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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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업 전,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에게 기도의 시간이다. 그저 하얀 사각 종이를 사랑했던, 쓰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황홀했던 청순한 마음을 다시금 불러오는 시간,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소설을 쓰기 전에 책상을 치우고, 차를 우리고, 마들렌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접시를 골라 책상 위에 올려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롭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105쪽)


날씨가 추워지면서 따뜻한 걸 찾는다. 뜨거운 커피, 생강차, 녹차, 따뜻한 보리 차까지. 고구마, 떡, 빵, 다양한 주전부리를 곁들인다. 그리고 때때로 책을 함께 읽기도 한다. 이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에세이가 있다. 소설가 백수린의 『다정한 매일매일』이다.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란 부제처럼 책은 작가가 들려주는 빵과 소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권의 책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하나의 빵 이야기, 반대로 빵을 먹으면서 생각나는 한 권의 책. 빵과 책이라니, 그 조합만으로도 달콤하고 다정하다. 다채로운 책과 빵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갓 구워진 빵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다.


작가가 읽은 책 이야기를 실은 책은 많지만 빵과 책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색다르다. 이 책은 내내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읽었다. 그래서 작가가 소개하는 빵의 모양과 맛을 상상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당장 주방에 나가 뭐라도 찾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해서 눈으로 먹거나 직접 배를 채우는 대신 정성 가득한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익숙한 빵과 좋아하는 빵이 나오면 괜히 더 신났다. 내가 읽은 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반갑고 그 책에 어울리는 빵 이야기를 듣는 건 즐겁다.


백수린 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통해 천천히 재독하는 기분이랄까. 가장 흔하게 먹는 샌드위치지만 정확한 이름을 몰랐던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와 필립 로스의 『울분』은 내게 청춘, 성장, 아픔으로 기억되는 소설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와 그 관심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은 자녀. 그 갈등은 여전하다.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나 걱정되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 면에서 부모는 무조건 단단하다 여긴 생각이 부족했구나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람에게 누구나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과 불행, 성공과 좌절, 자유와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존중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48~49쪽)


빵에 대한 애틋하고 아련한 개인적인 기억을 듣노라면 생면부지의 작가와 알 수 없는 뭔가로 이어진 것 같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 것만 같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직접 만든 초코칩 머핀을 건넨 기억과 조카를 낳기 전 만삭의 동생과 옛날씩 꽈배기를 먹으러 갔다 팔려서 먹지 못한 기억, 독일의 대표적인 빵 프레철에 대한 이야기는 열 살 소녀가 만난 할아버지의 죽음과 어른이 되어 겪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끊임없이 살아 내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은 결코 온전히 극복되지 않는 상실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직 그런 상실을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그럴듯한 거짓말쟁이일 뿐일 것이다. (185~186쪽)


소설가가 선택한 책이라서 그럴까. 제목만 듣고도 흐뭇한 책들을 만나는 순간 나는 괜히 으쓱해진다. 나도 손쉽게 굽을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팬케이크의 맛을 연상시킨다는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읽으면서 그의 다른 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을 백수린 작가가 읽었을지 알고 싶다. 제목도 처음 듣는 책인데 당장이라도 검색해서 읽고 싶은 책도 있고 읽어야지 하다 시기를 놓친 책들도 다시 궁금해진다. 읽고 싶은 책 하나를 꼽자면 맛보다는 건강을 위해 선택할 것 같은 호밀빵 샌드위치와 나무를 연결하는 페터 볼레벤의 『나무 수업』. 같은 숲의 너무밤나무들이 뿌리를 통해 영양소를 공유한다는 습성은 정말 경이롭다. 공생과 연대를 아는 너도밤나무라니. 인간이 배워야 할 모든 게 숲에 있는 건 아닐까.


서른여섯 가지의 책과 서른여섯 가지의 빵을 만나면서 친구가 생각났다.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는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빵을 사가지고 온다. 올 때마다 다른 종류의 빵을 사 오는데 언제나 모카빵이 있다. 벤치에서 카페에서, 서로의 자취집에서 커피와 모카빵을 먹은 기억. 가물가물한 그 기억이 새롭게 피어난다. 맛있는 빵을 만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나 가까운 이에게 괜찮은 책이라 소개할 수 있다면 그 역시 행복하다. 백수린의 산문집은 그런 책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쉽게 읽히지만 가만히 와닿는 문장은 깊고 진하게 스며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소개하는 이런 부분도 그렇다.


사는 것이 힘들고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는 어느 날,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 누군가와 단팥빵을 나누어 먹는 상상을 해본다. 긴 시간 정성껏 졸여 만든 달콤하고 따뜻한 앙금이 들어 있는 단팥빵을. 그것은 틀림없이 행복한 장면이겠지만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고독할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는 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쉽게 발설할 수 없는 상처와 자기모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욕망과 충동을 감당하며 사는 존재들이니까. (227쪽)


누구나 할 것 없이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정한 위로가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다. 고맙다는 말 대신, 건네도 좋을. 그러니까 빵으로 소개하자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부드럽고 달콤한 식빵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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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10만부 기념 특별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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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내가 어떤 차별을 하고 살았는지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내가 차별받았다고 느끼며 살 뿐이다. 내가 경험한 불쾌감과 불편함이 가장 크다. 아마도 가장 최초의 기억은 어린 시절 집이었을 것이다. 남자형제와의 차별. 이어지는 기억은 학교에서 남학생과의 차별.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차별. 그때는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무도 차별에 대해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고 그대로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차별하는 의식과 행동.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고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가 멀리서 보이는 대고 믿고자 했던 것들을 가까이에서 그 실제를 알려준다고 할까. 흔히 차별은 인권차별, 장애인, 성별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이주민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문화권에서 왔으니 다른 점이 있을 거라 여겼다. 책에서 등장하는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이 당사자는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쉽게 내뱉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고민한 적 없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인식이 달라졌다는 걸 차별이 없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여성 간부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지 않냐, 과거에는 투표권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는 식이다. 정말 우리 삶에 차별이 가득했다.


시대와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데 우리의 사고는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퇴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자가 차별에 접근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 언급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름표 색깔을 달리하는 식의 차별이나 학교에서 우열반 편성은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지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성적이 다르니 다르게 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오해가 있다.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명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대하면 불평등이 생긴다는 의미로는 타당하다. 청각장애인에게 영어 듣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불평등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여 한편에는 존중과 지원을, 다른 편에는 무시와 박탈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114~115쪽)


차별이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도 부끄러웠다. 길 위의 청소년, 동성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 노숙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담긴 불쾌감이 차별이면서 감시였던 것이다. 만약 길 위의 청소년이 조카나 내 아이였다면, 동성 연인이 내 친구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위치가 달라지니 나의 시선도 달라진다.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데 동참한다. 입장할 자격이 없는 공공의 공간에 침범한 사람, 거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교화시킨다. 이런 시선의 익명성과 편재성 때문에, ‘낯선 존재’인 소수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시선 혹은 ‘감시’의 압박은 삶을 만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139쪽)


이처럼 차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관습이나 관념, 사회적 약속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가득했다. 때로는 농담이라는 말로, 때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당당해하면서 차별에 가담하면서 살고 있었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당장 평등한 사회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선 내 주위를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189쪽)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204쪽)


그동안 스스로 선량한 시민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믿고 살았던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던 우리에게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차별이나 차별받았던 경험을 공유한다면 조금씩 성장하는 사회로 변화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좋은 책을 넘어 옳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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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제목 그대로 잊고 있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고 아련한 추억을 선물한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구멍가게, 그곳에서만 펼쳐지는 풍경과 오가는 정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얼핏 누군가에게는 그저 전국을 다니며 현존하는 구멍가게를 스케치한 책이 무슨 대단한 감동을 안겨주는 거냐고 묻을 수 있다. 그러나 감히 말한다. 가만히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듣는 순간, 그들의 삶에 동화되고 그곳이 궁금해질 거라 말이다.

책 속에 수록된 80여 점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책 밖에 있던 모든 감정들, 속상했던 마음이나 화가 사라지고 책 안으로 들어온 평온한 기분이 남는다. 작고 낡은 오래된 구멍가게의 그림의 힘을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그 구멍가게를 통해 마주하는 보통의 삶, 서민의 삶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그 가게를 찾아가는 동안 품었던 생각과 그곳을 지키는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우리네 이웃을 닮았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삶이 책에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 기억하고 찾아왔을 때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을 지키는 이들은 통해 사회 어딘가의 고단한 이들을 떠올린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진 골목, 낡은 주택,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원주민의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짐작할 수 없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고 도시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다시 시골로 돌아왔기에 월세, 이주민, 재개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므로 작가의 구멍가게는 힘겨웠던 과거의 삶인 동시에 외로운 현대인에게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가 그곳의 어르신과 작가가 나누는 이야기는 평범한 것이다. 구멍가게의 이력과 주변의 변화, 어떻게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지 사연을 들려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꺼내고 과거를 반추한다. 가게 앞에 놓였던 아이스크림 통, 평상, 그리고 나무들. 사진을 찍고 세밀하고 정교하게 펜화를 그리면서 작가는 항상 나무를 그리고 평상을 그린다고 했다.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의 풍경처럼 평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꽃의 풍경도 다채롭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바로 구멍가게는 그런 공간이었다.

‘내 그림엔 평상이 단골로 등장한다. 평상은 함께 앉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나눠 앉을 수도 있고 둘러앉을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다. 누군가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제 내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다고 뭐라 할 수도 없다. 또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유연하게 쓸 수도 있는 자리다. 낯선 이들과 어우러져 앉아도 어색하지 않다. 평상은 나눔의 자리다. 가게 앞에는 평상이 하나씩 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건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나날만이 아닐 것이다. 잃어버린 이웃과 잃어버린 정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딘가 구멍가게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작가에게 알리는 기자의 마음도 그것을 기억하고 간직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한 공간과 그 공간에 숨 쉬는 삶을 마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뭔가 대단한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라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삶의 고난과 역경을 나누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면 어떨까? 뉴스나 정보 프로그램만 보는 이 역시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책이 주는 기쁨은 그런 것이다.

작가의 그림 속 시간은 멈춰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이들과 그곳을 아는 이들에게 그 시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이 책은 살아 숨 쉬는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그리움이며 누군가에는 궁금한 시간이다. 영원의 시간 속에서 유한의 존재인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책은 묻는다. 간직하면 잊히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 힘으로 우리는 삶을 지탱하고 이어간다고 말이다. 그러한 힘을 알기에 작가는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리라.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주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작고 오래된 쇠락하는 가게 풍경을 그리느냐고. 인류의 가치관을 대변할 좀 더 근사하고 웅장한 상징물을 그리라고 한다. 기억의 향수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더 높이 수직을 보라 한다. 그렇지만 왕조의 유물,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상징물보다 나를 더 강렬히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듯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다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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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1-17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작은 가게가 거의 없겠지요 시골에나 가야 있을 듯합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갔을 텐데, 지금은 커다란 마트가 생기고 그런 곳은 거의 문을 닫아야 했겠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가까운 가게가 없어서 멀리까지 물건 사러 가야 하다니... 세상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어쩐지 그런 건 형태가 없는 것뿐일 듯합니다


희선

자목련 2020-11-18 07:3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가 사는 곳도 시골이지만 마트가 많아요. 책 속에서 만나는 구멍가게는 찾기 힘든 것 같아요. 비가 오네요. 희선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감기에 걸리면 안 되니까. 궁극적으로는 병원에 가기 싫어서다. 귀 때문에 열심히 병원에 다녔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여하튼 관리를 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어제 아침 일찍 이동할 일정이 있어 새벽에 일어났다. 매월 첫날 새벽 기도를 나가지 않은 후 오랜만에 새벽의 공기를 만났다. 하늘에는 손톱 모양의 하현달이 떠 있었고, 어둠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혼자 생각했다.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의 여정일까. 긴 여행의 시작일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일까. 움직이지 않던 시간에 나오니 새삼 사람들이 정말 부지런하구나 느꼈다. 살아가는 사람들, 삶이 이동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할까.


신호등의 색이 바뀌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들, 자동차가 멈추면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았다. 보도블록에 눈처럼 내린 낙엽들, 가을이 지고 있다는 게 보였다. 아직 장갑을 끼고 거든 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조만간 장갑과 모자를 쓴 이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또 어린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릴 테고. 시절은 잘도 간다.


고백하자면 나는 11월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으로 변화하는 순간들이 11월에 모여있다. 그러다 몇 년 전 나는 11월에 대한 마음이 참 어리석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거다. 분명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의 하나가 그 순간이었고 그게 11월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 기억(나의 기억력을 저주한다)은 선명하지만 11월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누그러졌다. 다시 좋은 기억을 쌓은 순간도 11월의 어느 날이고. 11월은 그냥 11월이니까. 이렇게 자꾸 나를 달래야 나는 점점 더 괜찮아진다는 걸 안다.


주위는 온통 단풍의 물결이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 아파트를 둘러싼 나무들, 조만간 나뭇잎을 떨구고 추위를 맞을 것이다. 찬 바람을 견디고 단단해질 것이다. 나무처럼 우리도 그럴 것이다. 2020의 가을은, 지난봄과 여름처럼 여전히 잔인하지만. 11월에는 11월을 즐길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11월의 책은 이런 두 권으로도 충분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란 제목이 좋다. 다시, 11월. 다시, 가을. 다시, 괜찮다고 다짐하는 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즐겁게 만났다면 더욱.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은 백수린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작가정신에서 나온 산문집이라, 살짝 놀랐다. 그냥 반갑다는 말이다.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란 부제가 더 좋다. 다시 펼쳐질 11월, 다시 읽는 소설, 다시 들여다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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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11-1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1월을 제일 좋아해요. 뭔가 차분히 마무리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끝은 아니라는 느낌

앞으로 자목련님이 맞이하는 11월은 조금 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목련 2020-11-14 14:56   좋아요 0 | URL
마지막 끝은 아니라는 느낌, 참 좋으네요.
불쑥 찾아오는 마음이지만 내년에는 더 포근한 11월이 될 거라 믿어요.
나와같다면 님,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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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아파했던 우리의 시간을 떠올린다. 이제는 같이 늙어갈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내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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