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자신에게 만족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부족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쌓여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모른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사실, 이건 요즘 내 마음이다.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때아닌 사춘기도 아닌데 말이다. 제법 많은 일을 겪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렇게 대처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자꾸 흔들리는 것일까. 친구가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작고 소소한 상처가 결국엔 죽고 사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상처투성이로 결집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처를 감추고 살아야 할까.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보여줄 수 없고 혹여 타인의 시선에 상처가 아닌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현재는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시작되고, 상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묘한 능력을 지녔다. 과거의 상처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내 삶을 괴롭게 만든다. 김윤나의 『당신을 믿어요』는 그런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인식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안아줄 수 있는 힘에 대해 들려준다.

 

상처의 맨얼굴과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외로움과 절박함의 끝에 섰을 때, 자기 믿음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7쪽)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믿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끙끙 앓다가 내게서 분리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말하기로 다짐하는 순간, 나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설령 그 상대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의 몫이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5년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런 행동과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참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자꾸 말해야 상처는 작아지고 소멸하는 게 아니겠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당신과 상처의 관계는 분명히 ‘사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찾다 보면 완전히 다른 옵션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전처럼 강한 척하지 않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 수 있고, 모두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서운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멈추어 질문해야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 가까워진다. (36쪽)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난 엄마, 그런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온 시간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폭력과 새엄마와 힘들었던 날들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잘못이 아니고 그녀의 몫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다친 마음을 돌볼 이는 자신뿐 이었으니 혼자 벽을 쌓고 경계하고 생존을 위해 애쓴 그녀가 상담을 공부하고 누군가의 상처를 들어준다. 상처를 알기에 더욱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책은 김윤나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쉽게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 들어주는 일, 궁금한 것에 대해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부모와의 관계, 독한 말로 상처를 주는 가족, 아픈 형제 때문에 희생하거나 잘난 형제 때문에 비교당하며 쌓인 상처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상담한 다양한 사례를 읽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나거나 어느 순간 눈물이 난다면 그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면에 가득한 상처와 슬픔을 무시하면서 살아왔을 누군가, 자신의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와 함께 자라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이미 해내고 있다는 것을요.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193쪽)

 

상처와 함께 자라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성장한다는 건 상처를 직시하는 일이고 그것을 때로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주는 순간 어느새 상처는 새 살이 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니까.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할 때마다 나는 책을 찾는다. 최근 몇 달 동안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래서 김혜남, 박종석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었다. 기존의 심리 서적에서 다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문장에 얼었던 마음이 녹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게 괜찮은 게 아니고 실수와 자책을 할 수 있으며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를 부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이 부분은 앞서 김윤나의 책에서 마주한 부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72쪽)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258쪽)

우리에겐 상처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필요하고 상처를 통해서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그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내 안의 동굴로 들어가 묻을 닫아버릴 테니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누군가, 혹은 낯선 존재, 때로는 이런 책들의 도움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내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나를 알아차리는 친구가 있고 이런 책도 있다. 연달아 읽은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통해서도 많은 힘을 얻는다. 세 권의 책에서 주목하는 건 상처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알아봐 주고 들어주는 존재와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이 옳다』, 167쪽)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과거에 붙잡혀 살기도 한다. 그 과정에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처와 상실이 있다. 책을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다. 시들해졌던 내게 책은 생기를 주고 나는 조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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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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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자식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모습 말이다. 과거에는 ‘사랑의 매’도 그런 사랑에 속했었다. 아마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속 십 대 소녀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도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학교 시험에서 2등을 했다고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이니 말이다. 1등을 한 아이가 누구인지 묻고 “저 애도 머리가 하니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유진은 자수성가로 일가를 이뤘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신이 세운 계획표대로 생활해야 했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모범생인 오빠와 다정한 어머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둔 캄빌리의 가족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버지 유진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모든 일에 감사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자유를 향한 목소리를 내고 가난한 이들을 볼보며 누가 봐도 좋은 아버지이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니 캄빌리는 아버지가 행하는 폭력을 고스란히 흡수한다. 어머니와 오빠 자자도 마찬가지였다.

 

캄빌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조바심이 났다. 단 한 번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자라면 안 될 텐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만남에도 제약을 두는 아버지라니. 캄빌리와 자자에게 세상은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캄빌리가 다른 세상과 교류할 기회는 오직 고모를 만날 때 뿐이었다. 소설에서 고모 이페오마는 가장 주체적인 삶을 보여준다.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아버지 유진을 설득하고 폭력의 희생자인 어머니를 위로하면서도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주고 이끄는 사람이다. 방학 동안 남매는 나이지리아 대학교의 교수인 고모 이페오마 집에서 세 명의 사촌과 생활하게 된다. 자동차에 넣을 기름이 없고 사용할 물이 충분하지 않고 먹을 음식도 없는데 그들의 생활은 캄빌리가 살아온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모든 게 자유로웠다. 캄빌리가 상상한 적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마디 신부를 통해서도 캄빌리의 마음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마디 신부를 대할 때 설레고 떨리는 캄빌리야말로 진짜 십 대의 소녀라는 게 느껴진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성장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캄빌리는 그 과정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믿었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과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가득했다.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이전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러면서도 그 세계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는 사실. 사촌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이페오마 고모가 그곳에서 적응하면서 나이지리아를 그리워하는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거부하고 “그럼 죽을게요.”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결연한 의지처럼. 미세하게 시작된 마음의 움직임은 용기를 데려오고 행동으로 이끈다.

그래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혹독한 성장소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볼 수 없다.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한 사회, 문화, 정치, 제도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가부장 제도, 군부가 장악한 사회, 고모가 재직한 대학교의 시위 현장은 우리의 과거였고 현재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캄빌리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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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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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지수가 최고다. 더위를 제법 잘 견딘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제의 나일뿐이다. 오늘의 나는 더위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란다. 읽는 일도 힘들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면 무슨 책을 펼쳐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책, 만화책도 좋고 그림책도 좋고 화가 나면 미친 오리로 변신하는 튜브가 등장하는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란 제목의 책도 좋겠다. 읽는 일에 방점을 찍지 말고 순간적으로 꽂히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고 하면 맞을까?

 

신기하게도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림도 보고 아주 하상욱의 짧은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지는 듯하다. 마음이란 건 이처럼 변덕이 심하다. 다 아는 말, 한 번쯤 경험했던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말장난이나 언어유희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하상욱의 기발함이 마음을 휘두르는 부분도 많았다. 하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타인과의 관계, 갈등에 대한 조언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비밀을 지키는 이유는

비밀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지.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지. (38쪽)

 

비밀을 나누는 사이는 굳건한 믿음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비밀이라면서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를 믿기에 그럴 수 있고 그 말을 받은 이는 사실 그 비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킬 수 없는 마음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비밀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 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반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이는 누구일까?. 비밀이라면서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를 믿기에 그럴 수 있고 그 말을 받은 이는 사실 그 비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킬 수 없는 마음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비밀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 나를 지키고 싶어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반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이는 누구일까?

 

 

나와 이어진 이들을 떠올린다. 친구, 이웃, 동료. 관계를 맺는 일은 어렵다. 아니, 관계를 지속하는 게 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휴대전화에 저장한 이름이 줄어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 싫은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상대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상욱의 말처럼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일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이다. 싫은데 그걸 감추고 좋은 척하면서 만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아도 충분하니까. 지키고 싶은 사람만 말이다.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구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행동했다면,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145쪽)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좋아하는 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일, 그게 뭐 어렵냐고 하겠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사람(좋은 엄마, 좋은 상사,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의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 단 사람만을 위한 변화만으로도 괜찮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처럼 어리석은 게 있을까?

 

당신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수도 없다. (240쪽)

 

관계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건 바로 자신이다. 세상을 사는 일이 다 그렇듯 말이다. 누군가의 질책, 조언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충고나 위로의 말을 하지 말고 넣어두었다가 상대가 도움을 청할 때, 의견을 구할 때 말해도 늦지 않다. 마음이 급하다면 슬그머니 이 책을 내밀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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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로 보는 세계사 - 문명.기근.전쟁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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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좋아한다. 은은한 보랏빛의 꽃을 피우는 것도 좋고 캄캄한 땅속에서 열매를 맺고 키우는 일도 대견하다. 어디 그뿐인가. 감자는 맛도 훌륭하다. 감자와 당근과 양파만 넣어도 맛있는 카레를 만들 수 있다. 사실 나는 감자튀김과 찐 감자도 잘 먹는다. 그런데 한 단 번도 감자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즐겨 먹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감자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감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면 감자를 더욱 소중하게 다룰 것 같다.

​야마모토 노리오의 『감자로 보는 세계사』는 제목 그대로 감자와 함께 살아온 인류에 대한 이야기할 할 수 있다. 책에 의하면 감자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류의 생존은 곡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여긴 것이다. 감자를 먹기 시작한 곳은 어디일까? 가짓과 가지 속 식물인 감자(사실 처음 알았다)는 안데스산맥이 고향이라고 한다. 중앙 안데스 고지가 감자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 조건(비가 자주 오는 우기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이 충분했다. 하지만 감자에 독이 있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널어놓고 수일간 방치한 감자를 짓이겨 수분이 나오지 않을 정도가 되면 다시 수일간 방치한다. 이 과정에서 독이 없어지는 것이다. 말린 감자 ‘추뇨’는 감자 재배를 통해 먹거리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안데스에서 시작된 감자는 스페인에서 최초 기록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유럽에 전해진 건 1565부터 1572년 사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자에 대한 편견으로 프랑스에서는 하층 계급의 음식이었다. 이 부분에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기근으로 인해 감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자 재배 보급을 힘을 썼고 감자밭에 보초를 세워 감자가 귀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감자가 전파되었다. 감자와 전쟁의 조합이 쓸쓸하지만 영국의 대표 음식이 피스 앤드 칩스인 걸 생각하며 감자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아일랜드의 경우도 흥미롭다. 영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였기에 보리를 재배했던 소작 농가는 지대를 지불해야 했지만 감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감자를 재배할 수 있었고 주식처럼 감자를 먹었다. 아일랜드의 힘든 시절을 감자와 함께 견딘 것이다.

유럽을 지나 감자는 네팔 히말라야의 셰르파의 식생활에 주요 식자재가 되었고 중국, 러시아, 인도는 주요 생산국이다. 에도 시대에 감자가 전래된 일본은 마, 토란 같은 덩이줄기의 식물이 익숙했기에 편견 없이 정착하였다. 일본에서는 감자를 보존하는 특이한 방법을 소개한다. 감자녹말의 생산과 얼린 감자로 보존하는 것이다. 추뇨를 만들 때처럼 감자를 노지에 내놓고 이리저리 뒤집어 얼린다. 언 감자의 껍질을 벗긴 후 흐르는 강물에 2~3일 담근 후 꼬챙이에 꿴다. 충분히 말려서 일주일 정도 물에 담갔다가 언 상태로 3개월 방치 후 자연 건조한다. 시간과 정성이 놀랍다. 그 감자로 만든 요리의 맛은 어떨까.

​감자가 지닌 독과 녹말 성분 외에는 다른 영양소가 없다는 편견에 저자는 밥과 파스타류와 찐 감자의 영양가를 비교할 정도다. 열랑도 충분하고 비타민C와 칼륨도 충분하다는 설명을 더한다. 남겨지는 음식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과거 역사 속 기근은 지구 곳곳에서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저자가 감자를 통해 세계 식량 문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밀, 옥수수 등의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공급에 불안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교훈을 되새겨 식량원으로서 커다란 가능성을 지닌 감자류의 장점을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233쪽) ​

​책을 읽으면서 감자의 고단한 여정을 느낀다. 고향인 안데스를 떠나 우리 곁으로 와 줘서 고맙고 이렇게 맛있는 감자를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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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8-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도 감자를 심잖아요 한국도 예전에 먹을 게 없을 때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국에는 감자가 언제 들어왔을까요 꽤 오래전일지도 모르겠네요 한국 땅에 맞는 감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자목련 2019-08-08 10:16   좋아요 1 | URL
네, 영화 생각도 났어요. 토양에 맞게 변화하는 감자, 모든 게 그러하겠지만요. ㅎ
 

 

어제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잠을 잤다고 할 수 없으니 하루가 몽롱하고 기운이 없다. 예상했던 장맛비는 예상대로 흠뻑 내렸다. 아니, 흠뻑이 아니라 쏟아부었다. 입맛도 살짝 사라졌는지 도통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식은 카레의 노란색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냉커피만 연식 마신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내일이나 모레까지 비는 계속 내릴 것이다. 나의 몽롱함도 그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언제 어느 가지에서 먼저 꽃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오른쪽부터 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빨리 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자귀나무의 화려한 꽃은 한참 전에 사라졌으니 배롱나무의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 걸까. 봄에 만난 친구는 배롱나무꽃이 필 때 다시 만나자 했는데 우리의 만남은 아직 미정이다. 하나의 계절이 꽃으로 연결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는 건 참 낭만적이다. 우리의 현실이 낭만적이지 않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경비실의 지붕이라고 해야 맞을까. 지붕 위에 농구공은 언제 주인과 이별한 걸까. 바람이 빠져서 홀로 외롭게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문득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지로 구르지 못하는 공이라니. 그러다 화분을 집으로 알고 온전히 그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한 번씩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뿐 다정한 말은 들려주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물을 주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자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성장을 멈추고 소멸하는 나무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을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

7월에는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읽는 일뿐이랴. 날씨와 저질 체력을 핑계로 삼다가 지금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중에 읽으면 왜 안 되는가, 묻기까지 한다. 나의 물음을 들은 책이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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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에는 역시 배롱나무죠.

자목련 2019-08-02 15:5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의 이런 댓글 좋아요!!
연분홍과 연보라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는 8월,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