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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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혼자 남는다는 두려움, 이별 그 후에 대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 사이도 얼굴을 보지 않고 그저 가끔씩 안부만 묻는 사이로 지내기도 하는데. 도대체 사랑이라는 건 뭘까. 어쩌면 그런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으로 채워진 소설집. 너의 행동과 말투, 너의 일상이 나는 때로 안쓰럽고 때로 답답하고 때로 화가 난다. 그러나 정작 나를 너를 놓지 못한다. 나는 너를 끊어내지 못하고 네가 안타깝고 네가 아프다.


김혜진의 단편집 『너라는 생활』의 8개의 단편은 모두 ‘너’와 ‘나’의 이야기다. 8편의 단편에 각기 다른 인물,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의 과거나 현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타인 속에서 특정한 한 사람, ‘너’를 향한 마음이라고 할까. ‘너’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 일 수도 있고, 친구 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이웃이나 주변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의 경우는 모두 여성 커플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에선 이상한 사람들, 불편한 존재로 보인다.


표제작 「너라는 생활」에서 ‘너’는 취업을 위해 복지관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 자리에 동행한 ‘나’는 네가 당하는 일, 그러니까 담당자가 너를 무시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화가 나지만 너는 어떡해서든 그 자리에 일하고 싶고 끝까지 담당자에서 그동안의 경력을 말한다. 구차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싫어서 너를 끌고 나가고 싶다. 너는 언제나 너무 착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고, 공과 사의 경계가 없다. 처음에는 그런 너를 돕고 너와 같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점점 화가 난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너를 위로하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복잡하다.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지 못하는 나에게 너는 전부가 된 것이다.


그만하자, 헤어지자, 내내 벼르듯 쥐고 있었던 그런 말은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내일은, 모래는, 더 좋아질 거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 년이 지났구나, 이대로 십 년이 가고 또 십 년이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에 오싹해지면서도 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라는 생활」, 86쪽)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정 무렵」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배려하지 않고 너의 생각, 너의 모임, 너의 관계망 속에 아무렇지 않게 나를 흡수시키려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는 오직 너와의 시간이 중요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걸 몰라주는 너를 이해해야만 할까. 너는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일이 더 중요한 것일까.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게 너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건 이 낯선 동네가 아니고 바로 너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실은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가 바라온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자정 무렵」, 115쪽)


김혜진은 소설 속 너와 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것도 그러하다. 너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 정도. 그러니까 어떻게 만남이 시작되고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는지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의 호의, 처음의 설렘, 처음의 기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이다. 네가 만나는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고, 비주류의 삶은 산다. 공감과 연대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 연대를 지지하고 오래 이끌 수 있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사회적 지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여자 두 명이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이상한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보통이 아닌 특별한 삶이라 여긴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에서는 가장 가까운 엄마조차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시선은 얼마나 따가운지 짐작할 수 있다.


이상한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직장이 없는 사람들. 가족이 아닌 사람들. 밤에도 낮에도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서로의 신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너와 나뿐인 사람들. (「동네 사람」, 128쪽)


사소한 말투에 감정이 상하고 누군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건 그 삶의 일부가 되거나 그 삶에 깊숙이 파고드는 일이다. 자신의 모든 일에 끊임없이 지지할 거라 믿는 순간이 어느새 사소한 말투에 감정이 상하고 만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너와 나는 영원한 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너와의 관계는 왜 이렇게 계속 이어져온 것일까. 완전히 연락이 끊어지고 그래서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에 대해 편안한 기억만 나눠 가질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겁도 없이 네 연락을 받고, 안부를 듣고, 네 삶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걸 포기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172쪽)


함께 한 시간이 너무 많이 쌓여서 분리될 수 없는 우리가 된다는 건 그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너와 나는 처음부터 달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그 처음이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이었을지라도. 소설 속 ‘너’와 ‘나’는 현실 속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로 살아간다는 건 간단하지 않고 여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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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혈연은 모르겠지만, 타인이나 물건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그 들인 시간이라고 어린왕자에선가 본 것 같아요 ^^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6-07 08:40   좋아요 0 | URL
^^*
 

5월의 비는 무슨 빛일까. 초록빛일까. 그건 봄의 색일까, 여름의 색일까. 봄이어도 좋고 여름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5월의 첫날부터 비가 내리더니 비를 만나는 날이 많아졌다. 비는 고요함을 요구한다. 빗소리를 들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창에 닿은 비의 흔적은 창을 열고 보면 찾을 수 없다. 비가 오고 있는 순간이어도 비는 없는 듯 보인다.





느닷없이 더위가 몰려오는 것 같더니 서늘해졌다가 다시 이 비가 그치면 봄날이 올 거란다. 봄날이 온다는 건 활동하기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활동하기 좋다는 게 딱히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날은 봄날이어야 하고 감자꽃은 피어야 하고 장미도 피어야 한다. 꽃들은 피어나고 모를 심을 준비를 하는 논에는 충분할 정도로 비가 왔으니 5월의 비는 좀 쉬어도 좋겠다. 어쩌면 작년처럼 비가 많은 날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다 지났다. 특정한 누군가의 날이 있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인 지도 모른다.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어린이가 없다.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그런 어린이가 자라서 성년이 되고 누군가는 어버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도 있겠다.


주말 스승의 날에는 나의 유일한 스승님께 꽃을 선물로 보내드렸다. 카네이션을 고를까 하다가 수국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수국을 선물하는 이기적인 제자다. 수국이 선생님께 도착하는 시간까지 걱정이 많았다. 수국의 상태를 알 수 없어서다. 그건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꽃을 주문할 때마다 그런 것 같다.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에 대한 불안함.





5월의 비는 계속 이어질까. 5월의 비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은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 구병모의 『바늘과 가죽의 시』,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다. 시인이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 신비로운 동화를 연상시키는 소설, 그리고 소설에서 죽음을 그렸던 소설가의 에세이.


5월의 절반이 훌쩍 지나고 2021년의 절반을 향하고 있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수요일의 쉼표를 생각하면 빨리 가는게 좋은 걸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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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5-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국수국 복스럽네요. 색도 어쩜 저리 이쁠까요.
꽃을 받고 싶을 때가 있죠. 어떤 꽃이든 좋구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것이니.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 걱정되는 맘 공감해요. 저도 그런 마음 든 적이 있거든요.
이번 어버이날에 작은아이가 멀리서 이곳 꽃집을 통해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넘 안타까운게
그날 주문량이 많아서였는지 몰라도 바구니가 넘 엉성하고 꽃 몇 개는 거의 시들하고 ㅠㅠ
아이가 보낸 마음을 아니 더 안타까워서 씁쓸했어요. 그래도 아직 몇 송이는 따로 작은 화병에
꽂아 살렸네요.^^ 자목련 님 건안하시길요. 어느새 오월도 중반을 지나다니요^^

자목련 2021-05-19 15:0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안부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국수국의 날들인 것 같아요. 꽃은 언제나 좋아요.!
따님이 보낸 꽃바구니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저도 속상하네요.

프레이야 님, 향기롭고 맑은 5월 이어가세요~
 
술과 농담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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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산문을 읽은 기억이 없다. 어디선가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술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마구 취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고 읽었다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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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최석규 지음 / 좋은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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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오늘에 만족하면서 다른 오늘을 살기를 바란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은 다른 삶, 조금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최규석의 단편집 『소설이 곰치에서 줄 수 있는 것』를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이 원하는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표제작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의 주인공 곰치는 떼인 돈을 받아주거나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상대에게 욕을 하거나 위압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그가 우연하게 소설 합평에 참여한다. 소설을 쓰는 이들의 모임에서 그는 학상시절을 회상한다. 심부름센터의 곰치가 아닌 문예반에서 자신의 글이 일등이었던 때가 있었다. 곰치는 그때의 스승을 찾으면 다시 책을 읽는다. 곰치가 아닌 ‘차석주’로 살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 이제라도 ‘차석주’로 살고 싶은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곰치가 살아온 세상은 늘 이랬다. 아픔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었다. 그러는 동안 심장은 밤 껍질처럼 단단해졌다. 발목에 숨겨 놓은 잭나이프로도 그것은 베어지지 않았다.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20쪽)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놓치고 잃어버렸다는 걸 인식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뿐이다. 사라진 아내를 찾는 과정을 담은 「회전초」 속 남편과 아내가 그러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삶을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사람을 찾아주는 사설업체에 의뢰를 하고 아내에 대해 알아가는 동안 남편은 그제야 느낀다. 아이를 잃은 상처를 위로하기는커녕 서로를 힐난하고 회피했던 지난 시간을. 처음 아내를 만났던 순간, 함께 그림을 보고 아내의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던 순간의 감정들. 어쩌면 우리도 소설 속 아내와 남편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나아지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언젠가 지금보다 나아지면 다 잘 될 거라고 미루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 어제만큼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하긴 어제만큼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19의 시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모든 걸 통달한 이들을 찾는다.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가르침이 있을 것 같으니까.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속 ‘나’가 스스로를 고수라 말하는 노인에게 반하는 것처럼. 틱장애가 있는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다. 어릴 적부터 잘 알던 형의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에서 절대 고수를 만난다. 노인은 형에게 대결을 청한다. 노인의 사상에 빠진 나는 그 대결을 성사시킨다. 고수는 진정한 고수였을까. 자신을 믿었던 노인에게는 그럴지도.


고수는 절대 튀지 않는다. 진짜 절대 무공은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 숨어산다. (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 40쪽)


이 단편은 노인과 형의 대결의 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큰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가 우연하게 만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챙기는 혜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혜영 역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을 한다. 동네 사람들은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저 고양이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난 진실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어요. 하지만 이해는 해요. 진실이란, 사실이 아니잖아요.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거지. (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 58쪽)


각자 믿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좀 나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가 우리는 믿고 싶은 것들을 감추거나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제목의 ‘곰치’ 대신 나의 이름을 넣어 보았다. 소설이 나에게 주는 건 무엇일까. 더 많은 삶, 더 많은 이야기, 그것들을 통해 때때로 안도하며 숨겨두었던 감정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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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5-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 절대 무공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 숨어 산다는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이 여러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잠시라도 위안이 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 게 없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희선

자목련 2021-05-12 08: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들이 고수 같아요
희선 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나는 딸이다. 엄마와 딸이라고 쓰면서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엄마랑 몇 가지나 했을까 기억을 더듬는다. 굳이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구분하지 않더라도 나는 엄마랑 함께 한 게 거의 없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도 큰언니랑 갔고 속옷을 사준 것도 여름용 샌들과 원피스를 사준 것도 큰언니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는 왜 그랬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논으로 밭으로 갯벌로 일하러 다니느라 셋째 딸에게 필요한 게 뭔지 살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엄마는 항상 그립다. 그래도 대놓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어버이날일 것이다. 여기저기 어버이날과 함께 자동으로 떠오르는 카네이션과 용돈, 감사편지 같은 글들이 있었다.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이었다. 살짝 부럽기도 했고 살짝 우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제 낮에는 낮술을 마셨다. 지금 생각하니 한 캔으로는 부족했다.


엄마와 딸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엄마가 등장하는 소설, 5월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을 하나씩 꺼내본다.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강진아의 『오늘의 엄마』, 가장 최근에 만난 제시 버튼의 『컨페션』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어쩔 수 없이 돌봄을 부탁한다. 돌봄은 끝이 없다. 백수린의 장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화자의 엄마가 유학을 하는 동안 화자는 할머니와 지낸다. 그 시간을 짐작하는 이는 그런 유년시절의 간직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육아는 어렵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의 기관은 적다. 할머니의 돌봄에서 자란 화자가 하는 말,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삶이 궁금하지만 곧 그 모든 것은 아이를 향한다.


엄마, 엄마도요. 내가 생겼을 때, 이런 마음이었어요? (『친애하고, 친애하는』 중에서)


어른이 되고 점차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과 마주하지만 엄마의 삶을 고단함을 알기엔 충분하지 않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없이 엄마는 떠났다. 엄마와의 이별을 순차적으로 기록한 강진아의 소설 『오늘의 엄마』는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이별을 예감하며 살아가는 일상은 자칫 무겁고 어두울 것 같지만 아니다. 사는 일은 벼나지 않기에 그저 아픔을 지켜보고 때로 웃고 때로 울면서 살아간다. 이 소설은 엄마보다는 암으로 떠난 큰언니가 더 겹쳐졌다.


엄마의 시간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시키고 독립까지가 끝이라고 여겼지만 소설이나 현실에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딸을 외면할 수 없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보면 더욱 실감 난다. 스스로를 부양하는 일도 버거운데 딸이 일상을 침범하는 것 같다. 딸의 선택을 인정할 수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딸과 엄마 사이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소설에서는 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조금씩 다가가며 응원과 연대를 보내지만.


‘엄마’란 말에는 존재보다는 역할이 앞선다. 나의 존재의 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걸 희생하도록 강요했던 시대가 지났지만 엄마를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는 과정을 다룬 제시 버튼의 『컨페션』을 읽다 보면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엄마와 딸, 친구 같은 사이. 주변에서 그런 모녀를 볼 때면 마음이 환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엄마와 딸은 막역해지는 것 같다. 조카와 올케언니를 봐도 그렇다. 엄마를 생각하는 작은 배려들이 예쁘고 대견하다. 한 사람의 딸로 태어나 그 우주에서 유영하고 사라지는 일, 축복받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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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5-10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가 나이가 많으셨어요. 그래서 초경이니 뭐니 다 언니들이 챙겨줬어요. 제게 엄마는 엄마와 할머니의 중간쯤 ㅎㅎ요즘 아이들은 정말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고 일상을 공유하더라고요. 부럽다가도 우리 엄마도 저렇게 예쁘고 젊게 입고 나랑 다니고 싶었을텐데하며 ㅠㅠ 엄마가 짠해지더라고요. 자목련님 옆에 계심 제가 찐하게 한 분 안아드리고 싶네요. 자목련님 축복받은 인생 저도 응원합니다

자목련 2021-05-11 09:07   좋아요 2 | URL
엄마의 마음을 조금 빨리 헤아렸더라면 싶어요. 고모와 사촌동생이 같이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는 걸 보면 참 좋아보여요.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조금 크다 싶으면 고모에게 안겨(?)주더라고요. 미니 님의 품에 쏙 안기는 아침,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화장한 화요일 보내세요!!

지유 2021-05-10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애어른이라 엄마와 딸을 소재로 한 글은 다 남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요. 세상의 모녀 이야기가 다 제 이야기로 깊숙이 다가와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자목련 2021-05-11 09: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지요.
지유 님, 어머님이랑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나누는 하루 이어가시길 바라요^^

붕붕툐툐 2021-05-10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셋째딸! 저희 엄마는 지금도 딸이라면 벌벌 떠시는 딸바보. 그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데, 어떨 땐 내가 그 사랑에 전혀 못 미치는게 너무 죄스럽고 그렇습니다.

자목련 2021-05-11 09:00   좋아요 2 | URL
딸바보 어머님이 계시니 정말 부러워요.
붕붕툐툐 님도 어머님바보 같은 걸요. 어머님이랑 좋은 시간 많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