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유주얼 an usual Magazine Vol.8 : Out 퇴근 퇴사 퇴짜
은유 외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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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읽고 뭔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자발적인 기록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즐거움이 아닌 의무로 전락되었다. 그런 경우 글에는 자유로움이 사라진다. 감정도 사라진다. 그걸 느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언유주얼」8호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글을 쓰고 자유롭게 사는 삶. 그러니까 주체적인 삶 말이다. 어쩌면 이번 호의 키워드가 퇴근, 퇴사, 퇴짜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퇴근의 즐거움, 퇴사의 후련함, 퇴짜의 상처라고 말할까. 직장인이 출근과 동시에 가장 바라는 시간은 퇴근일 것이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상사는 얼마나 얄미울까. 일정한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퇴근 시간은 정해진 것일까. 잡지의 특성상 글과 그림, 사진, 만화, 다양한 필진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지만 가장 먼저 챙겨서 본 건 역시 활자였다.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읽는 일은 즐거웠다. 키워드와 상관없이 편하게 다가오는 글. 어쩌면 퇴근, 퇴사, 퇴짜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은유 작가가 말하듯 쓰지 않아도 어디를 가든 노트북을 챙기고 항상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는 원고 걱정을 하는 게 프리랜서의 숙명일 것이다. 업무에 대한 전화나 메일을 무조건 수용할 수 없어 고민하는 이라면 이랑 작가처럼 메일 관리자를 두는 일도 괜찮을 듯하다. 그 메일 관리자가 또 다른 자신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겠지만 말이다.


퇴짜의 경험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사실상 거절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면서도 유연하고도 완곡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고마움 마음이지만 현재의 사이로 만족하며 지내자는 말은 상대에게 가장 아픈 답이 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표정 관리를 해야 하고 튀어나오는 진심을 숨겨야 한다. 타인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배우의 시선으로 퇴짜를 말하는 최희서의 인터뷰에서는 진솔함이 전해졌다. 원하는 배역을 선택할 수 있기까지 수많은 퇴짜가 받아들이는 일이 배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배우가 오디션을 봐서 떨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퇴짜를 오로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퇴짜 한 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유가 있으니까요. 불안감을 이길 방법은 없어요.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100쪽)


매일 글을 쓰는 이슬아의 글과 일기를 쓰고 춤을 출 때만 숨을 쉴 수 있다는 시인 문보영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난 삶을 돌아본다. 때로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과 무작정 읽기만 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 현재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누군가의 퇴근길을 포착한 사진에서 고단함이 전해진다. 그가 아무런 구속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얼른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수없이 접속하는 인터넷 세상과 이별하고 가만히 취할 수 있는 그림과 사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말 없는 위로가 된다. 그리고 한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태도를 취하라는 오찬호의 글. 어떤 상처도 주지 않고 받지 않는 그런 거절. 군더더기를 뺀 담백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일. 그게 가장 최선일 것 같다.


괜한 말들이 섞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거절, 딱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137쪽)


살아가는 동안 얼마의 퇴근과 몇 번의 퇴사와 퇴짜가 남았을까.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면 하루를 견디는 것도 어렵다. 때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계산도 없이 그냥 사는 게 가장 현명하다. 퇴근과 동시에 출근을 걱정하지 말고 퇴근한 당신은 맘껏 즐기고, 퇴사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는 용기를 쌓아가길. 누군가 퇴짜의 경험으로 주눅 들고 도전하지 못한다면 나를 알아보지 못한 상대의 안목이 너무 낮다는 것만 기억하길.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 읽을거리의 잡지로 시선을 돌려봐도 좋겠다. 내 맘대로 골라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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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다. 읽어야 할 책이 있고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읽고 있는 책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자와 알림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이 작가의 책이었구나 생각했다. 알림 서비스를 등록했기에 그런 문자와 메일이 도착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아니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작가에 대한 글을 천천히 읽었다. 개정판이라는 건, 이미 충분한 검증을 받은 소설이라는 것. 거기다 추천 작가의 글까지. 아, 나는 왜 이리 추천 작가의 글에 약해지는가. 그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 아무튼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날들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런 잡지를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양한 필의 글,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여름의 시작되는 날들에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제습기와 선풍기를 꺼내고, 올해는 얼마나 에어컨을 틀어댈까 미리 걱정도 하고. 냉면과 비빔면을 쟁여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걱정까지. 그나저나 나는 언제나 조금 더 성실한 독자이고 싶은데, 늦은 밤까지 책을 읽는 날들이 줄어든다.


몸이 이끄는 대로 잠들고 몸이 이끄는 대로 일어나고 몸이 이끄는 대로 일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는데 한 번씩 몸을 지배하고 싶기도 하다. 한계에 도전하는 거창한 그런 게 아니라 몸과 대화를 한다고 할까. 여하튼 내 마음을 몸이 좀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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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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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고 증명한다. 고유한 이름처럼 말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습득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모국을 떠나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오직 모국어 하나뿐인데 타국에서 살아야 한다면 삶은 온통 공포와 두려움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란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다. 당연 정체성을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가 가장 클 테니 말이다.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주는 놀라운 힘, 언어의 상징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언어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할 일이 없었으므로. 어떠한 이유로도(여행, 유학) 이 땅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짐작할 수는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운 것인지. 나를 둘러싼 모든 소리가 공격적으로 들릴 테니까. 긴장한 상태의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불러온다. 그런 환경에서 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가 흡수한 채 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증명하는 언어는 바뀌고 그 순간 정체성의 혼란과 마주하고 만다.

이창래 작가의 첫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은 언어가 상징하는 정체성의 이야기다. 소설은 자의로 한국을 떠나 미국을 선택한 이민 1세대 아버지를 둔 아들 헨리 파크(박병호)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최고의 공과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어 고국을 떠나왔다.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헨리는 집 안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다. 수많은 이방인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아버지는 아들은 온전한 미국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버지는 백인인 릴리아와 아들의 결혼을 기뻐한다. 아버지의 삶에서 자아나 정체성은 중요한 게 아니라 미국인처럼 보이는 게 다였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헨리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전 어머니가 죽었고 어머니 대신 살림을 살아준 한국인 아주머니, 어려서 죽은 아들 미트, 릴리아와 헤어짐을 반복하는 모습, 그가 하고 있는 일까지 전부를 초반에 공개한다. 시민권을 부여받은 미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살았던 헨리가 다국적 기업의 정보 담담(스파이)란 직업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일 말이다.

고집스럽게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절대 미국인의 삶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헨리는 아버지가 닮은 듯 다른 한 남자 존 강을 통해 조금씩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존 강은 시의원으로 시장 출마를 꿈꾸는 사람이다. 헨리는 그의 사무실에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야만 했다. 존 강을 돕는 다양한 사람들과 시내를 돌며 그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존 강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닮고 싶고 마지막으로 되고 싶은 인물이었다.

헨리는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면서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회사로 보낸다. 보통의 스파이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존 강과 접촉하면서 그와 대화를 들으면서 그의 가족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꾸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아내 릴리아에 대해, 죽은 아들 미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회사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존 강을 진짜로 돕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존 강과 대화를 나누면서 짧게 서툰 한국어를 사용할 때 전해지는 친밀감, 자신을 향해 모든 걸 오픈하는 존 강에게 그와 함께 간다면 괜찮은 삶을 살 것 같다.

그런 헨리의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존 강의 사무실에 폭탄이 터지고 젊은 자원봉사자 에두아르도가 목숨을 잃는다. 헨리가 당할 수도 있는 사고였다. 상심에 빠진 존 강을 대신해 헨리가 에두아르도의 가족을 찾는다. 그들은 헨리가 존 강이라 여긴다. 사람들의 눈에 비슷한 외모의 미국계 한국인은 구별할 수 없다. 존 강을 대하는 그들 가족의 태도는 절대적으로 보였다. 헨리는 이민사회에서 존 강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그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존 강은 쉽게 무너진다. 단단하게 쌓아올린 그의 정체성은 한순간 허물어진다. 위태롭고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던 존 강을 보면서 헨리는 자신을 찾아간다. 지금처럼 경계인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언어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유년 시절을 지내고 좋은 대학을 나와 예쁜 아내를 만났으니 보통의 삶이 주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도 괜찮았을 텐데. 헨리를 만들고 이룬 정체성 가운데 무엇이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을까.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경계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그 사회에 올인 했더라면 훨씬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존 강을 만나면서 그와 아버지를 대입하면서 교차하는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미국이라는 사회에 들어와 중도 탈락을 하지 않고 안착했지만 지향하는 목표가 다른 두 사람. 헨리는 존 강의 방식이 옳았다고 여겼지만 결국엔 그의 아버지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돌아온다. 그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이민자였으므로.

헨리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지독한 이방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국인으로 사는 것일까. 아내 릴리아처럼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정체성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더 이상 스파이가 아니다. 경계인의 삶에서 벗어났다. 수많은 가짜 이름이 아닌 오직 하나의 이름, 헨리 박이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 릴리아가 부르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원초적인 사람이 된다. 아이를 가르치는 아내를 도우며 그 아이들을 통해 잊고 있었던 정체성과 마주한다. 그 아이들의 부모를 통해 아버지를 본다.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미국인으로 살든 미국계 한국인을 살든 상관없다. 그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이의 곁에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든, 그곳이 어디든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듣는 이와 함께 말이다.

이제 그녀는 최대한 성의를 다해 아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다. 고저와 억양까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그녀가 아름다운 모국어 여남은 가지를 말하는 소리,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그 어려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5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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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개정판이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판권 시효가 다 되었는지 품절이 되어
버렸네요.

이창래 선생의 근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 하는 소설이 아닌
가 싶습니다.

구판으로 읽어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이번 여름에는 이창래 선생 다시 읽기
에 도전할까 생각 중입니다.

자목련 2020-06-03 09:40   좋아요 0 | URL
책도 타이밍을 놓치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꾸준하게 다시 읽기를 하시는 레사매냐 님의 좋은 리뷰를 잘 읽고 있습니다.
다시 읽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세요.이창래 작가와의 만남, 응원합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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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명사가 추천한 책만 수록한 책, 사라진 책만 소개하는 책,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진 책, 오롯이 리뷰로 채워진 책,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심지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내용까지. 책을 말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책에 대한 책은 여전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드라마나 광고에 등장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그러니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이란 매혹적인 제목의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표지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칸>이다. 화가와 제목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림 속 저 책은 무엇일까.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그 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건 아니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림 속 여자가 되어,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을지 말이다. 독자는 그렇게 저자의 상상에 자신의 상상을 더하는 책 읽기를 시작한다.

 

책에는 모두 38개의 그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이야기가 나온다. 책이 등장하는 그림이니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이 많다. 물론 화가와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림을 읽는 책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책을 천천히 넘기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먼저 읽어도 좋다.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인 후 저자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책장을 넘긴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존재하니 그냥 스치는 읽는다 해도 누가 뭐라 할까. 이런 그림을 오래 바라보며 천천히 느리게 읽어보자.

 

 

독서하는 여인 - 윤덕희

 

여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내용의 책이나 정신의 나태를 깨부수는 책, 새롭고 놀라운 지식으로 독자를 뒤흔드는 책은 아닌 듯하다. 온전한 휴식으로서의 독서,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멀어져 긴장을 풀게 해주는 독서다. 정신의 날을 벼리는 것만이 독서의 효용이나 목적이 아니다. 마음의 결을 한가로이 고르는 것 역시, 아니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일 수 있다. (61쪽)

이런 그림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디서 위로를 받았을까. 쉴 새 없이 일만 하던 엄마에게 독서는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와 친하게 지내신 분들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엄마를 겹쳐보기도 한다.

 

석고상, 장미꽃, 소설 두 권이 있는 정물 - 빈센트 반 고흐

 

 

고흐가 극도로 침체될 때마다 삶을 위로해주고 힘을 준 것은 소설이었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을 떠돌던 시기 고흐에게, 극히 제한된 범위의 친교에 머무르며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때가 많았던 고흐에게 책은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 사회 현실을 그에게 알려준 것도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하여 동시대와 호흡했던 그가 말한다. “우리는 읽을 줄 알잖아. 그러니 읽어야지.” (162~163쪽)

고흐가 소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나 역시 책과 소설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이 그림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볼 때도 고흐의 말이 떠오를 것 같다. 읽을 줄 아니 더욱 열심히 읽는 일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울림, 한 권의 책으로 받은 치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꿈 -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책은 만인(滿人)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이 실제로 만인의 것, 모든 사람의 것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만인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인이 책을 살 수 있어야 했으며, 지배 계층의 입맛에 맞는 책만 허락되는 현실을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그렇게 책이 만인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236~237쪽)

한 권의 책이 많은 이들의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의 힘이라고 할까. 그림 속 노란색 표지의 세 권이 책이 정말 궁금하다. 저자의 상상대로 에밀 졸라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나만의 목록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겠다.

​책 속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 아니 나에게 책은 무슨 의미인가 묻는다. 어느 시절에는 ‘내 인생의 책’이나 ‘필사하기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현재 내게 책은 일상이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그 크기가 커지고 어떤 날에는 작아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모습, 나의 표정은 어떨까.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그림 속 어떤 여인과 가장 비슷할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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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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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을 매혹한다. 자꾸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갖고 싶게 한다. 누군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으로 말이다.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아름다움,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황홀함,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은 때로 범죄로 이어진다. 커크 월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은 그런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깃털 도둑에 대한 실화다. 송어 낚시에 미끼로 사용하는 플라이 타잉을 위해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새의 깃털을 박물관에서 훔친 이야기라니.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박물관의 전시물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에드윈 리스트로 미래가 유망한 19세 플루티스트였다.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2009년 영국 트링 자연사 박물관의 유리창을 깨고 299점의 새 가죽을 훔쳤다. 박물관에서는 도난 사실도 몰랐다. 모든 것의 시작은 진짜 깃털로 플라이 타잉을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에드윈과 동생은 어린 시절 우연하게 접한 플라이 타잉에 재능을 보였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고 그 세계로 진입했다. 그곳에서 19세기 유행했던 깃털 모자나 희귀한 새의 깃털이 판매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원하는 것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플루트를 배우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박물관에서 새를 훔칠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그의 과감한 행동에 경악했고 화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깃털을 고가에 판매하여 플루트를 사고 생활비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죄의식도 없었다. 아마도 세상에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박물관에서 깃털을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나고 박물관은 그 사실을 알았고 수사는 진행되었다. 500여 일 후 범인인 에드윈은 모든 사실을 자백했지만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빌미로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는다.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에드윈이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 사건과 에드윈에 관련된 건 모두 금기어가 되었다. 에드윈은 일상으로 돌아와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플루트 연주자로 살아간다.

 

송어 낚시를 하다 우연하게 이 소식을 들은 저자가 관심을 갖고 새의 행방에 대해 추적하지 않았다면 그저 기이한 사건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박물관으로 돌아온 건 이름표가 붙은 온전한 상태의 102마리였다. 에드윈의 방에서 이름표가 제거된 72마리, 19마리는 거래를 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것을 제외하면 299마리 중 106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선다. 박물관에서 새의 귀중한 표본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일의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물론 에드윈은 인터뷰를 거절했고 커뮤니티 운영자 및 회원들도 말을 아꼈다. 삭제된 게시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요한 저자의 노력 덕에 새를 포장하고 배송하고 입금을 처리하는 조력자 롱을 찾아낸다. 그 뒤로 에드윈과 만날 수 있었지만 새의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뿐이다. 롱에 대해 언급해도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저자는 노르웨이까지 가서 롱을 만나고 남겨진 새(온전하다고 할 수 없는)는 박물관으로 돌아온다.

 

책은 깃털 도둑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자연사박물관이 지어진 계기를 들려주고 그 안에 전시된 귀중한 깃털의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그리고 기이한 도난 사건에 독자를 집중시킨다. 과연 범인이 잡힐 것인가, 그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책을 읽을 때까지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이 아님에도 추리소설처럼 몰입도가 대단하다.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건 단순하게 깃털을 훔쳤다는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온다. 자연의 귀한 것이 새의 깃털뿐일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한 일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들에게 공존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무분별한 인간의 욕심으로 환경은 파괴되고 자연의 균형을 깨진다. 그 자연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절도 소식을 전해 들을수록, 박물관을 둘러싼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나 리처드 프림 박사, 스펜서, 아일랜드인 형사, 독일 체펠린 비행선의 폭격으로부터 새들을 지키고자 했던 큐레이터들, 새 가죽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키워주고자 노력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수 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한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 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나,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44~345쪽)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발서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인간의 추악한 집착과 욕망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욱 고맙고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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