취를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심지어 21세기에 진입한 뒤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여전히 기근이 존재하고 기근 때문에 수시로 폭동이 발생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서 여섯에 하나는 상시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9세기의 생산력 증가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물질적 생존기회를 보다 평등하게 바꾸어 놓지 못했다. - P632

근대 초기의 전 지구적 식물 이동현상의 대상은 소수의 희귀 사치식물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농업경제와 조경업 경제를 바꾸어놓았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생산성과 소비행태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 P649

전 지구적 시각에서 19세기를 살펴보면 인류 대부분의 삶의 물질적 조건이 의심의 여지 없이 개선된 시대였다. 계몽시대 이후 대서양 양안 세계의 문화의 기본 이념인 진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념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말하자면, 이런 막연한 판단은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좀더 깊이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모든 변화의 추세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변화의 추세가 상호 모순적인 경우가 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8세기를 1840년대까지 이어지는 ‘긴’ 18세기로 본다면 유럽의 18세기는 여전히 기아의 세기였다. 그런데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에서는 분명한 기아의 ‘탈지역화’ 현상이 나타났다. - P674

그러나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식량생산 지역의 입장에서는 식량 유통범위의 확대는 오히려 재난의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발전의 피해자는 혁신에서 ‘뒤쳐진’ 나라나 혁신이 비켜간 나라만이 아니었다. 쉼없는 ‘현대화’의 침입도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 P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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