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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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제목이 시놉시스를 대신한다. 정지윤의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이 그러하다. 유령이 등장할 거라는 기대와 세상 끝 아파트가 가리키는 것이 결코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 짐작한다. 세상 끝 아파트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제목과 표지에 끌린다는 건 나쁜 징조는 아니다.


증강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가까운 미래, 그것과 거리를 두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아파트 ‘베니스힐’가 있다. 저마다의 선택으로 텐서칩과 확장 현실을 거부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친한 친구 J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십 대 소년 ‘요한’과 그를 돕는 과외 선생 ‘쌤’이 비밀에 다가선다.


요한의 친구는 죽기 전에 ‘베니스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라니. 과연 무엇일까? 요한은 친구가 죽은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 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요한의 어머니에게 신뢰를 쌓은 쌤은 요한과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요한에게 ‘베니스힐’를 벗어난 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증강현실이 가능한 삶,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놀라고 감탄한다. 요한은 소설 밖 독자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요한을 통해 독자는 함께 증강현실의 세계로 빠져든다. 동시에 왜 ‘베니스힐’는 증강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 중심에는 요한의 부모가 있었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과 부동산 투기가 있었다.


쌤은 밖에서 요한은 ‘베니스힐’안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명문대 출신인 쌤은 요한이 ‘베니스힐’에서 도청과 해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요한은 ‘베니스힐’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인간의 욕망과 마주한다. 놀랍게도 요한의 어머니가 개입되었고 쌤도 자신의 외삼촌 죽음을 밝기기 위해 요한을 이용한 것이었다.


가상으로 그려낸 미래의 모습이지만 과연 가상으로 끝낼 수 없다. 증강현실,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설 속 ‘베니스힐’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의 공동체 공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모두에게 과학의 발전을 강요할 수 없으니까.


모든 연구와 과학의 발전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기술을 독점으로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런 경고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SF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지니면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르포 형태의 현실 고발 소설이다. 짧은 스토리에 담긴 강력한 주제가 오래 남는다. 소설 속 미래가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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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1-12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검색하다가 이 책 시리즈 보았는데, 다른 책보다 가볍고 소재도 괜찮은 것 같았어요.
잘읽었습니다. 자목련님, 추운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자목련 2022-01-13 09:21   좋아요 1 | URL
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이라 어디서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듯해요.
서니데이 님, 오늘은 눈이 가득입니다.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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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는 아직 읽지 못한 김연수의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시작도 못했고 어떤 책은 읽다가 말았고 어떤 책은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그가 먼저 읽고 쓴 글을 보고 그가 추천한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연수의 글을 좋아하고 믿는다. 좋아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산문이나 소설을 통해 그가 ‘우리’를 놓지 않고 있다는 것과 보편적인 일상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시절일기』는 어떤 시절을 지내고 견디는 것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통로처럼 다가온다. 일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적 영역보다는 칼럼이라 할 수 있다.


문장을 하나 쓴다. 그다음에는 침묵이다. 그러다가 문장 하나를 더 쓴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이다. 문장을 쓸 때마다 만나는 이 침묵은 완벽한 무無처럼 느껴진다. 그때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인식의 끝에서 더듬거리는 중이다. 그렇게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무와 대면한 뒤에야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8쪽)

살아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지고 편안해질 거라 여겼지만 반대로 현실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면 살아가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세상이니 누군가는 쓰는 일과 읽는 일이 무용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꾸준하게 쓰는 작가와 그것을 읽는 나에게는 유용하다. 말하지 않아도 여전히 거대한 슬픔으로 존재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나의 일이 아니니 관심을 거둘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김연수의 글로 다시 되새기는 그날의 기억과 기록은 몸에 박힌 가시처럼 따갑고 아프다. 글이 주는 깊은 울림, 그 힘을 믿는 것이다.그게 무엇이든 쓴다는 것, 멈추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글쓰기는 중요하므로. 대단한 글이 아니더라도 미완성의 글로 남더라도 쓴다는 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니까. 어쩌면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순간 무너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49쪽)


무언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거기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문학이 애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문장이 어떤 날의 나를 지탱하게 했으니 나는 읽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 어느 시절, 그 문장은 김연수의 것이기도 했으니 우리는 한 시절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바라봤다고 여겨도 좋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어느 계절 남산타워를 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남산타워에 그토록 끌렸던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거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에서 누군가는 천국에라도 온 것처럼 기뻐하고 누군가는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괴로워할 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남산타워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처럼 서 있었기에. 인생이 여행이라도 되는 양, 짐짓 여행자처럼, 그 모든 기쁨과 고통을 바라보는, 그러나 더없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눈동자로. (127쪽)


오래 머무르고 싶은 부분이 많았고 읽고 있어도 도통 잘 모르겠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깊은 사유의 시작이 오랜 글쓰기와 폭넓은 독서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혼자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청춘의 문장들』이나『소설가의 일』과는 다른 글의 무거움과 깊이는 50대에 접어든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장래희망으로 다시 할머니를 말하는 글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함께 즐거웠다.


나는 읽는다. 때로 쓰기도 한다. 읽고 쓰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작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예술의 존재에 대한 이런 글에서 예술은 우리의 인생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유한하며 소멸하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 의미하는 것들을 가늠해 본다.


예술은 사라짐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심리상태, 재능, 예술가로서의 위상 등등이 모두 소진되는 과정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고 나면 작품 자체도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라짐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65쪽) ​


김연수의 『시절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걸 각인시킨다. 매일 경험하는 세계가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의 인생과 겹쳐지는 순간은 이어질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분노하고 어느 순간에는 감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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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글은 어떤 내용이든 참 곱고 차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ㅎㅎ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1 | URL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침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2-1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맑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2-02-11 09:56   좋아요 2 | URL
^^*
금요일과 이어진 주말 신나게 보내세요^^
 
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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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말이다. 복잡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과 같은 개념이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누리는 이는 적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를 다스리는 일, 심연 깊은 곳으로의 침잠은 절실하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이자 욕망의 관계로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갈수록 소란하고 위험하고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독립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내면의 장소, 내 영혼의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장소가 필요하다. 내 작은 방은 하나의 은신처이자 전망대이다. 이 은신처에서 나는 영혼의 파수꾼이 되고 상처 난 인간의 위엄을 가다듬어 세우고, 그 순간 이 은신처는 희망의 전망대로 전화轉化한다. (11쪽)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내 작은 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작은 방이 된다. 이 작은 책이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 쉴 수 있는 작은 방이라는 거다. 37장의 흑백사진으로 만난 삶, 그 안의 작은 공간에 담긴 사연과 시인의 사유가 우리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지 묻는다. 고요하고 아득한 작은 방을 채운 쓸데없는 상념들을 하나씩 지우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52쪽)






어느새 나는 흑백 사진의 그 방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터전을 잃어버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부모, 그곳이 어디든 가족과 함께 있다면 작든 크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지상 최고의 집이라는 게 내게로 전해진다.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힘겹고 고단한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진이 말하지 않는 어떤 슬픔과 고통에 동참한다.


집이란 언제든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는 곳.

다친 새처럼 상처받은 존재들이 그 품 안에서

치유하고 소생하고 다시 일어서 나가는 곳이니. (42쪽)


살아가는 일은 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라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가꾸고 단장하며 살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프고 힘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집, 나의 작은 방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의 고귀함을 배운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소중한 인생이고

이 인생길의 주인은 나 이기에. (86쪽)


과연 나는 내 한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내게는 슬픔을 위로하고 포옹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있을까. 어쩌면 거기 그 자리에 있던 그 방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 넓고 더 따뜻한 집에 살면서도 어느 시절 반지하의 방, 겨울에도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날들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나를 본다.


‘어찌할 수 없음’ 투성이인 우리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고’ ‘어찌해야만 하는’ 것은 내 마음 하나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내 마음의 빛이고, 내 마음의 방으로부터다. (15쪽)


여기 내가 쉴 곳이 있는데, 하루를 마치고 누울 곳이 있는데, 무엇을 더 갖고자 욕심내고 불평하는가. 진정한 내 마음의 방 하나를 꾸리지 못한 지독하게도 가난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라도 고요와 환한 빛으로 채울 수 있는 내 마음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싶다.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나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 내 마음의 방, 119쪽)


메마른 우리 영혼을 따뜻하고 보드랍게 채워줄 에세이가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팍팍한 삶으로 치진 당신에게 작은 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쉴 곳으로도 충분하니 마음의 방을 이곳에 마련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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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10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라카페 갤러리 가서 보고 싶어요 ^^

자목련 2022-01-11 09:09   좋아요 1 | URL
직접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01-1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은 참 단아하고 좋습니다. *^^*

자목련 2022-01-11 09:10   좋아요 1 | URL
음, 단아하지 않지만 단아란 말은 좋아합니다. ㅎ

Falstaff 2022-01-1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도 댓글 썼다가 지웠는데요....
지금 시대 대표적 운동권 소설가이기도 한 이인휘의 <건너간다>를 보면 요즘 박노해가 그쪽 사람들한테 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혹시 이젠 이런 책을 낸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댓글을 달았다가 왼쪽 오른쪽 따지는 게 싫어서 말입니다.

자목련 2022-01-11 09:14   좋아요 1 | URL
같은 길로 간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가늠할수 없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만난 박노해의 글과 사진이 좋을뿐.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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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생각뿐 이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며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카야’와 그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의 관습대로 얼음 속에 엄마를 보관하고 볼 수 있다. 카야는 매일 얼음관 속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녀온다. 거기 엄마가 있으니 괜찮았다. 엄마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봄이 있는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카야는 엄마가 들려준 봄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의 얼음 관을 ‘스미스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과 집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카야는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겨울을 스미스 일가가 마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만들었다. 카야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스미스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아빠가 출장을 간 사이 친절한 스미스 씨는 카야를 저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가까이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카야를 엄마처럼 꾸미려 했다. 그건 카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 저택에 엄마가 있지만 카야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스미스 씨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알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야는 죽었을 것이다.


아빠도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다친 아빠까지 모든 게 스미스 씨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공동체였던 마을에 스미스 일가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카야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을 떠나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와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도끼로 직접 엄마의 얼음 관을 깨고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얼음 관을 올려다봤다.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부드러운 리본처럼 얼음 관을 휘감았다. 얼음 관에 금이 가고, 표면에 미세한 육각형 무늬들이 새겨졌다. 반짝이는 얼음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눈의 결정들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얼음 관 속의 엄마도 빛이 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빛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두 눈 가득 담았다. (124쪽)


아름다운 얼음 궁전을 떠올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이별, 스미스 씨가 상징하는 권력자의 횡포, 그 모든 걸 경험하는 카야의 성장기라 볼 수 있다. 성장은 주저하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야의 용기와 결단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판타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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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환대하는 일은 온전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공개가 전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통과한다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김초엽의 단편집 『행성어 서점』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김초엽의 짧은 소설 14개는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 혹은 현실에서도 이미 누군가는 경험했을지 모를 일상,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상상 속 우주의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기이하면서도 낯선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김초엽이 말하고자 하는 건 연대와 환대라는 걸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든다. 거기다 소설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의 역할도 훌륭하다. 이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 그림을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현실이 아닌 공상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소설 속 행성어 서점이 궁금하고, 이끼 같은 먼지 뭉치인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곁에 두고 싶고 미래에는 버섯과 공생하는 인간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뿐인가. 내가 잘 안다고 믿는 이가 혹시 외계의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고 연구를 목적으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공권력을 의심한다. 말 그대로 짧은 소설인데도 잘 짜인 스토리에 감탄한다.


최고의 건축가였던 「선인장 끌어안기」의 ‘파히라’는 수술 후유증으로 몸에 닿는 모든 것에 고통을 느끼는 접촉 증후군을 앓고 있다. 모든 물체와 접촉을 피하는 ‘진공의 집’을 설계해 그곳에 선인장과 살고 있다. 그저 닿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선인장이라니. 보조 로봇인 ‘나’는 그가 지난 로봇에게 보인 괴팍한 행동의 원인을 찾는 지시를 받았다.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와 같은 접촉 증후군이 있는 아이 소영과 함께 지냈던 시간, 고통과 통증을 이해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소영에게 배웠다. 자신과 파히리가 선인장 같다고 말한 소영. 다른 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영이 파히라를 안아봐도 되냐는 부분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알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던 소영.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선인장 끌어안기」, 30쪽)


우리가 끌어안는 선인장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의 고통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 가운데 진정한 그것은 얼마나 될까. 파히라와 소영은 서로가 같았고 같았기에 사랑하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을 꺼려 한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건 완곡한 표현일 뿐, 김초엽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약자와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라는 걸 느낀다.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에게도 그런 대우를 하는 지구인이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사고로 3년 동안 혼수상태였던 「우리 집 코코」속 ‘나’는 그 사이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처음 만났다.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미래엔 인간보다는 다른 종의 무언가가 인간을 더 따뜻하게 포옹하고 격려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우리 집 코코」, 149쪽)


그런 미래에는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처럼 행성과 행성을 오가며 여행하거나 정착하는 이들도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속 다른 세계에서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존재도 많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이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미래의 지구는 수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도 지구를 떠나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온 누군가는 정착하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는 그런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포항에서 강릉의 연구소로 가는 중 ‘다현’은 폐업 직전의 휴게소에서 식당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초미각자’ 주인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한 다현은 뛰어난 미각 기능으로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는 주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쨌든 이곳이 다른 미각을 가진 거주자들에게 더 환대를 베풀 수 있는 행성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206쪽)


소설을 읽으면서 감각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짜고 맵고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을 거라는걸. 그런 의미로 미래의 지구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태도의 삶이어야 한다. 중대하고 위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공존하며 연대하는 삶 말이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가장자리 너머」, 215쪽)처럼 삶은 변화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다름을 환대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존의 삶을. 


김초엽의 소설은 언제나 그런 미래를 지향한다. 다가올 미래가 소설 속 모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에겐 김초엽이 소설에서 보여준 연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힘이 필요하다. 낯선 생명체와 이웃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의 왕래를 통해 더 넓은 우주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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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6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작가가 다름에 대해 참 잘 다루는 거 같아요. 본인의 다름에 대한 철학도 화고한 것 같고. 가벼운듯 가볍지 않은 글들. 자목련님 글에 공감합니다. 이 젊은 작가 저도 응원합니다. ~

자목련 2022-01-07 10: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거겠지요.
미니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