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어제 하려고 기억해두었고 어제 했으면 좋았을 말이다. 오늘이 아닌 어제 하루 종일 생각했는데 결국엔 다른 말만 했다. 그 사실을 어제가 아닌 오늘 깨달았다. 어제 했으면 더 좋았을 말, 하지만 오늘 해도 괜찮다. 어제란 시간이 중요할까, 하지 못한 말이 더 중요할까. 이 경우엔 시간과 말, 모두가 중요했다. 하루가 지났다고 해서 그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그 말은 여전히 내 안에 있으니 하면 된다. 할 것이다.


때를 맞춰야 하는 말들이 있다. 공간과 시간, 그 적절한 말을 우리는 때로 놓치고 만다. 어쩌다 보니, 하려는 말이 적당한 말인지, 나를 위한 말은 아닌지, 상대를 위한 말이어야 하는 건가.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어제의 나는 어떠했나. 꼭 하고 싶었던 말인데 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튼 그 말을 오늘은 하면 된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 어제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하면 된다. 어제의 말은 어제 태어나 소멸한 것이다.


매일 말을 하면서도 매일 말을 놓친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상사. 습관적이고 가벼운 인사와 안부부터 걱정, 조언, 보고, 허락을 구하는 말까지 말은 왜 이리 많은가. 그런데도 정작 해야 할 말을 내뱉지 못하고 겉도는 말을 하고 마는 일상들. 우리는 무슨 말을 놓치고 있을까. 문자로는 웃음과 유머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쓰면서도 말로 나누는 농담이나 유머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하려고 했던 말들을 모두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한 것처럼. 그래도 말이 말을 부르는 소리는 정겹다. 말이 말을 부르며 화음을 만든다. 두런두런 다정한 말, 소곤소곤 비밀스러운 말, 왁자지껄 떠드는 말. AI와 나누는 말, 반려 식물, 반려동물에게 건네는 말, 혼잣말, 독백, 방백도 모두 말이지만 아름다운 말은 소중한 이와 나누는 대화일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과 새벽을 지나 9월이 되었다. 9월에는 한강의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 윤고은의 장편『도서관 런웨이』를 읽는 시간이면 좋겠다. 폭우와 함께 소설 읽기 좋은 가을이 시작되었다.


어제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은 전할 것이다. 기쁘게 반갑게 들어줄 거라는 걸 알기에 담아둔 말은 더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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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그리드 누네즈가 수전 손택을 회고 한 책 , 올 한해 읽었던 책들 중 손안에 꼽는 책입니다.
윤고은 작가의 신작이 나왔네요
찜!
유머를 날리는 이모티콘
전 아주 많이 쓰고 있는데 ㅎㅎㅎㅎ

sns시대에는 말보다 이미지!
활자보다 영상이 소통의 시대가 되었죠. ^ㅅ^

자목련 2021-09-02 16:02   좋아요 1 | URL
아, 스콧 님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으셨군요.
오랜만에 윤고은의 소설을 읽을까 싶어요.
맞아요, 영상이 주가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아요. ㅎ

읏는 오후 이어가세요^^

blanca 2021-09-0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야 하는 말은 못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너무 많이 해버린 것 같아요. 한강 신작 기대됩니다. 세 책 모두 자목련님 리뷰 기다려봅니다.

자목련 2021-09-02 16:03   좋아요 0 | URL
적절하고 적당한 말이 필요한데 그게 어려워요.
세 권 모두 읽고 좋은 느낌을 안겨줄 것 같아요.
가을이 가까운 날들, 평온하게 보내세요^^

- 2021-09-01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하고 싶은 말, 이글 참 좋다 💕

자목련 2021-09-02 16:04   좋아요 0 | URL
저의 오늘 하고 싶은 말, 공쟝쟝 님의 댓글이 너무~~~ 좋아요!!
품위있고 우아한 냥이에게 빠져들었다는 말도 함께요^^

희선 2021-09-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를 맞추면 좋겠지만, 조금 늦었다 해도 그걸 듣는 사람한테 괜찮은 말이라면 늦게라도 하면 좋을 듯합니다 아주 중요하지 않다면 안 해도 되고, 그런 말은 자신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자목련 님 구월 책과 잘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9-02 16:05   좋아요 1 | URL
그제 하지 못한 말은 어제 했습니다. 늦지 않은 말이라서 괜찮았어요.
희선 님, 맑고 평온한 9월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9-0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라는 거리때문에 말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있죠.
그 간격때문에 지레 겁먹고 웅덩이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면 늦더라도 하면 되는 말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늦었더라도 해야할 말도 있구요^^
글 너무 좋아요~♡♡♡

자목련 2021-09-02 16:06   좋아요 1 | URL
네, 정확하게 닿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 후회와 미련으로 남은 게 말인 것 같아요.
늦더라도 해야할 말을 꼭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레이스 님의 하트가 제게로 쏙 들어왔어요!!

김규리 2021-09-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별하지않는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보다 (어제 하지 못한 말)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자꾸 보게 되네요 요즘 딱 저의 오늘에, 앞으로의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 직접 쓰신 글인가요? 너무 와 닿아서요

자목련 2021-09-08 15:16   좋아요 0 | URL
김은옥 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서재의 모드 글은 제가 직접 쓴 글입니다.
가을 평온하게 보내세요^^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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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까운 이를 만난 기분이다.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그게 무엇이든 알 것 같은 사이 말이다. 그냥 마주만 보아도 든든한 존재. 그들은 누구일까?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에서 그들을 만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사이,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는 사이. 가족이었고 친구인 그들의 이야기가 어둡고 그늘진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엄마와 딸은 그런 존재이면서도 상처를 준다. 화자인 서른두 살 ‘지연’에게 엄마가 그랬고, 엄마와 할머니가 그랬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찾아온 도시 희령에서 지연은 할머니와 20년 만에 재회한다. 할머니 집에서 발견한 증조할머니의 사진, 그 사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증조모의 삶으로 시작해 자신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서사는 우리의 그것이라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다.

1930년대 백정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도망치듯 결혼한 증조모 ‘삼천’은 낯선 곳에서 오직 ‘새비’ 할머니에게 의지한다. 이름이 아니라 태어난 곳으로 서로를 부르며 힘든 시대를 견뎌온 두 여성의 우정은 그 시대의 완벽한 자화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핍박받고 존재조차 부정당했던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하루하루 살아갈 힘은 어디서 찾을 수 있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였다. 삼천과 새비는 하나였다. 일상을 전하는 편지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소설은 희령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지연과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운명처럼 대물림된 상처, 엄마와 할머니의 불화, 어쩔 수 없는 시대였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전해주는 증조모 삼천과 새비 할머니의 우정과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지연의 삶을 통해 우리를 살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던 지연에게 삼천과 새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고 할까. 할머니가 스스로를 지키며 견디며 살아온 것처럼 지연의 삶에도 천천히 부드러운 온기가 스며든다. 차곡차곡 짙게 쌓인 슬픔이 조금씩 옅어지는 게 느껴진다.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현재를 만든 역사였고 지연에게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173쪽)는 말은 옳았다. 지연의 얼굴에 담긴 증조모 삼천의 모습처럼.

최은영은 잔인하고 신랄하게 상처를 파헤치는 대신 조용하고 나직한 고유의 언어로 슬픔을 증폭시킨다. 그리하여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작은 씨앗도 슬픔에서 잉태된다. 슬픔을 먹고 자란 씨앗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한층 더 단단해진 잎을 만들고 자란다.

증조모, 할머니, 엄마, 지연까지 이어온 여성 4대의 이야기는 진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은영은 굴곡진 인생 전체를 그리기보다는 차가운 인생을 데워준 다정한 말과 기억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오롯이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과 치유의 말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알려준다. 독자인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삼천과 새비를 기억하는 순간도 그러할 것이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299~300쪽)

삼천과 새비처럼 존재만으로 기쁨이 되는 이들이 그리워진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지켜본 소중한 그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게 고맙고 감사하다. 어떤 마음이든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줄 수 있으니, 얼마나 충만한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끄는 눈부신 회복의 소설 『밝은 밤』 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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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8-27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리뷰는 저도 천천히 차분한 마음으로 읽게됩니다. 이 책 읽고 싶은 책으로 찜해둔건데 글 잘 읽었습니다.

태어난 곳으로 부른다면 저는 동대문이네요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1-08-30 14:48   좋아요 0 | URL
최은영의 분위기는 단편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나쁘지 않았어요. 여성의 삶을 어루만진 손길들을 생각했어요. 동대문을 보고 서울은 지역에 넓고 지명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게 어느 시절에는 큰 위로가 되기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함께요.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긴 글에 피로감을 느끼는 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다양한 채널에서는 더 짧은 글, 더 자극적인 이미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럼에도 스치듯 마주한 짧은 문장에 이끌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더 많은 글을 만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강렬하면서도 따듯한 문구, 읽는 순간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자극하는 글.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기쁨, 충만, 사유를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박노해의 『걷는 녹서』가 그런 책이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어렵기도 하다.단 한 줄이 전하는 뜨거운 울림. 


한 줄의 문장이 지닌 힘, 그 문장을 통해 전해지는 어떤 떨림, 어떤 숭고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423편의 글과 박노해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기록해온 사진들이 담겼다. 같은 듯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었던 삶의 질문이라고 할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성경 공부 큐티처럼 하루에 한 문장씩 가슴에 새기고 그 문장을 기억해도 좋을 듯하다. 또 다른 하루에는 새로운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잊어도 괜찮다. 다시 읽고 다시 느끼면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기계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 당신 곁에 이런 문장이 함께 있다면 좋겠다. 자꾸만 뭔가 채워야 하고 잔고를 늘려야 한다는 게 삶의 의무인 양 달려온 시간 마주한 나는 어떤 모습인가.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나의 표정은 웃고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매일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157쪽)

목적지는 저 먼 어딘가가 아니다. 그곳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적지다. (425쪽)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말 것. (482쪽)


때로 얼마나 더 살아야 인생의 답을 찾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생의 답이라는 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우주의 작디작은 한 점에 불과한 게 우리의 인생이라는걸. 겨우 100년이라는 시간을 살다가 소멸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지구별에 놀러 온 아이야. 너는 맘껏 놀고 기뻐하라. 그리고 네 삶을 망치는 것들과 싸워가라. (233쪽)

살아 보면 존재는 의식을 배반한다. 인간은 그가 사는 대로 되어간다. (407쪽)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궁금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떠나 그 길에서 걷고 읽고 사람들을 만나야 이런 사유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 무기수로 지내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독서, 걷는 독서가 시작된 그 공간, 나아가 그가 걸어간 길, 그가 만난 세상은 어떤 빛이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박노해 시인이 살아온 삶을 채운 고통과 절망을 생각한다.


돌아보니 그랬다. 가난과 노동과 고난으로 점철된 내 인생길에서 그래도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 어쩌면 모든 것을 빼앗긴 내 인생에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한 나만의 자유였고 나만의 향연이었다. (9쪽)


박노해 시인이 스스로를 지키고 단련시키기 위해 놓을 수 없었던 걷는 독서. 그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 쉽고 간편하게 삶을 돌아본다.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다. 한 줄의 문장이 전하는 거대한 울림과 삶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읽는 일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이에게 읽는 즐거움을 뒤 찾아줄 한 권의 책이 될지도 모른다. 텅 빈 충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한 권의 책을.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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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저마다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사람이다. 삶이라는 한 권의 책을]
마지막 문장 넘 ㅎ 좋아서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결국,, 걷는 독서 장바구니 속으로 ~~@@
몇년전 박노해 시인의 사진 전시회에가서 직접 만났었는데,,,
세상을 천천히 읽고 사유 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ㅅ^

자목련 2021-08-27 12:03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언급하신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어요.
직접 전시회를 보셨으면 생생한 감동이 전해졌겠네요.
지금도 라 카페 캘러리에서 전시중이라고 해요.
스콧 님, 행복한 독서 이어가세요^^*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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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어떤 사건은 모두가 알고 기억하는 일이 되고 어떤 사건은 당사자만 알게 된다. 사건의 중요도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과장해서 말한다면 권력일지도 모른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채널을 차단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가해자는 그에 준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그렇다. 분명하게 죄를 판단하고 억울한 피해지를 만들지 않는 것. 다소 과격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상의 미래 일본 사회에서 벌어진 일, 그 중심에서 선 이들의 이야기. 재일 한국인 3세가 경험한 것들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하게 뭔가 해결할 수 없는 한의 응어리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미래의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가 불법이고 사회 전반에 한국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면 더욱. 한국에서 재한 일본인과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가는 이들과는 다를 것이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아픈 역사가 있으니까.


그런 사회에서 혐오의 당사자는 하루하루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만나 연대의 힘을 키운다. 소설에 등장하는 6명의 청년도 그러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다 서로에게 연결되었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휘둘리며 살아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가시와기 다이치를 시작으로 청년들을 데리고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박이화, 청년회 소속이지만 무기력한 존재로 스스로 죽음을 꿈꾸는 양선명, 다이치의 계획을 몸으로 실행하는 윤신, 극우 보수정당에서 활동하며 다이치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 인물인 기지마 나리토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김태수.


다이치가 어떤 계획은 세우고 실해하려 하는지 처음에는 짐작할 수 없다. 일본 국적의 다이치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누가 봐도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재일 한국인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정도로만 보였다. 동생의 죽음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김태수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다이치. 일본 가해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이치의 계획에 빠진 이는 오직 박이화다. 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그녀는 한국으로 향했으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위한 여정, 마음속 어딘가에서 바라던,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비슷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다. 도피가 아닌 개척, 굴복이 아닌 시작, 슬픔이 아닌 투쟁심, 의지를 관철한 결과로서의, 아직은 위대한 과정일 것이었다. (143~144쪽)


혼자가 아니라 청년들을 데리고 부산에 왔다. 한국에서의 모든 활동을 블로그에 기록하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너무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었을까. 부산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 직원과 대면하는 부분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진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이치의 계획을 떠나서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건 김태수의 동생 김마야 사건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된 그녀. 그녀의 죽음 이후 새로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녀가 남긴 논문, 글에 대해 비방하며 폭력을 가한 것이다. 소설에는 그녀의 글을 통해 페미스트, 가부장제도, 비건, 여성문제, 평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법보다 정의,라는 말에 대해서. 모든 독립운동은 불법이다. 모든 정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부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정의를 행해야 한다. 어떻게? 어디까지? 서프러제트에 의한 폭력 행사가 없었더라면 여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사회운동에 폭력이 일절 없었더라도, 역사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향했을까?’ (325쪽, 김마야의 글)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에 국한된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죽음의 곁에서 살아가는 난민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해진 양극화 현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빈부의 격차.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구성원, 누군가의 슬픔의 쌓이다 못해 폭발한다면 다이치의 계획은 현실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일까. 두렵고도 무거운 마음을 지을 수 없다. 제목처럼 강렬하고 뜨거운 여운을 남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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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5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은이도 한국인 역자도 한국인이어서 놀랐는데 재일교포가 쓴 글이군요. 소수자의 삶은 언제나 힘든거 같아요 ㅜㅜ

자목련 2021-08-26 09:23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경험이 있으니 더욱 실감나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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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야 분명할 것 같았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래야 간단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마음조차도 분명하게 나룰 수 없었다. 누군가 안이라고 주장하는 공간은 누군가에는 밖이었고 안도 밖도 아닌 곳이 존재했다. 그냥 그렇게 모두가 존재하는 게 세상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고 할까.


1929년 넬라 라슨이 출간한 『패싱』을 읽으면서 우리가 여전히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소리로 경계하는 대신 조용히 밀어내면서 자신의 자리만을 고집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두 명의 흑인 여성의 삶을 들려준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지닌 그녀들은 흑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닐 수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흑인이지만 백인 행세를 한다는 제목(패싱)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흑인인데 백인처럼 보인다는 걸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필요에 의해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가는 삶으로 이해하면 좀 쉬웠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아이린과 클레어는 어른이 된 후 다시 재회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클레어가 무성한 소문을 남긴 채 떠나고 십이 년 만이다. 그 사이 둘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린을 먼저 알아본 건 클레어였다. 클레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가 봐도 그녀는 백인의 모습이었다. 백인 남편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린은 클레어와 재회가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다. 클레어의 연락을 무시하고 피했지만 그녀가 찾아오자 어쩔 수 없었다.


클레어는 백인 행세를 하는 삶을 탈출하고 싶었다. 흑인 혐오주의자인 남편과의 숨 막히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니 아이린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원했다. 남편이 알아서는 안 되는 시간 말이다. 아이린은 그런 클레어를 통해 묘한 감정을 느낀다. 클레어처럼 완벽하게 백인으로 살지는 않지만 아이린 역시 필요에 따라 백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백인 행세를 하면서 백인의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얻었으면서도 흑인만의 문화를 그리워하고 그 세계로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클레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건 단순하게 질투나 시기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패싱에 대한 아이린의 생각을 말해주는 이런 부분처럼.


“‘패싱’은 정말 알 수 없다니까. 우리는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용서하잖아요.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감탄하고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패싱을 피하지만 그걸 보호하기도 하죠.” (110쪽)


그에 비해 클레어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진짜 모습이 탄로 날까 전전긍긍하니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이제야 알았다고 할까. 그러기에 아이린에게 하소연하는 클레어가 비참하기까지 하다.


“네가 어떻게 알겠니? 어떻게? 넌 자유롭잖아. 행복하고, 그리고…….” “안전하고.” (133쪽)


아이린이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넘보며 침범하려는 클레어로 인해 혼란스럽다. 교묘한 고양이처럼 안전한 그녀의 가정을 흔든다. 그렇다. 클레어는 아이린에게 침범자였다. 그동안 백인 사회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마음이 기울다가도 고개를 흔들었다.


소설 속 미국 사회를 그려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같은 시대 조선의 모습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다른 세계의 문화가 유입하는 시기. 아니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100여 년이 지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봐도 충분하다. 모든 갈등과 불화의 시작은 욕망 때문이었다. 인종차별, 편견, 불평등 그것들의 밑바탕에 자리한 욕망들. 다르다는 것을 잘못이나 낙후로 된 것으로 낙인찍는 세상. 누구나 클레어가 되고 아이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울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경계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경계를 원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다르지만 똑같은, 두 종류의 충성심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했다. 그녀 자신에 대한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이 속한 인종에 대한 것. 아, 인종이라니! 그것 때문에 아이린은 결박당한 책 질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하건, 또는 전혀 취하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무엇 하나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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