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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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가 오면 비에 관련된 노래를 듣는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에 관한 노래를 듣는다. 써 놓고 보니 날씨에 민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때는 그렇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한다는 말이다.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는 것, 때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감정이다. 그럴 때 감정을 만지고 달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 생각한다. 흐르는 대로, 감정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떨까. 김은주의 『기분을 만지다』를 나는 감정을 만지다로 읽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시간이 담겨 있는 글과 사진.

 

 인생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업데이트, 스스로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업데이트, 가장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었던 순간을 업데이트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개인의 역사 어느 지점부터 비록 최상의 순간들이 업데이트 되지 않더라도 삶의 단 한순간, 가장 찬란하거나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행복했다면 그 한순간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위로받을 수 있고 용기 내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그 답은, 내가 살아온 인생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다」 전문, 56쪽) 

 

 뭔가를 꼭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반드시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손 닿는 곳에 있어 펼쳤을 때 마주하는 글에 마음이 따라갈 수도 있다. 앞뒤가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니, 아무 곳이나 후루룩 넘겨도 좋고 사진만 먼저 만나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지금 나의 기분과 똑같은 글을 발견한다면 짜릿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저자 김은주의 글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로 온 나의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내가 말하지 못했던 기분을 설명하는 것 같다고 할까.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이에게는 생각의 정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떠나는 기쁨에 대한 자극을, 이별한 이에게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단호함을 안겨준다.

 

 때로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휘감기게 된다. 작은 점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들을 모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왜 사는지 모르겠고, 나만 제대로 사는 게 아닌 것 같고, 다들 열심히 나가는데 나만 발을 떼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이 쌓이는 것이다. 무엇이 그 기분을 깨부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도 그렇다고 말해준다면,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그가 나를 모르는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고, 그림과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일상에는 곳곳에는 욕구를 잃게 만드는 작고 큰 위기가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 위기를 경험하고 이겨내 왔다. 도미노는 무너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일어선다. (「모든 욕구의 등은 동시에 꺼지고 또한 동시에 켜진다」중에서, 118쪽) 

 

 매일 즐겁고 재미날 수 없지만 즐겁고 재미난 삶을 생각한다면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태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단순하고도 단순한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기댈 때도 필요하다. 『기분을 만지다』란 책도 울적한 이에게, 혹은 속상한 이에게 그런 책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몰랐던 나의 기분을 보여줄 것이다. 내가 바라던 기분을 만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4시의 도넛」중에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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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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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나와 당신은 우리가 될 수 있을까? 무엇이 나와 당신을 우리로 묶어줄 수 있을까?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추억, 이별했지만 한때 사랑했던 감정, 말하고 싶지 않은 어떤 비밀이 나와 당신을 우리로 만든다. 우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의 조각이나 벗어나고 싶은 악몽과 대면할 힘을 키우기도 하는데 그것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기억에도 없는 낯선 남자 ‘도발레’와 그의 전화를 받고 쇼를 보러 간 ‘아비샤이’는 아직 완벽한 우리가 아니기에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쉰일곱 살 생일에 스탠딩 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도발레는 멋지고 잘 나가는 코미디언도 아니었고 그저 그런 성적 농담과 유머로 관객을 상대하고 있었다. 전화로 통화하면서 언뜻 함께 과외를 받았던 열네 살 소년의 모습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비샤이는 그 자리에서 도발레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관찰자이자 기록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판사로 퇴직한 그는 개 한 마리와 사랑하는 타마라를 잃은 상실로 채워진 삶을 살고 있었기에 스탠드 업 코미디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시큰둥한 마음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발에는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도구로 삼았다. 그러니까 158CM의 작은 키, 홀쭉한 몸, 안경을 쓴 외모부터 손짓 발짓,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감춘 듯한 표정, 무대를 가로지르며 큰 소리를 외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적절하게 관객과 밀당을 하면서 웃음을 이끈다. 하지만 재미있는 쇼를 기대했던 인내심이 적은 몇몇 손님은 그곳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당신들한테 다른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는 걸 줄 거야. 더럽혀지지 않은 거. 인생 이야기. 그래, 그게 가장 훌륭한 이야기지” (99쪽)

 

 그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뭘까.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이런 눈치를 모를 이 없는 도발레는 아비샤이를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바꾼다. 자신의 공연에 전직 판사인 아비샤이 라자르가 이 자리에 왔다고 말이다. 판사와 코미디언이라니, 둘은 무슨 사이일까. 뭔가 특별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게 아닐까 기대를 하고 다시 무대의 도발레에게 집중한다. 열네 살에 군사 캠프에 갔던 일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건 학창시절의 즐거운 기억이 아닌 비극의 기억, 고통의 역사였다. 군사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아비샤이는 문득 두려워진다.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도발레를 지켜보았던 자신의 행동을 관객에게 폭로하는 게 아닌가 하고.

 

 도발레의 진짜 쇼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열네 살 소년에게 닥친 거대한 슬픔, 영문도 모르고 가방을 챙겨 늦지 않게 장례식에 도착해야 한다며 자신을 이끄는 교련 담당 하사. 장례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소년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쉰일곱의 도발레가 들려주는 그 날의 이야기는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도발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 그런 엄마가 있어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이발사 아버지. 아들 도발레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환하게 웃고 다정했던 엄마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던 어린 도발레, 자신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행하던 아버지. 그것은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것이다. 이쯤이면 아비샤이와 독자인 나도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도발레에게 운전병은 개그 경연 대회가 있다면서 유머랍시고 이상한 개그를 던진다. 먼 훗날 그 운전병이 절망에 빠진 열네 살 소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도발레는 알게 된다. 유머라는 게 그렇다. “아무 일도 없잖아! 이게 유머의 위대한 점이라고. 가끔은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거야!” (87쪽)란 도발레 외침은 사십삼 년 전 그 운전병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비극의 역사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일부를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장례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도발레는 엄마를 불러온다. “엄마가 다시 내 귀에 대고 말했어. 모든 사람이 짧은 시간만 살다 간다는 걸 기억하고, 그 사람들이 그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줘야 해.” (224쪽)

 

 정말 우리는 짧은 생을 살아간다. 그 짧은 생이 비극과 슬픔, 절망, 분노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 고통의 삶에서 도발레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코미디를 해야만 했던 건 아닐까. 누구도 열네 살 이후 도발레의 인생이 얼마나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을지 알지 못한다. 아비샤이는 생각한다. 그때 그 군사캠프에서 도발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라면, 그를 그렇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너무 늦은 후회였다. 물론 도발레가 ​판사 아비샤이에게 어떤 판결이나 그 시절에 대한 사과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랄 뿐.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 후회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비극의 역사가 재탄생되지 않기를.

 

 나는 이 소설에 담긴 대단한 의미를 재생시킬 수 없다. 전쟁, 홀로코스트, 전범들에 대한 판결, 살아남은 자의 회복,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온전한 기록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잘 살아왔다고, 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앞으로 살아갈 짧은 생에는 슬픔을 이기는 진짜 유머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 그저 무대 위 작고 야윈 한 남자 도발레가 두 시간 정도로 압축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기억해야 한다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역사와 겹쳐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 어쩌면 곧 잊고 나의 이야기에 취해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그의 말은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꺼내보겠다.

 

 “그냥 살아 있자는 게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지 이해할 수 있어? 그게 얼마나 전복적인 것인지?”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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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1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올해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가요.
저도 책 소개는 본 것 같은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같은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이야기로 바꾸는 건 재능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님, 편안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5-21 14:39   좋아요 1 | URL
네, 2017년맨부커인터내셔널상수상작이에요.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악스트 Axt 2018.5.6 - no.01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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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이라서, 그래서 악스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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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아르테 오리지널 6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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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 아플 수 있다. 알면서도 아프지 않았기를 바라며 살아갈 뿐이다. 병원에 가서야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착각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의사나 간호사에게는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병동의 환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환자에게는 그와 동급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그 의사이기에.  그러나 환자에게는 주치의가 한 명뿐이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너무도 많다. 그들에게 모두 다정하고 친절한 의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부족한 의료기기와 의료진은 말할 것도 없다.

 

 나쓰카와 소스케의『신의 카르테』를 읽는 동안 몇 차례의 수술과 입원 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씩씩한 환자였지만 고열로 인해 퇴원이 미뤄졌을 때는 정말 무서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 소설 속 구리하라 이치토는 분명 좋은 의사였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의술을 펼치는 의사를 뜻하는 게 아니다. 구리하라의 말처럼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 (105쪽)

 

 소설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소도시의 혼조병원을 배경으로 숨 가쁘게 흘러가는 병원의 일상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환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구리하라를 비롯해 동료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다. 주인공 구리하라는 좀 유별난 의사처럼 보인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들먹이며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기도 하고 동료와 지인에게 자신만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구리하라는 권위적인 의사가 아닌 보통의 이웃 같은 의사인 것이다. 시골 병원의 특성상 전공인 내과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외과의가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는 구리하라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응급실 진료가 끝나고 옛 예관을 개조한 집에서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못하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와 달을 보고 이웃과 술을 마시며 휴식을 갖는다. 그렇다고 구리하라가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학병원과 혼조병원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학병원 의국에서 최첨단 기술로 진료를 하고 연구를 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의사가 대학병원으로 간다면 혼조병원 같은 시골 병원의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소설과 현실의 의료 상황은 비슷했다. 구리하라가 혼조병원에서 돌보는 환자는 대부분 혼자 사는 고령의 환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설 속 담낭암 환자 72세의 아즈미 할머니는 우리 주변의 그들처럼 보였다.

 

 아즈미 할머니가 원하는 마지막을 허락하고 옥상까지 함께 가서 할머니가 먹고 싶어 한 카스텔라를 준비하는 구리하라 같은 의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구리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표정이 없는 의사들로 가득한 병원이 아닌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구리하라.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해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것은 사실 오만한 일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힌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좀 더 나은 임종을 만들어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181쪽)

 

 소소한 유머가 넘치고 다정한 의사가 진료를 하는 병원,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만나고 싶은 바람은 너무 큰 욕심일까. 그런 그렇고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잔잔한 재미와 더불어 먹먹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착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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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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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아무런 수고 없이 마주하는 건 행운이다.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에 대해 대단한 수고를 대신한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를 통해 김정희의 생과 그가 살아온 시대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김정희에 대한 방대한 기록과 사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유홍준에 대한 수고에 놀라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더불어 기록한다는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출생부터 김정희의 일대기를 다루었고 그의 업적과 함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자료는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연구에 의한 것으로 청조 고증학과 경학의 업적을 후지쓰카 지카시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유홍준에게는 아마도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닐까.

 

 추사 김정희를 떠올리니 내게는 한승원의 소설에서 초의와의 우정이 생각났다. 서로를 존중하며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정, 역시나 이 책에서도 김정희 곁에는 사람이 많았다. 스승, 선배, 제자,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생을 마주하면 그를 둘러싼 이들, 그와 이어진 이들의 생까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유홍준의 관점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김정희가 박제가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 연경에 가서 그곳의 문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것과 흥선대원군인 이하응과도 교류했다는 점은 다소 놀라웠다. 내게는 서예와 그림의 예(藝) 인으로만 알려졌던 김정희는 역사리지, 금석학, 불교학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진정한 전문인이었다.


 

 

 

 

  “학문하는 방도는 굳이 한나라, 송나라로 나룰 필요 없이, 심기(心氣)를 고르게 하고 널리 배우고 독실하게 실천하면서 사실에 의거하여 진리를 찾는 자세로 나아감이 옳다.” (107쪽)

 

 뛰어난 인물의 생에는 언제나 고초가 있기 마련일까. 김정희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끝내고 좀 편안한 생활을 하는 가 싶었는데 66세 노년의 나이에 북청으로 유배를 명 받았으니 말이다. 김정희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으니 그의 형제들에게도 고통의 시절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세한도」가 탄생한 것으로 잘 알려진 제주도 유배에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접했다는 점이다. 모든 일상을 편지로 전하며 같이 생활하는 듯했던 김정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버지와 남편으로의 김정희가 아닌 학자 김정희를 살펴보면 그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던 것 같다. 지인들과 교류한 편지에서 책을 구해달라는 내용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그만큼 그림과 학문에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고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제자에게도 전했다. 당시의 진경산수와 문인화풍을 인정하면서도 소치에게는 청나라 화가가 원말 4대가의 그림을 방작한 그림을 모은 화첩을 주고 폭마다 열 번씩 그려보라고 했다니 한다. 어쩌면 그건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더 발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지독하고 완벽한 성격은 지필묵에 대한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쓰고자 하는 글씨의 성격에 따라 붓을 골라 쓰는 섬세함 그 이상으로 예민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추사 곁에는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이들이 함께였던 것이다.

 

 이 <세한도>에서 더욱 감동적인 면은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림과 글씨 모두에게 문자향과 서권기를 강조했던 추사의 예술세계가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 속에 흥건히 배어 있다는 것이 이 그림의 본질이다. <세한도>의 진가는 그 제작 경위와 내용, 그림에 붙은 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갈필과 건묵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즉 그림과 글씨와 문장이 고매한 문인의 높은 격조를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88~289쪽)

 

 서법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은 글씨,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괴이하나 본질을 보면 내면의 울림이 있는 글씨, 그것이 추사체이다. (412쪽) 

 

 추사 김정희를 안다는 건 비단 그 한 사람만을 아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외교, 풍습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수록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즐겁다. 옛것의 아름다움과 그 존재의 위대함을 알아가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후대까지 이어져야 할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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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5-0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사 김정희도 엄청난 독서가였다죠! 서점에 디스플레이된 책 사고싶었는데 은근히 설레고 기대되는 책입니다

자목련 2018-05-09 17:31   좋아요 1 | URL
아마도 김정희는 세상의 모든 책과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프레이야 2018-05-0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대정읍의 추사 유배지와 추사기념관의 기억이 납니다. 비오는 날이었어요.
다시 가고프네요. 이 책도 담아갑니다. 장바구니가 터질 듯하네요.
좋은 봄날 보내세요^^

자목련 2018-05-09 17:32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유배지와 기념관에 대해서도 책에서 만났어요.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수선화에 반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프레이야 님도 환하고 반짝이는 봄날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05-0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에 보면 김정희가 글씨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 글씨에도 독서사가 필수적이란 이야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