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제국은 개방된 ‘야만의 프런티어’가 없는 유일한 제국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제국에는 이민형 식민지도 없었다. - P1181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정치 방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보잘것없는 번식능력을 보여주었다. ‘시민’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수출한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식민정권은 대부분 극단적으로 독재적인 정권이었다. 훗날 탈식민화 과정에서 서아프리카만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하며 많은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초기 프랑스 확장사에서 프랑스가 겪은 실책의 사례는 영국보다 훨씬 더 많았다. 1882년, 영국은 프랑스인의 코앞에서 이집트를 빼앗아감으로써 프랑스에게 치욕의 일격을 날렸다. 프랑스의 확장이 낳은 최대의 문화적 효과는 프랑스어의 전파였다. 이 밖에도 식민지에서 새롭게 등장한 교육받은 소수 계층에게는 ‘동화’의 문이 열려 있었다. 종주국 프랑스는 이들 식민지 지식인을 통해 식민지의 급진적인 문화적 변혁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응집력이 있는 제국문화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 P1192

독립 주권국이 최종적으로 지배권을 장악하고, 주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권력이 방사됨으로써 작동하는 제국 형성의 모형을 ‘초보적’ 제국건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제국건설은 장기적인 전략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역사학자 존 실리는 1883년—영국이 치밀한 계획 끝에 이집트를 점령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영국의 정복은 ‘얼빠진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유명한 논평을 내놓았다. 장기적인 계획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실리의 평가는 결코 설득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며 다른 유럽제국에도 같은 평가가 적용될 수 있다. - P1198

‘자발적인’ 복속은—삼각관계의 압박이든 종속관계의 직접적인 인정이든—제국의 확장 방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심지어 2차 대전 뒤의 미국 패권체계 가운데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노르웨이의 역사학자 게이르 룬데스타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일종의 "초청받은 제국"이다. - P1199

대형 플랜테이션과 특허 회사의 활동 지역은 통상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엘베강 동쪽의 융커의 장원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의 법률은 간접적으로만 작용했다. 선교사들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심지어 법률로 보호받는 영지를 세울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었다. 특허회사가 아시아에서 철저하게 몰락한 뒤로 아시아에는 새로운 반관영 식민 대리기구가 생겨났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였다. - P1201

메이니그의 관점에 따르면 19세기 중엽의 미국은 네 가지 형태—지역사회의 집합체, 연방, 민족, 제국—를 한 몸에 갖춘 국가였다. - P1210

미국의 백인과 흑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외래인’이자 ‘신참자’였다. 문화의 ‘용광로’란 신화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민족 전체의 기본인식도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 민족주의의 ‘우리’와 ‘그들’이란 이분법적 인식도 미국에서는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우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통일된 목소리가 없었다. 19세기 미국인은 사회적 차이는 정밀한 계급제도에 의해 결정되면, 인종은 질서의 표준으로서 불가결하나 동시에 불안정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세계관의 장벽이었으며 현실세계에서 각종 격리제도로 구체화되었다. - P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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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넷플릭스로 패싱을 보았고 이어서 책으로 패싱을 읽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주인공 모두 안타까웠다. 둘 다 이해는 가면서도 한 쪽은 유연하지 못해서, 다른 한 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들어서 다른 결과를 낳았다.
애시당초 둘은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한 쪽의 입장에 기울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
나는 기준을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정이다. 타협과 친하지 못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불안과 우울,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때론 못견디기도 했다.

어쨌든 책의 기저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종과 차별이다.
흑인인 걸 들키지 않게 가면을 쓰고 살거나 의식하지 못했지만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흑인들이나 모두 서글펐다.



지금 읽고 있는 대변혁에서 19세기가 주제라 책의 배경과는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책의 배경은 1920년대)

이민, 인디언, 인종, 전쟁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책의 배경과 이어지는 면이 있었다.
20세기 초는 당연히 19세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철도가 놓이고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이로 인해 세계는 연결되었다.
하지만 더 가까워지고 더 빠르게 연결되니 충돌이 잦아졌다.
인종, 종교 등 많은 것들이 충돌했고 수많은 사회가 파괴되었다.
하필이면 폭력의 방식으로 자연과 동물이 파괴되고 원래 살던 사람들은 그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척살당하는 시대였다.



어느 것 하나 이어져 있지 않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에 들어서자마자 새 업무가 들어왔는데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무얼 하든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서 일하고 싶지만 스스로를 참 못살게 구는 타입이라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계속 쌓아두면 폭발하니까 풀어야 하는데 어쩔까.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은 결국 2~3가지로 압축된다.

혼자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

다른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마저도 아닌 것 같다.


이제 그만하고 책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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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0 21: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싱 영화로만 봤는데 흑백이나 패싱을 떠나 그냥 여자 아이린이 이해 되더라고요. 클레어가 너무 침범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책으로 읽으면 그 상황을 더 잘 알 것 같아요.
저도 스트레스 받으면 책, 음악, 산책에다 맥주 한 잔으로 푸는게 좋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1-11 09:07   좋아요 4 | URL
네. 맞아요 사실 인종 문제를 떠나서 아이린과 클레어는 너무 다른 사람이죠. 저도 가면 갈수록 클레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아이린이 이해가 많이 됐어요. 그래도 둘 다 외부인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던 거죠. 스스로 난 괜찮아 하며 다독이는 면도 있었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만남으로 인해서 그 부분들이 터진 것 같아요^^;
산책이 젤 효과가 큰 것 같긴 해요. 시간 날 때마다 걷거든요. 머리 식히는 데 좋아요^^; 오늘도 춥지만 점심 때 걸으려구요. 감사합니다.

scott 2022-01-10 21: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새해 화가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과중 ㅜ.ㅜ

책과 음악으로 정신적 위안과 휴식을!

건강 잘 챙기세요

패싱! 넷플 수작이죠
여운이 오래 남는 ^ㅅ^

거리의화가 2022-01-11 09:09   좋아요 4 | URL
스콧님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처럼 주말만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넷플 저도 얻어쓰고 있긴 하지만 좋은 작품들이 간간이 나와서 끊긴 어려운 것 같아요.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좀 흠이지만...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1-10 21: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휴먼스테인)도 내용이 패싱 이더라구요 ~ 그래서 이 책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이어폰을 끼고 산책하면서 책읽기‘ 동시에 하는거군요~!! 사람없는 곳에서 날씨좋을때 하면 좋더라구요~!! 책으로 스트레스 잘 푸시길 바랍니다 ^^

거리의화가 2022-01-11 09:11   좋아요 3 | URL
네. 실제로 패싱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런 작품들이 나오는 거겠죠. 책으로 읽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폰 끼고 산책하는 거 넘 좋아요. 혼자 산책이 머리 식히기에 최고인듯합니다.
코로나로 카페 가기 부담스럽긴 하지만 혼자 카페 가서 오래도록 마음껏 있고 싶기도 하네요.
감사해요.

mini74 2022-01-10 2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과거 미친 상사가 하나 정말 미워서 개똥이가 오늘은 뒷머리가 좀 더 빠졌음 좋겠다 하고 막 생각했는데 어느날 정말 뒷통수가 훤한거예요. 뭔가 찔리기도 하고 괜시미 미안하기도 하고. ㅎㅎ 그 후로 저도 어줍잖은 저주대신 조용히 맛난 거랑 책으로 풀고있습니디 ㅎㅎ 화가님 스트레스 사라지길 바라며 *^^*

거리의화가 2022-01-11 09:12   좋아요 4 | URL
앗 말대로 실현된 건가요?ㅋㅋ
엿이나 먹어라 속으로 그랬던 적은 많았는데ㅎㅎ
역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약이 되는 걸로 푸는 게 좋은 거겠죠^^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0 23: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나나 드세요^^
우유와 함께요~♡
근육 이완제인데다 두 개 다 숙면 유도용이래요~아!! 드시기에 넘 늦은 시간이네요? 이미 주무실지도??
암튼 푹 주무시고, 내일부터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 하시길요!!!^^

거리의화가 2022-01-11 09:13   좋아요 5 | URL
바나나가 없더군요. 그래서 냉동실을 뒤졌더니 아이스크림이 있는 거예요. 돼지바 하나 먹고 미니 파프리카 몇 개 먹었어요ㅋㅋ
자고 났더니 언제 그랬는듯 괜찮아졌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니 자제하려구요. 감사합니다.
 

제국과 민족국가는 19세기에 인류가 모여 살았던 양대 정치단위다. 1900년 전후로 전 지구적 영향력을 가진 오직 두 개의 정치실체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제국이나 민족국가 가운데 어느 하나의 권위 아래서 살았고 이른바 세계정부 또는 초국가기구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열대우림, 대초원 혹은 극지방 같은 격리된 곳에 사는 소수의 인종집단만이 더 높은 권력기구에 공물을 바쳐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P1097

1881-1912년 사이에 유럽(과 미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정복과 권력을 탈취한 전체 과정은 일종의 이념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인종주의적 색채가 짙은 ‘강자의 정의론’은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은 자치의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켜낼 능력도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 P1114

19세기 유럽사에 관한 적지 않은 통사적 저작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각주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확장은 유럽사의 핵심이 아니라 유럽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몇몇 나라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란 인상을 준다.
결론적으로 외교사와 식민사 이 두 맥락은 연결된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사와 식민사에 의존해 세계사를 관찰할 수 없다. 세계사를 관찰하는 시각을 찾으려면 유럽 중심론과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 중심론 사이에 교량을 놓아야 하며, 그 밖에도 두 가지 매우 도전적인 난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19세기 말에 전 세계로 확장된 유럽 국제체제의 발전사를 식민과 제국주의 확장사와 연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목적론에서 출발해서 19세기 세계사를 1914년 발발한 전쟁과 자동적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 P1115

19세기가 ‘민족국가의 시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두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는 19세기에 하나의 새로운 사유체계와 정치적 신화로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민족주의는 강령과 정책으로서 받들어졌고 민중의 정서를 자극해 동원하는 도구로서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시발점에서부터 강력한 반제국주의의 색채를 드러냈다. - P1123

19세기에 민족국가는 다음 세 가지 경로 가운데 하나를 통해 등장했다. 1.식민지와 혁명적인 결별 2.패권형 통합 3.점진적 자치, 이 세 가지 경로 각각에 대응하는 민족주의의 형태가 반식민 민족주의, 통합 민족주의, 분리 민족주의였다. - P1126

세계의 현존하는 민족국가 가운데서 어느 국가가 1800-1914년 동안에 수립되었을까? 1804-32년의 첫 번째 물결가운데서 출현한 국가는 아이티, 브라질제국, 라틴아메리카 공화국들, 그리스, 벨기에다. 19세기 60,70년대의 두 번째 물결 가운데서 패권형 통일 방식을 통해 독일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태어났다. 1878년, 베를린회의에서 열강은 원래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발칸반도에 몇 개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1910년에 성립된 남아프리카 연방은 ‘사실상의’ 독립국가였다. 수십 년이 걸린 남아프리카연방의 평화적인 독립 과정은 1차 대전 기간 중에 끝이 났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병력과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협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 때문에 영국은 1918년 이후로는 더 이상 이들 국가를 식민지로 대우할 수 없었다. 1차 대전 이전에 태어난 신생 민족국가는 모두가 ‘철혈정책’을 통해 수립되지는 않았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은 이 경로를 통해 태어난 것이 분명하지만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그렇지 않았다. - P1148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견뎌낸 유럽의 식민제국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이들 제국의 취약성이 아니라 강인성과 재생능력임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제국 형성기에서부터 살펴보면 15세기(오스만제국), 16세기(포르투갈과 러시아), 17세기(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청 왕조를 종점으로 하는 기원전 3세기까지 올라가는 최초의 중화제국)가 남겨놓은 역사의 ‘잔해’는 무수한 풍운을 거친 뒤 현대세계로 곧바로 뛰어들었다. 제국이 강력한 응집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P1154

제국은 광활한 공간에서 다민족으로 구성된 통치연맹이며, 일종의 비대칭적이며 사실상 전제적인 중심-주변부 구조를 가진 실체다. 제국은 강제적인 기구와 정치적 상징주의, 제국정부와 그 엘리트가 찬양하는 보편주의 이념을 이용하여 국가의 통일을 유지한다. 제국의 엘리트 계층 이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사회적 무노하적 통합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또한 동질적인 제국사회와 통일적인 제국문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는 제국의 중심부는 절대로 주변부가 독립적인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제국은 내부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끊임없이 거래하고 타협해야 한다. 상황이 좋다면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제국 안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제국은 본질적으로 강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국은 자치를 누리는 파트너들이 제1인자를 중심으로 뭉친 패권적 연합이다. - P1166

19세기에 모든 제국이 적극적으로 활약하지는 않았다. 그 차이는 대륙제국과 해양제국의 구분과는 무관했다. 19세기 유럽 국제체제에서 줄곧 능동적이었던 3대 제국은 영국, 러시아, 프랑스였다. 독일은 1994년 이후로 식민제국의 대열에 참여했으나 비스마르크 집권 기간 동안에는 의도적으로 ‘세계정치’의 추진을 피했다. 항상 호전적이며 활력에 넘치던 중국제국과 오스만제국은 점차로 줄어드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유럽의 확장 앞에서 방어적 지위로 떨어졌다. 1895년부터 일본은 매우 적극적인 제국주의 ‘참여자’가 되었다. 19세기의 제국은 제국주의의 강도에 차이가 있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또는 추상적인 이론의 시각으로 볼 때 한 가지만 드러나는 제국주의 체제는 좀 더 깊이 관찰했을 때 다양한 제국주의로 분화한다. - P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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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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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여자와 위험한 절벽에 욕망을 내던진 여자의 위태로운 줄다리기,
모든 것이 달랐던 두 사람의 평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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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특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한순간 아주 낯설고 외로운 어떤 피조물의 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두려움이 차가운 안개의 숨결처럼 그녀의 몸을 훓고 지나갔다. - P55

클레어의 문제는 자기 케이크를 차지하고 먹겠다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케이크에까지 손을 댄다는 데 있었다. - P70

그녀는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랐지만, 그가 주어진 것들과 더불어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리고 그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단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자기가 그를 위해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서만 그렇게 되길 원한다는 점은 결코 인정하지 못했다. 그녀는 또 아들들을 위해,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해 자신이 고집하는 삶의 터전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계획도, 그 어떤 방식도 인정하지 않았다. - P83

그녀는 자신과 클레어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클레어 켄드리의 성화에 못 이겨 브라이언이 확실하게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허락해버렸다. 그녀는 그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가 까닭 모를 불안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일에 동의한 것도 짜증이 났다. 댄스파티로 끝난다면 모를까, 앞으로 온갖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과 애매한 상황에 말려들 것이 뻔했다. 클레어가 그들과 그들 사이에 들어와 일어날 수 있는 불쾌한 일들이 그녀의 눈앞에 끝없이 떠올랐다. - P100

그녀는 생각했다. ‘뭐가 됐든 뭔지 알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텐데.‘
다시 브라이언. 그는 불행했고, 불안했고, 자기 안에 틀어박혔다. 그의 상태를, 그 이유와 치유책을 안다고 그토록 자부했던 그녀는 이전의 발작적인 불안 증세와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이번 경우를 이해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었다. - P116

"내 생각에."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너는 어딘지--아, 아주 몹시--지독한 바보였어." - P122

"그 잔 봤죠? 운이 좋았어요. 그건 당신의 친애하는 조상들인 남부군이 소유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볼품없는 것 중 하나였어요. 브라이언의 몇천 년 전 증-증-종조부 것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유구한 역사가 담긴 거죠. 아니 담겨 있었죠. 지하철도로 운반된 거예요. 아, 그래요! 원한다면 영국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죠. 아무튼 난 오 분 전까지만 해도 그걸 없앨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이제 영감을 얻었네요. 그냥 깨버리면 되는 거였어요. 그러면 영원히 없앨 수 있는 거죠. 그렇게 간단하게! 그 생각은 못해봤네요." - P128

아이린은 그들 옆에 서서 하얗게 눈이 내린 안뜰 사이로 난 좁은 시멘트 길을 걸었다. 그녀는 공기 중에서, 그들 둘 사이에 일어났고 다시 일어날 뭔가를 느꼈다. 살아 있는 실체가 그녀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흘낏 돌아보니 클레어가 브라이언의 다른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눈은 애타는 열망을 드러내며 클레어의 얼굴에 못박혀 있는 듯 보였다. - P149

사라졌다! 부드럽고 하얀 얼굴, 밝게 빛나는 머리카락, 불온한 주홍색 입, 꿈꾸는 눈동자, 어루만지는 듯한 미소, 견디기 힘든 사랑스러움, 클레어 켄드리였던 것들이, 아이린의 평온한 삶을 뒤흔든 그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조롱기 섞인 대담함, 그녀의 농염한 자세, 종이 울리는 듯한 웃음소리.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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