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세상의 소음은 사라진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더라도 그렇다. 나는 책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간을 읽으며 인물의 표정을 상상하고 그의 내면에 닿고자 애쓴다. 설령 그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도 말이다. 그뿐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발견하면 이 단어를 사용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문구에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부러움에 고민한다. 배혜경의 『고마워, 영화』를 읽으면서 그것은 더욱 커졌다. 문장을 읽고 있었지만 나는 장면을 읽고 있었고 영화 속 풍경을 읽고 있었다. 다채로운 질료로 한 편의 영화를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에 점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 영화는 일상이 아니다. 영화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그러니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읽어주는 이 책은 친밀한 접근이면서도 낯선 접근이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51편의 영화를 읽는 건 아니다. 우선 끌리는 영화를 부분을 먼저 읽었다. 위안을 주는 소중한 것들, 삶이 예술이 된다면, 의 영화를 먼저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영화를 만났다.

 

 그녀와 내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함께 본 영화는 많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한 권의 책에 수많은 느낌과 리뷰가 있듯 한 편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리뷰를 읽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여전히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한석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런 아름다운 글은 나를 자꾸만 빠져들게 만들었다. 살짝 고백하자면 우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글은 마약과도 같다.

 

 “한 우산을 받고 빗속을 걷는 일은 사람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 준다. 우산 안은 숨소리를 나누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반쯤 닫힌 공간이다. 정원에게는 끝사랑, 다림에게는 첫사랑의 설렘이 우산 안으로 들이치는 빗줄기처럼 두 사람을 적시고 파고든다. 길을 걸으며 점점 반쪽 어깨와 등짝이 젖고 머리카락과 빰이 빗물로 얼룩져도 두 사람은 개의치 않는다. 비 비린내 밴 일상의 거리를 그렇게 걷는다. 사랑이란 대개 한쪽 어깨는 기꺼이 차가운 빗속에 내어두는 일이 아닌가.” (8월의 크리스마스, 252쪽)

 

 영화에서 정원과 다림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서로에게 스며든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다 알고 싶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그냥 그렇다는 거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함께 읽어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분명한 건,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성을 다해 길어올린 문장으로 영화를 향한 애정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들려주는 책이다. 51편의 영화는 주연이자 도구인 것이다.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녀는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한다. 모든 걸 갖춘 듯 보이는 50대 여교사 나칼리의 일상을 통해 우리의 그것과 마주한다.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려 애쓰려 노력하지만 때때로 욕망을 숨기는 스스로에게 좌절하는 게 인생 아니던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들 중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는 죽음이다.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나의 죽음. 나의 죽음은 인식의 대상이 못되고 그저 타인의 죽음만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것일 뿐, 타인의 죽음에 이해와 동행은 불가하다. 그렇게 다가오는 것들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행복은 행복을 가지기 전까지의 것이며 행복을 얻는 순간 기쁨은 달아난다는 말은 나탈리가 귀착하는 진리가 된다.” (다가오는 것들, 23쪽)

 

 보지 못했던 홍상수의 영화들, 그녀의 말처럼 <밀양>과 겹쳐지는 <오늘>, 꼼꼼하게 보고 싶은 <파니 핑크>, 거절할 수 없는 제목의 <낮술>, 윤계상의 연기를 확인하고 싶은 <풍산개>. 좋았던 영화가 많지만 특히 이런 부분이 좋았다. 네 남녀의 사랑과 관계, 그리고 사진이라는 장치와 떠오르는 음악으로 잘 알려진 영화 <클로저>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까. 우리가 마주하는 게 내부가 아닌 외부이며 내부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선택의 몫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 기억하라는 조언 같았다.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 그 관계는 낯선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길을 가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거나, 내게 길을 물어봤던 어떤 사람이었다거나, 우연히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내가 받았거나. 하지만 모든 우연한 만남이 관계의 친밀함으로 진전하지는 않는다. 관계가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의 순간이 있어야 하고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 친밀함이 왜곡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클로저, 102쪽)

 

 특별한 영화와 아름다운 문장을 공통점으로 꼽자니 한귀은의 『이토록 영화같은 당신』을 거들고 싶다. 인문학을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그녀만의 시선으로 만나는 영화 이야기. 차례에 구애받지 않고 눈길 가는 영화부터 펼치게 된다. 거리를 걷던 남녀 주⁠인공과 흘러나오던 음악. 화려하고 눈부신 계절보다는 조금 쓸쓸한 기운이 가득한 가을과 겨울에 더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누군가는 음악이 전부라고 말했던 영화 <원스>에서는 그녀는 사랑과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과 음악이 함께 있다면 비등점에 오르기도 전에 사랑은 이미 끓어 넘쳐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시작하지 않은 사랑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되어 있어 사랑의 서사 속에서만 과잉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음악의 여분으로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대한 조망권을 읽어버린 채로 과거 속에서 자신도 연인도 소외시키면서 단지 얼룩 같은 음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원스, 141쪽)

 

 나를 이끈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과 비교하면서 보고 싶은 영화 <디 아워스>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도 읽지 못했고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저 영화 음악인 Morning Passages를 즐겨 들을 뿐이다. 그러니 내게 아직 닿지 않은 영화이며 소설이다.

 

 “소설을 쓴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의 분신들과 함께 등장함으로써 어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녹이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인물인 버지니아는 어떤 허구 속 인물보다 허구적이며, 허구적 인물인 클라리사는 어떤 현실적 인물보다도 현실적이다. 이러한 역적은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소설의 등장인물이 가상일 수도 있다면 우리도 또한 가상인물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때때로 지나치게 극적인 것이다.” (디 아워스, 231쪽)

 

 따뜻하고 정확한 눈으로 영화를 읽어주는 그녀 덕분에 보고 싶은 영화가 점점 쌓여간다. 책만큼 영화가 나의 일상으로 가까이 다가옴을 느낀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고마워, 영화』를 마주 하길. 영화에 대한 사랑과 감성이 한층 더 풍부해질 것이다. 놓치면 후회할 영화와 글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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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01-16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좋아요.^^ 리뷰가요.

자목련 2018-01-17 11:39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뒷북소녀 님^^
꾸준하게 독서모임을 이끌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 언제나 보기 좋아요.
올해도 책과 함께 건강한 시간으로 채우세요^^

2018-01-16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주에 내린 눈은 아직 다 녹지 않았다. 아파트 출입구는 여전히 눈을 밟고 오간 흔적이 남아 있다. 신문지를 깔아 두었던 현관도 마찬가지다. 눈 닿는 곳마다 눈이 그곳에 있다. 드나들 때마다 눈을 의식하고 조심조심 걸었다. 고개를 수굿하여 눈을 바라본다. 거기 눈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말이다. 거기 있는 존재, 그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눈이 내리니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의식한다. 지난 1월 9일 밤에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침대에 눕지 전 내리는 눈을 보면서 핸드폰을 이용해 이런 글을 끄적이기도 했다.

 

 ‘눈이 창문으로 달려든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모양이다. 전부를 다 잃고 사라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쓰럽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밖이 환하다. 달빛이 아닌 눈빛이다. ’ (1월 9일 23시 47분)

 

 1월 10일 아침에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비탈에 서 있는 나무는 한쪽으로만 눈을 맞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눈을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한 몸이지만 각기 다른 곳을 보며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아 있는 겨울날은 얼마나 될까. 대한(大寒)이 지나면 입춘이 올 것이고 또 봄의 전령사라면서 이곳저곳에서 꽃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우리는 다음 계절을 꿈꾸는 것 같다. 어서 빨리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꽃 피는 봄에는 휴가가 있는 여름을 기다리고 무더운 날들에는 서늘한 가을이 갈망하고 낙엽 지는 가을에는 첫눈의 겨울이 오기를 말이다. 기다린다는 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언제 올지 몰라 무작정 기다린다 해도 기다리는 동안 그것만 생각하게 되니까.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故 정미경의 소설이다. 벌써 1주년이 되었고 정미경의 단편과 미발표 장편이 나왔다. 단편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에는 정미경의 근작 단편 5편과 그를 추모하는 작가의 산문이 있고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에는 남편 김병종 화가의 글이 있다. 민음사에서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새롭게 나올 거라고 한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애틋한 기다림이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올 때가지 그것으로 충분한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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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2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까지 희미하게ㅡ이 단편은 벌써 읽어버렸지만.. 느낌은 넘 좋았죠. ^^ 그녀의 책들이 그림움으로 묶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자목련 2018-01-31 17:12   좋아요 1 | URL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읽고 있어요. 소설을 읽으니 더욱 그녀가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요. 그리고 우리 곁에는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가겠지요.

[그장소] 2018-01-31 19:59   좋아요 0 | URL
네~이 때쯤 들어야할거 같죠?
ㅡ 그리움만 쌓이네~ !!^^
 

 

 찌든 때를 벗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철 수세미에 힘을 가해 열심히 닦아내거나 화학 약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팔은 아프고 진즉 청소를 잘 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면서도 벗겨진 때를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 주방을 청소하면서 흘러내리는 묵은 때를 보면서 이렇게 미움처럼 묵은 감정도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한 번씩 불쑥 올라오는 감정들, 제대로 된 이별 혹은 관계 정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대체로 그들은 좋은 지인이었거나 사랑했던 이들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지거나 내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 감정이다. 어쩌면 아직 그리움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해가 되었다지만 별단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에서는 굵은 눈발이 내리고 이곳은 흐리기만 하다. 새해의 다짐 같은 것 없다. 다만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운다. 한 해를 보낸 기록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 말이다. 이만큼 잘 살았다는 징표가 되기도 할 텐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어떤 날은 괜찮았고 어떤 날은 아주 나빴고 어떤 날은 우울했다. 계획했던 대로 읽고 쓴 날은 괜찮음에 속한다. 그것들을 이어가는 건 참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신간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은 『읽어본다』시리즈다. 동시에 다서 권이 나왔다. 편집자와 북카페 운영자(부부), 시인과 시인(부부), 온라인 서점 MD와 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부부), 뮤지션 요조, 의사 남궁민의 독서일기라고 한다. SNS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출판 관계자의 글들이 많기에 독자의 리뷰를 기다린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남긴다는 건 대단한 일이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직접 한 권, 한 권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처럼 계속해서 나올지 지켜볼 만 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참으로 즐거울 것 같다. 더불어 한 권의 책을 각기 다른 시기에 읽고 그것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것도 말이다.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면서도 나눈다는 의미도 남다를 듯하다. 이 모두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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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던가. 마치 소설 속 인물의 말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로 향하는 듯한 기분 말이다.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한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대는 소설 속 인물인 현남 오빠일 수도 있고 손녀딸에게 대놓고 심한 언어폭력을 하셨던 돌아가신 할머니 일수도 있고 살아있는 동안 그 모든 걸 감내하다 바스러져 버린 내 엄마일 수도 있다.

 

 어떤 소설은 너무 읽기 힘들었고 어떤 소설은 너무 놀랐고 어떤 소설은 그저 멍했고 어떤 소설은 따라가지 못한 게 당연하다.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의 내 삶과 현재의 내 삶을 생각한다. 내가 부여받은 여성성, 혹은 그것을 이용한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던 지난날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내가 여성 독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관리하고 그에 따라 수긍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던 조남주의「현남 오빠에게」속 ‘나’는 익숙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강한 다짐 같은 게 전해졌다. 그것은 단지 십 년째 만난 연인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잣대와 시선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예의와 존중에 대해서 말이다. 아쉬운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과거의 나열이었다. ‘나’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와 김이설의 경년更年」은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딸이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주제였기 때문일까.「당신의 평화」속 유진은 엄마 정순의 모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쏟아내지 못하고 쌓아둔 감정을 오롯이 쏟아낼 대상이었다. 같은 여자니까, 딸이니까, 너만은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였다. 첫딸에게 갖는 기대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주변의 그녀들에게 들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가 아닌 달라진 세대를 살고 있지만 그것은 무서운 감정의 세습이었다. 물론 정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며느리만 생각하는 아들이 꽤씸하고 자신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서러움, 힘들게 살아온 삶이 안타까운 건 맞다. 그래도 유진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수많은 엄마 정순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김이설의「경년更年은 여전히 잔혹하다. 열다섯 살 중학생 아들과 아이돌에 열광하는 열두 살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엄마, 일상은 모두 가족 중심으로 흘러간다. 소설 속 엄마의 모습은 보통의 사십 대 여성의 일과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느라 ‘나’는 사라진지 오래다. 고교입시를 위해 정보를 얻으려 학부모 모임에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소식이었다. 놀라운 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이라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남편은 서로 합의했다는데 무슨 문제냐고 받아칠 뿐이다. 그런가 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옹호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는 ‘나’는 혼란스럽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 속 나의 아들과 딸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머지 네 편의 소설 역시 모두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하지만 접근이 남다르다. 최정화의「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대부분 남자들의 직업으로 알려진 촬영기사인 여성 ‘율’이 등장하고 손보미의 「이방인」에서는 경찰인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끈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벗을 수 없는 옷과 구두를 입은 남자 ‘표’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는 유일하게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 벌한다. 미래의 어느 날 화성으로 쏟아올린 열두 마리 실험동물 중 살아남은 ‘나’와 그곳에서 만난 개 ‘라이카’와 탐사로봇 ‘데이모스’가 함께 살아가는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에서는 ‘나’가 임신을 한 돌보는 ‘라이카’와 ‘데이모스’를 통해 생명과 출산의 경이로움을 언급한다.

 

 무조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던 시대는 사라졌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부장적 제도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그것들과 싸우자는 게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삶을 원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 그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하게 전해지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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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은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단순하게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다는 말이다. 표제작 「오직 두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와의 관계로 시작한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딸은 말이 통하는 관계로 남다른 사이다. 다른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 수직적 관계. 그러니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 곁에 남은 건 딸뿐이다. 유독 가까운 딸과 아버지를 보면서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존재는 누구인가, 생각하게 된다. 전부였던 존재의 부재 후 다가올 삶은 어떨까. 관계를 생각하니 결국은 두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아닐까 싶다. 적절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동창과의 만남 이후 삶의 변화를 원하는 「인생의 원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이라 여겼던 여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좋았던 감정만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했던 대로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독특한 소재와 예상하지 않은 전개로 이어지며 소설 쓰기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보여주는 「옥수수와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의「슈트」도 흥미롭다. 말기 암 환자와 싱글맘이 되겠다는 여직원의 이야기「최은지와 박인수」로 보여주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누군가 삶을 조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게 만드는 「신의 장난」은 처음엔 소설에서나 일어날 일이지 싶다가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섬뜩해진다. 언제부터인지 소설은 소설 속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소설 밖으로 나와 우리 삶에 나란히 서 있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하의 소설집이 특히 그러했다.

 

 이 소설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단연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그러니까 상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잃어버린 시점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어제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없는 사람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이를 찾았지만 오히려 삶은 더 깊게 무너져내리고 끝나지 않는 삶은 새로운 고통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이를 찾기만 한다면 아이를 잃어버리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은 성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영하의 말처럼 그 이후의 삶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쉽게 잊어버린 일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소재라서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인생의 원점」, 93쪽

 

 7년 전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의 소설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 살아가아 한다는 것. 작가의 말처럼 ‘그 이후’의 삶 말이다. 기발하고 놀라운 소설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견디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때때로 그게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게 만들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그 이후’의 삶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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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