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때 최소 칼로리로 배를 채워줄 음식을 찾는다. 그 음식이 운동과 업무에 도움이 되기를,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기를, 먹기 위해 자리에 앉을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 또한 몸에 ‘나쁜 것’이 들어 있지 않길 바란다. (360쪽)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지 않는다. 아침 한 끼는 커피로 때우고 빵을 먹을 먹거나 더 간편한 음식을 찾는다. 그러니 요리를 하는 경우도 매우 적다. 언제부터였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이 편리하지만 자주 이용하지 않으니까. 과식을 부추기는 광고나 동영상의 유혹에 빠지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제철 요리를 즐기고 간식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과연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건강검진의 결과를 보면 위태한 경계 수준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고 그것을 위해 운동이 가장 필수적이라 여긴다.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칼로리를 섭취하면서도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영양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만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음식이 아니라 단백질 바를 먹는 건 동의하고 싶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식사에 대해 말한다. 총 9장으로 구성하여 식사를 말한다. 다방면으로 취재를 하고 세계 각국의 식사 형태와 음식에 대한 생각을 들려준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무엇으로 먹는지, 누구와 먹는지. 먹거리가 풍성한데 여전히 음식이 없어 힘들어하는 이들, 전통 요리가 사라지는 안타까움,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 비만으로 인한 제2형 당뇨병, 정크푸드를 규제하지 않는 정부. 바쁜 현대인에게 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책은 식사에 관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한 편의 보고서라고 할까.

단지 한 끼를 먹는 일에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싶지만 책에서 식사에 대한 역사와 음식과 건강과의 관계, 산업의 발달이 식사에 미치는 영향, 다이어트까지 다방면의 연구자를 만나 그들의 연구를 공유한다. 지금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쉽게 구하고 먹을 수 있다. 편의점에서 간편식을 구매할 수 있고 대형마트에서는 세계 곳곳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요리를 하는 일은 점점 멀어진다. 내가 하는 대신 방송을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고 그들의 레시피로 언제든 요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엔 잘 손질된 재료와 요리방법까지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니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달음식은 도착하는 일이 언제부터 일상이 되었을까. 시스템과 식품 산업의 발전, 빅데이터로 내가 먹고 싶은 게 무언인지 알려주는 세상이라니.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한국의 김치, 길거리 음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소를 먹지 않는 현대인과 다르게 여전히 김치 섭취를 통해 채소를 먹는 한국인의 모습이나 한국의 먹방 열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놀라웠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가장 중요한 시간이지만 현대인은 그 한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기 못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간편한 음식을 선택하거나 먹는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한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점심시간을 줄이는 간호사나 야간 근무를 하는 소방관이 초콜릿이나 설탕 가득한 비스킷을 먹는 일상. 책 속의 사례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택배 업무를 하는 이들과 자영업자가 식사 시간을 챙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낵이 어떻게 일상을 지배하는지도 놀라웠다. 엄마의 입장에서 집에서 요리한 균형 잡힌 음식보다 영양이 훨씬 적다는 걸 알면서도 스낵을 소비한다. 아이의 감정 상태를 관리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뜨끔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원의 대기실에 비치된 사탕을 떠올릴 수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아이가 원하는 다른 것들(신발, 의류, 놀이공원 등)을 해 줄 수 없지만 스낵은 사줄 수 있다. 과거보다 더 풍성한 요리가 가득한데 정작 우리가 먹고 선택하는 음식은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 비건이 되고 저탄수화물 식단을 고집하고 유기농 식품만 먹고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 섭식 행위인 클린 이팅이 유행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연예인의 식단 관리나 유명 셰프의 추천 요리는 음식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줄여준다. 이런 현대인에게 저자는 현명하고 건강한 식사를 위한 13가지 전략을 소개하는데 그 가운데 새로운 음식을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 물이 아닌 것을 ‘물’처럼 마시지 말자, 간식보다는 식사에 집중하자, 음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자, 유행에 뒤처진 입맛을 갖자,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자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란 의도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릇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과 배달 음식도 그릇에 담아 먹으면 느낌이 다르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유행에 뒤처진 입맛을 갖자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우선 유행하는 음식은 가격도 비싸고 나만의 입맛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니까.

언제나 요리는 해야 하는 다른 일들과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 사이의 거래였다. 오늘날만큼 이 거래가 복잡했던 적은 없었지만, 현재 이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하는 것과 달리, 시간과 주의를 기울일 일이 넘쳐나는 가운데 요리를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훨씬 더 긍정적인 행동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살을 위해서든, 요리는 매일 하는 다짐과 사랑의 표현이다. (417~418쪽)

​이 책은 평범한 우리의 식사에 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와 음식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 재미있는 부분도 많지만 다양한 통계과 수치의 등장으로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니 끌리는 주제를 골라 읽어도 괜찮다.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함께 읽는다면 음식에 대한 생각이 더욱 달라질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한 번 더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음을 얻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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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3-1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하는 다짐과 사랑의 표현, 요리.
그렇군요 소홀히 했던 거 같아요 전. 반성요^^ 정성껏 준비한 집밥에 고단한 몸이 스르르 녹는 기분. 그건 기분이 아니라 진짜 몸에서 반응하는 건데 말이죠. 자신에게도 그렇게 식사를 차려줘야겠어요. 비오는 날입니다 자목련 님.

자목련 2020-03-12 21:33   좋아요 0 | URL
책에서 배달음식이나 간편요리도 일회용 용기가 아닌 그릇에 옮겨 먹으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도 반성을 불러와요. 먹은 일에 대해서 잊고 있던 감정들을 생각하게 하고요. 코로나 19를 빨리 이겨내고 봄날을 만끽하는 날들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박준의 첫 번째 시집을 애정 한다. 주변에 선물도 하고 시집을 추천해달라는 이들에게는 무조건 박준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산문집도 좋았다. 가만가만한 일상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가, 그 안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지긋이 바라보는 슬픔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러니 나는 그의 두 번째 시집도 기다렸고 사랑해야 맞다. 사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저 좀 아쉽다는 말이다. 뭐가 아쉬운 걸까. 잘 모르겠다. 여하튼 좀 그렇다.

봄이라 할 수 있는 날들이다. 수줍은 매화의 손짓과 어디선가 고운 자목련의 자태도 보였다. 그러니 봄이었다. 그래도 이런 시가 어울리는 요즘이다. 자의반 타의 반 집안에 갇힌 시간이 많다. 이 날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불안과 염려로 채워지는 시간에 만나는 시,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인지 주름인

지 모를 너울이 지나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

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은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

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

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그

다음이었고 끓인 물을 식히며 두어 번 저어나가다 여름

의 세찬 빗소리를 떠올려보는 것은 이제 나중의 일이 되

었습니다 (「겨울비」, 전문)

 

그래도 나는 이런 시가 더 좋다. 봄을 앓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전히 삶이 고달프고 어두운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 같다고 할까. 죽는 일이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죽고 싶은 마음을 추제하지 못했던 순간, 누군가 가슴에 숨겨져있지 않을까. 상실과 괴로움, 그리고 절망이 앞을 가린다 해도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는 절실함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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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제목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자목련 2020-03-10 12:52   좋아요 0 | URL
네, 아름다운 제목에 반하고 시에 반하고...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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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너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반응이다. 그것이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때로는 적극적인 관심이 피곤하다. 나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데 그들의 감정까지 걱정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어서다. 다른 하나는 그저 기다리는 마음이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보통의 일상에 대해 공유하려는 이들이다.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춥다거나 꽃이 피었다거나 하는 그런 보통의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바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오히려 전부다 털어놓는다. 이상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섣불리 질문하기보다는 상대를 살피는 배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으면서 소설 속 화자의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기다리는 일, 그냥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감정의 흐름도 그렇게 흘러가길 원한다고 할까. 그래서 어떤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평균 시간이 없는데도 그러기를 바라는 거다. 괜찮냐고 묻는 대신 괜찮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습관처럼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거나 어떤 일로 인해 무척 힘들어하는 상태에 놓였다. 작가는 친절하게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으로 실직을 했거나 이직을 했다는 걸 알려준다.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화자인 ‘나’ 조지영은 언니를 잃었다. 언니가 남긴 조카 송이와 엄마와 셋이서 함께 산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조카 송이를 돌보며 서점에서 근무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서점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조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만들어주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들이 약속을 잡으며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곳곳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새 학기를 잘 적응하는 조카를 보면 기쁘면서도 슬프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언니의 부재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날들이 다시 오시 않다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났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 38쪽)

이주란의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조카와 엄마가 계속 등장하고 나의 주변 인물 역시 같은 이니셜로 등장한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함께 살지 않지만 서로 집을 오가며 조카를 돌보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는 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서는 동생인 조지영의 자살로 그녀의 언니인 조수영이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H에게」에서는 수영과 지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자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한다. 가난한 일상, 아버지의 부재, 낡고 허름한 월세방, 불안정한 직장 생활.

최선을 다하지만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고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그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조언을 한다. 이별과 상처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선으로만 상대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화자는 조금 달라지려고 한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받아주는 일도 그만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다른 삶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일상생활」, 134쪽)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은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듯이 아주 천천히 회복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할까. 그런 점이 나는 더 좋았다. 뭔가 대단한 발전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일상생활」속 꿈 모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고 있다. 어떤 후회와 지난날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낸다. 감당할 수 없는 일상에 놓인 이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이야기들, 그 속에 슬그머니 속상한 내 마음도 꺼내고 싶다. 한없이 울고 싶은 날, 그냥 곁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반려동물처럼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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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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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여기에 있고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돌아본다. 그 시작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고 다스릴 수 없는 화와 슬픔이 가득했다. 공개가 아닌 비공개로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그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솔직하게 미움을 표출했고 나를 기록했다. 그랬다. 나로 시작해 나와 이어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썼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글쓴이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슬픔이나 고유한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열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이 열렸고 나는 다른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모호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한다. 홍승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 따르면 그렇다.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제적으로 쓰지 못하는 글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쓰고 싶다.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일상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이 역시 나를 위한 글쓰기라 여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글의 놀라운 영향력을 느꼈다. 글을 통해 나의 생각에 다른 생각을 더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힘을 배운다. 글을 읽는 즐거움과 글을 쓰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이다.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61쪽)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고 각자의 삶이 전부 글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나의 삶을 어떻게 생생하게 포착해서 서술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쓴다는 것 자체를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온 이들이의 마음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사건, 지우고 싶은 순간의 기억, 이런 생각들이 튕겨 나와서 쓰지 못하는 시간들. 그것이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상처, 트라우마,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에 대해서 끄집어 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 읽어주고 공감할 이들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런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잘 쓰는 글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쁜 글이 아니라 나를 기록하는 글 말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글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기록하며 적극적으로 내가 되어간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지지하면서. (84쪽)

저자가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생활했고 비혼 주의자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글이 그러하듯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나의 일부이며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시간이 부끄럽고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인식을 시작으로 당당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글이라는 걸 알기에. 그래서 나는 더욱 쓰고 싶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나에 대해서. 나와 닮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나의 내부에서 자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한다. 은밀한 욕망일 수도 있고 때로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일 수도 있다.

 

저자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하는 이들의 단단한 연대가 부럽다. 한 번도 그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기에. 동생과 엄마와 저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엄마와 동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쓰는 존재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기쁨이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의 삶이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라 느껴졌다. 강연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더욱 자신의 글쓰기에 필요한 확신과 그것을 위한 다짐을 하는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141쪽)

나는 쓴다. 아직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에 대해서는 쓸 수 없지만 쓴다. 그러나 내가 써야만 하는 문장이 있다는 걸 믿는다.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글이라는 거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거울을 꺼내어 아주 오래 바라볼 날을 꿈꾼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의 글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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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2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라는 문구가 들어오네요. 쓰기에 대한 생각과 회의와 기쁨 그리고 원점과 출발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른 봄밤이에요. 자목련 님 건강히 ^^

자목련 2020-03-02 15:42   좋아요 0 | URL
네,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요. 3월, 생기있게 시작해요^^

- 2020-02-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말하지 못한 글을 기다리고 있을 게요. 책 참 좋지요? 저도 엄마와 동생과 같이 글쓰는 부분에서 울컥 했어요. 저자는 용기 있는 사람 같아요. 그 용기에는 못미치더라도 조금씩 써나가요~~^^

자목련 2020-03-02 15:41   좋아요 1 | URL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참 좋으네요. 조금씩 써나가는 일, 그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공쟝쟝 님,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이 오후 환한 봄빛을 즐겨요!!
 
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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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혼자서 척척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삶 말이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다고 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적지 않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빚진 삶이라고 할까.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살면서 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붙잡혀 살고 있다면 어떨까?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수상작인 편혜영의 「호텔 창문」속 화자는 그런 시달림에 힘들다. 그건 죄의식이었다. 여름 날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 대신 죽은 사촌 형에 대한 마음이었다. 자신을 구하고 죽은 사촌 형은 의사자 지정을 받았다. 희생정신이 있거나 모범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죽음은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살아남은 게 죄일까. 사촌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 사고였고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수습이나 대책이 아니라 화와 분노를 쏟아낼 단 한 사람. 소설 속 화자에게 그 사건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 그 사건을 아는 이들이 화자를 대하는 태도는 과연 정당한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소설은 묻고 있다.

 

자라면서 운오는 누구 덕에 살아났는지 자주 상기했다. 큰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들뜨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오래전에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만 누리는 이런 무덤덤함을 큰어머니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28~29쪽)

수상작인 「호텔 창문」외에 6편은 일상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특히 기억에 남는 단편은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과 최은미의 「보내는 이」와 동성 연인과 자신과의 사이를 돌아보는 김혜진의 「자정 무렵」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폭력과 폭행에서 안전할 수 없는 여성의 미래를 그린 조남주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김사과가 만든 인물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었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도 흥미로웠다. 이주란의 단편집에서 만났지만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두 번 읽어도 좋았다. 하루의 일과를 담담하게 이어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위대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김혜진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롭다.

아이들로 인해 친해진 엄마들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최은미의 「보내는 이」는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거의 매일같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나누며 모든 걸 공유한다고 여겼는데 상대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막역한 사이라 믿었는데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결국엔 아무런 인사 없이 이사를 가버린다면 서운한 마음보다 그동안에 보냈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스스로를 자책할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의 속성일까.

 

인생엔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생긴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소설을 통해 그런 상황을 점검하고 대비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노력을 하고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연습하고 짐작으로 결과를 예측하지 말라는 조언 같다고나 할까. 여전히 삶은 어렵고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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