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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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혼자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25쪽)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대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재해나 사고가 났을 때 ​ARS 자동 전화를 통한 기부와 정기적으로 소액을 송금하는 정도만 익숙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작은 행위를 뭐라도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마실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 병에 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린아이가 가장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도네이션 프로를 통해 접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침묵하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법학박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매슈 대니얼스의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에게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속으로 움직이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침묵하고 살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매슈 대니얼스는 불안과 공포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뉴욕의 할렘에서 그의 어머니는 퇴근길에 괴한에게 폭행을 당했고 고통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지역은 모두에게 위험한 공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삶 그 자체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도 악몽은 그를 괴롭혔다. 반복된 악몽, 그는 그것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살피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과연 그것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그 가능의 증거였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지금 접속하고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보편적인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위대하고 놀라웠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자신의 생일 선물로 기부금을 부탁한다. 부모님의 SNS를 통해 홍보하고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이철 가족은 사고를 당하고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레이철이 시작한 모금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143개 마을에 우물을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보편적이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범죄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그러했다. 불법이 아닌데 운전을 못하는가. 도대체 왜? 이런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여성이 있다. 알 샤리프는 20011년 5월 급하게 볼 일이 있어 운전을 했야 했고 그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놀랍게도 그녀는 9일 동안 구금당했다. 그리고 결국은 고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차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우먼 투 드라이브(#Women2Drive)’란 캠페인에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운전 영상을 올린 것이다. 7년간의 해시태그(#)는 결국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 운전 금지 정책을 폐지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감시를 당했던 일은 또 있다. 바로 히잡이 그것이다. 이란의 열여덟 살 소녀 호자브리라는 체조선수는 히잡을 쓰지 않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TV에 출연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래 소녀를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호자브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녀를 지지하는 ‘댄싱 이즈 낫어 크라잉#DancingIsNotaCrime’ 로 지지한다. 호자브리의 사연을 읽으면서 축구장이 입장하려다 체포된 여성이 떠올랐다. 이란에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스포츠 행사에도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이란 여성들은 스스로 조금씩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히잡 착용 반대 시위로 모바헤드란 여성이 테헤란 도심의 전기 설비 박스에 올라가 자신의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흔들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체포되었고 영상은 확대되었다 이란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셜미디어가 전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해시태그(#동참합니다)로 충분하다. 세계 곳곳의 굶주린 아이들을 살리고 모기장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도 디지털 미디어로 가능하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 되는 기적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표현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음을 주고자 하는 작은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마음은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란 저자의 말과 같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은 연대하고 공감하고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한다. 반대로 인터넷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사생활을 침범하고 권력을 위해 악용된다. 테러집단, 사이버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쉽다.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더 나쁜 쪽이 아닌 더 나은 쪽으로의 변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책 표지가 알려주듯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클릭하고, 복사하고, 알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가능하다. 당신이 하던 대로 #withyou, #동참합니다, #침묵하지않겠습니다, 하면 된다. 그것이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 아름다운 변화를『침묵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더욱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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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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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래전에 사랑의 설렘에 들뜨는 나이를 지나왔고 뻔한 결말로 가는 식상한 과정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신선한 이야기를 원했다. 사랑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니까. 은근한 밀당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로맨스 소설은 너무도 흔하다. 색다른 느낌을 건네면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뜨거운 감동을 바란다면 나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는 내가 원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집을 나누어 사용하는 이야기다. 은밀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대를 공유하는 일이다. 여주인공 티피는 실용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의 편집자다. 함께 지냈던 남자친구 저스틴과 헤어지고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한다. 세상 어디나 나만의 공간을 ​구하는 일은 어려운 법. 그런 티피가 발견한 광고는 정말 기발하고도 놀라웠다. 평일 낮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티피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의 광고였다. 그가 스물일곱 살의 남자라는 조건을 따질 필요도 없다. 티피와의 면접도 그의 여자친구 케이가 했으니 마주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광고를 낸 리언도 마찬가지였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동생 리치의 항소심 준비로 ​돈이 필요했다. 생활 패턴이 다르니 조심할 일도 없고 리언의 사정을 아는 여자친구도 동의했다.

 

티피와 리언의 시선이 교차로 서로에 대한 생각과 일상을 보여준다. 나와는 완벽하게 취향이 다른 이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당황스러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티피와 리언은 서로의 일상에 조금씩 눈길이 간다. 리언이 읽은 책, 티피가 만든 음식이 그러했다. 활동 시간이 다른 티피와 리언은 통화가 아닌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기면서 의견을 교환한다. 통화 버튼만 누르며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이처럼 아날로그적 소통이라니. 고백하자면 나는 작가의 이런 설정이 좋았다. 정해진 공간이 아닌 집 안 곳곳에 필요할 때마다 메모를 남긴다. 밤 근무를 하고 힘들었을 리언에게 티피가 남긴 메모와 음식은 훌륭했다. 필요한 질문이나 조율할 일도 모두 포스트잇 하나면 충분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알림을 시작으로 한 메모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포스트잇을 쓰면서 답장을 기다리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쓰는 짧은 순간에 서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 일.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냉장고 문에 이마를 잠시 얹었다가 종이 쪼가리와 포스트잇 쪽지들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엄청난 양이었다. 농담, 비밀, 이야기, 두 사람의 인생이 천천히 펼쳐지고 있는 광경.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가는 광경. 아니면 뭐랄까. 동시에 똑같이 바뀌는 장면이랄까. 다른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251쪽)

 

처음부터 티피와 리언이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 말 그대로 낯선 타인이었던 티피와 리언이 서로를 걱정하는 사이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우연처럼 리치의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와 이별해서? 아니다. 그건 용기 그 이상의 것이었다. 둘 사이에 오간 포스트잇의 개수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것이다. 리언은 리치에게 벌어진 일들을 들려주고 티피는 전 남자친구 저스틴과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음이 움직이는 건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교도소에서 걸려온 리치의 전화를 받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티피가 편집하는 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말을 건네는 일.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일도 그러했다. 상대의 주변을 살피고 새롭게 확장된 관계를 맞이하는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랑의 힘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랑한다는 건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감정을 꺼내는 것이고, 상대를 위해 움직이는 일이다. 오해했던 마음을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사소한 행동부터 티피의 친구들이 리치를 도우려는 행동, 저스틴의 폭력과 집착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일,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를 위해 그의 친구를 찾아 나서는 리언의 행동, 이 모두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티피와 리언의 사랑만이 특별한 게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행동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때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가 전해주는 사랑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잠들었던 사랑의 감각을 자극해 깨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자신의 사랑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며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겐 좋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사랑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를 움직이는 원동력, 그 아름다운 힘으로 만드는 눈부신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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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2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겨울 건강히 지내고 계신지요. 이 책을 시각장애인 녹음도서로 낭독하고 싶어져요.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요. 점자도서관에 추천해 보겠습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 상대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이란 문장이 새삼 들어와요. 맞다맞아 이러면서요.

자목련 2019-12-22 13: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프레이야 님. 그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시느라 바쁘셨군요. 출간 축하드려요. 이 책, 좋아요. 재미와 감동, 그리고 즐거움까지 안겨줄 거라 생각해요. 남은 12월 일정이 많으시겠지만 평온하고 포근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2019-12-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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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성작가의 단편들. 수상작과 후보작 모두 나쁘지 않았다. 소설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그러니 그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나는 수상작인 윤성희의<어느 밤>보다는 황정은의 <파묘>를 최고로 꼽는다. 가족을 설명하는 새로운 접근,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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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없없음 2019-12-1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묘가 최고라는 데에 100% 동의하는 바입니다!

자목련 2019-12-13 13:44   좋아요 0 | URL
황정은은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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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는 모호해요. 각자 나름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믿는 걸 나름대로 정의해가는 수밖에 없어요” (167쪽)

 

기이한 경험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선뜻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상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고 상상이나 착각이라고 타박을 놓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야마시로 아사코의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써 슬픔을 감춘듯한 표지처럼 뭔가 비밀스러운 공포를 전해준다고 할까. 놀랍게도 그 공포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보다는 가만히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 서서히 옅어진다.

8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 부부에게 동시에 나타난 혼령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부모를 잃고 이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와 소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머리 없는 닭에 대한 애처로운 이야기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여자 친구가 술을 마시면 잠깐 동안 미래를 볼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도박에 이용해 결국엔 파국에 이르는 「곤드레만드레 SF」,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중고 이불 덕분에 재기에 성공한 소설가의 사연 「이불 속 우주」,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리는 섬뜩한 이야기 「아이의 얼굴」, 2011년 대지진으로 아들과 아내를 잃은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무전기」, 이혼한 남편에게 딸을 보여주러 나갔다가 남편이 딸을 데리고 도로로 뛰어들어 동반자실을 한 모습을 목격한 후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의 일상을 담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화자가 천사를 만나면서 경험하는 생과 사의 경계를 다룬 「잘 자요, 아이들아」까지 색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마다 놀랍고 잔혹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슬픔과 상처에 다가가게 만든다. 꾸며낸 소설 속 상상의 한 장면이라 여기면서도 어느 세상에서는 현실의 한 장면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진한 여운을 남긴 몇 편을 소개하면 이렇다. 아동 폭력을 소재로 한「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에 등장하는 ‘후코”에게 머리 없는 닭 ‘교타로’는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을 미워하는 이모를 피해 몰래 교타로를 키우는 후코와 전학을 온 ‘나’와 친해지면서 닭을 함께 돌본다. 이모에게 후코가 무자비하게 살해를 당하고 ‘나’가 밤마다 교타로와 밤을 헤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고 애처롭다.

나와 머리 없는 닭은 마치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아래를 가고 싶은 대로 나아간다. 아득히 넓고 쓸쓸한 세상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나는 머리 없는 닭과 함께 언제까지나 밤의 어둠 속을 헤맨다. (72쪽)

 

아들과 아내를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술에 빠져 사는 ‘나’ 아들의 부서진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하는 「무전기」는 더욱 애틋하다. 술에 취해서 들리는 환청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무전기를 버리지 못하고 위로를 받는 그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키와 사귀면서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고 둘은 결혼을 한다. 아키는 결혼 후에도 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며 공감한다. 어쩌면 ‘나’에게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잘 자요, 아이들아」는 침몰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하는 과정이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기에 그랬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나’는 영화관에서 자신의 지난 삶이 담긴 필름을 본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습이다. 천사가 자신의 필름을 잘못 가져온 것이다. 진짜 삶의 필름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주님이 있는 곳이 아닌 천사를 선택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 이들을 맞이하고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다. 두렵고 무섭기만 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언젠가 우리도 소설 속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때 보게 될 나의 필름은 어떤 장면을 담고 있을까.

각양각색의 인생이지만 하나같이 축복과 비애로 가득하다. 모든 필름이 별처럼 반짝여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영상이 끝날 때마다 나는 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죽은 자의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들아, 잘 자요.

사람들아, 잘 자요.

잘 자요, 편안하게. (256쪽)

고유한 슬픔과 고통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가만한 위로를 안겨준다. 있는 그대로 슬픔을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위안일 수도 있다. 애써 위로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말이다. 이 단편집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그런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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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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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집. 먼저 읽고 싶어하는 지인에게 선물하는 시집. 황인찬의 시집 <희지의 세계>를 만났을 느낌을 떠올린다. 처음엔 남다른 감성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그의 저녁, 비, 그늘에 빠져들고 있었다. 제목 때문에 조금 주저하는 시집인데,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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