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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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우연하게 고미숙 작가가 출연한 방송을 잠깐 시청했다. 익히 그의 명성을 알았지만 소탈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대화를 통해 참 멋진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힘은 읽기와 쓰기였다는 걸 책을 통해 확인했다. 책이 주는 위안과 용기, 그리고 힘을 알기에 책을 놓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으로 도피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현명한 일이었다. 물론 그가 읽고 공부한 고전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책 역시 통쾌하다. 바로 앞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시원시원하다.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더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전한다고 할까.


우습게도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읽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리뷰를 쓰려면 최소 세 번 이상 읽어야 한다는데 그건 현재 내 상황으로는 어렵다. 핑계라고 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이 괜찮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는 거다. 좋은 책을 읽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일도 즐거움인데 말이다. 그러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건 더 중요하다는 걸 또 배운다.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책만 생각한다. 역시나 편협하고 짧은 소견이다. 읽기를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과 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은 그런 의미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 인간에게 산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그 시작은 읽기에 있다는 말이다.


책은 삶의 토대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책과의 만남이 있고 그 위에는 인생이라는 길이 시작된다. (60쪽)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 안에 역사적 진실이 있다는 증거라 여겨서다. 그들의 청춘을 빛나게 해준 것들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이념과 정파에 따라 혁명의 전략전술은 다 달랐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지향했던 구호는 단 하나. 누구나! 무엇이든! 다 읽을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79쪽)


읽고 있다. 특히 지금 이곳에 있는 이라면 모두 무언가를 읽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읽은 게 맞는가?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역사 속 위대한 위인, 행동하는 양심은 모두 책을 읽었고 책에서 그 의지를 발견했다. 보통의 시민인 나는 위대한 사람도 행동가도 꿈꾸지 않는다. 그래도 책의 가치를 안다고 여겼는데 읽기에 과연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발견하려 읽고 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과 경쟁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86쪽)


가장 일차적인 근간이 되는 것은 읽기다. 읽는 행위가 없는 학습은 없다. 책이 없는 배움은 없다. 묵독이든 낭독이든 낭송이든 일단은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고 계절을 읽고 사물을 읽는다. 오직 ‘읽기’에서만이 가능하다. (102쪽)


단순한 읽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을 읽고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열심히 읽은 자여, 그럼 다음엔 무얼 해야 하나. 맞다. 써야 한다.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지금도 중언부언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직접 강의하는 내용을 담은 실전 편을 통해 진짜 쓰기를 경험할 수 있다. 1800자의 칼럼,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도 어려운 리뷰, 막연하게도 쉽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쓸 게 없는 에세이, 떠난 사유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인 여행기에 대한 글쓰기 강의와 예시문이 실려있어 도움이 된다.


쓴다는 건 정리하는 일이다. 정리를 하는 건 모든 과정을 학습했을 때 가능하다. 한 권의 책이 내 안으로 와서 나만의 의식과 겹쳐서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 읽은 즐거움과 기쁨이 쓰기로 완결되었을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 그 만족감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길. 이 책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읽고 쓴 글이 아니기에.


읽기는 타자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은 연결이면서 또 도약이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이 읽는다고 절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야구를 아무리 많이 본다 한들 선수들처럼 치고 던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쓰기는 다른 활동과 능력이 요구된다. 하여, 더 고도의 수렴과 집중이 필요하다. 읽기는 약간의 산만함을 허용하지만 쓰기는 그런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잠시 정신 줄 놓는 순간, 바로 엔트로피 법칙에 말려든다. 낱말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문장 하나 단락 하나 구성하기도 벅차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다시 연결하여 문장을, 단락을, 그리고 책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지!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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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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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라서 더욱 매력적인 세계가 있다. 바로 시의 세계가 그러하다. 닿을 수 없기에 나만의 그릇에 담기라도 하고 싶은 욕망에 항상 시집을 찾는 것 같다. 어쩌면 황인찬의 시집을 읽는 일도 그런 나만의 방식은 아닐까 싶다. 황인찬의 시를 읽노라면 단조의 음악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부러 기쁨은 감추고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그건 황인찬의 시의 형식일지도 모른다. 황인찬의 고유한 무엇이라고 할까.

혼자만의 독백, 혹은 방백, 아니 고백처럼 들리는 시들을 읽으면서 자꾸만 뭐라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시 속 너는 내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시인의 목소리에 뭔가 물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이라고 하면 맞을까. 이런 시를 읽노라면 아련한 기억 속 아담한 학교와 작은 운동장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와 편지를 나눴던 친구는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게 쌓인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하고 괜한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쏟아놓았던 나의 편지는 사라지고 없겠지만 우리의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너는 장화

나는 화분

꽃바구니를 생각했는데

물병만 깨졌지

지난겨울 우리가

학교 뒤편에 묻어둔 비밀은

이제 썩어 없어졌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그럼 되잖아

마치 다음이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네가 분수, 말하자

한낮이 어두워지고

이제 우리에게 할 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여름 나는 불안

나는 망각 너는 모과

교문 너머에서

다음이 오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전문)

이런 시를 읽으면서는 그 새의 어떤 빛깔이었냐고 묻고 싶다. 새의 슬픔까지 온전하게 묻어두었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의 두려움과 슬픔을 말이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그래, 죽음은 멈춤이지. 호흡이 멈추고 손끝의 작은 움직임도 멈추고 머리를 채운 어떤 생각들과 가슴에 담김 모든 감정이 멈추는 일. 누군가는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다행일까. 그러니 이런 황인찬의 시를 읽는 일도 다행인 것이다.


며칠 전에는 새를 묻고 왔다

굳어가는 새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너는 정원을 청소하는 중이었고

죽어버린 새를

손에 쥐고 있는 내게

너는 뭘 하느냐 물었지

새가 멈췄어,

너무 놀라서 얼결에 그렇게 답해버렸다

그후로 무엇인가

자꾸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네가 했던 말이고

맞아, 그냥 다 생각이야,

이건 나의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정원의 나무에는 새들이 많았다

날아가고 또 날아가도

새들이 다시 가지에 앉고,

또 어떤 새는 떨어지고, 그냥 그랬다 (「낮 동안의 일」, 전문)

천천히 시집을 읽으면서 여름과 여름 사이를 생각했다. 잔인한 여름과 성장하는 여름, 열매를 맺기 위해 바람과 뜨거움을 삼켜야 하는 어떤 나무들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두가 등장하는 시를 오래 읽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또 어떤 성장을 할까,” 란 시의 제목이 「재생력」이라서 나는 울컥했다. 황인찬의 시가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마치 그것 같아서 말이다.


다 함께 모여서 방학숙제를 했지

무슨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그것은 여름 내내 여러 마음이 엇갈리고, 지구의 위기까

진 아니어도 마을의 위기쯤은 되는 사건을 해결한 뒤의 일

아이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이 장면은

불안하고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이 모험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하였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험을 통해 작은 성장

을 거듭해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그런 여름의 대단원이다

물론 중간에 다투기 시작한 아이들 탓에 결국 숙제는 끝

내지 못할 테지만

뭐 어때, 숙제는 언제나 남아 있는 거잖아(웃음)

사건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고

마을은 돌아가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거야

여름 내내 모험에 도움을 주었던,

온갖 사물에 깃든 신령들에게 마음속으로 안녕을 고했지

지금의 일상을 소중히 하자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결국 애들은 싸우기 시작하고,

한참을 씩씩대다 서로를 바라보다

다 함께 웃는 것으로

이 장면은 끝난다

그리고 기나긴 스태프롤

검은 화면을 지나면

다시 첫 장면이다

앞으로 벌어질 마음 아픈 일들을

알지 못하는 방학 직전 어느날의 교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또 어떤 성장을 할까,

그것을 궁금해하며

카메라는 천천히

여름의 푸른 하늘을 향해 움직인다 (「재생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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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끈질긴 서퍼 - 40대 회사원 킵 고잉 다이어리
김현지 지음 / 여름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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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주하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어떤 얼굴, 피곤하거나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 일부러 웃어 보이거나 화가 난 표정을 짓는 얼굴. 바로 나의 얼굴이다. 양치질을 할 때, 세수를 할 때 나를 본다. 가끔 거울 속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 공간에 혼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삶이라는 규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루하루. 누군가는 과감히 그 틀을 던져버리고 다른 항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울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곧 나는 나를 찾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때로 지치고 슬프고 우울하니까.

그런 감정들이 높아지는 벽으로 나를 가둘 때 나는 책을 읽었다. 그 벽들을 부수기 위해, 아니면 다른 재료로 벽을 쌓기 위해 나는 책을 읽고 뭔가를 썼다. 그게 일기든, 중얼거림이든, 리뷰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쓴다는 게 중요했다. 어떤 목표나 결과를 얻기 위한 적도 있었고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몰려드는 잡념에도 단단해지려고 한다. 나는 그러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건 김현지의 『가장 끈질긴 서퍼』를 읽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제목만 보고 정유미, 최우식의 <여름방학>을 생각했다. 파도를 타는 서퍼,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서퍼. 서퍼를 배우는 과정인가, 생각한다. 보기 좋게 어긋났다. 40대 직장인의 일기였다. 하루 일과의 기록이었다가, 여행의 이야기였다가, 일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글이었다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이자, 연서 같은 그런 글들이었다.


어떤 글은 더욱 몰입했고 어떤 글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고 어떤 글은 가만히 반복해서 읽었다. 글이란 이래서 좋다. 글과 대화할 수 있고, 혼자 독백할 수도 있다. 계절의 흐름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처음 미술 학원에 간 봄이 지나고 다시 다음 해 미술 학원에 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어느 날 소중하게 다가온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만나는 부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찌릿함이 몰려온다. 어느 여름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M이 떠올라서다. 우리는 감자, 책,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여름마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는다. 좋은 소설은 왜 여름에 읽어야 할까. 읽을 때마다 운다. 그리고 원하던 것을 대부분 미끄러뜨리는 일을, 노인이 되기 위해 달릴 뿐인 생을 사랑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권태 아니면 비극인 날들 와중에 어떤 문장들은 시간을 견딘다. 물처럼 고인 여름의 빛, 나의 작은 블랙홀, 사랑했던 나라로 떠나는 짧은 여행. (95쪽)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고 특별히 부러울 만한 일상이 아니다. 딸이 있는 상사가 자신과 딸이 나누는 대화를 들려주고 그걸 가만히 듣는 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벽지를 바라는 부부의 대화를 통해 서툴고 다정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친구의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다녀온 여행지를 떠올리는 그런 글이다.

고통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는 것을, 결국 고통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단지 시간과, 견딜 수 있는 작은방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괜찮아, 시간은 결국 당신의 편이고, 우리는 서로의 곁에 있을 거니까. (197쪽)

그냥 버티고 있다. 요즘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뿐 아니라 사는 게 버티는 거 아닐까. 버틴 걸로 이미 미루게 되는 일들이 있다. 지속하는 것은 때로 그 자체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288쪽)

삶이란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체험하지 않을 것들은 모르는 세계가 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다른 삶을 이해하려 하는 시간이 온다. 그게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힘든 일이 생기고 겨우 해결하면 야속하게도 다른 일이 터진다. 한숨을 쉬며 시간을 견디는 일, 질끈 눈을 감고 잊어버리는 순간들, 그 모든 게 나를 이루고 나를 감싸는 다정한 손길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뭉클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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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1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도 되고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자목련 2020-11-10 09:38   좋아요 0 | URL
^^*
11월의 남은 날들이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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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늦은 시각에 방영하는 프로를 즐겨 시청했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작가가 나오기도 했고 배우나 성우가 등장해서 책을 읽어주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디오북의 원조라고 할까.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 생각나는 프로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가 가장 비슷할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그 방송을 통해 몰랐던 시인과 작가를 만났다. 시인 김행숙도 그러했다. 『타인의 의미』를 구매했고 그 안에서 「목의 위치」란 시를 많이 읽었다

김행숙의 시는 내게는 좀 난해하고 어렵지만 그냥 이상하게 끌린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녀의 시집을 나는 다시 방송을 통해 구매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독립영화에 나온 그녀의 시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다정함의 세계」로 『이별의 능력』이란 시집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이 시집은 구매했다가 정리한 이력을 지녔다. 결국엔 재구매로 이어진다. 아, 시집은 정리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는데. 다정함의 세계라니,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다. 영화 속 사춘기 소년, 소녀의 감정과 잘 어울리는 시였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때때로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 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다정함의 세계」, 전문)


시를 만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하는 시가 반가운 이유로 그렇다. 그러나 내심 바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시인의 시가 아닌 시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너무 큰 욕심일까. 하긴, 나만 알고 싶은 시도 있으니 그건 또 다른 욕심일 것이다. 김행숙의 시집에서 이런 시도 오래 읽었다.


발이 보이지 않게 달리기를 하지요, 점점 빠르게.

아아아 느리게. 마지막 숨결은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요? 가까운 듯,

나는 달리기예요. 오른발 다음에 왼발, 모레 새벽에는 국경을 넘게 되지요.

총성이 까마귀 울음소리보다 자주 들리는 곳,

이곳에서는 점치는 여인들만이늙어서 죽습니다.

탕, 탕, 탕,

총알을 피하듯, 나쁜 음식과 나쁜 꿈을 피했습니다.

지금은 말이야, 가족이 만들어지는 혼돈의 밤을 정

리하기 위해 세 번째 총성이 너의 귀를 흔드는 시각, ,

눈을 흐리게 하고, 탕! 거울 앞에서 서보 아라. 노파는, 탕! 거울 앞에서 서보아라.

노파는 혼례복을 입은 손녀를 불러 마주하였습니다.

아름답구나, 처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십 년 후, 왼발 다음에 오른발, 나는 달리기예요.

오른발 다음에 왼발, 세월은 보이지 않아요.

나는 지나갔어요. 가장 슬픔 마음도 나를 붙잡지 못해요. (「세월」, 전문)

우리는 오늘도 왼발 다음에 오른발, 구령을 외치며 달리는 건 아닐까. 무엇을 피하고 싶은 것일까. 두려움과 고통을 피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빨리빨리 빠르게 달려서 그것들을 지나간다면 한숨을 돌릴 수 있을까. 이어달리기를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 누가 나를 이어 달려줄 수 있을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주자,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마음은 심각하게 슬프다. 슬픔 마음을 달래는 건 이런 시를 읽는 일.


며칠 늦게 일요일이 찾아왔다. 햇빛은 일요일의 뒤에 있었고,

몇 덩어리의 구름은 일요일의 느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린 비는 일요일의 가득한 눈물처럼, 앞에 있는 햇빛처럼.

나는 토요일 밤의 송별회를 지나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밤,

나쁜 일은 영원히 생기기 않을 것 같은 날들이 멀리 흐르지 않고 가까이 향월 여인숙에서 잠이 들고 다음 날 다시 새 이불을 덮는다.

나는 화요일 밤을 지나 수요일 아침 그리고 목요일 아침 순서로 일요일을 기다린다.

일요일은 제멋대로 다리를 뻗고 두드리고 발을 주무른다. 일요일이 쓰고 온 넓은 모자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나는 금요일 저녁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구두들이 글썽거리며 웃음을 물고 모여 있는 것을 본다. 금요일 저녁에서

발이 녹는다. 발부터 일요일까지. 토요일이라는 누구누구의 이름까지. (「일요일」, 전문)

오늘은 월요일이고, 일요일은 어제 지나갔다. 내가 보낸 일요일은 어떤 풍경인지 잠깐 어제, 일요일을 그려본다. 예배를 드리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 시간, 일요일까지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김행숙의 시는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빠져든다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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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두꺼운 니트를 꺼내 입었다. 사실은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려고 분리를 했다가 갑자기 이 겨울까지만 입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 입어서 보풀이 심하고 낡은 표시가 여러 군데에서 보였다. 외투를 입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밑단을 과감하게 잘라냈는데도 이상하지 않았다. 괜히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가죽 가방도 정리를 했다. 마구잡이로 보관을 해서 형태가 잡히지 않았다. 크림으로 잘 닦아내고 모양을 잡기 위해 수건을 넣어두었다. 나쁘지 않았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생명을 불어넣은 듯하다고 할까.

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 다녀왔을 때 의사는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주일이나 열흘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2일이 지나 진료를 봤다.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2주일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에게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실이 그랬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 나은 것 같은데. 의사가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아, 어쩌란 말인가. 병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약자이고 을이다. 그러니 다시 약을 잘 챙겨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엔 병원 문을 열기 전에 도착해 잠깐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을 했다. 직원이 잠긴 문을 열고 신문을 챙기고 불을 켜니 병원은 좀 전과 다른 생기가 돌았다. 문이 잠기고 불이 꺼진 건물은 차갑고 냉랭하고 무표정이었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니 달라졌다. 대기실의 의자, 손소독제, 화분, 모든 게 정겹게 다가왔다. 가죽 가방과 낡은 니트에도 내 손길이 닿아서 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쉽게 움직인다. 단단하게 잠금을 한 경우을 제외하곤 말이다. 마음에는 어떤 손길이 닿아야 할까. 우선은 해제 상태이어야 할까. 굳게 닫힌 마음, 잠시라도 열림으로 변경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냥 그냥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생각은 접어주고 이런 책들의 손길이야말로 살갑고 다정할 것 같구나.




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 다녀왔을 때 의사는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주일이나 열흘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2일이 지나 진료를 봤다.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2주일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에게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실이 그랬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 나은 것 같은데. 의사가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아, 어쩌란 말인가. 병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약자이고 을이다. 그러니 다시 약을 잘 챙겨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엔 병원 문을 열기 전에 도착해 잠깐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을 했다. 직원이 잠긴 문을 열고 신문을 챙기고 불을 켜니 병원은 좀 전과 다른 생기가 돌았다. 문이 잠기고 불이 꺼진 건물은 차갑고 냉랭하고 무표정이었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니 달라졌다. 대기실의 의자, 손소독제, 화분, 모든 게 정겹게 다가왔다. 가죽 가방과 낡은 니트에도 내 손길이 닿아서 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쉽게 움직인다. 단단하게 잠금을 한 경우을 제외하곤 말이다. 마음에는 어떤 손길이 닿아야 할까. 우선은 해제 상태이어야 할까. 굳게 닫힌 마음, 잠시라도 열림으로 변경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냥 그냥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생각은 접어주고 이런 책들의 손길이야말로 살갑고 다정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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