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말이다. 복잡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과 같은 개념이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삶을 누리는 이는 적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를 다스리는 일, 심연 깊은 곳으로의 침잠은 절실하다.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이자 욕망의 관계로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갈수록 소란하고 위험하고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독립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내면의 장소, 내 영혼의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장소가 필요하다. 내 작은 방은 하나의 은신처이자 전망대이다. 이 은신처에서 나는 영혼의 파수꾼이 되고 상처 난 인간의 위엄을 가다듬어 세우고, 그 순간 이 은신처는 희망의 전망대로 전화轉化한다. (11쪽)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내 작은 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작은 방이 된다. 이 작은 책이 우리의 영혼을 달래고 쉴 수 있는 작은 방이라는 거다. 37장의 흑백사진으로 만난 삶, 그 안의 작은 공간에 담긴 사연과 시인의 사유가 우리를 작은 방으로 인도한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지 묻는다. 고요하고 아득한 작은 방을 채운 쓸데없는 상념들을 하나씩 지우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52쪽)






어느새 나는 흑백 사진의 그 방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터전을 잃어버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부모, 그곳이 어디든 가족과 함께 있다면 작든 크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지상 최고의 집이라는 게 내게로 전해진다.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힘겹고 고단한 시간을 어떻게 건너고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진이 말하지 않는 어떤 슬픔과 고통에 동참한다.


집이란 언제든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는 곳.

다친 새처럼 상처받은 존재들이 그 품 안에서

치유하고 소생하고 다시 일어서 나가는 곳이니. (42쪽)


살아가는 일은 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라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 자리를 가꾸고 단장하며 살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프고 힘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집, 나의 작은 방을 내어줄 수 있는 삶의 고귀함을 배운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소중한 인생이고

이 인생길의 주인은 나 이기에. (86쪽)


과연 나는 내 한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내게는 슬픔을 위로하고 포옹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있을까. 어쩌면 거기 그 자리에 있던 그 방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 넓고 더 따뜻한 집에 살면서도 어느 시절 반지하의 방, 겨울에도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날들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나를 본다.


‘어찌할 수 없음’ 투성이인 우리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고’ ‘어찌해야만 하는’ 것은 내 마음 하나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내 마음의 빛이고, 내 마음의 방으로부터다. (15쪽)


여기 내가 쉴 곳이 있는데, 하루를 마치고 누울 곳이 있는데, 무엇을 더 갖고자 욕심내고 불평하는가. 진정한 내 마음의 방 하나를 꾸리지 못한 지독하게도 가난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라도 고요와 환한 빛으로 채울 수 있는 내 마음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싶다.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나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 내 마음의 방, 119쪽)


메마른 우리 영혼을 따뜻하고 보드랍게 채워줄 에세이가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팍팍한 삶으로 치진 당신에게 작은 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쉴 곳으로도 충분하니 마음의 방을 이곳에 마련해도 좋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01-10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라카페 갤러리 가서 보고 싶어요 ^^

자목련 2022-01-11 09:09   좋아요 1 | URL
직접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01-1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은 참 단아하고 좋습니다. *^^*

자목련 2022-01-11 09:10   좋아요 1 | URL
음, 단아하지 않지만 단아란 말은 좋아합니다. ㅎ

Falstaff 2022-01-1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도 댓글 썼다가 지웠는데요....
지금 시대 대표적 운동권 소설가이기도 한 이인휘의 <건너간다>를 보면 요즘 박노해가 그쪽 사람들한테 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혹시 이젠 이런 책을 낸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댓글을 달았다가 왼쪽 오른쪽 따지는 게 싫어서 말입니다.

자목련 2022-01-11 09:14   좋아요 1 | URL
같은 길로 간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가늠할수 없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으로 만난 박노해의 글과 사진이 좋을뿐.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생각뿐 이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며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카야’와 그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을의 관습대로 얼음 속에 엄마를 보관하고 볼 수 있다. 카야는 매일 얼음관 속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녀온다. 거기 엄마가 있으니 괜찮았다. 엄마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봄이 있는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카야는 엄마가 들려준 봄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의 얼음 관을 ‘스미스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과 집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카야는 아빠에게 화를 냈지만 겨울을 스미스 일가가 마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철도를 만들었다. 카야는 이제 학교를 마치고 스미스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아빠가 출장을 간 사이 친절한 스미스 씨는 카야를 저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가까이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카야를 엄마처럼 꾸미려 했다. 그건 카야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미스 저택에 엄마가 있지만 카야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스미스 씨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알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카야는 죽었을 것이다.


아빠도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다친 아빠까지 모든 게 스미스 씨의 계략이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공동체였던 마을에 스미스 일가의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카야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을 떠나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와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도끼로 직접 엄마의 얼음 관을 깨고 떠나보내야 한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얼음 관을 올려다봤다. 무질서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부드러운 리본처럼 얼음 관을 휘감았다. 얼음 관에 금이 가고, 표면에 미세한 육각형 무늬들이 새겨졌다. 반짝이는 얼음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눈의 결정들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만들며 하늘로 올라갔다. 얼음 관 속의 엄마도 빛이 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빛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두 눈 가득 담았다. (124쪽)


아름다운 얼음 궁전을 떠올리는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이별, 스미스 씨가 상징하는 권력자의 횡포, 그 모든 걸 경험하는 카야의 성장기라 볼 수 있다. 성장은 주저하며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야의 용기와 결단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판타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다. 봄을 기다리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름을 환대하는 일은 온전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공개가 전제가 필요하다. 그 과정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등장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통과한다는 건 결국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김초엽의 단편집 『행성어 서점』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김초엽의 짧은 소설 14개는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 혹은 현실에서도 이미 누군가는 경험했을지 모를 일상,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상상 속 우주의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기이하면서도 낯선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김초엽이 말하고자 하는 건 연대와 환대라는 걸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든다. 거기다 소설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의 역할도 훌륭하다. 이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 그림을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현실이 아닌 공상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소설 속 행성어 서점이 궁금하고, 이끼 같은 먼지 뭉치인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곁에 두고 싶고 미래에는 버섯과 공생하는 인간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뿐인가. 내가 잘 안다고 믿는 이가 혹시 외계의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고 연구를 목적으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공권력을 의심한다. 말 그대로 짧은 소설인데도 잘 짜인 스토리에 감탄한다.


최고의 건축가였던 「선인장 끌어안기」의 ‘파히라’는 수술 후유증으로 몸에 닿는 모든 것에 고통을 느끼는 접촉 증후군을 앓고 있다. 모든 물체와 접촉을 피하는 ‘진공의 집’을 설계해 그곳에 선인장과 살고 있다. 그저 닿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선인장이라니. 보조 로봇인 ‘나’는 그가 지난 로봇에게 보인 괴팍한 행동의 원인을 찾는 지시를 받았다.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와 같은 접촉 증후군이 있는 아이 소영과 함께 지냈던 시간, 고통과 통증을 이해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소영에게 배웠다. 자신과 파히리가 선인장 같다고 말한 소영. 다른 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영이 파히라를 안아봐도 되냐는 부분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알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던 소영.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선인장 끌어안기」, 30쪽)


우리가 끌어안는 선인장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의 고통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 가운데 진정한 그것은 얼마나 될까. 파히라와 소영은 서로가 같았고 같았기에 사랑하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을 꺼려 한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르다는 건 완곡한 표현일 뿐, 김초엽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약자와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라는 걸 느낀다.


같은 지구에 사는 존재에게도 그런 대우를 하는 지구인이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사고로 3년 동안 혼수상태였던 「우리 집 코코」속 ‘나’는 그 사이 외계에서 온 식물 코코를 처음 만났다.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미래엔 인간보다는 다른 종의 무언가가 인간을 더 따뜻하게 포옹하고 격려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예전보다 행복해요. 이 작은 친구들이 우리의 옆에 머물러주기에, 인류는 더 이상 우주의 외로운 먼지 조각들이 아니에요. (「우리 집 코코」, 149쪽)


그런 미래에는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처럼 행성과 행성을 오가며 여행하거나 정착하는 이들도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속 다른 세계에서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존재도 많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이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미래의 지구는 수많은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도 지구를 떠나지 않고 다른 행성에서 온 누군가는 정착하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는 그런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포항에서 강릉의 연구소로 가는 중 ‘다현’은 폐업 직전의 휴게소에서 식당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초미각자’ 주인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한 다현은 뛰어난 미각 기능으로 음식을 즐기기 어렵다는 주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쨌든 이곳이 다른 미각을 가진 거주자들에게 더 환대를 베풀 수 있는 행성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206쪽)


소설을 읽으면서 감각은 개별적이고 고유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짜고 맵고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을 거라는걸. 그런 의미로 미래의 지구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나와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태도의 삶이어야 한다. 중대하고 위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공존하며 연대하는 삶 말이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가장자리 너머」, 215쪽)처럼 삶은 변화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다름을 환대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존의 삶을. 


김초엽의 소설은 언제나 그런 미래를 지향한다. 다가올 미래가 소설 속 모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에겐 김초엽이 소설에서 보여준 연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힘이 필요하다. 낯선 생명체와 이웃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의 왕래를 통해 더 넓은 우주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1-06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작가가 다름에 대해 참 잘 다루는 거 같아요. 본인의 다름에 대한 철학도 화고한 것 같고. 가벼운듯 가볍지 않은 글들. 자목련님 글에 공감합니다. 이 젊은 작가 저도 응원합니다. ~

자목련 2022-01-07 10: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거겠지요.
미니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소설 보다 : 겨울 2021 소설 보다
김멜라.남현정.이미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김멜라의 소설을 더 좋아할 것 같은 예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01-06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김멜라 작가꺼 먼저 읽어 봤습니다.
강렬하게 재밌더라구요^^

자목련 2022-01-07 14:23   좋아요 1 | URL
이름도 독특해서 절로 먼저 눈이 가요^^
 
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한다. 비밀번호가 엄마의 생일과 기일이기 때문이다. 잊고 싶지 않아서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어떤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애쓴다. 자꾸 말하고 자꾸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모두가 알아야 할 일들은 숨겨져있다. 비밀 아닌 비밀로 존재한다. 역사의 한 장면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의 진실이 그러하다. 뒤늦게 우리에게 실체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창비, 2014)의 연장선에 있는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소설이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구체적인 폭력을 사용하거나 그것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에서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장치로 혼이 등장했고 이번에는 삶을 휘감는 고통을 눈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눈은 흩날리며 사라지고 녹아 없어진다. 하지만 쌓인 눈은 삶을 고립시키고 세상과 단절시킨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된 것처럼. 부끄럽지만 나 역시 몇 년 전에야 당시의 참혹함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차마 말할 수 없이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그것은 인고의 세월을 버티면서도 오롯이 진실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인선의 어머니, 죽음과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도 친구 인선을 부탁을 받고 제주에 온 경하, 손가락 절단 사고 후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을 찔러야 하는 고통보다도 새를 살리고자 하는 인선의 간절함이 흩날리고 쌓이는 눈의 절경과 함께 우리에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감히 알 수 없고 짐작할 수도 없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들의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결국 진실 그 하나였다는 걸 알기에.


인선이 경하에게 맡긴 새는 실재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다. 그러나 인선에게는 새는 지켜야 할 존재였고 그것을 빌미로 경하에게 다시 삶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바람과 눈을 헤치고 인선의 외딴 집에 도착한 경하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암막천에 싸인 새장 속 새를 살피고 인선과 대화를 나누고 작은 소녀 같았던 인선의 어머니의 지난 시간을 듣는 과정은 결국 독자인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그 안에 내재된 강렬한 사랑이야말로 역사를 지탱해온 지독한 것이라는걸.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빰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1부에서 새로 상징되는 죽음을 통해 슬픔과 애도의 거쳐 눈과 바람으로 가득한 2부 밤에서는 꿈으로 이어지는 내밀한 대화의 끝에서 3부 추위와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맺는 제주 여정은 경하가 인선과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멈추지 말아야 함을 알게 한다. 경하와 인선의 죽음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는 제주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부당한 죽음을 맞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한강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런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며 기억하는 것이다. 나와 밀접한 관계가 아니면 그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무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삶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단단하게 쌓였던 눈은 반드시 녹는다. 다시 내려도 녹게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에 환호하고 눈을 기다린다. 눈의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겨우 제주 4·3 사건을 안다. 알기에 기억해야 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는 일도 경하와 인선의 프로젝트에 작게나마 참여하는 일이라 믿는다. 기억한다는 건 잊지 않는다는 일이다. 그리하여 소설의 제목처럼 작별하지 않는다.


말을 꺼내지도,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앉아 있었다. 주전자 밑면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인선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작별 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중략)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중략)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192~193쪽)


어떤 작별은 의식이 필요하고 그 의식을 준비할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영원히 작별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때로는 고통으로 잠들지 못한 각성의 상태가 될지라도. 그것이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몫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1-02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요배 작가님 그림이 떠오르는 글입니다. 전 제주 4.3을 현기영소설로 접했어요. 이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

자목련 2022-01-03 09:35   좋아요 2 | URL
미니 님 말씀하신 작가분의 그림을 찾아보니 그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 님은 이 소설을 더욱 남다르게 읽으실 것 같기도 해요^^
즐겁고 따뜻한 한 주 시작하세요~

새파랑 2022-01-02 1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제주 4.3에 대해 찾아보았어요.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의 고통이 느껴져서 쉽지는 않았지만 읽고나서 많은걸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자목련 2022-01-03 09:36   좋아요 4 | URL
맞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 한강 작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고요. 쉬운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 여운이 오래 가시지 않아요.
새파랑 님,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kyj080812 2022-01-0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일은 잘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