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손이 닿거나 우리의 몸을 감싸거나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의 감촉이다. 부드러운 결은 안식을 주고 세월의 결은 경외감을 유발하며, 섬세한 결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복잡한 결은 우리의 시선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한 글자 사전』, 「결」)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가을의 중심에서 겨울의 방문을 받은 듯하다. 아니, 이제는 우리에게 가을이라는 계절은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추위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어제는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 내리지 않은 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첫눈도 빨리 오고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릴 거라고. 많이 추워지고 있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겨울의 쓸쓸함이 저기 보이는 것만 같다.

 

 무릎에는 커다란 꽃이 피었다. 지난 주일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서다가 넘어졌는데 그 순간에는 창피함에 얼른 일어나서 아픈 줄도 모르다가 집에 와서 보니 넘어진 부위가 제법 부었다. 멍의 색깔은 다채롭다. 통증은 길지 않아 다행이다. 보랏빛이 돌다가 푸르죽죽해졌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 몸은 이렇게 신비하구나.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을까.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말이 아닌 눈빛, 메모, 공간을 채우는 어떤 것들. ‘아침의 피아노’란 제목에 클릭한 책이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옮긴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은 그의 유고집이라고 한다. 겨울처럼 외롭고 적막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를 수도 있겠다. 큰언니의 마지막 기록을 생각하면 말이다. 애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 곁을 떠나는 이들,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건네지도 못하고 작별한다.

 

 따뜻한 손을 맞잡고 싶은 아침이다. 손바닥으로 손등을 문지른다. 손등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온기가 전해지는 뜨거운 커피, 뜨거운 손, 뜨거운 마음.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의 커피를 마시며 시작하는 하루. 상처입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뜨거운 하루여도 괜찮겠다. 적정한 온도를 조율할 줄 아는 그런 하루.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8-10-11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의 피아노) 읽고 싶었어요. 넘어지셨군요... 저는 뜬금없이 오른쪽 무릎이 아파와서 걱정입니다. 벌써 아프다니... 계속 무시해서 그런가도 싶고. 몸이란 참 신비로워서 역행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자목련 2018-10-12 15:38   좋아요 0 | URL
아픈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지만 때때로 당황하고 서글퍼지기도 해요, ㅎ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뒷북소녀 2018-10-11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어쨌든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아침의 피아노요.^^

자목련 2018-10-12 15:37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읽겠지만.
맑고 투명한 가을의 하늘을 만끽하며 즐겁게 보내길 바라^^

희선 2018-10-13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 책 《애도 일기》는 만났는데, 그걸 한국말로 옮긴 사람이 김진영이었군요 그걸 써뒀지만 잊어버린 듯합니다 그 분 잘 몰랐지만 저 책 소개는 봤어요 아파도 무언가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늘 뭔가를 쓰는 사람은 그때도 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세상을 떠났다 하면 어쩐지 쓸쓸하네요 얼마전에는 일본 성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어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목소리 들었는데, 세상을 떠나고 두달이 넘은 뒤에 알았습니다 그걸 알고 그런 일이 했네요


희선

자목련 2018-10-15 21:17   좋아요 1 | URL
네, 누군가 떠난 후에 우리는 그 소식을 접하게 되니까요. 김진영이 옮김 <애도 일기>로 무척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이제는 그가 남긴 글을 읽고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말과 글로 나를 표현하고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말은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걸 확인시키기도 한다. 외모는 한국인과 똑같지만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입양,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라고 판단한다. 반대로 외국인의 외모를 지녔지만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의 소속감은 언어에서 오는 것일까. 떠났거나 떠나온 이들에게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곳과 그것을 나누는 선이 될까. 그 경계에 있는 삶은 어디에서 안정된 구성원으로 살고 싶은 걸까.

 

 임재희의 소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속 인물은 떠나온 이들이거나 떠나온 곳으로 돌아온 이들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말하자면 그곳에 속하거나 이곳에 속하는, 혹은 그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피부색이 같고 외형적으로 닮았지만 다른 언어를 쓰거나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생활 습관이나 사고가 달라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이 가득하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 임재희의 고유한 감성이 묻어있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임재희의 소설을 처음 읽었고 작가의 말을 읽기 전에 수록된 9편으로 인해 그녀가 타국에서 살거나 돌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결국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표제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은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집약할 수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나러 온 폴은 4박 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둘러보고 돌아가려 한다. 스탠바이 티켓 때문에 공항 근처에서 대기해야 하는 폴은 자신을 대하는 이들에게서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에게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자신을 확인한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것, 그것은 때로 위로가 되면서도 낯설다. 폴의 경우는 잠시 다니러 온 경우지만「히어 앤 데어」의 동희나 「천천히 초록」의 나는 다르다. 한국을 떠났다가 돌아온 동희는 계속 한국에서 살 수도 있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왜 돌아왔냐고 묻는 이들에게 동희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녀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곳을 떠난 이들은 어떨까?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고단한 삶이다. 마노아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기를 바랐던 「로사의 연못」속 부부는 마침내 꿈을 이룬다. 완벽을 위해 남편은 연못을 만들고 친구들을 불러 모으지만 그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와 마주한다. 그것은 그들이 진실로 바랐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떠난 곳을 향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정착하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에 사는 동생 부부를 만나러 온 「라스트 북스토어」의 나는 헌책방에서 한국어를 건네는 여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우울증을 앓는 올케와 가장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동생에게도 누군가 그런 위로를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누군가 우리의 끝, 세상이라는 이름의 아찔한 절벽 끝에 묵묵히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미안하리만치 깊은 위안을 받았다. (85쪽)

 

 9편 중에서 내 마음을 흔든 건 남편과 이혼하고 무작정 다른 언어를 쓰는 곳으로 떠나온 세레나의 사연「분홍에 대하여」와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 압시드가 들려주는 이름의 이야기「압시드」였다. 흐릿한 기억 속 생부가 자신을 입양 보낼 당시 알고 있던 알파벳 ABCD란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알기에 압시드는 그 이름을 사랑한다. 한국 이름 아닌 영어 이름을 지어주며 미국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사랑받는 아이였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조화로 된 꽃을 만드는 세레나에게 말은 사랑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세레나가 아는 말과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녀에게 세상은 두렵거나 무서운 곳이 아닐 터였다. 그러니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와 세레나의 말은 전혀 다른 언어였다. 그러니 노신사 주문한 핑크 장미를 세레나에게 핑크로 전했을 뿐이다. 오직 세레나만이 분홍과 핑크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핑크와 분홍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레나가 입술을 오므리고 분홍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분명히 그걸 느꼈다. 핑크가 절정으로 치닫던 어느 순간들의 화려함이라면 분홍은 붉은빛의 모든 열기가 다 빠지며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다. (168쪽)

 

 작가 임재희는 한국을 떠나 오랜 시간 타국의 삶을 살았다. 작가에게 한국말은 애틋하지만 서툴고 어려울 것이다. 소설을 쓰는데도 마찬가지 일터. 그럼에도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재희의 소설은 중국에 살면서 모어(母語)인 한글로 소설을 쓴 작가 금희(錦姬)의 『세상에 없는 나의 집』가 내내 겹쳐 보였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금희의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은 한족, 조선족, 북한을 탈출한 이들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과 조선을 오가는 사람들,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났지만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어디에 있든 그곳 사람들과 온전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그 삶에 녹아들지 못한다. 누군가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고 부러워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흔들리는 정체성으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가까운 곳에서 조선족인, 탈북민을 만나면서도 우리는 그들과 선을 긋기도 한다. 보이지 않을 거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그들은 보고 느낀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 지대들, 그 지대마다 완전히 그 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완전 수 사이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수한 소수들처럼. (세상에 없는 나의 집, 21)

 

 단 한 번의 이동도 없이 나고 자란 곳에서 죽음을 맞는 이는 몇이나 될까. 우리의 삶은 가깝거나 먼 곳으로 이동한다. 이민이나 유학처럼 타국으로 이동, 공간의 이동뿐 아니라 가족을 떠나는 이동도 있고, 헤어짐으로 인한 관계의 이동도 있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떠났다가 이곳으로 돌아오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소설 속 그들에게 어딘가에 속하거나 정착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머문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니까.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10-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크와 분홍은 비슷한 색을 말하는 것 같은데, 글자가 달라서 느낌이 다른가봐요.
자목련님, 한글날 휴일 즐겁게 보내셨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10-11 07:19   좋아요 0 | URL
소설을 읽고 분홍과 핑크, 그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저도 잠깐 생각했어요. ㅎ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따뜻한 하루 시작하세요^^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주의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든다. 뭐든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거니와 괜한 시비에 휘말리는 불편함이 싫기 때문이다. 가족과도 필요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세영은 남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손톱의 때만큼도 하고 싶지 않았다. (18쪽)는 세영의 마음이 유별나다고 할 수 없다.

 

 소설은 동갑내기 부부 세영과 무원, 그리고 딸 동주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약사인 세영은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과 딸 동주를 돌보는 그 외의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유산으로 받은 호텔을 관리하느라 집에 자주 들르지 않는 남편 무원의 태도도 무던하게 받아들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가족은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중산층의 모습처럼 보인다. 중학교 2학년 딸 동주의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만 없었다면 이런 일상이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원은 무대로 세영은 세영대로 동주가 다니는 중학교 ‘학부모회’ 부회장인 세영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여해야만 했다. 가해자인 남학생 양은석과 차지수는 동주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피해자 유강은 전학을 온 아이로 조부모와 지내고 있었다.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회의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의 할아버지가 보내는 문자도 부담스럽고 약국으로 두통약을 사러 오면서 은근슬쩍 말을 거는 가해자의 부모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무원을 핑계로 참석을 피하고 호텔로 향했다. 세영에 학교 일로 인해 복잡했다면 무원은 온라인 동호회 활동으로 골치를 섞고 있었다. 자영업자들의 모임에 호텔이 아닌 약국을 운영하는 걸로 가입했다. 어쩌다 보니 무원은 회원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만날 사이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남자 회원이 무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자신이 남자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무원은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해를 확고히 하는 시도를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실제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상황을 그냥 놔두었다. 시간이 그렇게 갔다. (95쪽)

 

 어떻게 보면 세영과 무원 모두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의논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세영과 무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피해를 받고 싶지도 않은 세영이나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무원은 어느 순간의 나였거나 현재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영이 빠진 학폭위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은 서면사과와 봉사로 결정 났고 피해 학생은 등원을 하지 않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 참석을 두고 학부모회는 참석을 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고 세영의 부담을 줄어들었다. 하지만 반장이었던 동주는 유강을 보러 간다.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데리러 온 세영에게 동주는 완강하게 더 있다 가겠다고 말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유강의 장례식장에 가겠다는 동주가 나중에 가라는 세영에게 “나중에…… 언제요? 엄마, 시간이 없어요.” (122쪽)라고 한 말은 너무도 적확하게 모두의 가슴을 찌른다. 우리에게 나중은 있을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구하는 밤이 언젠가 올 것이다.’ (148쪽)란 의미심장한 말도 마찬가지다. 불안하고도 불편한 순간을 모면했지만 언젠가 우리가 당사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모두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소설을 읽고 관심, 관여, 개입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정이현은 당신이 세영과 무원이라면 어떻게 했겠냐고, 묻는 듯하다.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세상과의 나 사이에 불투명한 유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는 타인과의 단절뿐 아니라 스스로와도 단절하고 사는 건 아닌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0-05 0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5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란 제목에 자석처럼 내 마음이 달라붙었다. 모르겠다. 무슨 이유인지, 나대로란 말이 좋았는지, ‘혼자서’란 말에 끌렸는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작가의 일기 같기도 한 글이다. 일흔넷 모모코 씨는 혼자 산다. 남편은 죽고 자식은 모두 분가했다. 자식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사는 건 아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기도 힘들고 집안 정리도 귀찮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모모코 씨는 혼자서 웃기도 하고 누군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대화의 상대는 바로 모모코 씨 자신이면서 다른 누군가다. 고향 사투리를 써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해는 하지 말길, 치매는 아니니까. 투박한 사투리로 혼잣말을 하는 모모코 씨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에게 사투리는 익숙하고 지금 주변에 어르신들의 대화도 표준어는 아니니까.

 

 이쯤 되면 당신이 짐작한 대로 이 책은 노년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소설이 맞다. 뭐 그렇다고 고독이나 외로움을 줄기차게 늘어놓는 건 아니다. 모모코 씨가 들려주는 지난 생은 내 할머니나 어머니의 그것과 비슷해 친숙하다. 고향에서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물넷에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돌연 도쿄로 향했다. 고향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도쿄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러다 남편 슈조와 만나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고 열심히 살았다. 갑작스러운 슈조의 죽음으로 인해 모모코 씨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유로운 해방감이면서도 슈조를 향한 그리움이 동반된 형태의 감정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후회나 회한도 있었고 남은 생을 새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모모코 씨는 맞서 싸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함양해 온 것은 순응이나 협조, 요컨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끈기 있게 뭔가에 몰입하는 힘을 미처 기르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는 후회를 질질 끌며 살았다. 왜 그랬을까. (119쪽)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진료 대기실에서 자신과 같은 비슷한 노인의 행동을 살피고 지하철에서는 오래전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모모코 씨의 일상은 언젠가 나와 당신의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혼자 산길을 걸어 슈조의 무덤으로 향하는 모모코 씨의 모습이 대단하구나 싶다. 단순한 여정이 아니기에 일흔넷의 노인에게 고역이다. 그러나 모모코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발이 미끄러져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앞으로 전진을 선택한다. 슈조가 죽기 전 함께 올랐던 길, 혼자서 낯선 불단 앞에서 흐르는 눈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모모코 씨의 감각. 신비롭고 놀라운 감각을 먼 훗날의 나도 경험할 수 있을까.

 

 몸의 표면이 한없이 옅어지고 경계가 사라져 나는 녹아내린다. 나는 공증으로 확산되고 방 안에 나와 나의 슬픔이 충만해진다. 나는 전체이면서도 부분인 듯한, 정처 없이 떠다니다 풀어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들면서, 뭐라 말할 수 없이 온화하고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의식은 어딘가 한 점에 집중해, 지금 일어나는 이 최초의 감각에 경악하고 있다. (133쪽)

 

 모모코 씨의 생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하고 특별한 건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모코 씨이자 이 소설을 쓴 와카타케 치사코의 사고다. 소설 속 모모코 씨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표현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내적 생활을 쓰고 싶었습니다. …… 노년이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감각, 그 부분을 소설로 써나가고 싶습니다. 란 말이 주는 아름다운 울림.

 

 모두 늙는다는 걸 안다. 제대로 늙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늘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주한 늙음에 대해선 자신이 늙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경험할 수 없기에 노년의 삶이 안겨줄 충만함을 우리는 짐작할 수조차 없다. 모모코 씨도 그랬을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을까. 떠나온 고향의 사투리와 작고 보잘것없는 핫카쿠산이 다르게 보일 줄 몰랐다.

 

 누구나 혼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의 늙음은 어떨까. 혼자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현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지키고 싶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겠지. 수많은 모모코 씨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못하는 이들도 나와 닿을 수 없는 이들도 그렇게 살아갈 거라 생각하면 편안해진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있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간다. 모모코 씨가 모모코 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끌어당기며, 등을 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1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 - 덜 신경 쓰고, 더 사랑하는 법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을은 조급함을 몰고 온다. 곧 이 계절은 겨울로 바뀌고 올해는 사라지고 내년이 도착하는 사실이 그러하다. 뭔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계획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계획했던 일들을 다 못했다고 해서 내가 크게 잘못한 걸까. 잘못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한결 놓이는 듯하다가 다시 복잡해진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괜한 수다를 떨거나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가을이라서 그럴까. 방황하는 젊음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흔드는가. 그러다 이런 문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말, 내가 사랑하는 말, 어쩌면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는 보통의 말.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길이 있다. 저마다의 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253쪽)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걷고 있다고 믿었는데 저 깊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다른 이들의 길을 부러워하고 있었나 보다. 나의 삶, 나의 길에 나만의 의미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저마다의 삶을 존중하고 나 스스로 나를 축복하는 일.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니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란 제목에서 행복 대신 나는 건강, 즐거움, 평온, 웃음으로 대신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그것을 내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그러니 자신의 상황, 감정에 따라 좋아하는 구절,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다르다. 당연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힘들거나 지난 인연을 자꾸만 붙잡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이런 부분이 위로가 될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책은 그런 존재니까. 오늘 읽은 문장이 오늘보다는 내일 더 와닿을 수 있고, 이미 지나간 어느 시절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니까. 하나의 사랑이 끝났으니 마침표를 찍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사랑이 올 수 있도록. 

 모든 사랑은 서로가 성장하는 과정임을 나는 배웠다. 누가 상처를 주었고 이별을 먼저 말했는지 따져보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행복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173쪽)


 사소한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관계에 대해서는 그 사소함과 소소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라는 것을 즐길 수 있다고 여겼지만 온전한 혼자는 조금 힘든가 보다. 오래된 친구,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온라인에서 만나 지속된 인연, 그 인연들에 대해 생각한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죽은 관계란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 믿음에, 아무 때나 연락해도 반갑게 받아줄 거라 여기며, 무뚝뚝하게 구는 내 마음을 혼내는 것 같다.

 만나지 않으면 죽는다. 평행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서로 연락하지 않으면 죽은 관계이다. (121쪽)

 첫 직장에서 만난 업무의 고단함을 격려하고 상사 욕을 하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렸던 동기는 지금껏 안부를 전하고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다. 신기하게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순수한 기억을 공유하며 부끄러운 첫사랑의 속내까지도 꺼내 보일 수 있는 친구, 선배라는 이름으로 내게 너무 소중한 이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맙고도 고마운 친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어느덧 그들의 이름에는 나의 일부가 담겨있다.

 삶의 첫 장에서 만난 인연들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함께한 추억이 많은 친구들을, 그 추억이 별 의미 없고 시답잖은 기억일지라도 함께 공유한 시간과 기억은 삶을 빛나게 하는 보석과도 같다. (280쪽) 

 여러 빛깔의 마음을 불러오고 잊었던 시간을 데리고 오는 책이다.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좋아거나 예쁜 사진과 짧은 글로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 책이 깊은 밤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