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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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삶은 거칠게 없었다. 간섭하는 이가 없으니 자유롭다. 외롭거나 쓸쓸한 때가 오면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 그만이다.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이가 있지만 서로 구속하지는 않기로 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사라 헤이우드의 소설 『캑터스』의 주인공 마흔다섯의 수잔이 그랬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다른 방향을 불러온다. 수잔도 예외는 아니었다. 뇌졸중을 앓던 엄마의 죽음과 유언장, 그리고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런던이라는 큰 도시에서 살며 나는 혼자만의 이상적인 삶을 꾸렸다. 내게 딱 알맞은 집과 능력을 꽃피울 수 있는 직장, 그리고 문화생활에 접근성까지. 회사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었다. (35쪽)


일흔여덟 엄마의 죽음은 의외로 받아들이기 쉬웠다. 문제는 유언장의 내용이었다. 엄마가 남동생 에드워드에 종신 재산 소유권을 증여한 것이다. 마흔세 살의 에드워드는 사고뭉치였고 언제 철이 들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법을 전공한 수잔은 잘못된 유산 분배를 바로 잡기로 결심한다. 가족 간의 분쟁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수잔과 에드워드는 매번 만날 때마다 갈등을 빚었고 둘 사이에 에드워드의 친구 롭이 중재 역할을 했다. 수잔은 그런 롭을 의심했다. 에드워드의 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롭은 친구와 수잔이 잘 지내기를 바랐다. 임신한 수잔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혼자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지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기분마저 느꼈다. 엄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자책,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 생각들, 때때로 그들을 만나면서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거나 추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쩌면 수잔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를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지도 모른다. 무조건 에드워드만 사랑했던 엄마, 술을 제어하지 못한 아빠로 인해 창피했던 기억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임신한 사실을 알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자신이 이상할 정도였다.


수잔은 임신으로 인한 변화를 감당하면서 차근차근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유언장에 관해서도 다양하게 알아보았다. 이모와 엄마의 친구, 목사님을 만나면서 유언장의 효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법적 효력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마다 롭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친절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롭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다가와도 밀어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케이트가 있었다. 수잔의 이웃으로 가끔 귀찮을 정도로 찾아오는 두 아이의 싱글맘. 임신에 대한 모든 과정을 경험자로 알려주고 도움을 주었다. 스스로 가시를 내세우고 닫혀있던 수잔에게 롭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하고 다양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인생은 항상 다른 길을 안내한다. 수잔에게도 그랬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밝혀진 진실과 아이를 갖고 가족에 대한 다른 생각을 품었고 케이트로 인해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배웠다. 고집스럽고 완고한 삶 대신 유연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뽀족한 가시로 자신을 감싸는 선인장 같았던 수잔에게 단호하고 까칠한 말투 뒤에 숨겨왔던 외로움과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는 걸 말이다.


소설에서 롭이 선인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마치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말 같다. 각박하고 치열해진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선인장을 닮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알던 가시가 아닌 수분을 간직한 가시를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손가락으로 커다란 선인장을 매만지며 그는 선인장이 수분을 간직하기 위해 잎이 아니 가시로 진화했다고 했다. 그리고 변형된 줄기가 식물에 약간의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적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생겼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니라고도 했다. 또 선인장의 두꺼운 표면과 잘 발달한 뿌리, 넓은 다육질의 줄기가 수분을 저장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화한 거라고 했다. (250쪽)


서로가 잘 몰라서 시작된 작은 오해는 알려고 하지 않을 때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에드워드와 수잔의 관계는 모든 가족의 그것과 닮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걸 소설은 말한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수잔처럼 우리의 모습도 그렇다. 읽는 내내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수잔의 성장통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리즈 워더스푼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즐거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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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소설리뷰는 언제나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요. 도입부부터 콰과과강!!!! 아.. 게다가 성장통이라니 ㅜㅜ 읽고 싶다.....

자목련 2021-12-08 15:14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이 소설은 뭔가 특별한 것 없는데 또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주인공이 중년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고요^^
 
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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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어떤 순간에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 것일까. 사랑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결국엔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걸 고백하는 일, 사랑의 힘이다. 때로 사랑은 무자비하여 감당할 수 없는 상대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프랑스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에서 그런 사랑을 만났다. 사위와 장모의 사랑이라니. 누가 봐도 부적절한 관계다.


그러나 프랑스아즈 사강에게 있어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만의 사랑, 그것이 주는 고요와 평안, 안정이라고 할까. 세상의 통념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개인이 느끼는 최적의 행복 같은 것 말이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서 돌아온 ‘뤼도빅’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은 유령처럼 대했다. 아내 ‘마리로르’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였다. 화려하고 사치로 채워진 삶이 전부였다. 아버지 ‘앙리’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을 향한 진정한 보살핌이나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명예와 지위가 중요했다. 뤼도빅이 회복되었음을 알리는 파티를 열기로 한다. 파티 준비를 위해 사돈인 뤼도빅의 장모 ‘파니’를 초대한다. 앙리의 두 번째 아내 ‘상드라’는 병약했고 처남 ‘필립’은 도움이 안 되는 존재였다.


소설은 앙리의 저택 ‘라 크레소나드’를 배경으로 그곳에 거하는 이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들려준다. 프랑스아즈 사강은 특유의 섬세함으로 각자의 공간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상황과 성격을 소개한다. 가족 구성원으로 연대나 애정이 아닌 저마다의 목적과 욕망으로 채워진 관계 안에서 뤼도빅은 혼자였고 고독했다. 그런 뤼도빅에게 장모 파니만이 눈물을 보인 이었다. 그런 이유였을까.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저택의 서재 속 피아노 소리에 뤼도빅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그 얼굴은 ‘아득하고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그 테마를 한차례 또 한차례 치는 동안, 절망감이 그를 압도했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음악 안에 있는 것, 그의 주위의 대기 속에 떠돌던 그것을 경험한 적도, 포착한 적도, 누린 적도 없었다. (163쪽)


파니가 치는 슈만에 빠져들었다기 보다 그 순간의 파니에게 빠져든 것이다. 아니, 그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았고 그녀가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그 순간 사랑은 시작되었으니까. 뤼도빅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파니에게 사랑은 전 남편뿐이었다. 하지만 파니 역시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진입한 순간 그들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은 두려움도 호기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또 다른 영역에서 서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운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194쪽)


권태와 우울에서 벗어난 뤼도빅에게 세상은 다시 아름다운 곳이었고 운전대를 잡게 만들었다. 아버지나 아내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고 파니는 고민하고 고뇌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외면할 수 없다. 거대한 저택 안에서 그들의 사랑은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들킬지 모를 밀회의 순간, 온전한 쾌락의 기쁨을 누리는 대신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사랑은 이런 것이었던가.


어쩌면 그런 둘 사이를 모르고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파니와의 미래를 상상하는 앙리, 둘 사이를 진즉 알아채고 관망하며 즐기는 필립, 아무것도 모른 채 파티를 기다리는 마리로르가 있어 그들의 사랑은 더욱 은밀하게 빛을 발했는지도 모른다.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지금의 사랑은 눈부시고 찬란하다.


프랑스아즈 사강은 현재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사랑이고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미완의 소설이기에 더욱 그 사랑과 삶의 궁금해진다. 한편으로는 미완이라 다행이지 싶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도 삶도 모두 미완의 상태이기에 우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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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5 1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구매해서 실눈뜨고 읽으려고 했는데 부적절한 관계를 봐버렸어요 ㅋ 알고읽어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사강 작품은 다 좋은거 같아요. 특유의 감정도 좋고 ^^

자목련 2021-11-25 12:09   좋아요 4 | URL
네, 알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즐겁게 만나세요^^

잠자냥 2021-11-25 12:52   좋아요 3 | URL
헉 전 일부러 그거 안 드러나게 썼는데!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25 1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이 작품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고 썼다는데, 영화로 만들었다면 파니 역할 배우 누가 했을지 궁금해요.
지금 생각하기엔 왠지 중년의 카트린 드뇌브가 떠오릅니다만. ㅎㅎㅎ

자목련 2021-11-25 14:03   좋아요 3 | URL
초반에 마리로르와 필립을 의심했다가, 며느리와 시아버지인가 싶었어요.
저 혼자 답답했나 봐요. ㅎ
파니 역할도 궁금하지만 남주도 궁금해요. 언젠가는 영화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mini74 2021-11-25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글도 자목련님 글도 넘 좋잖아요 ㅠㅠ 읽어보고 싶은 마음, 쌓이는 책. 갈피를 잡지 못하는 카드 그리고 갈등 ㅎㅎㅎㅎ

잠자냥 2021-11-25 17:28   좋아요 2 | URL
갈피를 못잡는 카드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1-11-26 15:16   좋아요 1 | URL
조금 더 고민하시고 결정하세요. 그 쯤에는 카드도 갈피를 잡겠지요. ㅎ
 
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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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저 여인은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일까. 팔뚝에 드러난 타투 때문일까. 여인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케이시의 장편소설 『네 번의 노트』는 읽기도 전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 소설이다.


낡고 오래된 원룸 건물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 전용층 3층의 계단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3층에는 301호부터 306까지 여섯 명의 여자가 혼자 거주한다. 죽은 남자는 303호의 남자친구. 사건 당일에 303호는 집에 없었다. 같은 층의 여섯 명의 여자는 모두 참고인이자 동시에 용의자가 된다.


소설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경찰이 조사한 ‘내사 보고서’와 ‘참고인 진술서’의 형태로 각각 각각 여섯 명의 신상과 직업, 3층 이웃들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죽은 남자가 6개월 전에 든 보험의 수령인이 여자친구인 303란 사실만으로도 범인으로 가장 유력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 나머지 5명에게는 특별한 동기가 없으니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이 원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삶이 모였다. 무당인 301호,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302호, 사회복지사 303호, 지적장애가 있는 304호,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305호, 건물 청소와 관리를 맡은 306호. 306호를 제외하면 미혼의 젊은 여성이다. 그들에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옷차림이나 화장으로 삶을 짐작할 뿐 서로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목표가 같다는 정도다.


여섯 명의 화자가 돌아가면 자신의 삶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원룸에 대한 이미지, 힘겹게 살아온 시간들, 직업에 대한 고충,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들에 이어 3층 여성들의 관찰한 이야기다. 귀신과 죽음,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 고민을 들려주는 301호, 303호의 소음과 남자친구와의 다툼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302호,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자신을 찾는 303호를 좋은 언니라 말하는 304호, 옆집인 304호와 관리인 306호에 대해 언급하는 305호, 참견과 소문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306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게 소설의 전부라고 여겼던 나 같은 독자는 점점 작가가 만든 분위기에 빠져든다. 자발적 비대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서 벗어나 이웃과 소통을 원하는 마음, 보이는 게 아닌 들리는 것으로 타인의 삶을 짐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똑. 똑. 똑. 똑

302호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방문할 때는 대개 노크를 네 번 정도 해야 한다. 두 번은 친근한 사이일 때, 세 번은 안면이 있을 때. 처 방문일 때는 노크 네 번이 적당하다. (235쪽)


저마다 감추고 숨겨놓은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난다. 소설 속 원룸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며 여섯 명의 화자는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부다. 우리 역시 그들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뜻이다. 1인 가구의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훌륭한 추리소설이자 스릴러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은 끝났지만 삶은 끝이 없고 낡고 오래된 건물의 이미지는 오래 기억에 남아 한 번씩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서로 무관심하게 떨어져 살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일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뚜렷한 경계가 그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는 모두 빛으로 연결돼 있다.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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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싹..🥶

자목련 2021-11-25 11:56   좋아요 1 | URL
아, 정확한 표현이에요.
이 소설 다 읽고 소름 돋았어요 ㅎ

- 2021-11-25 12:05   좋아요 0 | URL
뭐랄까 되게 현실적일 것 같아서 ㅋㅋ 무서운거 읽고 싶을때 읽겠사와요!

자목련 2021-11-25 12: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내가 아는 원룸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요.

프레이야 2021-1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강렬한 느낌이 들어요. 오싹 소름 돋는 소설 요즘 좀 갈증 나던데 찜해 갑니다 자목련 님.

자목련 2021-11-25 14:07   좋아요 1 | URL
네, 표지처럼 내용도 그러해요.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더 궁금해져요.

그레이스 2021-11-2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똑,똑,똑,똑
왜 이렇게 소름이 돋죠?

자목련 2021-11-27 15:44   좋아요 0 | URL
이제 노크 소리가 무섭게 들릴 것 같아요.
집콕으로 배달이 많아서 벨 대신 노크가 많은 요즘, 소설 덕분에 조금 경계할 것 같아요. ㅠ,ㅠ
 

수학 공식을 생각한다. 공식에 숫자만 넣으면 어떻게든 결괏값이 나오는 공식들. 학창 시절에는 이해도 못 하면서 무조건 외우기에 급급했던 공식들 말이다. ‘함수’의 그래프처럼 ‘기울기’를 구하는 일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차 방정식’, ‘근의 공식’처럼 미지수에 숫자를 대입해 계산하면 간단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게 삶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사는 게 점점 고되다.

바닥을 치면 괜찮다고 했던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으니 바닥을 차고 올라오면 된다고. 그런데 삶이라는 게, 삶의 바닥이라는 게, 그 깊이가 넓고 깊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그 깊이는 삶이 끝날 때까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바닥의 바닥을 딛고 바닥의 바닥으로 올라선다. 손톱이 자라는 만큼 좋아지는 기미가 보인다고 믿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절망은 한 뼘씩 자란다. 절망에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나름 나는 단단해졌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과 잠시 멀어지고 만다.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를 뒤적이다 만난 시 덕분에 다시 절망하지 않을 힘을 붙잡는다. 나를 찾는 게 삶이고 삶이 나를 찾는다로 바꿔 읽으면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루미의 시 한 구절이다


이렇게 바꿔 읽을 수 있겠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고?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신은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을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써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것

당신을 찾고 있는 것

둘 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둘을 찾을 때까지

저 돌이 기어코 만날 때까지

되뇌고 되뇌고 또 되뇌어야 한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전문)



이런 시를 읽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나와 닮은 슬픔을 나와 닮은 절망을 나는 힘껏 안아줄 수 있으니까. 오래 만진 슬픔, 오래 만진 고통은 이미 내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내게로 스며든 것들은 따로 떼어놓고 볼 때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좋은 이에게, 가까운 이에게 마구 추천해야겠다.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다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 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한 자리에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오래 만진 슬픔」, 전문)


오히려 바닥의 바닥은 끝이 아니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해볼 만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고통이 키운 힘을 생각한다. 그것들로 채워진 나의 일부는 얼마나 단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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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1-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만에 이이의 이름을 듣고, 시를 읽습니다. ^^

자목련 2021-11-20 12:2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올 봄에 낭노 시집이 참 좋았습니다.
미세먼지가 나쁨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1-11-19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만추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나 봐요
이문재 시집이 새로 나왔군요. 반가운 마음에
덥석 담아갑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0 | URL
내일 밤에 비가 내리면 추워진다고 해요.
이문재 시집, 좋습니다^^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scott 2021-11-19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올려 주신 시
여러번 읽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서울은 요 며칠 미세먼지로 가득!
자목련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2 | URL
스콧 님의 마음에도 좋은 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2021-11-2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색은 어둠과 통한다. 어둠은 암흑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벽 두 시 어슴푸레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만 목격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는 나중 문제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뒤로 어디선가 자신을 쫓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는 누군가를 찾는 행동은 지나친 것일까. 권정현의 장편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속 ‘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민’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건실한 남편과 아들 ‘동수’와 고양이 ‘까망이’, 반려견 ‘무지’까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우연하게 남편과 만나 결혼한 민은 은수를 낳고 행복했다. 유모차에 세 살 된 은수를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약수터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민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은수가 유모차에 나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형체, 빠르게 지나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민을 달랬다.


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않기로 한 민과 남편은 ‘무지’라는 반려견을 키웠다. 그러다 동수를 입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건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가 아니었고 아이의 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이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목격하지 전까지는. 민은 상담을 받던 의사를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동수와 무지, 까망이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무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기 시작했고 까망이가 무지의 눈을 공격했다. 단순하게 여길 수 없었던 민과 다르게 남편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건 시작이었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고 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했고 집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여행을 떠난 민에게 닥친 소식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화재로 인해 엄마가 죽은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민은 집에 설치한 홈 카메라를 떠올렸다. 동수의 부주의로 불이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동수의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민은 모든 게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남편과도 관계가 있는 여자, 어쩌면 동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도 발견했다. 차계부에 그동안 여자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완벽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민은 남편의 제안대로 순순히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병원에 입원한 민은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도 약은 먹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인한 자동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이 직접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은 자신이 직접 모든 걸 밝히기 위해 몰래 병원을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남편의 계락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나는 남편은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민이 치유받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나온 민의 앞에 나타난 남편과 여자, 그리고 동수의 모습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민은 도망자처럼 오래전 동수를 발견한 폐허가 된 교회에 숨어든다. 인적이 끊긴 밤에 나와 먹을거리를 사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그런데 만약 민이 정말 허상을 보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이 만든 이미지라면 말이다.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민의 망상이라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두가 민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허상 또한 실재합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자의 안팎에 진실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형체를 갖고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따라서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꺼내는 겁니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2~213쪽)


소설 속 민이 입원한 병원에 강연을 하는 마술사의 말처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일 말이다. 모자 속에 숨겨진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양이를 꺼낼 수 있는 이는 또 얼마일까. 모호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미로에 갇힌 채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다. 읽는 동안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를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닌 것이다. 몽상과 악몽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공포에 소름이 돋는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26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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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모자를 쓴 여자]도 읽으면 푹 빠지겠지만, 자목련님, 글에 첫문단부터 푸욱 빠져서...^^

자목련 2021-11-19 13:56   좋아요 1 | URL

얄라 님의 과분한 댓글에 하루가 신나게 열립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금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