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린다. 몇 시간 전에는 천둥과 번개가 쳤다. 한낮인데 깊은 밤인 것 같았다. 무섭기도 했고 어딘가 사람들이 또 이 비에 피해를 입거나 다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비는 많은 생각을 몰고 온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상념의 시간이 이어진다. 해결해야 할 일의 맨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찾기 위해 그것을 알고자 생각하고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몰라서 모든 걸 끌어안고 걱정하는 건 우습지만 연속해서 불운한 일들이 닥치면 결국 그 모든 걸 끌어안게 된다. 그런데 하나하나 살피고 들어가 보면 ‘불운’이라 이름 붙인 그 시작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이다. 단 한 번의 요행을 바라거나 누군가의 간절함을 빌미로 이득을 취하는 일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걸 인식하는 게 어렵기에 회피하고 외면한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속상함에 파묻히는 건 어리석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나가아야 한다. 상담을 하거나 의견을 묻는다 해도 딱히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의 일. 완벽한 답을 구할 수 없다. 인식의 힘이 필요하다. 부족한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나를 인식하는 일,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절실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 시작이다. 꾸미거나 치장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일. 불운하거나 불행하다며 불평할 대상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걸 주입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단순하게 생각한다. 단순하게 판단하라는 게 아니다. 일의 본질은 결국 단순함이니까. 매달려있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중하되 차분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일의 순서와 수집할 정보의 목록을 작성한다. 완료된 목록을 하나씩 지우는 일은 즐겁다. 그리고 환기가 필요하다. 심각성을 떠나 힘든 일에 함몰되어 절망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다.





충동적인 소비가 좋을 때가 있다.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그렇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책을 읽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신간이라고 해서 다 그때 바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신간을 바로 읽을 때 그만의 즐거움이 있다. 집중 독서를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책은 언제나 좋다. 그래서 책을 샀다. 책을 읽는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로 살기 위해서. 너무 거창한 이유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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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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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에서 불행과 불운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접할 때 반사적으로 내 삶을 둘러보게 된다. 소설 속 인물보다 괜찮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그건 소설이고 현실의 불행과 불운은 얼마나 강하게 우리는 몰아치고 있는지 확인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에서 만난 인물들이 하나같이 행복과는 먼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왠지 다 알 것 같다. 삶이란 참 팍팍하고 고달프니까.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는 유령 ‘공선’이 주인공이다. 굶어 죽은 10년 차 공선은 사람이나 사물을 만지지 못한다. 우리가 예의 생각하는 유령의 능력 같은 건 없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자신 대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찾는다. 이른바 독서 메이트. 소설 창작 모임에 나가는 효주가 공선에게는 딱이었다. 함께 모임을 하는 태오는 형식적인 읽기에 그쳤고 지민은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효주는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었다. 그런 효주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생겨 학교에 나오지 않고 대신 태오와 지민을 통해 그의 소설을 읽게 된다. 태오와 지민은 효주의 소설 속 아쉬운 부분과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공선은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다. 태오와 지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선은 온전히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공선은 효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선은 소설을 친구로 여기는 유령이었기 때문에 소설의 하자는 사실상 공선이 소설을 더욱 자세히 읽게 되는 관계의 진입로이기도 했다. 상대방의 하자에서 고유한 사랑을 발견하고 고유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건 사람과 유령이 똑같았다. (「시트론 호러」, 25쪽)


구소현과 마찬가지로 처음 접하는 권혜영의 단편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도 역시나 우울하다. 교대 근무를 하고 돌아온 ‘나’는 화재 경보 소리에 집을 나선다. 진짜 불이 난 건지 경보기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파트 비상계단을 내려간다. 자신과 같이 밖으로 나온 이들의 소리는 들리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을 확인할 수는 없다. 


계단 아래 계단, 그 아래도 다시 또 계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구렁텅이였다. 발밑으로 펼쳐진 공간의 밑바닥이 가늠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검은 머리통. 그리고 가운데로 수렴하는 계단뿐이었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54쪽)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건 몇 개의 카드와 빚뿐인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하다. 암울한 상황은 화재경보기 오작동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나’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 어디에도 ‘나’가 기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제목만큼 울적하고 무거운 소설이다. 


이주란의 「위해」 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주란의 소설은 언제부턴가 소설보다는 자세한 일기처럼 여겨진다. 이주란이 인물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소극적이고 자신의 아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주란은 그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들려준다. 주저하고 서성이며 내뱉지 못하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사람들은 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은 달랐다. 난 어느 정도 행복하고 나야말로 긍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중요한 건 역시 몰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 99쪽)


무언가가 좋다. 싫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걸 하고 싶었다.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위해」, 103쪽)


그리하여 수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옆집 소녀 유리를 존중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뭔가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대해 묻지 않고 필요한 대화를 나누고 유리가 원하는 대로 함께 한다. 얼마나 힘드니?라는 섣부른 위로가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게 진정한 위함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그러니 위로하여 마음을 풀어주는 위해(慰解)는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의 세 단편은 표면적으로 우울하고 애처롭다. 그럼에도 왠지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도 소설 속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명확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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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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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행간의 의미, 인물과 인물 간의 대화를 낱낱이 해석하고자 하면 소설 읽기는 급 피곤해진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짧은 이야기로 여기며 읽는 게 좋다고 여기는 편이다. 어쨌든 소설은 픽션이고 인물 역시 가상의 인물이니까. 그렇다고 소설이 현실과 아주 별개의 세상이라는 건 아니다. 살짝 현실을 틀어 소설 속 세계로 옮겨놓다는 말에도 나는 동의한다. 『소설 보다 여름 2022』 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해석하려는 나를 만났다. 작가가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통과 절망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는 말이다. 


김지연의 「포기」는 현재를 사는 청춘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도대체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삶이라는 게 가능하긴 하냐도 묻는 듯했다. 화자인 미선이나 미선의 전 남자친구 민재, 미선의 사촌 호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특별 그 이상의 복잡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호두는 민재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줬다. 미선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민재와 호두 사이에는 2천만 원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미선과 민재는 헤어졌고 민재는 사라졌다. 미선과 호두에게 민재는 불편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설에서 미선과 민재가 생각하는 평범은 같은 듯하면서도 아주 다른데 그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는 거, 보통의 수준으로 산다는 거, 하고 말하면서 상상했던 수준들도 다 보통 이상의 것들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야말로 평범했다. (「포기」, 25쪽)


어찌 보면 민재의 말대로 미선과 민재, 호두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평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데 또 평범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 연인, 친척으로 맺어진 관계를 떠났다면 호두는 민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었을까. 소설 말미에 민재가 돈을 다 갚으면 민재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아냐는 호두의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상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더욱 어렵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모래 고모라 불렸던 고모와 화자인 목경과 목경의 언니 무경이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이야기다. 모래 고모의 장례식에 다녀온 목경이 들려주는 모래 고모와 그와 같은 사람인 언니 무경. 고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더 친하다고 여겼는데 고모가 바라본 건 언니 무경이었다. 그것은 같은 기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이거다,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함윤이의 「강가/Ganga」도 마찬가지다. 소설 전체가 중의적인 의미로 가득하다고 할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여행 중인 화자는 그곳에 남자를 사러 간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호텔 직원에게도 강가의 가게에서 만난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화자가 남자를 사러 온 건 아니다. 화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화자가 다짐한 것처럼.


강가.

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불려야지, 다짐했다. (「강가/Ganga」, 107쪽)


화자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냉동 음식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친했지만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었다. 한국을 떠나 머문 도시에서 만난 여자들을 모습을 보며 한국의 자신과 그들을 떠올린다.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지내고 싶지만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호텔로 돌아간다.

아니다 다르게 말해보자. 

강가는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하니 모든 게 한층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강가가 호텔로 간다. 공장에서 꾸역꾸역 모은 돈으로 항공편을 사서 낯선 도시에 도달한 사람은 강가. 어깨가 다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채 도시를 거니는 이도 강가. (「강가/Ganga」, 122쪽)


이전의 내가 아닌 ‘강가’로 지내면 달라질 것 같은 간절하고 쓸쓸한 희망이 전해진다. 처음 만나는 함윤이의 소설은 독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묘한 분위기를 지녔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오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 아니, 잘 모르겠다. 그게 정확하겠다.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우리는 모두 타인의 말을 오해하지 않나요. 타인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뒤, 그 해석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곤 하죠. (함윤이 × 홍성희,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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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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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 책 속에서 만난 글귀가 그러하다. 황홀하게 아름다워서 기억에 담아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마음과 그 장면과 글귀에 포섭되어 헤어 나오지 못해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물이 나 같아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글이라서 말이다. 그것은 기쁨이나 환희보다는 슬픔이나 아픔에 가까울 경우가 많다. 안쓰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마음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한 『개의 날』 이란 제목의 카롤린 라마르슈 소설에서 그런 연민과 삶의 상실을 마주했다. 그것은 지독하게 쓸쓸하고 아픈 것이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개 한 마리를 목격한 순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자고 개가 고속도로까지 왔을까, 길을 잃었을까,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까. 그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서 멈춰 개는 잊고 달리던 대로 달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지 않을까. 


그러나 『개의 날』 속 여섯 화자는 달랐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느끼고 발견한 것들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그 개가 자신과 닮았다고 여겼고 누군가는 죽음을 성찰하고 누군가는 삶이라는 고독에 대해 마주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죽음이 예측되는 개의 모습은 여섯 명 모두의 삶에 귀속되었다.


작가는 여섯 명의 화자 중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그들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트럭 운전사가 화자인 「트럭 운전사 이야기」에서는 거짓으로 지어낸 가족 이야기를 여러 잡지에 보내는 한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발견한 개를 보며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에 대해 말한다. 육체적 욕망을 근절하며 살아야 하는 사제가 미사에 오지 않는 여신도를 찾는 과정을 다룬 「천사와의 싸움」에서 사제는 개의 죽음에서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소피라는 여성을 향한 감출 수 없는 마음과 마주한다. 


그 개는 죽어서 분해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도로변에 일부가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엄청난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죽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사와의 싸움」, 49쪽)


죽은 뒤 영혼이 다른 육체에 깃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그런 부활의 연속일 뿐이다. (「천사와의 싸움」, 68쪽)


어쩌면 개는 죽음으로 인해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사제가 갈망하는 것 역시 그런 죽음을 통한 부활이 아닐까. 어렵게 다가온 부분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삶에서 한 번쯤 떠올리는 출구가 죽음이라는 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개는 출구를 찾아 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연인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장소로 향하던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의 빨간색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는 개를 보며 연인과 자신을 떠올린다. 그들의 지나온 사랑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 존재부터 버림의 대상이었던 유년 시절과 만난다.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대신 자신을 돌봐준 유모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함에 대해 그녀는 버림받았다고 기억한다. 돌봄이 아닌 버림을 받았다는 건 모든 사랑에 대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그러니 고속도로에서 개를 구하고만 싶었다. 심연 가득히 쌓인 버림받았다는 절망 때문에 그 개가 마치 자신과 같아서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개이며, 너는 그 개의 주인이다. 나는 그 개를 위해 울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동정심일까 아니면 절망의 이면일까.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교훈적 감정이다. 언제나 누군가 나를 버렸다. 사랑.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버린다. 아무리 짧은 순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아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환희의 순간에도 당신들을 버린다. 그때 이미, 태양은 우물 속에 가라앉고, 검은 물 아래 버려진 개가 있는 것이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87쪽)


달리는 개를 보면서 그처럼 달려가 스스로 생을 끝내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의 화자는 일하던 과일가게에서 해고된 게이다. 사장은 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옷차림이나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을 잃었지만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내면을 꺼내놓는다. 그러니까 해고 사실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진정한 위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달리기 시작한 건 자신을 둘러싼 생각으로부터 단순해지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죽음을 원해서였다. 


달리는 것은 하나의 일이며, 나의 내면에 무언가를 철저하게 건설하는 행위다. 나는 아직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앞에 서 있는 방파제의 도도함과 부서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도 아니고, 즉각적인 위험도 없이 습관처럼 단조롭게, 고속도로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이 모든 차량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자전거를 타고」, 114쪽) 


개를 보며 죽음을 원한 이도 있었지만 암으로 사망한 남편의 죽음을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별수 없음」의 과부는 개를 구할 수 없음이 별수 없음으로 다가오고 그에 반해 「영원한 휴식」에서 과부의 딸인 ‘안’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안은 개와 같은 죽음으로 제목처럼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딸이 서로를 바라보는 극명한 태도는 그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한 마리 개의 죽음은 개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 우리의 지난 삶을 불러온다. 철학적 사유를 애틋하고 뭉클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한동안 멍해진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일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향해 나가는가 묻는다. 마침내 도달할 것이 죽음이라는 명확한 사실과 마주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 우리가 그토록 붙잡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면의 진실한 고백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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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사용하는 인터넷 요금에 대해 문의할 일이 있어 콜센터와 통화를 시도했다. 요즘은 직원이 아닌 AI가 먼저 안내를 시작한다. 차분히 하라는 대로 했지만 결국 통화를 하지 못했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한 번에 연결되기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재차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눌렀다. 기억이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상담원과 통화를 하기까지 10여 분의 대기 시간이 걸렸다. 홈페이지, 메일, ARS, 일대일 채팅까지 다양한 경로로 소비자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하지만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해야만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MZ 세대가 아니라서 그럴까. 여전히 나는 사람과 통화하는 게 제일 편한다.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이예은의 에세이 『콜센터의 말』을 읽기도 전에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콜센터에서 일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궁금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걱정하게 되는 건 콜센터의 업무의 특수성을 알아서다. 불특정 다수와 통화를 하면서 그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면서도 고객의 입장이 아닌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 무자비한 언어폭력은 물론이며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과 마주하는 일 말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콜센터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저자가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2020년 1월부터 1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겪었던 이야기와 그 안에서 건져올린 말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시기, 여행사라는 특수성을 생각하면 콜센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말과 다르게 일본 말의 고유한 뜻과 사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에 대한 이해와 기본적인 일본어를 배우는 이라면 작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콜센터 상담원이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기분과 감정은 배제된 업무만을 위한 말이었다. 일본이라는 걸 떠올려도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대단히 유감이지만’,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콜센터가 아닌 일상에서도 습관처럼 튀어나올 것 같다. 일본에서는 고객과 상담을 시작할 때 이름이 아닌 성을 말하는 점은 이름 전체를 말하는 한국의 콜센터와 달라 인상적이었다. 


비대면의 시대를 연 코로나 시대의 말로 콜센터의 많은 직원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부득이하게’가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여행업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일을 그만두는 이들과 남게 된 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저자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일본인 바꿔 주세요’ 란 말이나 직원을 하대하는 ‘야, 너’라는 말은 아무리 고객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가 콜센터기에 직원이 감당해야 할 말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고객의 입장에서 그걸 알면서도 불편사항을 말해야 하는 창구라서 감정 조절이 어려웠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최대한 차분하게 나의 상황을 말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 나왔을 테니까. 


콜센터에서 일하는 내내 사무친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지구라는 행성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보통’의 정의 또한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을 전부 이해하려 들어선 안 된다. 어차피 그들도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할 테니. 내 기준에서 누군가가 비상식적이라면 그 사람의 눈에는 내가 비상식적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이상하고 어긋나 있지만,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아간다. (140쪽)


저자는 에세이를 통해 콜센터의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지만 고객을 응대하면서 느꼈을 복잡한 감정과 스트레스가 전해졌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생각한다. 그 말들이 불만이 담긴 항의와 요구사항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직업이라 해도 한 번쯤 그들의 고충을 생각하다면 조금 늦은 답변에도 편하게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만 기억해도 훨씬 나을 테니까. 


말이 주는 힘을 생각한다. 업무적인 말이든 사적인 말이든, 감정이 담겼던 그렇지 않든 혼잣말이 아닌 이상 말은 누군가에게 닿는다. 저자의 바람처럼 그 말이 상처와 아픔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을 주는 말이라면 좋을 것이다. 나의 말이 그렇기를 바란다. 부드러운 온기로 채워진 말이 당신에게 안착하기를.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때로는 회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기억을 모아 기어코 한 권의 책을 완성한 것은, 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96쪽)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카드사 상담원이었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김의경의 소설 『콜센터』를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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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0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회사에서 업무상 콜센터에 전화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에이아
이가 타라~ 등장하면 왠지 거북
살스럽더라구요.

역시나 사람하고 해결을 해야 속
이 씨원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도 이해가 되구요 흠...

자목련 2022-08-04 11:02   좋아요 0 | URL
네, 무작위로 걸려오는 통화에 스트레스가 심할 것도 같아요.
그럼에도 저 역시 민원상담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날이 많이 덥습니다. 건강 잘 챙시기시고 시원한 여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