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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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표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도 어떤 틈이 보인다. 조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그 거짓말이 귀여워서 했다. 나중에는 다 들통이 나는 말이라서. 시간을 두고 내가 그때 일을 꺼내면 조카는 어떻게 아냐고 물었었다. 이모는 모르는 게 없어, 라고 답했지만 실은 그냥 던져본 말도 많았다. 비밀과 거짓말은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미애의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속 열여섯 하영에게는 말이다.


가출을 감행하는 유리 앞에 나타난 아이들. 유리를 따돌리고 폭력을 가했던 그들은 결국 유리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열여섯 아이들의 행동, 단순하게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은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사건에 대한 수사가 아닌 전혀 다른 하영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던 하영이 5년만에 희주에게 연락을 해온다. 하영은 희주의 친구 선경의 의붓딸이다. 과거의 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채로 상담은 끝이 났다. 상담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듯 하영은 희주와 줄다리기를 할 뿐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


유리의 사건과 하영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과거 하영에게 벌어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독자의 궁금증은 더 커진다. 하영에게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은 희주는 선경에게 연락을 취하고 선경의 임신 소식을 듣는다. 선경의 건강을 위해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이사를 결정한 남편. 아내를 배려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선경과 희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자신의 속마음은 숨기고 서로를 두려워하는 이상한 가족의 모습이다. 모두가 비밀을 가졌다.


이사온 강릉에서 선경은 하영과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한다. 하영도 그런 선경의 마음을 알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영은 혼자 주변을 산책하다 숲 속에서 유리의 가방을 발견한다. 유리가 남긴 일기를 통해 학교생활을 짐작한다. 하영은 유리의 죽음을 밝힐 수 있을까.


선경의 모호한 기억속에 가려진 그날의 진실과 유리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하영의 계획이 소설의 축을 이룬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빠른 전개와하영과 선경의 복잡한 내면에 대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하영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마음을 읽다보면 뭔가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두렵다. 첫 장을 넘기면서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과 점점 늘어나는 십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곧 영화나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비밀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든, 아무리 깊게 묻어두어도 비밀은 기어코 모습을 드러내고 잔인한 미소를 짓는다.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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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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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작가를 생각하면 아니,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보면 저절로 ‘홍학’이 떠오른다. 나는 그의 여러 소설 가운데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를 읽었기 때문이다. 어려웠다. 읽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설명할 수 없다. 읽은 지 한참이나 지났고 독특한 소설이라고 기억할 뿐이다. 그 기억에 더해 『인간만세』를 읽고 나는 더욱 그의 소설을 독특하다고 기억할 것이다. 유머가 장착되었지만 나는 그 유머를 좋아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유머가 이상하다는 건 아니다. 단지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소설은 답십리 도서관 상주 작가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도서관에 그런 게 있었나. 읍에 사는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지원 사업이다. 검색을 해보니 ‘정지돈’ 작가가 이 사업에 참여한 인터뷰에 ‘오한기’ 작가를 언급한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도서관 상주작가를 하면서 만나 사람들과 도서관 이용자들과의 모임, 강의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 소설에 녹아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도서관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은 무한대가 아닌가. 어쩌면 소설의 소재를 얻고 소설을 쓰기에도 가장 적합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근처 도서관에서 작가를 초대해 독자와의 대화 같은 걸 하면 참여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특히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더욱 부러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도서관과 작가, 그리고 소설. 완벽한 조합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 하지만 도서관 내부의 사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관계자만이 알 수 있다. 오한기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걸까?


도서관이 무대이면서도 똥과는 달리 깔끔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며, 무엇보다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 그게 사람들이 선호하는 문학이다. 나는 그런 문학을 써야 한다. 전작들과 달리 심연을 건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문득 떠오르는 건 우정이다. 우정만큼 인간의 심연을 울리는 건 없다. 더불어 우정은 문학의 은유다. 쓰잘데기없지만 있어도 나쁘지 않은 것. 그게 문학과 우정이다. (57쪽)


오한기는 그런 소설을 썼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세』가 그런 소설이니까. 도서관이 배경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이 등장하면서도 그것은 우리 인간과 밀접한 존재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 도서관에서 만나는 괴팍하고도 이상한 인간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화자‘나’도 있지 않은가. 소소하면서도 진중한 에피소드. 거기다 대출한 책으로 기발한 일을 벌이는 이용자 ‘진진’과의 우정도 흥미롭다. 등장인물이 모두 실제의 인물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유형의 인간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사실 화자 즉 오한기의 입장에서 보면 도서관 이용자와 벌이는 사소하고도 진중한 다툼(대화 혹은 토론)은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독자의 의견은 무사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다. 이를테면 소설 속 교수가 던진 질문은 문학을 향한 가장 궁극적인 물음이 아니던가.


대체 문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소설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거냐고요. (20쪽)


그리하여 독자는 문학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의미이고 가치일까. 소설과 문학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의 몫이 아닐까. 작가가 문학의 목적이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독자는 그냥 재미, 즐거움, 감동으로 끝날 수 있다. 작가의 고민과 의도를 독자가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진진의 이런 대답이 오히려 가장 쉬운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작법의 문제 같은데, 상징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상징은 열려 있기 마련이죠. 작가님이 정하고 쓴다고 그게 그대로 읽히지 않아요. 그대로 읽히면 오히려 하수 아닌가요? 상징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독자들이 만드는 거죠. (153쪽)


오한기는 내게 여전히 ‘홍학’으로 남을 것 같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많이 웃었고 기존의 도서관을 감싸던 권위가 살짝 내려갔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며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이용자는 때로 잊고 있으니까. 도서관의 문턱은 더 낮아도 좋다. 그런 점에서 오한기의 이런 소설에 나도 만세를 외친다. 소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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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01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이 무대라니 좀 궁금해집니다. ㅎㅎ

자목련 2021-06-02 15:29   좋아요 1 | URL
내가 안다고 여긴 도서관과 다르구나 싶었어요. 물론 소설 속 이야기지만요.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리얼리티는 살아 있는 듯도 하고요. ㅎ

황금모자 2021-06-01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 이꼬르 똥 끄끄끄끄끄

자목련 2021-06-02 15:28   좋아요 1 | URL
똥에 대한 부분은 아이들이 무척 만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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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도 이 소설을 곁에 두었다. 기대가 큰 소설인데, 기대 이상의 기쁨을 안겨주면 좋겠다. 그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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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5-30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

자목련 2021-05-31 09:34   좋아요 3 | URL
떨리는 이 기분, 뭘까요, ㅎㅎ

새파랑 2021-05-30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목련님 리뷰가 너무 기대되네요^^

자목련 2021-05-31 09:34   좋아요 2 | URL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지라도, 리뷰를 쓰는 게 목표입니다^^

붕붕툐툐 2021-05-30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 수면 아래 가라앉은 책 꺼내주셨네용~ 저도 리뷰 기대할게용!!

자목련 2021-05-31 09:33   좋아요 2 | URL
노력해보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창비시선 455
신미나(싱고)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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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시를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를 몰라도 시를 읽는다. 시가 주는 위로를 알기에. ‘돌이길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살아갈 수밖에요‘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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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름들 -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의 예술 읽기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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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책인 것 같다. 예술에 대한 흠모,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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