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끝날 때까지 소설을 말할 수 없다. 이야기가 끝이 나야 그 이야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작은 소회, 비평, 비판 혹은 고마움까지. 그것이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여 나왔다 해도 그렇다. 한 권의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니까. 같은 문장에서 밑줄을 긋고, 같은 묘사에서 감탄하는 경우도 많지만 언제나 새로운 책처럼 다가온다. 계간지에서 만난 시를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한 권의 시집에서 읽은 시를 제목만이라도 온전히 나열할 수 있다면, 시집은 펼칠 때마다 같은 시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와 소설이 그러하듯, 시집은 읽을 때마다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평범했던 시어들이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날씨를 기록하게 만든다.

 

 지난 겨울 눈이 오는 날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다. 메일을 확인하려 컴퓨터에 앉았고 자판 위에 올려진 손가락은 서점을 클릭하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다. 박시하의 신간을 발견하는 일 따위는. 그래서 반가웠고 그래서 마음이 평온했다. 『눈사람의 사회』로 만난 박시하는 슬픔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녀가 슬픔이 아닌 기쁨을 말해도 그녀가 행복을 말해도 내게는 그것은 온전한 슬픔으로 박힌다. 설령 그것이 오독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리 읽는다. 시집의 마지막에는 이런 시가 있었다. 유일한 여름으로의 초대였다. 결코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 문학은 그렇게 삶을 지배한다. 우연이 아니 운명이 될 수밖에 없는 시라니. 여름은 가을이 되었고 가을은 겨울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가 아닌 혼자서 세 개의 계절을 맛보는 날이 이리 빨리 올 줄 몰랐던 나는 점점 늘어나는 낮의 길이를 측량하며 봄을 기다렸다.

 

 

 여름의 주검

 

 

 한 주검을 통해

 여름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리 울음소리만큼 분명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

 유일한 여름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꿈으로

 이상한 희망을 가진 것입니다

 노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은

 반투명한 사실에 대한

 

 그 여름의 세계는

 저녁의 거울처럼 두렵고

 훌륭한 죽음이 되어갔습니다 (82쪽)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 모든 죽음을 향한 애도가 아닐까. 죽은 자를 통해 위로받고 살아가는 산 자의 슬픈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낀다.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름다운 건 그들을 기억하는 산 자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시하는 슬픔을 슬픔을 쪼개어 그것이 지닌 빛의 아름다움을 아는 시인이다. 무거운 그림자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슬픔의 힘을 아는 시인이다. 박시하는 그것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슬픔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을까.

 

 

 묘비들

 

 

 깊고 둥근 침묵 아래

 영혼만으로 울 수 있던 한때였다

 

 종종 다른 영혼과 어깨동무를 했다

 별이 그늘을 비추는 것처럼

 우린 당연하고 미약했다

 벤치에 앉아 잠들거나

 나비를 따라 날고

 꽃의 심장에 들락거렸다

 

 죽어서도 살았지만

 서로를 기억하지는 않았다

 묘지의 길은 묘지의 길로만 났으므로

 삶의 악취를 표백하며

 죽은 자의 이름으로

 산 자의 이름을 대신 썼다

 

 엔딩 없는 흑백영화를 관람하는

 다정한 우리가 늘어선

 탈색된 사진을 한 장씩 받았다

 

 느린 비와 함께

 전주곡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한때였다 (16쪽)

 

 

 그림자

 

 

 검은 길 흰 눈

 시작되는 나라

 

 먼 안부

 기차의 입김

 얼음 레일 위

 맨발로 서서

 

 기차가 멈추지 않아

 소식을 전할 거야

 어두운 책 속에서

 

 반 발짝의 무덤

 네가 가린 너

 못갖춘마디

 슬픔이 그린 그림

 

 기차가 달리지 않아

 사라지는 나라 (37쪽)

 

 

 특히 이런 시가 좋다. 좋아서 정말 미칠 것 같다.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삶은 얼마나 건강한가. 구체적으로 살고 싶다니, 이렇게 사랑스럽기까지 한 시라니. 귀엽고 발랄한 시어 덕분에 그 뒤에 감춰진 거인 같은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저마다 짙은 슬픔을 거느리고 사는 삶을 위로하는 시다. 그렇다고 슬픔이 사라지거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슬픔과의 동거에 익숙한 누군가는 안다. 박시하의 시가 어떤 치료제보다 강력하다는 걸 말이다.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

 

 

 젓가락, 접시, 소시지, 오렌지주스, 달걀……

 

 그런 것들이 될 거야

 사물이 된다면

 달그락거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숨겨지고

 수평선은 어둠을 끌어올리지

 어둠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거야

 

 눈물이 나는 건

 물새떼처럼 알 수 없고

 구름처럼 멀리 있는 것들 때문이지

 

 가라앉아서 숨을 쉬자

 물고기가 된다면

 수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삶은 사라지게 될 거야

 아무것도 슬프지 않을 거야 (50쪽)

 

 

 밤

 

 

 내가 가장 슬펐을 때가

 검고 탁하다고 해서

 밤이 밤이 아닐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78쪽)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따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울하고 어두운 시가 어떻게 삶을 치유할 수 있느냐고. 작은 어둠이 큰 어둠과 만났을 때 그것의 존재는 미미하다. 밤에도 강렬한 태양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짙은 슬픔은 옅은 슬픔을 밝게 만든다. 과연 슬픔 없는 세상은 아름다울까. 우리가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은 말과 슬픔을 삼키며 온몸으로 세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여하튼 나는 박시하의 시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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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조로운 생을 살고 있다. 단조롭다는 말은 간단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복잡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시절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삶이기도 하고 어느 시절부터는 만족과 충만으로 다가오는 삶이기도 하다. 단조롭다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같은 일상의 반복, 말 그대로 이벤트는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 가끔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눈을 뗄 수 없는 불꽃놀이나 거대한 산처럼 다가온다.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 가운데 하나는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것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즐거운 기다림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화장도 하고 괜히 시계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고 화장실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처음으로 운전을 하고 혼자 나를 만나러 온 언니도 나처럼 살짝 흥분된 듯 보였다. 우리는 겨울에 만났고 계절은 봄이 되었다.  조금 늦은 점심을 위해 찾은 카페에서 식사를 하며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공유했다. 소년, 소녀가 아닌 청년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점점 더 나약해지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놓치는 삶에 대해 말했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말, 결핍을 떠올리면 지금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는 말은 서로에게 달콤한 약이었다.

 

 즐거운 기다림이 있는 반면 불안을 동반한 두려움도 있다.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그렇다. 최선을 다한 일에 대한 결과라면 불안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은 단조로운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흔들어 놓는다. 그것에 매달리게 만든다. 매달린다고 해서 결과가 번복되거나 달라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안다는 것과 그것을 삶에 실천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다. 그것이 일치가 되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리고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충만한 즐거움처럼 즐거울 수는 없지만 그것에 매여 다른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주일의 기다림이 나를 조금씩 흔들 것이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미세한 흔들림을 느낀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책에 빠져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래서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미루고 이런 책을 곁에 둔다. 미야베 미유키의 <비둘기피리 꽃>, 요네자와 호노부의 <빙과>, 찬호께이의 <기억나지 않음, 형사>. 세 권 중에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읽었는데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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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정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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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읽는 동안 내내 다른 생각은 끼어들 수 없는 흡입력 높은 소설과 읽고 난 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소설로 나눈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삶 속으로 파고드는 소설이라고 할까. 정한아의 단편집『애니』가 그런 소설이다. 유쾌하고 맑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 속 가족은 위태롭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 부모는 이혼을 했거나 끔찍한 사건으로 죽거나, 자식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간다. 제대로 된 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친밀한 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보살핌 없이 자립해야 했고 성급하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떠나려 한다. 그러다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어른이라는 걸 뒤늦게 마주하고 달라지려 노력한다.

 

 이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의지까지 잃어버려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음으로 인한 부재, 상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울증을 앓거나 섭식 장애가 있거나 트라우마로 힘들어한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존재 가족에서 비롯되었고 정한아는 그들의 상처를 공감하고 치유할 누군가를 불러온다. 우울증을 앓다 혼자 암으로 죽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한국에 온 「그랜드 망상 호텔」속 윤슬에겐 미술작가 명, 아버지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이 된 어머니를 지켜보며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 애쓰는 「빈방」의 중학생에겐 동생을 돌보는 베이비시터 아주머니, 이혼 후 새로운 자아를 찾고 성공한 어머니와 다르게 거식증을 앓는 「오픈 하우스」속 딸에게는 치료소 동기, 아내가 떠나고 홀로 키운 딸이 이혼을 후 손을 벌리는 상황까지 견뎌야 하는 「애니」의 운전강사 권에게 운전을 배우는 배우 마리아의 존재가 그렇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거나 잠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근원지를 향해 나간다. 꽁꽁 숨겨왔던 울분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 울고 싶을 때 울고 소리치고 싶을 때 소리칠 수 있는 그런 서툰 발걸음을 통해 정한아는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말한다. 부디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다고 건네는 것이다. 하여 정한아의 소설은 읽다 보면 이미 영혼까지 피투성이가 돼버렸지만 작은 몸짓과 미세한 온기만으로 상처가 나을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선명한 행복이나 운이 맞닿는 결말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감에 따라 조금씩 천천히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듯 우리네 삶도 그럴 거라 믿고 싶어진다.

 

 ‘그것은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다. 실패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특별하다고 느끼고, 앞으로도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믿고, 그날이 오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요원하지만, 그 둘만은 굳건히 믿고, 또 믿는 그런 이야기.’ (「애니」, 74쪽)

 

 좋아하는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기쁨이다. 성장이란 말이 적절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정한아는 ​등단작 『달의 바다』를 시작으로 언제나 작지만 따뜻한 온기를 소중하게 지킨다. 그 작은 온기가 곧 커져서 뜨거운 불길이 되어 주위를 환하게 밝혀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녀의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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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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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있는 죽음이 있을까? 피할 수 없더라도 미룰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남겨질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천둥과 번개처럼 한순간에 날아든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죽음을 말하는 찰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흔히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은 남겨진 자의 슬픔과 애도, 그리고 유품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남는다. 그것들은 존재를 모르는 어디론가 보내지거나 소각된다.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와 유품정리사가 된 딸 해미의 이야기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죽음과 소멸에 대해 말한다. 아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고물상은 한때 큰돈을 안겨줬지만 죽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불경기로 지금은 내리막의 상태다. 재수를 하던 딸 해미는 학원 대신 지창씨의 고물상을 돕는다. 포터를 몰고 폐지와 각종 고물을 수거하며 살아간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지창씨가 자신 몰래 이상한 출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유품 정리였던 것이다. 죽음의 흔적을 말끔하게 치우고 물건을 처분하는 일. 대부분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 경우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지창씨에게도 그런 선택이 있었다. 해미가 보기엔 사기가 분명했지만 지창씨는 동창 정우성이 추천한 휴대폰에서 이트륨을 분리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 그러했다.

 

 되든 안 되든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분명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지창씨는 자신의 심장이 그렇게 힘차게 뛰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아침을 눈을 뜰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77쪽) 

 

 지창씨가 그 일에 전부를 걸었을 때 해미는 광고까지 하며 유품정리에 뛰어든다. 의뢰인의 사연을 알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개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해미는 감정을 배제하고 거리낌 없이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대면하며 죽음을 몰아낸다.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물건과의 이별의식을 치르는 것이 고물상의 일이듯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공간과의 이별을 대신하는 것이 유품정리인지도 모른다. 유족을 대신해 죽음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206쪽)

 

 죽음을 만지며 삶을 이어가는 해미를 통해 이유는 삶과 죽음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걸 알려준다.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소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삶이 거기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 둘 중 어느 쪽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묻는다. 설사 소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죽음과 함께 머물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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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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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을 통해야만 나를 볼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고 믿기도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여야만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한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도 그러하다.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작가여야 하는데 작가는 독자에게 그것을 넘겨 버린다. 독자라는 거울을 통해 보려는 것이다. 김엄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괜찮은 상태가 아니다. 직장을 잃었거나 미로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 반복된 일상을 살거나 내밀한 관계를 지닌 상대를 잃은 지 오래다.

 

 고깃집에 취직하여 사장이 추천한 고기를 먹는 일을 하기로 한 삼겹살 마니아 우라라 (「돼지우리」), 아버지와 이복동생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세 개의 손가락을 잃어지만 혼자 살아남은 나(「기도와 식도」), 아내가 키우는 개 영철이보다 쓸모가 없는 실직한 남편 영철이(「영철이」), 잃은 직장을 잃고 갚아야 할 빚이 있지만 바다를 보면 괜찮을 거라 믿는 남자(「그의 사정」), 우연한 동창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나(「어느 겨울날」), 계곡이 있는 산을 찾아 떠난 곳에서 계속을 찾지 못하고 맴돌며 사소한 일상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직장 동료와 매일 상사를 욕하면서 회식에 참여하고 휴가를 생각하는 E.(「고산자로12길」)

 

 9편의 이야기 속 인물은 소유보다는 무소유의 상태로 삶을 지속한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괜찮게 살아간다. 아니 변화하려고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하여 누군가는 소설에서라도 좀 신나는 세상을 만나면 안 되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놀라운 건 무기력한 사람들의 일상을 반복해서 묘사하는 김엄지의 탁월한 능력이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한 장면만 내세워 보여주는 기법은 불편함과 동시에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왜? 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히려 무의미한 일상을 그리는 문장은 경쾌하고 편안하다. 그것은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누군가의 일상이 우리의 일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과체중을 생각해 하루 두 시간씩 걸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있을 만큼 괜찮았다. 그는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할 정도로 괜찮았다. 그는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할 만큼 괜찮았다.’ (그의 사정, 112쪽)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외로움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과 반대되는 성향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어느 겨울날, 146쪽)

 

 청춘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그들의 자화상을 그린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를 견디는 일만으로도 힘겨워 제대로 거울을 마주하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김엄지는 독자들이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무슨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의미 있는 일상이 아닌 무의미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자책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그저 살아가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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