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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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저 여인은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일까. 팔뚝에 드러난 타투 때문일까. 여인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케이시의 장편소설 『네 번의 노트』는 읽기도 전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 소설이다.


낡고 오래된 원룸 건물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 전용층 3층의 계단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3층에는 301호부터 306까지 여섯 명의 여자가 혼자 거주한다. 죽은 남자는 303호의 남자친구. 사건 당일에 303호는 집에 없었다. 같은 층의 여섯 명의 여자는 모두 참고인이자 동시에 용의자가 된다.


소설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경찰이 조사한 ‘내사 보고서’와 ‘참고인 진술서’의 형태로 각각 각각 여섯 명의 신상과 직업, 3층 이웃들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죽은 남자가 6개월 전에 든 보험의 수령인이 여자친구인 303란 사실만으로도 범인으로 가장 유력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 나머지 5명에게는 특별한 동기가 없으니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이 원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삶이 모였다. 무당인 301호,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302호, 사회복지사 303호, 지적장애가 있는 304호,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305호, 건물 청소와 관리를 맡은 306호. 306호를 제외하면 미혼의 젊은 여성이다. 그들에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옷차림이나 화장으로 삶을 짐작할 뿐 서로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목표가 같다는 정도다.


여섯 명의 화자가 돌아가면 자신의 삶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원룸에 대한 이미지, 힘겹게 살아온 시간들, 직업에 대한 고충,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들에 이어 3층 여성들의 관찰한 이야기다. 귀신과 죽음,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 고민을 들려주는 301호, 303호의 소음과 남자친구와의 다툼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302호,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자신을 찾는 303호를 좋은 언니라 말하는 304호, 옆집인 304호와 관리인 306호에 대해 언급하는 305호, 참견과 소문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306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게 소설의 전부라고 여겼던 나 같은 독자는 점점 작가가 만든 분위기에 빠져든다. 자발적 비대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서 벗어나 이웃과 소통을 원하는 마음, 보이는 게 아닌 들리는 것으로 타인의 삶을 짐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똑. 똑. 똑. 똑

302호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방문할 때는 대개 노크를 네 번 정도 해야 한다. 두 번은 친근한 사이일 때, 세 번은 안면이 있을 때. 처 방문일 때는 노크 네 번이 적당하다. (235쪽)


저마다 감추고 숨겨놓은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난다. 소설 속 원룸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며 여섯 명의 화자는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부다. 우리 역시 그들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뜻이다. 1인 가구의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훌륭한 추리소설이자 스릴러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은 끝났지만 삶은 끝이 없고 낡고 오래된 건물의 이미지는 오래 기억에 남아 한 번씩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서로 무관심하게 떨어져 살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일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뚜렷한 경계가 그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는 모두 빛으로 연결돼 있다.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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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싹..🥶

자목련 2021-11-25 11:56   좋아요 1 | URL
아, 정확한 표현이에요.
이 소설 다 읽고 소름 돋았어요 ㅎ

- 2021-11-25 12:05   좋아요 0 | URL
뭐랄까 되게 현실적일 것 같아서 ㅋㅋ 무서운거 읽고 싶을때 읽겠사와요!

자목련 2021-11-25 12: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내가 아는 원룸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요.

프레이야 2021-1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강렬한 느낌이 들어요. 오싹 소름 돋는 소설 요즘 좀 갈증 나던데 찜해 갑니다 자목련 님.

자목련 2021-11-25 14:07   좋아요 1 | URL
네, 표지처럼 내용도 그러해요.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더 궁금해져요.

그레이스 2021-11-2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똑,똑,똑,똑
왜 이렇게 소름이 돋죠?

자목련 2021-11-27 15:44   좋아요 0 | URL
이제 노크 소리가 무섭게 들릴 것 같아요.
집콕으로 배달이 많아서 벨 대신 노크가 많은 요즘, 소설 덕분에 조금 경계할 것 같아요. ㅠ,ㅠ
 

수학 공식을 생각한다. 공식에 숫자만 넣으면 어떻게든 결괏값이 나오는 공식들. 학창 시절에는 이해도 못 하면서 무조건 외우기에 급급했던 공식들 말이다. ‘함수’의 그래프처럼 ‘기울기’를 구하는 일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차 방정식’, ‘근의 공식’처럼 미지수에 숫자를 대입해 계산하면 간단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게 삶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사는 게 점점 고되다.

바닥을 치면 괜찮다고 했던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으니 바닥을 차고 올라오면 된다고. 그런데 삶이라는 게, 삶의 바닥이라는 게, 그 깊이가 넓고 깊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그 깊이는 삶이 끝날 때까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바닥의 바닥을 딛고 바닥의 바닥으로 올라선다. 손톱이 자라는 만큼 좋아지는 기미가 보인다고 믿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절망은 한 뼘씩 자란다. 절망에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나름 나는 단단해졌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과 잠시 멀어지고 만다.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를 뒤적이다 만난 시 덕분에 다시 절망하지 않을 힘을 붙잡는다. 나를 찾는 게 삶이고 삶이 나를 찾는다로 바꿔 읽으면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루미의 시 한 구절이다


이렇게 바꿔 읽을 수 있겠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고?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신은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을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써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것

당신을 찾고 있는 것

둘 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둘을 찾을 때까지

저 돌이 기어코 만날 때까지

되뇌고 되뇌고 또 되뇌어야 한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전문)



이런 시를 읽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나와 닮은 슬픔을 나와 닮은 절망을 나는 힘껏 안아줄 수 있으니까. 오래 만진 슬픔, 오래 만진 고통은 이미 내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내게로 스며든 것들은 따로 떼어놓고 볼 때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좋은 이에게, 가까운 이에게 마구 추천해야겠다.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다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 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한 자리에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오래 만진 슬픔」, 전문)


오히려 바닥의 바닥은 끝이 아니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해볼 만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고통이 키운 힘을 생각한다. 그것들로 채워진 나의 일부는 얼마나 단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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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1-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만에 이이의 이름을 듣고, 시를 읽습니다. ^^

자목련 2021-11-20 12:2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올 봄에 낭노 시집이 참 좋았습니다.
미세먼지가 나쁨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1-11-19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만추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나 봐요
이문재 시집이 새로 나왔군요. 반가운 마음에
덥석 담아갑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0 | URL
내일 밤에 비가 내리면 추워진다고 해요.
이문재 시집, 좋습니다^^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scott 2021-11-19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올려 주신 시
여러번 읽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서울은 요 며칠 미세먼지로 가득!
자목련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2 | URL
스콧 님의 마음에도 좋은 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2021-11-2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색은 어둠과 통한다. 어둠은 암흑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벽 두 시 어슴푸레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만 목격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는 나중 문제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뒤로 어디선가 자신을 쫓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는 누군가를 찾는 행동은 지나친 것일까. 권정현의 장편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속 ‘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민’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건실한 남편과 아들 ‘동수’와 고양이 ‘까망이’, 반려견 ‘무지’까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우연하게 남편과 만나 결혼한 민은 은수를 낳고 행복했다. 유모차에 세 살 된 은수를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약수터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민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은수가 유모차에 나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형체, 빠르게 지나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민을 달랬다.


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않기로 한 민과 남편은 ‘무지’라는 반려견을 키웠다. 그러다 동수를 입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건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가 아니었고 아이의 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이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목격하지 전까지는. 민은 상담을 받던 의사를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동수와 무지, 까망이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무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기 시작했고 까망이가 무지의 눈을 공격했다. 단순하게 여길 수 없었던 민과 다르게 남편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건 시작이었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고 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했고 집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여행을 떠난 민에게 닥친 소식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화재로 인해 엄마가 죽은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민은 집에 설치한 홈 카메라를 떠올렸다. 동수의 부주의로 불이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동수의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민은 모든 게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남편과도 관계가 있는 여자, 어쩌면 동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도 발견했다. 차계부에 그동안 여자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완벽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민은 남편의 제안대로 순순히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병원에 입원한 민은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도 약은 먹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인한 자동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이 직접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은 자신이 직접 모든 걸 밝히기 위해 몰래 병원을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남편의 계락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나는 남편은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민이 치유받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나온 민의 앞에 나타난 남편과 여자, 그리고 동수의 모습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민은 도망자처럼 오래전 동수를 발견한 폐허가 된 교회에 숨어든다. 인적이 끊긴 밤에 나와 먹을거리를 사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그런데 만약 민이 정말 허상을 보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이 만든 이미지라면 말이다.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민의 망상이라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두가 민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허상 또한 실재합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자의 안팎에 진실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형체를 갖고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따라서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꺼내는 겁니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2~213쪽)


소설 속 민이 입원한 병원에 강연을 하는 마술사의 말처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일 말이다. 모자 속에 숨겨진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양이를 꺼낼 수 있는 이는 또 얼마일까. 모호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미로에 갇힌 채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다. 읽는 동안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를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닌 것이다. 몽상과 악몽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공포에 소름이 돋는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26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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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모자를 쓴 여자]도 읽으면 푹 빠지겠지만, 자목련님, 글에 첫문단부터 푸욱 빠져서...^^

자목련 2021-11-19 13:56   좋아요 1 | URL

얄라 님의 과분한 댓글에 하루가 신나게 열립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금요일 보내세요^^^*
 
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말하기 전에 드러내기 전에 나의 내면을 알아봐 주는 이를 만나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그 순간을 오래 이어가고 싶어 만나 친구가 된다. 상대도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 계기가 글이라면 더욱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테디 웨인의 장편소설 『아파트먼트』 화자 ‘나’가 ‘빌리’를 향한 간절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합평 시간에 모두가 단점을 나열할 때 오직 단 한 사람, 빌리만이 나의 장점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마치 나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과 같았다.


『아파트먼트』의 두 주인공 ‘나’와 ‘빌리’는 1996년 컬럼비아대학 문예 창작 수업에서 만났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갈망을 놓지 못하는 나에겐 안타깝게도 재능은 없는 듯하다. 그런 나에게 빌리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러는 과정에 빌리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대고모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학비에 대한 걱정도 없었던 나는 빌리에게 아파트에서 같이 살자고 말한다. 미안한 빌리는 청소와 음식을 하겠다며 짐을 챙겨 나의 아파트로 들어온다.


각자의 방에서 글을 쓰며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해주는 멋진 사이, 함께 영화나 TV를 보면서 둘의 우정은 깊고 단단해진다. 거기다 이혼 가정으로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와 살아온 경험은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와 빌리는 같거나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소심한 나는 스포츠를 즐겨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속에 있었고 즐거운 척 연기했다. 빌리는 처음 보는 이들과도 손쉽게 대화를 이어갔고 금세 친해졌다. 파티나 모임에서 만난 여자들과도 그랬다. 나에게 없는 것들이 빌리에겐 있었다. 그건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배우지 않고 쓴 빌리의 글은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고 그건 진짜 소설이었다.


빌리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하찮은 존재였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돈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유일하게 나았다. 빌리는 장학금으로 학비를, 바텐더로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서 충당해야 했고 그 와중에 글도 너무 잘 썼다. 나는 빌리의 재능을 질투했다. 그것은 빌리와의 사이에 틈이 생겼고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경제적으로 지지해 준 나만이 빌리의 유일한 친구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빌리는 점점 나에 대한 고마움을 잊었고 다른 친구들을 사귀었다. 대고모의 아파트에서 자신들이 산다는 건 공식적인 비밀이었는데 빌리는 그 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다.


부질없는 나의 열등감은 빌리를 곤경에 빠트리는 계획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그 사건으로 인해 대고모의 아파트에서 쫓겨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파트를 지키고 싶었던 나와는 다르게 빌리는 벌써 거주할 곳을 알아두었다. 단호하게 “넌 정말 네 인생 전부를 여기서 보내고 싶냐?”(281쪽)고 말하는 빌리에게는 아파트도 나도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었을 뿐 정착지는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게 제일 힘들고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그게 전부라고 여길 수 있으니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다른 경험으로 채워진 삶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까.


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286쪽)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과 그런 공간이 있다. 절교하듯 헤어진 친구와 함께 사라진 그 시절.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살아간다. 사라졌다고 믿었지만 한 번씩 떠오르는 기억들이 더 이상 통증을 불러오지 않는 순간과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 않아 문득 서글퍼진다.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던 날들을 회상하는 것처럼 쓸쓸한 일도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누군가와 함께 머물렀던 공간이 그리운 것 어쩔 수 없다. 완벽하고 영원한 교집합을 원했지만 결국엔 서로에게 차집합으로 남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작게나마 겹쳤던 그 부분을 다른 누군가의 무엇으로 채우면서 살아가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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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6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

자목련 2021-11-16 17:19   좋아요 2 | URL
♡♡♡~~~

- 2021-11-25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리뷰들이 다 근사해서 읽고 싶어 집미다요😩

자목련 2021-11-25 11:58   좋아요 1 | URL
소설이 나쁘지 않았고요, 아마도 리뷰 대회 영향도 있을 듯 해요, ㅎㅎ

scott 2021-11-30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당선 축하 합니다 ^^

자목련 2021-12-02 12:32   좋아요 1 | URL
스콧 님, 감사합니다.
좋은 소설이었어요^^

mini74 2021-11-30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2-02 12:32   좋아요 0 | URL
미니 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1-11-30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1-30 21:24   좋아요 0 | URL
저두요~

자목련 2021-12-02 12:32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님, 저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날이 추워요. 안온하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1-12-01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12-02 12: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thkang1001 2021-12-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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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치킨을 배달시키고 추운 날씨에 뜨근한 국물이 생각나 돼지 등뼈탕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걱정과 배달비가 꽤 많이 올랐다는 걸 생각했다. 내가 먹은 동물, 그러니까 닭이나 돼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음식이고 닭이나 돼지는 반려동물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이들이 채식을 선호하고 사회적으로도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당연히 동물을 착취로 인해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동물권을 보호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인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밴드 활동을 하고 글을 쓰는 작가, 책방 풀무질의 주인 전범선의 비거니즘 에세이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는 열흘 동안 지리산 산청 집에 살면서 쓴 글이다. 열흘 동한 하루에 하나씩 주제를 갖고 쓴 초고를 완성시킨 책이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조금 낯설고도 어려운 책이었다.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인간의 폭력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부터 주변에 채식주의자가 없는 내가 변화와 실천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좀 더 솔직해자면 이성적으로는 동조하면서도 동참에 대해서는 회의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몰랐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비거니즘, 동물해방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시각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저자의 말처럼 채식을 통해 재료 본연의 맛을 알고 몰랐던 맛의 세계를 만나는 놀라운 경험도 비거니즘의 즐거움이라는걸. 거기다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내가 매일 쉽게 세상과 접속하는 스마트폰을 오래 쓸수록 고릴라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콜탄이 생산되는 곳이 고릴라의 서식지로 콜탄의 생산이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말 자연을 군림하고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종일까.책은 에세이라는 형식을 지녔지만 인류가 언제 어떻게 육식을 하게 되었는지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에 대한 안내서라 볼 수 있다.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높은 식견으로 채워진 비거니즘으로의 계도서라고 할까. 인류가 불을 사용하고 사냥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남성 중심 사회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이 건너야 할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은 살림으로 하나 된다. 모두 생존과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비거니즘은 우리의 밥상을 죽임이 아닌 살림의 먹거리로 채우는 것이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할당하고 폄하했던 살림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35쪽)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을 비거니즘이 왜 필요한 것인지 그는 독자를 설득하고 강조한다. 그 설득의 과정 역사가 있고 현재 세계의 흐름과 유명인의 주장과 글들을 소개한다. 소로우가 채식주의자가 된 배경과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을 언급하며 동물해방운동이 21세기의 그것이라 설명한다. 인권의 차별에 반대하는 것처럼 동물권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거니즘의 목표는 동물해방이다. 비건 세상이란 에덴동산과 같이 모든 동물이 고통 없이 사는 곳이다.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처럼 들릴 수 있어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하다. 비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종 차별주의와 육시 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125쪽)


책을 읽으면서 자꾸 즐겨 먹었던 삼겹살과 불고기가 되기 전의 돼지와 소의 모습이 생각났다. 고기를 먹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 그 반대에 선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하거나 비건을 선택한 이들 말이다. 최근에 학교나 군대 같은 단체 급식에서 비거니즘을 위한 식단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개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


비거니즘의 목적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나의 도덕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현시점에서 최우선 과제는 공장식 축산을 철폐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채식 인구를 늘려야 한다. 도살장의 소는 내가 무슨 이유로 자신의 젖과 살을 안 먹는지 알지 못한다. 동물해방은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한 운동이다. (147쪽)


비거니즘의 삶을 계획하거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동지애를 전해준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이 책이 정확한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나 같은 독자에게는 왜 비거니즘의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현재 동물 관련한 생업 종사자를 위한 구체적인 지원이나 사업전환에 대한 사유를 찾을 수 없는 게 아쉽다.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꿈꾸는 일은 아름답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심각한 기후 위기로 인해 지구가 아닌 우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세계 갑부의 주장이 이뤄질 날도 쉬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연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더 힘을 써야 한다. 나부터도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지만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변모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능력을 키운다. 환대하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돌보고 연대하고 지각하는 힘을 연마한다. 하나 되는 요령을 터득한다. 뭇 생명과 연결하고, 스스로 온전해지고, 분열된 로고스와 에로스, 정신과 육체를 통합하는 연습을 한다.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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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웃고 있는 돼지가 그려진 삼겹살집 간판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저도 고민이 ㅠㅠ

자목련 2021-11-16 10:10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결심까지는 못해도 조금씩 바꿔나가는 방법을 깊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