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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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왜 이리 고단한 것일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심으로 살아내고 있는데 언제나 그 자리인 우리네 살림살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그런 우리네 마음을 작가 공선옥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꾹꾹 눌러 담은 김장 김치처럼 12편의 단편들이 그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12편 모두를 읽어내는게 힘겨웠다. 그 힘겨운 편린들을 끌어안기에 나는 아직 삶에 대해 여유롭지 못하다.

 버스 차장을 비롯하여 많은 직업을 가졌다는 작가의 이력은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겉도는 가족들, 이혼, 별거, 미혼모,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 변방의 삶을 말한다. 어느 누구, 그리 살고 싶겠는가.  열심을 냈던 사업이 경기 침체로 무너지고,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과 가난은 눈물까지 마르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지나치도록 명랑하다.

‘꽃 진 자리’, ‘폐경 전야’ 에서의 바르고 모범적인 삶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교사들, 때로는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싶고 때로는 욕지거리 내뱉고 싶다. 시골 좁디 좁은 작은 방에서 미래를 꿈꾸던 ‘명랑한 밤길’속 스무살의 그녀들은 넓은 세상, 화려한 세상으로 달려나가고 싶다. ‘도넛과 토마토’, ‘별이 총총한 언덕’ 그녀들은 지긋지긋한 삶,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감, 놓아버리고 싶다. 새로운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고 싶고 간절한 꿈을 다시 꾸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욕망을 감추어야 하고 늙은 노모를 병든 엄마를 돌봐야 하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긴 투병생활, 남편의 죽음은 치매걸린 시부와 철모르는 세 아이가 남았다. 남편의 죽음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자신이 너무 서러워 울어야 하는 삶.  몰려드는 수입 농산물, 그래도 농군은 농사를 지어야 하고 미혼모는 이해받을 수 없는 세상, 사랑했지만 아이가 아닌 자신을 선택하라는 남자. 자신의 뿌리를 찾았지만 어머니를 찾게 하지 않는 어머니의 나라. 이것들은 모두 피하고 싶은 감추고 싶은 사실이며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다.

 공선옥이 그려낸 인물군은 참으로 애처롭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고 살아가지만, 세상은 언제가 그것을 빼앗거나 그 이상을 요구한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더 애처롭다. 문학이라는 것이 때로는 지친 삶을 위로하고자 적당히 포장하지 않는가. 놓아버릴 수 없는 삶,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삶, 말도 통하지 않고 월급을 받지 못해도 자신을 위로하는 한국의 유행가를 사랑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폭우로 가족을 잃고 남겨진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만나면 싸우는 명절. 공선옥은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의 옆 자리에 혹은 그들과 같은 곳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결국 희망을 말하려 한다. 어두운 밤길, 명랑하게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통해, 다툼은 그만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가족들의 작은 노력을 통해, 힘들고 무서운 세상, 혼자보다는 함께 라는 것을 알기에 고단한 그들이 기댈수 있는 어깨를 그녀의 글을 통해 선뜻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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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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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동기중 고향이 김천인 녀석이 있다. 녀석과 연락이 닿으면 작가 김연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그러나 때로 진실은 바람빠진 풍선같은 것이라는 아직은 그가 쓴 글을 통해 그를 상상한다. 아직 나는 그를 ’열렬하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열렬하게’로 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니 등단 이후 많다 싶은 책들을 냈다. 겨우 소설 한 권, 산문 한 권을 만났지만, 유독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영역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가 태어난 70년대, 그가 살았던 김천, 그가 믿고 있는 세상을 고집스러게 강조한다고 할까. 특히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라는 이 소설집은 온통 그 시대, 그 공간의 이야기임에도 이상하게 그 고집이 괜스레 반가웠다.

 김천역 파출소 옆 <뉴욕제과점>을 그려본다. 역전을 지나 어딘지 알 수 없는 평화시장, 골목에 서 있다. 그가 살아온 김천은 내게 대전이라는 도시를 떠올린다. 역을 끼고 가득 늘어선 난전, 시장통을 지나 즐겨갔던 극장, 촌스러운 나의 학창시절, 나만의 꿈을 꾸고 짝사랑하다 치져 울기를 반복하던 그 때의 나, 풍물패 동아리에서 집회를 주도하던 선배의 낯선 모습, 공중전화 작은 공간에서 전화선을 타고 나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힘을 얻던 순수하고 순진했던 나를 만난다.

 이상한 일이다. 제과점 돈을 가지고 도망간 게이코를 찾아 떠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불편한 여정을 그린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를 시작으로 단편들은 마치 기억 저 너머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처럼 느껴진다. 70~80년대 나무책상, 나무의자에 앉아 무조건 선생님의 말이라면 순종, 아니 복종까지 해야하는 줄 알았던 학창시절이 사진첩처럼 펼쳐진다. 드닷없는 선생님의 전출, 어른들의 세계는 모두 정의로운 세상이라 믿었던 우리들의 모습.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였을 때의 내가 상상했던 어른이 아니며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도 않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던 시대를 그는 80년대 광주를 연상시키는 슬픔을 단편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속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이사온 은재네 집을 통해 상처를 달래주고 싶은 바람을 보여준다. 골목을 공유하고 마당을 공유하고 심지어 안 방을 공유하며 살았던 이웃들, 친구들, 그 시절의 모습은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곳곳에 드러나는 묘사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애잔한 그리움을 몰고온다.

 여린 소년에서 어른이 되면 눈물을 그쳐야 할까. 단편<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비장한 결심이 느껴진다. 그 소년은 지금 단단한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 가끔은 눈물짓고 가끔은 쉬고 싶은 30대의 가장이 되었을지 모른다. 9편의 단편 중 나를 울리는 단편이 있었다. 모든 소설이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특히나 <뉴욕제과점>은 30대를 넘어 40대를 향하는 지금의 나로 살기까지 지나온 과거의 나를 생각하게 한다. 과거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부재의 존재가 된 내 어머니.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사이에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아무리 견고한 것이거나 무거운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 밀려드는 파도에 모래톱이 쓸려나가듯이 자잘한 빛들이 마지막으로 반짝이면서 어둠 속으로 영영 사라졌다, 내가 태어나 어른이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말이다. <뉴욕제과점 본문 75쪽>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뉴욕제과점 본문 79~80쪽>

 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나를 지탱했던 불빛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 나를 지탱해 줄 불빛을 찾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허구를 구성하는 것은 경험이며 그 경험을 공유했다면 소설은 허구가 아닌 진실이 될수 있다.<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통해서 김연수는 내게 그의 추억을 나눠줌과 동시에 잠자고 있던 내 어린시절을 흔들어 깨운다. 그의 신작인 <밤은 노래한다>대신 이 책을 먼저 읽은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이제 그가 들려줄 노래를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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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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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석제라는 작가를 떠올리면 유쾌한 기분이 따라옴은 그를 만난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오랜 만에 산문이 아닌 그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이번에는 어떤 해학적인 모습으로 돌아왔을까 기대가 앞선다. 물론 성석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이야기꾼인 성석제소설속에는 꾸미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어 더 친근하다. 여전하게 책을 읽는 내내 삐죽삐죽 웃음이 터져나왔다. 혹, 그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옆집 아저씨는 아닐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진솔하며 실제적인 이야기를 누가 감히 만들 수 있겠는가. 

 삼삼오오 의기 투합하여 단풍놀이라도 가고 싶은 가을, 그의 소설은 독자를 자극한다.  9편의 소설 속 세 편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여행에 대해 말을 건다. 흑백 사진처럼 간질 간질한 지난 날의 추억도 있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여행을 떠나라는 말을 확인시키는 듯한 사건도 있고 일상이 아닌 여행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도 있다. 삶은 긴 여행이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가. 성석제가 이끄는 여행에서 만난 촌스럽고 구수한 사투리는 힘든 여행 길에서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고집스러운 지방색이 아니라 흔하게 만나는 정겨운 사투리는 그만이 가진 정겨움이다.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사소한 다툼은 끝내 처음의 시작과 다른 결말을 주는 <여행>, 설악에 대한 다른 목적을 품고 등반에 오르며 만나는 에피소드를 즐겁게 다루며 웃음을 선사하는 <설악 풍경>, 제목만으로도 분명 돌발적인 사건을 예상하게 하지만 그와는 다른 숙연함마저 들게 하는 <피서지에서 생긴 일>. 모두가 극과 극의 인물 구도로 설정하여 적지 않은 갈등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융화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새로운 여행을 권하고 있는게 아닐런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건, 그러나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건 사고를 이어 놓은 소설, 201Ⅹ로 미루어 보아 미래의 신문의 한 지면을 보는 듯한 <톡>은 나를 제외하면 괜찮다는 우리들의 모습을 직면하는 듯하다. 그에 반해 노숙자에게 작은 애정을 보인 국수집의 주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깡통>은 소설 그 자체만으로 대조적인 느낌이 든다. 

 색, 마약, 술에 중독되어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온 남자, 아들에게 친구하자고 말하는 남자, 그런 아버지가 여전하게 미덥지 않은 아들. 재산도 잃고 아들에게게는 이혼서류를 사인을 권유받는다. 과거의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에 중독되고 싶은 남자는 ‘나, 지금 무지 행복해’  라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요양 시설에 스스로 입원하는 남자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중독되가고 있음을 발견하는 <지금 행복해>. 그들이 외치는 한 마디 ‘지금 행복해’ 는 내게도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단편은 낚시에 대한 이야기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낚시로 포장된 우리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들.  때로는 무엇을 낚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낚기며 의외의 상황에 엮여 고생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섞이고 섞이는 것이 삶이라는 낚시가 아니겠는가.

 삶은 긴 여행 길을 걷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여행 길에 마음 맞는 이들을 만나는 것을 더할 수 없는 기쁨이겠지만 때로는 반짝이는 낚시 바늘에 낚이는 물고기처럼 낯선 여행 길에 빠지기도 하고 그 길에서 다시 또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되는 것. 알 수 없은 그 여행 길에 동행할 수 있는 이( 친구가 되는 두 부자처럼)가 곁에 있다면 ‘지금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책을 덮고 나니, 막연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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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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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선뜻 읽혀지지 않았다. 이상한 오기라고 할까. 대체 어떤 내용 이길래 하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심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그런 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표지에서 산뜻한 정원의 한 컷을 기대했지만 나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러나 우선, 나의 오기는 잘못된 것이었다. 참으로 칭찬하고 싶은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쉽게 읽혔고 따뜻했고 구석구석 재미와 더불어 애잔한 여운도 주었다. 
 
 10살짜리 아이 동구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 그 세상은 폭풍전야 같았던 1980년을 이야기한다. 청와대와 가까운 인왕산 자락의 산 동네 살고 있는 동구. 그저 평범한 집의 아이. 동구의 곁에는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는 엄마,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버지, 항상 험한 소리를 달고 사는 할머니, 부서질듯한 보석같은 동생 영주가 있다. 그저 늦된 아이라 생각했던 동구가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박영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동구에게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의 제목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동구가 된 양 눈을 감고 읽어본다.

 마음 먹은 대로 말하지 못하고 흥분하면 말이 엉켜버리는 동구, 반면에 세 돌이 되기 전에 글을 읽는 동생 영주, 집 안에서 동구는 영주에게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나눠준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구의 애정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러나 그런 선생님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떠나고 만다. 동구에게 이별을 고하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언제라도 돌아올 것을 믿는 동구의 순수한 마음이 아름답고도 애처롭다. 10살 눈에 비친 세상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세상은 혼란스럽고 어른들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 서울 한 복판에 탱크가 들어오고 아이들은 흥분한다. 그것이 아이들이다. 세상은 요란해도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신나는 재미꺼리로 보인다. 조금 천천히 세상을 알아가는 동구에게 사랑스러운 영주의 갑작스런 죽음은 엄마에게서 미소를 빼앗아가고 동구네 집은 흔들린다. 10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적은 나이이다. 동생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른 나이. 

 작가 심윤경은 소년의 성장을 말한다. 아름답고 따뜻하게 동구에게 좀 더 많은 웃음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도 가혹하게 이별을 겪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물론 안다. 세사은 험한 곳이라는 것을, 더구나 동구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 시대의 동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소설은 동구가 좋아했던 동네의 삼층집 정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동구가 겪었던 이별, 슬픔을  그 안에 남겨두고 끝을 맺는다.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슬픔과 상처를 남겨두고 문을 닫을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문득 동구를 생각한다. 지금 동구는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까. 동구는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눈을 가진 어른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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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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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종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선뜻 구매하게 된 것은 작가의 이름 때문이었다. 시인 정현종님을 좋아하는 내게 현종이라는 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당연 남자이려니 했던 작가가 여자라니 이 책은 나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했다. ‘동화보다 발칙하고, 영화보다 기발한 아홉 가지 이야기’라는 광고 카피는 탁월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사과의 맛이라는 단편은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의도적으로 기획된 소설집일까. 어쩌면 작가의 전작을 읽었더라면 아마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사과의 맛을 시작으로 오현종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다행인 셈이다.

 사실, 동화 속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떠올렸다. 여전하게 동화라는 것은 꿈과 환상을 안겨주는게 아니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의 환상, 놀이공원에 만날 법한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을 꿈꿨는지 모른다. 동시에 우리는 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맺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상추, 라푼젤> 신선했다. 경어체로 시작하여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상큼함과 가벼움을 상징하는 상추와 상추를 먹는 아내의 뚱뚱한 모습의 설정이며, 상추로 아내의 남편을 유혹해 결국 라푼젤을 갖게 되는 옆집 여자는 마녀라기보다는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여자였다.  아이만을 간절하게 원한 평범한 여자. 아름답게 자란 라푼젤을 사랑하는 왕자. 성이 왕이고 이름이 자인 어쩌구니 없는 이름까지 꽤 동화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요정, 라푼젤은 현실속에서는 남편 왕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로 남게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라푼젤의 자화상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연금술의 밤>은 열어서는 절대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과거의 사랑했던 마리라는 여인을 잊지 못하는 형과 자신이 누군가의 대역으로 사랑받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고도 마리로 살고자 하는 여자, 그리고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면서 그 둘을 지켜보는 나, 마리가 과거의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셋은 정말 영원하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화속 행복한 결말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를 보면 성이 ‘인’이고 이름인 ‘어’라는 반인반어의 여자가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딸의 탄생은 가족에서 무거운 짐이 되며 더구나 창창한 미래를 펼칠 아들이 있다면 인어는 물 속으로 사라져 주기를 내심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어부인 아버지가 건져 올린 물병은 새로운 요술램프가 되지만 그들은 인어의 완전한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쉽게 부자라는 소원을 말해버린다. 인어의 결혼과 동시에 이사를 가버린 가족과 인어를 사랑하지만 욕체적 교류를 원하던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녀가 선 곳은 탐욕과 음란이 가득한 현실의 공간인 지중해나이트의 수족관속.  목소리를 바꿔 왕자의 앞에선 인어공주처럼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우리의 인어는 두 다리를 갖지 못했다. 

 <닭과 달걀>단편을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다. 홀로 아들을 키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대부분 시어머니의 압승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동화적 테마를 갖추지 않아서 다른 단편에 비해 더 돋보였다. 광산으로 금강석을 캐러 남편이 떠난 후, 독선적이고 욕심만 가득한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차분하게 치뤄내는 계획적인 결말은 섬뜩했지만 목에 걸린 독이 든 사과가 시원스레 빠져나오는 듯 했다. 음식을 소재로 하여 만든 독특함과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멋진 조화였다.

 동화라는 것을 꼭 같다 붙이지 않아도 이 책을 충분하게 재미있으며 나쁘지 않았다. 9가지 이야기속에는 동화에서 모티브를 찾거나 현대를 살고 있는 동화, 혹은 전설, 신화속의 인물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빛나는 소설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이다. 물론 나는 <동화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김형중님의 글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니 직접 전작을 만나게 된다면 다를지 모르나 <너는 마녀야><본드걸 미미양의 모험>등의 제목에서부터 사과의 맛까지 전체적인 소재나 테마를 모두 동화, 신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이 이 작가의 매력이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사과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녀가 더 넓고 다양한 문학을 그녀만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길 바란다. 그녀가 새로운 변화의 나래를 펼칠 것이라 믿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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