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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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득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이유 없이 울적할 때, 소설은 힘이 된다. 하여 위로 받고 싶은 순간을 잊어버리려 소설을 찾기도 한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면 가만, 안도의 쉼을 내쉬기도 한다. 조해진의 소설 <천사들의 도시>에 인물들이 그러했다. 철처하게 고립된 삶을 살거나, 보편적인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진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최선의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고, 위태로웠다. 

 표제작인 <천사들의 도시>를 포함해 7개의 단편 모두 울적하고 지친 군상들의 이야기다. <천사들의 도시>는 32세 한국어 강사인 ‘나’와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되 15년간 살다가 한국에 잠시 돌아온 19살 ‘너’의 이야기다. 사랑하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랐다. 언어를 시작으로 생각과 감정의 표현도 다르다. 분명 서로에 대해 알고 싶으나 쉽지 않다.  결국 ‘너’가 천사들의 도시로 떠나고 난 뒤 ‘나’는 너를 여전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는 독일 출장시 단 한 번의 관계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의 이야기다. 극심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아니, 그 순간 감정이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는 너무 혹독했다. 직장에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혼자만이 감당해야하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을 여자는 사무실로 카드 영업을 하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다.  포기하고 싶은 삶, 희망이 없는 삶. 여자에게 삶은 이미 계획된 극본같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세상의 문을 걸어 닫은 후 오늘분의 무대를 정리하고 커튼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p 62> 내일의 무대가 기다리고 잇음을 암시하는 것을 통해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억눌한 누명을 쓰고 2년 동안 감옥에 살다가 누명이 벗겨져 사회로 돌아온 남자와 연극배우로 단역만 전전하다가 주연을 땄지만 망막색소변성즈응로 인해 더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인 <기념사진>이 인상적이다. 분명 죄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직장도 구할 수 없고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없게 된 남자는 불륜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생계를 유지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아파트 6층에 산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여자는 무례하고 도도하게 보인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여자는 <그리고, 일주일>속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우연하게 여자에 대해 알게 된 남자는 여자를 돌봐 준다. <남자가 아는 것은 지금은 여자에겐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3년 전, 살인 사건이 이러난 집 앞을 지나가가 우연히 CCTV 카메라에 찍혔던 그날처럼, 그때 남자에게 절실하게 누군가가 필요해던 것처럼 지금 여자에게도 자신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남자는 그것만 알 뿐이다. p 170>

 단편 속 인물은 하나같이 그가 그녀같다. <인터뷰>의 주인공 우즈베키스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 버려진 여자 나탈리아는 한 말은 이 소설집을 대변하는 듯 하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란 걸 나도 몰랐으니까요. 운이 좋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나는 애초부터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죠. p 86>

 무엇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그 무엇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을, 나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그것이 무엇이었다. 이처럼 조해진의 소설은 차분함을 너머 우울했지만 그래도 닫혀있지 않았다. 에이즈에 감염으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세상에 나를 버렸지만 나는 도움을 바라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상황에 처해했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예기치 않게 닥친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은 버려야 한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경계에 서 있지만 경계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결국 그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런 소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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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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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네 일상과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류 작가를 특히 선호하는 것은 여자로써의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든 그들의 소설과 공감할 수 있어서다.  지극히 권태롭고 불순해 보이는 제목과 표지를 누구라도 이 소설을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작가의 등단작 <열 세살>과 <엄마들>을 읽었을 때 그 기대감을 기억하기에 주목받는 신예라는 문구가 내게는 당연한 것이다.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빠의 존재를 모르며 태어남과 동시에 나쁜 피라고 낙인찍힌 여자, 화숙이 있다. 두 모녀를 당연히돌바줘야 할 가족인 할머니와 외삼촌 조차 냉대와 폭력을 일삼았다. 그런 엄마에게 화숙도 연민보다는 증오와 분노가 있었다. 천변에서 고물상을 하던 외삼촌의 폭력에 쓰러진 엄마가 죽음에 이르렀지만 모른 척 외면했다.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 화숙이 비툴어진 심성을 갖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화를 동갑내기 사촌 수연에게 뒤집어 씌워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거짓말로 수연을 난처하게 했고, 외숙모의 외도를 외삼촌에게 고했다. 

 수연은 언제나 화숙는 다른 삶을 살았다. 연약했고, 여대생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심지어 사랑했던 옛 남자 재현과 다시 살림을 차린다. 화숙은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늙은 할머니를 부양했고, 삼촌에 대한 분노도 여전했다.  화숙에게 남은 것은 악의뿐이었다.

 못생기고 살집 많던 여고생은 뚱뚱하고 키 작은 노처녀가 되었다. 손톱은 언제나 뭉뚝했고, 찬 바람이 불면 손등이 트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 붉게 변해 피가 났다. 발뒤굼치도 언제나 허옇게 들뜨고 굳은 살점이 갈라졌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p 53

 어린 혜주를 살뜰하게 돌보는 옆집 여자 진순을 이해할 수 없다. 딸까지 버려가며 사랑을 선택했지만 수연의 마지막은 자살이었다. 재현을 찾으러 간 외삼촌은 실종되고 결국 시신으로 돌아왔다. 화숙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남은 이는 없다. 지겹도록 끔찍했던 외삼촌의 고물상이 새로운 일터가 되었고, 엄마도 외삼촌도 그 누구도 아닌 혜주와 진순만이 화숙을 기다렸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천변과 고물상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더럽고 피하고 싶은 곳이지만,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버려진 것들로 이뤄진 고물상이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삶의 근원지가 된다. 그 안의 사람들, 화숙을 비롯해 모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우울증으로 아이마저 외면하고 도망쳐야 했던 진순, 장애인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할머니가 술꾼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이기,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반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쉽게 천변을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혜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화숙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하여,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을 만들고 지키고 싶은 욕망이 살아났는지도 모른다.

 “다녀오셨어요.”
안채로 들어서자 혜주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색연필을 쥐고 있던 혜주가 다시 바닥에 엎드려 발을 까닥거리며 그림을 그렸다. 여자 셋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의 구석에는 세모 지붕의 집 한 채, 하늘에는 노란 해가 떠 있었다. p 178

 혜주가 그린 그림 속 여자들은 더이상 나쁜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새롭게 태어난 가족이다. 혜주가 화숙과 수연처럼 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화숙과 진순혜주에게 자신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표출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희생도 강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소설이나 외면할 수 없는 소설이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당신을 대신해 앓았으면 좋겠다, 라는 작가의 바람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그들이 몹시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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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0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원재훈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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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으로도 한국 문학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 그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설렘을 준다. 박범신이 만난 젊은 작가들에 비해 원재훈이 만난 작가들은 가장 적은 나이가 마흔인 중년을 훨씬 넘어선 작가들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는 작가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싶다. 21명의 작가중 정현종 시인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다소 흥분된 책읽기를 시작하였고 끝까지 그 기분은 계속되었다. 책은 1~2년 전 원재훈이 직접 작가들 을 인터뷰한 글들을 엮어 놓았다. 인터뷰한 장소는 주로 서울이나 일산이 많았고 도종환과 김용택은 작가의 집으로 저자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한 잔의 차나 술 잔을 마주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문학과 사랑, 삶,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명인이나 다름없기에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실도 많았지만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이 고교 동창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나 책을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나와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때문인지 은희경이 쉰을 넘겼고 정호승 시인이 예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언제가 책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법.  많은 책들 이 언급되었고, 정현종이 언급한 ‘카프카와의 대화’를 꼭 만나봐야 겠다 생각했고, 정호승의 만나지 못한 책을 주문 하기도 했다. 

 세련된 외모의 은희경이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안 좋아서 야반도주의 경험을  ‘비밀과 거짓말’로 썼다니 그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소설가로 사는게 좋아요. 이것만 잘하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산문을 쓰기로 했어요. 이제 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법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전 이제 문학소녀가 아니라, 일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소화해내는 것도 능력이죠. ” p 86  이제 그녀의 산문을 읽을 준비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윤대녕의 말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조부를 문학의 아버지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의 소설을 오늘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삶을 이야기하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입니다. 나는 이 오늘을 씁니다. ” p 113 그가 쓰는 오늘은 작가이며 독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 윤대녕의 단편‘못구멍’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딸과 함께 다녀온 인도 여행을 풀어 놓는 전경린의 글 속에서는 왠지 평온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집’ 이후로 그녀의 글에서는 불안보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을까. 글쓰기의 한가운데에서 글쓰기의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반문을 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p 426  혼자서 써야 하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한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아직 소설이나 시로 만나지 못한 작가도 있다. 윤후명의 작품은 몇 번 만났지만 읽다가 손을 놓았던 기억이 있고, 김선우의 산문집도 그러하다. 김선우가 쓰는 동안 쓰고 싶은 소설이 세 권이나 몸으로 들어왔다는 ‘나는 춤이다’가 궁금해진다.  읽는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원재훈의 글에도 있다 . 시인이라 그런지 무척 감각적이고 섬세했으며 같은 공간을 묘사한 부분도 작가마다 그 느낌에 따라 달랐고 독자가 작가들 더 사랑하도록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인터뷰 하는 내내 작가들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친구이자 선후배를 만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열심히 자신이 쓴 작품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소중하므로. 내게도 자주 자주 열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소중한 책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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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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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특정 지역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갈망이 있다. 대부분 자신이 자라 온 고향이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이 그러하다. 소설에서 만나지는 지역은 소설의 배경임과 동시에 작가에게 소중한 곳이 되는 경우다. 소설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자신의 터전인 서울의 봉천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작가 윤대녕은 집필 내내 제주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소설가 전성태에겐 몽골이 그러했다. 소설집 <늑대>는 몽골에 의해 탄생된 몽골을 위한 소설집이 아닐까. 
 
 열 편의 소설 중  실린 차례대로 <목란 식당>, <늑대>,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 6편의 단편은 모두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란 식당을>은 몽골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주인공 나와 화가인 나의 삼촌과 즐겨찾는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목련 식당>에 관한 이야기다. 교민 신문에 평 옥류관 출신 요리사가 온다는 광고가 실리면서 식당 분주해진다. 식당을 찾은 교민들과 관광객은 북한 출신 요리사는 장사 수단이라며 수입금이 북으로 유입되냐고 묻는다. 식당의 여사장은 사정이 생겼는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목란 식당>은 식당일뿐인데, 몽골에서 북을 대표하는 이미지화 되는 현실이 씁쓸한 소설이다.

 표제작인 <늑대>는 광할한 몽골을 그대로 드러난다. 캠프촌 게르에 늑대 사냥꾼들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소설은 화자가 바뀌며 전재된다. 사냥꾼의 길잡이를 역할을 하는 촌장과 그의 딸 치무게, 늑대 사냥을 온 늙은 기업가와 함께 온 여자 허와, 사원의 라마, 늑대 사냥을 도와주는 카자르.  각자의 시선으로 늑대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말과 낙타를 기르며 살고 있던 촌장에게 몽골의 시장 경제 도입은 삶을 변화시켰다. 

 < 한 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가. 게르 천장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現影)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필요한 것, 때로는 여자가지 도시로 나가 사야 했지요. 그 볼모의 대지에 살을 부리며 나는 내 생에 좋은 일을 다 끝났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 p 38 

 늙은 사업가는 몽골의 사회주의체제가 남긴 써커스를 상업화 시켜 돈을 번다. 써커스에 필요한 늑대를 원하지도 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말한다.  <나는 늑대 앞에 숙명적인 라이벌처럼 마주서기를 원합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니 죄의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이 없는 절대공간에서 독대하기를 원하니다. 스스로 자신을 사냥하듯이 이루어졌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나는 가징 사냥다운 사냥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p 46

 그믐밤 늑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라마의 말을 들었지만 사냥꾼들은 검은 수컷 늑대를 원한다.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 카자르는 양들을 몰아준다. 늑대 사냥은 결국 늑대를 떠나게 만들 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촌장. 늑대는 결국 몽골과 같은 것이었다. 늑대를 쫓는 사냥군이 늘어나고 그들로 인해 돈을 버 캠프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몽골은(늑대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리라.

 한국을 꿈꾸는 몽골인과 반대로 몽골을 꿈꾸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에서도 정착되지 않은 시장 경제 체제속에서 혼란스럽고  폐쇠적인 사회를 만날 수 있다.  몽골은 과거 우리가 걸어온 경제 발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에 가려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볼아보게 한다. 

 그외 단편 <강 건너는 사람들>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에서는 남과 북에 모두 아내를 둔 한 남자의 슬픔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이미테이션>이라는 단편은 혼혈아의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기에 결국 자신의 외모를 근거로 외국인 행세를 하며 학원 강사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진짜를 원하지만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은 몽골이라는 광활한 초원을 활주하는 늑대와 징키스칸의 후예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제 초원은 사라졌고 전성태는 이렇게 썼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始原)의 이지미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닦드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향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에서 돌아온 그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 마리 늑대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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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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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연이 딸과 살아가는 다큐를 시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경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김연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보험이 죽음이라고 했다. 지금 17살인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나이 쉰에 자신을 위한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닌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을 꿈꾸는 그녀. 홀로 딸을 키워가는 그녀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으나 행복해 보였다.   김연처럼 우리 주위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 여전하게 세상은 아직도 그녀들에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원제는  On My Own.  이 책의 저자 플로렌 포크는 두 번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치료사가 되어 상담해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말한다.

 연인이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남겨져 살아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상실감은 크다. 연인과의 이별, 남편과의 이별이든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별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려고 애쓴다.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때로 배신감은 더 클 수 있다. 

 저자는 ‘혼자라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써의 존재를 발견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혼 여성들이 베란다나, 부엌 한 켠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혼자라는 것의 확장은 고독과 이어지는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넘어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고독해지고 싶어졌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연장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부모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떠나버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믿었던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상처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 p 115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을 기억하라고 한다. 당신을 위해 썼던 일기, 책 읽기,  빨간 머리 앤의 상상하기도 비밀의 정원의 형태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길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다느 것을,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잘할 때까지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연습함에 따라, 갈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 p 247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반복도 연습도 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나는 노력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은 여성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찾아내는 행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고독의 참의미가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풍요로운 상태다. 나와 주변의 고요함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상태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앞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바람이 불어 그 상태를 흩뜨려놓지 않는 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한, 우리는 고독의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간다. ’p 298  아, 정말 멋진 말이다. 물론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나는 흥분하고 있다.

 책이 주는 특별함은 여성들만의 위한 상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거나 후배, 언니나 엄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물론 소개된 것이 여성들을 위한, 혼자인 여성들을 위한 삶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표현하라. 

 어려운 책이지만, 여성이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힘겨워 멈추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감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인 당신에게,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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