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늦잠은 사라졌다. 귀가 아프고 병원에 다니면서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그랬다. 늦잠의 달콤함은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건강한 귀를 다시 찾는 건 어렵다. 꼬박 한 달 동안 약을 먹고 있다. 주말에 만난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끝이 보이니까.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 나의 오른쪽 귀는 맑음은 아니었다. 투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불안은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통증도 없다. 그러니 종종 잊는다. 나의 귀가 아직 아프다는 걸 말이다.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처음 귀가 아파서 병원을 찾고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며 들었던 마음과 한 달이 지난 지금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는 마음은 같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는걸, 괜찮아지고 있다는걸,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내 귀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밥을 먹고 약을 먹을 때에야 확인한다. 아, 나는 여전히 귀가 아픈 사람이구나. 여전히 귀는 아직 회복 중이구나.


무엇이든 필요한 시간이 있다. 뭔가를 배우데 걸리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양치질을 하는 시간. 짧게는 몇 초부터 몇 시간, 몇 날, 몇 년까지.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즐겁고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힘들다. 가장 공평한 게 시간이라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배우는 걸 생각해보자. 똑같은 교구, 교수가 아니라면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최고의 교재와 강사가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독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집안을 청소할 때도 최신형 청소기와 구형 청소기를 사용하는 건 다르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다르다. 2020년의 시간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코로나19로 병상에 있거나 그들을 지키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0학번 아이들, 21학번을 준비하는 고3에게도 올해는 남다를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낙담하고 지친다. 올 초에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 괜찮아진다는 다짐, 서로를 격려하던 웃음. 잃어버린 마음, 희망을 품었던 마음, 기대했던 마음, 그 마음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책 한 권.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 도착하는 가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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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0-27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 아픈 게 오래 갔지만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일 듯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을 보낼 때는 시간이 안 가는 듯한데 지나고 나면 빨리 간 것 같기도 하죠 한해라는 시간도 그렇군요 시월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자목련 님 앞으로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으면 아플 때 일을 잘 생각하지 못하기도 해요 다 그렇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까지 약 잘 드시고 잘 낫게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희선

자목련 2020-10-27 14:44   좋아요 1 | URL
네, 끝이 보여요, 근데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조심하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2020년도 2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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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어디서 일하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 일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무턱대고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업무가 쉽다는 생각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게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가쓰키 아마네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의 주인공 시미즈 미소라의 일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는 대학 졸업반이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고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반도회관의 연락을 받는다. 원하는 분야는 부동산 업무지만 현재는 장례식에서 일하고 있다. 장례식장을 떠올리면 뭔가 슬픔이 몰려온다. 그 슬픔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되도록 가고 싶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가 장례식장이니까.


소설은 장례식장 빈도회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그러니까 미소라에게는 고객들의 사연이라고 할까. 미소라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하루 전 언니가 죽은 것이다. 그 언니의 영향으로 미소라는 죽은 자를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미소라는 반도회관에서 특별한 죽음의 장례식을 담당하는 우루시바라와 함께 일을 진행한다. 우루시바라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베테랑이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자실이나 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죽음의 장례 의뢰가 많다.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이가 마지막으로 분신을 통해서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의 장례식, 임신한 채로 사고로 죽은 임산부의 장례식, 인해 아파서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한 어린아이의 장례식, 병으로 떠난 남편을 부정하는 아버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결국 죽음을 맞은 아내,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다. 온전히 이별하는 일은 죽은 자와 남겨진 자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다. 특히 미소라가 볼 수 있는 영혼에게는 더욱 그랬다. 비슷한 나이에 죽은 언니에 대한 기억이 더욱 컸다. 자신의 장례식에 가방을 들고 찾아온 임산부, 엄마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 미소라는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설이니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만약 그런 이들이 가족이라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미소라 같은 이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이 세상을 떠났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아. 이런 식으로 후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승화하는 수밖에 없지. 장례는 그런 자리이기도 해.” (40쪽)


우루시바라의 말처럼 장례는 가족에게 이별의 시간이자 마지막으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을 집도하는 일이 참 대단한 일이라는 걸 느낀다. 소설은 장례식장의 업무와 죽음에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미소라의 경우엔 죽은 언니와 심장이 아픈 할머니를 통해 죽음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동생을 무척 기다린 언니, 자신을 향한 애정을 무한정 표현했던 언니가 미소라가 태어나기 하루 전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할머니를 통해 듣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미소라는 장례식장에서 다양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선뜻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의미 있는 일이구나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슬퍼하고 배웅하며 가끔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면면히 이어지는 슬픔의 감정은 시대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97쪽)


우리는 모두 안다. 죽음이 찾아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일은 되도록 미루려 한다.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란 제목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머지않은 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그 머지않은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룬다고 해도 좋을까. 죽음을 만나고 죽음을 만지는 공간인 장례식장을 다룬 소설이지만 꺼림직하거나 무서운 기운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이다. 아마도 그건 떠난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아프고 슬프지만 우리 삶은 죽음과의 동행이라는 걸 알기에 이제는 그 슬픔도 삶의 힘이라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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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3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많이 경험할 수록 (간접이 대부분이겠죠)그리고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록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 뿐아니라,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슬픔이 사라진데요. 죽음과 관련된 어느 책에서 읽었어요. 어쩌면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자목련 2020-10-26 09:55   좋아요 0 | URL
네, 말씀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합니다.
많이 쌀쌀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입을 것 같은 건 버리는 거야.”

“자주 입는 옷만 남기고?”

“웅, 좋아하고 즐겨 입는 것만.”


작은언니와 나눈 대화다. 계절이 바뀌면서 정리하는 옷에 대해서다. 언니는 잘 버리지 못한다. 나의 기준으로 그렇다. 그러니 서랍장에는 옷이 넘쳐나고 빽빽한 옷걸이도 옷이 가득하다.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옷이 이렇게 많아도 입을 만한 옷이 없고 어디 입고 나갈 옷이 없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장만한 것도 아닌데 버릴 수도 없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란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정리는 늘 어렵다.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물건도 그러니 마음이야 오죽할까.


언니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서 ‘입을 것 같은’에 ‘읽을 것 같은’을 대입했다. 뜨끔했다. 언니가 보기엔 내 책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들. 책꽂이에 가지런하게 꽂힌 책 말고도 쌓아둔 책들이 많다. 굴러다니는 띠지, 포스트잇이나 노트도 그렇다. 그러니 언니에게 충고할 입장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몇 가지 물건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컵을 좋아한다. 머그, 찻잔, 커피잔, 유리컵, 맥주잔, 모두 좋아한다. 수납할 공간이 있다면 장식장을 들려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가 나간 컵도 버리지 못하고 볼펜 통으로 쓰거나 머리끈과 머리핀을 놓아둔다. 지금 막, 돼지 저금통을 대신해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컵을 골랐다. 그런데 결국 고른 건 겨우 3개 정도다. 사용한 지 오래된 컵, 이미 필기구를 담아두었던 컵,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둔 컵. 그러면서 텀블러도 골랐다. 같은 디자인이 두 개인 경우, 이벤트 사은품으로 받은 경우. 더 고르고 싶지만 눈치가 보였다. 


조금씩 이렇게 골라내는 연습을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소중한 의미를 부여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사용하지 않거나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이별을 하는 게 맞다. 이렇게 버릴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하면서도 또 책을 둘러본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김숨의 『떠도는 땅』, 올가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 한지혜의 신간 소설집 『물 그림 엄마』까지. 뭐 3권 정도야 괜찮은 거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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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1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컵이며 텀블러 좋아합니다. ㅎㅎ 어디 여행가면 기념품으로 꼭 예쁜 머그컵 같은걸 사와서 쟁여둔다죠.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1   좋아요 1 | URL
컵은 사랑입니다. ㅎㅎ
그래서 버리는 게 더 힘듭니다. ㅠ,ㅠ

scott 2020-10-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두개를 가득채웠던 책들은 이사하기전 몇달에 걸쳐서 나눠주거나 중고로 팔아버리고 소장용이 아닌이상 이제는 이북으로 보게 되네요.
대신, 에코백을 모아요 박물관 미술관 셔틀하면서 시즌별로 ㅎㅎ

자목련 2020-10-20 11:30   좋아요 1 | URL
와, 대단하시네요. 소장용의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아요. ㅎ
언제 모은 에코백 좀 보여주세요. 에코백도 좋아요!!
 


숙면을 위해서 좋아하는 커피를 줄이고 있다. 하루에 세 잔 정도 마시는 커피를 저녁에는 마시지 않는다. 그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봄에는 제법 효과를 봤다. 계속 실천하지 않아서 몸이 화를 내는 걸까. 여름에는 더 많이 마신 것 같다. 열대야로 자다가 깨는 일이 익숙해서 그랬던 걸까. 최근에 귀가 아픈 이후로 종종 깬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들려고 뒤척이는 시간이 너무 길다. 스마트폰을 잡지 않으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으니 자꾸만 손이 간다. 악순환이다.

지난주에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루이즈 글릭’이란 시인이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의 시인다. 세상에 시인은 이렇게 많구나. 번역된 시집도 없다. 좋은 시를 엮어놓은 시집에 수록된 시가 전부인 듯하다. 그러니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작품을 읽거나 구매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발 빠르게 준비한 출판사가 빠른 시일 내 출간한다 해도 현재는 그렇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쳐나니까. 기다렸던 책의 입고 소식처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김이설 작가의 신간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다. 이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전자책으로 만난 이도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더 기다렸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때 필사를 했던 적이 있다. 손글씨는 아니었지만 자판으로 옮기는 것도 노력이 필요했다. 김숨의 초기 단편이었다. 현재 김숨의 소설과는 다른 결이었다. 쓰고 나니 그 단편집이 읽고 싶다. 기대하는 동화와 에세이도 있다. 『5번 레인』, 『다큐하는 마음』를 읽는 시간도 즐겁겠다.

가을이라 냉장고 여기저기 과일이 많다. 파지 사과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엊그제 방송을 보니 우리가 선호하는 빨간 사과는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생산된다고 한다. 이제는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사과도 있다.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디저트 사과라고 할까.






깊은 잠에 빠져들기 위해 커피를 더 줄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새벽에 굳이 잠들려 하지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게 좋을까. 처음 맞이하는 날들도 아닌데 잠들지 못하는 건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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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0-1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새벽을 열어주는 세가지가 자목련님 페이퍼의 제목과 같습니다. 사과, 커피, 책이요. 책 대신 인터넷이 될때도 많지만 (^^), 사과와 커피는 변함이 없는, 꼭 필요한 두가지랍니다. 파지사과 애용자예요.
김이설 작가의 소설 출간 소식, 저만 반갑게 느껴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동안 꾸준히 출간하셨을텐데 제가 그동안 우리 소설을 너무 안읽고 있었어요.

자목련 2020-10-14 10:20   좋아요 0 | URL
괜히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ㅎ 파지사과 애용자라니 더 반갑고요.
김이설 작가의 장편이 무척 오랜만이라 더욱 기대가 커요. 이번 기회에 함께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stella.K 2020-10-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과는 자두만한가 봅니다.
사과의 붉은 색이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니 처음들어 보네요.
그럼 사과의 본래의 책은 뭐였을까 싶네요.
초록색? 아니면 노란색?
저도 나이가 드니 커피 세 잔 마시기가 부담스럽더군요.
커피는 수면과 그다지 연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무 늦게만 마시지 않는다면.
저는 오히려 아침과 저녁으로만 먹고 있습니다.
잠은 갱년기라 그런지 TV 켜놓고 잘 때가 많고, TV 끄면 말똥말똥하고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고.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목련 2020-10-14 1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두만해서 한 입에 쏙 들어가요.
방송에서 과수원을 하는 분이 나와서 말씀하시는데 소비자가 붉은 사과를 선호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약간 파란, 덜 붉은 사과가 덜 익은 게 아니라고요.
커피가 잠과 상관이 없다면 저녁에도 마시고 싶은데, 제 몸을 길들여야 할까요. ㅠ.ㅠ
 

 

그 집은 2층 양옥집이었다. 시골에서 온 나의 시선에 그 단독주택은 양옥집이 분명했다. 1층에는 상가를 두었고 2층에는 주인집과 셋방이 있었다. 그리고 주인집 거실을 지나 계단으로 오르면 옥탑방이 나온다. 천장이 낮아서 키가 큰 사람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 방에서 3년 하고도 3개월 정도를 살았다. 옥탑의 특성상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웠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시절을 견뎠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가 아니라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하나의 방. 그러나 나에겐 돌아갈 유일한 곳, 집이었다.


루시아 벌린의 『웰컴 홈』을 읽으면서 나는 그 방의 형태를 그려보았다. 친구의 책상 위에는 친구가 좋아한 연예인 사진이 있었고 언제라도 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던 작은 옷장이 있었고 문 옆에는 전기밥통이 있었다. 나의 흔적이 남은 곳, 나의 눈물과 기쁨을 지켜본 공간이 여전히 존재할까. 오래전 연락이 끊긴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대학시절에는 다른 친구의 집에 잠깐 머물렀다가 대학 동기와 3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 덕분에 접혔던 날들이 펼쳐지는 기분이다.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는 이상하게 애틋하고 아프다. 비통한 슬픔으로 가득 찼다거나 고통의 순간을 극대화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내게는 그녀가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혼재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시대의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루시아 벌린의 어린 시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순수하고 천진함을 잃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이런 아빠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나중에 커서 아름답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단다. 하나는 예수님의 생애와 네가 자라면서 읽게 될 많고 훌륭한 책들이야. 네 엄마도 스승이고 아빠도 스승이지. 모두 네 옆에 있으니(아빠도 조만간 네 옆에 있게 될 거야)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네가 도움을 청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큰 스승은 네 마음일 거야. 마음이 가볍고 가뿐해서 노래를 부루고 싶어지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란다. 마음이 어둡고 창피한 느낌이 들면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지. (121쪽)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쓴 편지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최고로 아름다운 당부가 있다.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가벼운 마음과 어두운 마음 그 사이에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인생은 열린 책』이란 단편집을 통해 그녀가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는 걸 알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읽으니 더욱 그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생각한다. 소설의 장면과 겹쳐지는 부분을 만나는 일은 마치 내가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기분으로 신이 나기도 했다. 두 권의 책을 나란하게 두고 한 번 더 읽는다면 가만히 그녀와 포옹하는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전부예요. 역설적이지만 만사가 평안해요. 그다지 긴장되지 않은 생활이죠. 사실은 행복해요. 모든 일이 잘 돌아가서 행복한 건 아니고 인생의 굴곡진 곳, 공포의 안과 밖, 그곳이 어디든 갈 데까지 다 가봤기 때문에 그래요. 명백히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집은 이래저래 도움이 될 테고 그건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겠죠. (147쪽)


하지만 고달픈 인생을 사는 일이 그렇듯 그런 인생을 읽는 일은 따갑고 아리다. 수많은 이사를 하고 불편을 감수하는 삶이라고 간단하게 쓸 수는 없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순가에도 평점 심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야 맞을까. 사랑과 결혼생활, 그리고 글쓰기까지 말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나는 그녀의 인생을 모른다. 남겨진 글, 미완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지나온 집들에서 그녀가 생각하고 매만지고 완성되었을 글을 생각한다. 글에 대한 그녀의 열정, 고민을 가장 가까운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거의 모든 페이지에 내용을 보태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까지 슨 글의 대부분을 나도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슬픈 일은 예전에 내 이 빌어먹을 마음이 큰 기쁨으로 가득해서 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마음도 말랑말랑했고, 그 때문에 다음 단락에서 그들을 어떻게 그릴지, 어떤 웃기거나 아름다운 일을 앞에 두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할지에 대해 세심히 배려하며 집필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 상태가 그렇질 않은데 처음부터 다시 이 소설을 이끌어가자니 그럴 수가 없어서 슬픈 거라고요. (186쪽)


많은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읽다 보면 그녀가 무척 외로웠구나 싶다. 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때로 불안하고 때로 우울하고. 몇 번의 이사가 아닌 열여덟 군데의 다른 집에서 살아온 그녀가 안착하고 싶었던 공간은 어디였을까. 세세하게 기억하고 기록한 집에 대한 글은 묘한 기분을 불러오는데, 그 기록이 그녀의 굴곡진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1년 전 있었던 바로 그곳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울증이 사라졌어요. 그 모든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우습기도 해요. 버디의 아버님은 3년 전 우리가 눈이 맞아 달아났을 때 세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도 인생은 흘러간다고요. 무슨 뜻에서 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상당히 예언적인 말씀이었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라고. (242쪽)


슬픔, 기쁨, 즐거움, 상처, 아픔, 상실... 이 모든 것들이 순환하는 게 인생이구나.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끝까지 나쁜 건 아니라고. 삶이란 그런 거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지나온 방과 집을 그려본다.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써 내려간 삶의 편린들.


“집에 가려고, 나는 집에 가려고 글을 썼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 나는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글을 썼다."라는 루시아 벌린. 그녀가 들려줄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 어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녀의 글을 찾았다는 그런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진솔하고 우아한 그녀의 인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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