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2
구효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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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효서 라는 작가는 왠지 친근하다. 정작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말이다. 사연인즉, 친구와 같은 성을 가진 소설가로 친구는 항상 자신의 성을 이야기할 때 구효서들먹였다. 그런 이유일까, 친구의 딸은 효서가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흔한(?)인상이라 낯선 소설들임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갖고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소설속에는 혹시 작가의 일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에 대한 언급이 많다. 특히 차례로 이어지는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나무 남자의 아내> 세 소설에서는 특정한 직업을 소개하지 않고 여행자의 모습으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로의 회귀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 습작시절을 떠올리며 문학도로써의 모습은 이러하다 라는 사고로 살았을 것 같은 젊은 날, 우연하게 만난 자취방 주인 집 여자가 될 뻔한 여자와 소설가를 꿈꾸는 화자에게 말이 통하는 아줌마와의 만남은 즐거운 일상을 예고했을지 모른다. 우아함을 가장해 클래식을 듣고 신문 기사를 외워가며 이 소설가와 어떤 로맨스를 꿈꿨을까.  여자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게 안고 있던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 아니 직업에 충실하게 위해 한적한 암자에 찾아든 화자는 소설쓰기가 아닌 무료한 일상에 젖어든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그러다 탈출사 사내를 만난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탈출은 성공하지만 정작 떠나고 싶은 암자의 스님의 눈에서는 탈출을 하지 못한다.  소설을 쓰기 위함이라는 핑계를 대고 떠났지만 화자는 정작 아내의 임신 사실이 확정되는게 두려웠는지 모른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도 깡통을 딸 수 있고 특정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소설은 쓸 수 있다고 나는 그만 엉뚱한 단지를 걸고 만다.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이 단편은 참으로 재미있다. 제목부터가 너무 멋지지 않은가. 소설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은 모두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있기 때문이란다. 주인공 서 통이 소설가로 등단가지 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열심으로 창작의 고통의 결과가 아닌 힘있는 작가의 문하로 들어가서 추천으로 등단을 하거나 이곳 저 곳 학원을 옮겨 다니는 모습 등 한국문단의 등단과정이나 문학상 당선과정을 풍자하며 꼬집고 있다.
 
 묵집한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를 시작으로 9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9편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내게는 다소 생경한 소재의 소설이 두 편 정도 있었다. 마치 암호화된 글인양 느껴지는 < 아이 엠 어 소피스트>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이 두 소설은 군대라는 제약된 공간에서의 이야기인데 그 형식과 내용이 다소 파격적이었다.

 작가 구효서를 처음 만난 느낌은 어려운 글들이었지만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소설 쓰기와 문학에 대한 애정을 소설 속 곳곳에서 만나게 되어 더욱 그러했다. 소설 속 소설 쓰는 화자들은 대부분 남자들로 그들은 마치 작가 구효서의 분신들처럼 느껴졌다. 그는 책의 시작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말을 한다. 그 말을 통해서 타인에게로 건너가며,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이해한다. 또 그 말을 타고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말이 없다면 나도 없으며, 너도 없고, 세계도 없다. 말은 인간과 인간을, 존재와 세계를, 사물과 영혼을 연결하는 길이다. (중략) 문학은 이 미지에 말의 길을 내려는 운동이다. 아직 형태를 얻지 않는 세계와 존재와 삶의 신비를 말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특히 소설은 일상의 큰길의 한복판에서 오고 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가장 싱싱한 말이다. 성(聖)과 속(俗), 귀(貴)와 천(賤),내면과 실재를 가리지 안고 그는 세상의 모든 길을 달린다. (중략) 도처에 울려 퍼지는 문학의 죽음이 거짓 소문이라는 것, 우리가 말을 버리지 않는 한, 아니 버릴 수 없는 한, 말은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며, 아직 형태를 얻지 않는 우리들의 진실을 향해 달려올 것이라는 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누가 우리의 가는 길 묻거든, 눈을 들어 이 말을 보게 하라.

 그의 글은 소설을 꿈꾸는 이에게, 그가 독자이건 작가이건 아니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힌 모든 이에게 강력한 위로가 되고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을 제대로 전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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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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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책이 있다. 모두들 감동적이라고 극찬하는데 내게는 좀 어지러운 느낌을 주는 책. 왠지 나만 남들이 느낀 그것을 찾아내지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책, 이 책이 그러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떠나는 머나먼 여정. 그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왜 그 험한 여정을 가고 있는지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요란한 문구는 책을 선택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까?  미국 현지에서 유명세를 탄 책. 낯선 작가, 사실 외국 작가에 익숙치 않다. 코맥 매카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라는 것뿐. 
 
 시작은 음울했다. 그 시작은 끝내 음울을 버리지 못했다. 글씨를 채 배우지 못한 어린 아들, 세상의 모든 것에서부터 아들을 지켜야 했던 아버지. 아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메마르고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세상에 혼자 남아야 할 아들을 연습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런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아들은 이렇게 묻는다.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
알았어요. 본문 16쪽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얼마나 확인하고 싶었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남자는 절대적인 그것이었다. 모든 문명은 사라지고 세상은 두려움과 정적뿐이다. 여기 저기 흩어진 죽음의 잔해, 그들을 죽이려 달려드는 사람들, 내가 살아야 하기에 결국은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인육을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세상의 종말은 그런 모습일까.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날까 두려운 것은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온기를 확인하는 어린 아들, 꿈속에서 죽음을 만나고 아내를 기억하는 남자.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했고 끊임없이 걸어야 했다. 걷고 또 걷고.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겁고도 무거운 여정이었다. 책을 읽는 나는 점점 지쳐갔다. 세상의 끝을 향한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종말은 또 다른 시작일까.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본문 64쪽

 어디에도 빛은 없었고 공기마저 절망처럼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손에 꼭 쥔 총 한 자루,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을 운반하기 위한 카트,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동자, 남자를 떨어지지 않는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끔찍한 고통속에서 살아남은 어린 아들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신이 선택한 존재인가. 소년은 세상에 빛이 되고 불을 켤 것인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에 홀로 남은 아들,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소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본문323쪽

그들의 여정은 끝이 났다. 페허가세상 속으로 아버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아들은 살아남았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바다를 향하던 그들이 향한 곳, 마침내 도착한 그 끝에 남은 것은 희망이었을까. 그곳에는 희망과 구원이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여전하게 내게는 잿빛 연기로 둘러싸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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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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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랑이라, 도대체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요즘 이래 저래 내게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사랑이라는 단어. 꼭꼭 곱씹어 그것이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맛보고 싶어진다. 더구나 이언 매큐언이 아니던가. < 첫사랑, 마지막 의식 >에서 그는 예상치 못했던 인간의 내면 구석구석을 파헤져 놓았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 수 없는 상황 설정, 그 안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도덕성과 자유분방한 문란함을 동시에 생각하게 했다.

 이 책에는 어떤 사랑이 있을까. 짧은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이언 매큐언은 강한 흡입력으로 책 속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한가로운 피크닉의 풍경, 낭만적인 헬륨풍선을 떠올리면 그것은 행복한 상상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풍선에 타고 있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남자들 중에 조와 클라리사의 일상에 들어온 한 남자, 패리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눈에 반한 사랑, 패리는 조에게 그런 사랑을 느꼈다. 동성애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 상호적인 교류가 없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그의 접근은 조를 당황하게 만들고 만다. 패리는 조의 곁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점점 조여드는의 행동에 조는 그가 정신질환인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을 잊었다. 바로 그의 곁에 있는 클라리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패리의 전화가 걸려온 그 날, 바로 클라리사에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사랑하면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틈은 그 둘의 관계에 벽을 만들고 만다. 패리로 인해 조와 클라리사는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 시작한다. 클라리사는 패리의 문제를 자신과의 많은 대화로 풀기를 원했다. 조가 자신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조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패리를 향해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 사랑하는 클라리사를 위협하고 자신앞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게 그가 총을 겨눈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조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가 그의 사랑에 대해 호응만 했더라면 그조 대신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되었을까. 그러나 어떤 답도 정답은 없다.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이렇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클라리사와 조의 관계는 예상대로 멀어지고 있다. 조는 클라리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패리에게 총을 쏜 일에 감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클라리사는 이런 결말을 이끌어 낸 조에 대해 이미 많은 믿음을 상실한 상태였다. 과학분야의 저널리스트인 조는 과학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고통을 보여주고 싶었던 조, 결코 평범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전부였던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남자 패리. 자신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지 않았던 조를 이해할 수 없었던 클라리사.  일상적일 수 있는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언제나 맞닥들 일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끔찍한 진실이다. 
 
 이언 매큐언은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대중적으로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작가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감정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의 처절한 고통, 인간의 본능적 양면성을 만나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는 항상 치명적인 무엇이 함께 한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가다.

 니체가 말했다. 사랑이 두려운 것은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라고.  깨지는 것 보다 변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배제되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수많은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들, 그 사랑들 중에 이런 사랑도 분명 존재할지 모른다.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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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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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조금은 유치한 연애담을 상상하게 된다. 사랑,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 사랑이라는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까. 사랑, 그 치명적인 달콤함은 때로 상처받고 때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김연수식 사랑법은 어떨까? 그의 글을 조금 맛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가 고집하는 자신의 세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80년대 마지막 세대를 읽는다는 것, 90년대 초반의 세대를 살아온 나는 가깝고도 먼 거리를 만나게 된다. 혼란이 있었고 나름대로 세상은 정리되고 있는 듯 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그들이 갖는 사랑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읽는다.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 아니 두 남자의 의식 차이라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져든 순간, 세상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와의 통화, 그와의 약속, 그녀의 근황, 그의 가슴 밑바닥에 숨겨진 생각. 온통 그것들뿐이다. 연인을 중심으로 돌고도는 세상, 그럼 나는 어디에 있을까? 선영이를 둘러싼 현재의 사랑, 광수와 한때 지나간 사랑, 진우의 사랑법. 

 광수와 진우의 사고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상대를 위한 배타적 사랑과 지극히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으로 대비된다. 탄탄한 직장인 광수, 소설가인 진우. 그들이 겪은 대학시절, 그 안에서의 사랑은 이제 술자리 안주가 되어버리지만 온몸으로 흐느껴 울던 그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사. 물론 사랑도 달라져보인다.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현실과 충돌했을때 또 다른 모습으로 파생된다.

 사랑하나만 믿고 세상을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잔혹한가. 아니, 그래도 사랑을 믿고 살아가야만 할까. 유치찬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을 겯들어야겠다. 김연수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득 ‘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 이런 유행가 구절이 떠오른다. 정말 누가 말했을까. 결코 달콤하지 않는 사랑인 것을 그는 믿고 싶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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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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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그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듣고자 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리에서도 누군가 켜놓은 사무실 라디오를 통해서 휴대전화의 벨소리, 음악은 우리의 귀를 자극한다.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고 개인 블로그에 음악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 날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선곡하는 음악도 다르다. 또한 특정한 음악을 들을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쯤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저자 올리버 색스는 오랜 기간 환자들과의 교류를 책으로 발간하여 화제가 되곤 했다. 그 중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를 만났다. 이번에 그가 쓴 <뮤지코필리아>라는 책은 음악을 통해 발견한 놀라운 사실들의 기록이다.  음악으로 치유되고 음악으로 고통받고 결국 음악으로 하나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음악 때문에 겪는 여러가지 상황들은 결국 뇌로 이어지고 우리의 뇌는 정말 미지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남에게 들리지 않는 음악이 시도 때로 없이 자신에게만 들리는 사람, 어제까지 즐겨 들었던 음악이 오늘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 열심히 연주하던 악기를 연주 할 수 없게 된 음악가, 치매로 인해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게 되는 사람들, 음악에만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 결국 그 환청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그 고통들을 끌어안는 법,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일까?

 보여지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환청에 시달리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이며 세상과 고립된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리버 색스라는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고 의견을 구하는 것은 올리버 색스가 그들에게 지닌 기본적인 의사로써 갖춘 그 외의 열정과 애정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문서적에 가까운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도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에서 느꼈던 저자에 대한 믿음때문이다. 더구나 뇌에 관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과 지인들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치료를 위해 자신의 피아노를 병동으로 가져다 놓는 의사는 얼마나 든든한 존재이겠는가.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다리 수술 후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특정 음악을 듣고 걷기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 싫어증에 음악치료의 접근이 효과적이었다는 것, 파킨슨 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 이 모두는 뇌가 어떤 음악적 흐름에 움직인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외도 일반적으로 우리는 음악을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  

 지금도 음악을 듣는다. 내게도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불안에 휩싸여 있을 때 나를 지켜준 노래가 있다. 장시간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 입은 뗄 수 없었을 때, 숨을 쉴 수 없어 중환실에 산소 마스크를 달고 있을때에도 내 머리속에는 흐르는 노래가 있었다. < 축복송 > 이라는 가스펠송인데, 이상하게 그 노래를 듣고 있거나 마음으로 부르고 있으면 큰 위안이 된다. 아마도 나의 뇌는 < 축복송 > 이라는 음악적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악은 우리의 곁에 존재할 것이다.  즐거울 때 흥을 돋어주고, 슬플 때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그 음악으로 인해 여전하게 고통받는 사람들 역시 음악과 함께 할 것이다. 

 올리버 색스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는 뇌질환 환자들의 이야기,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특별한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가 참으로 고맙고 그의 또 다른 시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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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7-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자목련님!
여기서 만나니까 무지 반가운걸요~^^

자목련 2008-07-29 14:20   좋아요 0 | URL
아, 뒷북소녀님..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주시고, 저도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