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가끔 사람은 평생 딱 한 번 저지른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10쪽)

집에 있는 남편과 범상하게 전화통화를 하다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해버린 여인이 있다.
이름은 케이티. 나이는 마흔 살.
주차장에서 핸드폰으로 남편과 치과 예약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데없이 이혼이라니,
케이티는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화들짝 놀란다.
그런데 그 장면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런 상황이 뭐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인용한 말처럼, 무심코 뱉은 한마디로 내 전 인격이 의심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변명도 소용없다.
그리고 사람이 상처를 받는 건 타인에 의해서라기보다, 자기자신에 의한 것일 때가 더 많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배신하고 불성실하면, 신에게 심판 받기 전에 나 자신에게서
먼저 철썩 뺨을 한 대 맞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 나로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선택한 후에는
그것에 관해 누구와 상담한다거나 변명하는 태도(포즈)를 가급적 취하지 않는다. 
이미 매를 한 대 맞았는데 뭐.
자기자신을 믿을 수 없고 만정이 떨어져버리는 벌처럼 무서운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인생이 이렇게 뒤죽박죽이 됐는데 저녁시간은 어쩌면 이렇게 평화롭고 가정적인지
기가 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가족의례란 것은, 아무리 혹독한 태양에서도 끝내 꽃을 피워내고야 말
질기디질긴 사막의 꽃같다.(61쪽)

참 뭐가 뭔지 모르게 괴롭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괴롭고 막막한 중에도 사람은
 타인이 보면 멀쩡한 모습으로 일상이란 것을 꾸려나간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악수를 나누며 속으로는,  '당신은 좋겠다!  그렇게 무사태평한 얼굴이라니!
하고 부러워 하는 건 아닐까?

'죄책감 목록'이라든지 '심지어 교회에 가다'  등의 중간제목과 그 내용 전개에 나는 배꼽을 잡았다.
딸 몰리의 등쌀에 동네를 한 바퀴 돌다 가장 무난할 것 같아 한 번 들어가본 교회에서
만난 교인들의 표정과 목사의 설교 장면,  더구나 그곳에서 동생 마크와 우연히 마주쳐
사창가에서 만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케이티 남매의 모습이라니!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파토 나지 않을 인간관계가 없고, 그보다 이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닉 혼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나면
시원한 맥주를  병째 들이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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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1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쪽에 있는 두산사옥 지하의 호프집의 생맥주 강추~! 입니다..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요~

야클 2006-04-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사람은 평생 딱 한 번 저지른 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갑자기 가슴이 투웅~~. 아직은 안 저지른 것 같은데.... ^^

hnine 2006-04-1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 혼비의 About a boy 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요.
구차하게 그려질 수도 있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전개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인가 아니면 작가 자체의 성격인가 궁금해 했었지요.
로드무비님 리뷰를 읽어보니 이 책에서도 그런 아이러니가 느껴질 것 같네요.
읽어보고 싶어라. 표지 그림도 재미있어요.

nada 2006-04-1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댓글에 댓글 달고 와 보니 후딱 올려 놓으셨군요! 참으로 비교되게스리..ㅋㅋ 교회 에피소드에서는 저도 키득거린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닉 혼비의 주인공들은 처치 곤란한 소포 상자들이에요.

비로그인 2006-04-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수 많은 사람들이 제게 그렇게 기억되었고 또 저도 뭔가 딱 한 번 했던 실수로 그 당사자들에게 기억되어 있겠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란 말이 콕 박힙니다..^^

mong 2006-04-1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았던 것들이 쌓였다가 한순간에
둑이 터지듯 무너지는 거겠죠....

하이드 2006-04-1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근데, 표지가 왜저래요? 정말 닉혼비책 우리나라와서 욕봅니다. 욕봐 -_-;;;

국경을넘어 2006-04-1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처음엔 로드무비님 이야기인 줄 알고 깜딱 놀랐어요 -,-;;;

치니 2006-04-1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와중에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만은 없는 무언가가 한동안 묵직하게 가슴에 있었는데,
아 간사한 저는, 이제 그런 묵직함은 버린 채 또 흐늘흐늘 살고 있군요.

로드무비 2006-04-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책 표지 보고 배꼽을 잡았습니다.
재밌게 읽었으니 귀엽게 봐줄랍니다.ㅋㅋ

mong님, 견고하게만 보이던 것이 어느 날 와르르.
철옹성 같은 건 어딨을까요?

사야님,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이 책 괜찮습니다.
일독하시기를......^^

꽃양배추님, 제가 영어 자판 두드리느라 고생하는 것 어떻게 아시고.ㅎㅎ
님 리뷰를 읽으니 불현듯 저도 쓰고 싶지 뭡니까.
다른 분의 '삘' 받은 것 치곤 형편없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은 대강 했으니...
처치 곤란한 소포상자, 어쩌면 표현도 그리 야물딱지신지.^^

hnine님, 전 <어바웃 어 보이 > 영화로 재밌게 봤어요.
맞아요.
영화든 책이든 닉 혼비만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유머와 시니컬함이 저는 마음에 쏙 듭니다.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져요.^^

야클님, '딱 한 번 저지른 일'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셨군요.
한 번 저질러 보시죠.^^

메피스토님, 전 종로 교보 1층 라운지의 맥주가 그렇게 맛나더군요.
요즘도 있는지 몰라요.
강남 두산사옥 지하, 일단 적어둡니다.
아이고 맥주 마시고 싶어라.
(리뷰 급히 적어 올리고 학교에 급식, 청소 갔다왔거들랑요.
목 말라요.)





로드무비 2006-04-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그렇다고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사는 것도 웃기잖아요.
님에게 땡스투 눌렀던 것 같은데(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리뷰로 만나니 좋은데요?^^

폐인촌님, 제가 그러고도 남을 인간으로 보인다는 말씀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3=3=3

urblue 2006-04-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와 상담한다거나 변명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게 맞겠지만, 그게 또 그렇게 안되지 않나요? ^^;

로드무비 2006-04-1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사안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더 편하고 인간적인 경우도 있고,
'내가 납득한 걸로 됐다'는 생각이 드는 좀더 중대한 사안도 있겠지요.^^

마태우스 2006-04-1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팬인 그 닉 혼비 말인가요? 그가 소설도 잘쓰나보군요. 으음.

로드무비 2006-04-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맞아요. 그 사람.
소설가잖아요.
영화화된 작품들로 특히 유명하죠.^^


2006-04-1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이블루스님, 정말 그런 때 있죠?
변명할수록 더 일만 꼬이게 되고 나만 구차해지는.
그런 땐 아예 그 일이나 관계 자체를 탁 손에서 놓아야 돼요.
집착할수록 일이 더 우습게 되더라고요.

아아, 좋으시겠다.
조만간 제가 약속한 대로 아끼는 만화 박스째 빌려드릴게요.
잘 다녀오시고요.^^

니르바나 2006-04-1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은 좋으시겠어요.
로드무비님이 아끼는 만화를 빡스째 받아 보시게 되어서요.
상하이 잘 다녀오시구요. ㅎㅎ

로드무비 2006-04-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어흑, 그건 어찌 아셨남요?
수선님도 배를 잡고 웃으실 듯.ㅎㅎ

니르바나 2006-04-1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과 수선님의 끈끈한 관계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알라딘서재에서 이걸 모르면 간첩이지요. ㅎㅎ

로드무비 2006-04-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과도 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은데
그렇게 앙탈을 부리시니.ㅎㅎ

날개 2006-04-1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피버피치>를 읽고 있는 중인데.....^^
책이 재밌어 보입니다.. 이거 순전히 로드무비님 글솜씨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ㅎㅎ

로드무비 2006-04-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피버피치 저도 다음주에 읽을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기대돼요.^^
(제가 재밌다고 한 책 중 재미없는 것도 있었나 봐요?
왜인지 그런 느낌이.^^)

날개 2006-04-2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라 <피버피치>가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더라는...^^;;

로드무비 2006-04-24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피버피치가 더 궁금한데요?^^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주 서울 형님댁에 가서 시아버지 제사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각에 전철을 탔다.
형님이 싸준 식혜에 동그랑땡에 깍두기까지 냄새가 폴폴 나는 묵직한 가방을 손에 들고,
잠이 들어 천근만근 무거운 아이는 남편이 안았다.

술냄새를 물씬 풍기는 중년의 여성 둘이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얼굴도 불콰했고 목소리도 높았다.
입을 열 때마다 소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내 입에서도 자주 풍기는 냄새지만
맨정신에 맡으려니 좀 괴로웠다.
그들은 다른 승객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날 술자리에서의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만화책에 코를 박고 있던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

--내 또래 같은데, 저들은 결혼을 안했을까? 그러니 이 시간에 술을 마시고......

나는 좀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중년여성은 이 시간까지 술 마시면 안되는겨? 로드무비, 니가 언제부터?!

참 별꼴이다.
사회적인 통념상 '적령기 혹은 적령기를 놓친 여성'으로 산 세월과 기혼으로 산 세월이 비슷한데
어느새 나는 철저하게 기혼여성 혹은 주부의 포지션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너무 큰 목소리로 떠들어 내 새끼의 잠과 나의 독서를 방해받는 상황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이렇게 간사할 수 있을까!

'언니네'라는 사이버 커뮤니티가 있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어느 님의 페이퍼로 알았다.
'성적性的'으로 무진장 솔직하고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고간다는 것이다.
솔깃하여 한 번 꼭 방문해 봐야지 해놓고는 까맣게  잊어먹고 있다가
어제 오늘, 이렇게 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수위와 내용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내게는 대부분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집으로 침입한 강간범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한 여성의 어조와 그 내용은
이상하게 깊숙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런데 대부분 섹스, 성 정체성, 나쁜 남자들,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성性과 관련하여
언니네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얘기 등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들을 묶은 거라는데 여성잡지 특집기사를 읽는 정도의
감흥밖에 없었으니......

나는  잘난체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엉터리고 가소로운 족속인지 잘 알고 있고,
여성이 비혼으로 사노라면 얼마나 피곤하고 열불 나는 일이 많이 생기는지
주르르 꿰고 있을 뿐 아니라,  딴에는 솔직하겠다고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 면전에서는 칭찬을, 돌아서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는 것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 모든 걸 짐작하고 있는 여성이든, 세상과 사랑에 대해 아직 환상을 품고 있는 여성이든,
자신의 현재진행형 연애에 대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어쩌면 이 남자는 진짜고 내가 기다려온 일생의 사랑인지 모른다는 미련과 기대.
그래놓곤 그 사랑이 깨어지고 난 후에는 또 이렇게 탄식하는 것이다.

--어째서 저 새끼는 예외라고 생각했던 걸까?(92쪽)

좀 의아했던 건 남자와 잘 때 좋기는커녕 괴로워 죽겠는데도 즐거운 척 연기를 했던 건
상대남성에 대한 배려의 차원도 있겠지만 자신의 미숙함이나 실수도 분명 있는 것일진대
몽땅 상대 남성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

그리고 참다못해 무능하고 불성실한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어느 여성이
시어머니의 집을 팔아서 반을 위자료로 받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부분.
(부모나 시부모는 봉인가?!)

내가 모르는 무슨 사정이 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함과 당당함을 지향하는 여성의
생각과 발언으로는 좀 걸리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전철 속의 여성들이 큰 목소리로 떠든다는 이유로 그들을 잠시 얕잡아봤던 것처럼,
그동안 내가 변한 것일까?  10년도 안 되는 세월을 아줌마로 살면서?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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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4-1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읽지 마라구요...농담=3=3=3

바람돌이 2006-04-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라에서는 여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늘 무언가와 싸워야 하는 일이지만 그런 자각이 또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좀더 나아지게 하는 거겠지요. 그런데 그 켭켭이 쌓인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피해의식이 가끔이지만 오히려 올바른 사고를 방해하는 내 안의 또하나의 벽이 되는걸 볼때도 있네요. 이래 저래 여자로 사는거 참 힘듭니다.

로드무비 2006-04-1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님이 이 책 읽고 리뷰 쓰시면 좋겠어요.
저보다 훨 잘 쓰실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산책님, 특히 남성들 한 번 꼭 읽어볼 만합니다.
제가 인생을 너무 험난하게 살아서인지(ㅋㅋ) 기대에는 좀
못 미친다는 뜻이었고요.^^

Mephistopheles 2006-04-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철속의 그 중년 여인네들이 그 시간에 술을 먹는 건 잘못된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해가 될 정도로 떠들었다면 그건 잘못된 거겠죠..^^
그 사람이 남자건..여자건..애건..어른이건 간에요..
남자가..한번 꼭 읽어볼 만하다고 하시니 또다시 보관함으로 골인 하는군요..
로드무비님은 삐끼삼총사의 두목인 찰리삐끼랍니다.=3=3=3

부리 2006-04-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이 변한 게 아니라, 책 내용이 설득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네요. 저는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겠지만요^^

로드무비 2006-04-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그런 면도 조금 있겠죠?^^

메피스토님, 그러니까요. 저도 예전에 술퍼느라 날밤을 새고 다녔으면서.....
제가 평소 저를 욕하는 게 그런 점 때문입니다.
그리고, 삐끼든 뭐든 두목이라니 좋기만 하네요. 호호~

플레져 2006-04-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은데! 로드무비님, 저두요, 저두요!

로드무비 2006-04-1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님은 절대 그럴 리가 없을 듯한데!
아무튼, 우리 함께 노력하자고요. 내가 싫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nada 2006-04-1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예전에 제가 들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넌 정말 이게 모두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줄 수가 없네요.

로드무비 2006-04-13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uliflower님, 지나간 건 지나간 거죠.
저도 그런 말이 있어요. 전해 줄 수 없는......
그러려니 합니다.

왓 감사님, 원하시면 이 책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

치니 2006-04-1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에 성감 연기랑 시부모 위자료 부분에 대한 로드무비님 의견에 공감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당당하게 주장가능한 것이고, 상대가 하는 것은 권력에 의지한 주장이라고 밀어부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로드무비님이 변해서 그런건 아닌거 같아요. ^-^

2006-04-1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1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님, 저도 그분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동상제막식날의 연설은 정말 찌르르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잖아요.
덕분에 정말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책들을 그러면 이 기회에 장만해 볼까요?
고맙습니다.
줄지어 기다리는 일 하나하나 지혜롭게 잘 해결하실 거예요.^^*


치니님, 그렇죠.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예요.
제가 늙어서 변한 게 아니라.ㅎㅎ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리광이나 또다른 종류의 횡포를
부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왓, 또 감사!님
얼굴도 마음도 그리 어여쁘셔서.^^


2006-04-1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4-1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님, 두통은 좀 나으셨는지요?
가끔은 좀 불성실해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공부에도요.
ㅎㅎ 건강 해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죠.
그리고 기뻐하시는 기색에 덩달아 마음이 즐겁습니다.^^

icaru 2006-05-1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드무비 님 서재에서 언니네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리뷰 보고, 책까지 꼴인 해서 읽었거든요. 음, 로드무비 님처럼 저도, 집으로 침입한 강간범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젤 인상 깊었거든요.. 영화 오아시스를 보면서, 감동적이긴 한데... 이상하게 불편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 여성분 이야기를 통해서 실마리를 얻은 기분이었달까. 정말 글을 잘 썼더라고요, 그죠?
 
식객 11,12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어제 오후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외출하면서 차 안에서 읽을 책으로 <식객>을 골랐다.
짐도 있고 아이도 대동했으므로 11권 한 권만 달랑 넣었는데, 결과는
가는 길에 한 번, 오는 길에 한 번, 모두 두 번 읽었다. 
신기한 건 같은 날 전철 안에서 두 번 읽는 건데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사실.

미아리 역 부근을 지날 무렵에는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나는 51세입니다. 물론 결혼했지요. 직업은 건축가입니다.(...)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로 시작하는 52화, '장마' 편.
친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특히 재즈 음악을 사랑해 밤을 지새운 날이
수없이 많았다는 이 남자는 대대적인 치과 치료를 받은 후 대젓가락에 돌돌 만
세발낙지도 마음껏 뜯고 한마디로  그렇게 즐거울 수 없는 날들을 보낸다.
평소 먹는 걸 무지 좋아하는 독자라면 듣기만 해도 어깨춤이 나고 입에 침이 고이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허영만의 초기 작품 제목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칫솔 한 개> <담배 한 개비>.
"소주 한잔 합시다"하고 다짜고짜 말을 거는 사람의 화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목이었고, 작품도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52세 건축가의 덤덤한 진술이 마음에 들어 자세를 바로하고, "어디 앞으로 당신이 맛보는 음식을
나도 죄 먹어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가 비오는 날의 부침개 이야기와 함께
가슴이 철렁하고 말았으니......

얼마 전 올케의 생일에 아웃백하우스에서 난생 처음으로 '립'이란 걸 먹어보았다.
너무 맛있어서 부모님이 생각났던 나는 마침 며칠 후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유명한 외식업체의 이름으로 양념한 립을  세트로 판매하는 걸 보고 주문해 드렸다.
효녀하고는 거리가 먼 내가 '이렇게 맛난 걸 아버지 엄마도 드셔보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들 정도로 설에 뵌 부모님은 갑자기 많이 늙어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그리고 사실 '맛난 것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는 그때'는 나이를 떠나서 누구에게 갑자기 닥칠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53화 '도시의 수도승'은 1년 365일 거의 닭가슴살만 먹고 버티는 보디빌더의 세계를 다루었다.
아름다운 몸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보디빌더들이랑 수도승은 언뜻 보기에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허영만의 만화 속에서는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쌀이면 쌀, 청국장이면 청국장, 설렁탕이면 설렁탕, 관심이 가는 주제이면 달려들어
아주 뽕을 빼놓고 보는 이 작가의 완벽주의도 신뢰감이 간다.
음식 이야기에 이렇게 인생을 담아내다니! 호들갑 떨지 않고......

각 에피소드마다 친절하게 달린 '취재일기 못다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허영만의 요리일기' 팁도
아주 요긴해서 수첩에 그대로  베껴 쓰고 싶을 정도이다.
(<맛의 달인>은 저리 가라!)
 
특히 11권의 뒤에는 만화가가  팬으로서 부푼 가슴을 안고 강화도로 찾아가 만난
시인 함민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로로 넘어가기 직전인 작가의 순정이라니!

함민복 시인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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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0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51세입니다. 물론 결혼했지요. 직업은 건축가입니다.(...)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이 부분 때문이라도 추천은 필수.....^^

하늘바람 2006-04-06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식객 좋지요 저도 11권 접수해야겠습니다

로드무비 2006-04-0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사실 책값이 좀 비싸잖아요.
4권까지 빌려서 읽고 중단한 만화인데 전부 살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손이 부들부들.^^;;

메피스토님, 저 부분 읽으며 제가 누구 생각했게요?
나이는 다르지만......ㅎㅎㅎ

플레져 2006-04-0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서 몇 번 봤는데, 김치찌개 편이었던가... 이미지가 언뜻 떠오르네요.
차안에서 두 번이나 보셨다니 구미가 확~ 땡깁니다 ^^

로드무비 2006-04-06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사실 11, 12권 함께 사면 <오래 된 식당>이란 책을 주더라고요.
맛집 가이드북.
김치찌개 편도 읽어보고 싶은데...
부대찌개 편 보고 의정부까지 갔잖습네까.ㅎㅎ


urblue 2006-04-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그 부대찌개 편은 봤는데. 정말 맛있던가요?

로드무비 2006-04-0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정부 오뎅식당?
정말 맛납니다.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mong 2006-04-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의 댓글에 한표~ㅎㅎ
리뷰가 아주 구수하니 진한맛이 납니다 ^^

sudan 2006-04-0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는 비오는 날의 부침개였는데. 그새 설렁탕 추가.
식객 전 안봤어요. 남들 다 재미있다 하니까 괜히 보기 싫더라구요. 근데 로드무비님이 재밌다하시면 막 궁금해지는거 있죠.

로드무비 2006-04-0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또 한 접시 추가할까요?ㅎㅎ
수단님, 요즘 컴이 걸핏하면 다운되어 리뷰든 페이퍼든
급히 써갈겨서 일단 올리고 봅니다.
그러니 댓글 달러 들어왔다가도 고칠 게 자꾸 눈에 띄네요.
수단님, 제가 재밌다 해서 샀다가 실망했던 게 분명 있을 텐데.
제 땡스투의 절반을 수단님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너무 꿈이 야무지죠?ㅎㅎ

mong님, 구수하고 진한 맛, 제가 좋아하는 맛입니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어느 처자도 떠올렸다우.)

oldhand 2006-04-0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북 출신의 시아버지와 김장 김치에 대한 에피소드.. 땡스 파파 였나요? 암튼 이 에피소드도 찌릿 했어요.

로드무비 2006-04-0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그게 몇 권에 실렸을까요?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도 오래 되어서리. 쿨럭.
(기억했다가 꼭 보렵니다.^^)

플레져 2006-04-0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ik.paran.com/
여기 가보시면 김치찌개편 보실 수 있어요.
궁중떡볶이 편은 넘 외롭고 외로워요..흑.

oldhand 2006-04-0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좀 초반이었는데요, 1권은 아니고, 2권이나 3권 중에 있을 듯 합니다요. ^^

로드무비 2006-04-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제가 4권까지는 읽었거든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플레져님 땡큐!^^
궁중떡볶이 너무 먹고 싶네요. 흑.

nada 2006-04-0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장인들.

비로그인 2006-04-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물론 바디빌더는 아니지만 수도승과 같다는 말에 백프로 공감합니다..
정말 고난의 길이예요..ㅜㅜ(맘대로 술도 퍼마시는 애가 왜 우는지..ㅎㅎ)

에로이카 2006-04-0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 한 마리에서 삼겹살을 베어내려면 돼지 립은 포기해야 한다고 얼핏 들었어요. 그래서 돼지갈비 집에서 쓰는 고기들은 대부분 허벅지 살이라는 것도. 입에 침 고입니다. 로드무비님의 효심에 또한 감동합니다.

로드무비 2006-04-0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co님, 저도 그렇게 들은것 같아요.
허벅지살을 갈비에 붙이다니 절묘한 기술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주 맛있다고 하시니 저는 만족합니다.
'효심' 종류는 아니고요, 자기만족적인 차원이랍니다. 헤헤~

사야님, 정말, 왜 우시는지?=3=3
매일 달리기를 하시는 부분만도 엄청 존경스럽습니다.
하프마라톤 거리는 달리시잖아요.
존경스럽습니다.^^

cauliflower님, 정말 멋집니다. 장인들.^^

2006-04-08 0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04-0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저도 빌려서 5,6,7권만 읽었었어요..
앞권을 안봐서 찝찝해 했었지만, 그렇게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기회되면 이 책 살까 생각중입니다..

로드무비 2006-04-0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저도 살 생각입니다.
홍콩에서 배가 들어오면......^^
 
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확실히 나는 뭔가 불안정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는 편인가.
관리사무소 앞 차량에서 영광굴비인지 꽃게인지를 딱 30분 동안 정가의 절반에 싸게 판다는
방송으로 처음 내 귀에 잡힌 우리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청년의 목소리.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도 그 청년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심하게 상기되어 떨리어 나온다.
며칠 전 아파트 주민 무료진료를 알리는 방송에 귀기울이던 나는
순전히 그 청년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하자보수 신청서를 가지고 관리사무소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슬며시 했다.

간결하고 매력적인 제목에 끌려 이 책을 골랐다.
2004년 오늘의 작가상 공동 수상작인 한수영의 장편소설 <공허의 1/4>은 
작은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그녀는 엄청 비대해져
걷는 것도 힘겨울 정도다.
늙어도 사나움이 조금도 가시지 않은 어머니는 휴지뭉텅이를 얻어오는 재미에
약장수 패거리 주위를 얼씬거리다가  어마어마한 액수의 옥매트를 몰래 사들고 온 날,
난생 처음으로 상냥하고 비굴한 모습을 딸에게 보여준다.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이 월급의 3분의 1을 축내는 먼 도시의 요양소에 있는  언니 등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이란 건 한마디로 갑갑함 그 자체이다.

주변 인물은 어떤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초로의 관리소장과,
청소와 쓰레기 정리서껀 하루종일 아파트를 돌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잡역부 김씨,
좀 머리가 모자란 그에게 술을 먹이고 지분거리는 청소부 아줌마들의 골방,
죽은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엄마가 있다는 먼 행성 안드로메다로 떠날 것을 꿈꾸느라
수업을 밥먹듯 빠지는 어린 소년.

어찌 보면 좀 작위적인 설정 같기도 한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바로 내 주변에
한 명씩은 꼭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 중의 한 명일 수도.......
유사시 음독을 하기 위한 독약을 몸에 지닌 기분으로 항시 사무실 책상서랍 속에
소주 한 병을 숨겨두는 그녀.

--몇 년 동안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도 있었다.
(...) 해마다 1월 1일이면 나는 가판대에서 사온 신문을 옆에 놓고
목삼겹살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불판 위의 목삼겹살을 보며 나는 울었다.
정말이지 삼겹살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비계와 살코기가 기가 막히게 어울려 있는 조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목삼겹만큼만 쓰고 싶었다.
불판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관절염까지 찾아들었다. 볼펜을 오래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새천년을 몇 달 앞에 두고 나 혼자 절필을 선언했다.(53쪽)

나는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아본 적도 없고 신춘문예에 응모해 본 적도 없지만
락스 냄새가 희미하게 떠도는 어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더러는 마이크를 들고 방송도 하고
온갖 잡무를 처리하고 다니느라 절룩대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내가 꼭 그녀인 듯한
쓸쓸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공허의 4분의 1'은 류머티즘 관절염에 최고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쨍쨍한  햇볕, 거기서도
룹알할리라는 사막  이름이다.
그곳에 가서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채 평생을 살면서 몸속의 습기를 모두 말리고
어긋난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나도 빨래처럼 바위에 널어  바싹 말려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세상이 너무 완벽해 보여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것이 젊은 날의 고민이었다면,
끼어들고 싶은 곳이 더이상 없는 중년의 날들도 공허의 4분의 1은 차지하지 않을까.
함께 실린 '개와 늑대의 시간'과 ' '십일월' 두 단편도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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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6-03-2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륭같다고 최승자시인이 썼었지요. 나이먹을수록 공허도 점점 뚱뚱해지는 것 같습니다.

로드무비 2006-03-2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을수록 안 뚱뚱해지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하니케어님.^^;;

Mephistopheles 2006-03-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황이 너무 처참한 것 아닌가요....!!

blowup 2006-03-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미한 락스 냄새는 힘겹게 관리되는 일상의 체취 같아요. 조금씩 부패해가는 일상을 은폐하려는 노력 같은 것일까요.

mong 2006-03-2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리 사무소 청년이 뚱뚱하고 볼이 몽실몽실하면
재미있을것 같아요 ㅋㅋ

로드무비 2006-03-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불현듯 제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데
님이 말하는 분이 혹시?ㅋㅋ

namu님, 딱 그거예요.
힘겹게 관리되는 일상의 체취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왠지 리뷰 제목에 락스 냄새를 꼭 넣어주고 싶더라니......^^

메피스토님, 얼핏 보면 그런 것 같지만 또 곰곰 생각해 보면
처참,이라는 단어를 쓸 것까진 없을 것 같은데요?
저보다 애달픈 사정이 워낙 주변에 널렸지 않습니까.;;

kleinsusun 2006-03-28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나는 뭔가 불안정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는 편인가."
- 제게 관심이 엄청 많으시겠군요. ㅎㅎ

삼겹살 비유는 진짜 딱이네요. 아...저도 삼겹살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6-03-2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님은 그런 관심이 아니고 다른 종류의 관심의 대상이죠.
아심시롱.^^
(삼겹살 먹고 싶네요. 새벽 댓바람부터.ㅎㅎ)

2006-03-29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3-2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시장을 보고 오는데 그이로 추정되는 청년을 봤어요.
관리사무소 바로 앞에서.
속삭이신 님, 님은 님대로 관리사무소 이야기 써보세요.
변두리 동네 비디오대여점만큼이나 흥미로운 소재여요.
흥미롭다고 표현해서 미안하지만.
흥=3 이 리뷰는 왜 그리 늦게 보신 거예요?
괜히 좋아서 앙탈 한 번 부려봤어유.^^
 
행복한 폐인의 하루 - 이 시대의 영원한 화두, 게으름에 대한 찬가
베르너 엔케 지음, 이영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품절


폐인을 자처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것조차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자신을 치장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오래 전 자신을 詩만 쓰는 무능력자 혹은 폐인임을 자처하며 만나면 김밥 한 줄 값 내지 않던 위인이 자신의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출강하고 있으며 새 소설을 한 권 출간한 것을 며칠 전 아침 알라딘 신간 소개 코너에서 알았다.
사람들 앞에서 죽겠다고 우는 소리를 해놓고 자신에게 유익한 일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몰래 하는 사람이 '자칭 폐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만화일기의 주인공 '축 늘어진 하로'는 어떨까?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 소개

언제나 이발관에 갈 시기를 놓쳐 머리 한 올이 축 늘어져 있는 주인공 하로, 동심을 나타내고 싶어 모자 챙을 뒤로 하여 쓰고 있는 하로의 술꾼 친구 프랑크. 머리 꽁지에 리봉을 맨 하로의 동거녀 주지......뭐 이런 식의 인물 소개.
등장인물 페이지를 보고 본문 몇 장을 들춰보면 "아, 나도 이런 책은 낼 수 있겠다!"하는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도 이 책이 파놓고 있는 함정이다.

-- 5월 12일, 신문광고란을 꼼꼼히 읽다.
'배우는 아름다운 거울을 찾는다'라는 말풍선.(29쪽)

폐인이 즐겨 찾는 곳으로 동네의 공원 벤치만한 곳도 없다.

-- 아, 태어나지 말 것을......
"너 요즘 어디 사니?"
"변두리 중심지."(49쪽)

책 맨 앞에 소개된 축 늘어진 하로의 수기,
'올해는 엿같았다. 그렇긴 해도 몇 가지는 쪽지에 메모해 두었다.'

--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라 지쳤다. 사람들은 언제나.....무엇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놓쳤다는 느낌을 받는다.(150쪽)

침대에 등짝이 자석처럼 들러붙어 하루를 보내는 생활.
"이런 하루도 하루가 될 수 있다니 놀랍다"라고 썼던 어느 작가가 있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프 디터는 늘 아들에게 몽둥이 찜찔이래"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이야."(167쪽)

주지와 친구 민헨의 대화.
그녀들을 구분할 수 있는 건 나비 리본의 위치.

저 대사에 공감한다.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 나만 보더라도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같이 사는 여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여자는 없을 거야."
"......바로 그걸 거꾸로 상상해봐."(220쪽)

그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자신의 방 침대와 거리와 극장과 술집이 고작. 그런데 희한한 건, 너무나 단순하고 비슷한 그림과 대화와 독백이 계속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처음 보는 그림처럼 새롭다는 것이다.

(하도 비슷한 그림들이다 보니 말풍선과 페이지가 바뀌었는데 그냥 두련다. <행복한 폐인의 하루> 포토리뷰니까 어쩐지 그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각각의 폐인들과 다른 병명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털어박힌 수많은 창문과 몇 개 안되는 가게가 드문드문 보이는 골목들.

-- (12월 8일) 나는 오늘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성인 1마르크, 어린이 1마르크 50페니히라는 표찰을 내건 거지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어린이가 어른보다 돈을 더 줘야 하나요?"
"어른이 되면 뭔가 득을 보는 게 있어야지."(288쪽)

어른이 되면 뭔가 득을 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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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 늘어진......압권이네요...^^

mong 2006-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지난주에 이책이 읽고 싶더라구요 ^^

로드무비 2006-03-2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이 만화 마음에 들어요.ㅎㅎ

메피스토님, 머리 한 올로 캐릭터 설명이 끝나니, 대단하지요?ㅎㅎ

에로이카 2006-03-2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오히려 그런 폐인이 되고 싶어요. 챙길거 다 챙기는...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하기 쉬운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도 하지요. 제 경우만 봐도... 로드무비님 말씀을 왜곡하는 건 아니구요.. 어쨌든 이 참에 의욕을 실행으로 옮겨보시는 건 어떨지... 댓글과 추천.. 빠밤...

hnine 2006-03-2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눈에 들어오네요. 재미있겠어요.

kleinsusun 2006-03-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김밥 한줄 값도 안내던 자칭 폐인이 그동안 정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군요. 그분이 낸 소설이 뭔지 궁금해요.^^

비로그인 2006-03-2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반가운 문자들이 보이네요..ㅎㅎ
혹 독일에서 발견하게 되면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다는 결심불끈..^^

숨은아이 2006-03-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가 왜 뭔가 득을 봐야 할까요? ^^

승주나무 2006-03-2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란 돼먹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에 올인..
저는 돼먹은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요^^

재밌네요
근데 "같이 사는 여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여자는 없을 거야."
를 거꾸로 하면 뭐가 되나요? 진짜 궁금해서^^;;;;;

로드무비 2006-03-2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같이 사는 남자보다 이 세상에서 더 재미없는 남자는..."이겠지요.^^
나이 서른, 가능성이 울울창창한 나이입니다.
꼭 돼먹은 어린아이로 사시길......^^

숨은아이님, 돼먹지 못했으니까요.ㅎㅎㅎ

사야님, 가끔 나오는 독일어 보고 '사야님은 이 글들을 아시겠네?'
생각했답니다. 꽤나 침투하신 님이로군요.^^

수선님, 살짝 알려드릴까?
비밀을 보장해 준다면.....(나처럼!(''))

hnine님, 제목부터 흥미롭죠?
단숨에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cacophonyinme님, 오오 저와 같은 생각.
사실은 실속형 인간인 그들이 부러웠다는......
중요한 문제는 보자기로 덮어두고 쓰잘데기없는 일에
매진하는 부분도 제 경우네요.ㅎㅎ
댓글과 추천에 대해 신경이 미치신 것 아주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저도 '추천의 생활화' 이후 방이 아주 번듯해졌거든요.^^



플레져 2006-03-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면 득을 보는 게 정말 없었나... ㅠㅠ
싸늘한 반전이어요. 흑.

nada 2006-04-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인지 저는 폐인을 보면 항상 feign이 떠오르더군요.

로드무비 2006-04-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묘하네요.^^

로드무비 2006-04-1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플레져님, 싸늘한 반전이라, 좀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