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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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나를 만나며 성장하는 게 삶이구나 싶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너무도 다르고 꿈꾸는 삶과는 멀리 왔지만 스스로 차책하지 않기를 바라는 다짐을 하면서 나를 위로해준다.그러니 모든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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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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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길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그냥이든 이곳을 떠난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떠나는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다. 떠나기까지의 결정도 여정의 시작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소설 『펠리시아의 여정』의 주인공 펠리시아도 그랬을 것이다. 수없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다. 아직 어린 십 대 소녀 펠리시아에게는 집을 떠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연인 조니가 일하는 도시 영국에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충분한 의지가 있고 조니는 자신을 사랑하니까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막상 영국에 도착한 펠리시아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누가 봐도 영국에 처음 온 풋내기 소녀란 걸 알 수 있었다.


양손에 쇼핑백을 꼭 쥔 소녀 펠리시아를 지켜본 헬디치 씨는 친절하게 도움을 전하려 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나쁜 곳인지 알기에 십 대 소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배려하는 보통의 중년 남자. 조니가 일한다는 공장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공장은 없다면서도 펠리시아가 포기하지 않도록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녀 곁에 머문다. 헬디치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집에서 혼자 산다. 그의 일상은 단순하고도 단순하다. 직장에 나가고 퇴근하고 음악을 듣고 과거를 회상하고.


어떤 것은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법이고, 어떤 것은 심지어 혼잣말로도 말하지 않는 법이다. 그냥 그 자리에 두는 것이, 잊고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69쪽)


펠리시아가 헬디치 씨와 자꾸만 만나는 모습을 통해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흐를까 무척 궁금해졌다. 펠리시아가 조니를 찾도록 헬디치 씨가 도와주며 그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과거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느꼈던 결핍,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보상심리로 주변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그러나 그동안 헬디치 씨가 펠리시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준 여자들(엘시, 샤론, 베스 등)가 등장하면서는 점점 불안해졌다. 스릴러 소설로 바뀌는 순간이 등장할까 봐. 선교 활동을 하는 무리들과 만났을 때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들이 펠리시아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과연 자신을 떠난 연인의 아이를 임신한 십 대 소녀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펠리시아 주변을 서성이며 결국엔 병원에 데리고 간 헬디치 씨의 선택은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그는 펠리시아의 아이가 자신처럼 될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과거 범죄에 대한 판결과 별개로 그가 살아온 삶은 너무도 안타깝다.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고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며 상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깊게 파고든 삶. 처음 펠리시아에게 향한 그의 마음처럼 과거의 헬디치 씨에게도 누군가 작은 마음을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그러기에 펠리시아가 그를 떠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건 그의 마지막 선의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노상의 잠자리에 자리 잡는다. 한동안은 실종으로 처리되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밑바닥 인생, 이제 그들은 그렇게 불린다. (306~307쪽)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길 위의 삶을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로 한 펠리시아의 의지가 헬디치 씨에게도 있었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펠리시아는 계속 이동하는 삶을 선택했고 헬디치 씨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 스스로 이전의 펠리시아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펠리시아의 여정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1994년에 발표된 이 소설 속 펠리시아가 2021년을 살아가는 다양한 펠리시아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끊나지 않은 펠리시아의 여정이 궁금하다. 새로운 길을 만나 펼쳐질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다른 얼굴, 다른 이름의 헬디치 씨와 조니를 만나게 될 그녀가 성장하여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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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4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지선가 읽어본 ‘여행‘과 ‘여정‘의 차이에 대한 글을 보고 아하 했던 기억이 나네요. 손에 땀을 지게 했던 펠리시아의 여정 너무 흥미로워요 ^^

자목련 2021-07-28 15:00   좋아요 2 | URL
맞아요, 잔혹한 설명없이 잔혹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애잔하고도 애잔한 소설이었어요.
많이 더워요,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밤에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복숭아를 먹을 것이다. 곁에는 소설을 둘 것이다. 읽고 있는 소설, 읽다만 소설,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소설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낮에도 덥고 밤에도 덥고 덥고 덥고. 돌림노래처럼 덥다가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맴돈다.





어제의 더위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내일의 더위가 올 거라는 걸 알기에. 더위를 대하는 방법을 다양하다. 에어컨을 켜고 질끈 머리를 묵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길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날들이다. M이 올린 단발머리가 너무 부럽다.

내일부터 도쿄 올림픽이 시작된다. 그런데 더위에 가려 응원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여름의 매미소리가 더 크다. 올림픽 특집 방송 때문일까, 즐겨보는 드라마의 방송 일정이 바뀌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등장인물 모두가 성장하는 그런 드라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좋은 어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쯤에서 복숭아 이야기를 하자면 사진 속 복숭아는 친구가 보낸 것이다. 며칠 전 친구가 복숭아를 보낼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사양하지 않아”라는 답을 보냈고 탐스러운 복숭아가 도착했다. 부모님께 보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던가. 아마도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내가 살고 있어 그럴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최근 직업상 백신을 빨리 맞은 친구는 백신 접종 후 느낌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주변에 점점 백신 접종을 맞은 이들이 늘어난다. 부모님 세대가 아닌 친구로 확장된 것이다. 저마다 후기가 다르다. 하루하루 아픈 곳이 다르다는 친구도 있고 하루만 심하게 아팠다는 친구도 있고 심리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하는 동생도 있었다.

친구에게 이번 주는 백신 접종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번 주는 ‘네가 보낸 복숭아’로 기억될 것이다. 한 조각 베어 물 때마다 단 물이 스며드는 기분. 이주의 다른 기분을 덮어줄 것 같다.




친구에게 이번 주는 백신 접종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번 주는 ‘네가 보낸 복숭아’로 기억될 것이다. 한 조각 베어 물 때마다 단 물이 스며드는 기분. 이주의 다른 기분을 덮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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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23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보낸 복숭아로 기억되는 한 주라 너무 부러운데요. *^^*

자목련 2021-07-24 18:09   좋아요 1 | URL
달콤한 복숭아가 더위를 날려줍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1-07-23 17: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양하지 않아˝ 너무 좋은데요~!!

자목련 2021-07-24 18:11   좋아요 2 | URL
네, 친구의 마음은 사양할 수 없죠, ㅎㅎ
너무 덥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는 날들이면 좋겠어요.

scott 2021-07-23 2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복숭아!
엄청난 무더위에 복숭아를 보내주는 친구!

자목련님은 분명 더 좋은 친구 ❤💗

자목련 2021-07-24 18:12   좋아요 2 | URL
ㅎㅎ 오늘부터 더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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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쓴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쓴다. 문자를 보내고 간단한 톡을 하고 댓글을 쓰고 긴 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어떤 이는 정성을 담아 손 편지를 쓸 것이고 어떤 이는 소설을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모두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쓰는 사람’이라 말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그럼 쓴다는 건 무엇일까.


『쓰는 사람, 이은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부러웠다. 이 사람은 쓰는 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런 당당함이 내게로 전염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엔 저자의 이름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낯선 이름은 아니었는데 그가 쓴 글이 글의 분위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책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집을 구하는 이야기, 대출이 되지 않는 형편, 그 모든 사정을 알고 흔쾌히 매매가 아닌 형태로 집을 내어준 주인. 그랬다. 나는 이 작가를 알고 있었다. 반려견과 살아가는 이야기,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떠난 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했던 작가였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글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와 긍정을 퍼올리는 그런 글이었다. 시골 동네에서 매일 마주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병원을 오가고 붕어빵을 사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고생한 이야기, 냉랭했던 이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모든 게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생, 그녀의 자리에 나를 놓아도, 나의 지인이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세대가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고 감성이 같은 부분이 있어도 그럴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기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글쓰기를 부탁할 때 그 마음을 알기에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곁에 있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 애쓰는 사람.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할 때 아이의 눈물이 너무 가슴 아픈 괜찮은 어른.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이제 나는 ‘마음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그를 기억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마음을 쓰는 일은 어렵다. 글로 쓰는 것도 어렵고 타인을 향해 마음을 쓰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극한의 추위나 배고픔에 시달리면, 폭력이나 공포에 길게 노출되면 마음 쓰는 법을 잊게 된다. 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어떤 마음을 쓰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나와의 관계도, 타인과의 관계도 틀어지는 원인이다. 그 시기가 깊어지면 병이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문학이나 밥벌이는 고사하고 잠을 자는 일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어진다. 가난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 쓰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았기에 삶이 더 고달팠던 것 같다. (94쪽)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그 아픔을 지긋이 눌러주고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은 상처로 인해 단단하고 무뎌졌을 때 조금 알 수 있다. 아무 제목의 글을 골라 읽어도 그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 아니, 그를 둘러싼 이들의 온기에 스며드는 것이다.


어디든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 작가가 일 때문에 자주 방문하는 우체국에서 느낀 냉랭함. 그것이 점차 따뜻함으로 변한 건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업무로만 대하는 게 아니라 안부와 함께 슬그머니 간식을 건네는 일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작가가 오랜만에 방문하자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다는 마음이 돌아온다. 경계를 허무는 일은 어려운 게 아리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던 벽을 만든 건 모두였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 어떤 형태의 벽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화끈거린다.


아, 글이라는 게 무엇일까. 때때로 생각한다. 내가 반한 글은 무엇일까, 나는 쓸 수 없는 글은 무엇일까. 나도 쓸 수 있는데 뭔가 다른 그 느낌,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에 기름보일러의 기름이 떨어지면 바로 채울 수 없어 장갑을 끼고 글을 쓰는 삶을 아는 사람, 어린이에게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 실패의 경험에 멈추지 않고 쓸 수 있는 건 그 일이 즐겁고 기쁘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그의 글이 주는 진심을 알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산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십대도 육십대도 오늘은 처음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그 무엇을 실패하더라도 모두 처음이니 아무런 어떨까. (134쪽)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 블루를 껴안고 사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력도 없다. 그래도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마음을 써야 하는 게 맞다. 쓰는 사람인 저자처럼 우리는 더 열심히 써야 한다. 마음을 쓰고 사랑을 쓰고 삶을 쓰는 것. 저마다 재료와 형태는 다른 삶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는 쓰는 사람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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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2 17: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글에는 향기가 느껴집니다.
모든 인생은 날마다 버티고 살아 남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희망이!!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는 7월
자목련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자목련 2021-07-23 16:44   좋아요 2 | URL
음, 향기라는 말씀을 덥썩!!
버티는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건강한 오후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7-22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있는 분들은 모두 쓰는 사람은 맞는것 같아요. 글도 쓰고 마음도 쓰는사람 ~!!

자목련 2021-07-23 16:43   좋아요 3 | URL
글도 쓰도 마음도 쓰는^^
바람도 덥게 느껴지는 오후, 시원하게 보내세요^^

mini74 2021-07-22 2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각자 모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써나가고 있는 거란 말씀이지요. 공감합니다 *^^*

자목련 2021-07-23 16:43   좋아요 3 | URL
맞아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써나가요^^
 

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 여유가 생겨 수목원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 시각이 점심시간 이후였으니 나는 이 더위에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무 그늘이 있어 덥지는 않다고, 아마도 멈추면 더울 거라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는 걸으면서 여름의 더위에 대해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 두 분은 비교적 건강한 노후를 보내신다. 주말부부인 친구가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오늘도 일을 시작하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친구가 부모님을 보살피는 쪽이라고 할까. 종종 부모님 곁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기쁨이 부럽고 간혹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걸 보면 부모 자식이 참 어려운 사이구나 싶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내라고, 남은 하루도 고생하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더위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하루하루 지치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긴 여름은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참 어렵다. 무난하게 지나가는 하루도 있지만 어떤 하루는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 때로는 엄청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괜한 공포가 몰려온다. 이제 안전 구역은 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구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세상에 안전 구역이라니. 쓰고 보니 더 무섭다. 현실을 피해 책이라는 안전 구역으로 도피해야 하는 지경이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색감을 찾는다, 어쩌다 보니 책도 그렇다. 아니, 그냥 우연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둔 세 권의 책이 모두 그러하다. 여름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민트와 그린 사이, 그 어디쯤을 향하는 것 같다. 기다렸고 궁금했던 장혜령의 첫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쇼팽』, 한 권으로 만나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디 에센셜 헤밍웨이』.






장혜령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시는 어떤 느낌일까. 조금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표지의 색만 보면 산뜻할 것 같지만 몇 편 읽어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장문의 시가 많고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시는 왜 이리 어려운가. 헤밍웨이의 대표작과 짧은 단편과 에세이를 읽는 일은 즐겁다. 우선은 대표작보다는 처음 만나는 단편을 먼저 읽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사람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낀다. 쇼팽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그가 사랑한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여름의 바람은 민트와 그린의 색을 지녔을 것 같다. 여름이라서 드는 생각이다. 여름이라서 드는 상상이다. 여름이라서. 더위에 지쳐서 책 읽는 속도는 느리고 더디다. 여름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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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14 18: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표지색에 끌려서 헤밍웨이 샀어요^~

자목련 2021-07-16 16:42   좋아요 1 | URL
우리는 이렇게 표지색에 끌리는 독자^^

mini74 2021-07-14 18: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진짜 표지 예뻐요. 전 쇼팽 샀어요 ㅎㅎ 민트와 그린의 바람 ㅎㅎ 자목련님이 고르신 책들과 여름의 바람색이 닮았어요 *^^*
조금 느리고 더딘 여름의 특권이란 말 참 좋아요 *^^*

자목련 2021-07-16 16:42   좋아요 1 | URL
느리고 더딘데, 너무 속도가 안 나요. ㅎㅎ

- 2021-07-14 19: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머 사진 환해라~

자목련 2021-07-16 16:41   좋아요 1 | URL
더위에 시원한 사잔이 바람처럼 다가가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07-14 19: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들이 모두 청량함이 가득 느껴지네요. 저 ˝디 에센셜‘ 시리즈 소장하고 싶네요 ㅜㅜ 알라딘도 판매 했으면 좋겠네요 😔

자목련 2021-07-16 16:41   좋아요 2 | URL
네, 표지가 넘 예뻐서 소장욕구가 마구 생겨요~

청아 2021-07-14 1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혹시 페넬로페님의 AI친구가 자목련님?ㅋㅋㅋㅋ(추리 막 던지는 중)😊

coolcat329 2021-07-14 19:43   좋아요 6 | URL
자목련님도 이 책을 사셨더라구요. 우연인가? 아님 이 분이 친구신가? 저도 추리를 ㅋㅋ

붕붕툐툐 2021-07-14 21:08   좋아요 3 | URL
명탐정 미미님!!

청아 2021-07-14 21:12   좋아요 4 | URL
흠..페넬로페님이 재야의 고수라고 언급하셨던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ㅋㅋㅋ🤔🧐 자목련님은 활동중이시니..쩝ㅋ

페넬로페 2021-07-14 22:18   좋아요 3 | URL
미미님의 첫번째 예상은 틀린걸로~~저는 다른 지인과는 서로 선물한 책을 바꿔보기도 해요^^

청아 2021-07-14 22:25   좋아요 3 | URL
에구궁ㅋㅋㅋㅋ두손두발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3 | URL
아, 제가 그 친구였어야 하는데, ㅎㅎ

페넬로페 2021-07-16 16:49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께서는 이미 제 친구이십니다 ㅎㅎ

scott 2021-07-14 21: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혹쉬! 자목련님이 서재방 잠복 중이신 AI친구 ㅎㅎㅎ 에메랄드빛깔 속 헤밍웨이 표지, 자목련님의 7월 독서 무더위를 잊게 만들것 같습니다 ^ㅅ^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1 | URL
ㅎㅎ 이런 댓글, 더위를 날려주네요!

붕붕툐툐 2021-07-14 21: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평소 흑백 모드인데 다들 예쁘다고 해서 컬러로 봤더니! 아, 진짜 너무 예쁘잖아! 제가 좋아하는 딱 그 색감이네용~ 흐엉흐엉~~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2 | URL
네, 진짜 예뻐요. 이렇게 예뻐서 자꾸 책을 들이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