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봄을 향하는 걸 느낍니다. 자꾸만 화사한 옷들을 검색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검색을 멈추지 않습니다. 제법 자란 머리카락을 묶을 머리끈을 한 번씩 찾아봅니다. 저 멀리 초미세먼지가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활짝 창을 열어 바람을 맞고 싶은 날들입니다. 아직 겨울은 우리 곁에 머물지만 다가서는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이런 문장을 함께 읽고 싶어졌습니다. 당신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라도 해둘까요. 박준의 『계절 산문』에는 그런 문장이 참 많습니다. 편안하게 안부를 건네는 문장들입니다. 추위가 달아나지 않은 이 계절에 여름의 서늘한 온기를 느낍니다.


낮이 분명하게 길어졌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저의 하루를 살아가느라 이렇게 지쳐있는데 어둠은 조금 전에야 막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초입에는 어느 집 담장 너머 만발한 능소화들이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이 길이 제 집으로 가는 길이 맞는다는 듯이, 혹은 지금부터가 여름이라는 듯이.


능소화는 바람에 흔들리고 덩달아 능소화가 만들어낸 그림자도 흔들립니다. 발끝으로 그림자를 따라 몇 번 따라 짚어보다가 그만둡니다. 온통 흐르는 것들을 지나 드디어 제 방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누우면 하루와 어둠과 가난도 따라 눕습니다. 함께 잠이 듭니다. 벌써부터 방은 덮고 새벽쯤 땀을 흘리며 잠이 깬 저는 일어나 물을 마십니다. 물을 마시고 살금살금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다시 눕습니다. ( 「여름 자리」, 전문 84~85쪽)


바람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차분하게 이런 글을 마주해도 좋겠지요. 다정한 그리움, 송곳처럼 솟아난 날카로운 미움과 분노를 가만히 안아주는 커다란 손길을 느낍니다. 뽀족한 송곳의 마음을 다 뭉그러뜨리지는 못할지라도 한두 개쯤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지은 밥을 공기에 퍼두었는데 반찬도 따로 담아 상 위에 올렸는데 아직 그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언제라도 저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설 것 같을 때, 그릇 뚜껑이나 보자기를 올리듯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고 네가 다시 그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쳤으며 그사이 숨어 있는 잘못의 세목들, 이런 것들은 들추어 밝히는 대신 그냥 덮어두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과 그 사람의 마지막을 같이 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간에서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거나 아니면 그가 중간쯤 왔을 때 나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덮어둔다는 것은 어느 낮은 시간을 그냥 흐르게 하는 것이고, 그곳으로 흘러오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고 반긴다는 뜻이며 한참 세상이 지나 그 위에 무언가 쌓였다 해도 변함없는 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일입니다. (156~157쪽, 「크게 들이쉬었다가는 이내 기침이 터져나오는 겨울밤의 찬 공기처럼」, 전문)


서로 다른 계절이 만나고 헤어지는 날들, 어떤 이는 환절기를 앓기도 하지요. 그래서 짧은 몸살이나 감기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하고요. 헤어질 계절과 온전히 이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통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계절과 헤어지듯 그 안에 담긴 나의 시간과도 헤어지는 일. 반성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후회의 순간과 마주하니 안에서 탈이 난 밖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 마음이 쉬어야 몸이 편안해지겠지요.


‘쉬다’라는 낱말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몸을 편안히 두다.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다’라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쉬다’가 우리에게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조금 부정적인 의미의 ‘쉬다’로 변하는 것이지요. ‘탈이 나서 목소리가 거칠고 맑지 않게 되다’의 ‘쉬다’ 혹은 ‘음식 따위가 맛이 시큼하게 변하다’ 할 때의 ‘쉬다’. 더불어 ‘쉬다’라는 말에는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하는 뜻도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던 시간 같은 것으로 긴 겨울날이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쉼 쉼 쉼」, 전문 170~171쪽)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란 뜻이 참 예쁩니다. 더 곱고 빛나기 위해 쉼이 필요하고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박준이 제게 알려준 것처럼 말이에요. 박준의 유려한 문장은 읽을 때마다 어떤 맑고 고운 힘을 불러옵니다. 두 권의 산문집과 두 권의 시집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이런 먹먹함 때문인지 저는 여전히 그의 첫 시집의 이런 시가 제일 좋습니다. 봄이 오고 있어서, 자꾸만 마음이 들썩입니다. 정작 봄이 와도 달라지지 않을 일상이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전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2-16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2-02-16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자목련 2022-02-17 09:3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 쓰는 삶을 원한다. 좋은 글을 쓰거나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글이 주는 힘과 위안을 알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은 무언가를 쓰는 동안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슴속 불 덩어리를 담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 어찌할 바를 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었다. 마구잡이의 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막상 글을 쓰려면 어렵다.


변호사이자 다양한 글쓰기로 알려진 저자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나 같은 혹은 쓰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제목부터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쓰려는 이에게 이 책은 세심하고 다정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유려한 기술을 알려줄 거라는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삶에 대한 태도나 자신만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니까.


목차를 살펴보면 ‘첫 문장을 기다린다’, ‘시작할 동기’ 같은 소제목에서 어떻게 쓰는지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다. 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는 마음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 일이 글쓰기라고 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처음 글을 쓰는 배경을 살펴보면 일기, 블로그, 짧은 글의 SNS에서 내가 느끼는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던가.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디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상 곁에 살아 있기 위하여 글을 쓴다. 글쓰기는 관념의 유희, 당위의 강요, 기준의 폭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27쪽)


그러니 처음에 혼자 쓰던 글쓰기는 타자와의 대화가 되고 나눔이 된다.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밀글이 아닌 글은 누군가에게 공개된다. 좋아요, 공감을 누르고 누군가는 댓글을 단다. 그 후로 글은 타자와 공유하는 글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 가운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경험한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글과 삶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글쓰기는 혼자 고독 속에서 고고하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결국 그 고독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53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발견한 즐거움과 기쁨은 물론이고 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유를 확장시키는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경험한 것들, 꾸준히 글을 쓰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순간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떨림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아름답다.


‘글 쓰는 삶’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삶이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삶이라는 거대한 무엇이 써나가는, 그리하여 그것을 그저 받아 적을뿐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존재이지만 존재가 아니기도 한, 삶이 옮겨지는 유령 같은 백지가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이런 생각은 아주 깊고 고요한 위안을 준다. (221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삶이 글을 쓴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가 무언가 쓰고자 했을 때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때는 분노가 어떤 때는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하고 사소한 개인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삶에서 나온다. 모든 삶에 대해 알 수 없겠지만 뉴스나 언론에 등장하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써야 할 삶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여기, 알려지지 못하는 삶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없다. 알아야만 하는, 말해지지 않는, 들릴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258쪽)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삶은 더욱 중요하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겠지만 책을 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당장 돈이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글은 삶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록하고 주변을 기록하는 일은 점차 사회를 기록하는 일이며 반성과 통찰의 시간은 지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일이다. 기도하듯 글을 쓰는 저자처럼 말이다.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삶이 엉망이 된다면 좋은 글쓰기도 없다.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 기분, 말 한마디도 챙길 줄 알고 조율하려 할 때, 삶과 글쓰기는 어우러지리라 믿는다. (286쪽)


무언가를 쓴다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쓰는 삶을 산다. 막연히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첫 문장을 기다리는 순간, 삶은 쓰인다. 다음 문장이 기쁘게 오거나 억지도 오더라도 글쓰기가 계속되는 것처럼.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2-02-15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네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요~

얄라알라 2022-02-15 12:27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님 댓글 보고, 다시 제목에 도장 꾹 찍고 왔어요. 글이 좋아서 두 번 읽었는데 제목은 뒤늦게 들어오네요^^ 햇살과함께님 덕분

햇살과함께 2022-02-15 13:08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얄라알라님 댓글 보니 본문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2-16 09:16   좋아요 1 | URL
글쓰기는 어렵지만 쓰는 동안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좋아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ㅎ

- 2022-02-15 09: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애정하는 정지우 작가님이 또 에세이를 내셨네. 그런데 변호사셨군요. (갑자기 멀어진다...) 소개해주신 문장들이 너무 정지우 같고, 그래서 제가 정지우님 글을 좋아한다죠. 삶과 글쓰기가 어울려져야 한다는 식의 글을 이렇게도 단단히 되풀이해서말하는 또래의 저자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자극받는 좋은 일이예요.
저는 남들 몰래 글을 쓰면서 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남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아닌 것 같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좋은 글을 써야겠군요.
자목련님의 쓰는 삶도 독려합니다. 공들여 쓴 독후의 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0   좋아요 2 | URL
정말 열심히 쓰는 작가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처음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는 글의 분위기나 감성이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 대한 글이 나와서 남성이라고 알았어요. 변호사, 저도 이 부분에서는 멀어집니다. ㅎ
몰래 글쓰기, 저도 처음에는 모두 비밀글이었는데, ㅎㅎ 나에게 좋은 삶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시작이 아닐까 해요. 오늘도 쟝쟝 님께 좋은 쟝쟝 님이기 바라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2-15 09: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글은 삶을 쓰는 일이라는 것 정말 공감되네요. 어떤 글을 쓰든 그 글엔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남기는 감상이든 일상을 쓴 글이든 자신만의 경험과 해석이 담길 테니까요. 글쓰는게 항상 어렵고 두렵지만 제 삶을 위해 열심히 써나가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1   좋아요 2 | URL
네, 어떤 글이든 자신의 일부가 담기는 것 같아요. 픽션인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글에 내가 있다는 걸 아니까요.
거리의 화가 님, 충만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2-15 1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왜 심각해질까요? ;;
삶이 글을 쓰다!
삶이 누추하면 글도 그렇겠죠!
이 댓글 쓰면서 반성중입니다.

자목련 2022-02-16 09:23   좋아요 2 | URL
심각해지지 마세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저마다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2-15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앱으로 오전에 읽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뭔가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자목련님의 페이퍼였습니다. 저는 정지우 작가님을 모르는데 공쟝쟝님, 자목련님의 애정을 받고 계시니 그 또한 찾아봐야겠고요^^
자목련님께서 품으신 가슴의 불덩어리가 어떤 열기인지, 다뤄질 불이었는지 상상하며 지나갑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2-16 09:27   좋아요 3 | URL
다시 들어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최근 활발하게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당시의 불덩어리는 총체적인 미움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어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독한 말, 나쁜 말을 마구 썼어요. 키보드에 그런 말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지요. 의외로 스트레스가 풀려서 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정한 마음 건네주신 얄라 님도 따듯한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2-02-16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도 그렇지만 글도 안 써도 괜찮지만, 쓰기 시작하면 안 쓰지 못할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이야기가 있겠네요 글을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2-16 09:28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일, 말씀처럼 안 쓸 수 없는 삶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게는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품는 게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선 님,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2022-02-1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잿빛극장
온다 리쿠 지음, 김은하 옮김 / 망고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고 있다. 3년 전에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그런 삶인지도 모른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가득하니까. 그래서 놀랄 만한 사건이나 사고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 주어진 일상을 돌아본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산다는 게 무언지.


온다 리쿠의 『잿빛극장』 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따라왔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20여 년 전 두 명의 여자가 다리에서 함께 투신자살을 한 신문 기사를 전업작가인 ‘나’는 소설 <잿빛 극장>으로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그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상영된다. 소설은 단순하게 연극으로 다시 탄생하는 그 과정을 다루는 건 아니다.


소설은 특이하게 0, (1), 1로 구분하여 구성되었는데 0은 <잿빛 극장>을 쓰는 ‘나’의 일상, (1)은 <잿빛 극장>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 1은 신문 기사 속 익명의 두 여인 T와 M의 일상을 다른다. 0, (1), 1이 교차하며 이어지기에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몰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신문 기사 속 두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연극까지 상영하게 된 과정에서 ‘나’와 독자가 가장 궁금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T와 M은 대학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지만 T의 결혼으로 연락이 끊겼다가 T가 이혼 후 다시 재회한다. 결혼이 자신이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T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대시 번역을 하면서 혼자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다 M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생활비를 줄이고 집에서 일하는 T가 자연스럽게 살림을 한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을 알아간다. 가령 T의 갑작스러운 결혼과 이혼 같은 것.


소설을 이끄는 건 당연 0, (1)이다. 익명의 두 여인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기에 ‘나’는 막상 연극에 출연 배우를 결정하는 오디션에 참여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존재를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된다. 20여 년 전 마흔 중반의 두 여성이 아주 젊은 나이라는 걸 말이다. ‘나’가 당시 많게 느꼈던 그들의 나이가 현재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든다.


‘파란만장‘ 하지도 않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온 힘을 다해’ 살지도 않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인생이다. 그 일회성만큼은 어떤 인생이든 마찬가지고 예외가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이다. (1 - 154쪽)


M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저마다 파란만장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주어진 삶에 대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뭔가 허무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감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것일까. 독자인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 ‘나’처럼 20여 전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말이다.


그 두 사람이 죽어서 이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랑? 우정? 신뢰? 체념?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을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0 - 192쪽)


어쩌면 우리도 어느 시기에는 그녀들과 같은 삶은 살아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 시절을 통과하는지도 모른다. 익명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나’가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느낀 허무, 메마른 절망, 그 모든 것을 나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냄새도 풍기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느끼지 못하도록 한 그 자체가 내가 남긴 유서일지도 모른다. (1- 334쪽)


묘한 소설이다. 먹먹하게 아프다. 소설 속 T와 M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게 살아갈수록 힘들고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그들의 선택이 안타깝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인간의 심연, 그 깊은 곳에 내려앉은 절망과 슬픔의 일부를 만난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면 훌륭한 삶이라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분명 후대의 많은 이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일이 먼저 생각난다. 흔히 말하기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조금 읽었다.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읽을 때마다 완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과 삶에 더 가까이 더 깊게 다가가는 시간으로 말이다. 분명 그녀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다르게 강력하고 힘차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원한다는 건 여전히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에서는 네 편의 짧은 단편과 대표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런던 거리 헤매기」를 수록했다. 단편을 살펴보면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유산」은 결혼에 대한 시대적 관념과 그 안에서 여성 스스로의 삶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생각한다. 3장 안 밖의 짧은 소설「V 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은 존재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다.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V양이 존재했을까. 우연하게 발견한 벽의 자국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벽에 난 자국」과 식물원이란 한정된 공간 그 안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큐 식물원」은 색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소설도 좋았지만 특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싶은 건 그녀의 에세이다. 그녀를 영원한 여성의 멘토, 시대를 거슬러 만나고 싶은 작가로 만든 글 말이다. 어렵지만 집중하게 만드는 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79쪽)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을 했을 당시에는 여성과 픽션에 대한 주제였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그녀가 말한 ‘500파운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돈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에는 여성에 해당된 주제였지만. 그 시대를 상상하면서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으로 연결된다. 글을 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전부였을 삶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가부장 제도에 매여 살았다. 문득 생각나는 두 명의 여성. 뛰어난 재능을 지닌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방식도 그렇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썼는지가 아닌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니 버지니아 울프가 가상으로 만든 셰익스피어의 누이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애통하기까지 하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 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152쪽)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보다 더욱 짧고 더욱 응집되어야 하며,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장시간의 독서가 필요하지 않게끔 꾸며져야 한다고 나는 과감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을 테니까요. (215쪽)


모두의 공간인 거실만이 유일하게 허락되었고 가사와 육아에 시달려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삶. 설령 무언가를 쓰다고 해도 비밀로 써야 했던 시대.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였다. 시간을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현재 여성의 삶이다. 차별과 평등은 사라졌을까. 온전하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사회적 제도는 마련되었을까. 보호 받는 성이 아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나가야 한다.


「자기만의 방」의 강연을 통해 단단하게 접힌 마음은 「런던 거리 헤매기」를 만나면서 부드럽게 펼쳐진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소개했던 아름다운 문장들, 지금 이 계절과 너무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문장들. 시간은 저녁 무렵,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에 샴페인 색으로 빛나는 공기와 거리의 친화력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처럼 그늘과 고독을 바라고 풀밭의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며 시달리지 않는다. (287쪽)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런던 곳곳을 거니는 즐거움에 빠진다.


한 권의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놀라운 발견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소설과 강연,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각각의 매력은 그녀를 더욱 알고 싶게 만든다. 그녀가 바라고 원했던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고민했던 흔적은 우리 곁에 남았다. 책장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격려로 다가올 것 같다.


언제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 올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에게 나쁜 세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지금,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야 할 이유다.


그녀에게는 아직도 싸워야 할 유령과 극복해야 할 편견이 많이 있습니다. (중략) 그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아직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구를 비치하고 장식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453쪽)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2-13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알라딘에서도 판매하나요?!
디에센셜 판매하네요
진작 하지...!

자목련 2022-02-14 08:54   좋아요 1 | URL
네, 아마도 교보문고와 단독 판매 계약이 1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mini74 2022-03-08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닮은 단정하고 좋은 글들 ~ 당선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3-10 11:20   좋아요 2 | URL
^^*
꽃 같은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2-03-08 18: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3-10 11:20   좋아요 2 | URL
^^*
맑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0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3-10 11:20   좋아요 1 | URL
^^*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22-03-10 11:2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항상 감사드려요.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상은 소설이 되고 소설 같은 일상을 살기도 한다. 간혹 소설을 읽다 보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작가 주변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잘 썼다는 말로 대신하면 맞을까. 윤성희의 단편집 『날마다 만우절』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떤 이야기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고모의 기억의 이야기, 친구가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는 자신의 가족사 같은, 건너 건너 들은 이름만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 우리끼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 같은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 윤성희의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여 그의 소설에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날마다 만우절』에 수록된 11편의 단편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듯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한 번씩 등장해 제 역할을 해낸다. 그들 중 누군가는 부재로 남은 자들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나, 오랜 시간 연락이 끊어졌거나, 특정한 이유로 세상과 단절한 경우다. 곁에 없다고 해서 그들과의 기억이나 인연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그리움의 존재이자 화해하지 못한 존재다.


표제작 「날마다 만우절」은 3년 만에 고모를 만나러 가는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싸우고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고모가 암에 걸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엄마, 남동생과 함께 걱정과 근심으로 고모 집에 도착하지 고모는 없었다. 걱정이 더해가는 사이 나타난 고모는 암에 걸렸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다시 가족이 모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황당하면서도 안도감을 감추지 않는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부모님의 첫 만남부터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는 일상들이 유쾌한 팝콘처럼 터진다.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순간이라고 할까.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이니 ‘나’도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말들은 얼마나 많을까. 감춰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또 있다. 「남은 기억」 속 영순과 ‘나’도 뜻하지 않은 해후로 서로의 지난 삶을 들려준다. 암이 재발한 영순에게 ‘나’는 과거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 그때 영순의 남편은 사업이 잘 되었고 어쩌다 보니 갚지 못했다. 서로가 소원했던 시간의 사정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웃으로 살면서 지냈던 소소한 일상부터 사업이 망한 이야기. ‘나’에게도 일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죽고 손자를 키우게 된 것이다.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영순은 암에 걸렸고 ‘나’는 아들을 잃었지만 삶은 또 이렇게 기억 속 누군가를 만나 서로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영순은 살아갈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수 있지만 ‘나’는 손자를 생각하면 살아갈 날이 더 길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마지막엔 어떤 기억으로 채워질까.


윤성희는 십 대부터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에 소개한 두 편과 원하지 않은 퇴직을 한 「여름 방학」후 담담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나’, 아파트 단지에서 분홍 킥보드를 훔치는 60대 할머니의 사연을 들려주는 「어느 밤」에는 노년의 삶을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버스에 치인 사고로 병원에 누워 매일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눈꺼풀」과 두 명의 친구와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항상 자신을 챙기던 옆집 형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에는 십 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아직은 모든 게 궁금하고 자신의 감정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십 대, 세상의 이치를 조금을 알 것 같은 노년에게도 삶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수월할 것 같은데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어린 시절 내가 알았던 어른의 삶도 이랬을까.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내려간 시골로 내려간 부모님에게 일어난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돌아보는 「블랙홀」속 삼 남매나 항상 다정하고 자신을 제일 예뻐한 삼촌이 어쩌다 교도소에 갔는지 「스위치」의 조카는 결국 우리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파혼을 당했다.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왕따를 당한 뒤 선물처럼 찾아온 단짝 친구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두 번이나 이직을 했고,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섯 번째로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다. (「여섯 번의 깁스」, 59쪽)


어쩌면 소설 속 문장처럼 우리는 애를 써서 그냥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느라 다치고 조금 괜찮아진 것 같으면 다시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일 앞에서 애를 쓰고 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언제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 기억으로 남는 게 인생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건 유머일지도 모르겠다. 윤성희가 소설에서 항상 놓치지 않는 그것. 아직은 그 심오한 뜻을 깨달을 수 없지만 언젠가 나도 유머를 건네는 것으로 상실과 상처와 슬픔을 달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술 수업 첫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마술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유머라고. 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만 같았다. (「어느 밤」, 1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