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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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나만 아는 고통이며 통증이기에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간헐적인 통증, 불안, 견디다 못해 먹는 진통제. 통증이 일상이 되면 무뎌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떨까? 죽음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누구나 시기는 다를 뿐 죽는 게 사실이니까.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 역시 개별적인 것이다. 공포나 두려움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저마다 다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는 화자가 암 진단으로 죽음을 곁에 둔 친구와 일상을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소설이다. 사실 암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큰언니와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수술을 시작으로 다수의 화학요법과 요양, 마지막엔 표적치료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지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가족이라서 그 느낌이 강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화자는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근처에 숙소를 구한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 외에 그 도시에서 옛 연인의 강의를 듣는다. 인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기에 아이를 낳지 말라는 연인의 까칠하고도 이상한 강의. 오롯이 친구와 화자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서 얼핏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나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철학적 문장은 유려하고 아름답다. 화자가 들려주는 일상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모두 노년의 그들이다. 한때 아름다웠던 외모의 소유자, 유일한 방문자인 아들을 둔 노인. 화자 역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어 혼자 지낸다. 사는 동안 딸과 불화하며 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어떤 과거를 보냈듯 결국엔 혼자가 되는 게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친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화자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약을 준비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그곳에서 모든 걸 실행하겠다는 친구. 너무도 차분하고 담담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여행이나 다름없다. 친구와 화자는 그곳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의 식용은 떨어지고 활동반경도 줄어든다. 죽음을 말하고 그와 동반한 고통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인데 이상하게 편안하다. 친구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딸에 대한 아쉬움과 속상함은 삶의 마지막이라는 전제가 아닌 그냥 보통의 이야기다. 나를 아는, 나의 모든 걸 아는 친구와 나누는 수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자가 느끼는 불안과 죄의식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항상 문을 열어두는 친구의 문이 닫혔을 때, 오늘이 그날일까 하는 공포감. 죽음은 친구와 화자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때때로 친구에게 불어오는 절망의 기운을 화자는 볼 수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149쪽)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까. 큰언니는 내게 그 순간을 부탁했었다. 마지막 순간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큰언니의 임종은 내가 아닌 작은언니가 지켰다. 큰언니가 떠나고 한동안 죽음이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그마한 일에도 두렵고 불안은 커졌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경험한 순간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고 작지만 도움이 되었다. 죽음은 이렇게 삶을 단련시킨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삶.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166쪽)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겨운 날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은 가만히 위로를 전한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의 지인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전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심한 듯 내뱉는 말, 어떻게 지내요? 괜찮아요? 란 말이 필요한 시대라는걸. 늦지 않게 안부를 전하는 일,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전하며 살피는 게 살아가는 동안 소중하다고. 지금 우리가 읽고 느끼면 더 좋을 그런 소설이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Quel est ton tourmemt?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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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1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꺼려하는 주제!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질문은 다가 오네요
껠레똥뚜르망?

자목련 2021-09-14 11:18   좋아요 1 | URL
아, 아픈 분들이 많으시군요.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어요.
죽음을 다루는데 제게는 그 과정이 편안한 일상을 들려주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레이스 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초란공 2021-09-13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병원신세를 져본 사람이라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지 새삼 놀라기도하고 절망스러운 기분마져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인듯 싶네요..

자목련 2021-09-14 11:16   좋아요 2 | URL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렇지요. 말씀처럼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안도의 기운을 전해주는 곳도 병원이지 싶어요. 작가의 통찰과 사유가 놀라웠어요.초란공 님, 맑은 하루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1-10-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0-11 10:17   좋아요 1 | URL
이곳에도 감사해요^^*

새파랑 2021-10-0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당선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8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0-11 10: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향기로운 가을 보내세요^^
 
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 듣기의 기술이 바꾸는 모든 것에 대하여
케이트 머피 지음, 김성환.최설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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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상대를 향한 배려와 관심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유한 생각과 감정, 의도를 지닌 한 명의 사람으로 이해받고 존중받는 것 말이다. (54쪽)


듣는 일에 대해, 듣기의 가치나 태도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상사로부터 업무에 대한 조언(질책을 동반한)을 들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형태의 듣기였다. 아마 상대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잔소리, 청자가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소리는 잔소리가 된다.


케이트 머피의 『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란 책은 의외로 흥미롭고 재밌다. 화자와 청자, 둘 사이의 위치, 관계, 친밀감에 따라 대화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대화에 집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듣기와 말하기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인터뷰 기자인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하다. 어쩌면 기자로서 상대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난 이들이 들려주는 듣기의 힘은 대단했고 놀라웠다. 책을 읽는 동안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가 생각나기도 했다. 대화에 있어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조참판(충고, 조언, 참견,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듣기는 잘 듣는 일이다. 잘 듣는 일,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는 걸 표정으로 나타내서도 안 된다. 나는 어떻게 듣고 있을까. 신기하게도 상대방도 그걸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대면의 경우에도 그렇고 유선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난 영업사원, 정치가, 경영자, 인질 협상가, 첩보원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듣기에 소홀한지 알려준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듣기의 태도는 무엇일까.


지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 보자. 스마트폰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놓는 것만으로도 듣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듣기에 대해 소홀해졌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 알았다고 판단하거나 중간에 끼어들고 말을 막는다는 저자의 설명에 멈칫할 수밖에 없다. 가깝다는 이유로 듣기가 아닌 걱정과 해결이 앞서기도 하니까.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힘든 상황과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다.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때 동원되는 주의력의 강도는 관계의 깊이와 수명을 결정짓는다. 가까운 사람들을 아주 잘 안다는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특히 낯선 사람의 뚜렷한 사회적 신호에 의해 강화된 고정관념은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듣기는 그런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해 준다. 듣기가 당신의 예상을 뒤엎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91쪽)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대화가 사라지는 시대다.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 그 소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대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서 소개한 가구점 영업사원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면 구매를 위해 더 많은 설명과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영업사원은 반대로 손님의 원하는 말을 들어주고 침묵의 시간까지 기다린다. 중간에 재촉하듯 설명하고 말을 이어나갔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듣기 능력이 좋은 사람은 말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잘 포착하고 그에 상응하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한 번도 듣기의 중요성과 교육을 받는 적이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래서 듣기의 경험도 중요하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 어른이 있었던 아이와 그렇지 않은 경우 성장했을 때 대화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듣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듣기의 어려움, 듣기의 능력에 감탄하며 지나간 대화를 떠올린다. 잘 모르는 주제나 단어가 나왔을 때 솔직하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 확인해야 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배운다. 대화에 있어 상대를 격려하며 상세한 설명과 정보를 이끌어내는 지지 반응이 일상에서 필요하다는걸.


개를 잃어버렸다 3일 후에 찾았다는 상대에게 울타리나 목줄을 잘 챙겨야 한다는 말보다 걱정했겠다며 어디서 어떻게 찾았냐고 물어야 한다는 게 지지 반응이다. 아, 대화는 왜 이리 어려운가. 상대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게 듣기의 기본일 텐데.


상대가 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당신 안에 자리 잡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 과정은 듣기와 마찬가지로, 환대의 한 형태이다. 상대를 당신의 의식 속으로 초대해 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머릿속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284쪽)


돌이켜보면 나를 걱정하고 지지해 준 이들과 나눈 대화는 오랜 기간 살아있다. 듣기가 환대의 한 형태라는 말을 마음이 새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듣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듣기라는 주제를 잘 설명하고 유용하게 다룬 책이다. 다른 의미로 대화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뜬금없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에 대해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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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9-10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듣기는 환대의 한 형태 이말 기억해야겠어요.
듣는다는게 상대의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 살피는 행위라는것도요.
참 어렵고 저는 잘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이게 제 느낌에 굉장한 정신적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일이더라구요.
듣는다는거 참 힘들어요. 그래도 이왕 듣는다면 이 책의 저 내용을 생각해야겠어요.

자목련 2021-09-13 11:54   좋아요 0 | URL
듣는 행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좋은 구절이 참 많았어요. 언급해주신 그 문장도 그렇고요.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날들 이어가세요^^
 
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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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한다. 세금을 떼고 월급을 받는다. 취업을 할 때는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았다. 노력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지급되는 게 급여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근로조건, 수당, 상여금에 대해 잘 몰랐다. 취업이 우선이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때는 최저시급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몰라서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내가 부끄럽다. 그냥 숨죽인 ‘을’이었다는 게 말이다. 당시에도 나의 일자리는 내가 아니어도 일한 사람이 많았다. 한국 노동 현장의 현주소를 알려준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기자의 취재기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는 동안 조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모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저마다의 계약 기간은 다르고 조카 한 명은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노동자의 현실과 입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각했다. 뉴스나 언론 보도에서 갑과 을, 병으로 이어지는 착취, 원청과 하청, 파견과 용역에 대해 잘 몰랐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지를 했다가 다시 재계약을 하는 행태를 친구에게 들었을 뿐이다. 책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나의 일상과 밀접한 이들이었다. 은행 업무를 도와주는 경비원, 꼬박꼬박 사모님이란 호칭을 쓰는 가스 안전 검침원, 청소 아주머니, 소독원, 경비 아저씨까지. 아마도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분야에도 많은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나라 340만 명의 간접고용노동자가 그들이었다.


원청에서 지급한 돈을 용역업체에서 떼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순진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했다. 최저시급만 맞춰주면 끝이라니. 정해진 업무가 아닌부당하게 과한 업무까지 시켜놓고 노동자의 인권이나 권리는 나 몰라라 하고 불만을 제기하면 불안한 고용시장을 빌미로 계약 해지라는 카드를 들이미는 용역업체. 그 방법이 너무도 다양해 기가 찼다. 관리비, 피폭비, 안정 용품비란 명목으로 노동자의 월급을 착취한다. 기사가 나가고 언론에서 보도를 하자 업무에 그제서야 필요한 물건을 지급(생명과 직결된 분진마스크-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하는 게 현실이었다. 아예 통장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들어오 돈을 다시 인출하고 연차 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폐업을 일삼는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최저시급으로 인해 월급이 인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고 있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최저시급만 맞추고 각종 수당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리고 한국말이 어눌한 외국인 노동자(아프리카, 고려인)를 상대로 수수료를 착복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수수료를 법으로 정해진 1%로 아니라 10%를 받는 인력사무소. 농사를 짓는 오빠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며 지급하는 급여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장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오직 돈뿐일까. 무료 서비스를 시작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유료로 전환하는 가사도우미, 배달, 택시, 대리운전 등의 플랫폼 기업도 다르지 않았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노동자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앱을 유심히 보게 만들었다.


거기다 대기업 임원이나 원청의 퇴직자들의 하청업체 사장이라니. 상부상조하듯 원청이 원하는 대로 계약을 하고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고 착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모든 걸 하청에 일임하는 원청의 무책임,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원청과 하청의 계약서, 열악한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고 나서야 밝혀지는 금액. 책장이 넘어갈수록 100명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대한민국의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국회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노동자를 직접 인터뷰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한국일보 기자들이 입법을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면담을 요청해도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기조차 힘들고 발의된 법안은 방치와 폐기의 수순으로 몇 년째 이어진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원청이 아닌 파견 노동자를 위한 법, 중간 노동 착취를 방지하는 법은 검토가 아닌 제정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도 알 텐데.


“제조업에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는 건 옳은 방향이라고 봐요. 그럼에도 이로 인해 종종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에요.” (137쪽)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디서부터 개선할 수 있을까. 부동산 문제로 고생한 친구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 때 부동산 정책으로 판단하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입법이 중요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 책이 아니라면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냥 모르는 채 이용하고 수많은 용역과 파견 노동자들을 대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사실을 알고 느끼고 공감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으면 한다. 우선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올바른 이용자가 되는 것도 시작일 것이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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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1-09-08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장이 넘어갈수록 100명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대한민국의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제조업에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는 건 옳은 방향이라고 봐요. 그럼에도 이로 인해 종종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에요.” (137쪽)

감명 깊게 읽고 갑니다.


자목련 2021-09-10 09:16   좋아요 1 | URL
캐모마일 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coolcat329 2021-09-08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막힌 행태들이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네요. 저도 읽고 주변에 알려야 할 책 같아요.

자목련 2021-09-10 09:15   좋아요 0 | URL
네,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나쁘고 나쁜 사람들의 존재가 더 화가 났어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뜻이다.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도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런 일의 대부분은 당사자만이 그 당혹스러움을 느낄 뿐 주변에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코가 사라질 수 있을까? 심지어 통증도 없다. 얼굴에서 코만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코발료프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불상사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코를 찾으려 한다. 경찰서에 가고 심지어 코를 찾는 광고를 내려고 한다. 놀라운 건 그의 눈에 자신의 코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보다 높은 관등으로 나타난 코. 오직 자신만이 그가 자신의 코라는 걸 알 수 있다. 코가 없어진 것도 기절할 노릇인데 그런 코가 사람 행세를 하다니. 아, 이런 기발한 상상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허황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하여튼 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곤 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것이다. (「코」, 58쪽)


코는 아무렇지 않게 코발료프에게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냥 웃으며 재밌게 읽다가도 헛헛함을 느낀다. 고골이 코로 비유한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명예와 부, 권력 끝없는 욕망은 아닐까. 유머로 세상을 비판하는 고골의 날카로움은 단연 단편 「외투」에서 빛을 발한다. 관청에서 9급 관리로 일하는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서기로 일한다. 관청의 서류를 정서하는 업무를 성실하게 해낸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며 박봉으로 소탈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페테르부르크의 추위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에게도 그런 시련이 닥쳤다.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서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 외투를 장만하는 대신 수선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재봉사는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의 외투를 보더니 절대 수선할 수 있는 상태라 아니라고 말한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새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한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한껏 들떠 걷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새 외투를 매 순간 느꼈고, 심적으로 만족하며 미소까지 몇 번 지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했다. 하나는 외투가 따뜻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멋져 보여서였다.( 「외투」, 88쪽)


새 외투를 입은 그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라는 걸 상상할 수 있다. 관청의 사람들도 그를 다른 사람으로 대접한다. 외투 하나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심지어 상사가 그를 대신하여 축하파티에 초대한다. 관청과 집, 서류 정서로 이어진 단순한 일상이 아닌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상사가 사는 도시로 가는 그 밤은 아름다웠고 놀라웠다. 모든 게 순탄한 것 같았는데 파티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광장에서 외투를 잃어버린다. 누군가가 그에게서 외투를 벗겨갔다. 전부인 외투를 찾기 위해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경찰서장을 찾지만 헛수고였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중요 인사’를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건 책망과 호통이었다. 외투 없이 추운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열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에는 밤마다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간다는 소문이 가득하다.


작은 눈덩이들이 그의 얼굴을 때리며 날라왔고, 그의 외투 옷깃은 마치 돛처럼 펄럭였다.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의 머리에 불어닥치는 이 돌풍은 그를 거기에서 빠져나오도록 부단히 애를 쓰게 만들었다. 중요 인사는 돌연 누군가가 목의 옷깃을 아주 세게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몸을 돌린 중요 인사는 낡고 해진 제복을 입은, 크지 않은 키의 사람을 보았고, 그가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임을 깨닫고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외투」, 114쪽)


고골이 소재로 한 코와 외투는 같은 듯 다르다. 코발료프에게 코는 신체의 일부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간의 허영심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엑 외투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에게 외투는 가족이었고 삶이었고 자신이었다. 유령이 되어 자신의 외투를 찾으려 할 정도로 간절한 대상이었다. 외투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생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외투를 함부로 대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


나머지 단편 「광인의 수기」, 「소로친지 시장」, 「사라진 편지」는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화처럼 다가온다. 「광인의 수기」속 주인공은 개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이 스페인의 국왕이라고 착각한다. 한 편의 뮤지컬처럼 느껴지는 「소로친지 시장」은 제목 그대로 소로친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왁자지껄 소동을 벌이고 악마가 등장하기도 하며 그 안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필사의 전략을 짠다. 「사라진 편지」는 화자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여왕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할아버지가 만난 사람들. 「소로친지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악마가 등장한다. 「소로친지 시장」에서는 술집 주인이 손님이 담보로 맡긴 옷을 팔아버렸고 할아버지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신의를 저버린 인간에게 나타난 악마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악마가 몹쓸 짓을 하거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일종의 죄에 대한 경고라고 하면 맞을까.


고골의 단편은 유머를 장착한 사회 비평이다. 험한 세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고 조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1830년대 그의 소설이 21세기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진심을 혹독하게 받아들이고 새겨야 하지 않을까. 고전을 읽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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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06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귀엽네용! 저도 외투만 읽은 거 같은데,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용!

자목련 2021-09-08 15:19   좋아요 1 | URL
그쵸, 책 선택에 있어 표지도 중요해요 ㅎ

새파랑 2021-09-06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랑 외투는 많이 들어봐서 읽어본 느낌이 드는데 아딕 읽어보진 않았는데 팽귄클래식 버전으로 곧 읽어봐야 겠어요 ^^ 역시 러시아 작품은 풍자가 뛰어난것 같아요 😄

자목련 2021-09-08 15:19   좋아요 3 | URL
어쩌면 읽다 보면 읽었구나 싶을 것 같아요. 저는 외투가 그랬거든요. ㅎㅎ
새파랑 님, 활기찬 오후 보내세요^^

오늘도 맑음 2021-09-06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작품을 기피하는 편인데요. 자목련님의 코에관한 글을 보니 정말 읽고 싶어지네요. 그러고보니 여태껏 고골작품을 읽어본적이 없네요ㅠㅠ 작품이 서평 만큼이나 재밌으면 좋겠어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09-08 15:18   좋아요 3 | URL
맑음 님도 즐겁게 읽으실 거라 생각해요. 코, 외투는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어요.
즐겁고 맑은 오후 이어가세요^^
 
행복해지려는 관성 - 딱 그만큼의 긍정과 그만큼의 용기면 충분한 것
김지영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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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돈된 글이다. 읽기 편하고 전달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저자가 칼럼을 연재해서 그럴 것이다. 읽기 수월한 적정한 원고로 일상을 이야기하며 긍정의 힘을 보탠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롭다고 할까. 『행복해지려는 관성』이란 제목 덕분에 자꾸 행복을 생각하게 된다.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행복을 생각한다. 현실에 만족하며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너무도 어려운 일상이 돼버린 지금, 아마도 많은 이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택할 것이다.

예전보다 짜증이 늘고 자신도 모르는 표정을 장착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일상의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면 조금 놀라고 만다. 많은 것들이 내게 있고 많은 이들이 나를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저자가 동생의 생일 전날 아빠의 사고 소식으로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우리 삶을 채운 우연과 필연의 조각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시대를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부여된 방콕의 시간에 발견하는 기쁨들, 어쩔 수 없는 만남의 단절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된 것도 코로나가 가져다준 행복은 아닐까. 학창 시절 찾았던 단골 가게가 여전하게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우면서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이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은 곧 우리의 그것이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 이제 과거가 된 그 시절을 추억하며 들려주며 소중함을 새기는 글에는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다 편리한 여행이 아니라 직접 묻고, 걷고, 찾는 여행의 재미를 전하는 글은 무척 신선하고 놀라웠다. 우리가 잊었던 아날로그의 행복이라고 할까. 그러면서도 여행에서조차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다는 글에서는 여행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행지에서 꼭 가야 하는 곳,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꼭 체험해야 하는 것, 다 해야 할까. 추천에 휘둘려 진짜 여행을 하지 못하는 우리의 민낯을 마주한 것 같았다.


여행이 삶의 환유라면, 인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연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다만 그 길이와 밀도가 다를 뿐. 때문에 ‘어차피 헤어질 건데’라는 말은 사실 모든 인연에 해당되는 숙명과도 같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이니 마음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것. 추억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삶 전반에 대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추억의 가치는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87쪽)

익명성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모르는 타자에 대한 환대로 시작하는 공간이 온라인이다. 닉네임과 글로 시작된 관계는 부서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단단하다. 저자의 말처럼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 생각해서 때로 마음을 공유하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시절인연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SNS의 만난 그 순간의 공감과 댓글이 진심이라면 아름다운 인연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놓쳤던 것들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고 만다.

행복에 관해 말할 때, 죽음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의 곁에 항상 죽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복한 죽음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사유도 삶에 있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엔딩을 위한 하나의 스토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중략) 생의 순간순간은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155쪽)

혼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도 충분하다. 저자의 표현처럼 내 식대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누구와 있을 때, 무엇을 먹을 때 즐겁고 기쁜지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행복해지려는 관성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함께 행복을 꿈꾸는 좋은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은 ‘여행자’라는 말이 있다.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이러한 모습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그 어떤 속박도 없이, 교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진짜 만남에 대한 갈증 말이다. 앞으로의 숱한 만남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여행자이고 싶다.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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