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
윤태호 지음 / 애니북스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로망스>는 <혼자 자는 여자>라는 기괴한 컬트만화와 <야후>의 작가 윤태호가 2002년 모 신문에 연재하던 작품들을 모아 펴낸 노인들의 비망록이다.  로망스와 노인은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말씀 마시라. 노인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고 진국인데!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도 못 봤는가?  나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비로소 노인들의 사랑도 가슴 두근거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상대에 대한 독점욕 때문에 시기와 질투로 몸부림치다가 같이 밥을 먹고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정이 들고 조금 싫증도 내고 하는 그 모든 '로망스'의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밟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의 연애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만화비평가 이명석은 이 책을 한마디로  '한국 최초의 본격 노인 개그 만화'라고 정의했다.

"김이용이올시다. 올해로 70 먹었고 딸 둘, 아들 하나 두었시다. 40년 넘게 나라녹을 먹었는데......그 덕에 우리 식구 건사하고 집도 하나 장만하고......"

이 만화에 제일 먼저 등장해 꾸벅 인사를 올리는 김이용 노인은 바로 우리 아버지나 혹은 할아버지의 초상에 다름아니다.  아들네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아들내외가 부부싸움이라도 한 기색이면 아내와 함께 눈을 찡긋하고 방으로 들어가 고래고래 부부싸움을 시작한다. 그 서슬에 아들 내외의 냉전은 눈 녹듯이 풀리고......

"머라꼬? 갸가 갔단다!"

'날고 기는 파랑새'라는 닉네임(월남 파병용사였다)의 할아버지는 용돈이 궁하면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 며느리와 부조금 흥정에 들어간다. 수화기를 든 채 "머라꼬?"라고 외치는 날고 기는 파랑새 할아버지 모습을 못 보여주는 것이 한인데 가만 보니 표지의 저 할아버지다. 저승사자들이 잡으러 왔다가 이 노인의 만담에 넘어가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갈 정도이니 그의 구라 솜씨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너  누구냐?"노망기가 있어 초등학교 3학년 손주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고 그나마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할아버지도 나온다. 아이의 응석을 받아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집 아이들은 버릇이 나빠진다고 눈살 찌푸리는 젊은 엄마들이 많은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어릴 때 도망가서 숨을 수 있는 탑탑한 할머니의 치마속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인생의  축복 중 하나인데!

현역으로 뛰고 있는 열쇠장이 노인은 스스로 학위 없는 열쇠박사라 자부하며 남의 집 고장난 자물쇠를 고쳐주는 것은 물론 가끔 눈이 맞은 독거노인의 하룻밤 애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아, 그의 유능함이라니! 그외에도 이 만화에는 조금 얼빵한 조폭 모씨,똥침 마니아 모씨, 탈모 청년, 30대지만 50대로 보이는외모로 모욕적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경로당을 찾아가 귀여움을 흠뻑 받는 노처녀도 나온다. 철저하게 서민, 그 중에서도 주변부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이다.

<로망스>라는 제목의 로망은 그 외에도 노망(老妄)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노인들의 조금 꼬질꼬질한 듯한 모습과 일상은 너무나 리얼하고 코믹해서 에피소드들을 읽어나갈 때마다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산적해 있는 노인문제들. 그 많은 문제를 정면으로 심도 깊게 다룬 건 아니지만 윤태호가 그려낸 노인들의 표정과 일상은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나 자기자신의 노년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아마 그것이 이 책의 제일가는 미덕 아닐까?

이 리뷰의 제목처럼 젊은이들에게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가끔 잊고 살고 있다. 노인이 되면 인생이 끝장이라도 나는 것처럼 무서워 하면서......자기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것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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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리 2004-09-1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책이네요. 노후대비하여 보관함에 넣었어요^^ 추천하고 가요...

2004-09-19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2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누리님, 그래요, 이제 노년을 대비하자고요. 조금씩......^^
속삭이신 분, 우와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겠죠. 멋진 일입니다.
저도 그런 추억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님의 기분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예쁘시길래, 흥!^^

2004-09-20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20대에도 안 참했던 사람 여기 있습니다!
계속 염장을......^^;;;
 
몬스터 [dts] - 마블+와이드미디어 할인행사
패티 젠킨스 감독, 리 터제슨 외 출연 / 마블엔터테인먼트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극장에 가서 보고 싶었으나 끝내 보지 못했던 영화 <몬스터>를 보았다. 패티 젠킨스 감독. 여주인공 린을 열연한 샤를리즈 테론에게 2004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안겨준 영화다.

'몬스터'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며 영화들이 꽤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흥미진진한 만화 <몬스터>, 영화 <몬스터볼> <쓰리 몬스터> <몬스터 주식회사>.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몬스터'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주인공 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필름이 돌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사진은 그것이 누구이든 사람들에게 큰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모르던 시절의 그 미소는 어떤 때는 가슴을 쥐어뜯게 만든다. '아아, 내가 이렇게 멀리 와버렸구나. 너무 많이 망가졌구나! 이제는 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구나!'

린은 어린 시절 배우를 꿈꾸는 예쁜 소녀였다. 그런데 아빠가 자살하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묘연해 열세 살부터 몸을 판다. 여덟 살 때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했으나 믿어주지 않고 도리어 야단만 맞았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 뒤로도 아버지 친구의 유린은 계속되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창녀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먹여살렸는데 동생들은 자라서 그런 그녀를 쫓아낸다. 남부끄럽다고...

어느 날 자신이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음을 깨달은 린, 더이상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죽기 전에 목이나 축이려고 바에 들어왔다가 운명의 친구 셀비를 만난다. 동성연애자인 셀비. 그때부터 셀비의 존재는 린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녀는 누구를 그토록 좋아해본 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셀비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는 묘한 차가움과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얼굴. <아담스 패밀리>를 시작으로 <Now and Then> <슬리피 할로우> 등의 영화에 나왔다.

"일주일만 함께 있자. 나 같은 사람 다신 못 만날거야."(린)

"나 책임질 수 있지?"(셀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므로 창녀 짓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린의 각오. 그러나 셀비의 친척 아줌마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린을 딱 한 번만 보고도 그녀가 창녀임을 대번에 알아본다. 험상궂게 살아온 삶의 이력이 화인(火印)처럼 얼굴에 새겨진 것이다. 셀비는 돈을 벌어올 것을 참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궁지에 몰린 린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된다.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고 외모는 곱상하고 세련되기까지 한지는 몰라도 린을 몬스터처럼 흉물스럽게 쳐다보는 영화 속의 그 신사숙녀들이 내 눈에는 몬스터처럼 보였다. 어색해 죽겠는 걸 참고 취직하려고 애쓰는 린의 씰룩씰룩한 그 표정은 내 눈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린의 독백. '나한테 상처를 준 건 오히려 선량한 사람들이었다....내가 뭘 믿을 때 얼마나 큰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다시 돈을 벌러 나선 린이 으슥한 숲에서 험악한(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그 장면) 꼴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놈을 쏴죽였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잘했다! 그런 놈은 죽어도 싸다."하고 소리를 쳤다.(실제로!)그런 일들을 겪고도 고상하게 인생의 의미나 읊조리며 사는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몬스터가 아닐까!

살인을 계속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기진맥진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린.

"몸파는 일을 왜 그만둔 거야? 맨날 파티하자더니! ...별장은 어떻게 된 거야?"(셀비)

"넌 나와 달리 곱게 살아온 사람이야. 그런데 세상일 나몰라라하고 사는 건 좋은데 제발 내 말도 좀 들어줘!"(린)

린이 어떻게 벌어온 돈인지도 모르고(사실 짐작은 하고 있다)  흥청망청하는 셀비는 린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아아, 저런 것이 인생이라면 정말 그만 살고 싶다. 놀이공원의 대회전관람차는 린의 독백처럼 꽤나 상징적이다. '생각한 것과 다른 것에 삶의 묘미가 있지. 어릴 때 반짝반짝 불을 밝히고 있는 놀이동산의 대회전관람차처럼 말이야. 얼마나 그것을 타보고 싶었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막상 내 차례가 되어 탔을 때 토할 것 같고 너무 무서워서 내려버렸지.'

사람들은 어릴 때 현실 속의 나와는 다른 사람을 꿈꾼다. 나의 가능성을, 그리고 자신이 원석(原石)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가공시켜줄 누군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어린 시절의 린처럼. 그러나 린은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12년 동안 복역하다가 2002년 사형됐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법정에서 린에게 손가락을 가리킴으로서 우정을 배신한 셀리는 그 뒤 단 한번도 린을 찾지 않았다고.

사랑에 있어서의 승리자는 오히려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린이었다. 그 사실이 내게 조그만 위로가 되어주었다. 샤를리즈 테론은 보기만 해도 신산스러운 그 표정으로 린을 200프로 소화해 냈다. 셀비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도 적역이었다. 영화 <몬스터>는 어제 오후 나를 넉아웃시켜버렸다. 린의 인상적인 대사처럼......

"사람들은 매일매일 나가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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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6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09-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개봉한 곳도 별로 없었고 너무 빨리 끝나버렸지요. 아우, 보고싶어라. 이번 주말용으로 찜했습니다.

깍두기 2004-09-1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보고 싶네요. 전 집에서 비디오를 보면 중간에 잠들어버리는 경향이.....^^ 누군가가 늙었다는 증거라고 그러데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9-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프고 가혹해서 전 못 보겠어요. 이 느낌이 맞나요, 아닌 로드무비님이 리뷰를 너무 잘 쓰신 건가요? 농담 아님.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진짜로 못 보겠음. ㅠ.ㅠ

미누리 2004-09-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몬스터 주식회사 이야기 쓰고 여기와서 몬스터를 또 보게 되어 놀랐습니다. -__-;;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혼자 머쓱해서 답글 달고 간다고 덧붙이러 왔습니다.

로드무비 2004-09-1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은 이 영화 보지 마세요.
좀만 기다렸다가 보세요. 아셨죠?^^
블루님, 이 영화처럼 이상하게 땡기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님도 저랑 성향이 비슷하신 건지...
깍두기님, 저는 빌려다놓고 못 보고 갖다준 영화가 한 박스는 될 겁니다.
그래도 꼭 보세요. 졸 틈이 없을걸요?^^
이 안님, 그렇게 여리셔서 어떻게...
저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은 이런 영화를 좋아해요.^^
미누리님, 저도 님 방에 놀러갈게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반가워요.^^

숨은아이 2004-09-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몬스터"라는 말, 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 영화 볼 생각도 안 했는데... 이 영화 봐야만 할 것 같네요. 울면서 이 여자의 명복을 빌어줘야만 할 것 같아요. 웅~ 일케 가슴이 미어지게 글을 쓰시다닛.

하얀마녀 2004-09-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볼 마음 없었는데 리뷰를 읽고 나니 보고 싶어지네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어찌 그리 잘 쓰셨나요. ^^

로드무비 2004-09-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울고 싶은날 이 영화 보세요.
정신이 번쩍 날 거예요. 전영경 씨 시는 내일 올릴게요.
하얀마녀님, 헤헤 제가 좀 잘 썼죠?
마음 가는 대로 썼더니...^^

마냐 2004-09-17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고...보고 싶은 영화, 아직도 못보고 있었네요.
알라딘은 요즘 책 뽐뿌에 음반 뽐뿌에 영화 뽐뿌까지 정신이 없네요. ^^

로드무비 2004-09-1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영화 리뷰도 보고 싶네요.^^

2004-09-1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너무 빨리 끝나버렸어요. 몇군데 개봉도 않고...전 이상하게 극장에서 보려고 맘 먹고 있던 것을 못 보면 비디오로 보기가 싫어서...클///
 
오리 선생 한호림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 1 오리 선생 한호림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 1
한호림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등 일련의 베스트셀러를 내어 주목을 끈 바 있는 오리 선생 한호림의 세계 뒷골목 간판 기행문이다. 영어로는 사인(Sign). 간판보다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인'이란 우리나라의 간판처럼 그 건물이나 집의 이마빡에 내건 옥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 집을 이미지나 어떤 문자로 상징하는 것이다. 그곳이 학교인지 관공서인지, 또 식당인지 여관인지, 또 식당 중에서도 치킨집인지 국수집인지......아주 세부적으로, 혹은 뭉뚱거려서.

내가 이 리뷰의 제목을  '선술집, 실비집, 여인숙' 등의 철지난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꽤나 서정적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것이다.  그처럼 '사인'은 그야말로 어떤 집(숍)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이러한 맞춤한 곳이 있으니 얼른 오시오!" 하는......

저자 한호림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전세계 뒷골목을 돌며 그의 눈길을 끄는 사인들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러 왔다. 시각 디자인 오브제를 찾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마침내 2년 전 그가 집대성하여 두 권으로 낸 이 책에는 미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거나 이름만 대면 사람들이 아아, 하고 넘어가는 유명한 곳 중심이 아니라 세계의 뒷골목에서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며 불을 밝히고 있는 희미한 사인들이 저마다의 독창성을 뽐내며 모여 있다.

들머리를 장식한 각종 모뉴먼트, 멋드러진 글씨의 채널 레터, 엠블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장(紋章), 올빼미나 고양이 등의 조그만 청동 주조물, 벽에 새겨진 부조, 벽화, 공룡 등 거대한 동물 모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 캐처(eye-catcher), 로고, 옥외의 메뉴 보드 등 사인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하버드 대학교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뒤쪽의 샛문에 '진리는 하버드 유니버스티의 상징'이라는 조그만 부조 하나밖에 학교를 알리고 자랑하는 그 무엇도 없다고 한다. 이런 점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몇 개 안되는 미덕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해적 캐릭터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해적학교가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

벽화가 정말 예쁜 세계의 유치원과 탁아소들, 도서관과 출판사와 서점들도 빠트릴 수 없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의 고색창연함. 이곳 광장 가게들의 특징은 가게 이름이나 업종을 쓰지 않고 건물의 장식을 겸한 조그만 아이 캐처만 설치했다는 것. 가령 정육점에는 쇠머리에 쌍도끼 심벌만 걸려 있을 뿐이다. 폴란드는 특히 놋쇠 빛깔의 '모루(anvil)' 하나만 문 위쪽에 달랑 걸어놓고 '영업중'이라는 의미로 약한 촉광의 등불을 켜놓는다니 그 골목과 거리의 서정이 눈에 선연히 잡히는 듯하다.(우리 나라 도심의 건물 외벽을 도배질하다시피 한 어지러운 간판들과 현수막과 정말 비교된다.)

미국의 벼락부자들과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여 사는 동네 비벌리 힐스, 북유럽의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예쁜 우편함, 동물병원, 숙박업소....저자는 참으로 온 세계 구석구석을 발로 누빈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매사추세츠에 있다는 '옛 항구여관(The Old Harbor Inn)'은  짐 자무쉬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 나온 그런 허름한 여인숙이 아닐까.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집에서 며칠 묵었으면 좋겠다. '강이 보이는 여인숙(Riverview Inn)'도 "여섯 시에는 잠잘 곳을 정하세요' 라는 뜻이라는 'Motel 6'도 심플해서 너무 좋다.

페루 안데스 깊은 산속 조그만 호스텔의 외벽에 써놓은 호스텔의 이름(Y'LLARY HOSTAL)은 예술이고,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튀니지 음식 전문점 벽 색깔과 레터링은 정말 환상적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동자들을 겨냥해 생긴 실비집들. 토론토의 한 실비집 이름은 '간단하게 때울 분 오십시오(Hello Toast Restaurant)'라니 구미가 당긴다.

거리의 간이매점인 키오스크, 세계 곳곳의 작은 옷집들, 거기다 움직이는 빌보드라 할 수 있는 트럭, 트레일러, 미니밴의 화려하고 개성적인 외양들......

이 책을 읽고 나자 나는 갑자기 카메라를 하나 들고 우리 나라 소읍이나 산간, 혹은 바닷가 마을 가게들을 한번 샅샅이 훑어보고 싶어졌다. 감자볶음 사진 하나 못 올리는 형편에 정말 야무지고 얼토당토않은 꿈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은 이 책의 본문 중 한 페이지. 집집마다 있는 북유럽의 예쁜 우체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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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09-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번화가에 서로 자기만 눈에 잘 띄려고 호화찬란 대문짝만한 간판을 보면 심란하죠. 이쁜 그림이 많이 있을 것 같네요, 이책에.

밥헬퍼 2004-09-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는 시선을 잡는다는 것은 일단 성공한 셈입니다. 제가 그런 곳에 대한 실제로 접해 본적은 없지만 늘 그런 표현들이 가슴에서 풋풋하게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삶의 장소여서 그런 모양입니다. '선험적 경험'이 가능할까? 라지만. 카메라들고 멀리 가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집 안에도 있을 것이고, 문밖 조그만 가게도 있지 않겠어요. 재미있는 책이네요. 근데 별이 3개인 이유는 뭔가요?

로드무비 2004-09-1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정말 그렇죠?
특히 일산!
밥헬퍼님, 이 책에 별을 세 개만 준 이유는 너무 사진 중심이고 좀 잡다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이야 구구한 설명 빼고 하나라도 사진자료 올린 걸 반가워하겠으나
저는 좀더 서정적인 글이 함께 했으면 더 좋지 않았나 싶어 아쉬웠거든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sandcat 2004-09-1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보고싶어요.
사진집이라고 생각하면,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군요.

로드무비 2004-09-1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dcat님, 호화 장정의 사진집치고는 싼 편이에요.
님도 관심분야가 다양하시군요. 세상의 뒷골목이라는...^^

urblue 2004-09-1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야말로 관심 분야가 다양하세요. 이런 책도 보시는구나.
지난 주 아일랜드에서 시연이랑 재복이랑 오토바이 가게에서 나와 울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통닭집인가 뭐 간판들 사이의 골목길에 둘이 쭈그려 앉은 모습. 그런 느낌일까요?

2004-09-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1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아블루님, 바로 그거죠. 허름한 뒷골목 풍경......좋잖아요.^^
속삭여주신 님,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셔서......힘이 불끈불끈 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칭찬만 하지 말고 추천도 좀 눌러주시지...^^;;;

urblue 2004-09-1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해요. 제가 좀 전에 정신없어서 추천 눌르는거 잊었다구요. ㅠ.ㅠ

로드무비 2004-09-1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유아블루님한테 드린 말씀이 아닌데...
누가 칭찬만 잔뜩 하고 그냥 가서 괜히 한 번 해본 소리예요.
호호호, 블루님...아무튼 고마워요.^0^

2004-09-1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 뒷골목 풍경이야말로 사진에 남겨둘 만하거든요..제가 이사 온 4년 전만 하더라도 정말 국보급이었는데, 순식간에 재개발로 초토화 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작업^^ 해야 겠단 생각을 실천해 옮겨야 겠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꾸욱~

로드무비 2004-09-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사시는 동네가 어딘지 궁금합니다.
더 늦기 전에 꼭 기록해 주시길......^^

플레져 2004-09-1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계획이 잘못되있어요. 일본도, 홍콩도... 무조건 간판만 걸어놓고 이목을 끌기 위한 장삿속. 가끔은 간판이 이쁜 집, 이쁜 글씨체로 쓴 가게에는 무턱대고 들어가고 싶어져요...
가게 이름이 정말 구미를 당기는군요! 님의 리뷰도...^^ 추천 꾹~!

로드무비 2004-09-1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그죠? 저는 가게 이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의 예쁜 가게 모두 가보고 싶어요.^^
추천 고맙습니다.^0^

내가없는 이 안 2004-09-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감자볶음에 사진 넣어달라고 요청한 것이 괜스레 찔리네요. ^^
그건 그렇고 로드무비님 리뷰 읽다보니 그냥 확 나서고 싶네요. 좀전에 읽은 책에선 등산 얘기가 나와 산에 오르고 싶다가 지금은 어디고 걷고 싶으니... ^^ 별 세개지만 추천해요!

로드무비 2004-09-1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날씨가 너무 좋으니 자꾸 나가고 싶죠?
가까운 숲이나 공원이라도 자주 나가야겠어요.
가까이 살면 벤치에서 만나 커피라도 한잔하고 할 텐데.....
그리고 이 안님이 찔리실 것 하나 없어요.^^
 
거짓의 사람들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계모의 말만 듣고 아직 어린 아이를 돌아가며 구타한 한 마을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도벽이 있다는 계모의 말만 듣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볼 때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머리통을 쥐어박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나는 그 기사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집단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영화를 한편 보고 난 기분이랄까. 현실은 종종 나쁜 영화보다 훨씬 악독하다.

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책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극찬했다는 M.스코트 팩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저자의 머리말 첫 대목이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이다.

'인간의 악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기 전까지는 치유의 희망을 꿈꿀 수 없다. 그런데 악이란 기분좋은 볼거리는 아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다룬 책이 유쾌하게 읽힐 리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어두운 면에 평소 호기심이 많다.

10년 전쯤, 남대문시장 골목 노상에서 칼국수를 사먹는데 나는 칼국수를 말아주는 여성의 안 보아도 좋을  얼굴을 보고 말았다. 어쩌다보니 나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녀의 좌판 앞 긴 나무의자에 궁둥이를 걸쳤다. 다른 나무의자 위는 바글바글했다. 그녀는 그것이 몹시 유감이었던 듯 혼자서 앙앙불락이었다. 그나마 하나 얻어걸린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긴 해야겠는데 기분이 몹시 나쁘니 혼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도 덩달아 어쩔 줄을 몰랐다. 억지로 웃는 얼굴의 무시무시함이라니! 그녀는 여차하면 자신의 손님을 모두 가로채가는 옆 가게 여자에게 칼이라도 던질 기세였다. 나는 침통한 얼굴로 칼국수를 먹었다. '하고많은 가게 중에 왜 하필 이런 가게로 기어든 거야. 아아, 내가 사는 건 왜 이 모양일까!' 속으로 탄식하며 말이다. 나는 왜 그때 그녀의 안 봐도 좋을 얼굴까지 고스란히 보고 앉아 있었던 것일까! 내게도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저녁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만났다. "신이 내릴려나, 제 눈엔 요즘 이상한 게 자꾸 보여요. 모르고 지나가도 좋을 사람들의 얼굴까지!" 그날 낮에 본 칼국수집 여자 이야기를 하자 그 시인은 씨익 웃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 마! 로드무비는 절대 신이 내릴 얼굴이 아냐!"

"가려진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숨바꼭질 놀이, 단 하나뿐인 인간의 영혼은 그 속에서 혼자서 치고받다 스스로 피하여 숨는다."(저자가 Good and Evil이란 책에서 인용한 글)

위의 구절은 남대문시장 칼국수집 여자가 국수를 끓이고 또 내가 국수를 다 먹길 기다리는 20여 분 동안 보여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원맨쇼에 대한 기록에 다름아니다.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저 구절을 보는 순간 그녀가 의식의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악은 아주 멀쩡하고 태연한 얼굴로 우리의 일상 속에 출몰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알코올로 도망가는 것만이 악이 아니다. 악은 아주 교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삶을 뒤흔든다. 자기 기만, 무정한 것, 이 모두도  악에 포함된다.

교회 헌금통 속에 55센트를 넣다가 어느 순간 '너는 55세에 죽을 것이다'라는 밑도끝도 없는 문장이 머리속에 떠오른 조지. 차를 달리다가 45마일 속도제한 표지판을 보는 순간 '너는 45세에 죽을 것이다' 하는 말이 떠오른다. 그는 결국 그런 식의 강박에 시달리다 못해 상담을 받기 위해 저자를 찾아온다. 그는 얼마나 그런 생각에 시달렸던지 마침내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그는 그 전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하고 멀쩡한 시민이었다.

또 이런 부모도 있다. 형이 자살한 후 급격히 우울증에 빠진 소년 바비. 그의 무정한 부모는 그런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총을 선물한다. 바로 바비의 형이 자신을 쏘았던 그 총을......

부모자식 간의 기묘한 관계(바비, 로저의 두 경우), 뒤틀린 부부관계(사라와 하틀리), 애증의 모녀(빌리), 자신의 상담의사조차 가지고 놀고 장악하려다 실패하고 사라지는 찰린이라는 독신 여성......이 책에는 정말 이 인간 세계에서 타인과 자신을 속이며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 생생한 사례들을 읽다보면 깨닫지 않을 수 없다.거짓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는 걸......

'악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걸 끊임없이 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 듣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완전한 공포 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더이상 지옥에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무시무시한 실체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이 책을 쓰는 나의 의도다.'

나는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속에서 내 속에도 고스란히 있는 악의 씨들이 꿈틀꿈틀하는 걸 느꼈다. 그런데 저자의 다음과 같은 명쾌한 정의가 조금 위로가 된다.

'인간은 우연히 악의 파트너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인이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악의 세력에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덫을 놓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 덫을 놓고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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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1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으니, 저에게도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네요, 다시 들춰보고 저도 얘기를 하나 풀어놓고 싶어집니다.
이런 게 바로 웹의 효과가 아닐까요, 거미줄이 확산되듯, 하나의 줄에서 또 다른 줄이 이어져 나오고, 그렇게 한 줄 한 줄 이어져 또 하나의 새로운 망과 공간이 생겨나는 것......

누구든 우연히 악의 파트너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선이든 악이든, 그 씨앗은, 그 선택의 실마리는, 그 결정적 계기는 모두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자라고 있는 걸까요?

하얀마녀 2004-09-1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잘 쓰시네요. ^^

로드무비 2004-09-1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빨리 하나 풀어놓으세요.
이 리뷰를 읽고 뭔가 떠올랐다니 몹시 궁금합니다.^^

하얀마녀님, 역시 잘 쓰죠? 호호호(방자한 웃음)
인간에게 최고의 악은 교만과 태만이래요.
이 책을 쓴 분이 그렇게 말했어요.^^;;;

superfrog 2004-09-1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게 최고의 악은 교만과 태만.. 흠.. 같은 글자로 끝나는 낱말인데도 전혀 다른 의미로군요. 타인의 교만에 심하게 질리고 자신의 태만에 괴로워하고 있어요..;;;

로드무비 2004-09-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질렸다는 말씀이세요? 금붕어님? 엉엉.
저는 교만과 태만을 다 가지고 있어요.엉엉.

水巖 2004-09-1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역시 잘 쓰시네요. 군더덕이 없이.

플레져 2004-09-1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의 악을 가면이라고 했을 때, 예전에 아주 강했던 친구가 요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요. 그애 답지 않은 연약한 행동들 때문에 기막힐 뿐이지만, 친구 역시 강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겁많은 소녀가 아니었나 싶네요. 별 다섯개에 어울리는 리뷰여요!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 추천~!

2004-09-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4-09-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고도 무서워지니 이 책을 읽어야 할라나요?
님의 칼국수집 아줌마 이야기 정말 리얼하군요. 나도 생에서 그런 얼굴을 남에게 보인 적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로드무비 2004-09-1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고맙습니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칭찬......(__)
플레져님, 저는 저 책 속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꼈어요.
단, 자식을 교묘하게 학대하는 부모들 빼고...
깍두기님, 마음이 가면 읽으시고 두려움이 느껴지면 읽지 마세요.
읽고 싶은 책만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2004-09-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었는데, 읽으셨군요. 저도 읽으려도 벼르고 있어서 리뷰는 안 읽었어요..책 읽고 읽으려고요,ㅎㅎ.어쨌든 기인~ 리뷰...짝짝짝! 아, 리뷰는 안 읽었는데 댓글만 읽고도 추천!

2004-09-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4-09-1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군요.^^
자기기만과 무정,뒤에서 살짝 웃고 있는 메시스토펠레스에 대해 동의합니다.근데 또 한편으론 자기위무를 위한 악도 가능하리라 생각해요.허무적인 위악이 될 수도 있으나...제가 최근에 본 오에 겐자부로의 책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많았습니다.현상적인 악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하며 수시로 꿈틀거리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과 공포가 악의 한 모습일 듯 해요. 때론 본인의 의지를 부드럽게 설득하며 좌절시키는 두려움도 그 깊은 모습중하나가 아닐까....

드팀전 2004-09-1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악을 연상하신 건 너무 낭만적 관찰자의 시선인거 같아요.꼭 그런식은 아니어도 좋았겠으나.그녀의 생활을 위한 치열함이 그런 얼굴을 낳았다면...삶의 치열함이 악이 되어야만 하지요.가끔 장사하시는 분들의 과격한 열정이 눈에 거슬리고 한심해 보일때도 있긴하지만 먹고 살기 위한 애씀으로 이해하시는게...

로드무비 2004-09-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드팀전님.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 시장통의 악마구리같은 소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제게 없는 생의 열기 같은 걸 부러워도 하고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에게서 악을 본 건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분노.
어딘가에 사로잡힌 것 같은 모습...그것 때문이죠.
정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거든요.
제 속에 있을지도 모를 분노 그런 것 때문에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 낭만적 관찰자의 시선이라는 말씀은 조금 억울해요.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드팀전 2004-09-1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억울하셨다니 죄송해서 어쩌나 .....쯥
전 시장통의 소음을 별로 안좋아합니다.제가 관찰자죠.
단 마음에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낭만성을 자제하려고 하지요. 뭐 그런 경계심 아닐까해요.
시골에서 농부들 보면 도시인들이 멋도 모르고 "아...시골에서 농사나 지었으면.."이런 헛소리 하진 말자는.....그런 낭만성에 대한 자기경계정도...
자주 들를게요.

로드무비 2004-09-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안 삐졌어요, 드팀전님.^^

라이더 2005-01-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예스24를 능가하는 알라딘의 리뷰. 이래서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잘 읽었어요. 알라딘은 전공서적(원서) 서포트좀 잘 하라!!!
 

5월에 넘긴 일이 하나 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편저자가 되는 일이었다. 고전을 새로 엮는 아동물인데 아무튼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슴 설레기도 했다.

아무튼 내 딴에는 청계천 헌책방에 나가 자료도 구하고 대학원 다니는 후배에게 부탁해 관련 논문들도 구해 보고 열심히 했다. 일을 의뢰한 사람이 아는 사람이어서 그가 계약서를 가지고 집으로 와 사인을 했는데 계약금이 좀 늦어진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재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7월까지만 근무하고 출판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남편 편에 전해들었다. 사실상 해고를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이고, 애가 둘인데...그러면 어떡하지?" 그가 걱정이 된 나머지 내 원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계약금은 왜 안 주느냐는 항변전화를 하지 못했다. 다행히 8월까지 한달 더 근무하기로 했다 하여 그래도 직장에 다니는 동안 새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고 전화를 걸어 훈수까지 두었다.

어제 출근하는 남편이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일 진행상황을 알아보고 원고료를 달라고 독촉하라고.

그런데 세상에 계약금 100만 원, 중간에 또 100만 원 해서 이미 2백만 원이 내게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을 들어보니 낯이 익은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의 아내 이름이다. 나는 모르는 이름이네요,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오늘아침 출판사에 전화했더니 그가 내게 직접 200을 부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 보기에 그 돈은 이미 날아간 돈인 것 같다. 또 이렇게 뒤통수를 맞다니! 어리숙하고 흥청망청한 나라는 인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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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9-0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뭐에요오 이건...!!!!! (버럭,버럭,버럭,,,!!!)

조선인 2004-09-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그럼 전혀 받을 수 없는 건가요?
아, 게다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감이라니.

sandcat 2004-09-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이라니..정말 속상하군요.
이를 어쩐답니까?

하얀마녀 2004-09-0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럴 수가... -_-

플레져 2004-09-0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짜 너무하다....ㅠㅠ

물만두 2004-09-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일이... 황당하시겠요...

chika 2004-09-0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뒤통수? 이건 배신이예요. ㅠ.ㅠ

2004-09-08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水巖 2004-09-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런 일도 다 있군요. 자기 마누라 이름까지 동원해서, 그렇게라도 해서 살어야 했을까, 그래도 무슨 문화사업에 종사한다고 다녔겠죠?

stella.K 2004-09-0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막이네요. ㅜ.ㅜ

밥헬퍼 2004-09-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참 속상한 일이군요. 그런 돈은 끝까지 받으세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그리고 늘 그런 마음이듯이 사람은 이해하고 용서하심이..

superfrog 2004-09-0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그럼 편집자가 부인 이름으로 님 페이를 받아 챙기고 8월까지 다닌 담에 자취를 감춘 건가요? 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텐데 말이죠. 그 편집자도 참.. 그런 바보짓을. 님 책도 잘 나오고 빼돌린 돈도 다시 받을 수 있기를 바랄게요. 힘내세요!!

진/우맘 2004-09-0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끙.......으으으....로드무비님, 제가 다 배가 아픈데....오죽 답답하실까.TT
돈도 신의도, 둘 다 안 되면 하나라도 꼭 건지게 되길....

sooninara 2004-09-0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사기죄 아닌가요? 사람이 무서버라..큰돈도 아니고 돈이백에...
사기치려면 몇억은 되야할텐데..쯧쯧..
로드무비님 잘 해결되시길 빕니다..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시겠어요..

로드무비 2004-09-0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습니까만, 조금은 고의성이 보여서 말이죠.
걱정 끼쳐드려 죄송스럽습니다.
하긴, 제 잘못도 있습니다. 믿거라 하고 게을러서 체크해보지 않은 점 등등.
출판사와의 계약이었으니 나중에 안되면 출판사에서 받아내야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깍두기 2004-09-0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뭐라 할 말이 없네요.
그나저나 로드무비님이 만드신 책 꼭 보고 싶네요^^

어디에도 2004-09-0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의성이라... 슬퍼지네요. 그래도 씩씩한 로드무비님. 책 나오면 꼭 얘기해주세요.^^

로드무비 2004-09-0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나오면 한 권씩 사주세요.^^
그래야 다음 일거리가...

2004-09-0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돈을 못 받더라도 항변은 하셔욧! 불끈!그런 방법으로 또 다른 사람이 당할 수도 있구요. 어쨌거나 책 나오면 광고^^하세요..

숨은아이 2004-09-0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 출판 동네에 그, 그런 사기꾼이... 좁디좁은 출판 동네에서 잘도 살아남겠다! 로드무비님, 꼭 받아내시길!

불량 2004-09-0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책 나오면 말씀만 하세요..^^
그 분과의 일도 잘 해결되기를 빌어 봅니다.

바람구두 2004-09-0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출판계, 특히 아동물 쪽에서 종종 그런 일들이 있다고 하더니...
증말... 벌컥 화가 납니다.

로드무비 2004-09-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돈 받으면 이벤트 한판 벌일게요.
얘기 털어놓길 잘했네요.
제 이야기가 객관적인 사례가 되면서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것이 보여요.^^

반딧불,, 2004-09-0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 받을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요.
음..뭐드라...
쫌 껄끄러운 분들을 하루만 동원하면 된다는군요ㅠㅠ

반딧불,, 2004-09-0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너무하군요.
어떻게 그런 일을...

경찰서 가면 된다던데요.
부인이름까지 있으니 아주 확실하군요.
사기죄로 당장 들어가야 될 걸요??
지급 내역있으니 변제 안하면 바로 영창감이랍니다.

비로그인 2004-09-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유, 참...

내가없는 이 안 2004-09-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이인데도 그럴 수가 있나요? 참, 세상에 이해못할 일이 너무 많아... ㅠ.ㅠ

호랑녀 2004-09-0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원래 아는 사람한테 이런 일이 생기죠. 모르는 사람이라면 꼼꼼하게 일처리를 했을 테니까...
아마 사정이 좀 어려워서 빌려갔겠죠. 곧 갚을 거에요. 이자까지 쳐서...
안 되면, 그냥 출판사에 얘기해서 받고, 그 사람과의 관계는 출판사에서 해결하라고 하죠, 뭐...
(그나저나 세상에... 책 한 권 원고를 돈 한 푼 안받고 썼단 말예요?)

아영엄마 2004-09-0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야 봤어요. 그사람에게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인가 보죠? 남의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다니... 제가 그런 일 겪었으면 뒤통수 맞은게 아니가 뒤로 넘어가서 머리 깨질 일 같습니다. 꼭 받아 내시고, 책도 잘 팔리시길 바랍니다. 아, 아동물이라고 하셨지..

2004-09-09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4-09-1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놀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