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블렌드 오렌지선셋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일 좋아하는 알라딘 커피를 찾았다. 나는 이 커피가 좋아서 선물하고 소개하고 함께 마시는 기쁨을 즐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5-05-1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마셨는데 맛있네요!
 


부모는 모두 늙는다. 병들고 아프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병을 숨긴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간병을 요청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부모를 홀로 간병하고 돌보다 발생한 사건에 놀라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알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가족이 모두 매달려 간병을 하다 지쳐 마지막으로 시설을 선택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만 늙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간병과 돌봄은 곧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시지만 언제 어떻게 병원 신세를 질지 몰라 무섭다고. 나 살기도 바빠 간병은 엄두도 나지 않고 병원비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소설은 엄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등장해야 할 장례식장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좀 이상하다. 치매의 엄마는 죽었지만 연금이 들어왔고 딸 명주는 엄마의 죽음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명주는 작은방 관에 죽은 엄마의 시신을 넣고 살아간다. 그게 가능하다고?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이웃 간의 왕래가 적은 사회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명주에게도 사정은 있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었고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 명주에게 엄마가 간병을 제안했다. 엄마의 연금으로 생활한 명주에게 엄마는 살아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엄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옆집 청년만 빼고. 명주에게 아는 척을 하고 할머니 안부를 걱정하는 청년 준성이 문제였다.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준성은 집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야간에 대리운전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주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준성은 한 번씩 반찬을 나눠주시던 할머니가 궁금했다. 할머니 딸인 게 분명한 명주는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걱정되었지만 준성에겐 아버지 하나로 벅찼다. 준성이 고등학생 때부터 뇌졸중을 앓았고 지금은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다. 형은 빚만 남기고 외국으로 떠났고 준성은 가장이 되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명주는 딸 은진이 찾아오기 전까지 엄마의 시신을 매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혼 후 엄마와 살던 은진은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치고 아빠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고 수습은 모두 명주의 몫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에게 마음이 늘 약했다. 대학을 졸업한 은진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명주는 외할머니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은진이 모든 걸 알게 될까 겁이 났다. 은진은 외할머니의 시골집을 찾아냈고 그걸 빌미로 돈을 요구했다.





명주는 엄마를 시골집에 모시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런 명주 앞에 손에 피를 묻히고 준성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준성과 함께 들어간 집에는 준성의 아버지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준성은 외제차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고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수리비와 병원비는 준성이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간병이었고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명주는 담담하게 자신의 집으로 준성을 데리고 와 죽은 엄마의 관을 보여주고 준성에게 제안한다. 모든 건 다 자신이 할 수 있고 두 분을 시골집에 매장하자는 계획을 들려준다. 이삿짐을 옮길 트럭을 빌리고 운전은 준성이 하면 된다고.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218쪽)


50대의 명주와 20대의 준성의 연대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가능하다. 가족을 돌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육체적 경제적 한계로 보이지 않는 미래와 허방을 딛는 것 같은 삶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런 간병과 돌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다. 돌봄 노동의 피상적인 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 둘러보면 내 주변의 지인이 겪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와의 이별은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과 병든 부모와 살아가는 시간이 막막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5얼에 너무 빨리 떠난 부모가 그리우면서도 아빠나 엄마가 오랜시간 병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게 사실다.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고 돌봄을 다른 형제에게 미루고 마는 현실. 류현재의 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서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194쪽)외침은 가장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가족이 되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은 긴 병은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을 돌보느라 희생하고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 여성의 삶을 들려주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 노동의 비용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를 간병하고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정말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차례다. 아픈 가족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돌보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을 기다리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명주가 살고 싶은 이유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고 있고 싶은 이유였다. (138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5-05-0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우리 본인이 당사자가 될 일인 것 같아요. 공감이 많이 갑니다.

자목련 2025-05-10 11: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요즘 친구들과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우리의 나중은 어떨까 하고요.
 
이월되지 않는 엄마 - 임경섭의 2월 시의적절 14
임경섭 지음 / 난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자고 나는 가정의 달 5월에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울고 싶어서, 엄마가 그리워서 말이다. 『이월되지 않는 엄마』란 제목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곁에 없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라는 것을.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거나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 곁에 머무는 죽음,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 하겠다. 여느 ‘시의적절’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시인 임경섭의 『이월되지 않는 엄마』는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의 기록이고 그날 그날 느끼는 감정을 시, 에세이, 짧은 소설로 표현했다.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은 2월 1일, 그날은 매년 2월의 첫날을 지배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달은 그렇게 온통 한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5월은 아버지의 달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엄마만 생각했는데,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의 설움만 떠올렸는데 막상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5월이라 그런 가 보다. 5월이라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된다고 했던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영영 부정하고 싶다. 빨리 고아가 된 나는 그 자리를 고모와 형제가 대신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회복할 때 당연한 듯 고모에게 부탁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건 고모 때문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걱정한다. 그런 고모의 사랑에 한 번씩 짜증을 내기도 했다. 분에 넘치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안부를 먼저 묻고 살피는 작은아버지께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좋은 시인이 되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저자의 엄마.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죽음과 이별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이별이 부러웠다. 내게 엄마의 죽음은 통보였고 아버지의 죽음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2월 내내 글을 쓰면서 저자는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였을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특별한 한 달, 언제나 그립지만 2월은 더욱 그러했을 터. 엄마가 좋아하는 꽃 ‘마가렛’으로 시작하는 봄, 엄마가 만들어준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고 가만가만 그해 2월의 시간을 떠올린다. 짧고도 긴 2월을 그의 곁에서 보낸 이들도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큰 무게로 돌아올 때야 비로소 진짜 슬픔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에 대한 추념은 끝이 없거니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쩐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170쪽)





정말 슬픔은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고 잘 지내다 문득 슬픔에 목이 멘다. 서러워서 울고 만다. 아, 나는 엄마가 없구나. 나는 엄마랑 이 풍경을,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구나 실감하는 것이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 낡고 흐린 사진 속 서툴게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만이 남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엄마는 어린이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그 친구를 생각한다. 나와 똑같이 고아가 된 내 친구.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부모를 잃고 남겨졌고 살아간다. 농담처럼 죽음을 말하면서 정작 가까운 이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부재를 인식하지 않으려고 잊고 살다가 무슨 날에 화들짝 놀란다. 어버이 날인 내일도 그런 날이다.


나는 이제 카네이션을 준비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아드리긴 했을 텐데. 항상 할머니가 먼저여서 할머니만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보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셔서 그 후에는 할머니와 아빠에게만 드렸으니.


눈부신 5월이 쓸쓸하다. 아프다. 아버지와 이별한 그해 5월과 엄마와 이별한 그해 6월의 통증이 몰려온다. 시인의 2월이 그러하듯 나의 5월이 그렇다. 다가올 6월이 그렇다. 이월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월될 수 없어서 영원히 곁에 머물러 차곡차곡 쌓인다.


그해 2월은

도무지 이월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은

잊히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이,

아팠던 그해 2월이

죽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같이 와 보란듯이 옆에 서 있다

원망스러운 그해 2월이,

그해 2월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2월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온전히 내 옆에 살아 있다

죽지않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 「2월」 전문, 176~177쪽)그해 2월은


울다 지쳐 잠들었던 밤, 멍하니 보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저만치 달아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살아서 이렇게 새로운 5월을 맞이했고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산다는 게 이런 거냐고 묻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엄마에게 묻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5-05-0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인생은 왜 이리 슬플까요. 이별하고 사라지고...자목련님 글이 이 화창한 봄날에 더욱 슬픕니다.

자목련 2025-05-08 11:41   좋아요 0 | URL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일 텐데. 가끔 부정하고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5-05-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그리움의 달도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언젠가 모두 가야할 곳이라는 생각에 시니컬해지기도 하고요^^

자목련 2025-05-08 11:43   좋아요 1 | URL
5월은 특히 그래요. 어버이 날인데, 마음이 쓸쓸해요.
모두 가야할 곳. 김혜자가 나오는 드라마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젤소민아 2025-05-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도 농도가 다 다른 게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예뻐요, 자목련! 시는 슬퍼요...ㅠㅠ

자목련 2025-05-09 09:38   좋아요 0 | URL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시는 슬프고도 슬퍼요.
 


주문한 작약이 도착했다. 해마다 작약을 주문하는 일은 새해 소망 리스트 같은 것이다. 새해를 기다리며 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하지 않는다. 기대를 품지 않는다. 하지만 작약은 다르다. 3월부터 나는 작약을 검색한다. 적확하게는 작약 생화. 그리고 기다린다.


작약을 기다린다. 나는 작약이 좋아서, 작약을 기다리는 4월이 좋고, 작약을 만나는 4월과 5월이 좋다. 올해의 작약은 작년보다 비쌌다. 구매 기록을 살펴보니 그렇다. 월급을 뺀 나머지가 다 오르니 당연하다. 코랄 작약 주문이라고 다이어리에 메모를 했지만 코랄 작약은 구매할 당시 품절이었고 나는 핑크를 주문했다.





그냥 좋다. 작약은 그냥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마구 찍는다. 꽃이 피기 전 이런 봉오리는 설렘 그 자체다. 하루 사이에 마구 피어나는 작약. 수요일에 만난 작약은 이틀이 지난 지금은 만개했다. 벌써부터 아쉽다. 풍성한 작약을 보고 있노라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5월이니 새 책도 주문했다. 박세미의 신간(나, 박세미 좋아하나?)이다. 난다의 시의적절은 매달 구매하지는 않고 끌리는 제목이나 저자를 선택하는데 이번 5월은 박세미의 『11시 14분』였고 나는 냉큼 주문했다.






그리고 이런 시집을 펼친다. 작약이니까. 이승희의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속 이런 시를 읽는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모른다고 종일 속삭인다

속삭이면서 발을 내어놓는다

발을 내어놓으며

맨발이라고 했다

참 따뜻한 발을 가졌으니

예쁜 모자가 어울릴 거야

그런 세계를 보게 되면 초대할게

모르는 세계는 그런 거니까

어긋나는 게 생활이야

어긋날 수 있다니

어긋나기 위해 사는 거라니

넌 정말 위대한 건축가가 되고 싶구나

자꾸 죽는 것과 자꾸 사는 것이

서로 좋아해서

물고기떼처럼 흘러가는 세계

그런 세계는 잘 모르지만

몇 번 죽으면 갈 수 있을까

나를 아주 가끔만 안아주는 사람이 있었어

안으면서도 몰랐고

몰랐으면서도 안았고

흩어지는 온도를 기록해보고 싶었는데

모르는 것이 생겨날수록

더 아름다워져야 했어

그냥 우리는 모르는 일에만 열중하자

모르는 것들 사이로

모르는 것들 조금씩 박아넣으며

모르는 것들을 낳을 때까지 (「정원을 파는 상점」, 전문)




5월은 작약과 시와 함께 시작한다. 활짝 핀 작약이 져도 5월은 작약으로 남을 것이다. 시를 다 읽어도 시를 다 읽지 못해도 5월은 이승희의 시로 기억될 것이다. 박세미의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5-05-0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사하고 은은하네요. 왠지 자목련님도 그런 분 같은... ㅎ

자목련 2025-05-07 10:52   좋아요 0 | URL
올해 작약은 더욱 은은한 것 같아요. 저는 그렇지 않지만요 ㅎㅎ

독서괭 2025-05-0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자목련님의 작약이^^ 넘 아름답네요 색도 은은하니 예쁩니다. 시도 좋고요~ 작약과 함께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5-05-07 10:52   좋아요 1 | URL
작약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독서괭 님, 신나고 푸르른 5월 보내세요^^

다락방 2025-05-0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작약 검색해봐야겠어요.

자목련 2025-05-07 10:53   좋아요 0 | URL
작약, 강추합니다!!

레삭매냐 2025-05-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약의 계절이네요.

저희 동네 곳곳에 작약이 올라
오고 있어서 기대 만빵입니다.

라일락 향기도 아주 그윽합니다.

자목련 2025-05-07 10:53   좋아요 0 | URL
작약을 볼 수 있는 동네, 부럽습니다!

서곡 2025-05-02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댓글로 선물받았다고 말씀드린 작약도 핑크에요 오늘 쓰레기버릴 때 시든꽃송이도 같이 버리려다가 말았습니다 오월 잘 보내시길요

자목련 2025-05-07 10:55   좋아요 0 | URL
꽃송이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저도 당분간은 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젤소민아 2025-05-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약은 특별히 또 이쁘네요~~~

자목련 2025-05-09 09:39   좋아요 0 | URL
작약은 볼 때마다 반합니다!
 


주문한 작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송 중이니 아마도 오늘 중으로 작약을 만날 것이다. 작약 보다 먼저 도착한 책이다. 연두와 초록, 봄기운을 가득 담았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기다렸을 한강 작가의 에세이 『빛과 실』, 1쇄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1쇄가 아니라서 서운하지 않다. 얇고 작은 책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주문한 책들은 모두 그러하다. 표지에 반해서 냉큼 주문한 박세미의 『식물 스케일』은 제일 작고 얇다. 아, 『소설 보다 : 봄 2025』도 표지가 한몫했다. 성해나의 단편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표지에 딸기가 없었더라면 조금 주저했을 것이다. 책을 사는 이유도 다양하다. 아무튼 세 권의 책은 모두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오랜만에 책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에세이의 경우, 짧은 글 가운데 첫 문장은 작가가 책을 통해 처음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일까 싶다가 아무래도 편집자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박세미의 책에는 ‘들어가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 부분을 처음이라 여기고 싶지 않다. 소설은 정말 처음 말하고 싶은 문장이겠다. 그냥 내 짐작이다. 『소설 보다 : 봄 2025』의 첫 문장은 성해나의 단편 「스무드」 의 첫 문장이다.

발 없는 식물이 인간의 손에 들려 집 안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식물 스케일』)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 『빛과 실』

제프의 방한은 이번이 세 번 째였고 나는 처음이었다. (「스무드」)


각기 다른 작가의 문장을 하나로 이어 읽거나 순서를 바꾸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문장들이 이어가는 재미, 독서모임을 한다면 이렇게 읽어봐도 좋겠다. 책 하나로 뭐든 할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세 권의 책이 단짝친구 같다. 책이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잘 지냈어? 환한 봄이야!

책과 함께 작약을 기다린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25-04-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한테 ‘손’이나 ‘발’이 없다고 여기는 말은 어쩐지 안 맞지 싶습니다. 풀꽃나무가 사람을 보면, “어머 쟤들은 어떻게 뿌리도 잎도 줄기도 가지도 없어? 저러고 어찌 살아?”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정작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뿌리나 잎이 없어도 걱정하거나 따지지 않으니까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으려면 늘 들숲메바다를 품을 노릇인데, 우리가 시골을 등지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메바다를 통째로 잊어버린 뒤에,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그리워서, 숨통을 틔우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도시) 겹집(아파트)에서 집에 꽃그릇(화분)을 들였지 싶”습니다. 1970∼80년대까지도 ‘도시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마당에 풀꽃나무를 두었을 뿐인데, 풀꽃나무를 더 두고 싶으나 자리가 모자란 탓에 그제서야 꽃그릇도 마련해서 곳곳에 더 놓기도 했고요.

자목련 2025-05-02 10:29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각자의 손과 발이 존재하겠지 싶어요. 어린 시절 마당이 있었을 때에는 몰랐는데 아파트에 살면서 저도 화분을 들입니다. 잘 키우지 못해서 미안하지만요.
푸르른 5월 건강하게 지내세요!

망고 2025-04-3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기 표지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우리집 화분에 심은 딸기가 지금 저렇게 주렁주렁 열렸거든요😄

자목련 2025-05-02 10:30   좋아요 0 | URL
주렁주렁 딸기, 하나 따서 먹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4-30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짝친구인 책인데 요즘 조금 멀어진 느낌입니다. 폭삭 속았수다 보려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바람에요 ㅠㅠ
작약의 계절이 왔군요.
덩달아 자목련님께서도 작약같으십니다^^

자목련 2025-05-02 10:31   좋아요 1 | URL
저도 얼마 전 밤 늦게까지 폭삭 속았수다~~
벌써부터 작약의 계절이 짧아지는 게 아쉬워요!
작약이라 부러주세요 ㅎㅎ

서곡 2025-04-3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목련님 저는 이번 4월에 작약꽃을 선물받았어요 네 송이요 너무 예쁘네요 시들어서 꽃송이만 떼어놓았습니다 어서 작약이 도착하길 저도 바래봅니다

자목련 2025-05-02 10:32   좋아요 0 | URL
꽃송이만 떼오놓는 마음, 저도 알 것 같아요^^
도착한 작약으로 행복한 날들입니다~~

책읽는나무 2025-05-0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해의 작약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됩니다.^^

자목련 2025-05-02 10:33   좋아요 1 | URL
해마다 비슷한 작약이지만 언제나 처음처럼 반갑고 좋아요^^

젤소민아 2025-05-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있는데, 식물스케치는 없어요~~사러 가야쥐~~감사합니다~~

자목련 2025-05-09 09:41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과 같은 책을 곁에 두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