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흠모한다. 예술의 세계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번지다, 예술을 읽다』란 제목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필자의 이름에 시인 심보선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이자 사회학자가 읽은 예술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일까. 순수한 호기심과 이 책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사회에 스며드는 과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진정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예술을 통해 얻는 위로는 어떤 것일까. 심보선과 이상길 두 명의 저자가 소개한 책은 23권으로 예술, 대화, 천재, 애호, 교육, 이미지, 사라짐, 정치, 등 키워드 별로 필자가 다르다. 사회학자가 예술을 주제로 한 책을 한 권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서평집이 아닐까 싶다. 서평만으로도 어렵고 난해한 책이 많았지만 알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이 생긴 건 좋은 일이다. 


우리가 다룬 책들은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쓸모는 무엇인가? 예술은 왜 그리도 특별한가? 누가 예술을 소유하고 향유하는가? 예술은 사람살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7쪽)


우선 목록을 살펴보니 내가 아는 책은 거의 없었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은 보였지만 정작 깊게 읽은 책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예술서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술을 키워드로 한 챕터에서 그레이슨 페리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란 책에 대한 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소박한 지식도 없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의 전시회가 있다고 하자, 그때 그 소식을 어떤 경로로 접하는지에 따라 대중이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유명 큐레이터, 동료 예술가가 극찬을 한다면 나 역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예술가를 작품을 평가하는 건 같은 동료나 예술가가 아닐까. 당연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의 세계가 한정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서평집의 단점이자 장점은 새로운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이 궁금해지는 일이다. 나는 그레이슨 페리란 이름을 몰랐는데 이제는 긴 제목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책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으로 이뤄진 『평행과 역설』에서 인상적인 건 바그너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 명의 음악가를 향한 서로 다른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일. 그 역시 예술의 자유가 아닐까. 바렌보임은 바그너를 자신만의 음악적 사상을 추구함에 있어 자신의 편협한 인종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반면 사이드는 바그너가 추구한 집단의식이 독일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 말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바그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현대 음악과 연주자, 예술에 대한 심보선의 사유와 문장에 반할 수밖에.


이들에게 음악은 소리였다. 침묵 속에서 태어나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삶이자 죽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소음이거나 복제되고 재생되는 인공음이다. 결국 소리가 사라지면 침묵도 사라질 것이다. (55쪽)


‘‘그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탈리 에니크 『반 고흐 효과』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나 역시 반 고흐의 작품과 그에 대한 책을 읽었고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는 뛰어난 화가의 자질과 더불어 그의 생애와 결부시켰기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불운한 고희의 생 말이다. 대중은 생전의 그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빚으로 남아 후세에 고흐 숭배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애드 디 앤절로의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를 다루며 심보선은 공공 문화기관에서 담당했던 시민교육과 공공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점이 흥미롭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공공 도서관은 닫힌 세상이었다. 단순히 책을 빌리고 그 안에서 운영해는 문화 강의만 떠올랐으니까. 우리 주변의 공공 도서관은 일반 시민에게 어떤 위치와 의미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운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보편적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될까. 작가에 대한 이력, 목차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읽은 책의 제목, 작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읽지 않은 책에 대 무얼 말할 수 있겠는가.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상길이 정리한 것처럼 나의 책 읽기에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읽었는가 여부보다는, 관련된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책 속에 파묻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잊는 것, 또 잃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책이라는 대상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164쪽)


예술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지는 날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연주자는 연주를 하지 못하고, 연극 무대는 폐업 상태와 다름없고 전시회를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 책으로 만나는 예술은 여전히 높은 벽의 실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다양한 예술에 대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읽는다는 건 어렵고도 즐거운 일이다. 이젠보다 좀 더 가까이 예술에 다가선 것 같은 기분, 예술과 친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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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3-1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구 정말 좋아요!!! 세상에 책은 왜이리 많은가요.^^;;;;;

자목련 2021-03-11 14:4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늘어납니다.
읽은 만큼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또 어렵고요. ㅎ

scott 2021-03-29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읽었는가 여부보다는, 관련된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책 속에 파묻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잊는 것, 또 잃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책이라는 대상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우와 자목련님 이문구 말에 동감 1000퍼센트!!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에드워드 사이드 평전(이번에 새로 출간된)에 사이드가 아침에 눈뜨자 마자 바그너 음악을 들으며 식사 하는 모습이 나와요. 흥미로운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폭격했다는 신문 기사 읽을때도 바그너 음악을 들었다고,,,

자목련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코로나로 예술의 보고 듣고 즐기는 기쁨이 사라져 버렸어요
어제 유툽 실황 피아노데이 연주 2시간동안 들으면서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


초딩 2021-03-29 18:23   좋아요 2 | URL
1500퍼센트!!! ㅎㅎㅎ

자목련 2021-04-01 16:05   좋아요 2 | URL
저는 스콧 님이 올려주신 음악으로 충전해요. 오늘도 그렇고요.
피아주 연주를 더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 감사해요. 4월, 환하게 이어가세요^^

scott 2021-04-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예술을 더욱 사랑하라고
이달의 당선작으로!!
축하합니다. ^ㅎ^

자목련 2021-04-12 11:27   좋아요 1 | URL
스콧 님의 포스팅으로 예술을 더욱 사랑해요!!
 
아무튼, 언니 -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시리즈 32
원도 지음 / 제철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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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었던 여성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가 되자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11쪽)


‘아무튼 시리즈를 만나 건 잘한 일이다. 시리즈 전체를 다 만난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책들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튼 그냥 좋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사물과 존재들. 그런 대상이 내게도 있는지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원도의 『아무튼, 언니』를 읽으면서 나의 언니들, 나의 동생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언니가 된다는 것, 언니로 불리는 관계가 맺어진다는 건 친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런 언니들이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두 명의 언니를 포함한 나의 언니들. 또 나를 언니라 부르는 동생들. ‘언니’라는 말이 이렇게 달콤한 말이었던가. 


여느 에세이와 다르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무튼, 언니』는 저자가 만난 언니들의 이야기다. 자신을 이끌어주고 지탱하며 함께 살아가는 언니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글이다. 경찰관인 저자가 중앙경찰학교에서 만난 세 명의 언니 (수홍, 시벨, 대장) 들과 함께 보낸 순간들, 그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신나게 수다를 떠는 듯 호쾌하고 유쾌한 문장에 빠져 어느 순간 함께 맥주를 마시고 어느 순간 함께 절망하고 행복해한다.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것들, 자신을 향한 세상의 시선들을 향한 솔직한 마음을 말한다. 같은 일을 하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사이, 서로에 대한 진심을 담은 격려와 응원이 저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곳곳에서 전해진다. 세 명의 언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아, 이런 동생을 둔 언니들은 얼마나 뿌듯할까. 바쁜 스케줄을 맞춰 떠난 유럽 여행부터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언니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런 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절로 생긴다. 여자 경찰관 언니들이라니. 드라마 <라이브>가 생각나기도 했다. 


세 명의 언니들의 이야기가 다는 아니다. 친언니와의 관계, 경찰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만난 언니,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언니, 엄마의 언니인 이모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언니들. 모두 좋은 언니가 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일부를 차지했던 언니들이다. 아픈 오빠로 인해 항상 힘들었던 엄마를 든든하게 지켜준 이모에 대한 이야기는 먹먹함을 몰고 온다. 돌아가신 나의 엄마와 이모는 어떤 사이였을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녀들의 유년시절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자매들. 오빠와 남동생과는 다른 남다른 유대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여성 경찰관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경찰관이 되려면 1종 보통과 그 이상의 대형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쩌면 이 책은 여자 경찰관이 되려는 이들에게 진짜 좋은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부분이다. 현장에 대한 이야기, 여자 경찰관에 대한 사회적 시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 사건 현장에서 만난 언니들에 대한 부분을 읽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죽음으로 마주한 언니들,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해주는 현장. 모든 잘못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리고 운이 없어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완전히 돌아버려야만 똑바로 설 수 있는 팽이와 같은 세상에서 성실과 진심의 가치 따위, 씨알도 안 먹힐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질 바엔 그냥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 쓰러지지 말자. 우리가 맞잡은 손이 끝없이 이어져 언젠가는 기쁨의 원을 그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운이 되어주자. 세상이 심어준 혐오와 수치 대신 서로의 용기를 양분 삶아 앞으로 나가갈 우리는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158쪽)


누군가의 언니에게, 언니의 동생들에게 힘들어도 지치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책이다. 언니가 있어 든든하고 좋다고, 나도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건네고 싶다. 공감과 연대로 하나가 되어 단단해진 우리를 기대하는 일이 신나고 기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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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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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어원이 궁금할 때가 있다. 아주 어렸을 적 처음 글을 배울 때 새로운 단어에 대해 하나씩 그 뜻을 외우고 기억하던 것처럼. 내가 사용하는 뜻과 다른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소리로 익히는 말이 아닌 단어, 그러니까 글자로 적어 익히는 건 뭔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소리는 금방 사라질 것 같고 글자로 기록하면 영원할 것 같다고 할까. 아마도 사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말, 같은 뜻으로 정의할 수 있는 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리적인 말들 말이다. 하지만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읽으면서 시대가 원하는 단어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니, 재확인했다. 어떤 사회가 특정 단어에 얼마나 민감하고 불편해할 수 있는지 말이다. 누구에 의해 사전이 만들어지는지, 누가 그 사회의 주류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빅토리아 시대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 제작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내게 다양한 의미를 안겨주었다. 자신을 낳고 죽은 엄마 릴리를 그리워하며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에즈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자, 사전을 만드는 과정은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이며 여성의 삶을 다루는 페미니즘 소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중을 드는 시녀, 노예가 존재하던 시절, 어떤 계급이 여전히 관습으로 남았던 시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단어가 상징하는 것들이 현재 우리 시대의 ‘혐오’나 차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소설은 1887년 2월 에즈미가 아빠와 함께 단어 공부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빠는 사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에즈미는 아빠를 따라 사전을 만드는 ‘스크립토리엄’에서 시간을 보낸다. 머리 박사를 중심으로 아빠와 많은 조수들이 그를 도와 각지에서 도착한 단어에 대한 수많은 쪽지들,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사용할 수 없는(사전에 등재할 수 없는) 단어들은 바로 버려진다. 그러나 에즈미에게 그 단어는 다른 의미다. 처음 에즈미에게 온 단어는 ‘여자 노예(Bond-Maid)’였다. 머리 박사님 댁에서 살림을 하며 자신을 돌봐주는 ‘리지’였다. 모두가 다 아는 단어인데 존재하는 단어인데, 사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단어. 어린 에즈미는 충격을 받았고 그 쪽지를 트렁크에 소중하게 담았다.


그렇게 에즈미는 자신만의 단어, 아닌 여성들의 잃어버린 단어를 수집하는 일을 시작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지는 단어들이 하나씩 트렁크 속에 쌓였다. 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알릴 수 없었다. 그들에겐 의미 없는 일이라 여겨질 게 뻔했으니까. 단어들을 모으는 일은 흥미로움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었고 주변을 둘러보며 성장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에즈미가 만난 메이블, 틸다, 빌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다. 어떤 선택(고통과 슬픔을 동반한)과 그에 따른 책임과 결과는 에즈미를 성장하게 만든다.


모두가 그러하듯 에즈미도 주변의 도움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스크립토리엄에서 머리 박사의 심부름을 하면서 사전 제작에 힘쓴다. 하루 종일 단어를 설명하는 쪽지를 분류하고 기록하는 일은 단조롭고 지루할 것이다. 그 일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에즈미를 비롯한 사전에 들어간 단어를 결정하고 그 뜻을 조율하고 인쇄를 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


하나의 단어를 발견하고 그 뜻을 기록하기 위해 쪽지와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에즈미,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문장으로 담아, 누구의 말인지 기록한다.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말들, 누군가에게는 좋은 말로, 누군가에는 나쁜 말로 남는 말들. 사전을 만드는 과정도 무척 재미있지만 에즈미가 아이에서 소녀를 거쳐 여자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도 무척 감동적이다. 에즈미와 함께 나도 성장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에즈미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 영원한 지원군인 아빠와 디토 고모와 리즈, 여성 운동에 대해 토론하고 실천하는 틸다, 에즈미가 만든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책으로 만들어 청혼한 인쇄 조판원 개러스.


한 권을 사전을 만드는 시간이 지루하고 긴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도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나의 단어를 놓고 그 뜻을 토론하듯 서로의 단어를 수용하고 품어주는 것이다. 이 소설이 특히 좋았던 건 단어의 확장이었다. 에즈미는 처음에 수집했던 여성들의 단어에서 시작해 누군가의 고유한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채집한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후의 감정, 전쟁으로 인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을 경험하며 감당해야 하는 상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단어가 존재하며 그것들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년의 에즈미가 엄마를 떠오릴 수 있었던 단어에 대해 디토 고모가 한 말과 개러스의 말은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단어들은 부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란다.” (47쪽)

“진짜 단어들은 소리 내어 말해지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죠.”(137쪽)


사전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방대한 일인지 상상한 적이 없다. 어떤 과정으로 어떤 말들이 어떻게 하나로 규정되고 사전에 등재될 수 있는지 그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사전을 만들고 기획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가 가장 중요했다. 여성의 말, 여성의 단어는 사전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를 존재하는 말과 단어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몹시 화가 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척 남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수많은 단어들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완전하게 소멸될 것이다. 살아 움직이다 끝내 소멸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단어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의 권력과 통치로 인해 갇혀 있다 사장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단어는 자유롭게 바람을 쐬고 날아다닐 권리가 있어야 한다. 에즈미의 트렁크 속 단어가 그랬던 것처럼. 단어로 상징된 존재하는 모든 삶에게도.


“이 단어들 말이에요.” 트렁크 속으로 손을 뻗어 쪽지를 한 움큼 꺼내며 내가 말했다. “이것들은 숨어들려고 나한테 온 게 아니었어요. 이 단어들은 바람을 쐬어야 돼요. 읽히고, 공유되고, 이해되어야 해요. 어쩌면 거부당할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고요. 스크립토리엄에 있는 다른 단어들처럼요.” (353쪽)


아마도 존경받는 책의 리스트가 있다면 이 소설이 포함되지 않을까. 존재하는 모든 삶이 존엄하고 거룩하다는 걸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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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05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저도 정말 궁금했어요. 아직 구매전인데, 별 다섯 주신 거 보고 구매 결심합니다. ㅎㅎ

자목련 2021-03-05 11:34   좋아요 2 | URL
저는 무척 좋았어요. 단어를 선별하고 사전을 만드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에즈미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이 더욱 좋았어요. 연대하며 성장하는 모습, 언제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요!

얄라알라 2021-03-05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굉장히 독창적인 책이라는 걸 알겠어요. bond-maid라니, 유대, 결속을 뜻하는 단어가 왜 앞에 오는 걸까...그리고 존재하지만 사전에는 올릴 수 없는 지칭어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돌아보게 되네요^^ 저는 사지는 않고 빌려 읽어야겠어요^^

자목련 2021-03-08 10:09   좋아요 0 | URL
수많은 말과 단어 가운데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도서관의 책 가운데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얄라 님, 즐겁게 만나세요. 제게 좋은 느낌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hnine 2021-03-05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을 소재로 이런 내용의 소설은 없을까요?
흥미있는 내용이어요.

자목련 2021-03-08 10:12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면서 사라지는 사투리가 생각났어요. 말씀처럼 우리말도 분명 있겠지 싶어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나인 님, 환한 봄날 이어가세요^^

stella.K 2021-03-17 16:47   좋아요 0 | URL
영화 <말모이>가 <우리말의 탄생>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하지만요.
아님 우리 말을 소재로 한 건 아니지만, 김탁환의 <대소설의 시대>는
조선시대 책읽는 여자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걸 작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읽고 매일 눈길만 주고 있습니다.ㅠ

이거 원 너무 늦게 봤군요.ㅋㅋ


바람돌이 2021-03-05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단어가 없어질때는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함께 없어지는거겠죠. 전에 어디선가 지금도 소수 언어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삶과 철학이 없어지면서 세계의 다양성이 점점 없우지고 있다는 얘기를 읽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일것같네요. 자목련님 리뷰덕분에 또 하나 좋은 책을 담아갑니다

그레이스 2021-03-06 00:01   좋아요 0 | URL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생각납니다. 사라져가는 언어들의 이야기. 이 책을 모티브로 김애란작가가 쓴 단편이 있는데, 거기서 소개받고 두꺼운 책을 사서 읽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자목련 2021-03-08 10: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영원한 건 없겠지만 보존되어야 할 것들이 많겠지요. 하나로 통일되는 편리함도 있겠지만 말씀처럼 다양성과 존중에 대한 논의도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람돌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1-03-08 10:15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 님이 언급하신 김애란의 단편, 저도 기억해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다는 건 너무 슬픈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 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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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를 받는 일은 정말 기쁘다. 손 편지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문자, 전화, 이메일이 전할 수 없는 온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데도 정작 손 편지로 답장을 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손글씨가 엉망이라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귀찮기도 하고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오롯이 그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일. 그건 어렵고도 즐겁다. 나에게서 시작해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에게 닿은 글이라니. 그런 점에서 배우 키키 키린이 쓴 편지는 더욱 남다르다. 유명 배우가 단순한 팬에게 형식적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가 아닌 고민을 들어주고 그것을 함께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키키 키린의 편지』는 키키 키린이 타계 후 그녀를 추모하는 방송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키키 키린이 많은 일반인에게 많은 편지를 남겼다는 걸 알고 편지를 받은 이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편지를 모은 글이다. 유명 배우가 일반인에게 편지를 쓰게 된 과정은 무엇일까. 편지를 받은 이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암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노년의 배우, 그녀의 보낸 편지의 내용은 어떨까. 만약 내가 연예인에게 편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이런 점들이 궁금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배우 키키 키린이 아니라 인간 키키 키린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방송 제작진이 만난 이들은 무척 다양했다. 그만큼 키키 키린이 교류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왕따 근절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부터 영화의 모델이 된 한센병 환자인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성년의 날을 맞은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개인적인 친분과 업무에 관련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쓴 내용이 없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진솔한 것이었다.

책에는 청년들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많았는데 그 가운데 이런 편지가 특히 좋았다. 취재 과정에서 편지를 받은 당사자는 키키 키린의 편지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다가 편지를 찾아 읽었는데 현재 자신의 상황과 잘 맞는 내용이었다. 장래 희망이 없는 청년에게 “장래 희망이 비어 있더군요. 나는 우연히 열여덟에 배우가 되었는데 육십이 넘어서야 겨우, 앞으로 연기자를 목표로 삼기로 했어요. 난 좀처럼 입을 잘 열지 않는 아이여서 말하는 게 익숙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타인의 말을 듣는 귀를 키워줬어요. 단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제 특기죠.” (본문 중에서)

그리고 늦게나마 청년이 키키 키린에게 보낸 답장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녀의 의도와 진심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꿈이나 목표는 자주 바꾸면 안 되고 늘 그것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으며 꼭 평생을 걸 만한 꿈이나 목표가 없더도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유연한 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표가 작거나 꿈이 좀 엉뚱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본문 중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이처럼 마음이 오가는 것이다. 키키 키린의 편지를 받은 이들이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추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도 키키 키린에게 보내는 답장이자 세상을 향한 내밀한 고백이었다. 영화 <앙> 촬영을 위해 키키 키린이 모델로 한 한센병 환자인 여성이 취재진에게 들려준 이 말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니 특별히 뭐가 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거야.” 은 그래서 아름다운 여운과 진한 감동으로 남는다.

키키 키린이 마직막으로 쓴 편지라 할 수 있는 짧은 글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 일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다. “가느다란 실 하나로 겨우 이어져 있네요. 말 한마디 안 나와서 힘들고 곤란한 노파입니다. K.KIKI” 인생의 끝을 곁에 두고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그녀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진짜 어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막연하게 내가 되고 싶었던 대범한 어른이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그녀를 아는 모두가 그녀를 사랑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저 배우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도 그녀와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근하다.


“죽는다는 건 타인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떠난 사람을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게 하는 일” (키키 키린 지인의 말,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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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4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편지 쓰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 없는데, 문방구가면 여전히 편지지 매대가 있어서 그래도 누군가는 여전히 손글씨로 전하는구나 궁금해하거든요. 키키 키린같은 ˝연결되려는˝ 분들이신가봐요^^

자목련 2021-03-05 1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잊고 있던 물건들을 보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사용하는 소중한 것이구나 싶어요. 연결되려는, 이 말 좋으네요. 얄라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늘이 잔뜩 흐렸다. 뿌옇다. 세상도 흐렸다. 흐림 뒤에 비로 이어질 것이다. 흐림을 깨고 나타난 비는 흐림의 일부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면 비는 싫어할 것 같다. 비는 독립적인 비로 존재할 거라고 외칠 것 같다. 아주 멀리서 비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런 날에는 조금 밝은 기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런 햇빛 스며든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2월 22일에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 2월 22일이라서, 2가 셋이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이 났다. 혼자가 아닌 둘이 그것도 셋이나 있었다. 2월에만 누릴 수 있는 발견이고 즐거움이니까.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것들로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하튼 그 햇빛의 줄기는 잔뜩 흐린 이런 하루를 더욱 환하게 만든다.



2월의 끝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잠깐 생각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글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냥 어제와 같은 하루에서 아주 조금 다른 일상 같은 것. 속상한 일도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일상, 걱정을 쌓기보다는 즐거움은 쌓을 수 있는 일상. 짧은 2월, 여느 달보다 하루 이틀, 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즐거움이나 산뜻하고 화사한 봄옷을 구매하고 결제한 후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마음들 말이다.


환하고 부드러운 햇빛을 품은 책들을 읽은 일은 사소하면서도 기쁜 일이다. 기대한 만큼 만족도 큰 소설을 만나면 더욱 그렇다. 나를 환하게 만드는 책은 『소설 보다 겨울2020』, 원도의 『아무튼, 언니』,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그 중 핍 윌리엄스의 첫 장편소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다. 정말 좋은 소설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았지만 우선은 이런 문장을 나누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이 구한 단어들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 단어들 모두를 구했다. 단어들을 사전에 넣어 그것들을 구하는 거라고 아빠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았다. 내 단어들은 외진 곳에서, 구석에서 왔다. 분류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필요 없는 단어를 버리는 바구니에서 왔다. 내 트렁크는 사전 같구나, 나는 생각했다. 단지 잃어버리거나 무시당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만 달랐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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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2-2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잘 지내셨나요.
여기도 오늘 하루종일 구름 많고 흐린 날이었어요.
많이 춥지는 않지만, 흐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2월도 많이 지나고 다음주엔 3월이 됩니다.
조금 남은 2월에 좋은 일들 가득하시면 좋겠어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1-02-26 15:0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맑음에 가까워요.
오늘이 보름이라고 하네요.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그런 여유가 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요^^

희선 2021-02-2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 소설이었군요 저 제목 봤을 때 인문에 사전 이야긴가 했어요 소설로 본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엔가 비가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더니 정말 비가 오는군요 그럴 때 자주 있어요 비가 가끔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요 이번주도 거의 끝나가는군요 짧은 이월이 갑니다

자목련 님 남은 이월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2-26 15:01   좋아요 1 | URL
네, 소설이에요. 무척 좋았어요. 비가 올 것 같았는데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항상 건강하고 좋은 시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