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볼트 -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시드볼트운영센터.산림생물자원보전실 생물자원조사팀.야생식물종자연구실 지음 / 시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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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지구의 멸망과 재건을 다룬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려주며 현재의 지구를 잘 보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와 공감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반대로 말하면 우리 시대에는 공감과 연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덩굴식물은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더 나은 지구를 위해 사람들이 덩굴식물을 다른 곳에서 길렀기 때문이다.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이란 부제 때문일까. 박정우가 엮은 『시드볼트』 를 읽으면서 김초엽의 소설이 겹쳐졌다.


‘시드볼트’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예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를 통해 종자를 보존하는 공간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토종 씨앗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그 씨앗을 채취하고 보존하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심각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식물 종자를 저장하는 일의 의미와 사명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대 최장기간 산불인 지난봄 울진, 동해의 산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곳의 야생식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책은 시드볼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야생식물의 씨앗의 채취 과정과 보관 방법을 상세히 소개한다. 시드볼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드뱅크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 종자은행인 시드뱅크에 보관된 종자는 반출할 수 있지만 시드볼트는 저장이 목적이다. 시드볼트에 맡긴 종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지구 대재앙으로부터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유엔의 지원과 지지를 받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이며 다른 한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이다.


시드볼트의 가장 중요한 일, 종자 수집이다. 종자 수집을 위해 백두대간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산을 다닌다고 생각하면 등산의 이미지를 떠올리 수도 있지만 오산이다. 하나의 종자를 얻기 위해 개화시기를 중심으로 종을 파악하고 결실을 맺을 시기를 기다린다. 열매를 바로 채집할 수는 없다. 열매가 가장 잘 익었을 경우 종자를 수집하는 게 원칙이다. 종자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식물체도 수집하는데 나중에 수집할 종작의 근거가 된다. 개체의 수량이 적은 경우에는 수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내부의 모습처럼 수십 미터 깊이에 3중 철판 구조로 이루어진 영하 20도의 춥고 어두운 공간 생명을 품고 있는 종자. 현재 13만 7천여 점의 생명을 품고 끝까지 남을 종자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이 모든 과정은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목적은 시드볼트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알리는 일이다. 시드볼트를 알리는 다른 방식으로 종자 전시회가 있다. 언뜻 종자를 가지고 무슨 전시를 할까 싶은데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종자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을 해 종자의 다채로운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다. 설명 없이 사진만 본다면 이게 정말 종자일까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우주의 행성을 보는 기분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점점 사라지는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면 야생식물의 그것은 부족한 상태다. 누군가는 개량종이 있어 더 좋은 품질과 생산성이 보장된 거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바나나의 경우나 구상나무의 현실을 보면 왜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먹는 바나나는 변종 파나마병에 걸렸다고 한다. 사람이 먹기 좋고, 재배하기 좋게 개량되면서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삭제된 결과다. 변종 파나마병에 저항할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개량종이 아닌 야생종 바나나를 연구하는 일이 해답인데 변종 파나마 병에 내성을 갖고 있는 야생 바나나가 멸종 위기라는 것이다. 그저 쉽고 편하게 먹기만 했던 일반 소비자인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구상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놀라웠다. 이 책을 읽기 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주도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빠르게 고사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터라 그 심각성이 한층 더 크게 다가왔다. 온도가 높아지고 눈이 내리지 않아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어 가고 있다. 조금씩 개체수가 줄어들면 언젠가 구상나무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일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국가보안시절 시브볼트에 대해 누군가는 거대한 국가적 이익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시드볼트 운영은 이익이 아닌 인류를 위한 자원을 보관하는 가치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오늘 마주한 꽃과 나무를 내년에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구 대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태풍, 쓰나미,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후세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 어떤 기후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존뿐입니다. 적어도 사라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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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세계 두 곳밖에 없는데 그 한곳이 우리나라에 있다구요?!
구상나무 원산, 자생지가 우리나라죠^^
이 책 급 관심이 가네요

자목련 2022-04-04 11:21   좋아요 1 | URL
네, 아직은 시드볼트에 종자를 보관하는 의뢰가 많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책을 출판해서 국내외에 알리는 게 목적인 것 같아요.
고사한 구상나무의 모습은 참혹했어요.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 님, 환한 봄날 이어가세요!!
 
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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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문학과 우정에 대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결국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여전히 삶의 관계가 힘든 이들에게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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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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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일이 아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굳센 믿음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지구는 아픈 신호를 낸 지 오래다. 지구 어딘가에서 스스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 스스로의 자생 능력은 가능할까. 어쩌면 인류가 없다는 가정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우리는 살아가는데 그저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먼 미래의 인류는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속 나오미와 아마라처럼 목숨을 걸고 어딘지도 모르는 도피처를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2050년의 지구는 치명적인 ‘더스트’로 모든 생물이 죽어갔다. 더스트를 막을 수 있는 돔을 만들지만 모두가 그곳에서 지낼 수는 없다. 자원의 한계는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돔시티를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한다. 나오미와 아마라가 그토록 찾던 ‘프롬 빌리지’도 그 중 하나다.


『지구 끝의 온실』 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프롬 빌리지가 그곳이다. 프롬 빌리지에서 사람들은 더스트를 피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멸망 후 재건한 지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2129년 더스트생테연구센터에 근무하는 아영은 폐허 도시 해월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에 대한 피해 소식을 듣고 조사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잠시 해월에 살았던 아영은 모스바나를 보고 기억 속 이희수 할머니의 정원을 생각한다. 그곳에서 푸른빛을 내던 식물은 분명 모스바나였다.


아영은 모스바나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과정에서 모스바나를 약초로 사용하는 나오미와 만난다. 그리고 나오미를 통해 2050년 프롬 빌리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보그이자 식물학자인 레이철과 정비사 지수가 프롬 빌리지의 지도자였다. 레이첼은 유리온실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지수와 협력하며 공동체를 돕는다. 더스트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모스바나도 레이첼이 개량한 식물이다. 프롬 빌리지는 더스트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외부의 공격과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존재했다. 누군가는 프롬 빌리지를 지키기를 바랐고 누군가는 모스바나로 다른 프롬 빌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모스바나는 더스크의 종식과 지구 재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아니다. 그러나 프롬 빌리지를 떠나 세계 곳곳에서 모스바나를 퍼트린 사람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2129년 다시 모스바나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롬 빌리지에서 시작된 연대와 희망을 알리기 위함일까.


어린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로 시작해 레이첼과 지수 그리고 아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스바나를 통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더스트라는 잔혹한 재해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증인인 프롬 빌리지의 그들은 마치 과거 전쟁을 경험한 할머니 세대를 생각나게 한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깨달음이라고 할까.


푸른빛의 먼지를 만들어내는 모스바나를 상상한다. 팬데믹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모스바나는 무엇일까. 마스크, 백신, 치료제, 의료진, 그 모두가 모스바나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면서 곁을 지키는 어떤 마음은 아닐는지. 김초엽 작가가 말하는 그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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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557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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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의 첫 시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떤 분위기. 그건 무엇일까.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글, 이혜미의 시를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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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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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분명한 목표가 생기면 힘들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오직 목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표에 도달했을 때 삶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버티게 된다. 누군가에게 목표는 취업, 결혼, 집장만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성적이나 모아둔 돈의 금액이 된다. 민경민의 장편소설 『훌훌』의 주인공 열여덟 살 유리에게는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이 목표였다. 막연하게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보통 청소년의 마음과는 다르게 확고했다.


유리에게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입양된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이다. 왜 그랬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맡긴 후 떠나버렸다. 할아버지와 사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공간에서 할 일만 하면 문제 될 게 없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할아버지는 2층에서 지냈고 유리는 1층을 사용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필요한 용돈도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둘 사이에 친밀감이라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유리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학교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이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독립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죽었고 엄마의 아들 연우가 오기 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동생이면서 동생이 아닌 연우는 유리에게 돌봄의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연우를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유리와 똑같이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자주 여행을 가고 아픈 기색이 역력했지만 유리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연우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와 다투고 경찰이 찾아오고서는 달랐다.


연우에게는 가정폭력의 흔적이 있었고 엄마의 죽음에도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제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야 했다. 할아버지의 상태와 연우를 어떻게 할지, 엄마는 왜 자신을 입양하고 버렸는지 말이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대학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했고 유리는 그 소리에 화를 냈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했다. 어떤 상처도, 어떤 부대낌도, 어떤 위태로운 기대나 상처가 되고 말 애정도 할아버지와 내게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중략)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연우가 들어왔다. 연우와도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거리를 두어야 할까. 연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172쪽)


유리는 할아버지와 가족은커녕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고 여겼다. 친구와 학교 선생님들 사이도 다르지 않았다. 입양아라는 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만 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니 진심이나 사정 같은 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연우는 달랐다. 연우도 자신처럼 성장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유리의 그런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걸 털고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은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암에 걸린 할아버지, 자꾸만 애틋한 연우를 향한 어떤 마음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때로 그럼 마음은 비밀이 되고 때로 상처가 된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유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담임 선생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다.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207쪽)


『훌훌』은 밝고 따뜻한 성장소설이다. 입양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가 갖는 편견을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유리를 둘러싼 친구(미희, 주봉, 세윤)와 어른인 할아버지와 담임 선생님은 있는 유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한다. 그런 관계로 인해 유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마도 연우에게 유리도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유리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받은 상처도 있을 것이다. 상처와 함께 살아가며 성장하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다 훌훌 털어버리는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유리는 ‘훌훌’ 털어버리고 ‘훌훌’ 가볍게 날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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