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우리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아니,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안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니고 모른다고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한 사람과의 사귐, 그리고 그것을 오래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도 되는 게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이 같은 듯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알고 있기에 때로 조심하고 알고 있기에 때로 기다린다.

 

 ‘너를 좋아하고 있어,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우리는 그 말에 담긴 사랑을 그 말의 무게를 재려 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게 너를 생각한다. ​너를 생각하면 그림자가 생각나고 너를 생각하면 공기가 떠올라.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 너를 좋아하고 있어, 온전히 너를 사랑하기를 바라.

 

 하나의 대상을 향한 마음이 커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물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되는 일,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마음이 장착되는 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사랑받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어떤 빛이 될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 그 사랑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 그 사랑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고 있다는걸,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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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좋은거죠^^? 흐흐흐~ 좋아서 혼자 웃네요. 글이 너무 너무 다정해서 ...

자목련 2018-01-31 17:10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의 다정한 웃음이 저는 더 좋아요^^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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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문장 안에 담긴 뜻, 주인공 이름에도 뭔가 특별한 게 숨겨졌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것은 조금이라고 작가(문학)와 닿고 싶었던 욕망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대로 읽은 게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읽어야 제대로 된 읽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설을 읽은 순간 그것은 오로지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바뀌었다. 여전히 작가의 목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지만 내가 느끼는 대로 읽은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황정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은 어쩌다 보니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처음엔 쉽게 읽히지 않았다. 사실 황정은의 소설은 무섭게 재밌다거나 빨리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첫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는 무척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문이 있거나 아버지가 수시로 모자로 변해버리는 일. 『아무도 아닌』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자꾸 그 소설집이 생각났다. 슬픔과 고통을 환상으로 견딘 소설 속 인물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고 할까.

 

 8년이 지난 『아무도 아닌』에 살아가는 이들은 여전하다. 황정은의 인물은 다른 듯하면서도 동일하다. 늙은 노인, 약자, 보통의 소시민. 황정은은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작고 소박한 일상을 이어가고 지켜내려는 모습은 때때로 지겹고 안쓰럽다. 하여 어떤 소설을 지루하고 어떤 소설은 바쁜 세상 밖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삶은 쉼 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무심한 듯 바라보는 시선이 닿는 곳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놓치는 작은 것들을 담아낸다.

 

 시골로 고추를 따러 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上行」은 각박하고 고단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같은 걸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과 맞닿는다. 깊게 쌓인 궁핍과 외로움만 가득하다. 세상 어디에도 도피처(안식처)는 없다는 명징한 울림처럼 마음이 쓸쓸하다. 과거 헤어진 연인 제희의 부모와 함께 수목원 나들이의 풍경을 그린 「상류엔 맹금류」은 불편함을 숨길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리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제희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느낀다는 건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맹금류 축사에서 흐르는 물을 곁에 두고 도시락을 펼치는 제희의 부모, 그 물이 똥물이라고 말해버리는 나. 왜 그들은 더 가깝고 더 편안한 곳으로 나들이를 가지 못했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왜 제희가 아닌 다른 이를 선택했을까. 제희의 부모에게서 미래를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도 아닌』 속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최소의 것들이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안하게 쉴 공간, 긍지를 갖고 자신의 일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 같은 것 말이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고충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복경」과 카드 대금이나 이자 연체금을 알려주고 독촉하는 업무를 하는 「누가」의 여자나 가난하고 병든 부모을 돕느라 중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하 서점에서 일을 하는 「양의 미래」의 나에게는 그런 대상과 그런 공간이 없다. 부당한 대우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고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소음에 시달리고 가난하기에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그들의 일상을 황정은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너무나 적나라해서 서럽고 너무나 차분해서 슬프다.

 

 “맑은 날도 흐른 날도 우리 너머에 있었다. 햇빛은 하루중 가장 강할 때에만 계단을 다 내려왔다. 유리를 경계로 바깥은 양지, 실내는 어디까지나 음지였다. 수많은 형광등 불빛으로 서점은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밝았으니 조도가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뭐랄까, 창백하게 눈을 쏘는 빛 속에서 햇빛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후에, 유리를 통해 노랗게 달아오르고 있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양의 미래」, 48쪽)

 막연하게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서로를 격려하듯 다그치며 살다가 불현듯 그런 날이 오긴 할까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후에는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깨닫는다. 뭔가를 이루려 살아온 지난날도 보잘 것 없는 삶으로 전락해버린다. 아이를 잃고 충분한 애도 없이 사는 일에만 몰두한 부부의 해외여행기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연인 실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마저 놓치고 마는 「명실」, 함께여서 모든 게 소중했던 여자친구 디디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상실과 분노를  다룬 「웃는 남자」의 인물이 그러하다. 스스로를 유배시킨 이들의 이야기. 남겨진 이들의 삶엔 더 이상 빛이 없다. 과거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실리의 책을 지키며 온전히 그만을 생각하는「명실」은 정말 아름답고 오랫동안 디디의 죽음에 대해 그 순간에 대해 그 일에 대해 묻고 또 묻는 「웃는 남자」는 고통스럽다. 디디와 살면서 느꼈던 감정은 살아날 수 없다.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디디는 잘 먹고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 엉뚱한 것을 골똘하게 생각할 때가 있었고 그러면 그 생각에서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맛있는 것을 솔직하게 기뻐하며 먹었고 시간을 들여 책을 곰곰이 읽은 뒤 거기서 발견한 내용을 내게 말해주었다. 색실을 사용해 티셔츠 따위의 구멍난 자리에 무당벌레 같은 것을 소박하게 만들어두곤 했다. 여름에 넓은 나뭇잎을 줍게 되면 잎맥을 절묘하게 잘라내 숲을 만든 뒤 내게 보여주었다.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어. 나는 그런 것이 다 좋았다. 디디가 그런 것을 할 줄 알고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디디는 부드러웠지. 껴안고 있으면 한없이 부드러워서 나도 모르게 힘껏 안아버릴 때도 있었어.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행복으로 나 역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웃는 남자」, 172쪽)


 나는 이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고 오래 바라보았다.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어. 작고 부드럽게 말하는 그 목소리에서 어떤 경건함을 느꼈다. 그것은 딱딱하다 못해 날카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세상, 폭력으로 얼룩진 사회를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아주 작고 연약한 믿음과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자신만의 고유한 문장으로 숭고한 노동과 생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 기록하는 황정은이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때때로 추악한 분노를 감추고 때때로 무표정으로 일관하면서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 아무도 아닌 이들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아닌 이는 없다는 걸 기억한다.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세상을 어루만지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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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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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사람과 이정표뿐이다.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지라도 믿고 나간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왔을 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들인 시간이 아깝고 화가 나도 돌아가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아나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이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가기도 하고 어떤 있는 그 끝에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낯선 길을 가는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이기에 의지할 누군가를 찾는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경험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것을 인식한다. 낯선 길을 동행할 이가 있다면 점점 그 길은 익숙해진다. 반대로 동행하는 이와 헤어지고 혼자 걸을 때 더 편안할 수도 있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혼자 또는 같이의 삶을 생각했다.

 

 수상작인 황정은의「웃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d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d는 혼자가 된 것이다. dd가 사고로 죽고 세상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다. dd와 같이 있을 때 모든 것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빛났고 삶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제 삶은 그저 그런 것이다. 세상과 d는 소통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dd를 대신할 존재는 없으니까. 이정표를 잃은 d는 용산 세운 상가에서 택배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아니 그냥 산다. 그런 d에게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는 60대 중반의 여소녀가 말을 건다. 침묵이었던 d의 세상에 소리가 들어온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소리를 만지고 소리에 둘러싸인 여소녀의 가게에서 들리는 오디오의 소리. 그것은 dd을 불러왔다. 잃어버린 세상을 찾은 것처럼 d는 음악에 빠진다. 세상과 단절되었던 d에게 여소녀와 오디오의 선율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인식한다고 하면 맞을까. 황정은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웃는 남자」는 개인의 상실과 절망을 세운상가의 그것과 결합시킨다.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산업화를 통해 세운상가의 번영과 쇠락을 지켜본 여소녀의 생이 그러하고 d 앞에 펼쳐진 시위 현장이 그러하다. 희망과 변화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들과 그 곁을 지나가는 d는 그 속으로 합류하지 못하지만 외면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세상의 소리와 마주하는 d. 그렇다고 그가 제목처럼 웃는 남자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d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어떤 소리로 채워질지 기대할 수 없지만 그 소리가 궁금하다.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웃는 남자」, 94쪽)

 

 김숨의 「이혼」은 주도적으로 혼자를 선택한 삶이다. 소설 속 민정은 엄마의 이혼을 바랐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엄마가 이혼하기를 원했다. 모든 서류를 준비했지만 주저하는 엄마를 두고 민정은 집을 나온다. 이혼을 원하면서도 사회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 그런 민정이 이제 자신의 이혼을 결정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철식은 왜 이혼하려는지 민정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혼 요구를 묵살한다. 결혼이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듯 이혼도 그렇다. 앞으로 삶을 제대로 가기 위해 민정은 돌아 나왔지만 편혜영의 「개의 밤」속 김은 계속 가는 걸 택했다. 가족이 될 수 없는 처가 식구들과 그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장인은 김에게 군대 폭력의 가해자인 처남을 위해 탄원서를 받아오라고 말한다. 취직을 시켜주고 전원주택에서 살게 해준 장인이다. 처남은 그저 운이 나빴고 실수를 했다며 김에게 동의를 강요한다. 처남이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김은 어느새 장인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백수로 살아가는 진수의 일상을 다룬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에서 진수 곁에는 같이 할 이가 없다. 동네 떠돌이 개도 반겨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이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삶은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한가. 윤성희의 「여름방학」의 주인공 병자도 마찬가지다. 노년의 삶에 대한 계획이 명예퇴직으로 인해 조금씩 수정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도 떠나고 어머니를 부양했고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진수의 현실과 꿈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면 병자를 위로해 줄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온라인과 sns으로 소통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에서는 오랜만에 재회한 남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난 감정이 서로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기호의 「최미진의 어디로」는 중고 사이트에서 자신의 책을 덤으로 주는 판매자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의 소설이 그렇게 엉망이냐고 따지러 나왔지만 판매자의 사연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사인본을 비롯해 책만 남기도 말없이 떠나간 연인의 사연이라니, 멋쩍고 허탈할 뿐이다.

 

 7편의 소설 속 인물 가운데 ‘웃는 남자’는 없다. 상황을 모면하려 쓸쓸한 농담을 던질 뿐이다. 소설을 읽는 일과 사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인생이 어떻게 동급이 될 수 있냐고 물어도 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럴 때가 많으니까. 소설을 읽을 때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기대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이 소설이 아닌 현실 속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소설은 내게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던진다. 살면살수록 낯설 길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 말이다.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바란 건 아니다. 이젠 소설이나 현실이 비슷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무를 받는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생을 사는 거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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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
프리츠 게징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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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고 말았다. 정말 좋은 책이라고 추천받은 지 오래, 잊고 있었다가 어느 글에서 언급한 한 문장이 나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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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기다릴게요^^

자목련 2018-01-25 17:23   좋아요 1 | URL
뒷북소녀 님의 응원을 받아 열심히 읽을게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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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뭐든 나중으로 미룬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커졌지만 표현은 그대로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일상을 나눠야지, 생각하면서도 실천은 어렵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을 읽으면서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눈빛을 교환하는 시간은 너무 짧고 때때로 서로의 기분을 살필 뿐 공유하는 감정은 줄어든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수록된 6개의 단편은 모두 가족에 관한 소설이다. 표제작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제목처럼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거울을 통해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배경으로 손님으로 찾아온 젊은 청년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들려주는 이발사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아무 기대 없이 이발사의 사연을 듣다가 결국 울컥하게 된다. 천륜이라 말하는 부모와 자식의 사이, 그 사이를 이어주는 건 무엇일까.

 

 나머지 단편에서도 가족을 다룬다. 언제나 서로를 지켜보며 살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사고로 딸을 잃은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을 그린「성인식」, 엄마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후 16년 만에 치매에 걸린 엄마와 재회하는 딸의 감정을 다룬 「언젠가 왔던 길」, 결혼 후 일 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화가 나 아이와 함께 친정에 온 아내에게 도착한 이상한 문자의 흥미로운 이야기 「멀리서 온 편지」, 가출을 감행한 소녀가 비닐봉지를 쓴 소년을 만나 바다를 찾아가는 「하늘도 오늘은 스카이」,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고치는 시계방 주인과 나누며 아버지를 추억하는 「때가 없는 시계」.

 

 저마다 애틋한 사연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성인식」과「때가 없는 시계」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열다섯 살에 죽은 딸의 성인식에 대신 참석하기로 한 부부, 성인식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딸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도 애잔하면서도 따뜻하다. 열다섯 살에 멈춰버린 딸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두려웠던 부부에게 성인식은 의식이었다. 온전한 이별을 위한 의식, 그것은 딸을 향한 영원한 사랑의 맹세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성인식」, 44쪽)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다룬 「때가 없는 시계」에서 오래된 시계를 고치는 주인과 나누는 대화는 기억 속 아버지를 불러온다. 저마다의 시간에 멈춰있는 시계방의 시계에 대한 사언을 들려주는 시계방 주인. 그것은 시계방 주인의 딸과 아내에 관련된 시간이었다. 아픈 딸이 죽은 시간을 기억하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통해 죽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건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 아버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내가 겹쳐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기 부모라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법이다. 절대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어느 면에서나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억 속의 아버지 나이를 넘긴 지금은.  (「때가 없는 시계」,  246쪽)

 

 태어난 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 죽은 시간도 기억해야겠죠.(「때가 없는 시계」, 261쪽)

 

 공습 당시 시간에 멈춰 선 놈, 운 좋게 아직 움직이고 있는 놈. 그때였습니다. 내가 깨달은 게. 시계가 새기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때가 없는 시계」, 264쪽)

 

 아버지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감정을 절제하는 걸 학습한 아버지 세대. 부모를 이해하려는 순간, 그들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간만이 아니다. 형제의 시간, 자녀의 시간도 그러하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에만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 가족의 시간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소설 속 가족의 사이는 우리의 그것이었다. 가족과 가족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겠지만 멀어지는 것보다는 가까이 다가가는 게 더 낫다. 부딪혀 싸울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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