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든 게 불안하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세계의 것들에게 포위된 느낌이다. 내가 결심한다고 해서 거대한 환경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때로 절망하고 무기력에 빠진다. 그럴 때 신은 절대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런 존재가 있다. 든든한 어른, 기도를 올릴 수 있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다 인간은 왜 이리 나약한 존재인가, 알 수 없는 물음에 빠져든다. 


정말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만드는 세계를 생각했다. 예전에 받았던 느낌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어린 소년 싱클레어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부모와 주변 어른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얻을 수 없어 하루하루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그를 그곳에서 탈출시키고 싶었다. 너무도 빨리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린 소년의 복잡한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억 속 「데미안」은 그저 성장소설이었고 알에서 나와야 새로운 세계를 갈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로 남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더 나은 세계,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세계를 갈망하는 간절함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과 내적 성숙함을 헤세는 아름답고도 경이롭게 들려준다. 유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맺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 그 안에서 갈등하는 자아를 만난다. 누구나 겪는 느낌이고 누구나 지나온 과정이라기엔 싱클레어는 너무 빨리 세상을 지배하는 어떤 힘을 알아버렸다. 그건 데미안을 만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를 꿰뚫어보는 사람,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사유하는 데미안. 그가 말하는 카인의 징표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싱클레어가 술에 취하고 방황하면서 끝내 도달한 그곳에는 데미안이 있었다. 그와 닿고자 하는 바람, 그건 자신의 내면에 닿고자 하는 것과 같았다. 알 수 없는 끌림, 꿈으로 나타나는 욕망, 그 모든 것을 통해 싱클레어가 원했던 건 데미안과 같은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회개혁을 위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신에 대한 생각들, 카인에 대한 해석은 편협한 세상을 향한 일침 같았다. 현재를 사는 우리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데미안」중에서)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게 헤세가 전달하는 그것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헤세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면서 현재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러니까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것들이 겹쳐 보였다. 전쟁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깨뜨리고 나아가야 할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디 에센셜 헤르만 헤세』에 수록된 다른 단편과 에세이에서도 헤세는 그런 세계를 말한다. 알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헤세가 경험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 상황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잔혹한 현실의 도피처 같은.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이나 「남쪽의 낯선 도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으로 사라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 속 화자 ‘나’가 돌아온 고향은 낯선 체계로 가득하다. ‘나’를 맞이한 세계는 오직 문서와 서류로 증명되는 곳이며 죽음을 위해서도 허가증이 필요하다. 전쟁의 상흔은 인간의 고유성을 말살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반해 환상소설 「룰루」은 황홀하다. 여관 주인의 조카로 등장하는 룰루는 사라진 왕국 ‘아스크’의 공주 ‘릴리아’로 소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간다. 룰루는 사랑하는 시인과 그의 친구들은 헤세 자신과 그의 친구들이라 할 수 있다. 룰루를 향한 사랑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그리하여 「룰루」는 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로 다가온다. 어쩌면 헤세가 원하는 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 아스크 왕국 같은 건 아니었을까. 물론 「룰루」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그 후 겪게 된 전쟁을 생각하면 말이다. 


전쟁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헤세가 견뎌야 할 사회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 작가를 감시하는 이가 등장하거나 시를 쓰려면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정부나 권력의 통제가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로 살고자 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헤세가 「데미안」에서 그토록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건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데미안」중에서)


철학적인 헤세의 글은 에세이 「까마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야곱이란 이름을 가진 까마귀 한 마리에 대한 그의 통찰은 놀랍다. 재주를 부리는 까마귀를 향한 보통의 시선과는 다른 헤세만의 시선. 모두가 사랑하는 까마귀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상상한다. 까마귀를 통해 삶의 근원과 죽음까지 사유한다. 결국 까마귀의 인생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헤세의 글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니, 지금 나에게 가는 길을 살고 있을까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저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길에 우리는 수많은 ‘데미안’을 지나쳐 온 건 아닐까. 여전히 알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조급함이 밀려온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나는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온전히 직시할 때 진정한 나를 만나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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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의 모든 것들이 불안을
자극하지 않나 싶습니다.

되짚어 보면 불안 없이 살
수도 없겠지만요. 그냥 그
렇게 살아지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책과 만나는 시간, 적어도
불안하지 않고 사유에 오
롯하게 집중할 수 있어 애
정하는 바입니다.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 공
감합니다.

자목련 2023-01-12 12:0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더 편리해진 시간에 불안은 더 커졌어요.
뭔가에 빠지는 일이 그래서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2023-02-0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2-09 10:35   좋아요 1 | URL
^^*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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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를 쓰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그것은 필요하다. 문학의 역할 중 하나로 생각한다. 문학, 예술을 통해서 시대를 읽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마는 일들, 시의성 있는 소설로 우리는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백신애,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현대 여성 작가가 이어 쓰는 형식을 지녔다. 근대와 현대라는 시대 차이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어 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백신애의 단편을 읽고 그런 의문은 사라졌다.


시대가 지나도 여전한 우리 사회의 문제(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 폭력, 부당한 대우, 가부장제)는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우선 백신애(1908~1939)가 쓴 세 편의 단편을 보자. 1938년 발표한 「광인수기」부터 「혼명에서」, 유작인 「아름다운 노을」까지 주인공 여성의 삶은 시대상을 반영하다. 


열일곱 살에 혼례를 치른 「광인수기」의 ‘나’의 남편은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고 시누이와 시어머니와 살게 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그들에게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은 편지를 보내고 대학교를 그만두고 남편이 돌아오자 시댁으로 들어온다.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주의자’에 빠져 맘 고생을 시키고 나중에는 바람까지 피우고 ‘나’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어느 누구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가 없는 ‘나’가 하느님께 고하는 독백 형식의 이야기.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 내가 모두 팔자로 돌리고 좋으나 궂으나 좋다고만 하니까 아주 나를 바보로 아는 모양이지, 이 지경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광인수기」, 17쪽)


당시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백신애가 대단하다. 어디 소설뿐이었을까. 모든 잘못은 아내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흔했던 시대. 그러니 이혼 후 돌아온 「혼명에서」 속 ‘나’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나’는 아플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혼이 뭐 대수라고 말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한 이가 있었으니 우연하게 만난 ‘S’였다. 운명처럼 세 번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나’는 건강을 회복하고 먼 앞날을 검토하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하지만 돌아온 건 ‘S’의 사망 소식이다. 소설에서 ‘나’와 ‘S’가 연애 감정을 지녔거나 호감을 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분명 사랑이다. 


당신은 살아서 나에게 ‘힘’을 가르쳐주었으면 죽어서 나에게 희망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혼명에서」, 107쪽)


백신애의 단편 중 가장 아름답고 여운을 남긴 건 「아름다운 노을」이다. 남편이 죽고 아들 하나를 둔 삼십 대 여성 ‘순희’는 재혼을 해야만 했다. 시집의 대는 아들이 잇고 재혼으로 친정의 자산을 받기 위해서다. 의사인 재혼 상대는 순희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그의 동생 ‘정규’를 본다. 자신이 원했던 이상향의 모습, 그림을 그리는 순희가 절실하게 원했던 모습이다.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화폭에 그릴 수 있는 얼굴. 단지 모델로 반한 거라고 다짐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순희를 향한 정규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의 감정은 진정 사랑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건 불가능하다. 아들보다 세 살 많은 정규를 어찌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최진영이 이어 쓴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은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 변주한 소설이다. 이혼 후 십 대 딸을 키우는 사십 대 ‘순희’와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십 대 여성 ‘정규’의 이야기. 소설은 화자인 ‘나’ 정규의 불안으로 시작된다. 여자 혼자 일하는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 귀갓길의 위험,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여성이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닌 범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불안. 그 안에서 사랑은 가능할까. 최진영은 순희와 정규를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규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순희를 처음 만났다. 여학생 사진을 보여주며 본 적이 있냐고 묻는 순희에게 정규는 본 적이 있지만 없다고 말한다. 그 뒤 정규가 일하는 펍에서 순희를 다시 만난다. 자연스럽게 친해진 둘은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과 고민을 나눈다. 비 오는 날 달리기를 좋아하는 일, 퇴근하고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걷는 일. 


따뜻한 바람이 우리 뺨을 어루만졌다. 천천히 다가갈 것이다. 오래오래 바라볼 것이다. 정성을 다해서 내 마음을 전할 것이다. 당신이 빗속을 달릴 때 나도 그 빗속에 있어요. 어딘가에서 나도 당신처럼 혼자 달리고 있어요. 홀로 달리고 있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심심하고 외로운 당신이 그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229쪽)


더 나은 쪽을 향하여 시대가 변한다고 믿는데 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세상은 혐오와 증오가 가득하다. ‘소설, 잇다’에 참여하고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최진영이 “백 년을 사이에 두고 선생과 나는 같은 생각을 품고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240쪽)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소설을 읽고 응원하고 함께 나가야 한다. 앞으로 여성이 살아갈 시대에는 이런 주제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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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06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대 여성의 문학을 현대 여성 작가가 이어서 쓴 이야기라니 흥미가 생기네요. 자목련님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01-06 10:02   좋아요 2 | URL
네, 풍성한 이야기와 생각을 안겨주는 책이었어요. 근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통해 그때의 실상도 마주하고요.

책읽는나무 2023-01-06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신애 작가가 근대 여성작가였군요?
그래서 제목이 더 와 닿네요^^

자목련 2023-01-09 09:00   좋아요 2 | URL
말씀처럼 그래서 더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기록은 유용하다. 바로 읽지 않아도 이 즈음에 이런 책을 들였구나 알 수 있다. 구매 목록을 뒤지지 않고도 설령 정리한 책이더라도 언제쯤 책장에 들어왔는지, 다시 구매해야 하는 책이라고 이때 샀었구나 알 수 있으니까. 어떤 책의 운명을 읽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니까 읽다가 영 별로여서 그렇기도 하고 읽어야 하는데 때를 놓쳐서 그렇기도 하다. 읽었지만 리뷰를 남기지 못하는 책들이 그러하다.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어떻게 써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남기지 못한다. 어떤 책은 읽었는데 바로 기록하지 않아서 내용도 생각이 안 나고 책도 곁에 없을 경우 기록을 할 수 없는 책으로 분류된다.


어쩌면 올해도 그런 책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읽은 책들에 대한 리뷰를 꼭 남기자고 다짐해도 그게 참 쉽지 않다. 쉬운 것 같은데 어렵다. 지속해왔던 일인데도 말이다. 능숙하다고 해도 할 때마다 두렵고 할 때마다 긴장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니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다만 익숙해져서 설렘이 사라질 뿐이다.





여하튼 1월의 첫 책들은 소설과 에세이다. 엄마와 작가로 살아는 어려움과 고단함, 제목에서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되는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들었다』, 백신애를 검색하며 읽게 될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겨울이니까 『소설 보다 : 겨울 2022』도 곁에 둔다. 이번 소설 보다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한 명도 알지 못했다. 검색도 하지 않았다. 신춘문예당선자를 검색하지 않는다. 천천히 그들의 글과 만나도 나쁘지 않고 설령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속상할 일이 아니다.


올해에는 시집을 읽어야지 싶다. 그러니까 작년에 대충 둘러본 시들, 그 안에 얼마나 좋은 시가 가득할지 모르고 미뤄둔 시집들. 사들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사들인 시집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만드니까. 내가 읽으려고 산 책들을 기록하는 일은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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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0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에 대한 말씀 매우 공감합니다. 저도 올해는 짧게라도 기록을 다 남기고 싶어요.
고르신 책들이 다 고요하고 차분해 보이는 느낌이네요. 아니, 엄마와 작가로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단함이라면 분투하는 내용이려나요!

자목련 2023-01-05 15:49   좋아요 1 | URL
나만의 위한 기록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쓰지 못한>은 말씀하신 부분이 많아요.
독서괭 님이 올려주시는 토지 리뷰는 아마도 토지 읽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저 같은 이에게 참 좋아요!

레삭매냐 2023-01-0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월의 책들로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소설들이네요.

<방어가 제철>도 빌려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자목련 2023-01-05 15:50   좋아요 1 | URL
이사벨 아옌데의 책 리뷰가 순차적으로 올라오겠네요.
아름다운 소설이라니 더욱 궁금합니다^^

Falstaff 2023-01-0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자목련 님 서재에 이정록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데,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게 또 어디 있나 싶습니다. 재미있습니다. ^^

자목련 2023-01-05 15:51   좋아요 0 | URL
이정록 시인의 <의자> 말씀이시군요.
제가 한때는 시집을 열심히 사들였어요. ㅎ

Falstaff 2023-01-05 17:06   좋아요 0 | URL
이정록의 씨가 못 먹어도 직진이잖아요. 그래 그이의 시하고 자목련 님의 이미지하고 좀 덜 어울리는 걸로 생각했었답니다. ^^;;;

blanca 2023-01-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소설과 시 독서에 제가 다 설레네요. 기록 안 한 독서는 다 사라지더라고요. 저도 올해부터 잘 기록해야겠습니다.

자목련 2023-01-05 15:52   좋아요 0 | URL
분명 읽은 책인데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어 좋아요.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라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블랑카 님의 새해 첫 책은 무엇일까요?

책읽는나무 2023-01-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백신애와 최진영> 책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에서 놓았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도 구입한 책탑을 자꾸 페이퍼에 써서 자랑하는 이유도 기록이었던 것 같아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책을 샀다고 기록하면서 스스로에게 읽어야겠구나! 의지를 다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곤 하구요^^
그래서 기록의 힘은 소중한 것 같아요.

자목련 2023-01-05 15:54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소설, 잇다> 읽고 있는데 좋습니다. 아마도 제가 여성이라고 그렇겠지요. 백신애라는 작가를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책탑은 아주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나무 님의 기록은 읽는 저에게도 아주 훌륭하고 즐겁고 소중하지요!
 
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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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은 익숙함을 떠나 그것들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게 많다. 인간을 도와주는 단순함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정을 나누는 존재의 역할 말이다. 어쩌면 미래의 로봇은 그 이상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로봇을 기대하는 일은 유토피아의 미래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미래와 마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천선란의 장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의 미래도 그러하다. 


황량한 사막으로 배경을 펼쳐진 로봇과 인간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인간을 향한 로봇의 애도라고 해야 맞겠다. 로봇 ‘고고’는 자신을 발견하고 함께 살았던 인간 ‘랑’의 죽음을 지켜본다. 고고와 함께 랑을 묻은 ‘지카’는 떠났다. 고고도 길을 나선다. 그곳은 랑이 원했던 곳이다.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땅을 찾아 떠난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로봇 고고.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면서 랑과의 시간을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미래엔 분명 반려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내가 그 미래에 속할 것 같지 않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것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고고와 랑의 대화처럼 목적이 아닌 존재 자체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보내게 될까. 


‘마음은 중요해.’

랑의 말에 나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고, 랑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목적이야. 네 목적에 가장 빨리 닿으려고 애쓰는 게 마음이야.’

내게는 랑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목적이 있다. 행복을 웃음과 편안함과 숙면 정도로만 추측할 수 있으면서 감히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 (44쪽)


고고는 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자신을 구한 랑, 랑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아는 인간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랑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과거로 갈 수 있는 땅은 존재하는 것일까. 고고가 그곳을 바라는 건 그곳에서는 다시 랑을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고에겐 랑을 만나는 일이 간절하다. 


사막에서 랑이 만난 이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랑에게 전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아는 것 같은 버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푸른 스카프를 두르고 죽은 시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잃었지만 주인의 명령에 따라 길을 만드느라 트랙터에 몸을 부딪히는 로봇 알아이아이, 눈부신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외계인 살리. 모두 처음 만나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랑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고에게는 전쟁으로 멸망에 가까운 미래의 사막에서 혼자가 아닌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고를 지배하는 건 랑이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자신의 존재를 아끼고 사랑해 준 랑. 자신이 인간을 죽이고 지구를 망하게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랑은 고고를 만난 순간부터 그 자체를 인정했다. 


고고는 자신이 로봇이라 인간인 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여겨 그 사실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로봇 알아이아이를 도와주느라 망가진 몸으로 언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로 외계에서 온 살리와 대화를 이어가는데 살리는 랑을 향한 고고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살리는 고고가 닿고자 하는 과거의 땅을 알고 있었고 랑과 고고가 어떤 사이였는데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게 해준다. 


“너도 감정이 있다는 말처럼 들려. 너는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그렇게 느끼…… 네가 감정을 느끼는 존재……기 때문이다.”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132~133쪽)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인간은 적고 로봇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도와주며 함께 살아가는 실용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친구가 되어줄 로봇을 생각한다. 마음이나 감성을 인지하고 작동하는 대신 소설 속 살리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로봇을 말이다.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씩 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144쪽)


얼핏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의 여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런 이유로 사막에서 만난 이들은 고고가 아니라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세상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러나 이 소설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건 랑을 그리워하는 고고의 마음이다. 랑과의 모든 순간이 기쁘고 행복했다는 걸 느끼는 고고. 고고의 여정은 이제 랑을 향해 나간다. 그 끝에 있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설령 디스토피아의 혹독한 미래라 할지라도 고고 같은 로봇이 있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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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을 만나면 설레고 좋다. 울림이 있는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 신기하고 기쁘다. 그게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읽다만 에세이의 다음이 궁금하고, 친구처럼 대화를 건네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나도 뭔가 답장을 쓰고 싶어진다. 책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정리된 책들 때문에 집안이 좀 지저분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책을 잘 읽을 수 있다. 


소설도 많이 읽고 좋아하지만 에세이가 주는 매력도 놓칠 수 없다. 최근에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강세라는 걸 느낀다. 편안하면서도 색다른 주제를 다룬 에세이, 훔치고 싶은 문장, 나도 따라 쓰고 싶은 문장까지 에세이가 줄 수 있는 느낌들.


좋았던 에세이를 꼽자면 당연 황정은의 『일기 日記』다. 추천 사유엔 사적인 애정도 부인할 수 없다. 소설가의 첫 산문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 과 여러 소설가의 쓰기에 대한 이야기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도 만족도가 큰 책이다.













빠져드는 글들이 있다면 반성하고 각성시키는 글들도 있다. 정희진의 책이 그러하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는 공부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었다. 나를 아는 일, 나를 찾는 일에 대해 읽고 쓰는 일이 주는 위안과 깨닮음이라고 할까. 황정은의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란 말과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한나 아렌트 평전』도 좋았다. 한나 아렌트를 처음 만나는 책으로도 나쁘지 않다.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잘 몰라고 쉽게 읽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를 위한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말해도 좋을까.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없다. 좋았던 책을 고르고 보니 죽음에 대해 말하는 두 권의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과 『자유죽음』. 무거울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상실과 애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생각한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지만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주, 지구, 에너지,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이 존재한다고 느껴졌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영원히 사울 레이터』,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에 펼치며 사색에 빠진다.












어쩌면 놓치고 만 책들도 있을 것이다. 놓쳐서 더 궁금한 책, 나중으로 미뤄서 조금 천천히 만날 책, 책도 사람과 같아서 만나게 될 책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2022년에 만나지 못한 책들은 2023년에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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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03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지 않은 문장을 만나면 기분이 안좋아지면서 이걸 기록해 놓고 싶어진다. 특히 한국어 문장구조를 초월해 있는 번역 문장을 만나면 신경질이 도진다. 거기에다가 비약이 심한 문장들의 나열이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며 책을 집어 던진다. 이런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거에 심한 실망감을 느낀다. 이런 안 좋은 감정들은 철학 번역서를 읽을 때 종종 느껴지는 기분이고, 코맥 매카시의 글을 읽을 때 만나게 되는 감정이다. 이럴 때면 책을 읽기가 싫어진다..

첫 문단을 읽으면서 든 느낌을 바로 덧글로 달아봤습니다..ㅎㅎ

자목련 2023-01-03 17:15   좋아요 1 | URL
야무 님의 센스 댓글 감사합니다.
올 연말에는 좋은 책과 더불어 그렇지 못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평온한 날들 이어가세요^^

mini74 2023-01-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기 좋았어요 자목련님 ~ 한나 아렌트 평전은 읽고 있는 중입니다 ~ 답장을 쓰고 싶어진다는 마음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

자목련 2023-01-04 14:57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 평전를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기회가 되면 조금 더 그에 대해 읽고 싶어요.
미니 님, 따뜻하고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01-0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책이 있어 좋네요^^
사울 레이터는 사다 놓곤 읽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반갑고 좋네요.
작년에 책 제목을 자주 봤었던 책이 많아요.
역시 좋은 책이었나보다! 싶어 더 눈에 담게 됩니다.^^

자목련 2023-01-04 14:58   좋아요 1 | URL
읽지 않아도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좋은 것 같아요.
알라딘을 통해 눈으로 마주하는 책들이 다 궁금한 건 마찬가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