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오른쪽 귀가 가려운 정도였다. 그랬던 게 귀가 아프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사는 무척 심각한 상태라며 나를 혼내는 투로 진료를 했다.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조심하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항생제 주사와 약이 처방되었다. 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한동안은 약에 취한 것처럼 잠을 많이 잤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길게 이어졌다. 외투를 챙겨 입을 정도의 계절까지 나는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나의 귀, 그러니까 고막을 보여주었다. 나의 일부지만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나의 고막을 화면을 통해 마주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아픈 몸을 달래며 하루하루 생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뭐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귀가 아픈 정도인데도 심신은 무너졌다. 다른 누구를 챙길 여력이 남지 않았다. 정말 나만을 위한 날들이었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내게는 나를 위한 마음이 필요했고 존재했다. 이주란의 소설은 나에게 그런 마음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 단편집은 이런 이야기다,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책이다. 이주란은 그냥 속삭이듯 말한다. 툭 던진다고 할까. 발단, 전개를 생각하고 그냥 한 부분을 잘라 말한다. 이 단편집 전체가 그러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이제껏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이든 너무 열심히 설명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너도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근데 우리는 너무 그렇게 살아왔다. 아픔도 슬픔도 감추거나 숨기거나.

이렇게 말하면 이주란의 단편들이 맑고 명랑하고 유쾌한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엄마를 잃은 조카, 그런 조카를 돌보는 이모와 할머니.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 죽은 동생의 공간에서 동생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불안한 현실, 고단한 월세방의 일상처럼 힘겹고 지친 일상이다. 그런데도 소설 속 화자가 던지는 말들이 이상하게 힘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과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냥 소소한 일상들을 누리면서 말이다. 조카의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어버이날 꽃을 사면서 그리운 이를 생각하고, 항상 잘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사는 대신, 힘이 들다고 말하며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어떠냐고. 소설 속 화자의 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다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들과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이상한 마음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그런 것 같은 미안함. 나는 이제 그런 미안함을 줄이며 살 것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한 사람을 위한 마음』, 134쪽)

그러다 이런 소설을 읽으며 갈팡질팡한다. 권여선의 단편집『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마주한 인물들이 너무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나는 귀가 아파서도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데 권여선이 들려주는 삶의 고통은 그 강도가 너무 세다.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가족들이 남긴 대출금을 갚느라 TV 시청료까지 아끼며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삶이 가혹하다. 혼자 남았다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월급을 고스란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그뿐인가, 권여선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고단한 삶이 어떤지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여준다. 계약직 교사에게 재계약이란 희망, 그 희망이 이뤄져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볼 수 있으니 학교 측에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바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때때로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얼마나 길고 지루할까. 그래도 끝은 아니니까 더 힘을 내야 할까.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말’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또 나는 그들에게도 그들을 위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를 위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돌아볼 때 코로나19의 공포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픈 귀를 달래며 지낸 2달여의 시간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공포 속에서 나의 작은 통증도 중요하니까. 살아 있으니 살아내야 한다고, 이런 말들을 자주 꺼내는 한 해였다.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군가에는 나도 그런 대상이었을 거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이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겹다. 아픈 주사를 맞으러 왔지만 코가 줄줄 흐르고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려 엄마나 아빠, 할머니에게 종알종알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된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올해의 일상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한지혜의 산문집『참 괜찮은 눈이 온다』처럼. 아주 작은방이 집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단칸방, 철거민, 임대 아파트에서의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송별회 자리에서 부른 노래,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으로 위로를 받은 순간, 식물인간으로 긴 시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우리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 아픈 일상, 가족과의 이별, 삶의 전반에 대한 한지혜의 담담한 단상은 그 자체가 일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전한다.

지겹고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조금 달리 보인다. 귀의 통증이 사라지니 나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있던 밤을 잊었다. 어느새 다시 일상으로 회복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새벽을 생각한다.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깨우지 않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잘 한 일 같다. 그 몇 시간 차이로 나의 상태가 극명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모든 게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좋은 일도 아주 좋지는 않았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64쪽)란 글귀처럼. 그러니 겸허하게 달라진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0-1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을 읽으면 위로가 참 많이 됩니다*^^* 저는 요즘 거절못하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보단 잘 거절해 보자란 맘으로 살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 가슴에 와닿습니다 ~

자목련 2020-12-16 09: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렇게 귀한 댓글에 힘이 납니다. 거절, 정말 어려워요. 우리에게 거절의 힘이 필요하네요.
차가운 겨울, 그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요.^^

scott 2020-12-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것 아닌 증상 자각하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그래도 치료 받고 회복중에 계시니 다행입니다
자목련님, 건강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참 괜찮은 눈이 온다 ]

자목련 2020-12-16 09:13   좋아요 0 | URL
아침을 포근하게 열어주는 말씀 감사해요. 별것 아니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계속 귀를 생각하고 관찰합니다. 의사 말대로 제가 의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ㅎ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삶이 한결 깊어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일기예보는 맞았다. 지금 눈이 내린다. 그런데 눈송이가 너무 작다. 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쌓이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 진짜 겨울 속으로 들어왔다. 진짜 겨울이라고 쓰고 보니 지금껏 내가 썼던 겨울은 가짜 겨울이냐고 겨울이 따지는 건 아닐까. 아무튼 눈이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눈이 온다는 걸 알았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자꾸만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쌓이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다. 쓸데없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눈송이가 되어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추운 겨울이었고 나는 어렸다. 아마도 엄마에게 심하게 혼이 난 기억이다. 밖으로 나왔지만 마당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 아파트에는 놀이터라도 있지만 한적한 작은 시골 동네에는 그저 산과 들이 전부였다. 사춘기는 아니었고 그보다 좀 더 어린 나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심각했을 것이다. 순간의 마음은 그 순간에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니까.


 어른이 되고 어느 겨울에도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시골 집은 아니었다. 전후 사정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냐고? 결국엔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안온한 공간, 집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구 쏟아진다. 곧 쌓이겠다. 밖으로 보이는 집의 지붕 위에 눈이 쌓인다. 무서운 기세로 내린다. 불과 20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얼마나 많이 내리고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녹을 것이다. 눈이 녹고 사라진 뒤에도 눈이 내리던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아침, 이런 시집을 읽는다. 세상에나 이런 제목인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이규리 시인의 『당신은 첫눈입니까』. 우연을 가장한 아침의 시다. 제목 때문에 구매했는데 이제 겨울의 시집이 되겠다. 겨울에 펼쳐보는 시집. 






 눈이 주는 감성은 묘하다.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생각도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비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눈과 비는 다르다. 눈을 맞는다. 이상하게 그래도 될 것 같다. 물기를 품은 눈이니 눈물을 맞는다고 할까. 눈물을 맞는다. 아프지 않게, 슬프지 않게 눈물을 받아들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첫눈입니까, 란 물음에 첫눈이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12월의 시집, 이 겨울에 함께 읽고 싶은 시집이다.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는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부터가 여름이다. 짧기만 한 계절을 길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늦봄부터를 여름의 도입으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은 덩굴장미가 피는 순간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올해도 전국의 덩굴장미들이 건강히 피어 주기를 바라는 일. 그게 바로 내 여름의 시작이다. (129쪽, 덩굴장미의 일부)


여름엔 빨간 원피스, 자두, 캔맥주, 바다가 전부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이다. 빨간 원피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와 함께 했던 기억도 흐릿하다. 자두는 여전히 사랑하는 과일. 캔맥주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맥락으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원피스엔 샌들, 바다는 수영, 캔맥주엔 치킨. 냉면도 빠트릴 수 없다.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무튼, 여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휴가, 여행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계절, 여름이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날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는 달콤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더라도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날들이 여름의 특권일 것이다. 비록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더라도. 여름은 왠지 신나는 계절이다. 폭염, 장마, 무더위 이런 건 잠시 접어두면 말이다. 명랑하고 유쾌한 책이다. 솔직한 마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여름을 소환한다. 그 결과가 아름다운 추억일지, 고개를 절로 흔드는 후회일지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초당 옥수수의 맛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옥수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은 거다. 아마도 내가 자두를 생각하는 것과 같겠지 싶다. 자두란 말을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이고 한자리에서 열 개 이상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던 옥수수의 맛이 그립다.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입꼬리가 올라가고 단숨에 기분이 맑아지는 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32~33쪽, 초당 옥수수의 일부)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긴 겨울을 잘 버티고 견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봄이 지나고 여름엔 열심히 성장한다. 강렬한 햇빛과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여름에 쑥쑥 자라는 식물을 확인하는 일은 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장이 참 좋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 생각나서 그랬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두고 돌아오니 잎은 하나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분히 물을 주고 겨울 살아난 식물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위로 향하는 식물을 볼 때마다 내 안에도 비슷한 새싹이 자라는 것 같다. 그래, 각자가 가진 속도는 다 다르지. 아끼는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90쪽, 식물의 일부)


하루하루 조금이라고 앞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92쪽, 식물의 일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맥주다. 만 원에 네 캔인 수입 맥주,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어느 개그맨이 설명한 것처럼 귀가 후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맛은 여름 최고의 낙이다. 냉동실에 살짝 넣어둔 컵에 가득 맥주를 채우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의 황홀함이란. 하긴 맥주는 언제나 옳다.


겨울의 대척 점인 여름, 그 계절을 읽는 동안 겨울을 잠깐 잊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살짝 손이 시리고 잔뜩 옷을 껴입었지만 나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는 듯하다. 선명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니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겨울에 만난 여름은 명랑하면서도 애틋하고 안쓰럽다. 지난여름을 우리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에. 더위에도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날들, 시간이 지나 이 여름은 더욱 애틋하게 남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의 날들은 새롭게 이어진다. 그 계절이 무슨 계절이든 즐겁게 맞이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들의 생각하고 계절을 즐기는 일상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우리가 마주한 다음 여름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맑고 투명한 풍경화 같은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곳이 어디든 모든 게 평온할 것 같다. 매섭게 바람이 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순간의 장면, 순간의 기분으로 전부를 다 안다고 믿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는 깊어지니까. 오해가 이해가 되는 순간은 때로 너무 멀고 때로 오지 않는다. 백수린의 단편집 『여름의 빌라』를 읽으면서 나의 오해가 단절로 이어진 관계는 없었을까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소설집 전체가 관계나 단절을 주제로 한 건 아니지만.


표제작 「여름의 빌라」는 제목에서 기대했던 휴가지의 풍경이나 휴식과는 다른 고요한 슬픔을 안겨준다. 서로 좋았던 기억만 간직했던 ‘주아’와 ‘베레나’ 부부가 재회하면서 함께 보낸 여름의 시간들이 새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상처를 마주하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터전인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관광지가 되는 아니러니한 일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아픈 역사.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여름의 빌라」 중에서)


섣부르게 짐작하고 판단하는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일, 그 역시 이해의 시작일 것이다. 더 가까이 다가서 자세히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일처럼 쉬운 일도 없을 텐데. 우리는 무슨 이유로 그런 일상을 외면하는 것일까. 거대한 역사 속 진실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는 일, 혹은 그때 감정을 차분히 떠올려보면 서운함보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더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국인 프랑스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꿈꿨던 ‘나’와 파리 주재원이었던 언니가 함께 보낸 시간을 그린 「시간의 궤적」에서도 그런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서로의 과거를 모르고 오직 주어진 현재만 알기에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가까워졌기에 현재의 불안, 고민, 걱정을 보여주지만 그 모든 걸 품기엔 그들의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한 편의 영화처럼 싱그러운 추억만 남긴 채.


어쩌면 좋을지 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처럼. (시간의 궤적 중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더라도 이처럼 서로가 간직하는 감정은 다르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는 설레기도 하지만 적응해야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고요한 사건」 에서 화자는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 동네의 분위기가 낯설다. 정착이 아닌 잠깐의 거주라서 그랬을까.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가운 겨울밤, 이런 문장을 읽노라면 마치 화자인 ‘나’와 독자인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외로움, 고독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 빛 어둠을 덧칠한 이웃집의 지붕 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 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어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그토록 숨 막히는 광경을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고요한 사건」 중에서)


그런가 하면 이전의 백수린의 소설에서 만나지 못한 색다른 분위기, 응원하고 싶은 당돌함이라 말하고 싶은 단편도 실렸다. 보통의 엄마와는 다른 특별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폭설」, 평범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화자에게 찾아온 욕망을 그려낸 「아직은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할머니를 추억하는 방식이지만 결국엔 할머니에게 소중했을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흑설탕 캔디」, 풋풋하고 첫사랑과 반항과 방황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그러하다.


우리의 맨 종아리를 간지럽히던 싱그러운 연초록빛의 풀들. 햇살에 투명하게 반짝이던 나비들. 유속이 느린 수면 가까이에서 천천히 날다가 순식간에 저만치 솟구치던 작은 새들. 다미의 말에 얼마만큼의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미가 들려주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진 매혹적인 서사였으니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중에서)


하나의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이 왔을 때 그 계절의 선명함이 잘 보이는 것처럼 누군가의 상처, 상실, 관계도 그렇게 알게 된다. 그래서 좀 억지스럽지만 『여름의 빌라』는 여름이라는 계절보다는 오히려 차갑고 냉랭한 겨울에 더 잘 어울린다.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평온해져 어떤 기억, 어떤 감정과 조우할 수 있게 만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0-12-1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자목련 2020-12-11 10:3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항상 먼저 챙겨주시고 인사를 전해주시네요.
어제보다는 조금 따뜻하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