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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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새해의 첫날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막연하게 떠올려보지만 떠오르는 건 없다. 아마도 작은 소망을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작년보다 좀 더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나빴던 일도 있었고 속상한 일도 있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다시 또 같은 날들을 맞이할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제목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김동영의『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는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누군가의  일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들,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들은 많은 이들의 삶과 교집합을 이루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하는지 다를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김동영 작가를 잘 모른다. 아니,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여행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많이 떠나 있는 사람, 밖으로 나가는 사람,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

 

 단순히 일상의 쉼을 위한 휴가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은 새롭게 다가왔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자랑하고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는 조금은 달랐다. 여행을 위한 글이 아닌 순간순간에 충실한 일기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만난 장소를 찾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책에 등장한 그녀처럼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위하여 긴 휴가를 내기도 할 것이고 대단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떠나는 그 자체를 위해 용기를 내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분명 김동영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들을 들려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다른 이들의 삶에 마음이 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엄마를 자처했던 사람의 눈길과 소중하게 여겼던 피아노와 이별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사람의 다짐 같은 게 궁금해졌다. 누군가 떠난다는 건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온전히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이도 있겠고 돌아올 타이밍을 놓쳐 계속 길 위에 있는 이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생각한다. 달라져야 하는 게 정답은 아니고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냐고. 어쩌면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저마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하지만 원하는 방향과 자꾸만 멀어지기도 하는 것을. 결핍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번씩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핍이 있어야 우리 안으로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은 덜 채우고 살아가자. (209쪽)

 

 연말과 새해를 맞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생각한다면,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떠나는 이들이 이 책과 동행한다면 어떤 글에서는 위로를 받을 것이고 어떤 글에서는 다짐 비슷한 것들 하게 될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딴죽을 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삶,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동영이 사랑하는 오토바이, 고양이, 여행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그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김동영의 문장에서 여행을 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보았다. 우선은 책이었다. 읽고, 사들이고, 정리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책들 말이다. 책을 통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한다. 당신에게는 그게 무엇일까.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지도 않다. 그저 길을 갈 뿐이다. 거기서 얻은 게 있고 느낀 게 있다면 그건 대부분 여행 중이 아니라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어렴풋이 느낀 것이리라. 여행 중에는 정작 모른다. 여행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23쪽)

 

 대부분의 많은 이들은 무엇이 되려고 그 무엇만 보고 살아간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 건 중요하다. 좋은 성과를 내고 결실을 맺는 것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 역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견디는 과정, 상실의 과정, 여전히 그 과정에 있어 힘들더라도 붙잡고 가야 한다는 걸 안다. 나와 당신, 모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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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법 평온한 날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많이 읽고 조금 더 많이 쓰면 좋겠다고 혼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읽고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쓰고 싶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기록 같은 것. 내게 소중한 이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명 아이돌의 죽음과 화재 소식이 들려왔다. 뉴스를 보면서 큰 화재가 아니기를 바랐고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무섭고 처참한 현장의 공포는 꿈이 아니었고 현실이었다. 춥고 쓸쓸한 겨울만 쌓여간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에는 누군가 보낸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이, 고민과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소식을 받는다는 건 전한 이의 마음 조각이 내게로 온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또 한 해를 살았구나 생각하다 멈칫하게 된다. 삶을 안다는 건,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살고 있는가.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지. 그럼 내년에는 해보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나. 연말이라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고마운 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미안한 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다정하지 못해서 좀 더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 나를 여전히 지켜봐 주고 여전히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연말 책 리스트는 오정희 컬렉션이다. 소장하고 있는 책은 제외하고 나머지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양장본이나 박스 구매에 대해 큰 욕심이 없는데 오정희 작가라서 자꾸만 눈이 간다. 산타 할아버지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올해 많이 울었고 착한 일도 많이 하지 않았으니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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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12-23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좀더 다정하지 못해서,
좀더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이먹어가는게
인생인가 봅니다.~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17-12-26 10:33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 님,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좀 더 다정한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건강하고 포근한 한 주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17-12-23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기쁘고 좋은 일들이 앞으로는 많았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자목련 2017-12-26 10:3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활기찬 한 주 시작하셨나요?
남은 날들 소중하게 채워요, 우리^^

수이 2017-12-23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연말 다정하게 보내시기를요.

자목련 2017-12-26 10:34   좋아요 1 | URL
다정하고 포근한 야나 님의 댓글로 따뜻한 하루 시작합니다.
야냐 님도 남은 날들 잘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그장소] 2017-12-2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서재의 달인 소식 기쁘고 , 축하드려요 . ^^

자목련 2017-12-26 10:35   좋아요 1 | URL
반갑고, 기쁜 댓글입니다.
부족한 이웃이지만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희선 2017-12-24 0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다니... 피해가 적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도 않은 듯하더군요

해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요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거죠 그때 그때 일이 생기면 그걸 견디고 지내겠지요 그렇게 지낼 수 있기라도 하면 괜찮은 거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자목련 2017-12-26 10:36   좋아요 2 | URL
견디고 보듬고 그렇게 지내길 노력하고 바라는 것이겠지요. 희선 님도 건강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언제나 감사해요^^

깐도리 2017-12-3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천 화재를 보면서, 내가 사는 곳도 제천 소방서랑 발반 다르지 않ㄴ느데, 여기서 화재가 나면 어뜩하나 그 생각이 먼저 을더군요...공교롭게도 예전에 철물점에 화재가 크게 나서 소방차가 출동하고, 난리 났던 기억 나네요...소방관 징계먹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시의원 출동에서 소방헬기 부르고 말이죠 ㅠㅠ

자목련 2018-01-02 08:49   좋아요 0 | URL
네, 이곳도 그리 다르지 않아서 더 마음이 아파요. 규정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겠지 싶어요. 깐도리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날들로 채워가세요^^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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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에브리 맨>과 함께 오래도록 내가 사랑할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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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17-12-23 08:4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 님의 다정한 댓글 언제나 큰 격려와 응원입니다^^

2017-12-23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검을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의 기본적인 건강 검진이었다.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재고 간단한 문진을 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할 때도 의사가 뭔가를 검사한다고 말했지만 감았던 눈을 뜨고 그 실체를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일주일 뒤 걸려온 안내 전화에서 직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위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지만 다른 과에서 재검을 받으라는 연락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검사 날짜를 잡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힘들었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기다림이었다. 일주일 동안 좋지 않은 결과를 대비해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 통장 잔고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나의 몸은 자꾸만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2년 전에 큰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 작은언니와 나는 스스로를 챙기려 노력한다. 때로 그런 노력은 고통을 참아내는 미련함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올해 작은언니는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이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미루다가 심각한 수준이라 입원을 했고 여전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생활한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더 이상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장기 운전도 힘들어한다. 건강 보조 식품을 챙기기 시작했고 잘 마시지 않았던 우유도 꼬박꼬박 먹으려 한다. 몸이 아프다는 건 속상하고 서러운 일이다. 빠른 회복이 어려운 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일도 그러하다.

 

 내가 사는 인생의 계절은 봄과 여름이 아니다. 매일 젊음과 이별하면서도 그 젊음이 부럽지 않다고 자부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나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건강 검진 재검 후 불쑥 불쑥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해 빠져들곤 한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대가 아니라 유한하며 줄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시골에 살다 보니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면 만나는 분들이 모두 노인들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친구이자 이웃이었기에 언제나 나를 반기시고 예뻐해 주신다. 그분들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활발함과 생기발랄한 청년이 되는 것이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 모습이 보이지 않는 분들은 요양원에 계시거나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

 

 늙음과 죽음은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자꾸 떠올린다. 죽음을 앞둔 삶을 이미 지켜보았다. 때문에 주인공 대드 루이스와 그의 가족과 이웃들의 일상은 소설 그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준비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 그리고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 그 시간이 산다는 것에 있어 무엇이 축복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드 루이스와 아내, 그들의 딸과 이웃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때로 다투고 사소한 갈등을 끝내 풀지 못하고 서로의 삶에 깊게 개입하지 못한다. 그들 중 하나는 과거의 나였으며 현재의 나였고 미래의 나였다.

 

“8월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대드 루이스는 그날 새벽 세상을 떠났고 이웃집 어린 소녀 앨리스는 저녁에 길을 잃었다가 어둠 속에서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집을 찾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날씨는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졌으며, 겨울이 되자 산맥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홀트 카운티의 고원지대에는 폭풍이 불고 사흘 내리 눈보라가 쳤다.” (462~463)

 

 늙는다는 건 가장 위대한 축복은 아닐까. 하지만 제 기능을 다한 육체를 받아들이는 일도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백세 시대를 살면서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하루가 다르게 증폭한다. 발생하지 않은 일까지 대비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니까. 어떻게 늙어야 할까. 어른들 말씀이 곱게 늙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늙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나로 존재하고 싶은 갈망을 지울 수 없다. 아름다운 노년, 당당한 노년을 살고 싶다.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의 엄마처럼 말이다. 그저 함께 산책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산문집이었는데 노년의 삶이 거기 있었다. 같은 시각에 일어나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는 모습, 일흔의 나이에도 무언가를 배우는 열정은 나도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키운다. 그러다가도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나는 어디쯤 걷고 있는 것일까. 한때는 빨리 뛰어갈 수 있기를 바랐지만 요즘은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그 길에서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단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156)

 

 그러다 보니 노년의 삶을 기록한 소설을 예전보다 더 많이 읽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등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하루하루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혼자 고독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과거에 매몰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여전히 고된 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정은의 소설집아무도 아닌속 인물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고추밭에 고추를 따러 간 하루의 일상을 담은上行에서 고추를 따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다음에 또 오라며,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묻는 노부인이나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연체금 독촉을 하는 여자가 얻은 집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들려주는 누가에선 전에 혼자 조용히 살았던 노인은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명실속 명실의 삶은 어떠한가. 그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를 추억하며 사는 동안 그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 정작 자신의 기억은 놓아버리고 마는 명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이제 기억뿐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억. 가지고 있다고 믿는 기억. 그러나 이것들은 다 없어진다. 나와 더불어서. 나의 죽음과 더불어서 조만간, 아마도 곧…… 아무도 실리를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실리는 영원히 잠길 것이다. 망각으로.” (106)

 

 이렇게 앉아서 몇 번의 겨울을 더 맞게 될까. 몇 번의 봄과 몇 번의 여름을. 그녀는 생각했다. 죽은 뒤에도 실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난처한 상상인가. 얼마나 난처하고 허망한가. 허망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가. 그게 필요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이때. 어둠을 수평선으로 나누는 불빛 같은 것, 저기 그게 있다는 지표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했다. 그녀는 노트에 만년필을 대고 잉크가 흐르기를 기다렸다. 제목을 적고 쉼표를 그리고 그 이름을 적었다.” (110 ~ 111)

 

 작은언니와 나는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에 보내라며 농담처럼 진심을 서로에게 건넨다. 아마도 늙는다는 것에 대해 가장 무서운 건 몹쓸 병에 걸리는 것이리라. 아무도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살아내는 것 말이다. 기미는 짙어지고 주름은 늘어나고 꼬박꼬박 삼시 세 끼를 챙기며 늙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게 싫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날들이 많아진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힘들 지도 모른다.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할 곳이 늘었고 때때로 늙는다는 것에 마음이 요동칠지도 모르니까. 어떤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나 계획을 세우는 대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감사를 빼먹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고 기록하며 살고 싶다.

 

 늙어간다는 건, 어느 계절쯤에 살고 있다는 걸까? 젊지도 않은 나이,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나이, 하지만 점점 여기저기 아파오는 나이쯤에 살고 있다는 건 봄·여름·가을·겨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만이 느끼는 계절감은 있다. 계절이 바꾸는 걸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싸우고 화해하며 매일매일 늙고 있는 삶이 축복이라는 걸 먼 훗날 나의 실리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내가 사는 계절, 그 어디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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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5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7-12-1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를 추천해드려요 나이듦어 슬퍼하기보다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하길....

자목련 2017-12-15 12:03   좋아요 1 | URL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합니다. 강나루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굽이 낮은 겨울 단화를 샀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동상에 자주 걸렸던 기억이 있어 발이 자꾸만 춥다는 생각을 몰고 온다. 지금도 양말 위에 덧신을 신었다. 지난번 주문을 잘못해서 반품하고 다시 주문을 했다. 두 신발을 비교하면 비슷하다. 누군가는 왜 반품을 했나고 물을 것이다. 사이즈 때문도 아니고 아주 작은 장식 하나 때문에 배송비를 들여가며 반품하냐고 말이다. 그래도 신발을 볼 때마다 그 신발 생각이 나고 후회를 하는 일이 생기니 반품을 하는 게 맞다. 더 꼼꼼하게 살피고 주문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한다.

 

 밤새 눈이 내렸다. 겨울은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차곡차곡 추위를 쌓아 올리고 사람들은 온기를 찾는다. 어제는 붕어빵이 생각났다. 호빵보다는 붕어빵. 학창시절 버스를 기다리며 길 위에서 먹던 붕어빵. 어린 시절 겨울밤 광에서 꺼내온 잘 익은 홍시도 떠오르고. 정작 지금은 홍시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오르한 파묵의 소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소설은 하나의 추억을 소환한다.

 

 필립 로스의 에세이를 읽지 못하고 있다. 앞부분만 읽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렇기도 하고. 집중해서 읽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이 아니라서 그런가 본다. 소설 속 죽음은 하나의 구성이며 하나의 장면이라 여길 수 있지만 에세이는 그게 잘 안된다. “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다.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이런 문장을 읽는 일은 너무 힘들다.

 

 읽는다는 일은 그것과 하나가 되는 건 아닐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럴 것이다. 오래 기억에 남아 다시 펼치는 책도 있고 읽었어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책도 있으니까. 좋아하는 분야가 확실하다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문학을 주로 읽는 내게 지인이 좋아하는 책의 분야는 낯설고 대단하다. 그러다 또 이런 생각에 빠진다. 책이라는 거대한 우주에 우리는 자신만의 별에 살고 있고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책이 거주하는 별이라는. 반짝이는 별빛들을 보면서 그 별이 궁금하지만 거리는 너무나 멀고. 그리하여 서로의 빛을 보면서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

 

 어쨌든 우리는 책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 유영하는 것이다. 아마도 좋은(적어도 내게) 책은 이런 책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소설가의 에세이 『우리가 녹는 온도』, 대문호의 걸작 『전쟁과 평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열정 『고마워 영화』. 당신에게 좋은 어떤 책일까, 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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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12-09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이 글 참 좋아요*^

자목련 2017-12-12 13:01   좋아요 0 | URL
hnine 님의 댓글이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