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와 행복 - 철학하는 삶을 살다
장세익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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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생각하면 학창 시절에 수업만 떠오른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모르겠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 속 시원하게 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익숙하게 잘 알려진 철학자의 이름이 떠오를 뿐 철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우리는 왜 존재하며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만 커진다.


『독배와 행복』의 저자 장세익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금융과 벤처 기업에 근속하면서 그 분야에 전문가였던 저자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내면을 움직인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공부가 바로 철학이었다.


인류 역사의 한 획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삶의 공허함을 느낀다. 일상은 무너지고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는 사라졌다. 어쩌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철학은 더욱 요긴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철학의 삶과 사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배운다. ‘독배와 행복’이란 제목이 이상했다. 독배와 행복은 대등한 관계도, 대립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듣고 아, 그 독배구나 싶었다.


가장 친근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란 말로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 어디에도 소크라테스가 직접적으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처가 악처라는 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흥미를 유도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동안 주장한 철학과 당시 아테네의 주류였던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설명한다. 동굴의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며 현재 우리 시대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어 놀랍다. 동굴이 세상의 전부로 아는 이들에서 동굴 밖의 빛과 세상은 두려움일 것이다. 그 밖의 세상을 경험한 이가 진실을 알려줘도 동굴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지한 인간에게 지성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게 얼마나 험난한지 알려준다. 현시대에 우리는 교육을 통해 동굴에서 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 획일화된 주입식의 지식 습득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영혼의 실물과 진리를 보는 능력을 길러주는 참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에 대해 정의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의 정의와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단체가 바로 국가다. 국가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건 시민, 그러니까 국민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할 때 국가는 완전체를 이룬다. 정의로운 국가가 되려면 정의의 가치를 잘 알고 판단하는 이가 필요하다. 한 나라의 대표를 뽑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확인한다. 국가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바를 살펴보면 그는 철학자가 통치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권력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고 명예만 좇는 통치자와 부를 내세운 통치자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대를 우리는 경험했다.


철학 하는 통치자를 선출하기 위해선 우리가 철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철학의 끝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당당하고 평온한 태도를 보인 소크라테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영혼과 육체에 대한 설명은 심신 일원론, 심신 이원론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육체로만 존재하는가, 육체와 영혼으로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죽음 이후의 사후의 세계의 존재와 더불어 신의 영역에 대해 확장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살에 대해 언급하는데 자살이 급증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마주한다. 불안과 고통스러운 삶을 멈추기 위해 선택하는 죽음과 행복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일, 바로 철학이며 이건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식물,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삶을 사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두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존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이에 필요한 게 철학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지식이 아니라 현상과 존재에 대한 근거를 찾는 일.


철학함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항상 있는 것은 아니고 문득문득 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가까이 있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철학함이라는 것은 가까운 듯하나 멀리 달아나 있고, 멀리 있는 듯하나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 인간에게 철학함이라는 것은 완전히 떼어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껴안고 있을 수도 없다. (150쪽)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진리에 대한 탐구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존재할 거라는 의구심, 매일 바라보는 밤하늘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것은 우주론이 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세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옳은 듯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주장으로 우리가 아는 대로 지구는 돌고 있다. 한계를 극복하는 일, 너머를 상상하는 일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삶이 철학 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니 철학은 단지 철학자에게 국한된 학문은 아니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도 철학이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철학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 말이다. 물질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행복한 이는 많지 않다. 나의 존재에 대해,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영혼은 살찌우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순간 우리는 철학 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저자가 들려주는 솔직하고 진솔한 고백을 통해 철학적 생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 책을 만나는 일도 철학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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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면 훌륭한 삶이라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분명 후대의 많은 이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일이 먼저 생각난다. 흔히 말하기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조금 읽었다.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읽을 때마다 완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과 삶에 더 가까이 더 깊게 다가가는 시간으로 말이다. 분명 그녀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다르게 강력하고 힘차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원한다는 건 여전히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에서는 네 편의 짧은 단편 네 편과 대표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런던 거리 헤매기」를 수록했다. 단편을 살펴보면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유산」은 결혼에 대한 시대적 관념과 그 안에서 여성 스스로의 삶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생각한다. 3장 안 밖의 짧은 소설「V 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은 존재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다.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V양이 존재했을까. 우연하게 발견한 벽의 자국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벽에 난 자국」과 식물원이란 한정된 공간 그 안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큐 식물원」은 색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소설도 좋았지만 특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싶은 건 그녀의 에세이다. 그녀를 영원한 여성의 멘토, 시대를 거슬러 만나고 싶은 작가로 만든 글 말이다. 어렵지만 집중하게 만드는 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 중에서 )


버지니아 울프가 강연을 했을 당시에는 여성과 픽션에 대한 주제였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그녀가 말한 ‘500파운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돈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에는 여성에 해당된 주제였지만. 그 시대를 상상하면서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으로 연결된다. 글을 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전부였을 삶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가부장 제도에 매여 살았다. 문득 생각나는 두 명의 여성. 뛰어난 재능을 지닌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방식도 그렇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썼는지가 아닌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니 버지니아 울프가 가상으로 만든 셰익스피어의 누이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애통하기까지 하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 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자기만의 방」 중에서)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보다 더욱 짧고 더욱 응집되어야 하며,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장시간의 독서가 필요하지 않게끔 꾸며져야 한다고 나는 과감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을 테니까요. (「자기 만의 방」 중에서)


모두의 공간인 거실만이 유일하게 허락되었고 가사와 육아에 시달려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삶. 설령 무언가를 쓰다고 해도 비밀로 써야 했던 시대.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였다. 시간을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현재 여성의 삶이다. 차별과 평등은 사라졌을까. 온전하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사회적 제도는 마련되었을까. 보호받는 성이 아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나가야 한다.


「자기만의 방」의 강연을 통해 단단하게 접힌 마음은 「런던 거리 헤매기」를 만나면서 부드럽게 펼쳐진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소개했던 아름다운 문장들, 지금 이 계절과 너무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문장들. 시간은 저녁 무렵,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에 샴페인 색으로 빛나는 공기와 거리의 친화력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처럼 그늘과 고독을 바라고 풀밭의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며 시달리지 않는다. (「런던 거리 헤매기」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런던 곳곳을 거니는 즐거움에 빠진다.


한 권의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놀라운 발견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소설과 강연,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각각의 매력은 그녀를 더욱 알고 싶게 만든다. 그녀가 바라고 원했던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고민했던 흔적은 우리 곁에 남았다. 책장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격려로 다가올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에게 나쁜 세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지금,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야 할 이유다.


그녀에게는 아직도 싸워야 할 유령과 극복해야 할 편견이 많이 있습니다. 그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아직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구를 비치하고 장식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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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 펫로스, 남겨진 슬픔을 갈무리하는 법,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이학범 지음, 김건종 감수 / 포르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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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가족이다. 가족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곁에서 모든 걸 지켜봐 주고 위로해 주던 대상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아플까. 개나 고양이와 살아가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존재가 무척 크다고 한다. 가족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위안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상실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상실의 시간이 오래갈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한 생명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순간은 진중해야 합니다. 마치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해치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간적 여유, 심리적 여유를 더 가져도 됩니다. 그게 떠난 동물을 잘 기리는 방법이며, 나의 마음도 잘 추스르는 방법입니다. (82쪽)


우리는 아주 쉽게 말하는 실수를 범한다. 동물인데, 다른 동물을 입양하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너무 유난을 떨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당사자만이 느끼는 아픔과 그리움을 모르면서 함부로 위로를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이학범의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아는 이들, 전혀 모르는 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어떤 면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지침서라 할 수 있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 삶의 질 평가표’, ‘특수목적견’(군견, 마약탐지견, 안내견 등) 과의 이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의사인 저자는 반려동물과 이별을 한 후 느끼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가족이 아닌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주는 상실감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어떤 사례 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힘들어 일상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례 자도 있었다. 그만큼 당사자에게는 가족 그 이상, 아니 자신과 같은 존재였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병에 걸려 죽었을 때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고로 죽었을 때는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 안락사의 경우 잘 한 선택인가. 모든 이별에 후회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상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의 시선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 나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힘들었던 시기, 나는 제대로 위로를 한 게 맞는지.


우리는 반려동물의 모든 것을 엄마처럼 보살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고, 산책을 가고, 잘 곳을 만들어주고, 주사를 맞히는 등 이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해주지 않으면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었든 우리는 반려동물에게 말 그대로 ‘엄마’가 됩니다. (107쪽)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이었다. 합법적인 사체 처리 방법 중 하나라니. 동물 병원에 의뢰하거나 합법적인 동물장묘업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최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훈육에 대한 방송이 많다. 하지만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다룬 적은 없는 듯하다.


처음 반려동물을 키우고 죽음을 경험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아파서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먼저 떠났다’는 식으로 말해줘야 한다고 한다. 떠난 반려동물을 대신하는 자리에 비슷한 생김새의 동물을 입양하는 것 좋지 않다고 한다.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동물에 대한 법적 절차인 ‘동물등록 말소신고’도 부분도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남겨진 동물도 슬퍼한다는 사실과 함께. 상실을 느끼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같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같이 먹고 때로 싸우고 놀았던 친구가 떠난 슬픔을 감당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동물도 감정이 있으니 당연하다.


여전히 힘든 마음을 정리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방법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슬픔 나누기’, ‘편지 쓰기’, ‘사진첩 만들기’, ‘자기 전에 사진 보기’, ‘기념품 간직하기’, ‘나무나 꽃 심기’, ‘펫로스 모임’, ‘전문가 도움’을 권한다. 반려동물과 살아가기를 원하면서도 잘 몰라서 주저하는 이들을 위해 유기동물 입양에 대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 사설보호소에서 입양하는 절차를 소개한다. 펫로스를 다룬다고 했지만 반려동물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누구나 아프고 늙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듯 동물도 그러하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정된 이별만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함께해서 행복한 기쁨을 맘껏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반려동물들도 그걸 원할 테니까.


반려동물은 ‘슬픔과 아픔’보다 ‘기쁨과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프다고 슬퍼만 하지도 않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포기하지도 않죠. ‘순간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작은 기쁨에도 즐거워합니다. 우리도 반려동물처럼 남은 시간을 더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그게 네 발 달린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일 테니까요.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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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2-1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아주 많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사는군요 거의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은 듯합니다 그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함께 살던 동물이 죽으면 마음 많이 아프겠지요 다른 동물을 만나라는 말은 쉽게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사람도 누군가를 대신할 수 없듯 동물도 다르지 않겠지요 그 시간이 지나면 다른 동물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바로는 어렵고 다시는 동물과 함께 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네요 동물하고도 잘 헤어져야겠네요

자목련 님 음력으로도 새해가 오는군요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2-10 16:08   좋아요 1 | URL
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요. 책임이 따르기에 동물을 좋아해도 선뜻 용기를 낼 수 없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지는 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희선 님도 새해 복 믾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어젯밤에는 잠들기 전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열리지 않아 당황했다. 사용하지 않을 때 그곳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마지막 이용한 사람이 실수한 것이다. 물론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문은 열렸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되고 침대에 누워 잠깐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행동들. 나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열쇠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열쇠 뭉치를 찾느라 서랍을 뒤적였다. 가족 중 하나는 열쇠가 있냐고 물었고 다른 누군가는 열쇠가 아닌 도구를 사용하여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열쇠 수리공을 찾았을까? 늦은 시각에 관리사무소에 사정하며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상황이 생각난다. 하나의 에피소드, 하나의 장면에서 확장되는 생각들. 소설도 이렇게 시작되는 걸까. 뜬금없다는 걸 잘 안다. 아마도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고 있다. 아니, 책에 수록된 단편은 다 읽었고 에세이를 읽는 중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그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시작했을까, 궁금해졌다. 생각을 정리해서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좋은 글은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런 문장들이 그러하다. 연필에 대한 글을 보면서는 김지승의 『아무튼, 연필 을 떠올렸다. 


거리를 거닐고 싶은 욕구가 일 때는 연필이 좋은 핑계가 된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는 “연필을 사야겠어.”라고 말한다. 이런 구실을 대면 겨울에 런던에서 생활하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런던 거리를 헤매는 기쁨을 탐닉해도 무방하다는 듯이. 시간은 저녁 무렵,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겨울에 샴페인 색으로 빛나는 공기와 거리의 친화력이 상쾌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처럼 그늘과 고독을 바라고 풀밭의 달콤한 공기를 갈망하며 시달리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불이 커지면서 제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기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평소와 다르다. 맑은 저녁나절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을 나서면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우리의 자아를 떨치고 익명의 도보여행자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화국 군대에 속하게 된다. 홀로 자기 방에 있다가 나와서 그들과 어울리면 아주 유쾌하다. (「런던 거리 헤매기」, 중에서 )







버지니아 울프가 감탄했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집도 매력적이다. 여자만의 고유한 감각과 감성, 그리고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독자인 나 역시 여성이라서 그럴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만 기억이 나는데 이 소설집을 통해 다양한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이력을 보니 같은 시대에 활동한 소설가들이다. 그동안 두 소설가의 제대로 이력을 살펴본 적이 없었다. 닮은 듯 다른 두 소설가의 소설.


나를 모르는 삶, 내가 살 수 없는 삶을 읽는다. 어떤 삶을 상상하고 미지의 공간을 그려본다. 소설이라 가능할 거라 여겼던 삶과 현실의 간격이 어느 순간 좁혀지고 하나가 되기도 한다. 연필을 핑계로 거리를 헤매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행은 나와 우리로 치환된다. 글을 읽는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다른 행위가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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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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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쌓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낡아가는 몸과 마주하는 일이란 걸, 근주는 근래 들어 절실히 깨달았다. (「우환」, 25쪽)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난 듯 반가운 문장이었다. 반가웠지만 서글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살아가고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한꺼번에 많은 생각들이 나를 덮쳤다. 늙고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진심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서러웠던가. 가장 먼저 온 노화는 눈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안과’에서는 노화라고 말했다. 아무 걱정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안과 검진을 가야 할 시기를 놓쳤다. 안내 문자를 받고 무시했다. 코로나를 핑계로. 하나 둘 늘어나는 흰머리를 신경 쓰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소설 속 인물에 이렇게 쉽게 동화된다는 건 좋은 걸까, 혼자 생각한다.


김이설의 연작소설집 『잃어버린 이름에게』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전혀 모르는 이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은 ‘신경정신과’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공간,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작정 털어놓고 싶은 간절함에 찾은 공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이라 선택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일상은 도처에 있다. 내가 아는 이도 그렇하고 누군가에게 나는 그곳을 추천하기도 했다.


소설 속 중년 여성의 삶이란 대체로 평온해 보인다. 그러니까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돌봄이 필요 없는 아이들, 자리를 잡은 남편, 이제는 잊었던 스스로를 찾아도 좋을 시기처럼 보인다. 그때 몸이 신호를 보낸다. 「우환」의 주인공 ‘근주’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궁경부암 ’추가 검사, 암에 대한 두려움을 시작으로 천천히 그녀의 일상과 마주한다. 자궁경부암으로 투병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간병했던 시절. 결혼과 출산, 육아, 살림으로 이어진 현재의 삶. 그 과정을 지나온 친구와의 대화만이 작은 위안이다. 그리고 매일 삼키는 약. 「기만한 날들을 위해」속 ‘선혜’는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약을 먹는다.


우울증 약이라는 것이 그랬다. 잘 맞으면 일상이 평온해지고 가시 돋친 마음은 무뎌진다. 화날 일도, 노여울 일도, 짜증 날 일도 없었다. 분노나 수치심, 슬픔도 사라졌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그라들고 긍정적인 감정들만 살아남았다. 남편이 혈압약을 먹듯이 나는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감기약이나 비염약을 먹듯이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면 약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여기면 편했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 59쪽)


이른 나이에 결혼한 선혜는 23년 차 주부다. 군대에 간 아들, 대학생활을 위해 독립한 딸.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다. ‘빈 둥지 증후군’일까,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한 시간이 허무하다. 운전을 배우겠다는 자신을 타박하는 남편. 어쩌면 선혜가 정신과를 찾은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알게 된 남편의 추악한 행동. 이혼을 생각했지만 선혜는 이혼하지 않기로 한다. 남편과 싸우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누구에게 물어야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무기력한 날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미아」의 ‘소영’의 마음이 그러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이사 온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곳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을 남편은 알지 못한다. 남편과의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멀어진 것 같다. 사소한 것들에 울컥하며 감정을 자제하기 힘들다. 「미아」는 김이설의 이전 단편 「손」, 「빈집」과 겹쳐진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 소통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오후 3,4시만 되면 마음이 가장 힘들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안개가 짙게 가라앉고 그 안개 위에 발을 디디고 싶은 생각? 그렇게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미아」, 131쪽)


「경년」속 ‘나’에게 중년은 시련인 것만 같다. 고교입시를 위해 만난 학부모 모임에서 들은 아들의 이야기. 열다섯 아들이 여자아이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놀라운 건 스트레스 해소라는 아들의 입장과 그런 아들을 두둔하는 남편. 이제 초경을 시작한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다.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을 견디고 지나가야 할까.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 예고 없이 다가오는 몸의 변화는 더욱 힘들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갱년기를 겪는 걸까. 그건 마땅히 겪고 참아내면 되는 시간일까. 폭풍우가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석류 음료나 마시면서, 호르몬제와 여성 비타민제를 찾아 먹고, 어떻게든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시기는 끝나는 걸까. (199쪽) (「경년」, 199쪽)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은 그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그들처럼. 김이설 작가가 불러낸 네 명의 여자, 우리는 그들 중 하나로 살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통과했듯 건너야 할 시기, 지나야만 알 수 있는 인생의 과정. 그래서 더욱 이 소설집이 애틋하다. 주변의 언니, 동생, 내가 아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엄마, 아내로 살아내느라 잃어버린 이름을 가만히 부르며 ‘괜찮냐’고, ‘너는 어떠냐’고 물어봐 주는 이들.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기댈 수 있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녀들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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